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37
137. 금지된 사랑(3)
“예뻐요?”
저녁 식사를 하고는 둘이 앉아 개경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중에, 서윤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정하연이 던진 질문이다.
“아니, 당신이 더 예뻐.”
“흥, 나보다 예쁘구나.”
태영의 대답에 곧바로 토라진 표정을 한다.
어찌, 서운하지 않으랴.
“아냐, 아니라니까.”
“진짜죠? 거짓말이기만 해 봐.”
품에 꼭 안고 다독여 주고 나서야 마음이 풀어졌다.
임신을 해서 그런가?
전에 하지 않던 말도 곧잘 한다.
“그놈들 모조리 죽여 버리지 그랬어요?”
서윤의 가족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눈에 눈물까지 보이다가 드디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래도 그래서야 안 되지 않아?”
“아니, 너무 많이 봐주신 거예요. 어떻게 온 동네 사람이 한 가족을 그렇게 죽음으로 몰아가요? 그 정도로는 벌이 너무 가벼웠어요.”
이건 태영과 같은 마음인가 보다.
태영도 서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은 죄에 비해 벌이 너무 가벼웠다 생각했으니.
“그래도, 아이 가진 사람은 그런 마음을 먹으면 안 돼. 엄마의 감정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진단 말이야.”
“아, 맞다. 강 의원도 그 말을 하던데.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거봐, 내 말 맞지?”
“네, 그리고 우리 내일 개경 갔다 와요. 마침 짐도 다 풀었으니.”
“개경엔 왜?”
“그 아이 데려와야죠.”
“그 아이?”
“서윤이 말이에요. 거기 둘 수 없잖아요? 대장님 곁에 나와 같이 있어야지, 왜 거기다 두고 와요? 못났어, 정말.”
하, 정하연이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런데, 무슨 마음일까?
현대 같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 이혼하자고 달려들고 당장 보따리 싸서 친정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니, 아니 위자료 듬뿍 준비하고 법정에서 만나자고 하고 나가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냥 인정해 버려?
이 시대가 숫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에 전장에서 남자들이 끝없이 죽어 가고 있고, 그로 인해서 남자가 많이 모자라기 때문인지, 그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시대이다.
아버지 말씀이 현대 사회에서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전사자가 생겨 전쟁 이후에 남녀 불균형이 심했기에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고 했다.
비록 그게 정상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상이라고 인정해 버리는 그런 시대라고 해도,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용서가 안 되는 일이다.
거꾸로, 여자가 두 남편이 있고, 한집에서 두 남편과 함께 산다고 생각해 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아니, 뭐 북방으로 가면 오히려 남자가 남아돌아서, 한 여인을 여러 남자가 공동의 아내로 삼아 살고 있는 나라가 있다고 하긴 하더구만.
정하연의 말이 극도로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인정해 버리고 함께 살자는 말인지 진짜 헷갈린다.
그리고 한집에 두 여자.
이건 결코 인정할 수도 없고, 용납되지도 않는 그림이다.
지난해 죽은 최충헌은 본처를 포함해서 4명의 부인을 한 집안에 두고 있었다.
최세헌도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을 별채에 두고 있었다. 두 번째는 나이가 조금 있지만, 세 번째 부인의 나이가 올해 스물이라 했던 것 같은데, 대체 나이 차이가 몇 살이야?
개경의 고위 무관들이나 조정의 내로라하는 인간들치고 두셋이 아닌 인간들이 없었지만, 태영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지는 진짜 몰랐다.
아, 고려 태조 왕건은 29명이라 했던가?
“왜 내가 화를 내고, 그냥 안 둔다고 할까 봐서요?”
윽, 속을 들킨 것 같다.
“…….”
“당신 알잖아요?”
“뭘 알아?”
이런 땐 계면쩍어서 이렇게 소심하게밖에 물을 수가 없다.
“난, 당신이 그날 나를 구해 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간혹 한 번씩 상상을 해 봐요. 잔디나 눈이나 가림이나, 우리 모두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면…….”
또 그 이야기다.
그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해도 꼭 이렇게 한 번씩 말을 한다.
“그 이야기, 이젠 하지 말자고 했잖아?”
“그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 그냥 들어 주기만 하세요.”
“그래, 알았어.”
