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3
013. 사포의 새 관리(1)
저따위로 무식하고 예의범절이란 개를 주려 해도 없는 새끼는 처음이다.
싸가지 없는 국회의원들이나 일부 공무원들과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주고 다녔는지 모르지만, 그따위로 하면 용서를 못 하지.
다들 설설 기는데, 이상한 진녹색 얼룩무늬의 옷을 입은 놈이 머리에는 역시 비슷한 얼룩무늬 바가지를 뒤집어쓴 채, 별 이상한 것을 들고 호장을 보고 설설 기지도 않고 신도익을 일어서라 소리를 치니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은 별놈이다.
신도익과 그 일행은 일어서지 않고 고개만 돌려 태영을 바라보았다.
태영은 소총을 들어 올려 박한의 무릎을 겨냥했다.
“네 이놈, 호장 나리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박한의 옆에 서 있던 몇 명이 칼을 빼 들었고 그 중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탕~
태영이 K2C를 조용히 들어 올렸고, 곧바로 총성이 울렸다.
“아악.”
박한이 비명을 지르면서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으아악. 아악.”
박한의 주위에 거만하게 서서 으스대고 있던 놈들과 년들이 총을 맞지도 않았으면서 더 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일부는 귀를 막고 있었다.
그래, 생전 처음 들은 소리이겠지.
신도익을 비롯한 가병들과 마을 사람들은 놀라지 않고 박한이 총에 맞고 데굴데굴 구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박한의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땅에 엎드렸지만, 박한의 아들로 보이는 두 놈과 그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놀라 바닥을 기면서도 곧바로 나리, 아버님 하면서 쓰러진 박한에게 달려갔다.
총성의 여운이 가라앉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박한의 가족과 함께 도망갔던 일행을 제외한 주위의 사람들은 태영이 왜구들에게 총질하는 것을 대부분 보았을 것이다.
대체 손에 들고 있는 저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탕 소리가 귀를 찢는 듯 울리고 나면 왜구 하나가 어김없이 죽었다.
정인구가 표현한 것이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모두 칼 버려. 버리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즉시 칼을 버린다. 실시.”
태영은 박한의 주위에 도열해 있다가 총소리에 놀라 바닥에 주저앉거나 엉거주춤 서 있거나 또는 칼을 뽑아 드는 사병들을 향해 크지 않은 목소리지만 군대식으로 마디마디 끊어서 명료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즉시 실시? 고려 시대에도 이런 말이 있었을까?
몇 명이 놀란 모습으로 엉거주춤 칼을 내려놓았고, 칼을 빼 들었던 몇 놈이 잠시 놀랐지만 칼을 다잡았다.
“네, 이놈.”
그리고 곧바로 고함을 치더니 죽일 기세로 칼을 세우며 곧바로 태영을 향해 달려왔다.
이놈 봐라. 상황 파악을 못 하네.
그 칼로 죽이겠다는 거지?
“왜구에게는 놀라서 도망을 쳤던 놈들이 나한테는 칼질을 하겠다는 거지? 왜어를 쓰는 놈들은 겁나고, 같은 말을 쓰는 나는 만만해 보이냐?”
태영은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면서 달려오는 놈들에게 총구를 돌렸다. 이런 놈들에게 자비는 전혀 쓸 데가 없다. 마을 사람들 수십 명이 죽었는데, 몇 명 더 죽기로서니.
그리고 이들은 왜구가 아니고 고려 사람이니 꼭 죽이고 싶진 않았지만, 태영을 향해 칼을 드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다.
또,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태영에게 칼을 겨누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했다.
탕, 타당, 탕~
다시 4발의 총성이 울렸다.
네 명은 달려오던 동작에서 뒤로 밀리는 자세로 바뀌더니 비명과 함께 앞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총의 위력이 다르다.
어제 기관단총을 들었을 때는 이렇게 몸이 뒤로 밀려나지는 않았다.
아악~ 으아악
뒤늦게 비명이 터져 나오고, 총을 맞은 넷 중에 둘은 바닥을 벌벌 기었고, 다른 둘은 튕겨져 나간 모습 그대로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내 그들의 주위로는 붉은 피가 흘러나오면서 피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칼 버리지 않으면 죽는다고 이미 경고했다. 즉시 칼 버려.”
아직 칼을 놓지 않았던 사병들이 몸을 떨더니 슬그머니 칼을 내려놓았다.
“삼촌, 삼촌.”
“균아.”
보아하니 총 맞은 놈 중에 한 놈이 박한의 동생 박균인 모양이다.
옆에 서 있던 애들이 총에 쓰러진 놈에게 달려가고, 박한의 옆에서 오만하게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며 으스대고 있던 노인도 이름을 부르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모두 동작 그만.”
태영은 박균을 비롯한 다른 가병들 쪽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쳤다.
말은 잘 알아먹는 모양이다. 일부는 얼어붙듯 동작을 멈추며 태영을 돌아보았고, 일부는 무시하고 박균에게 달려갔다.
“말 듣지 않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죽는다. 이쪽으로 떨어져라.”
