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73
173. 꺼지지 않는 불꽃(4)
핑~ 핑 쐐애액~
후다닥. 철퍽~
뒤이어 서윤이 날려 보낸 쇠버리가 대기를 찢으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남은 한 명이 흙바닥에 미끄러지더니 개천으로 처박혔다.
폭이 5미터도 되지 않는 개천이지만 물기가 약간 보였고, 개천 너머에는 완만한 경사를 따라 밭이 보였다.
추울 텐데.
먼저 땅을 구른 왜구에게 다가가서 칼을 멀리 차 버렸다.
태영이 한쪽 무릎을, 한서윤이 또 다른 무릎을 때려서인지 왜구는 태영이 다가가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쥐고 인상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넘어지면서 얼굴이 흙바닥에 쓸렸는지 한쪽에 흙이 잔뜩 묻었지만, 고함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빨갛게 변하면서 핏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얼굴의 통증이 느껴지는 듯 무릎에서 손을 떼어 얼굴을 만져 보다가 손바닥에 피와 모래흙이 잔뜩 묻어 나오자 옷에다 문질러서 닦아 내고 다시 한 손은 얼굴로, 한 손은 무릎으로 가면서 얼굴이 있는 대로 일그러진다.
얼굴을 쓰라리고, 무릎은 엄청나게 아플 것이다.
태영은 왜구를 내려다보고 쇠버리가 관통하고 지나가서 계속 옷을 적시며 피가 번져 나오는 무릎을 발로 지그시 밟아 눌렀다.
“크악. 아아악.”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억, 큭, 너, 넌 웬 놈이냐?”
뭔 이따위 질문이 다 있어?
다짜고짜 칼을 뽑아 달려오던 놈이 할 질문이야?
“어디로 가는 길이냐?”
어젯밤에 나가사키 앞바다에 도착하여 정박했기에 드론을 띄워서 충분히 정찰하지는 못했지만, 니펜트 영상으로 본 상태라면 니시소노기 쪽에는 병영이 없다.
그리고 오무라 쪽에는 정찰을 해 보지 않아서 병영이 있는지 몰라도, 혹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면 그곳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멀다?
그건 태영이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반격이라면 날짜가 며칠이 지났더라도 상관없으니 하루 이틀 거리라도 멀다고 볼 수는 없다.
“으윽, 무, 무슨 말이냐?”
이래서야 동문서답에 지나지 않는다.
무릎 양쪽이 완전하게 나갔으니 어딘가로 뛰어가거나 해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가자.”
태영은 신경을 끊고 일어섰다.
심문을 해야 할 필요도 가치도 없는 일에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
“네.”
“저놈은 어때?”
개천에 처박힌 놈에 대해 물었다.
“걷지 못할 거예요.”
“그래, 그럼 다시 가 보자고.”
태영이 일어서면서 왜구가 떨어트린 칼을 집어 들고 양쪽 어깨를 한 번씩 찔러 주었다.
푹~
크아아악~
그리고 발을 들어 쇠버리가 깨고 지나간 무릎을 발로 밟았다.
뚝~ 뚜둑~
무릎 뼈가 완전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울렸지만 이제는 걷지도 못하고 팔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모든 희망을 빼앗고 살려 두는 방법이다.
왜구에게는 그래도 된다.
태영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는 왜구를 뒤로하고 천천히 걸어 나가사키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러나 두 놈을 발견한 이후, 1호청이 눈에 보일 때까지 왜구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1호청.
1호청으로 부르기로 한, 나가사키 지역 영주의 집이거나 고위직의 병영으로 보이는 그곳은 태블릿의 영상이지만 무척이나 부산하고 소란스러웠다.
아마, 해안의 병영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제법 거리가 있어서 연기는 보이지 않지만, 폭음 소리는 들렸을 수도 있다.
전화 같은 신속한 통신 수단이 없는 시대이고, 봉화 같은 것도 사용하지 않는 데다 거리상으로 봐서 전서구 같은 것도 당연히 사용하지 않을 테니 오직 사람이 달려가서 알리는 길밖에 없지만, 시간이 제법 지체되었기에 알려진 모양이다.
그래서 이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려 들 것이고, 지원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꽤나 부산했다.
태영의 눈에 보이는 1호청은, 40미터 폭은 될 법한 강 건너에 펼쳐진 평지에 꽤 넓은 지역을 차지한 곳인데, 여태 왜국 정벌을 다니면서 보았던 다른 곳들처럼 이들도 역시 성을 쌓고 방비를 하지 않는다.
“아래쪽 8백 미터 전방에 부대 일부가 수색하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태블릿을 바라보던 한서윤이 말했다.
“그래?”
“네, 선두가 1개 중대 규모인데, 신도익 대대장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중대 병력이라고 해야, 40명이 채 안 된다.
실제로 21세기 대한민국 편제를 기준으로는 소대 규모이니까.
“앞을 막는 놈들이 있어?”
