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52
152. 개경 손님(2)
~삐빅~
선실을 벗어나 갑판 쪽으로 나오는데, 서윤의 상의 주머니에서 태블릿의 비프 음이 들렸다.
서윤이 태블릿의 글씨가 태영에게도 보이도록 방향을 틀었다.
장호가 보낸 메시지다.
태블릿의 화면을 태영에게 보여 주었다.
“부 실장 생각은 어때?”
“선상 폭동은 그 죄가 엄하지만, 상황이 조금 다르니, 전마선 하선을 시키도록 하시지요.”
규정대로라면 선상반란이나 폭동은 사형 또는 하선 이지만, 전마선 하선을 시키자고 한다.
전마선에 태워서 하선 시키면 살아 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 그렇게 해.”
“단, 전마선에 노는 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데.”
“해룡호에 승선한 걸인들에게 사전교육을 이미 했습니다. 노가 없어도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면 무인도에 상륙이 가능합니다. 저기 눈 앞에 섬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물론 거기서도 싸움질을 하면 전원이 죽게 될 것이지만,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배는 이미 공해상에 접어 들었지만 먼 곳에 섬의 잔영들이 보인다.
“그래, 그렇게 해.”
서윤이 장호에게 톡을 보냈다.
서윤이 이런 명령을 내리는 데는, 1진으로 도착했던 걸인들 중에 천상 걸인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분과 관련한 것도 있다.
일은 싫고, 놀면서 걸식만 하려는 사람들을 골라내서 이번에 개경에 오는 길에 서해의 무인도에 약간의 식량 종자, 농기구를 포함한 생활 도구와 낚시 도구 같은 것과 함께 내려 주었다.
거기서 어떻게 하던 식량을 구해서 먹고 살라고 했다.
걸식을 할 곳이 없는 섬이다.
본인이 식량을 얻기 위해 일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곳, 그런 곳에 내려 주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라는 철칙은 사포에서는 반드시 지켜진다.
황후를 걸인들과 함께 태우고 올 수가 없어서 황룡호가 진수 되자 말자 해룡호까지 2척이 벽란도에 왔고, 개경 손님과 철소의 장인들은 황룡호에 태우고, 걸인들은 해룡호에 태웠다.
지금 폭동을 일으킨 걸인들을 한 배에 태웠으면 황후를 대상으로 폭동을 일으켰을 지도 모르겠다.
고려는 조선시대와 달리 황권이 강하지 못했다.
유난히 민란과 폭동이 많았었고, 각 지방의 유지와 토호들 중에 황제의 피난길에 황제의 어가 행렬을 약탈한 무리들도 있을 정도이니, 한 배를 태웠으면 황후를 대상으로 폭동을 일으키지 말란 보장이 없다.
만적의 난, 망이 망소이의 난, 김사미의 난이 역사에 등장하는 민란이고, 반정도 유난히 많았던 시대이다.
선상 갑판에 놓여진 간이 탁자와 파라솔, 이 시대에는 일산이라 불리는 파라솔 아래에 앉았는데, 개경 손님 일행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곧바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전의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구경하고, 손을 눈 위로 들어 햇살을 가리며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태영이 앉아 있는 곳에 다가와서는 의자 앞에서 어찌 할지를 몰라서 이리저리 눈치를 본다.
“이렇게 앉으시면 됩니다.”
한서윤이 움직여서 앉는 모습을 보이자 고개를 끄덕하더니 자신의 자리로 생각되는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아, 자리가 참으로 편안 하군요.”
대전에 황제가 앉는 옥좌에 앉아 볼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옥좌보다 훨씬 편하지.
21세기의 인체 공학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의자인데.
“의자 생활이 편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포에 가시면 이렇게 의자에 앉아도 되고, 궁에서 앉듯이 방 바닥에 앉아도 됩니다만, 의자 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아, 그래요?”
“네, 사포에 기거하실 집에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지만, 황궁으로 돌아가신 뒤에도 가능하면 의자 생활을 하시라고 하고싶습니다.”
