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15
115. 조용한 전쟁(1)
“백화 상단에서 준비하기로 한, 동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씀이신가요?”
백화 상단에 기별을 했지만, 상단주도 총관도 오지 않고, 처음 보는 이상한 놈이 어슬렁거리고 왔다.
백화 상단에서 받기로 한 동괴는 6백3십6만 관, 은자로 35만 냥쯤이고 2만 1천 톤 정도 된다.
“네, 그게 일이 그리되어 상단주께서 백방으로 노력 중이라 형위단(亨衛團)의 단주인 제가 왔습니다.”
말도 행동도 공손한 듯하지만 그 속에 멸시와 조롱을 포함한, 뭔가 모르게 아주 지저분한 냄새가 난다.
우선 이놈은 제가 형위 단주라고 말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형위단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형위단의 형(亨)은 만사형통을 뜻하고, 위(衛)는 호위를 뜻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작명 센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가 뭘까?
현대 세계의 대형마트 같은 경우에도 공산품 담당, 식품 담당으로 나눌 수 있고, 식품도 자연 식품, 가공 식품 등으로 나누어 업무 담당이 따로 있을 것이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인상이 그런 유의 구분과는 무언가 맞지 않다.
생각해 보니, 백화 상단에서 이강과 이정을 데리고 왔었다.
만일, 이정과 이강이 해룡호를 약탈하여 은자를 회수할 생각으로 계획을 세운 주모자라면, 아니 그보다 더 윗선에서 계획을 세우고 이정에게 시켰다고 할지라도 백화 상단주가 알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비밀이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기는 하지만, 비밀을 지켜야 할 대상이 고려인인 데다 상인이라면, 명주에 와서 관가나 상인들 간에 교류할 일도 없고, 비밀을 알아챌 일도 없으니, 저희들끼리 서로 알려 주더라도 나중에 문제될 것이 없으니.
“기간이 얼마나 더 걸린다고 하더이까?”
“……음.”
단번에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형위 단주라는 놈의 말을 기다려 주었다.
“반년만 기다려 주시면, 문제없이 준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반년이라.”
한마디로 줄 생각이 없다는 소리네.
여기서 반년을 기다릴 수는 없을 테니, 고려로 떠났다가 다시 오면 또 미루거나 아니면 상단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받을 길이 없어진다.
애초에 외상을 주지 않았으면 되었을 것이지만, 돈을 떼어 먹으려 했다면, 상대를 잘못 택했다.
그 대가는 죽음뿐인데, 이들은 알까?
분명, 지난번에 외상을 줄 때 4개월 이후에, 언제라도 오면 싣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다고 했다.
양쪽이 그리 합의를 했고, 지금 7개월이 지나 8개월째로 가고 있는데, 아직도 반년은 더 달라고 한다.
“백화 상단주에게 직접 들어야겠소.”
“아하, 상단주님이 지금 워낙 바쁘셔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신 온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
배 째라는 소리지 그거?
그럼 배 째 줘야지.
“보아하니, 형위 단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니, 상단주가 직접 오라고 하시오. 만일, 상단주가 사흘 안에 직접 와서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거나, 이레 안에 물건이 준비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전해 주시오.”
바빠서 못 온다고 했지, 어디 다른 곳에 갔다고 하지는 않았다.
“지금, 백화 상단을 협박하는 것입니까?”
협박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형위 단주,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언성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공손한 척하던 태도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태영의 옆쪽에 서 있던 신도익과 김태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마찬가지로 형위 단주를 따라온, 허리에 칼을 찬 다섯 명의 호위들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비릿한 미소는 비슷한 모양이다. 아마 뜻도 비슷할 것이다.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나는 외상값을 받으러 왔고, 네 달 후에 준비가 완료된다는 약속은 백화 상단에서 한 것이고, 네 달 후에는 언제든지 오면 싣고 갈 수가 있다고 했소. 그때로부터 일곱 달이 흘렀으니, 준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하는 거요. 우린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것일 뿐 협박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소.”
