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16
116. 조용한 전쟁(2)
“네, 그렇게 하죠.”
“밖에 있는 사람들 부르시지요. 그리고 이젠 아나이스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밀이라는 말이군.
태영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신 대위,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들어와. 선화원 분들도 들어오시라 하고.”
곧이어 유소결을 수행했던 사람들과 사포의 병사들이 들어왔다.
“우리는 사포 상단이 생산하는 유리 전량을 공급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접객당으로 들어오자 유소결이 운을 떼었다.
이 사람들이 욕심이 참 많네.
“독점적 공급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불가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이미 선금을 받은 선 거래처가 있기 때문이고, 사포 상단이 공급하는 물건은 독점적으로 공급할 의사가 없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백화 상단과 기화 상단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사포 상단에서 공급하는 물량의 7할을 선화 상단에 공급하는 대신, 물품 대금의 2할을 선금으로 걸겠다는 것으로 대략 정리가 되어갈 무렵 태영이 물었다.
“선 주문받은 것에 대한 비율로 환산하면, 선화원에 공급해야 할 거울과 유리의 값이 1,230만 냥입니다. 그것의 2할만 해도 246만 냥인데, 가능하겠습니까?”
“열흘 후에 금자 160만 냥과 은자 86만 냥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계산? 맞다.
금자 1냥에 은자 16냥으로 교환되니 160만 냥이고, 남은 은자가 86만 냥이 된다.
그 한마디로 태영의 우려를 제압해 버렸다.
돈이 많다는 소리. 좋지.
“그리고…….”
“네, 말씀하십시오.”
“물건을 가지고 오실 때 명주로 입항하지 말고, 조금 더 내려가면 상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망박순검이나 시박사가 없습니다. 그곳에는 우리 선화 상단만이 사용하는 포구가 있는데, 거기서 물건을 내리도록 하지요.”
망박순검도 없고 시박도 없다고?
“공빙을 받지 않아도 되니 사포 상단으로서는 훨씬 유리한 거래가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유리한 점이 있구요.”
밀수?
공빙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밀수라는 말이다.
나쁘지 않지. 관세를 3할이나 주는 건 너무 아깝거든.
상대방에게 뒤통수만 맞지 않으면 훨씬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이다.
그래서 밀수를 하는 것이고, 현대 사회에서도 밀수하다가 텔레비전에 얼굴 팔리는 사람을 자주 보았다.
여기서는 텔레비전에 얼굴 팔릴 일이 없고, 휠체어에 앉아서 아픈 척 연기해야 할 일도 없으니 나쁠 것 없다.
상산이 명주에서 바닷길로 150리라고 하니, 태영은 좋다고 승낙을 했다.
“선화원 본원으로 초대를 하고 싶은데요, 언제 가능한가요? 처음에 하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기도 하고.”
거래에 대한 마무리가 되었을 때, 유소결이 제안을 해 왔다.
“열흘 후가 좋겠습니다.”
“그럼, 그때 배와 마차를 보내겠습니다.”
열흘 후이면, 백화 상단과 약속한 두 가지의 시한이 모두 지나간 뒤이니 일단 문제가 없고, 명주에서 항주까지는 육로보다는 뱃길이 편하기는 하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결국, 마스크를 벗지 않아서, 아니 면사를 벗지 않아서 유소결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떠났다.
***
“하, 결국 얼굴은 보지 못하는군.”
아나이스가 떠나자 태영은 드론을 날려 보냈고, 아나이스 일행은 선화원의 3관 중 하나인 수선관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면사를 벗지 않았다.
설마 집 안에 들어가면 면사를 벗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고, 드론에 Hide 기능이 있어서 방에까지 딸려 보낼까 하는 생각에 잠시 고민했었다.
그러나 참기로 하고 드론을 불러들였다.
오늘은 저기서 묵고 내일 항주로 간다고 했는데, 항주에서는 면사를 벗겠지.
그런데 오달리스크라는 말이 궁금해서 테르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구글에서 만든 크롬하고 비슷한 거 있을까?”
대형의 서버가 있어야 하는데, 테르가 워낙 첨단의 미래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니 혹시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아이콘들을 살폈다.
‘Binesper’
Binesper를 클릭하자 태영이 살던 시대에 크롬과 비슷한 느낌, 구글과 비슷한 느낌의 화면이 펼쳐졌다.
아무래도 맞는 듯했다.
이 시대에는 크롬이 아니라 Binesper가 대세일 수도 있고, 라일리가 크롬 대신에 Binesper 를 선호할 수도 있었다.
‘오달리스크’를 입력하고 엔터.
