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27
127. 시험 발전(2)
“돌릴 수 있게 되었소?”
약간의 궁금증을 뒤로하고 물었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궁금하시지요?”
“그래요. 봅시다.”
“이 일은 1차로는 권 소장의 피막, 그리고 2차로는 오한상 철장이 만든 수차와 김도윤 철장이 처리한 변속기의 소형화가 가장 큰 관건이었습니다.”
변속기.
많이 들어 본 이야기이다.
증기 터빈에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왼쪽.”
정현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과 함께 한쪽에 탑처럼 세워져 있는 물탱크 옆에 있던 사람이 왼쪽에 있던 꼭지를 돌렸다.
저 물탱크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대충 봐도 수십 드럼은 들어갈 것 같다.
물탱크에서 철로 만든 긴 파이프가 지금 태영의 앞쪽에 있는 기계 2곳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기계는 각각 큰 철제 바퀴가 있고, 그 바퀴 중에 왼쪽 것이 돌기 시작했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고, 바퀴는 계속적으로 속도가 올라갔다.
윙~
마침내 바퀴가 회전하며 내는 소리가 바람 소리 같아지기 시작했다.
“준비!”
정현이 자신의 옆쪽에 있는 눈금판의 바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큰 소리를 질렀다.
정현의 시선이 정민에게로 향했다.
“켭니다.”
정민이 자세를 낮추더니 가죽으로 감은 손잡이를 왼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투표소 안쪽이 환해졌다.
빛.
빛이었다.
“아, 성공했군요.”
태영의 감탄과 함께 비서실 병사들과 정인구가 눈을 치뜨며 놀라고 있었고, 철소의 철장들은 환하게 웃었다.
“네,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아는 전부입니다.”
“그래요?”
“네.”
“근데, 아까 무엇을 먼저라고 했는데?”
“네. 잠시 기다리시지요.”
“물통, 잠가라!”
정현이 물탱크에 있는 사람을 향해 외쳤다.
대답과 함께 물탱크에 있던 사람이 꼭지를 잠그고 있었고, 천천히 바퀴 회전이 느려지면서 투표소 안의 빛이 차츰 사라졌다.
곧 오른쪽의 것을 보니, 그쪽의 것도 빛을 발했다.
“발전기를 새로 만드는 것도 성공했군요.”
“네, 대장님. 원래 있던 발전기보다 세 배쯤 큽니다.”
발전기의 크기가 크면 전력 생산량이 커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건 앞으로 확인해 가면 된다.
“그런데, 피막은 어떻게 했소?”
권승찬에게 물었다.
피막은 동선의 외부를 감싸서 절연이 되도록 코팅해야 한다.
코팅이라는 말을 그냥 쓸 수가 없어 피막이라고 했는데, 권승찬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던 일이다.
“잘 해결되었습니다. 나중에 연구소 현황 보고 때, 보고 드리겠습니다. 다만, 내구력이 약해서 오래 쓰지는 못할 것이기에 새로운 기술이 필요합니다.”
“동선에 피막을 덧씌우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장님 말씀에 권 소장이 정말 고생 많이 해서 해결했습니다.”
태영의 질문에 권승찬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고, 거기에 정현이 권승찬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수고했소. 대철장, 권 소장, 그리고 철장 여러분들.”
태영은 정현의 거친 손을 잡았다.
권 소장의 손도 잡아 주고, 모든 철장들의 손을 돌아가며 잡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그간 고생 많이 하셨소.”
구조를 어찌 파악했느냐, 발전기를 뜯어보았느냐, 제대로 조립하긴 했느냐 같은 기본적인 질문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이들의 현장 기술력은 이미 태영을 훨씬 앞질러 있었다. 아니, 태영에게는 현장 기술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게 맞다.
태영은 기껏 대학생일 뿐이었고, 또 이 시대로 와서는 개경이며, 후쿠오카며, 송나라로 돌아다니는 동안 이들은 이런 기술적인 부분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태영이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기술력이 훨씬 앞서 있는 21세기의 과학 기술 문명 속에 살다 왔기에, 직접 만들지는 못해도 그것들의 구성과 원리를 알려 줄 수가 있다는 점이다.