“그날을 잊어버리면, 우린 왜구나 왜구들에 대한 것들도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아서, 끔찍한 기억이지만, 그날 그때 함께 끌려가던 우리들은 한 번씩 이야기를 해요. 사실 당신이 송나라에 가 있을 때, 그날 끌려가던 우리 모두와 와카마쓰에서 데려온 향촌의 사람들까지 모두 학당에서 모인 적이 있어요.”
“그래?”
“네, 지금 우리가 이리 행복하다고,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날을 잊어버리게 될까 봐, 매년 그날이 되면 모두 모여서 행사를 하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치욕의 날인데.
아, 거꾸로 생각하면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아이, 한서윤. 상대가 왜구가 아니었다고 나와는 상황이 다른가요?”
“…….”
“같은 마을의 사람들에게 당하면 더 힘들어요. 정말 갈 곳이 없거든요, 월이처럼.”
“…….”
월이처럼?
그래, 맞다.
월이와 그 일행들은 정말 갈 곳이 없었다.
왜구에게 어려움을 당한 경우와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경우는 정말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처참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처참해진다.
“그 아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당신이 구해 주었는데 당신이 떠나자 목을 매달았다면서요?”
그래, 그랬지.
“…….”
“그때, 나는 당신 옆에 계속 있었지만, 그 아이는 지금 혼자 있어요.”
태영은 차마 정하연을 바로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데려와야 해요. 부모 형제를 다 잃고 혼자 남겨졌는데, 당신이 떠나자 그 아이도 죽으려 했다면서 어떻게 거기에 혼자 두고 와요?”
이젠 태영을 나무라기까지 한다. 진짜로 나무라는 것은 아니겠지만.
“혼자 두면 안 돼요. 후쿠오카에 다시 가기 전에 데리고 와야 해요.”
이렇게 말이 빠른가 할 정도로 재빨리 말했다.
질투하고 화를 내야 정상인데, 저리 말하니 죄책감이 더 커진다.
“또, 목을 매면 어찌하려고?”
“…….”
또 목을 매?
에이, 설마.
“내가 우리 동네를 약탈한 왜구들에게 손이 묶여 끌려가면서, 당신이 구해 주기 전에 무슨 생각을 얼마나 한지 알아요? 나는 그 아이의 심정을 이해해요. 그러니 내일 당장 가요. 가서 데려와요. 그 아이와 함께 당신에게 나도 더 잘 할 테니.”
그것 때문이었나?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진다.
“그래, 그러자. 당신이 그렇게 강력하게 말하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같은 게 아니라 그래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개경에 가면 황후와 황태후가 우릴 따라나설 것 같단 말이지. 머물 곳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아, 맞다. 황후께서 사포에 오시고 싶다고 했다 그랬죠. 황후와 황태후쯤 되면, 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머물 곳이 있어야 하는구나.”
“그래.”
“그럼, 병사들 데려가지 말고, 당신 혼자 조용히 개경에 들어가서 그 아이만 데려와요. 그러면 되지. 그리고 황후가 서운해도 할 수 없어요, 언제 당신이 황제나 황후 눈치 보고 살았나요?”
눈치 안 보고 움직인 건 맞다.
그런데 진짜 정하연의 걱정대로 또 목을 맬까? 설마?
정하연이 저리 말하니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더 잘 알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리도 간사한 것인지, 정하연의 말을 듣고 보니, 왜 지금이라도 뛰어서 개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지?
***
“윤 반장, 이해했지?”
“대장님, 이런 집이 어디 있어요? 문턱도 없고, 문도 이상하고.”
윤점돌은 태영이 설명해 준 3층짜리 집 구조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물론 이 시대에서는 본 적이 없는, 21세기의 집 모양이다.
태영이 살던 원룸이 있던 동네의 주민 센터 부근에 있던 문화 센터 건물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 그린 것이지만, 태영의 기억에도 조형미가 멋진 건물이었다.
건물 면적이 족히 1천 평은 될 테지만, 많은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시야가 탁 트이는 데다 내부의 구조도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잘 지어진 곳이었다.
3층짜리지만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놓을 수가 없으니 거기의 공간은 비워 두었다.
“여기 있잖아?”
“하, 대체 생전 처음 보는 건물인 것도 그런데, 이걸 9월까지 완공하라구요? 반년도 안 남은 거 아시죠?”
“그래, 알아.”
노예들이 넘치니까 일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거기다가 바닥을 마루로 하지 않고, 이거 동관을 묻어서 바닥을 이렇게 하라고 하시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겠네.”
무슨 꿍꿍이는.
그게 현대식 온돌 난방 시스템이란다.