그랑 오달리스크(Grande Odalisque)~
《그랑 오달리스크》(Grande Odalisque)는 오달리스크는 오리엔트의 후궁……
까지 보였다.
중간이 빈 것 같고 내용도 많이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런 거지?
클릭하고 들어갔지만, 다음에 따라 나온 메시지에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역시 그렇군, 안타깝네.”
링크를 제공하는 수준에서의 기본 정보 정도였다.
거기다가 링크 정보마저도 제대로 된 것이 많지 않다.
그래도, 링크시켜 주기 위해 요약 형태로 나온 몇 줄의 정보도 이것저것 계속해서 확인하다 보니 몇 개의 단어들을 조합해서 오달리스크와 하렘의 내용을 일부는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 요약된 몇 줄의 정보가 수백 건 나열되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의 성 노예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일컬어 오달리스크라고 하고, 하렘은 그런 오달리스크가 생활하는 공간, 즉 장소인데. 궁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곳을 지칭하는 것은 알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성 노예이기도 하고, 후궁으로 인정하기도 하는 듯한 요약 정보가 있지만, 오스만의 황제들은 후궁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성적 욕구를 푸는 대상으로만 본 듯하다.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은 전쟁에서 패전한 국가의 여인들을 잡아와 하렘에 오달리스크로 삼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을 찾는 중에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록셀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황후이다.
아나이스처럼 오달리스크였다.
그런데 아나이스가 처음에 쉴레이만을 언급했었는데, 그 록셀란이 쉴레이만 황제의 황후라는 것이다.
물론, 요약된 정보로 나타나는 몇 줄 정도의 내용이기에 더 이상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하렘의 성 노예 출신으로 오스만 제국의 황후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하긴, 고려에서 원나라에 공물로 바쳐진 여인, 기 황후.
원나라의 세도가나 원나라 조정의 그 누군가에게 팔려가 노비가 되었을 수도 있고, 성 노리개가 되었을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후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 황후는 공녀로 바쳐지고 나서, 역시 고려인으로 원나라에서 환관으로 있던 사람의 추천을 통해, 원나라 황제의 차와 다과 담당으로 배정되었다.
기 황후는 양반집 자제였기에 공부를 많이 했고, 그로 인해 학식이 매우 풍부했는데, 얼굴 또한 예쁜 여인이었다.
그 미모와 학식에 반한 원 황제가 후궁으로 삼았는데, 후처들 간의 권력 다툼을 통해 마침내 황후가 된 여인이다.
후세에 록셀란에 대한 평가는 그쪽의 역사에 해당하기에 태영이 잘 몰라서 평가도 모르지만, 기 황후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당시는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기 황후가 원나라의 황후라는 위세로 고려 땅에 있는 그 일가 친족들이 엄청난 횡포와 전횡을 부렸던 것도 있지만, 기 황후로 인해 공녀 차출이 늘어서, 성상납을 시키는 사창가 포주 같은 짓을 한 셈이라고까지 폄하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고려를 지배하고 있는 원나라의 황후라는 위치가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은 틀림없으니 나쁜 짓도 많이 했겠지.
그러나 기 황후 입장에서 공녀로 뽑혔을 때 과연 기뻐했을까?
공녀로 뽑아 주어서 고려 조정에 고맙다고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당연하게도, 자신을 지켜 주지 못하는 고려를 원망했을 것이다.
양반가의 여식으로, 고려에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공녀로 차출되었다. 한번 가면, 살아생전에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조차도 할 수 없는 곳.
아니, 죽어서도 돌아올 수 없는 곳.
친구도, 친척도, 아는 사람도 없는 머나먼 타국이다.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집에 노예로 들어가거나 잘 되어야 후처가 되는 정도라는 것이 뻔히 예상되는 일인데, 어찌 원망이 없었을까?
황후가 되었으니, 마음속에 쌓인 것들을 모두 풀고, 그래 날 공녀로 보내 줘서 황후까지 되었으니 고맙게 생각한다, 했을까?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태영 같아도 정말 이빨을 빠드득 갈면서, 그 원을 갚아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조차도 모르면서 적개심을 키웠을 수 있다.
기 황후가 그 적개심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미도 아니고, 정당한지 아닌지를 태영이 평할 필요도 없지만, 그 역사학자는 과연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때도 욕할 수 있었을까?
비록 고려가 힘이 없어서 너를 지켜 주지 못하고 공녀로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너는 고려를 원망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웃기는 개소리다.
***
“내일인데, 안 올 모양입니다. 대장님.”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신도익이 백화 상단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하루가 남았잖아?”
