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25
125. 제주의 왜적(3)
신도익의 고함 소리에 현령의 눈이 파르르 떨렸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눈에 노기가 어린 것을 보니 그래도 현령이라 이거지?
신도익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제가 할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놈들을 가장 싫어한다.”
“가, 감히…… 현령을 이리 겁박해도 되는 것이냐?”
언성이 조금 높아지는 것을 보니 이제 약간 정신이 든 모양이다. 그래도 제가 현령이라며,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려고 한다.
그런데 저 감히, 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이유는 뭘까?
신도익이 태영을 쳐다보았다.
적어도 현령을 단죄하는 부분이어서 허락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이대로 계속 진행해도 될까요, 하는 질문일 터였다.
주위에 둘러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제주 사람들이 아무도 이를 말리지 않고 고소해한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태영의 생각이지만, 양민들 중에 누구라도 현령의 편을 드는 말을 한 사람이 없으니, 현령을 벌하는 것에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태영은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현령 좋아하네. 왜구들이 겁나서 도망이나 친 주제에.”
태영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신도익은 현령에게 소리쳤다.
“…….”
현령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럼, 우리가 왜구들을 풀어 줄 테니, 네가 왜구들을 잡을 거냐?”
현령이 줄에 묶여서 해안으로 가다가 멈추어 있는 왜구들을 둘러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그러겠다는 말이지? 그럼 그렇게 하지.”
이런 때에 대답이 없는 것은 부정을 뜻하는 것이지만, 신도익은 긍정으로 의미를 바꾸었다. 현령을 코너로 몰아 단죄하겠다는 의미이니 진행자 마음 대로다.
“뭐?”
현령이 고함을 쳤지만 신도익은 무시하고 시선을 왜구에게로 향했다.
“あいつに かてば いかすてやる。(이놈을 이기면 살려 주겠다.)”
신도익이 구사하는 왜어도 태영을 비롯한 사포와 율촌의 모든 사람들이 배운 왜어처럼 왜구에게 배웠기에 조금 이상한 것 같긴 하다.
그건, 후쿠오카에서 고가 미테루와 많은 이야기를 한 뒤에 느낀 것이지만, 이제 와서 배움을 되돌릴 수도 없다.
뜻만 통하면 되는 거지 뭐, 우리가 왜국과 정중하게 이야기 나눌 사이도 아니고.
그래도, 좀 배운 놈으로 다른 놈을 붙잡아다가 점잖은 왜어를 다시 배우는 것 역시 생각 좀 해 봐야 할 것 같긴 하다.
“왜어를 할 줄 아시는군요. 뭐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신도익의 말에 씨익 웃는 비서실 병사 유시완에게 노인이 물었다.
유시완은 손으로 현령을 가리키며 노인에게 대답해 주었고, 현령의 시선이 유시완에게 돌아갔다.
현령이 왜어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몰라도 유시완의 말은 들었다는 것이다.
“やくそくは まもりられる。(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신도익이 다시 한번 왜구들에게 말했다.
노인도 다시 비서실 병사를 쳐다보았다.
“약속은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도전할 왜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노인도 웃었다. 쓰디쓴 웃음이지만.
진행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또 현령이 악덕 현령이었다면 이 고소한 상황에서 어찌 웃지 않을까?
태영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지만, 제주의 양민들 모두 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구들 몇몇의 표정이 바뀌었다.
살려 준다는데, 살 수 있다는데.
대부분 손목이 잘려 있고 아킬레스도 잘린 왜구들이지만, 그 속에 손이 정상이고 아킬레스도 잘리지 않은 왜구 역시 많이 섞여 있다.
“약속을 꼭 지키느냐 아니냐는 나중 문제이고, 저 약속을 지킬지 의심하더라도 일말의 기대는 하지 않을까?”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기대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태영이 중얼거렸다.
“저기 한 놈이 움직이는데요.”
정하연의 말을 듣고 앞을 보니 정말 한 놈이 움직일까 말까 하는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せんもありますか? (배도 줍니까?)”
드디어 그놈이 입을 열었다.
“だめ. (안 돼.)”
신도익의 입에서 곧바로 거부의 말이 나왔다.
“いかすてやる. (살려는 준다.)”
“뭐라는 건가요?”
노인은 여전히 신도익의 말이 궁금한 듯했다.
