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48
148. 전기가 들어오는 세상(3)
“전설의 명곡.”
이건 태영이 기억하는 정말 오래된, 그리고 태영이 이 시대로 날아오기 전에도 매 주말에 방송되고 있던 프로다.
군인들은 군통령이라 불리는 아이돌 가수들이 나오는 프로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프로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대개, 채널 선택권은 고참들이 가지고 있기에 태영도 종종 보던 프로이다.
“아시나, 이거 플레이할 수 있어?”
태영은 서윤에게 시키지 않고 바로 아시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이런 정도의 간단한 주문은 서윤이 아시나와 이야기 중일 때는 태영이 요청해도 들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상급의 인공 지능 앱에게 이런 것이나 시키고 있다니, 태영이 생각해 봐도 한심스럽지만, 네트웍이 없는 이상 시킬 수 있는 일 자체에 한계가 있다.
“그래, 태영. 여기 복사된 것 중에 복사가 완료된 것 하나를 플레이할게.”
정하연도, 한서윤도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 눈을 멀뚱멀뚱 뜨고 서로를 쳐다보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차아아아앙~
테르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열리면서, 프로의 제목이 나타나고 곧이어 오프닝 음악이 흐르더니 박수와 함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MC가 나와 오늘 나올 전설을 소개했다.
섹시 디바, 엄성화 편.
당연히 태영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가수이니 전설의 명곡이라 할 만하다.
이 파일에는 2013년 1월 5일이라는 날짜가 붙어 있으니, 대체 몇 년 전인 거야?
아니, 아니지. 지금이 1220년이니까 대체 몇 년 미래의 일인거야?
그래도 저걸 여기서 볼 수 있다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와아~ 이게 무슨 소리야?”
태영이 감동 먹은 표정으로 앉아 있거나 말거나, 노래를 부를 초대 가수들이 한 명 한 명 소개되면서 웅장한 음악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처음 보는 정하연은 소리를 질렀고, 한서윤은 입을 벌리고 동그랗게 눈을 뜬 채 태영과 테르의 영상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21세기의 음악이 코드가 맞으려나?
태영은 말없이 그 영상을 지켜보았다.
태영이 말이 없기 때문이었는지 정하연과 한서윤도 태영의 옆에서 말없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MC가 사이사이에 계속 영어를 섞어서 쓰고 있었기에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텐데, 태영에게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생활 속에 영어가 정말 많이 들어와 있었던 것 같다.
현대의 사람들이야 일상이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무슨 외계인의 말일 것이다.
영어도 그렇지만, 음악 자체가 두 사람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것이어서 어쩌면 재미가 전혀 없었을 수도 있는데, 태영이 워낙 넋을 놓고 보고 있어서 두 사람도 말없이 봐 준 것인지 모르겠다.
1시간 35분이나 이어진 전설의 명곡.
다음 주를 예고한 후, 한 여가수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여가수의 이름이 자막으로 보였을 뿐, 태영이 기억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태영 씨.”
“서방님.”
두 여인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많이 놀란 표정이 어려 있었다.
“음, 미안. 내가 너무 빠져 있었네.”
“……돌아가고…….”
정하연이 말을 하다 말았지만, 혹시 돌아가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의 말이 끊어진 것이다.
너무나 거기에 깊이 빠져 있었으니 그렇게 느껴진 모양이다.
서윤의 눈은 정하연과 태영에게로 왔다 갔다 한다.
“아니, 아니야.”
“…….”
태영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정하연의 표정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아니야, 하연아. 다만, 아련한 추억 속에 있던 것들이었는데, 이것을 보니까 기억이 선명해져서 그런 거야.”
“…….”
“지금 내 곁에 이렇게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두 아내가 있는데.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야. 누구나 추억이 있잖아? 그냥 잠시 추억에 잠겼을 뿐이야.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정하연이 태영에게 다가와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당신이 돌아가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도록 우리가 더 잘할게요.”
그러면서 서윤을 돌아보았고, 무슨 의미인지를 느낀 서윤도 다가와서 태영의 품 안으로 비비고 들어왔다.
