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4
014. 사포의 새 관리(2)
참형이란 칼로 목을 잘라 죽이는 형이다.
망나니의 춤을 드라마에서 본 적이 많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신도익은 둘을 묶어서 관아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바닷가의 자갈밭으로 데리고 갔다. 30분쯤은 걸어간 거리이니 제법 길이 멀었고,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 중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뒤따랐다.
자갈밭으로 이동하는 중에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도 그 누구 하나 동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지기도 했다.
악한이었던 모양이다.
자갈밭이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에 서서 형을 집행하는 과정을 바라보았는데, 목을 자르고 난 뒤에 시신을 치우지 않고 태영에게 와서 끝났다고 보고를 한다.
참형을 하면, 목을 꼬챙이에 꽂아 걸어 둔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았는데, 그게 맞는 모양이었다.
좀 끔찍했지만, 시대가 다르니 그러려니 해야 할 것 같다.
***
관아는 넓은 마당 중앙에 동헌이 있고, 그 왼쪽으로 높은 지붕을 가진 건물 다섯 채가 보인다.
그 오른쪽에는 조금 작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태영은 동헌으로 들어가 책상과 의자가 나열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몇 가지 서류들도 책꽂이에 꽂혀 있고, 벼루와 붓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봐서 호장이 일을 보는 집무실인 듯하다.
이곳에서 뭐라 불렸던 상관없이 그냥 집무실이라고 현대식으로 바로 바꿔 부르면 될 것 같다.
집무실에 앉아 장부를 모두 가져오라고 하고, 그것들을 대충 훑어보면서 신도익에게 물으니 사포 땅의 대부분이 박한, 박균 형제의 땅이란다.
아주 일부만 자신들의 농토를 가진 양반과 양민이 있고, 대부분은 박한의 땅을 소작하는 소작농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문서들은 모두가 한자로 기록되어 있으니,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공부한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태영 또래는 대부분 이렇게 한자를 기록해 둔 책자를 보면 아무도 읽지 못한다. 그래도 간자가 많이 쓰이는 현대의 한자와는 차이가 있어 알아먹지 못하는 한자가 정말 많기는 해도 읽을 만은 했다.
“양민의 수는 몇인가?”
“그게, 삼사백 정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지 않사옵니다.”
정?
그게 뭐지?
“군역을 가 있는 사람은 몇인가?”
태영은 생각난 것이 있어서 물었다.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군역이 가능한 15세부터 59세 사이의 남자를 정이라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60이 넘은 사람은 뺀 숫자일 것이다.
군역이 가능한 15세부터 성인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인데, 결국은 이것이 중세 시대의 노동력 착취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배웠다.
현대 사회와는 달리, 어차피 양반을 제외하고는 글공부를 시키지 않으니, 힘쓰는 일 외에는 딱히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재능에 따라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농사를 짓는 일이 주된 일이고, 군역이나 부역에 가도 공사 현장에 끌려가서 성벽을 쌓거나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내놓거나 하는 것뿐이다.
아무튼, 삼사백 정이면 성인 남자의 수가 3백에서 4백 명쯤 된다는 말이니 대충 때려잡아서 사포의 인구는 1천 명 전후가 아닐까 싶다.
고려 시대의 마을 규모가 어찌 되는지 모르니 와닿는 것이 별로 없다.
“그게, 그것도.”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 군역을 가 있는 사람이 몇인지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말이다. 정리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
박한의 죄를 물어 참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만들었고, 재산을 다 몰수하였는데 이 재산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는 데는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제 오늘 사이에 트럭에 앉아서 생각했던 일들을 하는데, 지금의 상황이 도움이 되면 되었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박한이 하는 꼴을 봐서는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사람들도 많겠지만, 일단 그것을 돌려주는 문제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불과 며칠밖에 안 되었지만, 태영이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곳의 돈은 쌀과 마포일 텐데, 땅을 돌려주는 문제는 그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다.
“당분간 박한이 맡고 있던 사포의 호장을 내가 대신할 것이다. 알겠느냐?”
