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22
122. 상대를 보고 건드려야지(2)
“네 이놈, 사포 상단주 최태영이 맞구나. 헌데, 네놈이 어찌 여기에 있느냐?”
상인들 속에 있던 명주 상단의 이강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너는 좀 꺼져 있어라. 아직 네 순서가 아니다.”
“무어라. 저런 놈을 보았나. 저놈을 당장 잡아서 꿇어앉히시오.”
이강이 소리를 질렀지만, 칼을 든 무인들은 이정의 얼굴과 이강을 돌아보며 눈치를 볼 뿐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정을 본다는 것은, 지금 저들이 평복을 입었지만 군부의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경고하건대, 내게 칼을 겨누는 놈은 모두 죽는다. 그 점을 알고 움직여라.”
태영이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허풍을 치자, 전각 안에서 나온 상인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가소롭겠지.
“내가 종종 하는 말이지만, 믿기지 않으면 시험해 봐도 좋고.”
태영의 허풍이 통할 것은 아니겠지만, 담장 너머에서부터 전각의 지붕을 날아서 넘어오듯 이곳까지 온 사실을 알고 있으니, 결코 허풍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태영을 둘러싸고 칼을 뽑아 든 무인들의 숫자는 족히 100명은 넘을 것 같으니, 인원수로 보면 상대가 안 된다.
그러니 아무도 겁을 먹지 않은 표정이고, 비웃음도 있었다.
“저놈을 잡아라. 죽지만 않으면 된다.”
이정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태영이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결국 일부를 죽여 버리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모양이다.
“네.”
대답을 한, 가장 가까이 있는 무인의 칼끝이 허벅지를 겨냥하고 찔러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태영이 몸을 움직였다.
죽이지 않으려면 하반신을 공격하는 것이 맞겠지.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으나 팔다리 다 잘라도 상관없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저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고, 시력으로도 태영을 따라잡지 못한다.
태영이 허리에서 소도를 뽑아 무인들의 몸과 몸 사이를 바람처럼 흐르며 칼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저들의 눈으로는 태영이 소도를 뽑아 드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상 태영은 검도나 또는 검술이라고 부를 만한, 칼을 들고 싸우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오직 힘과 속도로 아주 무식하게, 아니 단순하고 명쾌하게 칼을 휘두르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 힘과 속도는 그 누구도 감당해 내지 못한다.
사포에 되돌아가면, 검술을 좀 배워 두어야겠다.
흐억~ 으악~
서걱~
챙~ 으아악~
비명 소리와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태영을 노리는 무인들의 목을 노리기는 했지만, 손이 가는 방향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잘라 냈다.
칼날이 뼈를 가르고 지나가고 살을 가르고 지나가는 소리가 태영의 귓가에 들려왔고, 역한 느낌이 밀려들었지만 금방 적응했다. 아무래도 이 시대에 살면서 칼을 멀리할 수 없기에 그런 듯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형위단을 몰살시킬 때도 느꼈지만, 왜 좋은 칼인지를 잘 알려 주고 있었다.
챙~ 서걱, 서걱~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나가는 것을 보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는 사람들 일부를 남겨 둔 채 이정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워낙 빠르게 움직인 탓에 옷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칼이 스치고 지나가고, 피가 뿜어져 나오기 전의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이미 그곳을 한참 지나 있었으니 피가 옷에 피가 묻지 않는다.
몇 명인지 헤아리면서 베지는 않았지만, 대략 일흔 명 정도의 목을 잘라 버린 것 같은데, 이제야 피비린내가 훅 풍겨 왔다.
칼을 옆으로 획 돌리며 혹시 묻어 있을지도 모를 피를 뿌렸지만, 칼끝에서 핏방울은 날아가지 않았다.
“허억.”
이정의 놀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대화를 좀 해 볼 준비가 되었는가?”
“헉.”
이쪽저쪽에서 비명 소리와 놀란 소리가 들려왔다.
상인들은 단 한 명도 칼로 베어 넘기지 않았기에 태영이 스쳐 지나간 자리가 어떤 모습인지 모두 보일 것이다.
놀라서 답을 못 하거나, 아직도 꽤 많은 무인들이 칼을 들고 있어서 무언가를 기대하며 답을 안 하거나일 것이다.
그러면 모두 죽이면 된다.
“이, 이, 이…….”
이정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표정과 말투는 화가 났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 이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눈으로는 상황을 보고 있지만,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좀 듣고자 왔는데, 대화를 좀 해 보자고.”
“너, 너, 너.”
이정이 손을 들어 태영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역시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네. 그럼, 나머지도 모두 베어 놓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지.”
