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28
128. 제비골의 인연(1)
아, 근데 드론이 보내온 영상은 대체 이게 뭐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 마을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외톨이 민가.
그 외톨이 민가의 담도 없는 마당에 한 남자가 다섯 남자를 막아서 있고, 그 뒤에는 여자가 서 있다.
태영의 위치로부터 11킬로 떨어진, 낙동강으로 생각되는 강이 아닌 큰 강의 지류로 보이는 샛강에서 조금 떨어진 집이다.
드론을 통해서 전해지는 말소리는, 다섯 남자를 막아서 있는 남자의 고함으로, 아마 자신의 뒤에 있는 여자에게 하는 말 같았다.
여자가 남자의 옷자락을 잡고 흐느끼며 소리치는 것으로 봐서 부녀지간이었다.
여자의 비명 같은 고함 소리.
늑대?
뭐?
그냥 여기서 죽자고?
그리고 가다가 죽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이야?
다섯 남자 중에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키득키득 웃는 모습은 글자 한 자 읽을 수 없는 전형적인 시골 촌부의 배우지 못한 모습인데, 힘은 억세 보였다.
사극 같은 것을 보면 통상적으로 쓰는 말인데, 사극 안에서도 저 말이 통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대충 분위기로 보아하니, 남자들 다섯이 여자를 겁탈하려 하는 모양새다.
그것을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막고 있고, 딸에게 도망을 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남자들 다섯이 힘으로 여자를 겁탈해?
이런 건 또 용서가 안 되지.
이렇게 외진 곳에서 뭔가 얽히는 것이 성가시기는 하지만, 안 봤으면 몰라도 본 이상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다섯 중에 낫을 든 한 놈과 몽둥이를 든 두 놈이 있어서 두 사람이 자칫 위험해 보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서둘러야 한다.
그사이에 몽둥이를 든 한 놈이 몸을 날리며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를 후려쳤다. 분위기를 보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태영은 드론을 공중에 그대로 두고, 태블릿도 켜 둔 채로 스크린만 최소화시킨 후 주머니에 넣고는 배낭을 어깨에 걸었다.
그사이, 태블릿을 통해 여자의 비명과 남자의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거 뭐야. 혹시 낫으로?”
느낌이 좋지 않았다.
태블릿을 꺼내 상황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느니 빨리 달려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태영은 즉시 몸을 날렸다.
파아아아앙~
대기를 찢는 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아까 봐 두었던 강폭이 좁은 곳에 다다랐고, 두 번을 뛰고 강을 건너 외딴집으로 내달렸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집이 가까워지자 속도를 늦추고 마당을 보니 여자가 짚이 쌓여 있는 곳에 넘어져 있고, 남자 하나가 여자의 두 손을 누른 채 내려다보고 있다.
손이 붙잡힌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여자를 힘으로 강간하려는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래도 상황을 보니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았다.
옆을 보니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들이 있고, 여자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바닥에 넘어져 있는데, 목에 낫이 박혀 있었다. 그 낫의 손잡이는 체격이 좋은 한 명의 손에 있고.
“이런 개새끼들.”
욕이 절로 나왔다.
분명히 아까 태블릿을 챙겨 넣을 때만 해도 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30초도 되지 않은 그 짧은 시간에?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낫에 목이 꿰인 것을 주변 사람들이 황당한 모습으로 바라보는데, 한 명은 얼굴에 야비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건, 의도적으로 여자의 아버지를 낫으로 찌른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산이 깊고 사람이 많지 않는 곳은 법을 집행할 기관이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마을의 어른이 규범을 세우고 계도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질서를 지켜 나간다고 봐야 하는데, 저들이 저리 행동하는 것은 애초에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태영은 소도를 뽑았다. 절대, 쉽게 죽이지 않으리라.
바로 점프하여 마당으로 착지를 하면서, 여자의 배를 깔고 엎드려서 치마를 들어 올리려 하는 놈의 목을 잡아당겼다.
놀라며 몸이 일어나는 놈의 등에서 배 쪽으로 칼을 쑤셔 넣었다.
칼이 들어가는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즉시 칼을 뽑아내, 낫에 찔린 사람의 뒤에 서 있는 남자들의 옆으로 이동했다.
