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35
135. 금지된 사랑(1)
“면사라 하심은?”
“눈 아래쪽을 천으로 가리는 것이다. 하인에게 이야기하면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인들의 이름을 아직 다 외우지 못해서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
의외이기는 하지.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요구이기도 하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강요할 생각은 없다.”
“네,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건 네가 알아서 정하도록 해라.”
그 외에 또 해 줄 이야기가 없나 생각하면서 배낭을 끌렀다.
“그런데, 오늘 거기서 가르치는 글자는 제가 처음 보는 글자였습니다.”
“글을 배웠나?”
그런 줄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물었다.
“……조금 배웠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니.
집 안에 서책도 있었으니 배웠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했지만, 그 산골 벽촌에서 글을 배웠다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글을 배웠던 사람들이 왜 그런 산골에 가서 살았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
“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래?”
“네.”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에게서 글을 배웠다? 거참.
“오늘 본 글자는 내가 가르친 것이다. 어느 위대한 왕께서 만드신 것인데, 불경스럽게도 내가 그분보다 앞질러서 가르치고 있다. 너도 잘 배워 익히도록 해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태영이 잘 느끼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사옵니다, 라거나 하옵니다, 라는 말이 사라졌다.
언제부터 그랬지?
“앞으로 생활 해 보면 느끼겠지만, 네가 내 여인인 것을 아는 이상 고려 땅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너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서윤의 상황에서 어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그 산골짜기 마을에서 살다 온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그러니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한다.
“네.”
“너에게 무례하게 대할 때는, 적어도 그 사람과 그 가족들의 목을 한꺼번에 걸어야 한다.”
“네?”
태영의 말에 깜짝 놀라서 반문했지만, 그냥 웃어 주었다.
사실인데, 뭘.
“그렇다고 해도, 내가 옆에 없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밖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윤 집사에게 알려서 함께 움직이도록 해라.”
“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이 집 안에 금오위의 거처가 있는데, 그들은 순전히 너를 호위하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다.”
“네? 그것이 무슨…….”
그 말에 서윤은 놀라 잠시 멍하니 있었다.
금오위가 호위한다고 하니 놀라운 모양이지만, 금오위가 어떤 조직인지 모르잖아?
“서른 명이 주둔하면서 집을 지켜 주고 있고, 네가 외출 시에 윤 집사에게 외출을 알리면, 금오위의 관군이 너를 호위할 것이다. 그들에게도 네가 윗사람이니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 다만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 주면 된다.”
“네.”
대답은 하지만, 제법 놀란 모습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윤경 선생은 고려 학당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고, 개경에서 윤경 선생을 함부로 대할 사람은 없다. 윤경 선생과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더라도, 네가 윤경 선생보다 윗사람임을 잊지 말아라.”
“네…….”
대답은 해도 목소리가 작다.
그 느낌을 알건만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태영은 배낭에서 금자와 은자를 꺼내 일부만 따로 빼고 모두를 서윤에게 밀어 주었다.
일부를 따로 뺀 것은 서하에게 줄 것과 태영이 얼마간 움직일 때 사용하게 될 은자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부릴 때 돈이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인 21세기에 살던 태영은 가난한 대학생이었기에 늘 돈에 쪼들리며 살았지만, 여기서는 전혀 아니다.
그리고 사람을 부릴 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은 알고 있다.
“아, 아니옵니다. 지난번에 제비골에서 주신 것도 많은 돈으로 알고 있습니다.”
“받도록 해라. 다 이유가 있으니.”
“네.”
“오늘 아침에 너도 들었겠지만, 이 집의 하인들은 비록 노비의 신분이지만, 이 집에서 먹고 자는데 들어가는 것과는 별도로 모두 월봉을 지급한다. 지금 준 것으로 매월 말일에 월봉을 주도록 해라. 월봉 외에 추가로 지급할 일은 없지만, 중요한 일을 하거나 아주 일을 잘 했을 때에는 칭찬과 함께 약간의 돈을 더 줄 때도 있어야 한다.”
조금은 놀란 눈으로 태영을 쳐다본다.
“그리고, 호위를 하는 금오위는 나라에서 녹봉을 받고 있지만, 별도로 한 명당 한 달에 은자 반냥을 주도록 해라. 호위대장에게는 한 냥을 주고, 줄 때는 남의 손을 통하지 말고 반드시 직접 주어야 한다, 물론 일일이 나누어 줄 필요는 없다. 그들 대부분이 있는 곳에서 호위대장에게 주면서 반냥씩 나누어 주라고 하면, 모두 나누어 주고 남는 것이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디를 막론하고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돈을 주는 사람이 갑이다. 그러니 당연히 직접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대에는 특히 더 중요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산간벽지에 살아서 돈의 중요성도, 돈의 가치도 당연히 모를 것 같았다.
살면서 차츰차츰 배워 가겠지만, 기본적인 것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말을 꺼냈다.