“없습니다. 방패 조가 앞서고 있지만, 그 앞을 막는 왜구들은 없습니다. 민간인들도 집 밖으로는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고려 땅과 달리, 이곳의 집들은 담이 없이 길을 따라 집만 달랑 서 있다.
집과 집 사이의 간격이 넓은 곳도 있고 좁은 곳도 있지만, 담으로 이 집과 저 집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는 것인가?
그런데 후쿠오카와 달리 병력들이 앞을 막아서지도 않는다.
워낙 본토 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고려나 송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방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영주들끼리 세력 전 같은 것은 제법 했다고 읽은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 읽어 본 것도 아니고, 읽어 봤다고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강을 사이에 두고 태영은 사포 병력 방향으로 보고 우측에 있고, 사포 병력은 강 건너 쪽에서 올라오고 있다.
1호청에서 제법 떨어진 지역에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다리가 보였고, 그 다리 앞에 네 명의 왜구가 지키고 서 있다.
“신도익 옆에 진이가 있어?”
태블릿을 유진이가 가지고 있기에 물었다.
“함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들은 곧 우리를 발견할 것 같습니다. 앞을 막는 적이 없으니 거의 달리다시피 오고 있어요.”
“그럼, 우리가 먼저 들어가자고.”
“네.”
태영이 조끼 주머니에서 쇠버리를 꺼내서 한 주먹 쥐는 사이에 서윤은 태블릿을 주머니에 집어넣었고, 곧이어 십여 개의 쇠버리가 마치 날아오르듯 손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차르르 소리를 낸다.
“정지, 이곳으로 건너오지 마라.”
태영과 서윤이 다리 앞으로 다가가자 다리를 지키는 위병 한 놈이 고함을 지른다.
“뭐라고 합니까?”
아직 왜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서윤의 질문이다.
“우리한테 건너오지 말란다.”
“우리가 저희들 잡으러 왔는데 별소리를 다 하네.”
핑핑~ 피비비빙~
한서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쇠버리가 대기를 갈랐다.
ああ~いやあ?つ~
수십 개의 쇠버리 소리와 곧 이어서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에 강 건너편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왜구들의 시선이 다리 쪽으로 몰렸다.
“조심, 저쪽에 몇 놈은 활을 들었어.”
제 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활을 든 궁병 열 명 정도가 이쪽으로 시선을 주더니 활에 화살을 재었다. 저런 것을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
“걱정 마세요. 쏘면 화살을 도로 돌려주죠, 뭐.”
그래, 태영은 막는 것밖에 안 되지만, 서윤은 돌려주는 것이 아주 쉬운 일이다.
염력.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무서운 능력이다.
염력의 힘이 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지금도 여전히 알 수가 없는 상태이다.
한서윤 스스로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쉬워진다고 하니, 능력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서윤의 적이 된다면 그 누구도 감당이 불가능하다.
대체 피디지는 뭘까?
왜 그런 것일까?
대체 뭔데 저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게 해 주는 것일까?
아차차,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태영의 시선이 화살을 재고 겨냥하는 궁병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활은 대체 뭐냐?
고려의 활은 작기도 하지만, 저렇게 겨냥하기가 어렵지도 않다.
왜국의 궁병이 가진 활은 제 몸 길이보다 두 배는 긴 데다, 활 중간을 잡지 않고 아래쪽을 잡고 있다.
하긴, 저 긴 활의 중간을 잡으면 활이 땅에 닿아서 활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전에 배에서 활을 쏘려고 하는 걸 다 두드려 잡은 기억은 있지만, 배가 흔들리기도 해서 유심히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서윤도 옆에 있기에 저들이 활에 화살을 재서 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구경했는데, 시위를 당기고도 쏘지를 않는다.
슁~쉬슁~슁~
제법 시간이 한참 흘렀다고 생각되어서야 화살이 날아올랐다.
태영과 궁병들의 거리는 불과 50미터 정도.
“훗, 감히.”
서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자마자, 손짓과 함께 쏘아져 오던 화살이 반원을 그리며 방향을 전환하더니 가속도를 더해서 궁병에게 쏘아져 갔다.
쐐액~
쐐애앵~
으악, 아아악~
자신들이 쏜 화살에 자신들이 꼬치 꿰이듯 꿰었다.
“허, 내가 손쓸 틈을 안 주네.”
“아까, 새벽에 서방님이 이름을 물어보았던 양지유와 그 아이들을 그제 밤에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이들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니 저를 말리지 마세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서윤의 조끼 주머니에서 수백 개의 쇠버리가 무더기로 날아올랐다.
그때, 1호 선실로 돌아온 한서윤의 눈빛은 살기로 번들거리며 파란 섬광을 뿌려 댈 것 같은 분위기를 태영도 기억한다.
쐐애애애액~
쇠버리가 왜구들에게 날아가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의 손에서 쇠버리가 몇 개 날기도 전에, 서윤의 손짓에 따라 하늘을 날아오른 쇠버리는 나무로 된 담장 부근에 집결하고 있던 2백여 명에게 날아갔다.