푹~
남자를 낫으로 찌른 것으로 보이는 놈의 배를 푹 찔러 등까지 칼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빼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칼을 찔러 넣었다가 그대로 빼내었기에 아마도 시간이 좀 지나야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이 찔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소리를 지르며 태영에게 주먹질을 하려 했다.
푹~ 샥~샥~
몸을 움직여서 남은 셋도 배꼽 부위라고 짐작되는 부분을 차례대로 찔렀다가 빼냈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지만,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아아악, 으아악.”
“뭐야, 누구냐?”
비명이 먼저 나오고 질문이 나왔다.
처음 찔린 놈이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비틀거리며 태영을 쳐다보았다.
“살인이…… 하아.”
배를 찔린 한 놈이 소리를 질렀지만, 배를 찔리면 힘을 제대로 주기가 어렵기에 고함이 나올 수가 없다.
태영을 제외한 모두가 마당에 주저앉았다.
그 중에 몇은 바닥을 벌벌 기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여자의 아버지 앞에 갔지만, 상처가 너무 깊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 하는 것 같았지만, 입으로 말은 나오지 않는다.
목을 거의 관통할 정도로 낫은 깊이 파고들었고, 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이미 아버지의 몸 아래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눈은 이미 흰자위를 보이고 있고, 팔과 다리에 작은 경련이 있었다.
“아아아악, 아버지. 아버지이이이이!”
뒤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아이, 아니 여인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죽어 가는 아버지를 본 모양이다.
태영은 몸을 돌려 죽은 남자에게 달려가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아아악, 아버. 아버. 아버, 아아아아 아버.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말이 중간에 끊어질 정도로 잠깐씩 숨이 멈추어지며, 정말 처절하게 울었다.
태영의 가슴도 아파 왔지만, 이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흐아아앙. 아, 아버지, 안돼, 아아아 안돼요 아버지 흐아아앙~
이미 숨이 넘어간 사람이다.
~흐아앙, 아버지, 아버지 제발, 아아, 아버지 제발 눈 좀 떠 봐요 아버지~
아이는 비명을 토하며 아버지의 몸에 엎드려 울고 또 울었다.
너무나 처절하게 울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태영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남자들을 보았다.
옷을 보아하니 배에서 피가 배어나는 정도일 뿐, 피를 많이 흘리는 놈은 없었다. 배는 피하지방으로 인해 쉽게 피를 내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놈이 소리를 지르며, 바닥으로 기면서 몸을 질질 끌고 집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붙잡아 앉히지 않아도 저놈은 저 상태로는 제가 사는 마을까지 가지 못한다. 가다가 죽을 것이다.
살아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내장을 다친 이상 몸 안에서부터 곪기 시작하기에 외과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
이 산촌 마을에 의사가 있을 리 없고, 이 시대에 외과 의사는 사포에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으니.
왜 아이의 아버지를 죽이고, 겁탈하려 했느냐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아려 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도 물어보고 싶었다.
너의 어머니는 어디 갔느냐? 오빠나 언니나 동생은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친척은 없느냐?
너를 도와줄 마을 사람은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저렇게 가슴을 후벼 파듯이 처절하게 울고 있으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개경으로 가야 하는데.
그래, 개경으로 가는 것은 잠시 잊어버리자.
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너는 울어라 나는 바쁘니 내 갈 길이나 가겠다며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아이의 우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당 한쪽에 장작을 패기 위해 마련해 둔 듯한 나뭇등걸에 앉아 태블릿을 꺼냈다.
태영이 이곳으로 오는 사이에 발생했던 녹화된 영상을 보았다. 죽어도 싼 놈들이다.
그들이 천천히 죽어 가는 것에 대해 조금도 미안함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
“목숨을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세 시간이 지났을 즈음 아이가 일어서서 태영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흙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인사를 했다.
테영도 그제야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헉.
정말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너무나 아름다운, 아니 그 정도의 말로는 절대로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미인이다.
대략 십칠팔 세 전후일까.
