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14
114. 미래에서 온 물건(4)
“드론이 어디 있다고 했는데.”
정규하, 김태연, 그리고 유시완에게 메신저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하고 연습까지 시킨 다음 날, 다시 테르의 이곳저곳 살폈다.
뚜껑 부분의 좌측 하단에 센서로 보이는 원형 창이 보였다.
거기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잠시 기다렸다.
스르르~
뚜껑처럼 뒤로 넘어가 있던 가방의 안쪽 부위가 소리 없이 움직이더니 6개의 칸에 작은 사각형 물체가 보였다.
그 옆에 스마트폰 2개를 겹쳐 둔 크기의 물건 1개, 탁구공보다 작은 구체 2개가 있었다.
“이게 드론?”
작은 사각형 물건을 꺼내자 스마트폰을 네 조각으로 나누고, 더 얇게 깎아 내면 이만한 크기일 것 같은 물건이었다. 작아도 너무 작은데, 드론의 대명사 격인 날개도 없다.
“이게 드론이야? 이렇게 작아?”
그냥 중얼거리다가 과학 기술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태블릿에 보이던 아이콘 중에 태영이 살던 시대의 드론처럼 생긴 아이콘과 드론이라는 글씨가 있던 것이 기억났다.
태블릿에서 그것을 두 번 터치하자 화면이 펼쳐지고, 화면의 좌측 절반에 각각의 상태를 알려 주는 시그널이 있는 6개의 작은 창이, 3개씩 2줄로 펼쳐지고, 빈 우측에는 작은 창 크기의 4배쯤 되는 큰 창이 생겼다.
그것의 하단 부분에 통합 명령 창이 보였다.
6개의 작은 창 상단에 2개의 칸이 따로 있다. 첫 번째 창, Drone No.1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태블릿에서 음성이 나왔다.
6개의 칸에 꽂혀 있는 첫 번째 위치의 드론에 아주 작게 빛이 났다.
태영은 그것을 빼서 테이블 위에 놓고, 태블릿의 날개 그림 버튼을 누르자, 바로 드론의 작음 몸체에 4개의 구멍이 생기더니 공중으로 한 뼘을 떠올랐다.
“하, 신기하네.”
태블릿의 7개 창 중에 6개는 회색인데, 1번 칸은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1번 창의 상단에 동그란 시그널 4개와 100%라는 표시가 있다.
통합 명령 창에 있는 각각의 아이콘을 이용하여 조종을 시작하자, 드론이 공중으로 소리 없이 떠오르고, 1번 창에서 영상이 보였다.
“하, 웃음밖에 안 나오네.”
남아 있는 작은 것 5개를 꺼내 태블릿의 지정 위치를 누르자, 모두 바닥에서 한 뼘을 떠오르면서 영상이 잡혔다.
“모두 다 잘 동작하는 건가?”
상단에 있는 작은 창, 우측에 생겨 있는 넓은 창은 아직 켜지지 않았지만 이름이 다르다. 상단의 것은 Moon Light No1, Moon Light No2이다.
“달빛이라.”
일단 하나를 띄워 올려 보았다.
조종은 드론과 동일한 것 같은데 On을 누르자 태블릿의 시그널 아이콘이 밝아지기도 전에 구체가 환한 빛을 발했다.
지금은 대낮이다. 비록 실내이긴 하지만, 그래도 낮인데 구체에서 나오는 빛이 제법 환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조명이라는 소리인데. 때에 따라 아주 유용하겠네.”
문 라이트를 도로 집어넣고, 아직 확인하지 않은 마지막 창, 그곳을 보자 그곳에도 이름이 있었다.
창의 이름은 NeePent, 드론과 달리 4개의 아이콘이 더 있는데, 색상이 서로 다르고 이름이 없다.
이게 뭐지?
니펜트? 태영의 영어 지식이 짧기는 하지만, 기억 속에 이런 단어는 없었다.
합성어인가?
혹시, 무기를 탑재한 드론?
이 작은 몸체의 어디에 무기를 탑재한다는 거야?
태영은 6개의 드론을 모두 동작 중지시킨 후에, 7번인 니펜트를 띄워 올렸다.
니펜트 창에 줄이 그어진 타깃 아이콘이 떠 있다.
거실 밖으로 나와서 니펜트를 높이 띄워 올렸다.