태영은 오기에 받쳐 다시 고함을 질렀다.
박한의 어미로 보이는 늙은 여자가 독기 오른 눈으로 태영을 노려보면서 박균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눈 내리깔아.”
고참 병장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들, 지금 총을 들었는데 노려본다고?
나이 먹었다고 이해해 줄 줄 아나?
너희들이 더 나빠, 이것들아.
자식 놈이 그 지방을 책임지는 관리이면 양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자식에게 싸우라고 가르치지 못할망정, 다 팽개치고 함께 도망이나 갔던 주제에 제 자식이 총 맞은 거는 억울하고 분하면서, 사포의 양민들이 왜구에게 죽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야, 이놈아 어디 나도 죽여 봐라.”
태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마치 짐승이 으르릉거리듯 내뱉는 목소리에 태영의 총구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할망구, 날 시험하지 말고 입조심하라고. 그 입 닥치지 않으면 죽는다.”
“할머니, 제발.”
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한의 아들로 보이는 애가 제 할머니를 감싸 안고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태영이 여전히 총구를 올린 채로 전체를 휘둘러보다가는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작은 흐느낌과 총을 맞은 자들의 신음만 들려올 뿐 조용해졌다.
“모두 일어서시오.”
동네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하고는 박한 일행을 보았다.
“너희는 모두 무릎 꿇어. 너희들도.”
태영은 박한의 가족들로 보이는 일행과 사병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네 이놈, 너는 웬 놈이길래 이렇게 행패를 부리느냐?”
박한의 아비로 보이는 노인이 태영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질렀다.
태영이 살았던 현대 사회에서 저 정도의 모습이면 나이가 7~80대는 되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아마도 환갑이 넘도록 살지 못하는 이 시대의 평균 수명을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태영은 그 노인을 바라보며 박한의 동생에게 잠깐 눈을 주었지만, 박한의 동생은 지금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저 영감이 상황 파악을 못 한다.
“영감. 그 입 다물라.”
어느 드라마에서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했던 표현이라면서 연예인들이 종종 흉내 내던 말이다.
“모두 무릎 꿇지 않으면 강제로 꿇려 주겠다.”
제법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아래로 내렸던 총을 다시 들어 올렸다.
김처인이 몸을 슬슬 일으켜서는 탄피를 줍다가 뜨거웠는지 놓치고는 옷자락에다 다시 주워 올려서 태영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 준다.
이틀 전 태영이 열심히 탄피를 회수하는 것을 보고 묻기에 반드시 회수해야 하는 물건이라고 대답했었다.
태영의 서슬 퍼런 고함 소리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박한의 가족들이 무릎을 꿇었고, 사병들도 엉거주춤 서로간의 눈치를 보면서 무릎을 꿇었다.
박한 이놈은 최충헌만큼 나쁜 놈이네.
최충헌도 그렇지만 이놈도 이 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단 말이지?
사병을 거느리는 거 좋다 이거지. 근데 제 몸과 제 가족은 호위하고 마을 사람들은 죽어도 좋다는 거지?
“이 이놈, 네놈은 누구이길래 우리에게 이렇게 행패를 부리느냐?”
쓰러진 박균을 부축했던, 박한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분노한 표정과 목소리로 몸을 일으키며 달려들 포즈를 취했다.
탕~
태영은 아무 말 없이 허벅지를 향해 총을 쏘았다.
“으악. 아아악.”
박한 일행의 비명이 다시 터져 나왔다.
이제부터는 경고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신도익, 자초지종을 말하라.”
태영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호장 나리께서 돌아오셔서.”
“일어서서.”
무릎을 꿇은 채로 신도익이 말하려 하자 말허리를 끊었다.
“넵.”
신도익이 일어섰다.
김처인만 탄피를 핑계로 먼저 일어섰던 상황이라, 왜구와 싸웠다는 이유로 박한에게 무릎 꿇려 있던 다른 사병들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호장 나리께서 왜 자신을 호위하지 않았느냐고 문책하시기에, 어떻게 하든 왜구들을 막아 내 보겠다는 생각에 그리했다 하였더니, 네놈 능력으로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었느냐고 하며, 호장의 명령을 어겼다 하여 처벌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네, 나리.”
태영은 박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한.”
“…….”
“신도익 부호장의 말이 맞느냐? 변명을 들어 보자.”
“네 이놈, 감히 누구의 이름을 마구 부르느냐?”
박한의 아들로 보이는 애새끼 하나가 태영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겁이 없는 놈들이다. 거기다가 제 애비가 호장인데, 제가 호장인 줄 착각하는 이런 놈들이 꼭 있다.
태영은 총구를 그놈에게로 돌려 허벅지를 겨냥했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가늠자에 눈을 가져다 대지 않아도 충분하다.
탕~
그놈의 허벅지에 총알 하나를 관통시켜 주었다.
아아악, 으아악~
그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서는 허벅지를 붙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정신 줄 놓고 사는 놈들이네. 한번만 더 헛소리 지껄이면 바로 죽여 버리겠다.”
아이들과 여자들의 비명이 온 마당을 울렸다.