“하루 남긴 했지만, 눈에 뻔히 보입니다, 칼 찬 놈들 몇 개 조가 선향관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확인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태영은 틈나는 대로 드론을 띄워 대산호가 있는 선착장 주변, 선향관 주변과 형위단이 있는 장원, 그리고 백화 상단의 장원을 감시하고 있었기에 저들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상황의 상당 부분은 사포의 병사들이 알고 있고, 또 일부는 모르기도 한다.
“대장님.”
옆에 있던 윤서이가 불렀다.
“윤 하사는 왜?”
“어제 저희 소대가 대산호 근무조였습니다. 그런데 송나라 군사 수 명이 30분 정도를 잔교의 끝에 서서 우리를 빤히 지켜보며 수군거리다가 돌아갔는데, 느낌이 좋지 못합니다.”
윤서이가 소대장으로 있는 3소대는 10명이 모두 여군으로 된 소대다.
돌개몰의 신병 중에는 훈련받은 여군이 아직 없었기에 이번에 증원이 되지 못했지만, 대신에 김인창의 1소대는 15명, 김세돌의 2소대는 14명으로 증원이 되어 있었다.
2소대가 대산도를 지키고 있기에 그쪽의 병력은 건드리지 않고, 1소대의 병력 3명을 윤서이 소대에 임시 편성해서 병력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윤서이의 말처럼 선착장의 잔교에 배를 대고 있는 대산호 주변도 그랬지만, 태영이 드론으로 감시한 다른 곳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이쪽의 인원 규모가 아주 작아서 그런지, 저쪽의 병력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들이 양쪽을 동시에 공격할 예정인지는 모르지만, 만일 그리되면 선착장 쪽은 대산호에서 감당할 수밖에 없다.
공중에서 상황을 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 주기만 해도 대산호에서 충분히 감당이 될 것이다.
결국 남은 쪽은 태영이 감당해야 한다.
태영의 머릿속에서 나름 정리가 끝났다.
아무튼, 그들의 움직임에서 유추해 보았을 때, 저들이 사포 상단을 친다면 오늘 밤이었다. 시한이 내일까지이기도 했으니.
“오늘 김 중사가 대산호 근무조가 되나?”
“네, 그렇습니다 대장님, 저희가 식사하고 돌아가면, 남은 인원 절반이 교대로 식사를 마치고, 모두 대산호로 집결할 것입니다.”
“윤 하사 말대로라면, 그리고 우리가 정한 시한과 관련이 있다면, 오늘 밤에 저들이 우릴 공격할 가능성이 있지?”
“네, 그렇습니다. 대장님께 이미 보고 드렸었지만.”
신도익이 대답을 먼저 했다.
“그럼, 김 중사는 1소대가 모두 모이면, 대산호를 타고 바다로 나가. 김태연이도 함께 따라가고.”
“시완이도 대산도에 있는데, 저까지 그리 나가면 대장님 수발할 사람이 없어지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김태연의 말이지만, 비서실 병사로 달랑 둘만 데려왔으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괜찮아. 대산호에 네가 있어야 나하고 연락을 주고받지.”
“네, 알겠습니다.”
김태연은 태블릿을 사용하고 있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상황 봐서 연락하겠지만, 김 중사는 대산도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연락을 어떻게……?”
궁금하겠지.
김인창의 저 의문을 해소해 주고 싶지만, 지금은 태블릿을 설명할 길이 없다.
“김태연을 통해서 연락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대장님, 1소대가 대산호로 가면 선향관에 남은 병력이 본부 소대와, 3소대를 합쳐서 19명, 총기 훈련을 받지 않은 정규하와 대장님까지 포함해야 21명인데, 여기 있는 병력 중에 여군이 10명이나 됩니다. 저놈들이 대산호를 치려고 한다면, 선향관도 안전하지 못할 텐데, 부대 편성을 다시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신도익이 앞뒤의 전개 내용을 짐작하고 우려를 표했다.
“아냐. 대산호가 항구를 떠나 대산도로 가야 할 수도 있는데, 노를 저으려면 여군들의 힘으로는 어렵지 않겠어? 여군들이 여기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좋아.”
“아.”
“아, 네. 그건 그렇지요.”
여군들의 육체적 능력은 아무래도 남자 병사들과는 차이가 있기에 노를 저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다들 그렇게 인정했다.
“아무튼, 선향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대응 전략을 수립하자고.”
“네.”
뭔가 안심이 안 되는 듯 대답을 하지만, 태영의 명령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기에 더 이상 이의 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김인창의 소대원 중에 한 명인 이바다가 윤서이 소대의 김별과 사귀고 있는데, 지금 이 장소에 함께 있으니, 김별을 바라보는 이바다의 눈에 걱정이 잔뜩 어려 있다.