태영은 다시 한번 움직였다.
피가 묻어 있지 않은 곳으로 피해 다니며, 칼을 든 채로 몸을 떨고 있는 무인들의 목을 잘랐다.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칼을 든 모든 무인들이 땅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태영은 다시 이정의 앞에 섰다.
이정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너는 누구냐?”
그때, 우복야 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공식적으로는 우복야를 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맞다.
“감히.”
우복야의 옆에 선, 수신 호위로 보이는 무인이 소리를 질렀다.
“감히? 이런 정도가 되어도, 도무지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핏~
태영은 스피릿으로 그의 이마를 뚫어 버렸다.
주위에 선 사람들에게는 태영이 스피릿을 꺼내 호위를 쏘고 다시 손을 집어넣는 과정이 보이지 않았을 테니, 그냥 제풀에 쓰러진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쓰러진 자의 미간에는 유심히 봐야 보이는 붉은 점 하나가 생겼다는 것뿐이다.
태영이 자신들의 옆으로 접근하지도 않았는데, 가만히 서 있던 수신 호위가 스르르 넘어졌다.
우복야의 옆에 선 또 다른 수신 호위가 칼을 뽑았지만, 우복야의 제지로 태영에게 덤비지는 않았다.
“대답해. 너는 누구냐?”
태영이 우복야를 향해 물었다.
“이…….”
화가 나겠지.
우복야라는 지위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 태영은 모르지만, 송나라 땅에서 우복야에게 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답하기 싫단 말이지?”
태영은 스피릿으로 우복야의 옆에 서서 칼을 들고 서 있는 호위의 왼팔을 어깨에서부터 잘라 냈다.
호위는 자신의 팔이 잘린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으아악!”
호위가 칼을 던지고는 오른손으로 잘린 부위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막았지만 막혀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네 호위인 듯한데, 나는 계속 자를 테니 천천히 대답해 주고 싶을 때 대답해.”
태영은 다시 오른쪽 귀를 잘랐다.
“그러다가 저놈이 죽고 나면, 그때는 네 차례야.”
다시 왼쪽 귀를 잘랐다.
“너는 누구라고?”
마침내 오른 손목을 잘랐다.
“크억.”
이제야 겁에 질린 듯 우복야의 인상이 바뀌었고, 입에서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다.
고집일 수도 있고 겁에 질려서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태영과는 상관없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이제 내 인내심이 바닥났거든.”
태영은 호위의 두 무릎을 잘랐다.
“으헉, 으아아악.”
호위가 넘어지면서 비명을 지르자 주위에 서 있던 상단주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일부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에 태영은 무인들을 도륙하고 온 뒤에, 저 자리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우복야의 호위 한 명을 소리도 없이 죽이고, 또 다른 호위는 잔인하게 목숨을 거두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고,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이런 상태에서 겁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아악~
그때 담장 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세 사람이 담장에서 피를 쏟아 내며 떨어져 내렸다.
태영과 우복야의 호위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 도망치려 한 것을 스피릿으로 날려 버렸다. 찰나의 순간에 처리한 일이기에 이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도망?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못 가. 도망가면 모두 저 꼴이 될 거야. 알겠지?”
이정을 포함하여 상단주들에게 말했다.
태영은 카리스마가 강렬하다거나, 독기가 넘쳐서 상대를 압살할 정도라거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얌전하게 말을 해서 그런지 도무지 경고를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긴, 21세기 현대에서는 입시 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고, 군바리 때는 졸병이었는데, 그런 카리스마 같은 것을 기를 틈이 없었지.
사포에 와서도 부드러운 상관이었지, 강압적이고 폭압적인 상관은 아니었다.
“대체, 대체 …….”
이정의 더듬는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제 완전히 겁에 질려 있는 상태다.
우복야의 입과 볼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되었나?”
봐, 이런 협박도 말이 너무 부드러워.
이렇게 말을 부드럽게 하니, 팔다리를 잘라 버린다고 해도 진짜 자를 줄은 생각도 못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에잇, 카리스마는 대체 어찌 기르는 거야?
“흐으…… 네, 네…….”
대답을 하면서 이정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나를 포함해서 사포 상단을 공격한 이유가 뭐야?”
“……그, 그것이…….”
그러면서 우복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행동만으로도 우복야가 지시했다는 것은 알겠다.
물론 태영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이정이 어떤 대답을 하는지가 궁금했고, 주위에 둘러선 상단주들에게 이 공격의 정당성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응, 네가 시킨 거야?”