“그 입들 다물어라. 입 다물지 않는 놈은 모조리 죽여 주겠다.”
비교적 근엄하고 묵직하게 말한 태영의 목소리가 장난으로 들리지 않았는지 입을 앙다물고 입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돌려 약간은 겁먹은 모습이기는 하지만, 태영을 노려보는 애새끼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아마 잔인한 미소였을 것이다.
“신 부호장의 말이 사실입니까?”
태영은 주위를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나리, 맞습니다요.”
초로의 노인 한 명이 대답했다.
그리고 태영의 눈을 마주친 다른 사람들이 입술을 달싹이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했다.
박한이 무서웠으리라.
박한이 하는 행태를 보아하니,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자세를 보아하니 그간 어지간히 행패를 부린 모양이다.
“신 부호장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그 부당함을 이야기하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둘러선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럼 여기 있는 모두를 증인으로 하여 신 부호장의 말이 옳았음을 확인합니다.”
좌중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호장 박한은 관리로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구의 침입에 맞서 양민을 보호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그의 수하들과 함께 가족을 대동하고 도망하였으니, 호장의 직무를 게을리하였다.”
호장의 직무가 뭔지는 모른다. 알게 뭐람.
다만, 호장이라는 지방 향리는 관리이고, 관리는 주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태영의 생각일 뿐이다.
그 호장이라는 것이 사포의 최고 권력자 같은데, 마을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도망친 것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태영에게는 이를 징치할 힘이 있었다.
숨 한번 쉬고 말을 계속 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땅히 왜구를 물리쳐야 하는데, 힘을 보태야 할 가병들에게 자신의 호위만을 맡기고 왜구를 퇴치할 생각도 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피해가 더욱 커졌다. 그래서 그 책임을 물어 직을 파하고, 죄를 묻고자 한다. 이의가 있는 사람은 지금 이의를 제기하시오.”
저들이 보기에 이 사포를 왜구로부터 구해 낸 사람이 이렇게 심판을 하고 있는데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못 할 터였다.
“안 된다, 이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역시 박한의 가족으로 보이는 여자가 고함을 질렀다.
“함께 도망을 간 가족은 변론 권한이 없으니 기각한다. 다시 한번 입을 열면 가족들에게도 동일한 죄를 물을 것이다. 가족 이외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지금 말하시오. 셋을 세겠소.”
이 시대의 법이 어찌 되는지도 모르면서 마음대로 심판을 하는 상황이었다.
“하나.”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신도익은 태영을 쳐다보았다.
“둘.”
김처인의 표정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태연했다.
김윤경이 사람들 사이에서 신기한 듯이 태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셋.”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태영은 좌중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호장 박한, 박균 두 사람은 왜구가 백성들을 수탈하며, 죄 없는 양민들을 죽이고 있음에도 죽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들만 데리고 도주하였고, 그러면서도 휘하의 병졸들을 대동하여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호위하게 하는 등, 호장의 의무를 다 하지 않아 많은 백성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고, 그렇지 않은 백성들은 왜구에게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게 한 죄를 물어 참형에 처한다.”
참형에 처한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아, 안 돼.’ 하는 말들이 박한의 가족들에게서 튀어나왔다. 또한 동시에 욕설과 손가락질이 난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영은 말을 계속했다.
“또한, 그 재산은 모두 몰수하고, 이와 아울러 자신들의 생존만을 위하여 도망한 호장의 가족들은 이 시간부로 모두 노비 형에 처한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박한의 가족들의 무리는 난리가 아닐 정도로 시끄러워졌지만, 태영은 신경 끊고 관아를 한번 둘러보았다.
다른 집들이 무척이나 낮고 초가집인데 반해, 관아는 흔히 하는 말로 비까번쩍했다.
탕~
너무 시끄러워서 조용히 시킬 겸 공중을 향해 한 발을 쏘았다.
역시 조용해진단 말이지.
“호장을 호위하고 함께 도망을 간 가병들에게도 죄를 물어 같이 참수하는 것이 마땅하나, 호장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던 점을 감안하여 1년간의 노역 형에 처하는 것으로 그 죄를 갈음하고,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을 파한다.”
여기 분명 부호장이 둘이 더 있었다.
“신 부호장, 여기 옥이 있는가?”
“네, 나리.”
웃긴다. 호장이라는 직책의 말단 관리가 옥을 만들어 두었다고?
아주 어처구니가 없는 놈이기는 해도 이런 때는 쓰임새가 있네.
“신 부호장은 가병들을 모두 포박하여 하옥하고, 파직된 다른 부호장도 함께 하옥하라. 그리고 박한과 박균의 식솔들도 역시 하옥하고, 참형의 집행은 오늘을 넘기지 말고 시행하라.”
“네, 나리.”
신도익은 자신과 함께 살아남았던 사병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있던 다른 사병들을 모두 포박했다.
그사이에 포박하는 쪽과 당하는 쪽에서 신경전이 오고 갔으나 태영이 총구를 들어 올려 그들을 겨냥하자 모두 입을 다물고 조용히 포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