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6
016. 사포의 새 관리(4)
사람의 지적 능력과 그것으로 인한 성숙도는 그 눈빛과 행동, 그리고 얼굴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하인의 신분이건, 양반의 신분이건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이기에 태영은 그를 다시 한번 유심히 바라보았다.
장부를 몇 장 넘기면서 내용은 마다하고 글씨를 보았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장부의 내용을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되었지만, 글씨 역시 무척이나 잘 썼다.
이런 사람이 하인이라고?
말이 좋아 하인이지 관아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하인은 관노일 것이다. 그런데 눈빛도 그렇고 글씨도 그렇고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름이 어찌 되는가?”
“…….”
“안 들리는가?”
“승찬, 권승찬이라 하옵니다.”
사연이 있군.
권승찬이라는 이름의 사십 대로 보이는 허름한 복장의 하인은 태영이 왜구를 쫓아다니던 중에 이 집으로 들어왔을 때, 열 살 남짓의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고 있던 사람이다.
아이는 가슴과 목에 선혈이 낭자하였고, 목에다 손을 대어 보니 이미 숨이 넘어간 뒤였다.
태영이 그를 쳐다보자,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눈길을 피했다. 눈에는 슬픔이 가득 배어 있었다.
“아이는 잘 묻어 주었는가?”
“…….”
대답 대신 허리를 깊이 숙였고, 허리를 반쯤 일으켜 세우다가 그대로 정지한 채 표시가 날 정도로 몸을 떨었다.
아들이었던 모양인데, 불과 며칠 전에 왜구에게 자식을 잃은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생각하면, 숨을 쉬기 힘들 만큼 가슴이 저려 오고 온 몸이 저렇게 후들후들 떨려 오지 않을까?
양반도 하인도 사람이라는 데는 모두가 똑같다.
양반이라서 슬픔이 더 크고, 하인이고 노비라서 슬픔의 크기가 더 작은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다만, 하인인지라 그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고 있지 못하는 것이리라.
태영이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그에게서 흐른 눈물이 흙바닥에 몇 방울 떨어졌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태영은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으흐으응.”
하인이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며 가슴속에 억눌러 왔던 울음소리가 막힌 틈새를 비집고 나오듯 분출되며 태영의 귀에 들려왔다.
누군가 역시 비슷한 복장의 두 사람이 그에게 달려왔고, 그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며 부축하고 옆으로 이동했다. 달래고, 울음을 참고 하는 것이 곁눈질로도 보였지만, 모르는 체했다.
왜구가 마을을 휩쓸고 갔으니,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나 이 집 안에만 해도 저와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그나마 왜구들이 마을을 휩쓸고 있을 때 태영이 왔었기에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지만, 태영이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입었을지 알 수가 없다.
“정 실장은 신 부호장의 지원을 받아서 이것이 어느 정도의 양인지 파악하고, 신 부호장은 정 실장이 이것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게.”
“네, 나리.”
정하연과 신도익이 동시에 대답했다.
신도익은 비서실장이라는 위치가 어떤 위치인지 대략 아는 것 같은데, 별로 의심 없이 그대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태영은 신도익이 사랑채라고 말했던 집으로 올라섰고, 두 남자와 세 여자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데 아무래도 사랑채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은 사랑채와 직각으로 있는 작은 집에서 나온 하인들이었는데, 태영은 그 집들의 문을 열어 보았다.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는 쌀을 넣어 두었을 것으로 보이는 궤짝도 있고, 곡물들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가마니와 광주리들이 쌓여 있었다.
태영이 그것들을 바라보자 하인들이 조금은 놀란 모습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사람도 있었다.
태영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한 번씩 문을 열어 보기만 했다.
사랑채에 들어서자 무척이나 넓은 공간인데,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고 좌우로 열 개의 의자가 늘어서 있다.
동헌에 있는 집무실도 이와 비슷했는데, 여기도 또 있었다.
중앙의 자리는 호피가 깔린 커다란 의자인데, 박한의 사치스러움을 보여 주는 듯했다.