배관의 끝이 있는 그곳에 보일러실을 만들 거다.
“영빈관 지으려고 지반 공사까지 다 마친 곳, 거기 맞죠?”
“그래, 맞아.”
“거기 3천 평이나 되는데, 그 옆쪽으로 작은 건물들 몇 개 짓고, 나머지는 정원으로 꾸미면 되겠네. 그나저나 송나라에 가서 자선관 구경을 하지 않았으면 정원을 어찌 꾸밀지 상상도 못 했을 텐데, 그건, 아니 딱 그것만 도움이 되었네요.”
송나라에 가면 새로운 것이나 앞선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사포보다 잘난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윤점돌이 투덜거렸다.
“그리고 영빈관은 새로 터를 마련해야 하니까, 그 우측으로 들어가면 있는 빈터, 거기는 암반 지대여서 터가 아주 좋다며? 거기도 진행해 주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야죠, 뭐. 송나라에 가서 실컷 놀다 보니 근질근질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땀 좀 흘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에서 이해 안 되는 건 개경 다녀오시면 그때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대장님, 나가시면 됩니다. 출발 준비 끝났습니다.”
윤 반장과의 이야기가 끝나자 잔디가 불렀다.
“그래, 가자.”
***
“그래, 결국 사포와 율촌에 있는 모든 여인들을 다 불러서 아시나를 불러 보라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고?”
벽란도로 가는 해룡호 갑판 위에서 정하연이 아시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네.”
태영도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다.
“그래도, 아직 돌개몰과 달구곶 사람들을 불러 보지 못했는데, 그쪽 사람들도 마저 확인해 봐야죠.”
정말 스마트 워치 찾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나?
라일리가 스마트 워치가 있으면 접근 가능한 앱에 대한 부분을 짧게 언급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앱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단 말이지.
테르가 가지고 있는 앱들을 다 돌려본 것은 아니다. 앱을 실행시키면 아무 반응이 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실행되지 않는 앱은 무슨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는데, 그게 바로 스마트 워치가 있어야 동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앱들이 실행되지 않으면서 아무런 메시지나 알림음 같은 것도 없고, 무언가를 짐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들도 보여 주지 않았으니, 말 그대로 완전한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다.
“그건 알아서 해.”
“그리고 벽란도에 도착하면 우린 모두 해룡호에 그대로 있을 테니 당신만 조용하게 다녀와요.”
“그래, 그렇게 해.”
“그런데 화약 만드는 거, 도와드리지 못해서 어떡해요?”
“괜찮아. 나 혼자 해도 돼.”
정하연의 임신 사실을 알고 절대로 화약 조제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화약 제조와 관련된 것은 정하연 외에는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고 있었다.
전기에 대한 부분도, 철선에 대한 부분도 시대를 너무 앞서는 기술이긴 하지만, 화약은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무기와 관련된 것이기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두고, 오직 태영과 정하연만 드나드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 놓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은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조차 모른다.
정하연을 대신해 정규하를 가르쳐서 조수로 삼거나 한서윤을 가르쳐 봐야지.
“다 왔나 봐요.”
해룡호가 벽란도로 들어섰다.
썰물 때라서 잔교에 배를 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 차라리 이쯤에 닻을 내리고, 전마선 타고 혼자 갔다 오는 게 나아. 몇 시간 걸리지 않을 거야.”
“네, 다녀오세요.”
***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태영은 개경의 성곽을 따라 이동하다가 감문위의 경비병이 보이지 않는 곳을 택해 성을 넘어갔다.
당당하게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지만, 자신이 왔다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조용히 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대장님, 오셨습니까?”
대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집 담을 넘어서 윤 집사의 거처에 가자, 서책을 펴 놓고 읽고 있던 윤 집사가 놀란 눈으로 태영을 바라보았다.
“놀라긴.”
“오셨다는 연통도 없었는데 불쑥 나타나셨으니.”
“최 별장에게 전할 서찰을 써 줄 테니 내일 날이 밝거든 누굴 시켜서 최 별장에게 전하도록 하게.”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응, 마님을 모시러 왔네.”
“아, 그럼 가시다가 다시 오신 것입니까?”
“그래.”
사포까지 도보로 이동하면 가는 데만 열흘 넘게 걸리는 길이라, 이미 그렇게 변명거리를 생각해 두었었다.
사실, 개경을 떠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고, 해룡호로 오는데 하루 반나절이 걸린 셈이다.