“네, 나리.”
신도익이 제법 멋진 포즈로 인사를 했다.
“지금 소작료로 얼마를 걷고 있는가?”
“수확의 7할이옵니다.”
이런 쳐 죽일 놈이 있나.
농사지은 것의 70%를 빼앗아 가면 대체 뭘 먹고사나?
구한말에는 80퍼센트였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터무니없는 소작료이고, 소작료를 내고도 조세를 내야 하는지 소작료만 내면 끝인지 몰라도 그 정도이면 완전 도둑놈이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부역도 해야 하고, 병역의 의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도 너무한 처사다.
조세를 걷으러 오는 놈들은 어떤 놈들인지 모르지만, 호장이 걷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도적놈이 있나.
소작료를 내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얼마나 내릴지는 좀 더 조사를 해 본 뒤에 정할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소작을 하는 사람들의 땅이 많고 적은가?”
장부를 보면서 물었다.
“아, 소작료 외에 다른 농작물을 많이 바치는 사람들에게 소작을 더 주었고, 말을 안 듣는 사람에게는 소작을 주지 않았습니다.”
“신 부호장은 내일부터 호구 조사를 실시하라. 그것으로 소작하는 농토를 재분배할 것이니 호구 조사와 함께 농지별로 평균적인 수확물의 양도 모두 다시 정리하라.”
“네, 나리.”
“공명정대해야 할 것이야.”
“네, 나리.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신도익은 표정과 말투에서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호장은 행정관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아니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아니었고, 국사 선생님이 설명만 하고 지나갔던 것 같은데, 고려 초에 지방 호족이 그대로 호장으로 임명되었고, 대대로 세습된다고 했던 것도 같다.
그 기억이 맞는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 기억대로라면 사병을 많이 거느린 것이 이해가 되긴 한다. 그리고 옥사가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신 부호장, 옥으로 안내하라.”
“네, 나리.”
감옥이 이렇게 커?
박한 이놈 봐라.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가두려고 옥사를 이렇게 크게 지은 걸까?
감옥이 땅을 파서 만든 듯, 제법 깊이 들어가자 환기가 잘 안 되는지 음습하고 답답한 데다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옥사가 정말 단단하게 지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박한은 참형을 당하고, 태영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던 박균을 포함하여 네 명이 총을 맞고 죽었으니 옥에 갇힌 사병은 스물아홉이다.
그 사병들과 박한, 박균의 가족들이 네 칸에 나누어져 있는데, 다른 칸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저들은 왜 갇혀 있는가?”
“네, 소작료를 제때 내지 않았거나, 여러 가지 죄를 지은 사람들이옵니다.”
왜구가 관아에 들이닥쳐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도, 이들이 살아 있다고?
재수가 좋은 건가?
태영은 사병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분노하고 있거나, 포기하고 있거나, 잠을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모두들 들어라. 호장의 가병으로서 호장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왜구들로부터 양민을 보호하지 않고 도망을 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희들의 죄의 경중에 대한 것은 수일 내로 가리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모두 다 근신하도록.”
그렇게만 말을 하고 돌아서 나왔다.
관아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사병들이 관아에서 기거했는지, 아니면 밖에서도 기거했는지는 모르지만 율촌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넓고 컸다.
“신 부호장.”
“네, 나리.”
“박한 일족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흘간 굶겨라, 물은 하루에 한번만 주도록 하고 한 번에 두 모금 이상 먹이지 않도록.”
“네, 나리.”
“그리고 간수들에게 박한의 식솔들과 옥사에 갇힌 가병들 사이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잘 들어 두도록 시키고.”
“알겠사옵니다. 또 다른 시키실 일은 없는지요.”
“차후에 별도로 시킬 것이다. 김처인은 나와 함께 율촌에 다녀와야겠다, 앞장서거라.”
태영은 김처인을 시종 삼아 율촌으로 갔다.