그리고 옆과 뒤로는 책장으로 보이는 장이 있고, 그 위에는 여러 가지 책들이 세워져 있거나 누워 있었다.
남녀 하인 두 명과 별이가 따라 들어왔고, 하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나리,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명하여 주십시오.”
“되었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겠네.”
“네, 나리.”
두 명의 하인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태영은 호피 의자의 뒤쪽으로 나 있는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도 책상과 의자가 있고, 제법 커 보이는 쪽구들이 있는데, 아궁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아궁이는 집 바깥쪽에 있는 모양이다.
쪽구들 위쪽에 커다란 궤짝 세 개와 그보다는 작은 궤짝 한 개가 보였다.
한쪽에 창호지로 된 창이 보이기는 했지만, 불이 어두워서 마침 그 방에 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트럭에서 찾은 라이터가 필요할 것 같아 호주머니에 넣어 둔 것이 다행이었다.
정인구의 집에서는 촛불보다는 호롱불을 밝혔었는데, 여긴 호롱불은 아예 없다.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궤짝은 태영의 허벅지 중간을 살짝 넘길 정도로 큰 것이었고, 생긴 모습은 전에 무슨 사극에서 사도세자가 들어가서 죽었다는 뒤주의 모습이었다.
“이게 뭘까?”
옛날의 열쇠라는 것이 요즘의 열쇠와는 개념이 전혀 다른, 그리고 그것을 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대학을 들어가서부터 지니고 다니기 시작해서는 군바리 주제에도 뒷주머니에 언제나 넣고 다니던 작은 칼인 스위스챔프가 비교적 쉽게 해결해 주었다.
“허, 이게 뭐야?”
처음 연 궤짝에는 은화가 가득, 두 번째 궤짝에는 은화가 절반 정도, 그리고 세 번째 궤짝에는 철전이 가득했다.
그리고 남은 작은 궤짝은 태영의 무릎 아래쪽에 오긴 하지만, 거기는 고려사 시간에 배웠던 은병이 절반 넘게 차 있었다.
은화는 글씨나 무늬가 아무것도 없고 단순히 동전처럼 보이는 것이었는데, 느낌상 대략 한 냥쯤 될 것 같았다.
은화에는 천상통보라는 글씨가, 철전에는 고려통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틀림없이 돈이다.
“이거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태영이 역사에 기록된 내용을 기억하기로 분명히 화폐는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가서야 제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조선에서도 건국 초기부터 화폐를 도입하고자 해서, 태조 이성계가 지폐인 저화를 발행했지만 실패했고, 오죽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 재위 시절에는 조선통보라는 엽전을 만들어 사용을 장려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고려 시대는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성종 때 개경에서 몇 년간 화폐가 사용되기는 했는데, 개경 안에서만 사용되었을 뿐, 개경을 벗어나면 돈이 아니었고 그나마도 몇 년 쓰다가는 사용이 중단되었다.
건원중보, 동국통보, 해동통보 등 여러 이름으로 동전이 만들어졌지만, 단 한 번도 사용하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은 유물로만 남아서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일 뿐 유통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대체 이게 뭐지?
아, 화폐는 사용이 안 되어도 활구라고 불린 은병은 유통이 되긴 했다고 한다.
그나마 은병 하나에 마포 백 필을 사거나 쌀 50석을 살 수 있는 정도로 엄청난 고가품이라 부자들의 사치품 정도이지 일반 양민들은 구경도 못 해 본 것이라 했다.
어쩌면, 워낙 비싼 개경의 주택 값 때문에 은병은 제대로 유통이 되었을 순 있었을 것 같다.
국사 선생님 말씀에 개경의 집값은 엄청나게 비싸서 작은 집은 은병 10개, 좋은 집은 은병 50개를 주어야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은병 한 개가 은자 16냥인데, 그렇게 들어서는 집값이 비싼지 싼지 감이 오지 않는다.
