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70
170. 꺼지지 않는 불꽃(1)
말을 다 풀어서 마구간으로 옮기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백약이 오름까지는 삼십 리 정도지만 마구간을 지어 둔 곳은 약간 아래쪽이다.
그런데 마구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장 차장.”
“네, 대장님.”
윤점돌은 이에 건설 부장이고, 그 아래에 차장 셋에 반장이 열둘이나 된다.
윤점돌이 장인범을 개경에 보내서 마구간을 살펴보게 했고, 이번에 제주에 함께 왔다.
“이거, 개경의 마구간과 비교해서 어때?”
“애는 쓴 거 같은데, 개경의 마구간과 비교해 보면 조금 부족합니다. 일단, 당장은 그대로 쓰고, 새로 마구간을 지으면 말 사료 창고로 개조해서 쓰겠습니다.”
“그래, 잘 정리해 봐. 참, 아내와 같이 왔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몇 달 요양 왔다 생각하며 잘 지어 주고, 웬만하면 후임을 물색해서 교육도 잘 시켜 놔.”
“네, 그렇잖아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젠, 황룡호가 명주와 상산에 가는 길에 말과 목재를 제주에 내려 주고 가고, 명주에서 짐을 싣고 사포로 가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태풍만 만나지 않으면 무난하게 다닐 것이다.
기상 상태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너무 21세기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지만, 기상 예보는 정말 많이 아쉽다.
***
“양 현령.”
하룻밤을 현청에서 마련해 준 곳에서 유숙하고 아침을 먹던 중에 양무위를 불렀다.
“네, 대장님.”
“지난번에 여기 약탈하러 온 왜구의 두목은 잘 가두어 두고 있지요?”
태영이 말을 꺼내자마자 표정이 확 바뀌었다.
눈은 붉어졌고, 음식을 집은 젓가락이 달달 떨기 시작했다.
“네.”
“지금 상태는 어때요?”
“피골이 상접하지만 살아 있습니다. 살려 두라고 하셔서요.”
현령의 젓가락에서 음식이 흘러내렸다.
“이름이 뭔지 압니까?”
“우리는 왜어를 못해서…… 김 중사님이 알 겁니다.”
“음, 그러면 그건 나중에 김 중사에게 확인하기로 하고,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아시오?”
“그건…… 잘.”
양무위는 결국 젓가락이 떨어지기 전에 상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음식이 든 그릇 하나가 밀리는 바람에 안에 든 음식이 쏟아질 정도로 몸이 떨렸다.
양무위로부터 조금 떨어져 앉은 고석찬도 젓가락을 밥상 위에 내려놓고 태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들은 나가사키라는 곳에서 왔소.”
왜구의 두목을 잡아서 가두기는 했지만, 왜어를 모르니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나가사키.”
“한어로 읽으면 장기(長崎)라고 부르는, 아주 살기 좋은 곳이오.”
나가사키는 태평양 전쟁의 끝에 원폭이 투하된 도시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독립을 했고.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미군에게 정말 고맙다고 해야 하나?
사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지 않아서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독립은 언제쯤 가능했을까?
독립이 되기는 했을까?
당시의 일본은 동북아, 동남아 지역을 거의 다 먹었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군수 물자가 필요했고, 석유와 고무 등은 매우 중요한 군수 물자였다.
석유와 고무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많은 나라에서 생산되었지만, 그 지역은 대부분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였다.
일본이 전쟁 물자를 계속 조달하려면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인 그 땅을 빼앗아야 하고, 그 지역의 가장 앞부분인 필리핀은 당연히 빼앗아야 하는데,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미국을 잡아야 했고, 미국의 태평양 함대 사령부인 진주만을 선전 포고 없이 기습 공격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미국 치욕의 날로 선포하고, 미국과 일본은 전쟁을 시작했다.
그 전쟁은 미국이 일본 땅에 원폭을 투하함으로써 끝이 났고, 대한민국은 독립을 했다.
태영도 언젠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팻맨의 제조 과정을 찍은 사진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것을 본 적은 없고, 폭격기에 탑재하는 과정부터 투하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영상으로 보이는 버섯구름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지만, 그것이 피어난 그곳은 사람으로서는 견뎌 낼 수 없는 열화 지옥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참 잘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참 안 되었다고 말하면, 돌 맞아 죽고도 남는다.