그 중의 일부가 이쪽으로 달려왔고, 쇠버리는 그들의 머리 위로 찬연하게 솟아올랐다가 아침 햇살에 잠시 반짝거리더니 바람에 빗방울이 날려가듯 경사로 내리꽂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다수로 뭉쳐서 흩어져 있던 일단을 서윤이 모조리 잡겠다고 마음먹으면 적은 떼죽음이라는 결과를 예약하는 것이다.
아아악~
으아악, 아아악~
그 순간 비명과 비명이 난무했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에 피비린내가 섞여서 비명 소리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면에서 태영이 쇠버리를 날리는 것과 총을 쏘는 것은 비슷하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저들의 칼에 태영이 다치거나 죽을 일은 없을 만큼 가공할 속도의 빠름이 있기에 근접전에서 모두 쓸어버릴 수가 있다.
그러나 한서윤은 태영이 근접 전투를 벌일 틈도 없이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고 있었고, 한서윤이 쇠버리를 날려 보내는 것은, 개인이 쏘아 보내는 MLRS(다 연장 로켓 시스템: 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수준이다.
방금 쏘아 낸 쇠버리가 족히 수백 개는 되었고, 집결 중이던 왜구들은 비명과 함께 거의 절반이 바닥을 뒹굴었다.
한서윤이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만들어 낸 결과이다.
투다다닥, 철컥~
척컥 철컥 투다닥~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리니 신도익과 사포의 병사들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모두 포위해라.”
신도익의 지휘하에 병사들이 오른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우측 방향으로 이동, 공격해 오는 놈들은 바로 사살해라.”
신도익이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시하자 병사들은 우측으로 달려가며, 혹시나 1호청의 후미 쪽으로 도주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려는 것 같았다.
태영과 한서윤이 있으니 앞쪽은 완전히 신경을 끈 모습이다.
“장호, 조이슬 뒤로 물러나.”
비서실 서윤의 직속 중에 둘이 신도익을 따라온 걸 확인한 서윤이 소리쳤다. 너무 왜구들 가까이 붙지 말라는 말이다.
탕~
조이슬의 총구에서 총성이 울렸다.
컥~
조그만 체구의 조이슬이 만만해 보였던지 그쪽으로 달려가던 왜구 하나가 가슴에서 피가 튀며 바닥을 뒹굴었다.
저 총성은 아마 조이슬의 첫 살인일 터였고, 아니나 다를까 눈을 감고 온몸을 덜덜 떨었다.
총구는 반쯤 내려갔고 총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막상 자신에게 덤비자 총을 쏘기는 했지만, 그렇게 피가 튀고 그대로 쓰러지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태영조차도 처음에 얼마나 놀랐던가?
사포의 여군들이야 나이도 어리기에 첫 살인에 대한 두려움은 더할 것이다.
왜구에게 끌려가다가 구해졌거나 가족들이 왜구들에게 참혹하게 죽은 아이들은 워낙 원한에 사무쳐서 첫 살인에 대한 충격과 두려움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조이슬은 개경에서 데리고 온 철장의 딸이기에 왜구들에 대한 감정이 조금 달랐다.
“조이슬, 정신 차려. 그러지 않으면 네가 죽게 된다.”
장호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탕, 타다당~
뒤이어 총소리가 울렸다.
조이슬이 쏜 총소리에 놀라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동료를 보고 놀라 허둥지둥하던 왜구들 중 몇 명이 눈을 감은 조이슬에게 덤벼들었고, 서윤이 날려 보낸 쇠버리에 관자놀이가 뚫려서 뒹굴었지만, 장호는 워낙 놀랐는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지는 왜구에게 총질을 해댔던 것이다.
그래, 잘한 거야.
그렇게 서로 보호해 주고, 도와주고 하는 것이다.
탕, 타다당~
타다당앙~
뒤로 돌아간 사포 병사들이 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에 서윤의 쇠버리에 많은 동료들이 죽은 것에 놀라고, 총소리에 놀란 왜구들이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고 앉기 시작했다. 아무도 항복하라 하지 않았고, 아무도 칼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서윤은 왜구들이 버린 무기들을 눈짓만으로 한쪽으로 날려서 쌓았다.
팅~
캉~
무기들이 날리며 서로 부딪치고 쇳소리를 내면서 쌓여 갔고, 뒤쪽에서 울리던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사포 병사의 고함 소리와 왜구들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소리들이 간간히 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조이슬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조이슬이 토했는지 한쪽에 쪼그려 앉아 입에서 침을 뱉어 내고 있고, 그 뒤에서 장호가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이슬의 한 손은 장호의 한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래,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다.”
언제 갔는지 한서윤이 조이슬의 등 뒤에서 등을 쓰다듬고 있다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이슬이 괜찮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키더니 태블릿을 쳐다보았다.
“여기요.”
그때, 한서윤이 태블릿을 태영에게 건네주었다.
태블릿 영상에서는 백색 탄의 연기가 흩어져 없어졌던 1병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곳은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