“본부에 설치하는데 한 달쯤 걸린다구요?”
“네, 기계를 이전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장 목수가 기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이 수로 문제라고 하더군요.”
“네, 수로를 만들어 물길을 끌어들이고, 수조와 수차를 만들어 설치하는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립니다.”
태영의 질문에 정현과 장목수가 각각 대답을 했다.
“그럼, 완료되는 대로 사포의 모든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것을 보입시다. 그때, 공개적으로 포상을 실시할 테니 기대해도 좋소.”
“감사합니다, 대장님.”
“그리고, 석탄에 대해서 좀 아는 사람을 해룡호에 보내 봐요. 역청탄을 좀 가져왔는데.”
“여, 역청탄요?”
“왜, 왜 그리 놀래요?”
태영의 말에 거의 놀라 자빠질 듯 말하는 정 대철장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그 귀한 걸 어찌 구했습니까?”
“귀한 걸 알긴 아네.”
“네, 당연하지요. 철 일을 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역청탄을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도무지 구할 수가 없는 것인데.”
“해룡호가 가라앉기 직전까지 싣고 왔으니, 당분간 사용이 가능할 거요. 앞으로도 계속 실어 올 것이고.”
“아, 네. 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정민.”
“네, 대장님.”
“개경에서 온 철장들 주특기 분류 다 했지?”
“네, 대장님.”
“그 중에 청자나 질그릇 만들던 사람은 없나?”
“청자는 없고, 질그릇 만드는 옹기 터에 있던 사람이 네 명 있습니다.”
철소 위주로 사람을 불러 모았지만, 그 중에 다른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있을 줄 알았다.
나중에 교장으로 있는 장모에게 학당에서 분류한 표를 받아서 합친 뒤, 특기별로 재배치를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많이 늘어나니 분야별 배치가 조금은 용이해지는 것 같다.
“그래? 그 사람들 내일 오후에 본부로 오라하고, 정 대철장도 같이 참석하세요. 그리고 분류표, 나 좀 주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정현은 다른 철장들과 역청탄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태영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대답을 한다.
저리 좋을까?
저 사람은 정말 전형적인 엔지니어다.
태영처럼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얼치기 엔지니어가 아닌, 진짜 엔지니어.
“아리는 본부 도착하는 대로 각 장들 내일 오전에 회의 소집해 주고, 김경환 원장은 오늘 좀 보자고 해.”
“네.”
김경환은 지난해부터 농업 지도원이라는 걸 만들어 그곳 원장으로 임명한 사람으로 권승찬이 추천한 인물이다.
식물과 농사 그리고 품종 등에 대한 지식이 높고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하는, 반미치광이라고 사포 사람들이 손가락질했다 들었지만, 태영이 볼 때 농작물에 관한 한 기인이었다.
김경환은 태영이 지시한 일들을 하고 있겠지만, 목화의 시험 재배를 맡길 예정이다.
***
“아시나?”
앞으로의 일을 개략적으로 이야기하던 중에 정하연이 의문을 표했다.
“인공 지능이라고 하는데, 음 뭐라고 설명할까? 아무튼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테르가 가진 수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보다 훨씬 똑똑한 기계 장치, 대충 그런 거야.”
앱에 대한 부분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장치라고 설명했다.
“음, 그럼 아시나라는 애가 이 안에서 자고 있는데, 깨우려면 그 라일리라는 여자와 성문이 같은 사람이 아시나를 불러서 깨우는 방법과 스마트 워치라는 시계를 찾는 방법인데, 그 스마트 워치라는 것이 대산도에서 전에 명주라는 곳에서 만났던 조나단 스미스가 사는 그 지방으로 연결되는 일직선상의 어디엔가 있다는 거군요?”
“방향으로 봐서 그런 듯해.”
스마트 워치도 이 시대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오랜 시간을 테르와 씨름했다. 그러다 결국 테르와 스마트 워치가 감응하는 신호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것조차도 별도의 앱이 있었고, 대산도에서 해룡호를 기다리며 빈둥거리는 시간이 넘쳐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찾아본 결과, 신호의 방향만 찾아냈을 뿐 어디쯤에 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GPS도 없고, 삼각도법으로 찾아낼 방법도 없으니, 꼭 찾고자 한다면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따라가 보는 수밖에 없다.
