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12
112. 미래에서 온 물건(2)
얼굴부터 가슴 위쪽만 보이는 영상인데, 실물의 절반 정도 크기로 보이는 홀로그램 영상이다.
영상의 하단에 Terre이라는 영어 알파벳 표기가 나타났다.
“이름이 테라, 아니 테르, 아니아니 테레?”
영상 속의 여인 라일리가 테라라고 하는지 테르라고 하는지 헷갈리는 발음이다. 여하간 영어 발음은 한국어 발음과 달라서 헷갈리긴 한다.
태영의 반문에 당연히 대답할 리도 없이 말은 계속되었다.
아주 깨끗한 음성, 얼굴만큼 예쁜, 아니 사람의 혼을 뺏어갈 정도로 매혹적인 목소리이다.
영상 속의 저 여인이 이 가방의 주인이라는 말이고, 라일리는 여자였네.
그런데 두들겨 깨면 열릴 텐데 뭘 다시는 못 열어?
아, 맞다. 칼로 긁어도 흠집조차 안 나는 재질이었구나.
그리고 영상은 사라졌다.
영상이 사라지고 난 뒤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 그리고 귓속에 남아 있는 그 목소리는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다.
“하아, 미치겠군.”
진짜 미칠 일이지만,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강제로 정신을 깨웠다.
정신을 차리자 생각난 것이, 처음에 열릴 때 제법 긴 시간이 걸렸지만, 두 번째는 3초 만에 열린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처음으로 이 가방을 열었다면, 결국 완전히 잠겨서 다시는 열 수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가방이 보여 준 것들을 보면, 21세기 현대의 기술을 아득히 넘어선 기술이다.
SF영화에서나 보았던, 그런 기술의 범위에 속한다.
처음에는 10초쯤 손을 대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DNA를 읽었다고?
피부 조직을 떼어 내서 분석하지도 않았는데?
“돌아 버리겠네. 일단 시키는 대로 충전을 해 보자.”
겨울 해가 짧기는 하지만, 아직 여전히 낮이다.
태영이 Recharge 버튼을 누르자 가방은 별도의 절차 없이 스스로 닫혔다.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와서 집 앞에 있는 식탁만 한 테이블 위에 얹고 시계를 보았다.
3시 12분.
2시간은 충분히 햇볕을 받을 수 있다.
가방 케이스가 집광판 역할도 하는 건가?
어디를 봐도 태양열 발전기의 집광판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21세기의 기술을 아득히 넘어선, 미래의 기술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충전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여자는 무슨 이유로 어떻게 이곳으로 왔을까?
분명히 태영이 살던 그 시대보다 훨씬 더 미래로 생각되는 기술을 가진 것이 확실한데, 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으려나?”
그러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아냐. 돌아갈 수 있었다면, 이런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을 거야.”
라일리도 미래에서 이곳으로 날아왔다면,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했을 테고, 그 노력이 성공했다면, 이런 유의 메시지를 남길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이곳에서 살아갔을 것이고, 안타깝게도 노력은 성과를 보지 못했기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젊고, 정말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동양과 서양이 조화롭게 섞인 듯한 신비감에, 전혀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짙은 눈썹과 빨려 들어갈 듯하면서도 영롱한 눈빛이었다.
영상 속의 라일리는 잘 봐줘야 이십 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라일리는 왜 그 어린 나이에 굿 바이 메시지를 남긴 것일까?
1시간이 지났다.
띠릿~
햇살 속에서 1시간 10분쯤이 지났을 때, 태영이 손을 대었던 부분에서 빛이 몇 번 깜박이면서 소리가 났고, 그건 충전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초병에게는 내가 나올 때까지, 날 찾지 말라는 지시를 하고 거실로 들어왔다.
거실에서 가방을 열었을 때 영상은 보이지 않았고, Recharge 아이콘은 옅은 회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태영이 다시 Play를 눌렀다.
처음과 같이 태영을 바라보는 라일리의 영상이 떠올랐다.
여전히 얼굴과 가슴 부위만 보이는 영상인데, 이제야 느낀 것이지만, 상의를 입지 않은 것인지 영상 속의 라일리의 모습에 옷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귓속에 남아 있는 그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면서 뭐가 좋은지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며 윙크까지 한다.
목소리만으로도 모든 무장을 해제시킬 만큼 아름다운, 거기에 얼굴까지 저렇게 예쁜 여자가 윙크를 하니 가슴이 떨리기까지 한다.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뛰면서 호흡이 거칠어지고,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미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국 여자들 중에 저런 미인이 있었던가?