“네, 그리 하도록 하지요.”
태영과 한서윤, 그리고 안혜 황후가 앉고, 그 뒤쪽으로 꽤 많은 의자가 놓여있다.
“모두들 앉으세요.”
서윤은 갑호선실에서 이곳 갑판으로 나올 때, 윤서이를 비롯하여 그쪽 식구들도 모두 불렀는데, 그들도 이곳으로 왔다.
서윤의 앉으라는 말에 이 상궁이 머뭇거렸고, 윤서희와 최서영과 최이영 부부도 역시 머뭇거렸지만 서윤의 재촉에 모두 앉았다.
전이를 안고 있던 궁인들도 그 옆쪽의 의자에 앉았다.
이젠 제법 아장아장 걷는 모양인데, 제 엄마에게 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배가 어찌나 큰지, 전혀 흔들리지 않아서 배 안에 있는 것 같지 않고, 그냥 놀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바람이 불지 않으면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멀미할 일도 없고, 편안할 것입니다.”
~부우우우우웅~
해룡호에서 뱃고동이 울렸다.
“응?”
뱃고동이 울리자, 개경 손님과 개성 손님들 모두가 해룡호를 돌아 보았다.
해룡호는 황룡호에서 몇백미터 뒤쳐져 있어서 세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배가 잠시 멈추었고, 얼마 후에 장호로부터 선상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 모두 전마선으로 하선 시켰다는 톡이 왔다.
“저 배는 왜 잠시 멈춘 것입니까?”
윤서이가 물었다.
“아, 조금 전 선상 폭동이 일어 났다고 해서, 폭동자들을 추려서 하선 시키느라 그러합니다.”
“하선이요?”
“네.”
“그러면 모두 물에 빠져 죽지 않습니까?”
“전마선을 노 없이 주라고 했으니 합심하면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 멀리 보이는 무인도에가서 생활해야 하기에 서로 힘을 합쳐서 고기잡이를 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요?”
“네.”
“헌데, 이 배에서 저 배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을 듯 한데, 그것을 어찌 압니까?”
안혜 황후의 질문인데, 그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냥 모르는 체 있으세요.
서윤은 기수 병 한 명을 불러서 신호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알아 들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 정도 설명해 주었으면 된 거지.
“황후 마마, 사포에 가더라도 대장님과 저희들은 곧 송나라로 가야 하기에 자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신호이야기가 끝나고 기수 병이 물러나자, 서윤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래요? 부 실장님도 가십니까?”
황후도 부 실장님, 이라고 님자를 붙인다.
“네, 저도 갑니다. 대장님이 가시기에 실장님이나 부 실장인 저나 둘 중에 한 사람은 수행을 해야 하는데, 실장님이 만삭의 몸이고 머지 않아 출산이 예정되어 있어서 애기씨와 함께 있어야 하기에 제가 수행을 할 예정입니다.”
“아, 실장님이 그래서 아니 오신 것이었구나. 대장님 먼저 축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황후 마마.”
“혹시, 우리가 동행하면 아니 되는가요?”
그럴 줄 알았다.
서윤이, 틀림없이 동행하겠다고 나설 것이라고 했던 예상이 딱 들어 맞았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면서, 막상 떠날 때 이야기해서 데리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 원망을 들을 수 있으니 미리 이야기해서 준비를 갖추어 두자는 것이 서윤의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후마마를 제외한 다른 수행원들은 모두 기본적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포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입니다.”
“아, 그 훈련이라는 것이 어찌 되는지요?”
“사포의 사람들은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은 군인의 신분으로,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주방보조, 갑판 보조등 몇 부분에 나누어 기초교육을 받으면 함께 승선이 가능합니다.”
“훈련을 받아서 그 임무를 맡지 않으면 승선할 수 없는 것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오가는 데는 얼마나 걸리며, 가면 얼마나 머물 예정인가요?”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 오기 시작한다.