“서찰을 준비하시는 동안 아씨 마님께 연락해 두겠습니다.”
“아냐. 내가 들어갈 테니 연락하지 말고, 나와 마님이 없는 동안 월말이 되면 정규하가 와서 자네들의 녹봉과 생활비를 지급할 것일세.”
“네, 그리 알겠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정규하에게 들러서 돈을 맡기고, 없는 동안 한 달에 한번 들러서 녹봉과 생활비를 지급하라고 시켜 두었다.
서찰을 써서 봉투에 넣고 윤 집사에게 넘겨준 뒤, 안채로 들어섰다.
촛불이 창호지를 밝히고 있는 방에 서윤의 그림자가 비쳤다.
“누구냐?”
태영이 바깥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 문을 통해 약간 떨리는 듯한 서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불과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저 목소리가 저리도 반갑다니.
그런데 목소리가 떨려?
“나다.”
“대장님?”
반가움이 왈칵 묻어나는 목소리와 함께 안쪽 문이 열렸다.
태영이 두 팔을 벌리자 100미터 경주를 하듯 달려 나온다.
“다친다, 조심.”
태영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영이 팔을 벌린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이 아이는 이렇다.
“하아.”
품에 안기며 두 팔로 힘껏 당겨 입 밖으로 소리가 나게 숨을 내쉰다. 그리고 태영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키로 인해 가슴이 아닌 목에 얼굴이 닿았지만.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들고 태영을 쳐다본다.
이런 사소한 행동으로도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떨림을 주면서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침으로 묘하지.
“잘 있었느냐?”
“네, 잘 있었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없어 겁이 나기라도 했느냐?”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질문에 대답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긍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제야 이불이 깔린 자리를 보니 그 앞에 작은 탁자가 있고, 그 위에 한글 책이 놓여 있었다.
“고려 땅에서는 감히 너를 건드리거나 위협할 사람이 없다고 말해 주었는데, 그래도 겁이 나던 모양이구나.”
태영은 서윤을 떼어 내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 부드럽게 느껴지는 감촉과 촉촉하고 감미로운 느낌에 이어 품으로 안겨 드는 가슴이 따뜻했다.
“대장님에게 기대어 제가 겁쟁이가 되어 버린 모양입니다.”
다시 얼굴을 보게 되자 편안해 보이는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어렸다.
하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났으니 마음을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보름 정도 함께 있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 모양이다.
“이제 걱정하지 마라. 내가 곁에 있으니.”
“그런데…….”
“왜?”
“사포에 가신다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가신 것입니까?”
“아니다. 갔다가 다시 오는 길이다.”
“아.”
“정 실장이 너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야단을 쳐서 널 데리러 왔다.”
“대장님을 야단치시는 분도 계신가 봅니다.”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말한다.
“그래, 이 세상에서 날 야단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 이제 네가 있어서 유일하지 않지만.”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대장님에게 야단을 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자, 이제 사포에 갈 준비를 하자.”
“정말, 실장님이 저를 데려오라 하신 것입니까?”
“그래, 함께 와서 벽란도 공해상에 배를 대 놓고 널 데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말을 잃고 태영을 쳐다보는 눈에 눈물이 어렸다.
아니, 그렇게 강단 있어 보이던 애가 울보가 되었나? 아니면 모든 게 너무 달라져서 시시때때로 감동을 하는 것인가?
“실장님을 친언니로 생각하고 잘 모시겠습니다.”
“그래, 둘이 잘 지내. 다투지 말고.”
“네, 서방님.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행동은 어찌할지 모르지만, 지금 말로 하는 것을 봐서 생각은 똑바른 것 같다.
불과 보름 남짓 겪어 봤지만, 이 아이는 말과 행동이 달라진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을 저리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쩌면 정하연이나 이 아이나 모두 죽음을 목전에 둔,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다가 살아난 상황에서 이렇게 변화되었기에 저런 생각을 가지는 것 아닐까 싶다.
“혹시 준비는 어찌하면 되는지요?”
“별거 없다. 평소 학당에 갈 때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머지는 그냥 그대로 두고 가면 된다. 아, 어머니의 유품은 가지고 가도록 하고.”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은자도 그냥 두고 가면 됩니까?”
“하인들 녹봉을 줄 사람은 따로 있으니 은자는 걱정하지 말고, 사포에 가면 은자는 창고에 가득 쌓여 있으니, 여기 있는 것을 무겁게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된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잠깐 놀라는 듯하더니 미소를 띠고는 바로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