그래,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이 시대에 적응을 하고, 사실상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살고 있다.
원래 살던, 그 시대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시대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두 여인과 함께 부부로 살고 있다.
모든 것은 태영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항변하거나 토 달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살던 세상에 대한 메리트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한 번씩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
모지하타에서 구해 온 32명의 여인들 중에 고향으로 돌아갈 16명이 저마다 보따리 하나씩을 들고 본부 앞 광장에 모여 서 있다.
그녀들은 서로 잘 있으라, 잘 가라며 인사를 나누고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을 서로 닦아 주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
그 무리들 한쪽에 서서 떠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서 있는 아이가 모지하타의 그 어린놈에게 배 안에서 강간당한 채 선실 안에서 발가벗고 울고 있던, 가장 먼저 구하게 되었던 아이다.
열세 살, 고향이 영선 안새미골이라고 했었다.
“소이야, 너는 안 간다고?”
“네, 대장님. 소인은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
“부모님은 보고 싶지 않느냐?”
“부모님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보다 여군이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여기 있어야 하잖아요?”
“여군?”
“네.”
태영이 보고는 받았지만, 이 여인들의 상담은 모두 비서실 여군들이 진행했다. 왜 여군이 되고 싶어 하는지 말 안 해도 안다.
그사이에 사포의 대부분을 구경시켰고, 한글도 가르쳤다.
저들이 들고 있는 보자기 속에는 아마도 한글 교본 한 권씩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럼 나중에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지 비서실에 가서 말하도록 해라.”
“훈련소 관리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벌써 말씀드렸어요.”
“훈련소 관리원?”
“네, 여군이 되고 싶다니까 나이가 어려서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여군은 아니라도 그쪽에서 일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훈련소 관리원으로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요.”
남자의 입대는 15세, 여군의 연령 제한은 16세로 이 시대의 성인 기준을 적용했다.
다만, 신체검사를 통해서 기준 이상으로 합격하면 14세부터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주긴 했다.
사포와 율촌에서 군인은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왜구들에게 부모 형제를 잃은 사람들, 왜구들에게 잡혀간 상태에서 구해 온 사람들은 더욱더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와카마쓰에서 구해 왔다가 다시 향촌에서 구해 온 열네 살짜리 세잎이도 그랬다.
이름이 세잎이라서 조금은 웃음을 주었던 그 아이는 나이도 어리지만 너무나 작고 여린 몸을 가진 아이다.
다시 사포로 데려온 후, 여군으로 받아 주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 버리고 말겠다며 칼을 목에 대고 본부 앞마당에 꿇어앉아 펑펑 울며 떼를 썼었다.
나이가 찰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지만, 자신은 기다릴 수가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
부모 형제를 다 잃고, 와카마쓰에 잡혀가서 그 모진 고초를 겪고 돌아온 고향에서마저 버림받은 몸이 되었는데, 그 모두가 왜적들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그 전 같으면 포기하고 살든지,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있다.
이젠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합니까?
왜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대로라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면서 처절하게 울었다.
결국 칼끝이 세잎이의 목을 제법 밀고 들어가 가슴으로 피가 낭자하게 흐르자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했던 정하연이 항복하고 받아들였다.
“왜 여군이 되고 싶어?”
“여군 언니들이 멋져 보이긴 했지만, 그보다 왜구 정벌에 여군들도 참전한다고 하더라구요. 여군 언니들이 아무도 왜구를 겁내지 않고.”
“그래, 여군도 참전하지.”
“소인도 어서 커서 왜구들을 다 때려잡고 싶어요. 그러려면 군인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 원수 놈들, 그냥 콱.”
제 딴에는 눈에서 불꽃이 튈 것처럼 했지만,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다.
아마도 소이 역시 여군이 되면, 틀림없이 악바리가 될 것이다.
왜구들에게 잡혀가는 사람은 모두 여인이고, 왜구들의 칼에 죽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다.
자신의 아내나 딸을 지키려 왜구와 맞서는 사람은 남자이기에 그렇다.