“송나라의 황궁이 있는 임안까지 가는 데는 이틀이면 됩니다. 체류기간은 한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가는데 이틀?”
깜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다.
뒤에 앉아있는 윤서희와 그 가족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자신들도 따라가면 안되느냐는 질문을 할 기회를 노리느라 손과 입이 가만히 있지 못하지만, 황후와 이야기 하는 중이라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
최이영은 윤서희의 귀에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고, 상리는 그것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 하고 있다.
태영은 그것이 다 들리지만, 못 들은 척 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특히나 여자들이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니 생각 만으로도 얼마나 좋을까?
“네, 이 배로 가면 이틀이면 갑니다.”
“가야지요, 가고 말고요, 평생에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겠습니까? 그러니 상궁들에게 모두 훈련 받으라 하겠습니다.”
상궁 들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훈련 받으라 할거란다.
하긴, 상궁들이 황후가 까라면 까야지.
“그런데, 황자님이 너무 어려서 힘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지난해 3월생, 음력으로 따지는 것이니 양력으로 보면 5월쯤 되나?
그 말에 안혜 황후가 전이를 한번 쓱 바라보았다.
엄마와 눈을 맞춘 아이가 두 손을 벌리고 흔들며 까르르 웃는다.
“배가 이리 크고 흔들림이 없으니, 지금까지 봐서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포에 도착해서 불편해 하면 그때 아니 갈 것이라 말씀 드리지요.”
가는데 얼마쯤 걸리느냐는 것을 먼저 물어본 이유가 아이 때문이었어?
하긴, 장거리 여행에는 어른도 어른이지만, 아이는 정말 힘든다.
황룡호에 타고 몇시간이 지났는데, 느낌이 육지 같을 테니 저런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알고, 사포에 도착하는대로 수행원들은 훈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리 하시지요. 그리고 나도 그 훈련을 받으면 안됩니까?”
안혜 황후가 훈련 받아도 되지만, 그래도 보통 손님이 아니니, 그리해서는 안되지.
“마마께 그런 훈련을 받으시라 할 수는 없지요. 궁인들은 군사교육을 받기에는 기간이 짧으니 아마도 주로 주방보조 업무가 될 것입니다.”
뒤에선 상궁들의 표정이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훈련 받으러 가면 제일 졸병이 된다는 것을 알까?
서윤의 말은 상궁들을 기를 좀 꺾어서 고분고분하게 만들려 하는 생각도 있는듯 하다. 너희는 궁녀이지 황후가 아니야.
“우, 우리도 가면 아니 됩니까 부 실장님.”
드디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윤서희도 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딸 최서영과 최상리 부부, 최이영 부부까지 돌아보는 것을 보니 함께 가고 싶은 모양이다.
“마님은 훈련을 안 받아도 되지만, 다른 분들은 모두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을 이수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명령에 복종한다는 서약을 하면 함께 가실 수 있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서윤의 말이 떨어지자 말자 상리가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송나라 구경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가고 싶은 모양이다.
훈련을 받고 명령에 복종한다는 서약을 하면 모두다 임시이긴 하지만 졸병이 된다.
그런데, 한번 졸병은 영원한 졸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 시대다.
생각보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것 같다.
“대장니임~, 서윤아~~”
밝은 목소리 뒤에 누군가가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윤경이다.
한서윤을 서윤아 하고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어서 오세요. 윤경 선생님.”
한서윤이 일어서서 반겨주었다. 개경에서 자신을 편하게 대해주고, 쉽게 적응하도록 도와준 김윤경에 대한 이야기는 그 사이에도 종종 했었다. 그만큼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병사 한명이 김윤경을 가로막는 몸짓이 보였다.
“비켜, 비켜어~ , 너어~ 내가 누군지 몰라, 몰라, 몰라?”
소리를 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김윤경 특유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리고 한서윤의 손짓에 병사들이 물러섰다.
“윤경 선생님, 사포나 함상에서는 ‘너 내가 누군지 몰라’는 안 통한답니다.”