이 시대의 나이 기준으로 보면 유부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화장품이나 얼굴에 바를 수 있는 로션 같은 것이 없는 시대여서 피부가 거칠어 보이고, 산과 들에서 일을 하며 봄 햇살에 탔기 때문인지 얼굴이 가무잡잡해 보이긴 했다.
거기다가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방울 같고, 코끝도 빨개진 데다 흐르는 눈물을 흙이 묻은 손으로 그냥 닦아 냈기에 얼굴에 땟국이 흐르고 꼬질꼬질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온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그 정도로 감추어질 수 있는 미모가 아니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이 산골짜기 마을에 저런 미모의 여인이라니.
정하연까지 포함해서 저리 예쁜 아이는 단연코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묘하게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라니.
드론이 촬영하기 전의 내용을 몰라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저 아이의 불행은 아마도 저 아름다운 미모 때문인 듯했다.
그것이 아니고는 그럴 수가 없지 않을까?
이 산골마을에서 예뻐도 너무 지나치게, 아니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너무나 예뻤다. 다른 가족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죽은 아이의 아버지도 상당한 미남이다.
엄마 역시 아이의 얼굴을 보면 보통 미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구해 주어서 고맙다는 한마디를 했는데, 이런 산골에서 배우지 못하고 살아온 아이답지 않게 말투가 정중하면서 공손하고 반듯했다.
얼굴은 그을려 있고, 눈물과 흙먼지가 범벅되어 있어도, 미모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할 정도인 데다 말투는 충분히 교육받아 지성을 갖춘 사람이 쓰는 말투다.
기껏 고맙다고 표현하는 그 몇 마디에 이런 느낌을 주다니.
정말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신비하다고 해야 하나.
“아버지를 묻어 드려야지?”
“네, 나리.”
아이가 대답을 하는데,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집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이미 저들이 오기 한참 전부터 태영은 알고 있었지만, 막을 필요는 없었다. 발소리보다 고함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긴 했다.
큰 마을은 아니었고, 십여 가구나 이십여 가구 정도씩 산골짜기와 모퉁이를 돌며 여러 곳에 펼쳐져 있기에, 많아야 오륙십 가구 정도가 있는 마을이었던 걸 드론을 띄웠을 때 확인했으니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를 겁탈하려던 다섯 중에 그 누구도 마당 안에 없었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아니 셋은 일어서기는 했다.
일어선 놈들은 비틀거리며 빠져나갔고, 일어서지 못하는 놈들 역시 몸을 질질 끌며 사라졌지만, 태영은 굳이 막지 않았었다.
그때로부터 3시간이 지났으니, 그 정도야 기어서 가도 갔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을 가까이 갔을 테고, 누군가는 발견했을 테고, 이곳의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각색해서 말했을 터였다.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어느 놈이냐? 대체 어떤 놈이기에 마을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했는지 들어 보자.”
부엌칼로 보기에는 좀 더 큰 칼을 손에 들고 고함을 지르며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장년인의 뒤에, 낫과 도끼, 부엌칼 같은 것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눈으로 세어 보니 열넷이다.
해코지?
해코지는 너희가 해야 하는 말이 아니지.
그들 중에는 긴 나무 끝에 칼을 매달아 마치 창으로 보이는 걸 들고 아직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청년도 있다.
그보다 더 뒤쪽으로는 마당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남자들, 그리고 아이들과 여자들이 이집 마당의 바깥에 있는 밭을 점령하고 구경하겠다는 듯이 우르르 둘러섰는데, 그 수가 제법 되었다.
그 중에는 노인들도 몇이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돌아보며,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몸짓을 잠시 보였다.
“문을 열어 두고 봐도 된다. 다만 저 안으로 들어가라.”
태영의 재촉에 아이가 움집처럼 생긴 이 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열어 둔 채로 밖을 향해 섰다.
“네 이년.”
장년인이 태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눈을 돌려 집 안의 아이에게 소리쳤다.
태영은 낯선 사람이니 일단 한번 무시하고.
작은 동네에 사람도 많지 않으니, 다들 아는 얼굴일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일단 소리부터 질러 놓고, 겁부터 준 후 시작하려는 전형적인 수법.
“아이에게 말하지 말고 내게 말해라.”
“너는 저년과 무슨 관계이냐?”