왜구들에게 잡혀갔다가 돌아온, 왜구들에게 부모 형제가 죽는 것을 지켜 본 여군들은, 왜구들과의 싸움에 임하기만 하면 아무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악바리가 된다.
태영도 특별이 위험해지지 않는 이상은 그것을 말리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슴에 찬 응어리가 풀리기만 하면 되니까.
다만, 그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같은 것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그것을 조심하고 있고, 원정을 다녀오면 반드시 강 의원과 교장으로 있는 박신아에게 심리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강성호는 원래 한의사라서, 심리 치료 같은 정신 질환과 관련된 것은 경험이 많지 않지만, 심리 치료의 중요성을 알고 노력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태영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의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장모 박신아가 그런 부분에서 크게 도움이 된다.
“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광장에 모여 선 여인들을 대표해 이미설이 인사를 했다.
“그래, 잘 가거라. 그리고 고향에 가거든 열심히 살고.”
“네, 실장님. 부 실장님도 정말 고마웠습니다. 저희들, 이제 가 보겠습니다.”
이미설은 정하연과 한서윤에게도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했다.
“그래, 미설아. 선착장까지 따라갈 테니까 가자. 그리고 1중대장 오 대위님과 1중대원들이 영선까지 데려다줄 거니까 가는 길은 걱정 말고.”
삐이이익~
“전체, 이쪽으로 주목!”
1중대 본부 소대장 손동기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저들이 돌개몰에 파견 나가 있다가 복귀해서 받은 첫 임무이다.
“전체 열중 쉬어, 차렷!”
이어서 오종필이 구령을 붙였다.
“1중대, 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오종필의 경례를 받았다.
“1중대장 오종필 외 36명은 왜국의 모지하타에 억류되었던 영선 지방 여인 16명을 고향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는 임무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충성! 잘 다녀와.”
“네, 알겠습니다. 전달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래, 한마디만 하지.”
“네.”
오종필이 옆으로 한걸음 비켜섰다.
“자, 여러분, 잘 가고. 우리의 병사들이 여러분들 데려다주고, 언제 불시에 영선으로 확인 나갈지 모른다. 고향 가서 살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행여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 일에 관계된 사람들은 그날 모두 살아남지 못한다. 무슨 뜻인지 알지?”
네, 대장님~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자, 잘 가고, 중대장 출발해.”
“전체, 뒤로 돌아. 이제부터 영선 지방 여인 16명을 인솔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내도록 한다. 전체, 호위 대형을 유지하고, 앞으로 갓!”
태영의 말이 끝나자 손동기의 구령과 고함이 이어졌다.
영선 지방 여인들을 가운데 두고 1중대원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서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광장에서 긴 시간 동안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들이지만, 병사들의 걸음걸이 사이사이로 손을 내어 사포에서 환송 나온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잘 있으라며 인사를 하고, 사포의 사람들은 거기 가서 불편하면 사포로 다시 돌아오라면서 손을 붙잡고 따라간다.
선착장에 도착해서도 해룡호에 탑승하기까지 잘 가라, 잘 있어라 인사가 길다.
특히 영선에서 살다가 같이 억류된 여인들 중에 사포에 남게 된 14명의 인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부우우우웅~
마침내 해룡호에서 긴 뱃고동이 울리며 사포를 떠났다.
“아무 문제없겠지?”
“없어야죠.”
선착장에서 돌아서며 중얼거린 태영의 말에 정하연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향촌의 일이 있어서 괜한 걱정인 줄 알면서도 걱정이 된다.
“대장님, 저들이 돌아오면 교주도에 가신다고 하셨죠?”
김웅겸이 물었다.
“응, 그래야지. 거기에 중석이 다량으로 묻힌 곳이 있어. 그걸 캐 와야 해.”
“왜구 노예들로 오백 명을 선별해 두었습니다. 일단, 4중대와 이번에 새롭게 편성된 중대 중에 6중대가 함께 갈 것입니다.”