“어디 두고 봅시다. 우리를 그렇게 협박하고도 명주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는지.”
말꼬투리를 계속 잡는다.
웃음이 나왔다.
“그런 것은 걱정 마시오. 그리고 분명 사흘이라 했소. 명심하시오.”
“흥.”
쿠당탕~
형위 단주가 콧방귀를 뀌며 일어서자 뒤에 서 있던 무인들이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며 탁자와 의자들이 넘어졌다.
일부러 그랬다는 거 안다. 넘어진 탁자와 의자들을 걷어차는 놈이 둘, 태영을 째려보는 놈이 둘이고 남은 한 놈은 한숨을 쉰다.
그들은 접객당을 벗어날 때까지 주위에 있던 의자와 탁자를 걷어차고 나갔다.
태영은 그들이 부리는 행패에 당장 조져 버리고 싶었다. 아니, 21세기에 한때 유행했던 말로 조사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여긴 타국이니 대놓고 조져 버리기보다는 보이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좋으니 조금만 참기로 했다.
“자, 볼일들 봐.”
“네.”
태영의 지시에 병사들의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방으로 들어가서 테르를 열고는 드론 1기를 날려 보냈다.
이게 이런 때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 호장고를 털어서 완전히 횡재한 물건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모습과 하늘에서 보는 모습이 사뭇 다르기에 찾는데 조금 신경을 썼지만, 형위 단주를 확인하자마자 발자국 표시 버튼을 누르고는 태블릿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태블릿의 존재는 사포의 병사들 중에 일부가 알고 있지만, 드론의 존재는 아무도 모르기에 어쩔 수 없이 태영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이것들의 존재를 알리고 사용 방법을 가르쳐야 할지조차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
“기화 상단에서 왔다고?”
“네, 지금 접객당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날은 기화 상단에서 왔다.
기화 상단은 잔교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상단 부지에 창고를 만들고, 그곳에 동괴(洞塊) 와 철괴(鐵塊)를 쌓아 두었단다.
백화 상단과는 사뭇 다른 면모이다. 결국, 기화 상단은 송나라 수군의 계획을 몰랐거나 동참하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다.
“이번에 가지고 오신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면경과 유리 전량을 우리가 사고 싶소.”
기화 상단주 이홍균은 태영 일행과 함께 대금으로 지불할 철괴와 동괴가 쌓인 창고에 가서 물건을 확인한 후에, 선향관으로 돌아오자마자 먼저 요구를 했다.
“그거, 다 판매하셨습니까?”
“다, 판매요? 지금은 없어서 못 팔고 있습니다. 이거 내가 해야 할 말은 아니지만, 사포 상단에서 산 가격의 4배를 불러도 팔렸습니다.”
화, 이놈들은 대체 몇 배 장사를 한 거야?
하긴, 태영도 심하게 뻥 튀겨서 팔긴 했으니 남 욕할 처지는 아니다.
“면경은 처음부터 잘 팔렸지만, 유리는 잘 팔리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무리 비싸도 사겠다는 소상인들이 줄을 섰습니다, 물론 그게 다 조정의 높은 분들이 유리로 된 창을 내려고 한 덕분이지만.”
“아, 그랬군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혹시, 백화 상단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바는 없습니까?”
이홍균이 약간 정색을 하며 물었다.
“백화 상단이 왜요?”
“처음에 두 달 정도를 팔지 못하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때문에 초조해진 것인지 선화원에 싸게 넘겼지요.”
“그래요?”
“네, 은자의 융통이 어려웠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산 가격의 절반에 지금 여기 선향관의 주인인 선화원에 넘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하, 그랬군.
돈이 달려서 대산도를 넘기기도 한 거군.
돈이 말랐을 것이라는 건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외상값을 떼먹으려고 해?
