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20
120. 미래에서 왔소(3)
“드론은 이것을 어떻게 보내요? 들고 오는 것도 아닌데?”
이 시대의 상식으로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질문이려나?
“여기에 손을 찔러 봐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요. 왜 그래요?”
“이 모습은 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인가요? 하늘을 날아다니나요?”
“왜 여기서 빛이 나나요?”
태영은 한참 동안 질문에 시달렸다.
김태연이나 유시완과 달리 이번에 정하연이 올 때 함께 온 비서실 병사들은 여자란 것을 깜박했다.
본래 이랬지.
몇 달간 떨어져 있다 보니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상황이 눈앞에 다가왔다.
어쨌거나, 교육을 통하여 드론의 사용법을 숙지하도록 했다.
문명이 훨씬 발전한 시대에서 온 첨단의 장비이기에 익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르쳐 두어야 하고, 메신저는 비교적 쉽지만, 드론은 연습이 제법 필요하다.
이미 2번과 3번의 태블릿에 각각 5번과 6번의 드론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어서 김태연과 유시완은 태영을 대신해 정찰을 하기도 했기에 제법 익숙했다.
“자, 이거 들고 모두 나가. 김태연과 유시완은 비서실 동료들이 숙달될 때까지 연습하는 것을 도와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정 실장과 눈이는 다른 이야기를 좀 더 해야 해.”
정하연과 눈이가 거실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태블릿으로 드론을 조종하여 밖으로 나갔다.
정하연과 눈이만 남게 되자 태영이 테르에서 지도를 띄워 올렸다.
빛으로 이루어진 3차원 영상으로 지구가 나타났다.
“오.”
한글 사용 환경으로 바꾸었을 때, 지도 앱은 그냥 ‘지도’라고 떠 주어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다.
지도에 관한 한, 아직은 정규하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
정하연과 눈이가 3차원 영상 지도를 바라보았다.
“이, 이게 뭐예요? 지도?”
정하연이 짐작을 하면서 물었고, 눈이의 눈은 더 이상 커지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
“지도…….”
“그래, 지도야. 아주 상세한 지도.”
“…….”
눈이의 입은 반쯤 열렸고, 눈은 빛이 날 정도로 반짝였다.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눈이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어.”
눈이가 태영을 돌아보았다.
“대장님이 가져온 물건, 대장님이 가지고 온 무기, 대장님이 가르친 고려 글, 대장님이 하는 모든 일을 예전 같으면 단 한 가지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믿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요?”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유의 이야기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정하연을 통해 충분히 전해 들었으니.
“우선, 이 지도는 1200년 후의 세상 지도야.”
작은 디테일을 포함해 1천2백 몇 십 몇 년,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헉…… 그, 그게…….”
정하연은 태연했지만, 눈이는 정말 많이 놀란 모양이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눈이의 눈이 정하연에게 돌아갔다.
정하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눈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 진짜요?”
“그래.”
“그, 그럼, 이, 이 물건들이 모두 1200년 후?”
질문인지 중얼거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지금 이것, 테르라고 하는 것과 태블릿, 그리고 드론이 1천2백 년 후의 세상에서 온 것이야.”
“어, 어떻게?”
“주웠어.”
훔쳤지만.
“주워요?”
눈이가 또 정하연을 쳐다보았다.
실장님은 이 거짓말이 정말같이 들려요?
그렇게 물어보는 거겠지만, 정하연에게는 라일리의 이야기도 조금은 했다. 단둘이 있을 때 한 이야기이지만.
정하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때서야 태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제대로 돌아왔다.
눈이가 이 모든 상황을 이해했는지는 몰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10분쯤의 시간이 더 걸렸다.
태블릿과 드론을 보고 놀라고 정신을 차리는데 비서실의 다른 병사들도 시간이 그다지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1200년 후의 세상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태영이 테르의 액정 패널의 버튼을 눌러 조작하면서 지구 영상을 확대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곳이 공처럼 둥글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지?”
“네, 그 이야기는 여러 번 하셨어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전체의 모습, 이 크기로 보면 우리는 점으로도 보이지 않아.”
두 사람 다 고개를 끄덕인다.
태영이 3D 입체 영상을 조종하여 현재 위치를 눈앞에 띄웠다.
대산도의 위치가 완전한 3차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도로 표시, 지명 표시, 비행 항로, 선박 항로, 관광지 표시 등 과거에 태영이 살다 온 시대의 구글 어스 같은 앱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세분화된 내용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3D로 나타났다.
마치 실제의 위치를 카메라가 다니는 것처럼 완벽한 3D 영상이다.
그 표시들 중에 대부분은 감추기를 해서 보이지 않도록 했다.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이곳, 사포가 있는 곳이 여기, 우리가 다녀왔던 후쿠오카가 여기.”