태영이 우복야를 돌아보며 물었다.
“…….”
우복야는 여전히 떨고만 있을 뿐이다.
“그럼, 네가 우시랑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소린데, 너의 지위는 뭐야?”
“…….”
우복야가 대답하지 못하고 우시랑을 노려보았다.
여전히 떨고 있었지만, 그 짧은 사이에도, 그 와중에도 책임을 떠넘기려는 속셈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태영은 우복야의 왼손을 잘라 냈다.
말은 얌전하고 부드럽게 하면서 이렇게 팔도, 다리도 팍팍 잘라 내면 잔인하다고 하려나?
에잇,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자.
“크아아악.”
그때서야 우복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고, 오른손으로 왼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수신 호위가 모두 죽은 상태여서 누구도 우복야를 돌봐 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는 공범이란 말이지. 너를 포함하여?”
“아닙니다. 우리는 우복야가 사포 상단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지금 알았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허리를 조아리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쭈, 제법 강단이 있네. 이 상황에서도 저리 말할 정도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영이 돌아보자 나이가 40대로 보이는, 어깨가 떡 벌어진 사람이다. 저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저 사람들은 이 상황이 매우 억울할 것이다.
우복야가 지시한 일이고 자신들은 영문도 모른 채, 여차하면 목숨을 내놔야 하는 것이니.
보아하니 도망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이 많은 사람들이 둘러선 가운데 움직임도 없었는데, 도망치던 사람이 비명 소리만 남기고 죽었다.
그것도 셋이 동시에.
“증명할 수 있나?”
태영이 물었다.
“…….”
못 하지. 어떻게 증명을 해.
문서로 써 놓은 것도 아니고, 이 시대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우복야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이강이 자신의 옷을 잘라서 떨어져 나간 우복야의 왼 손목을 묶어 주었다. 하지만 피는 계속 흘렀다.
“내가 송나라에 와서 장사를 하는 게 잘못되었나?”
태영은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우복야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
우복야가 울음은 그쳤고,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 댔다.
“내라는 세금 꼬박꼬박 다 내고 정당하게 판매하고 갔는데, 너희들이 군을 동원하여 바다 한복판에서 우리를 죽이려 했다, 그러면 우린 그냥 죽어 주어야 하는 거야?”
***
“그래서요?”
정하연이 정말 신나 하면서 물었다.
“그 사람들은 우복야의 강요에 못 이겨서 매년 상당한 금액을 상납했는가 봐.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 주는 대가로 그것을 우리에게 주겠다는 거지.”
“와, 어쨌거나 대단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리 쉽게 줄까요?”
“안 줘도 상관없다고 했어. 나는 약속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니 언젠가는 조용하게 약속을 지키러 가겠다고 말해 줬고.”
“하, 죽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목숨 값이라 했으니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 거지, 뭐.”
“우시랑과 우복야는 결국 죽이셨어요?”
“그들을 살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이강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가족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어.”
“그럼 받는 건 돈으로 아님 물건으로요?”
“철괴와 동괴로 받기로 했고, 대산도에 가져다 두라고 했지.”
“아, 그래서 저쪽 해안가를 다듬고 있는 거군요.”
“응, 맞아.”
논밭을 만들기 곤란한 지역의 해안에 백만 평의 평지와 함께 길을 만들고 있다. 또한 큰 배가 닿을 수 있는 선착장도 만들고 있었다.
평탄화 작업이 끝나고 나면 창고 건물을 지어 올릴 것이다.
“상대를 보고 건들어야지, 하필 우릴 상대로.”
“하하하, 그러네. 상대를 보고 건들어야지.”
“송나라 조정과는 문제가 없을까요?”
“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상단주들이 산적들의 소행으로 소문을 내겠다고 했으니.”
산적들의 소행이라는 것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송나라 사람들이니 태영보다 더 잘 처리할 거라 생각된다.
“백화 상단에 외상은 다 받으셨어요?”
“응.”
“어떻게?”
“좀 치사하긴 했지만, 가족들을 인질로 잡았지.”
“가족을요?”
“응, 그냥 상단주를 죽여 버릴까 하다가 애들이 많더라구. 그래서 봐줬지.”
“그런데도 가족을 잡아요?”
“응, 실제로 애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열흘의 시간을 주고 돈을 가지고 오지 못하면, 열흘 후부터 애들을 매일 한 명씩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지. 그랬더니 가져왔더라고.”
사실, 상당한 부분은 은자 외의 현물로 받았다.
현물은 피혁과 암염, 그리고 석탄으로 받았기에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푸훗. 결국 방법은 있었는데 그렇게 애를 먹인 거군요.”