“돈의 가치는 알아 두어라. 때에 따라 계절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은자 1냥이면 쌀 두 섬 반을 살 수 있고, 마포 여섯 필을 살 수 있다. 개경에서는 은병과 은자와 철전이 사용되고 있는데, 은병 한 개가 은자 열여섯 냥, 은자 한 냥이 철전 쉰 냥에 해당한다, 그리고 금자는 고려 땅에서 공식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지만, 비공식적으로 은자 쉰 냥과 교환되고 있다.”
송나라에서는 은 1냥이면 쌀 6석을 사는데, 개경에서 2섬 반이면 무지하게 비싼 편이다.
송나라에서 쌀을 사와 고려 땅에서 팔면, 떼부자가 될 것이지만 차이는 있다.
송나라에서 1석은 66킬로이니 은자 1냥에 396킬로지만, 고려에서 1석은 80킬로이니 은자 1냥이 200킬로에 해당한다.
그래도 거의 2배에 가까운 차이다.
또, 금자 1냥이 송나라에서 공식으로는 20냥, 실제로는 16냥인데, 개경에서는 50냥과 바꿔진다.
가치가 엄청나게 높은 편인데, 화폐로 정식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 탓에 정해 둔 것이 없어서 더 비싸게 거래되는 모양이다.
***
태영이 상동의 텅스텐 노천 광맥을 발견하고, 채굴을 하면 그것을 해안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길을 찾고, 해룡호가 닿기 쉬운 포구까지 확인하고 다시 개경에 도착했을 땐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오후였다.
사실은 어제 도착할 수 있었지만, 너무 빨리 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21세기에서 군대 생활을 하던 인제 지역으로 돌아서, 부대가 있던 곳까지 구경하며 일부러 하루를 지체했다.
그곳은 사람의 흔적이 없는 깊은 산중이었고, 당연히 길처럼 생긴 곳도 없었다.
“대장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학당에서 돌아온 서윤이 방에 들어서자 무릎을 꿇고 앉으며 태영에게 한 첫말이다.
자꾸 대장님, 대장님 하는 저것도 고쳐 줘야 하는데.
정하연처럼 단둘이 있을 땐 그냥 태영 씨라고 부르거나 그냥 당신이라고 해야 하는데, 뭔가 어색해서 말을 못 하겠다.
강원도에 가 있는 동안 그 생각도 계속했다.
정하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태영을 괴롭히고 있어서 그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저 아이를 보면 마음이 풀어져 버린다.
“응, 뭔데?”
“저는 여군이 될 수 없습니까?”
무릎을 꿇고 앉아 태영을 바라보는데, 눈이 충혈되어 있다.
“여군?”
질문의 내용으로 봐서, 사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대체, 김윤경은 얘에게 뭘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기에 여군 이야기를 할까?
“네.”
“왜 여군이 되고 싶으냐?”
“그곳에서 저를 구해 주신 것만으로도 평생 동안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 하는데, 불과 며칠간이지만 곁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여도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서두를 꺼낼까?
“그것과 여군이 되는 것은 상관이 없지 않느냐?”
서윤이 잠시 몸을 돌리더니, 문갑처럼 생긴 것 중에 한곳을 열고 물건 하나를 꺼냈다.
제비골을 떠날 때 옷 외에 싸던, 가죽 끈으로 묶여 있던 물건이 그 모습 그대로 태영의 앞에 놓였다.
“이것은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서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왜 부모님이 그 산골에 가서 살게 되었는지, 왜 한 번씩 아버지가 문경을 다녀오는지, 어떻게 어머니가 오빠와 동생과 제게 글을 가르칠 수 있었는지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울음을 참는 모습이 아니었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찾은 것 같은 표정.
“어머니가 남긴 기록이냐?”
“…….”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느낌이지만, 짐작되는 바가 있어서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바람에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삼베로 된 천에 가죽 끈으로 묶여서 제비골을 떠날 때는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하였는데, 한지로 묶은 서책 같았다.
현대로 치자면 빈 노트였을 것이고, 어머니가 거기에 무언가를 기록한 것이면, 일기라고 봐야 한다.
태영이 있을 때 저걸 꺼내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혼자 있을 때, 저 기록을 읽었을 것이고, 혼자 있었던 시간은 어젯밤이었다.
손을 올려 눈물을 닦는 모습이 애처롭다.
여자의 눈물, 그리고 들릴 듯 말듯한 울음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왜 이렇게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21세기 현대에서는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질질 짜는 연기를 하는 것 외에는 여자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는 울 여유조차도 사치로 느껴질 만큼 힘들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겠지만.
사포에 처음 도착해서 정하연이 흘리던 눈물, 그리고 율촌과 사포의 그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 와카마쓰에서 권소연이 흘린 눈물, 서신을 적어 보낸 월이가 흘린 눈물.
향촌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
그러고 보니, 이 시대에선 정말 많은 여인들의 눈물을 봐 왔다.
모두 하나같이 아픈 사연을 담은 눈물이지만, 서윤의 눈물은 또 다르다.
태영은 서윤에게 다가가 가만히 끌어당겨 가슴에 안다가 깜짝 놀랐다.