타깃 아이콘이 흰색으로 떠 있고, 태영이 손으로 집 바깥에 눈으로도 보이는 나무로 옮겨서는 타깃을 타닥 두드려 터치했다.
“응? 이게 뭐야?”
타깃 아이콘의 빛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것으로 계속해서 바뀌었다.
“매뉴얼을 읽어야 하는데, 무시하고 하니 이 모양이군. 매뉴얼이 있는지 찾아봐야지.”
한국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매뉴얼이고 뭐고 간에 일단 먼저 동작부터 시켜 보는 습성 말이다.
연속으로 투 터치하면 바뀌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타깃 아이콘이 적색으로 바뀌어 움직이더니 이동 중인 사람 위에 겹쳐지고는 그 사람을 따라 계속 이동한다.
집 외부에는 장원을 짓고 있는 일꾼들이 일하느라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조준한 셈이다.
“하, 움직이는 대상을 자동으로 타깃으로 지정하는 거야?”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았다.
태영이 타깃 아이콘을 손으로 밀자마자 타깃에 걸쳐진 사람에게로 타깃 아이콘이 넘어갔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다른 아이콘을 누르거나, 연속해서 누르거나 다음 동작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선으로 그어지거나 색이 변화되는 타깃 아이콘, 그리고 흰색으로 변하는 정도일 뿐, 그 이후에 예상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나무에 타깃 아이콘을 밀어 놓고 여러 가지 버튼 아이콘을 눌러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태영이 타깃을 힘주어서 꾹 누르자 타깃 아이콘이 적색으로 바뀌었다.
“하, 적색은 뭐야?”
태영이 별짓을 다 해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왜 아무 일도 없는 거지?”
다시 타깃을 설정하고 계속 눌러 보았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고장 났다는 것이 이것인 모양이네.”
아쉽다.
태영은 니펜트를 조종하여 거실로 들어가서는 사양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아무리 찾아도 니펜트에 대한 정보나 사양, 그리고 매뉴얼 같은 것은 없었다.
라일리는 분명 전략 공격 무기이며 특수 전략 장비라고 했었다.
궁금했지만 매뉴얼도 없고, 고장인데 뭐.
그나저나 저 작은 물건이 도대체 얼마나 그 파괴력이 무지막지하면 전략 공격 무기라고 할까?
그리고 특수 전략 장비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뭘까?
아쉬웠다.
“수리는 불가능하겠지?”
니펜트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았지만, 그런다고 태영이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에이, 이런 거 없이도 살았는데 뭐.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거야. 그래도 무기만 고장 나고 드론 기능은 정상이니까.”
전혀 만족은 안 되지만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나저나 이 여자 직업이 대체 뭐야? 비록 고장이 나긴 했지만, 왜 테르 안에 이런 살벌한 무기가 내장되어 있는 거지?”
자신에 대한 기록은 다 지웠다고 했다.
테르가 가진 자료를 좀 찾아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얼마나 방대한 자료가 들어 있을지 모르는데, 괜히 덤벼들었다가 거기 매달리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6번 드론만 꺼내어 집 밖으로 다시 나갔다.
“조종 거리가 얼마나 될까? 300킬로 범위에 드론을 보냈다고 하긴 했었는데, 한번 충전하면 체공 시간이 얼마나 될까?”
여기서 명주의 중심부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일단 명주 방향으로 이동을 시켜 보았다.
드론은 갇혀 지낸 오랜 시간이 갑갑하기라도 했다는 듯,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3분쯤 후, 명주 시내가 태블릿에 나타났다.
드론 상태 창에 보이는 거리는 61킬로다.
“61킬로를 3분 만에 날아가면, 속도가 대체 어찌 되는 거야?”
통신 시그널 부분을 쳐다보았지만, 가득 차 있었다.
다시 항주로 이동시켰다.
드론이 보내는 영상을 지켜보며 7분이 흘렀는데, 상태 창에 가리키는 거리를 보니 198킬로다.
“하, 정말 대단한 놈이네. 이렇게 거리까지 정확히 보여 주다니. 그런 데다 통신에 아무런 영향도 없고.”
사실 6번만 꺼내서 날려 보낸 것이, 라일리가 300킬로를 날려 보냈다고 했지만, 그래도 혹시 어느 정도 날아가다가 통신이 끊어지면 드론 하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200킬로쯤 날아갔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보니 300킬로까지는 신경 안 써도 될 모양이다.