서윤이 웃으면서 김윤경을 반겼다.
“그래, 알아 안다구, 부 실장님이 눈앞에 있으니 내가 장난으로 그리 말하는 거지 안 그래? 알면서, 알면서. 아무튼, 대장님, 부 실장님 방가 방가.”
하여튼 저 입은 정말 대단한 입이다.
뒤따라 오는 사람이 남편이 될 박강후로 사포에 인사차 동행하는 길이다.
상서도성에서 일하고 있고, 원외랑이란다.
원외랑이면 무관으로는 낭장에 해당하는데, 새파란 놈이 품계가 높기도 하지.
아무래도 저놈 애비가 상서도성의 복야로 있어서 밀어 올려준 것 같기도 하지만, 머리도 제법 비상한 것으로 들었다.
상서도성의 복야이면 품계가 무척이나 높지만, 그래도 태영을 만나러 올 처지가 안되니 전에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박강후는 김윤경의 남편이 될 예정이기에 이번에 개경에 왔을 때, 김윤경이 데리고 인사를 하러 왔었다.
“대장님, 박강후 인사 올립니다.”
“황후 마마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오?”
서윤이 인사하는 박강후에게 나즈막하게 말했다.
그때서야 박강후도 김윤경도 안혜 황후를 본 모양이다.
“아, 화, 황후 마마.”
박강후가 안혜 황후를 쳐다보고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김윤경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지만, 눈은 생글생글 웃었다.
박강후가 인사를 왔을 때, 최세헌이 한서윤을 정2품의 어른으로 대하라고 시켰었다.
실제로 품계를 받지도 않았고, 받을 일도 없는 것을 최세헌의 억지를 부리긴 한 것이지만, 아내가 높은 대우를 받아서 나쁠 거 없지 않나?
그러고 보면, 박강후는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김윤경과 혼인하게 된다.
고려 학당의 교장도 국자감의 장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태영은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해서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국자감의 장은 대사성으로 종3품이지만, 같은 품계로 줄 수는 없어서 종5품으로 품계가 결정되었고, 대사성 아래 품계인 직학사와 동급의 대우를 받는다.
황족이 아닌 여인으로서, 또 시골 구석의 별 볼일 없는 양반집 딸로서는 실로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김윤경이는 고려시대의 품계로 본다면, 제 아버지보다 한참이나 높다.
김윤경의 아버지인 김석 등기보원훈원장은 양반이긴 해도, 당대에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기에 품계가 없는 탓이다.
“어서 오시오. 윤경 선생과 혼인하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 했습니다. 그리고 윤경 선생은 나의 스승인데 어찌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오?”
아, 그게 또 그리 되나?
사포의 체계가 특이하다 보니, 여러가지로 많이 꼬인다.
품계와 계급이 꼬이고 꼬여서 엉망이 되지만, 그래봐야 개경과 직접 역일 일이 지금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으니 크게 상관은 없다.
“황후 마마, 그래도 어찌 그리 하겠사옵니까?”
“윤경 선생은 이번에 혼인을 하고 곧바로 개경으로 갈 것이냐?”
“아버지가 안된다고 하지 않으면요, 혹시 아버지가 안된다고 하면 황후 마마께서 혼내 주실 거죠?”
태영의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고는 바로 안혜 황후의 팔짱을 낀다.
저런 버르장머리 하고는.
그래도 안혜 황후는 그런 김윤경을 나무라기 보다는 자신의 팔을 잡은 김윤경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는데, 이 상궁이 안절부절 하면서도 제지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봐서 종종 이 광경을 본 모양이다.
하여튼, 저 별난 말썽쟁이 놈이 친화력 하난 제법 끝내 준단 말이지.
“윤경 선생이 그리 해 달라면 할 수는 있겠지만, 스승님의 부친을 야단 치면 되겠습니까? 그나저나 얼마나 사포에 머무를 계획입니까?”