요즘 말로, 몇 만 원이나, 몇 백만 원이나, 아니면 몇 억이라고 해야 쉽게 감이 올 듯하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고려 시대에 수도를 서경인 평양으로 천도하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고, 심지어 역모까지 일어났지만 결사적으로 반대한 이유가 서경으로 가면, 개경의 집값이 똥값이 될 것이었기에 그랬지 않나 생각된단다.
고려 시대나 현대나 수도의 집값은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박한의 금고에 은병과 은전, 그리고 철전이 가득이라고?
이 정도면 엄청난 부자인 셈인데,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이 많은 돈을 두고 죽으면 억울했을 터이니 왜구를 피해 도망을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도망가면서 은화는 왜 챙겨 가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도, 화폐가 통용되지 않았던 고려 시대라고 분명히 국사 시간에 배웠는데, 혹시 내가 고려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온 것인가?
그건 절대로 아닌데, 혹시 이것이 두 개의 달과 비슷한 상황인가?
그것과 상관없이 은병과 은화는 화폐처럼 쓰였을 수는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태영은 주머니에 은병 두 개, 은화 다섯 개와 철전 열 개를 넣고는 궤짝을 다시 잠갔다.
***
“나리, 아씨 오셨습니다요.”
별이는 글자를 모르고, 글자를 모르니 당연히 배운 것은 없는데도 총기가 있고 빠릿빠릿해서 태영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하긴, 시대로 본다면 하인이나 노비가 글을 배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니 그럴 만도 하다.
“들어오시라 해라.”
“네, 나리.”
태영이 호장 일을 대신하게 된 지가 이틀밖에 안 되긴 했지만, 이 시대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는 것투성이다 보니 정하연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아버지가 호장이어서 옆에서 보고 듣고 한 것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딱 맞아떨어졌다.
신도익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곤란한 것들을 물어보면 척척 대답을 한다.
“부르셨습니까?”
“아직 일 끝나지 않았는데 부른 거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가림이와 눈이를 두고 왔습니다.”
“그 세 사람?”
“네, 한 명은 가림이, 또 한 명은 눈이, 그리고 잔디인데요. 잔디는 저를 따라와서 밖에 있고, 가림이와 눈이는 곡물 창고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다.”
태영이 현대식 화법을 사용하면서 사옵니다, 라는 식의 화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거의 현대식 화법으로 바뀐 것 같다.
“앉아.”
태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태영의 왼편 의자에 냉큼 앉았다. 아무래도 제법 친해진 때문이리라.
정하연이 앉는 사이에 주머니에 있던 은전과 철전을 탁자 위에 꺼내 놨다.
“그거 웬 천상통보입니까?”
하, 은자를 보고 천상통보란다. 이미 잘 알고 있네.
“본 적 있어?”
“그럼요. 부자들만 가지고 있는 귀하디귀한 천상통보에다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고려통보인데요.”
“이게 가치가 얼마나 되는 거야?”
“천상통보 한 냥이면 마포 여섯 필을 살 수 있고, 나락 두 섬 반을 살 수 있습니다.”
“한 섬이 어느 정도의 양이 되는 건가?”
현대의 생활에서 언제 이런 말을 들어 볼 일이 있었나? 들일 일도, 쓸 일도 없었다.
“한 섬은 열다섯 말이고, 한 말은 열 되, 한 되는 열 홉입니다.”
되와 홉으로 나오면 대략 환산이 되긴 하지만, 한마디 물었는데 이렇게 연결된 것을 모두 말해 주면 이해하기 편해서 좋다.
도량형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고,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다 했는데, 한 섬은 몇 킬로그램이 될까?
미터법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생기는 불편한 같은 거겠지?
나락이면, 아직 빻아서 쌀로 만들지 않은 상태라 껍질이 붙어 있는 벼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럼 마포 한 필 값이 나락 반 섬 비슷하게 된다는 말이네?”
“네, 그리되지요.”
“한 사람이 한 해에 마포 몇 필이나 만드는데?”
“한 사람이 열심히 하면 대여섯 필, 아니면 네 필쯤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나락 두 섬이나 석 섬을 사는 거야?”