10여 분간에 걸쳐서 명주를 상공에서 살펴보았다.
“응? 저게 뭐야?”
아무래도 사달이 난 모양이다.
3~4명이 1개조로 구성된 병사들이 항주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병사들이 시민들을 매질하는 모습도 보였고, 제법 넓은 장군부 앞의 공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묶인 채 무릎 꿇려 있었다.
태영이 들어갔다 나온 호장고의 위치도 확인해 보았다.
“호장고가 털린 걸 알아 버린 모양인데.”
장군부 안쪽에도 호장고 입구로 짐작되는 곳에는 20명이 넘는 병사들이 서 있고, 장군부 안을 병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놈들아, 너희들에게는 쓸모가 없는 거잖아? 사용할 줄도 모르는 것들이고.”
잠깐 동안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장군부 안에 호장고가 있는데, 황실에는 호장고가 없을까?”
기묘한 물건이라면 장군부 안에 있는 것보다는 황실에 보내진 것들이 더 많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이 좀 잠잠해지면 황실의 호장고를 한번 털어야지. 항주 사람들에게 피해를 더 주겠지만,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기도 하고.”
복귀 버튼을 눌렀다.
드론으로 명주를 거쳐서 항주까지, 도합 1시간 정도 운행을 했는데, 배터리 게이지는 97퍼센트 상태였다.
충분이 충전이 되면 30시간은 체공이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그리고 테르 안에 집어넣기만 하면 항상 충전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니, 6대면 공중 정찰은 끊임없이 가능하다는 소리이다.
드론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히팅 건 가방을 열었다.
히팅 건 가방에 있는 10개의 배열은 태블릿을 이용해서 조합하자 쉽게 풀렸다.
가방 안에는 스펀지 비슷한 재질로 각각의 물건들이 들어갈 홈이 파여 있고, 그 홈 속에 꽂혀 있는 것들이 보인다.
매직펜 크기의 물건에 Heating Gun이라고 쓰인 것이 2개, 역시 매직펜 크기에 Solder Injector라는 이름의 물건이 1개, 아무래도 인젝터에 끼워 쓰기 위한 것 같은 주사기처럼 생긴 긴 물건 6개, 건전지처럼 보이는 작은 원형의 물체 8개, 그리고 지름이 1밀리쯤 되고 길이가 30센티쯤 되어 보이는 철사가 사각형의 통에 가득 들어 있었다.
6개의 튜브에는 Metal Solder Paste라고 적혀 있고, 튜브마다 Stainless, Chrome, Steel, Aluminum, Brass라 적혀 있는데, Steel이 2개다.
“재미있네. 비철 금속도 모두 용접이 되는 건가?”
철사가 들어 있는 사각형 통에는 Metal Common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태영이 허리 지갑에서 동전 두 개를 꺼내 나란히 놓은 뒤, Brass 튜브를 인젝터에 꽂고, 인젝터 옆에 붙은 작은 버튼을 누르자 페이스트가 살짝 밀려 나온다.
그것을 동전 사이에 칠했다.
히팅 건을 들고 페이스트 앞에 댄 후, 버튼을 누르자 매직펜 주둥이에 푸르스름한 빛이 2센티쯤의 길이로 맺혔다.
무언가를 녹이기 위해 열을 내는 불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히팅 건의 푸르스름한 빛을 페이스트에 가져다 대자 페이스트가 녹아서 동전 위에 번지듯이 흐르더니 동전 사이의 좁은 공간을 메웠다.
땜이 된 부위 가까이에 손을 대자 제법 뜨거운 느낌은 들었지만, 황동이 녹을 정도의 온도는 아닌 것 같은데도 두 개는 잘 붙은 것 같다.
동전이 식기를 기다렸다가 들어 올려 구부려 보았지만, 단단하게 용접이 되었다.
테이블의 동전이 놓였던 위치에 나무가 살짝 노랗게 변한 자국이 새겨졌다.
“차암.”
기가 막힐 일이다.
크롬이나 강철이나 알루미늄 같은 것도 이걸로 용접이 된다는 소리다.
정말 과학의 발전이란 어마어마한 것 같다.
어찌 비철 금속이 용접이 된단 말이야?
그나저나 이건 어느 시대에서 온 물건일까?