눈이는 사포에서 지도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전문가였다. 그러다 보니 지도를 보는 것이 남달랐다.
“여기 표시된 것은 지명인가요?”
눈이가 물었다.
“맞아. 지명이고, 길 이름도 있는데, 더 확대해 들어가면, 집의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어.”
“확대, 축소도 가능해요?”
“그래, 지금부터 기본기를 가르쳐 줄 테니, 그걸 배워서 이용하도록 해. 내가 왜 두 사람을 남으라고 했느냐 하면, 지도는 이 1번 태블릿이나, 테르에서 직접 조작하는 경우에만 조작이 가능하고, 이 태블릿은 정 실장에게 관리를 맡길 것이기 때문이야.”
“제가 지도 전문가라는 것이 외부에 비밀이듯, 이것으로 지도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비밀이어야 하는 거죠?”
사실 사포와 율촌에서는 눈이가 지도 전문가라는 것을 모두 다 안다.
비밀이라 해도 비밀일 수가 없지만,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 지도라는 것은 적국으로 나가면 그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야.”
21세기에서 지도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 정보이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여 누구나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시대는 아니다.
지도는 민간에서 함부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 민간인들이 소지하고 다녀서도 안 되는 물건이다. 거기다가 이토록 상세한 지도라니.
“네, 그 점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대장님이 처음에 지도를 그려 보라고 할 때부터 여러 번 강조하셔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태영은 확대, 축소의 방법과 지도를 움직이고 세밀하게 확인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설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간단하다.
“여기 이 글자는 한어이고, 여기 이 글자는 왜어인데, 이런 것도 글자이지요?”
눈이는 다른 지역을 돌려보고 있었기에 정하연이 물었다.
“응, 지도를 제대로 보려면 여러 가지 언어를 배워 두는 것이 좋은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언어와 글자가 너무 많아서 무척이나 어려워. 그래도 고려 글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가능해.”
“대체, 우리 지구는 얼마나 넓고, 사람은 얼마나 많이 사는 건가요?”
***
“그래서 우릴 공격한 원흉을 찾았다구요?”
태영이 백화 상단과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진행하자, 갈수록 궁금한 모양이었다. 사실상 연결된 이야기가 많기도 했다.
“그래, 이제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 줄게.”
태영은 정하연과 앉아서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
케네스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한 번 더 함께 식사하며 아나이스와 이야기를 나눈 태영은 며칠간 항주에 더 머물기로 했었다.
아나이스는 항주에 머무는 동안 자선관(紫仙館)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 줄 테니 안심하고 머물라고 했다.
공짜로 머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어서 사양했지만, 자신이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지 말아 달라는 아나이스의 간곡한 부탁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선화원 항주 본원은 천선관(天仙館), 봉선관(鳳仙館), 용선관(龍仙館), 자선관(紫仙館), 미선관(微仙館), 선린관(仙麟館)이라는 최고급 장원 6곳이 독립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단다.
아나이스는 왜 선(仙)이라는 글자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글자 하나를 가지고 이름이 참으로 다양하게도 지었다.
자선관에 자리를 잡자 태영은 드론을 띄워 이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정, 네가 그 일을 계획하거나 중요하게 관여하지 않았어야 할 거야.”
지난번에 송나라에 왔을 땐, 테르가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둘 수가 없었던 탓에 이정을 찾아내는데 애로가 많았지만, 지위가 높은 놈들은 무언가 차별화를 하려고 하고, 그 지위에 따른 권력을 행사하려 했기에 이틀간의 수색 끝에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태영은 발자국 표시 버튼을 눌러 이정의 추적을 시작했다.
사포의 병사들에게 추적을 시키기에는 아직 드론의 조작이 서툴기도 하고, 모든 것을 알려 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여서 태영이 직접 했다.
“그런데, 아직 몽골과 적대하지 않은 때라고 해도, 금나라와 쉴 새 없이 싸우는 중인데, 그 상황에서 우리를 잡으러 보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지.”
중요도 여부를 떠나서 대체 누가 사포 상단을 공격하여 재물을 회수해 오라는 지시를 내렸는지는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 했다. 그래야 갚아 줄 터이니.
단순히 공격을 막아 낸 것과, 공격을 막아 낸 후에 갚아 준 것과는 다르다.
테르를 얻기 전과 후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에는 은밀히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정보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왜국에 쳐들어가는 것처럼, 모두 죽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쳐들어가면 몰라도, 송나라를 그렇게 대적하기에는 아직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병사들을 앞세워서 전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조금 더 신중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테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어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 내는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거기다 이곳에서 태영이 마음만 먹는다면 송나라 황제를 암살하는 것조차 간식거리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송나라 조정의 중신들도 마찬가지이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군들의 목숨 또한 손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태영이 가진 능력은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다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손쉽게 그들과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태영이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았다.