당겨서 품에 안기 전에는 몰랐었다. 이렇게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다는 것을.
태영은 서윤을 끌어안고 한참 동안을 그러고 있었다.
등을 토닥여 주고, 어깨를 쓰다듬어 주고,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감싸 주고, 그렇게 눈을 바라보고 눈물을 닦아 주었을 때, 몸의 떨림이 그치고 눈물도 그쳤다.
다음 이야기를 재촉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이 열리면 말할 테니.
“제비골은 부모 형제가 묻힌 곳입니다.”
“혹시, 복수하고 싶은 것이냐?”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군이 되려는 이유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 동생의 유해를 수습하고 싶습니다. 그리하려면 그곳의 사람들이 또 저에게 했던 것 정도의 위협은 막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딱히 틀린 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서윤은 그곳의 지리를 모르니 혼자서는 찾아가지 못할 것이다.
지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이 시대에서 그런 산골을 찾아간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니, 서윤이 가고자 하면 태영도 함께 가야 한다.
그렇다면 서윤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힘은 필요하다.
힘이 없어서 부모와 오빠, 그리고 동생을 잃었으니.
“사포에서 여군이 되는데 제한은 없다.”
“그러시면?”
“문제는 네가 사포에 가야 가능한 일인데, 나는 아직 너를 사포에 데려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아무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실장님은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저 말, 산골에서 산 아이로서는 너무나 영리한 말이어서 잠시 어허,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아무 욕심도 부리지 않겠다는 저 말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가 내포되어 있다.
태영도 그것은 안다.
아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하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고, 김윤경에게서도 충분히 들었을 것이니 욕심 부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리라.
“또한, 실장님이나 그 누구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겠습니다.”
태영이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말을 계속했다.
그 누구도?
참, 미치겠다.
그 누구도라는 말은 분명히 김윤경이 제 마음대로 지어 붙인 이야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김윤경, 이놈을 진짜.
불과 이틀 만에 애한테 무슨 소리를 얼마나 한 거야?
“일단, 지금 결정할 일은 아니다. 얼마 후에 내가 사포로 가면 가을에 다시 올 것이다. 너를 여기 두고 가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점을 이해해라. 그때까지 생각을 좀 해 보자.”
보름을 예정하고 왔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그리 빨리 다녀올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니, 앞으로 서윤과 열하루는 같이 있을 수 있었다.
“그 점,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대답은 그리하지만,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다.
아직 서윤을 데리고 갈 상황은 아니다.
적어도 정하연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사죄를 해야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답을 내지 못했다.
또 배로 오지 않았으니, 다시 업고 사포까지 달려가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부모 형제의 유해를 그곳에 두지 않고 수습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옮길 곳은 있느냐?”
유교가 들어오기 전의 시기인데, 유해를 수습한다는 것의 개념이 제대로 형성된 시기인가 하는 것이 조금 의아하긴 하다. 하긴 그것도, 저기에 기록되어 있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보내 드리려 합니다.”
“할아버지?”
“…….”
잠깐, 아차 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렇다면 저기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고개를 숙인다.
“거기에 적혀 있었느냐?”
“이름과 사는 곳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한테 말해 줄 수 있느냐?”
이건 강요할 문제가 아니어서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의 큰오라버니가 전중감의 종5품 승의 직책으로 있는 것을 윤경 선생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김윤경이 그리 알려 주었다면, 한글을 배우러 왔었다는 뜻이다.
전중감?
전중감이 뭐하는 데지?
“종실과 관련되는 일을 하고 있는 관청이라 합니다.”
서윤이 전중감을 마저 설명하는 것으로 봐서 태영이 거기가 뭐하는 곳이지 하는 의문이 눈에 보인 모양이다.
“그럼 할아버지는?”
“노령하시어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래? 내일 나와 함께 찾아가 보자.”
“아닙니다. 얼마간은 모르는 것으로 해 두고자 합니다. 제가 여군이 되고, 어머니의 유해를 수습한 뒤에 찾아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할아버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힘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아! 근데, 이건 뭐지?
할아버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힘이라.
오빠가 전중감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데, 왜 동생이 그런 산골에 가서 살게 된 거지?
그 두 가지가 살짝 얽히자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머니에게 글을 배웠다고 했다.
글을 배우는데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버지가 글을 몰랐다고 볼 수 있다.
제비골은, 개경 땅에 살던 사람으로서는 실수로라도 절대로 그곳으로 접어들지 않을 정도의 척박한 시골이다.
태영이야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다 보니,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중에 보게 된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본다면 가지 않을 길이다.
그런 작은 마을에서 글을 아는 어머니와 글을 모르는 아버지.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라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 시대의 글이란 것이 한자이고, 평민이나 노비 계층에서 배우기를 원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양반집 자녀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거기서 그런 모습으로 살 수가 있느냐 하는 것과 할아버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힘과의 상관관계.
“혹시, 이건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질문하는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네, 하문하십시오.”
“혹시 어머니와 아버지가 금지된 사랑을 한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