“배도 주느냐 물었는데, 그건 안 되고 살려 준다고만 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눈을 깜박이며 유시완의 말을 듣고 있던 현령의 입에서 제법 고성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고함을 지른 방향이 신도익이 아니고 유시완이다. 이제 정신을 제대로 차린 모양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옆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누군가가 총에 맞아 죽는 바람에 정신이 혼몽하다가, 시간이 조금 경과했으니 현 상황이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유시완이 권총을 뽑아 현령의 머리에 겨냥했다. 그에 현령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중대장님, 이놈이 나한테 화를 내는데, 그냥 바로 죽여 버려도 되겠습니까?”
“안 돼, 저기 왜구가 손을 들었으니 싸울 기회를 줘야지.”
“네, 알겠습니다.”
유시완이 씨익 웃으며 총을 다시 허리춤에 넣고 물러섰다.
장단이 아주 잘 맞는다.
“어이, 현령. 너한테는 발언권도 결정권도 없다. 아까 네가 왜구들을 잡겠다고 해서 그대로 진행하는 것뿐이니 입 다물고 있으라.”
현령의 안색이 변했지만 신도익은 고개를 돌려 병사에게 손짓을 했다.
“거기 저놈 풀어 주고, 여기 가운데로 칼 하나 던져 줘. 그리고 현령에게도 칼 하나 던져 주고.”
현령은 칼을 지니지 않았고, 손에 지휘봉처럼 생긴 것만 들고 있었다.
병사가 장검을 가져다 현령의 발 앞에 꽂았다. 그리고 또 다른 칼, 부러져서 날이 반쯤 남아 있는 칼 하나가 마당 가운데로 날아왔다.
그래도 현령에게는 완전한 칼이고, 왜구는 부러진 칼이기에 왜구에게 페널티가 주어진 셈이다.
현령의 시선은 칼로 갔다가 신도익에게 갔다가 왜구에게 갔다가, 순차적으로 돌고 돌았지만, 그 누구도 안쓰럽게 쳐다보지 않았다.
묶은 손이 풀린 왜구가 칼을 집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아, 안 돼.”
현령이 칼에서 한 발짝 멀어지며 거부했다.
“칼을 잡건 안 잡건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왜구는 너를 공격할 거야.”
왜구가 신도익을 쳐다보았다.
이제 싸워도 돼요, 라는 질문이겠지.
“이건 생사를 건 싸움이니,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
그렇게 말한 신도익이 왜구를 돌아보고는 그 말 그대로 왜어로 말했다.
“これせいしをかけたたたかいである。 だから、 だれひとりはしななければならおわる。 (이건 생사를 건 싸움이다,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
현령을 쳐다본 신도익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준비하라, じゅんび (준비)”
우리말과 왜어를 순차적으로 준비를 알렸다.
신도익의 왜어도 제법 늘었다 생각했는데, 자꾸 고가 미테루가 구사하던 왜어가 생각나면 고쳐 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서 일어를 배워 본 적이 없고, 왜구가 가르쳐 준 그대로니 보나마나 태영도 신도익과 비슷하게 말했을 것이다.
나중에 고가 미테루와 이야기를 할 때 어차피 비슷한 수준밖에는 말을 못 하니, 서로 이해하는 것이 다르면, 갑질을 하면 된다.
힘 있는 놈이 21세기에서도 갑이지 않은가?
아, 돈 많은 놈과 권력을 쥔 놈이 갑인가?
이 시대로 날아오기 전에, 갑질에 대한 뉴스나 영상들은 많이 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 숫하게 겪어 보았다.
그 일은 권력과 상관없는 일터이어서 돈이 먼저인지 권력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돈을 가진 놈은 확실하게 갑이 맞다.
다만, 이 시대는 힘센 놈이 무조건 갑이기에 현대식 자동 소총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가진 태영이 갑 중의 갑이다.
“아, 안…….”
거기까지 말한 현령은 왜구가 토막 난 칼이라도 잡으러 가자, 더 이상 자신의 말이 소용없음을 알고 발 앞에 꽂힌 칼을 뽑았다.
왜구는 무릎 부위에서 피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 무릎 관통상을 입은 듯한데, 정상적으로 걷는 것이 불가능 해 보였다.
피가 흐르는 발을 떼다가 통증이 심한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는, 성한 한쪽 다리로 깡충깡충 뛰어서 칼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모습이 실로 가관이었지만, 그래도 해 보겠다는 것이다.
태영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릎 관통상이면 피가 흐르는 저 다리는 사용 불능이고, 힘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구의 그 모습을 본 현령의 얼굴에는 안심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고, 곧바로 왜구를 향해 칼을 세웠다.
“시작, かいし(시작)”
신도익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시작을 알렸다.
무슨 올림픽 경기도 아니고 생사결은 하는데, 준비, 시작을 외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왜구가 칼을 잡자마자 부상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마치 꾀병이었던 듯 빠른 동작으로 현령을 베어 갔다.