테르의 지도에서 확인해 본 바로는 그 방향에 중국 대륙의 수많은 도시를 거쳐 몽골 서부 지역인 고비 사막을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을 거쳐 소련 남부 지역을 관통하고, 우크라이나 북부, 슬로바키아의 코시체, 북부 헝가리 지역을 지나 오스트리아 남부와 슬로베니아 북부를 관통해야 한다.
그리고 이태리의 베니스, 볼로냐와 라스페치아로 연결되는 라인이다.
거기까지 갔는데도 찾지 못하면, 프랑스와 스페인 남부 해안을 따라가다가 지중해를 건너서 모로코로 연결되는데, 모로코까지 직선으로 따지면 11,200킬로미터니, 참으로 먼 길이다.
다만, 그 길은 대산도에서 보는 일직선의 길이다.
해룡호를 타고 바다에서 인도까지 가면서 방향을 다시 잡아 보면, 삼각도법으로 개략적인 위치가 잡힐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할 테지만, 과연 스마트 워치를 찾아야 할지, 찾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직도 생각 중이다.
이리도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정작 찾아 나서면, 신체적 능력이 월등함에도 1년은 잡아야 하는 길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스마트 워치를 찾으면, 라일리가 언급한 대로 이 시대로 날아온 비밀을 풀 수 있을까?
그리고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될지 모르는 가능성만 가지고 1년의 시간을 사용해서 찾아보는 것이 과연 옳을까?
라일리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스마트 워치를 찾으면 그 비밀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정하연에게 하지 않았다. 그냥 아시나를 깨울 수 있다는 것만 말했다.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을 어찌 하나?
돌아가면 정하연과 함께 가야 한다.
이젠, 정하연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삶이 되었다.
그런데 함께 갈 수 있다고 해도, 정하연에게 그곳은 낯선 땅 낯선 환경에, 부모 형제도 친구도 없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건 나중 일이고, 대신에 성문이 같은 사람이 있으면 아시나를 깨울 수 있다는 거죠?”
“응.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사포와 율촌에 사는 사람들은 제가 시도해 볼게요. 아시나 하고 부르면 된다면서요?”
지문이 같은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성문이 같은 사람도 있을까?
불가능한 일 아닐까?
“응, 성문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깨어나면, 그 사람의 목소리로 ‘이 시간 이후로 정하연이 너의 보스다’라고 하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내가 지금부터 너의 보스다’라고 하면 되는 거야.”
“그리 간단해요?”
“아, 그게 영어로 해야 해.”
“그건 좀 문제네요.”
“그래도 깨어나기만 하면, 내가 옆에서 영어를 가르쳐 주면 되니까.”
“그럼, 개경에 대녀오시는 동안에 제가 율촌과 사포 사람들은 확인해 볼게요. 며칠이나 걸릴 거라고 하셨죠?”
“응, 닷새면 충분할 거로 보는데, 사람이 걸어서 닷새 만에 개경을 다녀왔다고 하면 안 되잖아? 그러니 보름쯤 뒤에 오도록 할게.”
태영의 머릿속 계산은 개경까지 11분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실제로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꼭 시험해 보고 싶었던 일이다.
그 시도를 해 보면, 나중에 몽골 지역을 다녀오는데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골 대륙을 비행기나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다녀오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 그런데 비행기는 불가능하고, 자동차는 언젠가 만들 수 있겠지만, 도로가 없다.
수십 년을 그 일에 매달릴 수도 없고, 태영의 살아생전에 불가능한 일을 추진할 필요는 없으니 혼자 다녀오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식량을 어느 정도 준비해 가야 할지 같은 것을 가늠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개경은 하루면 충분하지만, 상동을 들렀다 올 것이다.
기록으로는 상동 지역의 주소가 있지만, 지금의 주소와는 다르니 며칠을 살펴봐야 할 수도 있다.
최초로 상동에서 텅스텐 광맥을 발견한 것은 노천광이었다고 했으니, 쉽게 찾을 수도 있다.