박한의 가솔들을 사흘간 굶기라고 한 것은, 그동안 살아온 바탕이 있으니 쉽게 꺾이지 않겠지만, 사흘 정도 굶기면 그동안 갑질을 하던 위세가 조금은 꺾일 것이다.
세상 누구를 막론하고 배고픔에는 장사가 없다.
배고픔으로 인해 기가 꺾이고 뻣뻣함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처리할 계획이다.
***
“그래, 사포의 호장 대신 사포를 다스리겠다구요?”
율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본의 아니게 호장 정인구와 함께 저녁을 하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늘 사포에서의 일을 이야기해 주었고 결정을 말해 주었더니 물어온 말이다.
“네, 그리하려 합니다.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머물러야 하는데, 사포 호장을 참하였으니 누군가가 그곳을 책임져야 할 터이고, 그래서 그것이 맞다 생각됩니다.”
“…….”
“혹시 상급 관청에서 자주 조사관을 파견하는지가 궁금합니다.”
태영은 오면서 줄곧 생각했던 부분을 물었다.
고려 시대는 전쟁이 워낙 많았던 탓에 고려사의 기록이 대부분 소실되어 정확한 역사적 진실을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국사 선생님이 했었지만, 설사 소실되지 않았더라도 얼마나 자주 상급 기관에서 조사관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지는 쓰여 있지 않았을 것이기도 하다.
“현에서 말입니까?”
현? 그렇군. 현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이지?
“네.”
“거란의 유민들이 양계를 휩쓸고 내려오며 노략질을 하기 전에는 자주 왔었지만, 북방 지역이 전쟁에 휘말리면서부터는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조세를 제때에 바치고, 공물을 보내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장계를 올리라고 연락이 올 수도 있습니다.”
말은 공물이지만 뇌물이겠지?
여기서 태영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번 왜구 침략과 이들을 물리친 건에 대해 장계를 올릴 것 아닙니까?”
“글쎄요.”
글쎄요, 라니?
외적이 침입을 해 왔고, 사람이 무척이나 많이 죽었는데, 상급 기관에 보고를 하지도 않는다는 거야?
이어지는 정인구의 이야기는, 장계를 쓰는 것이 원칙인데 그래 봐야 별로 관심도 없고 피해 복구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단다.
인근 현령에게 장계를 보내면, 오히려 장계를 보내는 것을 기회로 잘했니, 못 했니 헛소리만 하는 편이라 그냥 묻어 버린단다.
이런 유의 큰 피해를 입으면 당연히 보고해야 하고, 조정에서는 지원을 해 줘야 하는데, 지원도 해 주지 않다니.
무인들이 모여서 권력 싸움이나 하고 있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보고까지 안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인구의 말을 종합해 보면, 역사에서 배운 것을 기준으로 여기는 속현이었다.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같은 것을 거의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가 있어도 황실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 싸움이 위주여서 이런 시골의 상황과는 동떨어져 있으니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다.
장계를 올리면 태영의 역할이 모두 드러날 테고 무기도 드러날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된 거지.
“음,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호장이 가병을 거느리는데 제약은 없습니까?”
속으로 제일 궁금한 것들 중의 하나였다.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만, 박 호장은 자신이 가진 부를 이용하여 많은 가병을 거느리고 계속적으로 늘려 가고 있었습니다.”
하긴 이 시대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힘센 놈이 최고니까.
그게 지구가 아닌 것 같다는 것, 묘하게 무언가가 다른 것 같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지만.
여기가 지구가 아니면 대체 어딜까?
아니, 지구가 아닌 것이 아니라, 태영이 생각하는 대로 평행 세계가 맞는다면, 제2의 지구이거나 제3의 지구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사포에 계시더라도 율촌의 집과 전답을 드린 것은 그대로 나리의 소유이니 아랫것들을 보내 농사를 지으시지요.”
정인구의 말에 태영이 별 대꾸가 없자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러겠습니다.”
태영은 거절하려다가, 어제 생각한 것도 있고 해서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 딸 하연이가 혹시 나리의 댁에 가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의 이야기를 끝낸 말미에 정인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 아까 낮에 보았습니다. 그런데, 구명 지은을 갚기 위해 하인이 되겠다 하였는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따님을 잘 달래서 마음을 돌리게 하시지요.”