다른 많은 커플들이 공개적으로, 또는 비밀리에 사귀고 있고, 이 둘은 비밀리에 사귀는 커플이지만, 상관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김별의 얼굴을 쳐다보니 이바다를 향해 고개를 살짝 까닥이면서 눈을 깜박이는 걸 보니 걱정하지 말라는 표시를 둘이 나름대로 하고 있었다.
서로 걱정해 주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보기 좋다.
“윤서이.”
“네, 대장님.”
“식사하고 나면 전 소대원들에게 통상적으로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데, 다만, 모두 본당과 저 앞쪽 귀빈실만 이용하도록 해.”
“네.”
“소총 소음기가 몇 개 있지?”
“모두 6개입니다.”
“김 중사 소대는?”
“저희는 7개입니다.”
“윤 하사는 소총 소음기를 모두 김 중사에게 전달해 줘. 김 중사는 저들과 싸우게 되면, 가능한 소음기를 사용하고.”
“여긴 없어도 됩니까?”
“아마 될 거야.”
***
“전원 완전 무장하고, 접객당 건물에 배치해.”
태영은 신도익에게 병력 배치를 접객당이 있는 전각으로 통일시켰다.
“내가 움직이면서 지시는 규하를 통해 할 테니까 그리 알고.”
정규하에게 태블릿 1번을 주었다.
신도익이나 윤서이는 태블릿 사용법 교육을 하지 않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걸 통해서 대장님께 지시를 받습니다.”
정규하가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
“규하야. 그게 뭐야?”
윤서이가 정규하에게 물었다.
“태연 형님과 시완 형님도 가지고 있고, 대장님에게도 있는데요. 이걸 통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시 서신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정규하, 시완이하고 태연이에게 연락하는 것을 보여 줘. 그래야 믿지.”
“네, 대장님.”
간단하게 시범을 보였다.
“대산도 와도 연락이 가능합니까?”
신도익의 놀란 말이 튀어나왔다.
하긴 이들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일들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에, 미봉산에서 사포로 트럭을 이동시킬 때 무전기를 사용해서 먼 거리에서 서로 말을 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지금 이것들은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래 가능해.”
“와, 대단한 물건이네. 그게 지금 대산도에 있는 시완이에게서 온 연락이라고?”
이번에는 떨리는 음성으로 윤서이가 물었다.
“네, 윤 하사님.”
“내가 저걸 통해서 연락을 할 테니 규하는 즉시즉시 전달해 주도록 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태영의 지시에 정규하가 즉시 대답했다.
그 뒤에 채민이 놀란 표정으로 서 있지만, 입만 달싹거릴 뿐 질문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 나는 따로 움직이겠다.”
“대장님, 태연이도 시완이도 없으니 임시로 채민에게 대장님을 보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채민을 동행하시지요.”
태영이 움직이려 하자 윤서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정규하를 시켜서 신도익과 윤서이를 불렀는데, 채민이 윤서이를 뒤따라 온 이유가 그것인 모양이다.
채민은 중국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말한다. 그래서 채민을 시켜 임시로 보필하도록 했던 모양이다.
채민도 어학에 제법 소질이 있었다. 평소에 정규하가 채민의 옆에서 누나 누나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대답을 잘 해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전 같으면, 양반의 자제인 정규하와 평민인 채민의 신분 차이 때문에 저리 쉽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는데, 정규하는 사포의 상황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채민.
월이가 유언으로 남긴 글을 보고 선발대에 포함되어 향촌으로 갔을 때, 선이의 집에서 관군을 사살하고 난 뒤에 울면서 바들바들 떨던 모습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날의 일, 그리고 후쿠오카에서의 일을 치르면서 이제는 제법 강단이 있는 군인이 되었다.
채민도 왜구들에게 엄마를 잃었다.
군인으로 지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지원을 했고, 현장에 배치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향촌의 일 때문인지, 후쿠오카에서 아주 악바리처럼 행동하는 것이 태영의 눈에도 보였었다.
“괜찮아. 혼자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많으니, 오히려 채민이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러니 윤 하사가 데리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때때로 이해하지 못해도 토를 달지 않아서 좋다.
태영은 지시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테르를 켰다.
태블릿을 모두에게 주어 버리고 나니 이제 테르를 직접 만질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태블릿으로 조종하는 것보다 테르로 조종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아직 테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탓에 아무도 테르의 존재를 모른다.
테르에서 나온 은은한 빛이 방 안을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