“우리는 오늘 오후에 나가사키로 출발할 것이오.”
“거, 거기엔 왜?”
말의 떨림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왜 가는지 많이 궁금하겠지.
사포의 스타일을 이야기해 준 적이 없으니.
“우리는, 지금껏 우리에게 칼을 들이민 적을 살려 둔 적이 없소.”
태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
현령의 눈에 촉촉하게 피어오르던 습기가 마침내 방울로 맺혀 눈가를 타고 얼굴로 흘러내렸다.
양무위도 처참한 그날을 겪고 지나왔으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태영의 말을 듣고 있던 고석찬은 이미 식사는 중단했고, 몸은 경직된 상태로 파르르 떨면서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고 태영을 바라보았다.
“그, 그러하시면. 그러하시…… 하시…… 그러하시면.”
고석찬의 입에서 말이 나오다가 계속해서 끊어졌다.
그리고 목소리에는 벌써 반쯤 울음이 배어 났다.
“우리는 그날의 빚을 갚으러 갈 것이고, 이곳에서 빚을 갚는데 함께할 관병 다섯, 빚을 갚는 것을 참관할 양민 스물을 데리고 가고자 하오.”
“저요, 제가 가겠습니다.”
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석찬의 외침이 들려왔다.
***
“주의 사항 모두 전달했나?”
“네, 대장님.”
갑판에는 제주 표선에서 데리고 온 관병 다섯과 참관단으로 선정된 남자 11명, 여자 9명이 모여 있었다.
전쟁에 무슨 참관단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왜구들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한 그 마을의 사람들이니 종군 기자처럼 생각하면 된다.
이들은 현령이 표선 지역에 알려서 당시 왜구에게 당했던 사람들 중에서 복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일종의 추첨으로 선별되었다.
모두들 태영을 보고 고개 숙이며 인사를 하는데, 여자들 중에 셋과 남자들 중에 서넛이 낯이 익었다
“너는 이름이 어찌 되느냐?”
그 중의 한 여인에게 물었다.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였지만.
“양지유라 하옵니다. 나리.”
이름을 말하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한다.
그날, 발가벗겨져 나란히 서서 젖가슴에 왜구의 칼끝이 닿은 상태로 바들바들 떨고 있던 그 아이가 맞다.
낯이 익은 둘도 마찬가지로 양지유와 나란히 발가벗고 서 있던 아이들이다.
“나이는 몇 살이냐?”
“오, 올해 열다섯이옵니다.”
열다섯.
참 어린 나이인데, 아마도 평생 동안 그 어떤 것으로도 씻어 낼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그래, 나이도 어린데 그곳을 참관하고 복수하겠다고 하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이미 전달받았겠지만, 충분히 복수할 기회를 줄 것이다.”
“네, 나리.”
대답은 하지만 목소리는 떨려 나오고, 얼굴은 붉어졌다.
“우리는, 여태 우리를 공격한 적을 살려 준 적이 없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입히면, 반드시 천 배 만 배로 갚아 준다. 그 말은 들었느냐?”
“네, 나리. 들었사옵니다.”
“이번에 네가 당한 수모에 대한 복수를 하든, 아니면 다른 누구의 복수를 할 것인지는 묻지 않겠다. 그냥 표선 사람들의 복수라고 해도 상관없다. 다만, 복수는 대충 하는 것이 아니다 알겠느냐?”
“네, 나리.”
대답을 하는데 몸을 파르르 떤다.
어떤 마음인지는 짐작만 할 뿐이지만 어찌 모를까?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봐야 하는 것이 복수다. 철저하게 복수하여, 다시 우리를 보면 오금을 펴지 못할 정도로 짓밟아야 한다. 그리고 행여 우리에게 달려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못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네, 명심하겠사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들었는가?”
태영은 스물의 참관인인 양민들을 향해 물었다.
네, 들었습니다~
몇몇의 입에서 대답이 나왔고, 몇몇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과연, 농사짓고 고기를 잡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이 사람들은 태영이 말하는 처절한 복수가 가능할까?