“아, 그럼 저 유리창들이 백화 상단에서 선화원으로 공급한 것들이군요.”
“네,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렸기에 큰돈을 벌었지만, 백화 상단은 지금 꽤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유리와 면경을 어느 정도나 가지고 왔습니까?”
“아, 이번에는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유리는 가능하지만, 전기 문제로 인해 당분간 거울은 만들지 못한다.
“그래요?”
이홍균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
“설비에 문제가 좀 생겨서 그것을 모두 고친 후에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내년은 되어야 다시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아하.”
이홍균이 아쉬워하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대신, 다음에 올 때 충분히 준비해 올 테니 상단주께서 필요한 양 만큼 예약을 하시지요.”
그렇게 시작된 상담에서 유리와 거울, 망원경과 쌍안경을 요청했지만, 당분간은 망원경과 쌍안경의 제조 문제로 인해 두 품목은 제외했다.
기화 상단은 거울 1천 개, 작은 유리 300상자, 큰 유리 200상자를 사겠다고 하면서, 선금으로 은자 50만 냥을 걸었다.
지난번에 거울 200개, 작은 유리 6상자와 큰 유리 12상자를 구입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량인데, 물건의 거래가 없는 상태이니 관세는 한 푼도 내지 않고, 50만 냥을 그냥 가지고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요구량을 보면, 은자로 455만 냥이나 되는데 지불이 가능할까?
지난번엔 68만 냥 정도였는데, 그중 일부를 동과 철로 이번에 받았다.
에이, 자꾸 걱정하면 뭐해?
***
다음 날, 선화 원주가 찾아왔다.
그런데 사람이 접객당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현대식 용어로 말하자면 수행비서 격인 여인이 들어와 주위를 물려 달라는 말을 했다.
무슨 영문인지.
태영이 신도익과 병사들, 그리고 비서실 병사들을 모두 물리자, 아직 문밖에 있는 선화 원주가 접객당으로 들어서는데 앞이 아니라 등이 보인다.
접객당 안으로 들어선 선화 원주의 모습은 비록 뒷모습이긴 하지만, 여인의 모습이었다.
선화 원주가 돌아서지 않고, 문을 닫은 후 천천히 돌아섰다.
여인, 맞다.
돌아선 사람의 얼굴은 까만 면사에 가려 있고 눈만 보였다.
어둠 때문인지는 몰라도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모자와 면사 사이에서 태영을 바라보았다.
서양인? 파란색이 아닌, 짙은 갈색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서양인의 눈인데, 왜 분위기가 라일리일까?
“Ωρα?α για να σα? συναντ?σω. Ε?μαι Anais.”
이게 무슨 소리야?
태영이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는 언어인데, 이게 인사인가 뭔가?
하긴 태영이 알고 있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였는데, 이 시대로 날아와 왜인 노예에게 일어를 배웠을 뿐이니, 알고 있는 언어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독어, 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의 말은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그 나라 말이군, 하는 정도로 짐작하는 수준으로 끝이고, 그나마 영어는 거의 쓸 일이 없으니 자꾸만 잊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뭔 소린지.
마지막 단어가 이름일까?
아나이스?
그 단어만 귀에 들렸다.
잠시 멍해졌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영어로라도 대답해 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Sorry Anais. I don’t understand your word at all.(미안해요 아나이스, 난 지금 당신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역시!”
역시?
뭐야, 이 여자?
태영이 뭔 역시야, 하고 생각할 때 말이 이어졌다.
“선화원주 류샤오지에〔劉小潔〕라고 합니다.”
유소결? 이름은 중국이름이 맞지만, 중국인이 아닌데.
조금 전에 이상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중국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태영이 아무리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태영에게는 외국어이지만, 아나이스가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언어로 말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중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현지 사람들과 어감이 동일했다.
그래도 여전히 중국인인가? 아닌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남았다.
“고려에서 온 사포 상단의 최태영이라 합니다.”