“그래.”
“그런데, 석탄은 뭐예요?”
“아, 사포에서는 사용은 않고, 온정 철소에서 예전에 조금 사용했다고 하는데, 화력이 엄청나게 좋은 불타는 흙이야.”
“흙이 불에 타요?”
“응, 나중에 온정 철소에 가서 확인해 봐. 석탄은 정 대철장이 무지 좋아할 거야, 아마.”
태영은 북송 시절부터 이미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나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상 아나이스에게 듣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정보였다.
태영도 연료를 연탄으로 사용하던 세대가 아니어서 잘 몰랐지만, 항주와 명주의 자욱한 안개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해서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돈을 주지 못한다면 석탄으로 달라고 요구했고, 석탄의 사용이 생활화되어 있는 송나라였기에 쉽게 해결이 되었다.
앞으로 왜국에서 석탄을 캐내고, 그것을 사포로 실어 날라서 제철소에서 사용할 것이다.
송나라에서도 꾸준히 사 가는 것도 좋긴 하지만, 왜국에서는 노예를 동원해서 파 가면 되고, 송나라에서는 사 가야 하는 차이가 있다.
“불타는 흙이라, 그거 신기하네요. 혹시, 저쪽에 문이 없는 창고에 산처럼 쌓여 있는 나무통에 들어 있는 것이 그건가요?”
“응, 맞아. 그리고 앞으로는 가능한 한 많은 물품 대금을 석탄으로 받아 갈 생각이야.”
“흠, 신기하네. 일단, 나중에 철소에 가서 보기로 하고, 담 장군과 려 장군 같은 사람은 어떻게 했는데요?”
“그냥 놔두었어. 그놈들이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군인이니, 죄를 묻기도 좀 애매해서.”
“그럼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건 모르겠네요?”
“그래, 그렇지.”
“이제 돌아가실 거죠?”
“응, 해룡호도 왔으니 물건을 싣는 대로 출발해야지.”
“대산도에는 병력을 주둔시킬 건가요?”
“아니야. 당분간 우리 병력은 없어도 될 거야. 여기 총관에게 모든 걸 맡겨 두었으니까.”
총관이 나쁜 짓을 좀 하긴 했지만, 이제 다시는 나쁜 짓을 못할 것이니 한 번 더 믿어 보기로 했다.
대산도에 병력을 주둔시킬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병력을 주둔시키려면 최소한 1개 중대 병력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중대 병력을 빼 내기에는 병력의 숫자가 너무 적다.
***
“참, 대목장님이 전하라는 말이 있었는데.”
명주를 떠난 해룡호가 망망대해에 접어들었을 때, 뱃머리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던 정하연이 태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응 뭐래?”
“황룡호의 진수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언제쯤?”
“올해 8월쯤이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일정이 무척이나 앞당겨진 것 같다. 물론, 그사이에 사람도 많이 충원되었고 공구들도 꽤 좋아졌다.
공구들은 태영이 도안을 하고 철소를 통해서 만들도록 지시한 것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물건이면서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는 것들이다.
사실 도안이라고 해 봐야 태영이 살던 21세기의 공구들을 떠올리고 그려 준 것이지만, 도안이 맞기는 맞다.
“그래?”
“네, 그리고 정 대철장도 대장님 오시면 보여드릴 것이 쌓여 있다고 했는데, 뭐냐고 물으니, 대장님과 같이 보면 안 되냐며 웃기만 했어요.”
“내가 꽤 여러 가지 시켰는데, 나도 궁금해지네.”
“그런데, 저기 연기 나는 곳이 제주인 듯한데요.”
이 시대에도 벌써 탐라라는 이름 대신 제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태영이 몰랐던 사실이다.
뱃머리에서 좌측으로 육지가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포에서 명주를 오갈 때면 항상 스쳐 지나가는 곳이 제주인데, 그렇게 자주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상륙한 적은 없다.
“그런 것 같은데, 눈아 저기 위치 확인해 봐.”
뒤쪽에서 태영과 정하연을 바라보던 눈이에게 말하며 함교를 바라보곤 손을 휘휘 돌렸다. 눈이는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가림이와 함께 함교로 올라갔다.
“대장님, 저기 연기 나는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함장 송복기가 함교의 바깥쪽 난간으로 나오며 물었다.
“그래, 저기서 무슨 일이 발생한 것 같은데, 가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항로 변경하겠습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거리 측정이 되지 않았지만, 대략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항해사에게 거리 측정 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선적 양이 많아서 배가 조금 느리니까, 조금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