태영이 살던 시대에 이런 식의 용접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분명 훨씬 더 미래에서 온 물건인데,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
대산호가 명주 항에 가까이 가자 예전처럼 망박순검에서 나온 배가 접근했다.
갑판에 서서 대충 보니, 작은 전마선이나 연해에서 고기를 잡는 것으로 보이는 배는 그냥 못 본 척하고, 규모가 있는 배들에게만 접근을 한다.
저 작은 배로 국제 무역을 하러 오는 것은 아닐 테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고려 상인임을 알리고, 명주 항의 잔교에 접안을 했다.
시박에 들러 공빙을 받았다.
이번에는 물건을 팔 건 없고, 받아 가기만 하면 되니까 의미가 없지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단다.
“예성관이 비어 있나요?”
지난번에 왔을 때 시박에서 예성관을 알려 주었기에, 시박의 건물을 벗어나며 관원에게 물었다.
“아, 예성관은 먼저 온 고려 상인이 이미 사용 중입니다. 함께 지내도 상관없으시면, 말해드리지요.”
고려 상인이 와 있다고?
괜히 궁금해지긴 하네.
“아, 아닙니다. 예성관 같은 다른 장원이 있으면 소개를 부탁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선화원에서 연락이 한번 있었는데, 잠깐 기다려 보시지요.”
어째, 이쪽은 지난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시박이라는 관의 조직과 민간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관인이 심부름하는 아이로 보이는 꼬마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하고, 그 꼬마가 태영 일행을 힐끗 쳐다보다니 쪼르르 달려 나간다.
15분쯤, 제법 긴 시간이었지만 어차피 나가서 찾아도 별로 뾰족한 수가 없기에 하염없이 기다리자, 심부름을 갔던 꼬마가 시박으로 들어왔고, 관원에게 무언가 말을 했다.
“방금 선화원에 연통을 했는데, 사람을 보내겠다 했답니다. 조금 기다리면 선화원의 사람이 올 것입니다.”
“네, 고맙습니다.”
태영은 시박의 관원에게 동전 꾸러미를 하나 건네고, 심부름을 한 꼬마에게도 동전 몇 개를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혹시 이곳에서 심부름시키실 일이 있으면, 소인인 지삼이를 찾아 주세요.”
동전을 집어 주어서 그런지 꼬마가 인사성도 밝다.
그런데 여기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옆에 있는 것도 아닌데, 널 어찌 찾아서 심부름을 시키니?
“못 알아들으니 답답하지?”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궁금증을 참느라 턱이 늘어진 정규하에게 물었다.
한자는 잘 알겠지만, 한자와 한어는 다르니 한자를 안다고 말을 할 수 있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 정말 답답합니다.”
“사포로 돌아가거든, 한어를 열심히 공부하도록 해라. 왜어도 익히고.”
“네, 꼭 그래야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개경의 학당에서는 왜 이런 것을 조금도 가르쳐 주지 않는 걸까요?”
“그거야 나한테 묻지 말고, 언제 개경에 가거든 한번 따지려무나.”
“쳇, 말도 안 돼요.”
“말도 안 되긴, 이 녀석아.”
“그, 영어란 것은 누구에게 배워요?”
“그건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배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겠지만, 다음에 몇 사람에게는 좀 가르치려 하고 있다.”
“저도 꼭 좀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 그건 그때 생각하자.”
정규하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깨끗한 비단옷에 점잖게 생긴 중년 두 명이 시박으로 들어서서 관인들과 인사를 하더니 태영 일행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선화원(仙花園) 명주 분원의 총관인 호위평(胡偉平)입니다. 선화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선화원이라, 이름은 좋다.
“네, 우린 고려의 사포 상단입니다.”
“선화원 원주님이 사포 상단주님을 꼭 만나고 싶어 하셨는데, 이번에 저희 선화원에서 머물게 되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최선을 대해 모시겠습니다.”
선화원으로 가는 동안 호위평은 선화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왜 그리 구구절절 이야기해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위평의 말을 종합해 보니, 선화원은 전국 각지에 대형의 장원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호텔 체인인데, 라이선스가 아니라 직영 체제로만 운영한단다.
하긴 라이선스 개념이 이 시대에, 특히나 중국 땅에 있을 리가 없다.
선화원은 분원의 규모에 따라 별도의 담장으로 구분된 장원이 여럿 있는데, 이곳 명주에는 일반 숙박객을 위해 식당과 함께 보통의 사람들이 유숙하는 선화 주점과 장원을 통째로 빌려 주는 3개의 장원이 있단다.