군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니까 작전을 수행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겠지만, 어차피 총의 숫자를 넘어갈 수가 없으니 총을 더 만들기 위해서도 중석은 필요하고, 금속 가공과 연마 쪽으로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응, 온정 공업 단지에서 철장들하고 견습생들 포함해서 마흔 정도가 함께 갈 거니까 거기에 맞추고, 보건부에 협조 받아서 의원들도 지원받아. 거기가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제법 위험한 지역이야.”
태영이 가 본 상동 광산 지대는 사실상 개경에서 가기보다 사포에서 가기가 더 가까운 길이다.
특히, 호산항이 있는 가곡천 하구에 배를 대고 가곡천을 따라 오르다가, 태백시 쪽으로 꺾어서 오르면 구불구불한 길을 70Km 정도 따라가면 된다.
직선거리로는 45Km 되는 길이지만, 가곡천을 따라 산을 돌아가니 그 정도 되는 거리다.
아직 길이 제대로 있는 곳이 아니어서 가곡천 하구에서부터 상동 광산 지대까지 최소한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내면서 가야 한다.
가곡항부터 가곡천 변을 따라 20Km 정도는 좁은 길이 있어서 그 길을 확장하면 될 일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새로 길을 내야 한다.
그런데 그 지역의 병마사가 일을 방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태영이 이 시대로 날아오던 그해, 1217년 동계 지역에서 거란군과 꽤 큰 충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그 지역 병마사가 누군지 알아보지를 못했네.
***
“이제 가을이 되려나 봐요. 아침저녁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어요.”
사람들이 놀다가 떠난 광장을 바라보던 정하연이 부른 배를 손으로 만지면서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그 무더운 여름이 어느덧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 애기 엄마는 이런 환절기에 조심해야 해.”
“그래서 벌써 긴 옷 입었어요.”
테르에서는 조금 전에 또깨비의 꿈이라는 드라마의 주제곡 뷰티풀이 막 끝나고, ‘한숨을’이라는 여자 가수의 노래가 시작되고 있었다.
조금 전 그 드라마의 주제곡은 당시의 주제곡을 부른 사람의 노래가 아닌, 목소리 가수왕이라는, 얼굴은 보여 주지 않고 노래를 불러서 경쟁하는 음악 경연 프로에서 한 가수가 부른 노래이다.
태영도 몰랐지만, 방금 전에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나와 경쟁한 그 경연 프로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기에 아는 것이다.
태영은 그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음악이 삽입된 영상을 보았었다.
제법 나이 든 남자 배우, 그리고 나이 어린 여자 배우가 출연한 그 영상을 부분부분 잘라서 만든 것이다. 모두 PC의 주인이 취미 생활로 모아 둔 것들이지만.
“한숨을, 이라는 노래 정말 좋죠. 성님.”
한서윤이다.
음원을 테르로 복사한 그날 이후부터 정하연은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에이’라거나 ‘무슨 저런 게’라고 하더니 차츰차츰 그 음악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그래, 서윤이 음악에 푹 빠졌네.”
“지금 나오는 ‘괜찮아요, 내가 안아 줄게요’라는 저 구절이 나오면, 정말 눈물이 나오려고 해요. 어떻게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해 주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걸까요?”
“그건 나도 그래. 마치 내가 왜구들에게 끌려갈 때 대장님이 나타나서 ‘괜찮아, 이제 내가 구해 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 시대 사람은 참 복 받은 것 같아요. 저런 노래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다니.”
모르는 소리.
그 시대의 사람들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성님, 저 노래 끝나면 다행이다, 한 번 더 들어요, 여자 가수가 부른 노래로.”
“그래, 나도 여자 가수가 부른 노래가 내 마음에 더 들어와.”
다행이다.
태영도 저 노래 안다. 그리고 참 좋아한다.
음악 경연 프로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노래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 줘서~
서윤이 그 노래의 한 구절을 낮게 부르며 태영의 어깨에 기대 왔다.
“배부른 사람 앞에서 너무 분위기 잡는 거 아냐? 질투 나네.”
“성님.”
정하연의 장난스런 말에 서윤이 태영을 잡아끌고 그녀의 앞으로 가면서 정하연을 불렀다.