“그래요. 그럼.”
“정 대철장이 발전기를 본부에 설치하고, 대형 수조와 물레방아 설치하는데 한 달은 잡아야 한다고 하니, 거기 신경 좀 써 주고.”
“네, 그런데 좀 아쉽다.”
“왜?”
“저수지 공사가 일찍 끝났으면, 그 물길을 그냥 이용해서 수차를 돌리면 되는데, 저수지가 2년은 있어야 완공되니 그런 거죠.”
“저수지는 그것도 빨리 끝나는 거야. 그리고 물길을 본부 안으로 내고, 수조에 물 올리는 수차까지 만드니까 좀 당겨서 전등을 밝혀 보자고.”
“그래요. 아무튼 보름 뒤에 제주 거쳐서 후쿠오카 가는 일정인 거 알고 계시죠? 그전에 준비할 것도 많으니 일찍 와야 해요.”
“그래, 알았어.”
약간의 육포와 송편, 물통에 한 대의 드론, 태블릿 충전기, 그리고 정하연이 챙겨 주는 패딩 조끼, 가죽옷 한 벌 외에도 이것저것 배낭에 제법 들어갔다.
조끼는 왜 가져가라 하는지.
태영은 태블릿을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잘 잠근 후 배낭을 등에 지고 본부를 나섰다.
언제부턴가 관아를 부르는 명칭이 본부로 바뀌었는데, 태영도 그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학당을 지나 길을 재촉하여 율촌과 사포의 경계를 벗어나자 태영은 잠시 멈추어서 주위를 살피다가 숲 속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태영이 달리는 속도로 인한 대기와의 마찰계수가 너무 커서, 삼베로 만든 질긴 옷으로도 견뎌 내지 못하기에 지난해 후쿠오카로 가기 전에 태영이 부탁했던 가죽옷이다.
윗도리는 손목과 팔뚝, 어깨와 가슴과 허리에 단단하게 조일 수 있는 끈이 달려 있다.
바지에도 발목과 종아리, 허벅지와 엉덩이 쪽에 역시 단단하게 조일 수 있는 끈이 달려 있다. 끈 역시 제법 굵은 가죽으로 만들었다.
태영은 빈틈없이 끈을 조였다.
안경까지 꺼내 쓴 태영은 손목시계를 한번 본 후에, 워밍업 하듯이 몸을 움직이다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귀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천둥처럼 울리고 나무들이 휘청거리며 밀리는 것이 느껴졌다.
길을 따라 달렸으면 좋겠지만, 길이 꼬불꼬불한 데다 좁기까지 해서 태영의 속도로는 길을 따라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길은 없고, 산자락을 따라 거의 일직선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달렸다.
이왕 길을 잃어버린 김에 작은 나무들이 무릎 정도로 올라오고 풀들이 역시 그 정도로 올라온 구릉지에 접어들자 속도를 더 내었다.
파아아앙~
속도를 끌어 올리자 전투기 날아가는 소리가 난다.
산도 많고 나무도 많고, 땅은 평평하지 않아서 이 속도로 계속 달리는 것은 무리이지만, 잠깐 동안은 달려 볼 만하다.
미약하게나마 소닉 붐이 생기겠지.
그걸 보겠다고 뒤를 돌아볼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냥 빨리 다리는 수준이면, 대기를 밀어내는 힘으로 인해 커다란 소리가 나면서 나무가 세차게 흔들리고 나뭇잎이 날리는 수준이다.
그러나 음속을 돌파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나무들은 가지가 꺾이고 돌들이 날아오른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밀어내는 공기의 압축과 폭발로 인해 엄청나게 큰 폭음이 들리고 수증기의 띠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 소닉 붐도 태영이 지나간 이후에 발생하는 것이기에 실제로 생기는지 아닌지 태영은 알지 못한다.
안경을 쓰고 있기에 눈에 무언가가 들어오지는 않지만, 안경을 돌아치는 바람이 눈가에 느껴지고 귓전을 때리고 지나가는 바람 때문에 바람 소리 외에는 모든 것을 막아 버린다.