아니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구들은 농사를 짓던 놈들이고 고기를 잡던 놈들인데, 해적이 되어 고려 연안을 습격하고 양민들을 잔인하게 죽였지만, 이상하게도 고려인들은 그러지를 못하는 것 같다.
“잔디야.”
“네, 대장님.”
“저 아이들 교육 잘 시키도록 해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첫 시범을 보일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왜구들이라면 이를 가는 잔디이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니 잘 알아서 할 것이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왜구들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이 멀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포로 돌아가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살기가 가라앉고 잔인하게 적을 죽이며 번들거리는 눈빛이 가라앉는다.
그것은 잔디나 태영이나 사포의 모든 병사들에게 공통된 현상이다.
그리고 학교장이면서 교육 부장이 된 장모 박신아의 도움도 컸다.
“고석찬.”
태영은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현령의 부관을 불렀다.
“넵, 대장님.”
“현령의 마음이 너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해서 너희들에게 양보한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지?”
“넵, 잘 알고 있습니다.”
“함부로 나서지는 말라. 반드시 네가 소속된 중대의 중대장 허락 후에 움직여야 하되, 현령의 몫까지 철저하게 갚아 주도록 하라.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고석찬의 허리에는 기다란 도와 단검이 매달려 있다.
“야스오〔康夫〕는 나가사키를 완전히 말살할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해. 그놈은 네가 감시하라는 지시받았지?”
“네, 받았습니다. 형구에 매달고 그들이 제주를 침략한 대가가 어떤지 똑바로 보여 주기 위해 준비는 다 해 두었습니다.”
야스오, 그날 제주를 약탈하러 들어온 왜구의 우두머리다.
나가사키 영주의 아들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아마, 나가사키 지역의 권력자일 것이다.
제주에서 나가사키까지 대충 300킬로, 사포에서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새벽녘에 이오섬 앞에서 잠시 정비를 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편히 쉬면 된다.
***
“왜구들은 상산에서 이미 보았으니 알 테고, 왜구들의 잔인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1호 선실로 들어가서 잠잘 채비를 하고는 침대에 앉아 서윤에게 물었다.
“네, 서방님. 성님도 왜구들에게 잡혀가다가 서방님이 구해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비주도 그때 함께 잡혀가고 있었다면서요?”
“그래, 그때 김비주가 열세 살인가 그랬지. 그런데 이젠 어른이 되어서 혼인까지 했네.”
“부모님과 형제들 모두 왜구에게 죽었다 하던데.”
“그럴 거야. 그 바람에 고아가 되어서 사촌 집에 얹혀살았거든. 사포 여군들 중에 그런 사람이 반이 넘을 거야, 아마.”
“잔디는 아예 고아가 되어서 성님과 함께 서방님 몸종 하겠다고 달려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다들 나보다 상황이 좋았던 사람이 없네요.”
“하하, 그렇지?”
왜구에게 당한 고려인들의 특징은 남자들은 가족들을 지키려다가 대부분 죽거나 심각한 부상 후유증에 시달려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고, 여인들은 왜구들에게 잡혀간다는 것이다.
전쟁 전리품 중에 여인이 첫 번째인 것은 왜구들도 같은 모양이니까.
그러다 보니 태영이 구한 사람은 왜구들이 약탈 중일 때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여인들이었다. 그래서 여인들의 복수심으로 지원하여 여군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총 들고 싸우는 데다, 대부분 배로 이동해서 연안에서 싸우니 체력이 매우 중요한데도 크게 부담이 없다.
그래서 여군이라고 안 될 것은 없지만, 혹시나 나중에 동북 평원이나 화북 평원 쪽에 지원을 해 줘야 하면 그때는 불리한 상황이 된다.
전쟁은 나라에서 보면 돈지랄이지만, 병사들 개인으로 보면 체력전이다.
거란, 여진, 몽골 같은 유목 민족들은 기본이 유랑 생활이어서 노천에서 자고 생활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지, 아니면 태영이 그런 유목 생활을 해 보지 않아서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기본이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하기 때문에 노천에서 자고 일어나고 움직이면 체력이 급속히 저하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 달을 그렇게 견뎌 내지 못한다.