그래, 정말 다행이지.
“성님이 서방님과 만났던 그 기적 같은 이야기와 제가 서방님을 만난 것, 그리고 서방님이 살아온 세상과의 만남 같은 것이 노랫말과 정말 잘 맞는 것 같지 않나요?”
하필 태영이 이 시대의 이곳으로 날아왔던 그 시기에 정하연이 왜구에게 잡혀가던 것을 구해 주었고, 신체적 변화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홀로 길을 나서며 개경으로 가던 중에 한서윤이 나쁜 놈들의 습격을 받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노랫말과 정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야기가 맞다.
“그래, 나도 그래서 그 노래가 너무 좋아. 꼭 내 얘기, 서윤이 얘기하는 것 같지?”
“네, 성님.”
그렇게 이야기 나누며 둘이 또 손을 맞잡는다. 둘의 사이가 저렇게 좋아서 태영 또한 정말 다행이다.
이 땅, 그 어느 곳에 그런 다행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태영이 어찌할 수는 없지만.
태영과 정하연과 한서윤은 잠시 후에 시작된 ‘다행이다’가 주는 감동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으면 눈물이 흐르기도 하지만, 며칠 전과 같은 경우가 문제였었다.
나디라는 가수가 부른 ‘엄마’라는 노래를 듣던 한서윤이 점점 노랫말 속으로 빠져들더니 마침내 울음이 터졌다.
태영도, 21세기에 살고 계실 엄마도 보고 싶고, 아버지와 누나도 보고 싶어서 마음이 찡했었다.
그런데 흐느끼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로 ‘엄마 나의 어머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가장 소중한 누구보다 아름다운, 당신은 나의 나의 어머니’라는 부분이 몇 번을 거듭해서 흘러나오자, 서윤이 몸을 떨기 시작하더니 눈가에 눈물이 흐르는 수준을 넘어서 마침내 엄마를 소리 높여 부르며 통곡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다.
가족들 모두가 보고 싶었겠지만, 가장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엄마에 대한 감성이 폭발하자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두 사람의 분위기 깨서 미안하지만, 음악 때문에 좋기는 한데, 전깃불에 음악까지 흐르니 여기가 완전히 사포와 율촌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어.”
분위기를 좀 바꿀까 해서, 겨우 나온 말이다.
“얼마나 좋아요? 테르가 대장님 손에 들어온 건 또 다른 축복이에요.”
광장에는 개인들이 만들어 온 평상이 십여 개나 놓였고, 그 뒤로는 태영이 윤점돌에게 그려준 A형 야외 테이블이 대세를 차지해서 광장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서른 개는 넘게 놓였다.
여기서는 지읒 식탁이라고 부르는 야외용 테이블이다.
지붕만 있는 가림막 아래에는 두 개의 기타가 걸려 있었다.
음악만 들려줄 뿐, 문화적 이질감을 그나마 줄여 보기 위해 공연 영상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않는데, 우연찮게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온 윤점돌이 공연 영상을 보면서, 그 악기들을 자신이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해서 태영이 그려 주었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만들어서 가지고 왔다.
그 뒤로도 피아노, 드럼, 트럼펫 같은 악기류를 포함해서 수십 종을 그리고 구조와 원리를 써 주었는데, 가지고 온 것은 지금까지 기타가 전부다.
소리가 조금 부족한 것 같기는 한데, 태영이 악기를 다룰 줄 모르니 만지지도 않지만, 간혹 기타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다가 진짜 현대 음악을 고려 시대에 시작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몰라.
찌르르르~
엇. 이 무슨?
이런 느낌은 항상 예고나 전조 없이 불시에 오기는 한다.
지난해 여름에 한번, 그리고 올 초 제주에 있을 때 있었고, 그 뒤로는 반년쯤 지나도록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또 나타났다. 아니, 제주에서 올 때는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확신은 하지 못한다.
“왜 그래요?”
태영이 몸을 흠칫하고는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정하연이 물었다.
“미봉산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미봉산. 혹시 지난번처럼 그런 증상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