“음, 한달쯤 예정입니다, 하지만 기간에 상관 없이 사포에서 배가 뜨면 그 배로 갈 예정입니다만. 왜요? 황후 마마도 한달쯤 계실 건가요? 갈 때도 같이 가면 좋겠다.”
“음, 우린 내년 봄까지 있을 계획인데.”
“그래요? 그럼 또 대장님에게 태워다 달라고 아양 떨어야 하네.”
“아양을 떨어요?”
“대장님은 저를 놀리는 것이 재미 있나 봐요.”
저놈 봐라. 제 녀석이 나하고 장난치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주제에.
“대장님이 그럴 리가 있나요?”
역시, 김윤경의 성격을 알고 있는 황후다.
“그럼 그 사이에 뭐 하시 구요?”
“송나라, 황궁이 있는 임안으로 여행을 갈 예정입니다.”
안혜 황후가 대답을 하며 태영을 돌아 보았다.
아이고, 혹시 김윤경이 따라 붙으려 하지 않을까?
저 사고뭉치가 따라붙으면 아주 골치 아픈데.
“아, 그럼 저도 가요. 대장님 저도 가도 되죠? 서윤아 대장님이 안된다고 하시면, 네가 어찌 좀 해 줄 수 있지? 있지? 있지?”
역시, 예상에서 한치도 안 벗어 난다.
“너는 훈련을 받은 군인의 신분이기도 해서 문제가 없지만, 네 남편 될 사람은 훈련을 안 받았지 않느냐?”
“아, 주방에서 밥 짓는 거라도 시키면 되요. 그건 제가 책임지고 하게 할게요.”
태영의 말에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한 김윤경이 즉각 대답한다. 아무래도 저놈은 혼인하기도 전부터 김윤경한테 잡힌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시대의 양반이, 황룡호 주방에서 밥 짓는 일을 한다고?
거기 들어가면 제일 막내라서 솥 닦고 청소하고, 무 깎고 하는 제일 말단의 일이나 하게 될 텐데.
역시 박강후의 얼굴이 찌푸려 졌지만, 금방 펴졌다. 신혼인데, 하긴 동거 중이라 들었다.
기어이 따라 붙겠군.
***
귀빈관은 밖에서 보기에는 유리의 집이다. 태영이 살던 동네의 주민센터 근방에 있던 문화센터를 모방한 건물로 단 1채이지만, 2호도 조만간 지을 것이다.
완공 된지 열흘 밖에 되지 않은 새 집이지만, 고려시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집의 모습이다.
21세기 초현대식 양식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집이니까.
정원에 펼쳐 둔 파라솔 아래의 지읒 테이블에 신도익을 비롯해서 태영을 뒤따라 온 병사들과 비서실 남자 병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고, 서윤이 비서실 여군들과 함께 황후 일행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잔디와 눈이는 윤서희와 그 가족들을 데리고 영빈관을 안내해 주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김윤경이 나도 사포 떠난 지 오래 되어서 이집을 못 보았으니, 같이 구경 하자며 따라붙었으니 얼마나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으려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잔디를 선두로 윤서희와 그 일행을 포함해서 유인경과 몸종 둘까지 일행 모두가 귀빈관 입구로 들어섰다.
윤서희와 유인경은 둘이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앙숙이더니 어느새 함께 이동할 정도로 부드러워 졌을까?
그 뒤쪽으로 김윤경이 박강후와 함께 들어섰다.
“우와, 우와, 우와, 대장님. 대장님, 나 없는 새 대체 사포에 무슨 요술을 부렸 대요? 대체, 도대체 집이 왜 저래요? 앞으로 사포와 율촌의 모든 집을 저렇게 바꿀 거리면서요?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아~”
김윤경의 빠른 입에서 감탄사가 연속으로 튀어 나왔다.
우선, 예비용으로 남겨둔 1개의 전구를 귀빈관 거실에 달았다.
그 커다란 거실에 현대식 소파.
부엌은 가스 레인지나 인덕션 같은 것이 없긴 해도, 21세기식 키친 시스템이라고 할 만큼 잘 갖추어져 있다.