태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년인이 태영에게 칼을 겨누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저 아이에게 년이라고 하거나 욕을 하는 놈은 목을 잘라 버린다.”
“뭐라고? 너는 웬 놈이기에 저년을 뒤에 감추어 두었느냐?”
장년인의 옆에 있던 30대로 보이는 체격 좋은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태영이 순해 보이는 얼굴에다 화를 낸 모습이 아니어서일까? 아니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카리스마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욕하면 목을 잘라버린다는 경고를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다.
휙~서걱~
태영의 몸이 순간적으로 그놈에게 갔다가 왔다. 곧이어 머리가 굴러 떨어지고 피가 뿜어져 올랐다.
기선 제압과 동시에 공포를 심어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동시에 뱉은 말은 실천하겠다는 의미다.
이 시대에 총과 칼을 끼고 살면서 터득한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아아악, 으악~
열넷 중에 남아 있는 열셋이 비명을 질렀고, 집 바깥쪽의 밭에 서 있던 마을 사람들도 비명을 질렀다. 또 일부는 놀라서 도망치듯 밭을 떠났다.
“너, 너, 너너.”
그 모습을 본 장년인이 입에서 침을 튀기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리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공포로 인해 떨고 있었던 것이다.
떨지 않으면 비정상이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떨기 시작했다.
보통 시골의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태영의 경고를 쉽게 생각했겠지.
“분명 말했다. 저 아이에게 욕을 하면 목을 잘라 버린다고. 그리고 지금부터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안으로 발을 들이거나 마당을 벗어나면 역시 목을 자를 것이다. 그 점 또한 명심하라.”
모두들 어버버거리며 공포에 떨고 있던 그때, 밭에 서 있던 노인 한 명이 주춤거리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죽을라고?
“모두 무기를 내리게. 그리고 내가 저분 나리와 이야기하겠네.”
역시, 조금이라도 더 나이 먹은 사람인가 싶다.
그 노인의 말에 몸을 떠는 사람도, 눈을 부라리는 사람도 한 발짝 물러섰다.
“나리, 어떤 연유로 우리 마을 사람들을 핍박하는지 말씀을 해 주시지요.”
노인이 고개를 잠깐 숙이고는 천천히 또박또박 물었다.
그사이에 주위를 떠들썩하게 했던 울음소리들은 멈추어 있었다.
“말조심하라. 핍박이라니.”
이 시대로 와서 나이를 막론하고 눈앞의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해도 버르장머리 없다거나 건방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반말과 명령도 아주 쉽게 나온다.
“…….”
태영의 말에 노인이 잠시 움찔했다.
“이집에, 그 마을 청년 다섯이 쳐들어와서 저 아이의 아버지를 죽이고 저 아이를 겁간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마을 사람들을 핍박하려 했다고?”
“…….”
태영의 말에 노인은 말없이 몸을 돌려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태영은 말을 이었다.
“핍박은 너희들이 이 아이에게 한 짓을 말할 때 쓸 수 있는 말 중에, 아주 많이 양보해서 순하게 표현하며 쓰는 말이다.”
태영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지만, 호의가 있는 얼굴은 보기 힘들었다.
한 명의 목을 잘라 버리는 바람에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와 함께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상관없다. 이 아이에게 한 짓을 보면 다 죽여 버려도 할 말이 없을 테니.
“그 일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일은 내 눈앞에서 일어났고, 난 여태 그런 놈들을 살려 둔 적이 없다. 더 궁금한 것이 있나?”
드론이 찍은 영상으로 정확히 봤다.
노인이 태영을 잠시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옵소서.”
“그래, 변명은 들어 주겠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저 아이나 나를 모함하려 하면, 분명하게 말하지만, 목을 걸어야 한다.”
이미 입에서 나온 말을 실천해 보였으니 또 쉽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태영의 눈앞에서 노인과 무기를 들고 몰려왔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한 사람이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마당에 쓰러져 있고, 목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는데, 저런 논쟁이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 논쟁을 옆에서 들으면서, 태영이 보여 준 무력이 저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몰랐다면, 과연 저들이 저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의 이름이 서윤이구나.
노인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