그러나 칼의 길이는 반 토막, 한쪽 무릎은 힘을 줄 수가 없으니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현령이 몸을 피하면서 왜구가 제풀에 나동그라졌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이 상황을 재미있어 하는가 보다.
제주의 바람으로 인해 비릿한 피 냄새는 모두 날아가고, 초봄의 상쾌한 갯바람이 소금기를 몰고 오긴 하지만, 마당 안에는 가마니로 덮어 둔 시체를 치우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서로 간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이 유희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도 대상이 현령이기에 그럴 것이다.
부상자들은 방 안에서 문을 열어 둔 채로 고개를 내밀어 이 광경을 보고 있고, 의무병들도 잠시 손을 놓고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애들까지 옹기종기 둘러서서 보고 있는데, 현대 사회라면 이런 장면은 19금에 해당하니, 애들을 몰아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야 하겠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아무도 그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령은 얼치기 무인인 듯 칼로 왜구를 베어 갔지만, 왜구는 토막 난 칼로 여전히 바닥에 넘어진 채로 현령의 칼을 막고, 몸을 낮추며 현령의 정강이를 베었다.
땡그랑~
으아악~
현령이 칼을 놓치며 오른쪽으로 넘어졌고, 왜구는 땅바닥에서 그대로 몸을 굴려 현령에게 접근한 뒤 구르는 회전력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현령의 옆구리가 베이고 피가 튀어 올랐다.
갑자기 신체적 조건이 대등한 관계가 되어 버렸는데, 한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현령이 이미 두 곳이나 상처를 입었으니, 이 결투가 계속된다면 현령은 반드시 죽는다.
현령이 입은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은지, 재빨리 기어가서 놓친 칼을 주워들었다.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고, 잠시의 움직임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져서 색색거리며 칼을 왜구에게 겨누었다.
“저놈, 살려 줄까요?”
현령과 왜구가 서로를 탐색하고 있는 중에 태영이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의 표정이 조금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인데, 노인은 그래도 현령이 이기기를 바라는 것 같아 보였던 것이다.
“네, 나리.”
“왜 그래야 하죠?”
“나라에서 우리에게 죄를 물을 것 같아 그렇습니다.”
“나라에서 죄를 묻지 않고 잘했다 하면요?”
태영의 말이 의외였는지 노인이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태영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무슨……?”
대화가 길어졌던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보니 왜구의 짧은 칼이 현령의 가슴에 박혀 들고 있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되도록 방관했다.
컥~ 흐윽~
왜구가 칼을 옆으로 비틀더니 뽑아냈다.
그와 함께 현령의 가슴에서 피가 쏟아졌고, 피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제주 양민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부의 여인들과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옆 사람의 어깨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저놈이 이겼다. 약속대로 살려 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저지른 죄는 갚아야 한다.”
신도익의 목소리가 전체를 향해 들렸다.
“かったから、 やくそくのりいかしてくれる。 しかし、 ここにきて、おかした つみはへんさいする。”
신도익이 우리말과 왜어를 이어서 말하며, 주위의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하고 있었다.
신도익이 주위에 선 병사 중에 둘을 가리켰다.
“저놈의 손목 힘줄과 발목 힘줄을 잘라라.”
“네.”
복창을 한 병사 둘이 검을 뽑아 들고는, 이겼다는 기쁨 뒤에 죄를 묻겠다는 신도익의 말을 듣고 황당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왜구에게 다가갔다.
다른 병사 둘이 총으로 왜구를 겨누었다.
쉭~ ?
칼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는 짧았다.
으아아아~
“せいかしてくれるとしていなかったか?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비명을 지르고는 시간차 없이 고함을 질렀다.
“おまえはいきていないか? (너는 살아 있지 않느냐?)”
왜구의 항변에 신도익은 그래도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약속을 지킨 것은 맞지.
“저놈도 백사장으로 데려간다.”
“저 왜구 놈이 뭐라고 한 겁니까?”
노인이 유시완에게 작은 소리로, 자신이 알아듣지 못한 왜구의 말을 물었다.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따졌는데, 살아 있지 않느냐고 대답해 줬습니다.”
“흐, 그래, 살아 있네.”
노인이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내보이며 말했다.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백사장으로 가는 중에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이건 위험 경고인데?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위험할 것이 있나?
아니다, 위험 경고로 오던 신호와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에 태영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곳에는 순박하게 생긴 제주 사람들 외에는 없다.
그리고 지금 이들을 구해 준 태영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관군들도 마찬가지였다.
미봉산?
이건 분명 미봉산에서의 그것과 같은 신호이다.