태영이 학생 시절에 MT에 가서 낮은 산으로 등산을 다녀와도 헉헉거리는 동료들을 많이 봐 왔다.
그들에 비하면 이 시대의 사람들이 오히려 체력이 좋은 것인지 헷갈리지만, 그래도 사람의 몸은 그런 극한 상황을 장기간 견뎌 내기는 어려워진다.
체력은 점점 낮아지고, 낮아지는 체력만큼 면역력이 떨어지고, 아주 쉽게 병에 걸린다.
체력이 극도로 저하된 상태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전염병이 쉽게 발생하고, 그로 인해 때로는 전쟁 때문에 생기는 전사자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전사자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물론, 그것의 통계는 없다.
유럽의 전쟁사의 경우에는 전투의 사망자보다, 부상자가 야전 병원에 입원해서 2차 감염으로 사망하는 병사가 더 많다는 기록은 있었다.
물론 그것이 체력 저하로 인한 전염병 때문인지, 항생제가 없어서 2차 감염을 막지 못했기 때문인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체력은 그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그런 통계 자체가 없으니, 아무도 모르고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왜구들 정벌하러 가는 거, 비주에게 말해 주지 않았죠?”
한서윤이 간편한 복장으로 침대로 다가오면서 물었다.
“응, 어차피 개경 파견 상태니 알려 줘야 뭐해?”
“저에게는 한번 이야기를 했거든요, 봄에 입대해서 군인이 되었는데, 대장님이 왜구 정벌을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반드시 수만 배로 갚아 주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면 속상하겠어요.”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모영이 말이에요.”
“모영이?”
“네. 소이하고 같은 동네 아이,”
“왜?”
“저한테 울면서 부탁을 하던데, 입대하고 싶다고.”
“아직 여전히 너무 어린데, 그놈은 체력 측정에서 탈락했지?”
모지하타에서 구한 아이로 고성 지방, 아니 영선 지방의 안새미골이 고향인, 이제 열네 살이 맞을 것이다.
서른두 명의 여인들이 잡혀서 모지하타로 끌려갔고, 그 중에 열여섯은 사포에 남고, 또 열여섯 명은 이미설이 데리고 고향으로 갔다.
거기도 한번 가 봐야 하는데.
누군가를 보내서 확인하거나.
모지하타는 여인들을 구해 내면서 이미 조져 버렸으니 그쪽으로 다시 갈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안새미골은 한번 확인이 필요하다.
관리할 영역이 자꾸 늘어나는 거 정말 못할 짓이다.
“네, 소이는 턱걸이로 붙어서 입대했고, 모영이는 아슬아슬하게 탈락했죠. 이번 왜구정벌에 소이는 따라가는데, 자기는 못 간다고 울면서 매달리기에 너무 안쓰러웠어요.”
“지금은 겨울이어서 훈련하지 않으니, 봄에 다시 체력 측정해 보라고 하지, 뭐. 그런데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이 더욱 중요해.”
“외상 후 장애 증후군 때문에 그러는 거죠?”
“응, 그래. 그래서 신체적 성숙도나 체력만큼 정신적 성숙도도 중요해.”
“세상에, 여기서는 아무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정신적 성숙도나 외상 후 장애 증후군이라니, 서방님 시대의 사람들은 참 어렵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렇다.
얼마나 지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시대의 이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신경 쓸 여력도, 여유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할 뿐.
“확실히 그렇지? 자, 이제 그 이야기 그만하고, 우리 이쁜 아내 속살 구경 좀 하자.”
“은근 야해. 그래도 성님한테 오늘 일은 이야기 좀 하구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테르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불편하지는 않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자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요?”
“응, 중요하지.”
프린터가 없으니, 그 안의 자료를 공업부나 연구소에 보여 주려면 일일이 써서 서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보통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베껴내어 서책을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포에 두고 왔다.
“그럼 그게 우선이죠.”
대답을 그리하고는 태블릿을 켰다.
화면이 펼쳐지자, 한서윤은 토도독 자판을 두드렸다.
태영이 아시나에게 찾아 달라고 했던, 전투기와 헬기의 자료를 열심히 베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