이 속도가 최고 속도는 아니지만, 이런 정도로 제한 없이 속도를 내본 적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주머니 속에 태블릿이 들어 있지만, 이 속도로는 도저히 꺼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방향을 잡기 위해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쳐다볼 틈이 없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딘가에 부딪쳐서 온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최대 속도로 계속 달릴 수 있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게 달린다고 하더라도 불과 수초 후에는 속도를 낮추어야 한다.
봉우리를 하나 오르면 다음에 나타나는 내리막길을 따라 달려지는 것이 아니라 수초 간 공중에 떠 있게 된다.
그리고 땅에 발을 내디디면 흙을 파고드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발이 땅을 푹 파고든다. 그렇다고 발을 빼내기 위해 속도를 늦출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속도를 유지해도 흙을 튕겨 내며 발은 빠져나오고 속도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또, 그로 인해 발이 아프다거나 하는 증상 같은 것 역시 없다.
제법 넓은 강이 보인다.
저것이 분명 한강은 아닐 테니, 아마도 낙동강 줄기일 것이다.
그사이에 몇 개의 시내와 폭이 좁은 강은 그냥 건너뛰었다.
강폭이 좁은 곳은 그냥 건너뛰어도 지장이 전혀 없기에 30~40미터 정도는 그냥 건너뛰었는데, 여긴 폭이 제법 넓어서 멈추어야 했다.
“3백 미터?”
강폭이 대략 그 정도 되어 보이는데, 봄 가뭄 시기인지 강바닥의 절반 정도에만 물이 흐르고 나머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강물이 흐르지 않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속도를 늦춘 김에 강변을 따라 올라가며 쉽게 건너뛸 수 있는, 폭 좁은 곳이 있는지 살피는데,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달리자 건너편 강변으로 펼쳐진 들판에 민가가 보였다.
시계를 한번 보고 태블릿을 꺼냈다.
“태블릿에 시계가 있으니, 돌아가면 이 시계를 풀어 주고 만들어 보라 해야겠네.”
사실 그동안에는 이걸 해체해서 시계 만드는 것을 시켜보고 싶어도, 유일한 것을 해체해 보라고 하기에는 안심이 되지 않았었다.
시간상으로 사포에서 출발한 지 20분 정도 지나 있었다.
실제로 달리기 시작한 것은 10분 정도에 최대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해도 제법 왔을 것이다.
여기가 대체 어디쯤 될까?
속도가 빠르니 도무지 위치가 가늠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라면 스마트폰에 지도 앱만 띄우면, GPS로 인해 지도상에 바로 위치를 표시해 줄 텐데, 그런 것은 정말 많이 아쉽다.
태블릿 상에 나타난 거리로 테르와는 직선으로 160킬로 떨어졌다.
태영이 있는 쪽의 강변에도 논이 제법 있고, 산비탈에 밭도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초봄이라고 하지만 산속의 겨울은 그 긴 꼬리를 아직도 다 거두지 않았으니 여전히 춥고, 높은 산봉우리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을 하얗게 이고 있다.
거기다가 이곳은 사포나 율촌처럼 2모작을 하지 않으니 이 계절에 논밭에 사람이 나와 있을 일이 없었다.
드론을 꺼내서 띄웠다.
강변에 작은 배가 매여 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건 강 건너에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더 위쪽으로 올려보자 강바닥이 삼각주처럼 생긴 곳이 몇 개 보였고, 거긴 강폭이 좁아 보였다.
“저곳으로 건너면 되겠군. 띄운 김에 구경이나 좀 할까?”
이곳저곳으로 드론을 날려 보내며 경치 구경을 했다.
배낭에서 육포와 송편을 꺼내 요기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태블릿의 화면을 곁눈질로 보면서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고속으로 달리거나 힘을 많이 쓰면 빨리 허기가 진다.
배낭에서 꺼낸 육포 열조각과 송편 스무 개를 먹고 나서도 속이 다 채워지지 않았지만, 일단 그 정도만 하고, 물을 꺼내 마셨다.
그때, 태블릿을 통해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 무슨 소리야?”
태영이 중얼거리며 드론을 조종해서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그런데 여자의 비명 이후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
“싸움이라도 벌어진 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흥미가 돋아 소리 나는 방향으로 드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