단연코 처음이다.
“뭐?”
웨스트 버지니아라면 미국 땅인데, 유럽 사람들에게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는 신항로 개척을 통해서 미국 땅이 발견되려면 아직 200년이나 뒤의 일이다.
그러기에 미국은 원주민들만 살고 있는 땅일 테고, 당연히 웨스트 버지니아라는 지명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던 시대보다 훨씬 더 미래에서 온 거 맞네.”
이 가방이 태영이 살던 시대를 아득히 넘어선 미래의 물건일 것이라는 짐작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상한 빛?
태영이 무기 수송 작전 중에 이 시대로 날아올 때는 이상한 빛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미봉산에서는 기억이 있다.
라일리가 말하는 이상한 빛.
그것이 태영이 미봉산에서 본 그것과 같은 것일까?
그냥, 이상한 빛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그게 어떤 형태였는지 묘사를 좀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령 프랙탈 무늬 같았다든지.
일시 정지 아이콘과 정지 아이콘이 액정 패널에 떠올라 있었지만, 어버버하는 사이에 라일리는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휴~ 하고 한숨을 한번 내쉰다.
나하고는 다르네.
난 수많은 트럭과 그 트럭 속에 들어 있던 것들이 같이 왔는데.
“그런데 가방과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이라 했는데, 다른 물건은 없었는데.”
호장고 안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분명 없었다.
“다른 데로 갔나 보군.”
그러는 중에도 라일리의 말은 계속되었다.
73년을 살아?
그런데 저렇게 젊고 예쁘다고?
“뻥치시네.”
아직도 벌렁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는 않았지만, 순전히 뻥이라고 입으로 내뱉으니 조금 더 진정이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리 나이를 많게 봐 줘도 본인이 말한 26세이고, 그냥 느낌대로라면 22세 아니면 23세 정도, 그 이상은 봐 줄 수가 없다.
“계산대로 하면, 지금 나이가 99세인데 저 얼굴이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을 거 아닌가?”
태영의 중얼거림과 놀람은 상관없이 라일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기에 잠깐 생각을 정리해 보기 위해 Pause 버튼을 눌렀다.
태영을 쳐다보며 매력적인 웃음을 보이고 있는 홀로그램 속의 라일리의 모습을 천천히 뜯어보았지만, 아무리 장난을 친다고 해도 그렇지.
애니메이션 영화나 게임 등에서처럼 모델링 툴을 이용하여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이십 대 초반이 맞을 것이다.
“에이, 속아 주지 뭐. 이렇게 영상 메시지까지 남기면서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
Play 버튼을 다시 눌렀다.
전자에 해당되네.
나도 미래에서 왔거든.
탄소 연대 측정법이라는 것이 있긴 하다.
그러나 방사성 탄소(C-14) 측정법은 정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내용이, 실제로 살아 있는 달팽이를 측정했더니 2,000년과 27,000년 전의 것으로 측정되었고, 바로 죽은 물개를 측정한 결과 1,300년 전의 것으로 나와서 연대 측정법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결과의 도출도 있었다.
적어도 태영이 살던 시대에는 그랬는데, 그 뒤에 어떤 형태로 과학의 발전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지만, 10년 범위 내의 정확성으로 시대를 알아낸다고?
일단,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기도 하고, 그쪽은 내용을 모르니 넘어가기로 하자.
저 주장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서기 760에서 770년 사이라 했으니, 딱 중간을 잘라서 765년이라고 보고, 자기가 살아온 기간이 73년이라 했으니, 저 영상을 녹화한 시기가 서기 838년 무렵이다.
그런데 지금은 서기 1220년 1월이니 382년 전이라는 소리다.
“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는데, 382년이면 대체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한 거야?
이것저것 따져보면, 대충 잡아도 이 가방은 460년 이전에 만들어졌고, 460년 동안 이 세상에 나돌아 다녔는데, 어떻게 조금의 손상도 없이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지?
그리고 완전한 방수라고?
“이걸 믿을 수 있는 거야? 하긴, 내가 내 시대에서 이 시대로 온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라일리가 이 시대로 날아온 것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긴 하지.”
태영의 중얼거림이 길어졌다.
라일리의 말은 이어졌다.
그렇다고?
300킬로 반경을 다 다녀 봤다는 거야?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 때, 답이 바로 나왔다.
“드론? 드론이 있다고?”
드론은 21세기에서 태영과 함께 넘어온 것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배터리 충전을 하지 못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없는 거나 다를 바 없긴 하지만.
그런데 드론을 300킬로나 날려 보내 보았고, 그렇게 먼 곳까지 조종이 가능하다는 소리인 거야?