장원은 그 한곳 한곳이 예성관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선화 상단이라는 대형 상단을 가지고 있어 송나라 각처에 상단의 분원이 있고, 타국과도 많은 교역을 하고 있다고 자랑을 한다.
백화 상단이나, 기화 상단과는 그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단다.
하필, 사포 상단이 명주에 왔던 그 시기에, 명주 분원의 지부장이 공석으로 새로운 지부장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였단다.
총관인 자신은 신임 지부장으로 임명된 현 지부장을 만나기 위해 임안에 가 있는 바람에 사포 상단의 정보에 어두웠고, 그로 인해 사포 상단과의 만남을 놓쳐 버린 것을 원주가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선화원의 3관 중 총관이 안내한 선향관(仙香館)에 들어서자마자 안타까워한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장원의 건물에 나 있는 창문의 일부가 유리로 되어 있었다.
지난번에 명주에 왔을 때 예성관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에서도 유리창이 없었는데, 그사이에 바뀐 것이다.
혹시, 예성관의 창문도 일부를 유리로 바꾸었을까?
물론, 태영이 팔고 간 유리로 창을 바꾼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다.
카피를 했을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당연한 의심이다.
21세기의 중국은 전 세계의 모든 것을 무단으로 복사하는 카피의 왕국이다.
심지어 이집트의 상징 중에 하나로 꼽히는 스핑크스까지 카피해 세웠다가 엄청난 항의를 받고 허물었다고 했다.
해외의 유명 제품을 복제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복제해서 만드는 사람도 그렇지만 그것을 이용하거나 사용하는 사람조차도 그런 행위를 지극히 당연하게 여긴다.
복제품에 대해 국제 사회에서 제재를 가하면, 중국 사람들이 오히려 더 반발한다.
상표를 교묘하게 베끼거나, 제품을 교묘하게 베껴서 자기 것인 것처럼 하는 것에 대해 이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거리낌도 없다.
카피 외에 가짜 음식이나 가짜 명품과 가짜 유물도 판을 친다.
대학이 가짜, 박물관이 가짜, 박물관 안에 있는 전시품도 가짜, 모든 것이 가짜인 것들이 판을 치는 곳이 중국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가짜나 카피한 것들에 대해,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탓하면 오히려 화를 내는, 적반하장이 상습화된 나라다.
“보면 알겠지.”
“뭐라고 하셨습니까?”
태영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호위평이 물었으나 아니라고 말하고 뒤를 따랐다.
송나라의 주택은 고려의 주택과 달리, 담장이 집의 담벼락 역할을 하고 있는 형태인데 반해, 선향관은 태영이 가 본 조선 시대 궁궐의 축소판처럼 담이 떨어져 있다.
다만, 건물들의 모습은 조선 시대 궁궐의 모습이 아닌, 송나라의 집인데 매우 고급스럽게 지어졌다.
접객당의 정면에 큰 마당이 있고, 좌우로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집과 담벼락 사이에 제법 넓은 공간이 있다.
접객당의 뒤쪽으로는 고급 주택 두 동이 있고, 그 뒤쪽으로 연못을 끼고 있는 넓은 정원이 있어서 휴양지처럼 꾸며 놓은 것 같다.
접객당 1층의 어디에서 봐도 밖이 보일 수 있도록, 창의 일부에 유리를 끼웠는데, 그로 인해 불을 켜지 않아도 제법 환하다.
윤점돌은 접객당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선향관 전체를 둘러보겠다며 움직였다.
“저기 보이는 유리는 모두 사포 상단에서 판매한 것이고, 우리 선화원은 그것을 사들여서 대대적으로 보수를 했습니다.”
호위평의 얼굴에 나타난 저 표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유리창 갈아 끼우는 것을 두고, 무슨 대대적인 보수씩이나.
아, 워낙 비싸게 팔고 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원주님이 상단주님이 방문한 것을 알면, 아마도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이곳으로 오실 것입니다.”
오라고 하지 않고, 온다고 하는 것을 보니 뭐 매너 있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말을 잔뜩 하고, 숙박비는 하루에 은자 12냥이란다.
송나라 평민 6인 가족 6개월 생활비가 하룻밤에 나간다.
이 정도면 거의 미친 금액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