“그것이 고집이 워낙 세서 이 애비 말도 듣지 않고, 애비가 말렸더니 서찰 한 장만 남겨 두고 가 버렸지 뭡니까?”
“그래요?”
“네, 나리. 서찰에는 은혜를 갚지 않고 산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며 금수보다 못한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하, 요거 골치 아프네.
딸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 딸의 고집도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고, 달래서 돌려보내겠습니다.”
“네, 나리.”
태영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정인구 같은 사람을 동지로 만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정인구가 동조할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
“별아.”
눈을 뜨고는 별이를 불렀다.
문이 삐걱 열리더니 별이를 뒤따라 정하연이 함께 들어선다.
“낭자는 집에 안 갔소?”
이 좋은 호칭이 왜 이제야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낭자라는 표현이 맞나 모르겠지만.
이름을 부르는 것 말고는 옛날에 신분이 높은 양반집의 미혼 여자를 부르는 호칭이 생각나는 것이 그뿐이라 그렇게 불렀다.
그렇다고 집 안의 하인들이 부르듯 아씨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네, 나리. 소녀는 이제 나리의 하인으로 여겨 주십시오.”
“거참, 대책 안 서는 따…… 사람이로세.”
중얼거림이었지만 대책 안 서는 딸내미라고 할 뻔했다.
워낙 어려 보이니 당연히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안 드는데, 대체 저 조그만 머리통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을까?
“세숫물 좀 준비하거라.”
별이에게 시켰지만 정하연이 먼저 움직였고, 별이는 정하연이 못 하도록 말리는 것으로 보였다.
작은 목소리로 ‘아씨, 제발 좀’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것 같다.
태영은 속옷 바람으로 이불에서 나왔다. 사각의 트렁크 팬티, 국방색의 반팔 내의 차림이었다.
삼베로 된 이불이지만, 제법 따뜻한 것이 이불 속에 무언가를 넣은 것 같았다.
솜은 없었을 텐데, 대체 무엇을 넣었기에 따뜻할까?
“헛.”
둘은 깜짝 놀라서 짧은 비명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이틀밖에 자지 않았고, 이 차림으로 나온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 놀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이불 속에서 옷을 챙겨 입고 나올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양치하고 세수할 때 옷 다 챙겨 입고 하는 사람도 있나?
하긴 이불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별이를 불렀으니, 그렇긴 하다.
대충 몸을 일으켜서는 군복 바지를 다리에 끼우고 가방 안에서 칫솔과 치약, 그리고 면도기와 비누, 작은 손거울과 수건 한 장을 꺼냈다.
군바리들이 늘 하듯이 수건을 어깨에 척 걸치고는 치약을 조금 짜서 칫솔을 입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맨발로 군화에 발을 넣었다.
슬리퍼가 있어야겠어. 그나저나 슬리퍼가 우리말로 뭐지? 생각이 안 나네.
치카치카치카~
양치질을 하는 모습을 정하연도 별이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이 함지박만 해져 쳐다보았다.
“나, 나리.”
“으?”
치약 거품이 입안에 가득하여 별이의 부름에 대충 대답하며 쳐다보았다.
그때도 정하연의 놀란 표정은 그대로였는데, 태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리, 어디가 아프신가요? 의원을 모시고 올까요?”
태영은 이제는 알게 된 배수구에 치약 거품을 뱉어 냈다.
“왜?”
“네?”
“왜 의원을 부르겠다고 했느냐?”
“저, 그게 입에 거품을 물고 계셔서, 아프신 거 아닌가 해서요.”
“하하하. 아니다. 아파서 그런 것 아니니 염려 말거라.”
물바가지를 들어 독 안에서 물을 퍼서는 입안을 헹궈 냈다.
입안이 상쾌하다. 얘들이야 놀랐건 말건 대체 이게 며칠만의 양치질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