“그 정도면 많이 하는 것입니다.”
많이 하는 거다?
영양가 전혀 없는 짓거리인데, 시대가 시대이니 그걸 또 영양가 없다 할 수가 없다.
“그럼, 천상통보 한 냥은 고려통보로 몇 개인 건가?”
“철전으로 쉰 전입니다만, 철전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은자와 철전의 비례가 1:50이란 소리다.
그런데,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왜?”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조세로 받지를 않으니 사용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조세는 은자나 철전으로 내는 거야? 아니면 마포나 쌀로 내는 거야?”
“세 가지 다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율촌이나 사포에서는 다 쌀과 마포로 내고 있습니다.”
은자 1냥이 쌀 두 섬 반이라.
현대에서는 쌀 한 가마가 80Kg이지만, 여기서는 어찌 될까?
아무튼, 은자의 가치가 상당한데, 그게 커다란 궤짝 두 개에 거의 가득이라고?
박한이 생각보다 무척 부자였는데, 태영이 박한을 보내 버리고 그것을 몽땅 차지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부자가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은병을 꺼냈다.
“그건 은병 아닙니까?”
“이건 가치가 얼마나 되는 거야?”
“은병 하나에 은자 16냥이고, 마포 백 필을 살 수 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네.
“그럼 녹봉은 뭐로 주는 건가?”
“율촌에서는 쌀과 마포로 주는데, 사포도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녹봉으로 주지도 않을 은자와 철전을 뭐 이리 많이 모아 둔 거지?
“부호장의 녹봉은 얼마인지 아나?”
“율촌에서는 부호장에게 한 달에 나락 석 섬과 마포 한 필을 줍니다만, 사포에서 어떻게 주는지 신 부호장에게 확인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나락 석 섬과 마포 한 필이 많은 것이지, 적은 것인지 대중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그리고 석 섬이면 몇 킬로나 될까?
“그럼 부호장 녹봉은 호장이 정하는 건가?”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조세로 내는 것도 쌀과 마포, 녹봉도 쌀과 마포인데, 아무 곳에도 쓰는 곳이 없는 은자와 철전은 대체 무엇인 걸까?
“그럼, 이 은자와 철전은 어디에 쓰는 것인가?”
“은자와 은병은 밀염상이나 포목상, 지물과 필방을 하는 장사치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화폐의 수단으로 은자와 은병이 쓰이고 있다는 말이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곳을 이동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금 국이나 송 국과 무역을 하는데 쓰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개경에서는 은병이나 은자 외에 철전도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철전은 장사치들이 받지 않는 건가?”
“그렇습니다. 개경이 아니면 받아 주는 곳이 없으니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이때의 중국 땅은 남쪽은 송나라, 북쪽은 여진이 세운 금나라 시대이다.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몽골이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아직 조금 더 후의 일이니까.
가만, 벽란도가 유명한 무역 도시였잖아?
코리아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도 벽란도 때문이고, 상업과 무역이 활발한 도시였다고 배운 것 같다.
기회가 되면 한번 가 봐야겠어.
“개경에 가 본 적은 있고?”
“가 본 적은 없습니다. 동생 둘이 개경의 숙부님 집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데, 꼭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개경은 현대의 개성이지만, 거기는 북한 땅이기에 당연히 태영도 가 본 적은 없다.
“기회가 되면 가 보자고.”
“저도 데려가 주실 것입니까?”
“내가 간다면, 비서실장이 꼭 따라야 하지 않나?”
“감사하옵니다. 꼭 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신 부호장에게 호구 조사와 함께 왜구에게 피해를 입은 상황을 조사하라 하였으니, 지금 창고에 쌓여 있는 곡물들을 피해 상황에 따라 보상으로 지급할 것이니까, 피해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줘.”
“네, 나리. 보상에 대한 부분은 알려도 됩니까?”
“아냐, 그건 정 실장만 알고 있도록.”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간혹 그런 부분에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현대의 사람들처럼 영악하다면, 가능한 이야기이니 미리 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