거기서 태영을 특정하여 신호를 보낼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맞다.
그날 밤, 그 느낌과 같다.
그런데, 그 먼 곳에서 발생하는 어떤 현상으로 여기까지 신호가 전달되는 것이 맞을까?
혹시 제주 아닐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제주가 얼마나 넓은 땅인데, 아무리 태영이 달리는 속도가 음속의 3배쯤 된다고 해도, 제주 전역을 돌아볼 수는 없다.
정확한 지점이 있어야 가 보든지 말든지 할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미봉산으로 가야 한다.
“돌아가자.”
태영이 정하연을 보며 말했다.
지금 즉시 모든 것을 제쳐 놓고 해룡호를 타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아직 제주에서의 일이 모두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미봉산에 가도, 그날의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꽤 큰 소리였던 모양이다.
주위에 있던 모두가 놀라 태영을 바라보았다.
“뭔 일 있어요? 갑자기 왜?”
“응 그 산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 산? 미봉산?”
“응, 여기 1개 소대와 의무병을 남겨 놓고, 얼마간 여기 있으라고 시키고 우리가 먼저 출발하자.”
“네, 그래요, 그럼.”
역시 정하연은 태영의 앞뒤 없는 말에도 잘 따라 주었다.
“신 대위님.”
“네. 실장님.”
“지금 대장님 몸이 좀 이상한가 봐요. 여기 1개 소대와 의무병을 남겨서 정리되는 기간을 보름 정도 잡고 이들을 임시 주둔시키고, 우리 먼저 출발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2소대 김세돌 중사와 소대원들을 잔류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사포에 갔다가 일간 데리러 오죠.”
“아, 참. 여기 왜구들 두목은 살려 둬야 해요. 가두어 두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음식물을 주라고 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 태영은 제주 특산물 생각이 났다. 아무리 급해도 그것을 시키고 가야 한다.
“그럼, 김세돌 불러.”
“네, 대장님.”
태영은 정하연과 신도익이 듣고 있는 상태에서 김세돌에게 지시했다.
그러는 사이에 병사들은 백사장에 왜구들을 집결시키고 한 줄로 모조리 엮었다.
손목을 묶고, 발목도 한 줄로 굴비 엮듯이 엮었다.
손목이 잘린 왜구들은 옆의 왜구와 몸을 연결해서 묶은 후, 팔뚝을 연결해서 다시 묶었다.
자신들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왜구들은 한 줄로 엮여서 백사장에 모두 모여 앉았다.
노인에겐 간략하게 가야 한다고 설명하고, 김세돌이 임시로 여기 정리될 때까지 지킬 것이라고 했다.
“노인이 임시 현령입니다. 그리고 너.”
태영은 마을에서 현령에게 한마디 했던 관병을 불렀다.
“은인, 이것은 아니…….”
“맡으세요. 황제의 교지가 정식으로 하달되도록 할 테니 맡아요.”
노인이 거절하려고 하자, 태영은 말을 자르고 조금은 강압적으로 시켰다.
빨리 정리하고 사포로 가야 하기에 실랑이할 틈이 없었다.
노인이 현령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좀 해 봐야 하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노인에게 보이는 태도로 미루어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다.
“네.”
관병이 옆에 와서 대답했다.
관병의 몸에서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상처가 많았는지 관복의 곳곳이 피로 물들어 있고, 붕대를 대충대충 감고 있었다.
“이분이 임시 현령이다. 곧 정식으로 교지가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네가 지금부터 부관이다. 잘 보필하도록 하고, 우리 병사들 열 명 정도가 임시로 여기 남을 테니, 그들이 있을 동안 여기 김세돌 중사의 지시를 받도록 해.”
“네?”
관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는 황당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태영은 지시 끝났다는 듯 가 보라며 손을 저었다.
“유시완, 태블릿하고 드론 1대 가지고 네가 여기 김세돌 중사와 함께 머물도록 해라.”
“넵, 대장님.”
유시완은 즉각 대답했다.
사포에서 이곳까지 대략 400킬로 안쪽일 것이다.
태블릿의 통신 거리가 될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건 확인해 보면 될 것이고, 이곳에서 드론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효용 가치는 충분하다.
“중대장, 저놈은 말뚝에 묶어서 바다를 보도록 해. 그리고 왜구들을 묶은 줄을 해룡호에 연결해라. 출발한다.”
현령과 싸운 왜구는 자신의 동료들이 해룡호에 매달려 바다로 끌려가는 모습을 이곳 바닷가에서 말뚝에 묶인 채 보게 될 터였다.
해룡호는 이들을 끌고 가다가 바다 가운데에서 놓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