일단, 정식으로 소개를 했다.
느낌으로는 유럽 사람 같은데, 대체 송나라의 거대 상인인 선화 상단의 단주 겸 선화원주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거지?
송나라에서 가장 큰 호텔 체인 중의 하나이고, 가장 큰 규모의 상단 중 하나인 것이 맞는데, 그것의 주인이라고?
“최 단주께서는, 내 이름을 알아들어 주었으니, 아나이스라고 불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 태영을 쳐다보는데, 눈만 보이고 있으니 이게 웃고 있는 것인지,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대체 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서양 여인들의 눈은 어떻게 보면 조금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
아, 그건 동양 여인들도 마찬가지인가?
“…….”
“많이 궁금한 모양이군요.”
태영이 아무 말 않고 있자, 아나이스가 말을 꺼냈다.
“네, 솔직히.”
아나이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인정하는 대답을 했다.
“사실, 나 역시도 너무 궁금하였기에 먼저 한번 만나 보고 싶어서 이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잠시 만들었습니다.”
“…….”
“초면에 실례가 되지만, 우리 서로 궁금한 것이 많으니, 서로 한두 가지만 물어보기로 할까요?”
태영은 피식 웃었다.
이제 마음이 조금 더 진정되기도 했지만,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자니?
“테살로니키 출신, 오스만의 쉴레이만 황제의 하렘에 오달리스크로 있었답니다.”
이게 뭔 소리야?
테살로니키가 어디지?
거긴 어딘지 모르겠지만, 오스만 제국에서 온 거?
이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분명 미래에서 왔다.
하렘 하면, 소설 같은 데서 자주 등장하는 하렘 물, 뭐 그런 것인가 싶은데 오달리스크는 또 뭐지?
역사 상식이 많이 부족한 건가?
그런데 오스만이라니?
아직 생기지도 않은, 지금으로부터 한참 후의 미래에 몽골 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터키에 세워지는 대제국이다. 오스만 제국에 대한 지식이 변변치 않기는 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
태영은 대답 대신 아나이스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 설명이 부족했군요.”
그렇게 말하고는 탁자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더니 낮게 한숨을 쉬었다.
태영이 대충 짐작은 했지만,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에 대한 것 같았다.
“오스만은 원나라가 지중해 연안 국가까지 점령했다가 물러난 이후에 콘스탄티누폴리스에 세운 국가입니다. 그런데 아직 몽골을 원나라라고 부르지 않죠?”
충분하다. 그 정도 설명이면.
아니, 이미 이전에 충분했다. 다만, 태영이 마음속에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을 뿐.
콘스탄티누폴리스라면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의 식민 도시 비잔티움에 세운 도시, 서로마 제국의 수도이고, 현대에서는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로마 이야기를 겉치레로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역사 속 이야기이다.
유럽의 역사를 완전히 뒤엎은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에 면해 있으면서, 동양으로 통하는 모든 육로를 막으면서 유럽에서는 향료와 황금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고, 흔히들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는 신항로 개척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수많은 변화.
찬란한 그리스 문화를 이룩했던 그리스의 많은 지식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피해 서유럽으로 떠났고, 그것은 유럽 르네상스의 발전과 부흥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태영이 다른 생각으로 잠시 멍한 사이, 아나이스는 태영에게 너도 한 가지 말해 봐,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코리아, 지금부터 1천 년 후의 고려, 그리고 군인.”
정확히는 아니지만, 지금 이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1천 년이나 9백 년이나 1천1백 년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아나이스의 설명에 비하면 태영의 대답은 무성의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이 기분 나쁜지 아닌지는 면사에 가려서 표정이 안 보일 뿐.
“1천 년 후.”
아나이스의 입에서 나온 탄식 같은 말이다.
그렇게 말할 때는 잠시 고개를 숙여 탁자 위의 손끝으로 눈길을 준 듯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태영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상태로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가장 궁금한 것을 들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아나이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