태영으로 인해 송나라의 힘이 약해지면, 금나라가 멸망하지 않거나 멸망의 시기가 아주 늦어질 수도 있고, 몽골이 금나라에 밀린다거나 또는 세계 정복을 못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유럽까지의 진출이 아주 늦어지거나 하는 상황으로 바뀔 수가 있었다.
힘의 역학 관계라는 것이 아주 묘해서, 어떤 형태로 바뀔지 예측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우리를 수장시키려 했던 주모자들, 명령을 한 대상 정도만 잡으면 된다.
왜국은 섬나라로 분리되어 있어서 이 시대의 세계정세와 힘의 역학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거의 없으니, 그들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똑똑~
“누구야?”
“접니다, 대장님. 규하.”
“들어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태영이 뭐냐고 묻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비서실로 발령 내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일어서라고 하려다가, 그 말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
“지금도 거의 비서실 병사처럼 하고 있잖아?”
“누나의 배경을 믿고 제가 떼를 쓰고 있어서 그렇게 해 주시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당하게 비서실 병사로 대장님에게 제대로 배우고 싶습니다.”
“내게 뭘 배워?”
“…….”
“뭐야? 왜 갑자기 말이 없어?”
“개경에 유학을 하면서 참으로 세상은 넓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장님을 따라 율촌으로 다시 내려온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일련의 흐름을 보면, 개경 땅에서 배우며 느꼈던 모든 것은 정말 작고 하찮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대장님께서 세상을 보는 눈, 세상의 움직임과 사물의 움직임,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어떻게 변화될지 유추하고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또 그에 따른 결정과 결정하면 밀고 나가는 추진력, 그것을 뒷받침하는, 대장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강력한 힘, 이러한 것들을 지난 몇 달간 멀리서나마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것입니다.”
이놈 봐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은, 태영을 보고 눈에 담으려 했다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겨우 열다섯 살짜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열다섯 살.
현대 사회로 치면 겨우 중2다.
흔히들 중2병이라고 하는, 거칠고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이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시기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춘기일 뿐이지만, 이 시대는 성인으로 구분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장님은 저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흠,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
“처남이라는 배경은 언젠가부터 잊어버렸습니다. 아니, 그것이 잊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모든 상황에서 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그래, 언젠가부터 개경에서 만나서 부리던 어리광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당한 한 사람의 남자로 움직이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었다.
그사이에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을까?
“얼마 전부터 그러긴 했지만, 앞으로도 사사로움을 배제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처남이라는 관계에서 딱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비서실 병사로서 대장님을 곁에서 보필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것, 그것입니다.”
정규하의 말속에 있는 의미.
지금은 군사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 불분명한 소속으로 인해 어떤 일로 움직일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고 허락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좋다. 단.”
태영이 한참 동안 말없이 정규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어떤 단서 조항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별거 아니다. 사포에 돌아가면 군사 훈련을 먼저 받도록. 그 이후부터 한다.”
“감사합니다, 매형. 그리고 대장님.”
그렇게 말하면서 엎드려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일어서라.”
“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한어와 왜어를 익혀라.”
“네, 열심히 익히고 있습니다.”
“해룡호가 후쿠오카의 식량들을 다 실어 나르고 나면,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 시기는 봄이 될 것이고, 그때 돌아가서 군사 훈련을 받으면 된다. 그 이전에도 가르칠 것이 많으니 비서실에 임시로 발령을 내도록 하겠다.”
“네, 잘 알겠습니다, 충성!”
대답하면서 제법 군인 흉내를 내면서 경례를 한다.
개경에서부터 따지면 군인들의 옆에서 생활한 것이 벌써 반년쯤 되었으니, 모르는 것이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옆에서 본 정규하는 머리가 상당히 뛰어났다.
개경에 유학을 가 공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태 사포와 율촌에서 병사들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며 느낀 것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태영이 보기에 사포와 율촌의 사람들 중에 과거 시험에 말석이라도 급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머리가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동안에는 공부할 기회가 없었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규하에게는 개경에 유학을 간 것이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머리가 돌아간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바로 승낙을 했던 것이다.
태영은 신도익과 김태연, 유시완을 불러 정규하를 임시로 비서실 소속으로 하겠다고 알렸다.
군사 훈련을 받은 후에 정식으로 발령을 내겠지만, 지금부터 소속은 비서실로 하고, 김태연에게는 막내의 교육을 제대로 시키라고 지시했다.
아무리 처남이라도 아직 군사 훈련도 받지 않고, 나이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막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위계질서도 필요하다.
나중에 제가 잘 해서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어 승진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