세면장에는 수세식 화장실과 욕조가 갖추어져 있고, 방마다 킹사이즈 침대가 놓여있고, 실내는 모두 동 파이프를 깔아서 온수 순환방법으로 방을 데우는 온돌 시공이 되어 있다.
지금은 가을이니 아직은 온돌이 들어오지 않지만, 보나마나 설명은 해 주었을 것이다.
수도는 저수지 공사가 마무리 되어감에 따라, 사포와 율촌 전체에 공사 중인데, 귀빈관과 영빈관은 수도를 최 우선으로 시설을 갖추어서 부엌에서 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고 욕실에서도 꼭지만 틀면 물이 나온다.
그러니 어찌 감탄을 하지 않으랴?
태영이 살아왔던 21세기에서 본 그대로 만들고 있는 중인데.
사실상 태영이 이 계획을 수립하면서 제일 골머리를 썩인 것이 고무였다.
마차의 바퀴나 신발 밑창을 만들 수 있는 양은 안되지만, 작은 양의 합성 고무를 얻어냈다.
그걸로 수도꼭지의 패킹을 해결 했다.
아직 많은 양의 석회를 확보하지 못해서 시멘트의 생산량이 부족하여, 영빈관은 목재와 흙벽돌이지만, 귀빈관은 시멘트 건물이다.
수작업 수준의 시멘트이고 아주 적은 양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딘가?
석회석 광산은 고려 땅에도 충분하겠지만, 일본 규슈, 아니 서해도에서 파 올 생각이다.
고무?
천연 고무는 아직도 아메리카 대륙을 건너오지 않았다.
21세기에서야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에서 전 세계의 천연고무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 시대의 고무나무는 여전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합성고무를 생각했고, 미량이지만 성공적으로 생산해 냈다.
석탄이 있었어도, 테르가 없었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태영은 화학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까막눈이다.
과학부의 화학과에 편성된 인원 삼십 여명 전원이 달라붙고, 공업부 사람들 삼백 명 정도가 달라붙어서 만들어 낸 결과이다.
그 일로, 비록 석탄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액화석유추출기술을 이용해서 기름을 생산해 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석유화학 공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태영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말들을 과학부 화학과에서는 서윤과 함께 석탄을 건류해서 나프타를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태영의 머리 속에는 한가지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고 보니, 서윤과 아시나의 도움 또한 거의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김윤경, 개경을 사포처럼 바꿀 수 없다는 거 알지?”
“히잉~ 알아요. 그러니 다시 돌아오고 싶다아~, 나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다시 돌아오면 안되요 대장님?”
“네가 없어도 충분하다 생각이 들 때까지는 안돼.”
“대장님, 우리 개경에 가지 말고, 저기서 그냥 살면 안되나요?”
윤서희가 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영에게 하는 말이다.
남편은 개경에 있는데, 정말 여기서 정착할까,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꿈도 못 꾸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 별감 재력으로는 그 집을 살 수 없는데, 어쩌려구요?”
태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체 얼마나 하기에 그러시는지요?”
“음, 그게 자세한 것은 부 실장이 와 봐야 알겠지만, 은자 2천만냥쯤 할겁니다.”
“헉.”
놀랍지? 은자 이천만 냥이라니.
순간적으로 떠 오른 대로 말했을 뿐이지, 팔 예정이 아니었기에 가격같은 것은 정해둔 바가 없다. 거기다가 영빈관을 짓는데 들어간 비용도 생각해 둔 바가 없으니 대충 때려 붙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낙담한 표정이어서 재미있다.
그때, 귀빈관에 들어갔던 안혜 황후 일행이 정원으로 나오는데 모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세상에 처음 보는 집 안을 구경했으니 당연히 그러겠지.
“짐은 풀었습니까?”
“네.”
서윤이 윤서희를 보면서 물었지만, 애초에 짐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었다.
시간상으로 봐서 집 구경을 하고는 대충 던져두고 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