그리고 300킬로 이내에 생명체가 없다면 이 물건은 얼마나 깊은 산골짜기에 있었던 것일까?
녹화된 영상의 내용은 구구절절 계속되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호신용 무기는 있었지만 주변에 사람은 없고 멀리 이동할 수 있는 기구도 없으며, 육체적인 힘이 최우선되어야 하는 중세시대이기에, 여길 벗어나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이 도착한 장소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단다.
서기 760년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그리고 지금 이 시대도 그렇지만, 그 시대에도 여전히 지적 능력보다는 육체적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물론, 그 시대라고 해도 사람이 많은 도시 생활이면, 육체적 능력과 함께 지적 능력이 매우 중요하나 변수가 된다.
그렇지만 이런 오지에 혼자 산다면 육체적 능력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왜 이 시대의 이곳으로 날아왔는지에 대해 과학적 가설에 입각한 모든 조사를 했지만, 자신이 세운 가설이 사실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었단다.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미안, 난 그런 것을 잘 몰라.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대답의 의미는 없었지만, 대답은 했고 라일리는 말을 계속했다.
평행 우주라고 해도 좋고, 다중 우주라고 해도 좋고, 다차원 우주라고 해도 좋지만 용어는 달라도 의미는 비슷할 것이라는 것이 라일리의 말이었다.
“평행 우주라.”
라일리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긴 했지만, 이해되지 않는 뜻밖의 것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우주는 평행으로 움직이는, 그러나 다른 주기를 가진 다른 차원의 우주가 있다.
서로 같지만, 다른 차원의 우주의 개수가 몇 개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서로 다른 차원이 인위적으로 접근하거나, 멀어질 수 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공간적으로 일치되는 지점 같은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 본다.
그것이 장소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궤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있지만, 그냥 시공간적 지점이라고 정의했단다.
“시공간적 지점?”
도대체 뭔 소린지.
물론 그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야만 자신이 이곳, 이 시대로 날아온 것이 설명이 되기 때문이란다.
진짜 그럴까?
아니, 이게 판타지 소설 같은 데서 표현되는 차원의 문 같은 걸까?
“그럼, 내가 이 시대로 날아온 것도 그것 때문?”
그 열린 통로를 통해 자신은 이 시대로 날아온 것이라 추정하지만, 통로가 열린 이유는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결론 내렸고, 그 이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유유자적 생활해 왔단다.
대략 그런 이야기였다.
무려 2시간이나 걸린 라일리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고차원적인, 긴 강의를 들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결론을 요약하면, 차원의 이동인 것 같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 말이다.
“한마디로, 가설은 세워 봤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간단한 이야기였는데, 설명의 과정이 길어졌네.”
옆에 있으면 뭐를 좀 물어보고 싶은데, 382년 전에 죽었으니.
라일리의 이야기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 웃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래, 나도 정말 궁금했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으니 말 좀 해 봐.”
태영도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세상의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고, 절대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의 라일리.
저 모습이 99세 나이의 여인이라고?
더 예뻐지기까지 했다고?
영원한 젊음. 그것이 저주라고?
왜 저주야?
건강하게 젊은 모습 그대로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데?
아! 맞다. 그건 공감한다.
태영 역시 정하연과 떨어져 있는 근래는 고통의 나날이었고, 그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시대로 날아오기 전에는 군인이었고, 태영이 군에 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무신 거꾸로 신은 전 여친인 은율이와 자주, 종종 함께 밤을 보내고는 했는데, 함께 있으면 불타는 밤이지만, 함께 있지 않으면 그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사회와 함께 모든 여인들과 철저히 격리된 군 생활에서도 그 격리 자체가 그다지 고통이라 여겨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문제는 이 시대로 날아와서 정하연과 결혼을 하고 맨살을 맞대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결혼 이후에 처음 떨어져 지내는 이 시간은, 일찍이 태영이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그만큼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함께 살아온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 부부간의 은밀한 사랑 나눔에 대해 모두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토록 아름답고 젊은 몸으로 73년을 혼자 살 수밖에 없었던 라일리가 저주라고 하는 저 말을 이해하고말고.
웃을 수밖에 없겠네.
저런 고백은 약간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또 가설인가?
“내가 어찌 아나, 이 사람아? 난 몰라.”
라일리의 얼굴 옆에 이상한 모양이 나타났다.
라일리가 손짓을 하자 이번에는 다른 문양이 나타났다.
텔로미어라는 것이 뭐지?
전공이 완전히 다르니 생명 공학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별세계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