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75
175. 꺼지지 않는 불꽃(6)
제주의 참관단.
복수를 하겠다고 자원해서 왔지만 이들은 독하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은 순박하기만 한 사람들이니 당연한거다.
그래도 그 중에 고석찬을 비롯한 일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왜구들이 지르는 고통의 현장을 지켜보았고, 뜻하지 않게 불을 붙일 때는 벌벌 떨던 고유하가 얼굴도 눈도 벌게진 채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보았다.
입은 연신 조금씩 오물거리는 모습이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잔디야, 저놈의 손 위에 한 조각 올리고 불씨도 전해 줘라. 아니다 저 중에 고유하? 저 아이에게 시키거나.”
“네, 대장님.”
태영은 고유하의 입 모양에서 그녀가 하는 말을 읽었다.
고유하는 척척 나와서 잔디에게서 병과 집게를 받아 들더니 수평으로 묶여 있는 영주의 팔뚝에 제법 큰 백린 조각을 올리고 불씨까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가져다 대었다.
서슴없이 움직이는 것이 조금 전과는 확 달라진 모습이다.
“으으으, 으아아…… 아악.”
다이나누시인가?
영주라는 놈은 고통을 참으려 해 보았지만, 이건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백린이 자신의 살을 파고들면서 타오르는 고통을 참는다?
불가능하다.
죽고 싶을 것이다.
좌측 열둘째 줄의 영주 아들의 어깨에 올린 백린이 다 탄 모양이다.
피가 튀고 살이 튀고 자욱한 연기와 냄새가 피어나는 속에서 살이 타는 냄새까지 피어올랐고, 그놈은 이미 기절했다.
우측 열, 손자로 보이는 놈도 눈을 까뒤집고 온몸을 경련하듯 파닥거렸다. 백린의 연기와 냄새와 함께 왜국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연병장을 메웠다.
“지금부터 소리 내어 우는 놈이나 우는 년이 있으면, 그 조각을 한 개씩 주도록.”
태영의 말 한마디에 울음소리가 바로 그쳤다.
울음이라는 것이 한 번에 그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픽 웃음이 나온다.
저기 앉아 있는 놈들도 제주에 가지 않았을 뿐 역시 그들과 똑같이 잔인한 놈들이다.
여태, 고려 해안을 침략한 왜구들 중에 얌전하게 식량과 귀중품만 빼앗고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은 꼴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저들을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고, 가능하면 향후 수십 년은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짓밟아야 한다.
으아악~ 크으으으, 카악~
지금도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영주를 쳐다보니, 팔뚝 안으로 반쯤 타고 들어간 백린이 계속해서 노랗고 붉은 불을 뿜어내면서 허연 연기를 풀풀 날리고 있고, 입을 앙다문 채 비명을 참아 보려고 하지만, 입 사이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리고 있고,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 번들거린다.
이 겨울에 저런 땀이라니.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 늦어지거나, 안 하면 네 아들이나 딸, 그리고 손자에게 저걸 한 개씩 선물하마. 그러니 대답하지 않거나 천천히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놈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패악은 생각하지도 않고, 분명 태영을 잔인하다 할 것이다.
고가 미테루도 그렇게 말했었고, 모지하타에서도 와카마쓰에서도 왜구들은 그렇게 말했었다.
악마라고.
잔인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다.
제 놈들이 고려 연안에 들어와서 고려의 양민들에게 한 짓은 그럼 천사의 날갯짓인가?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지금 이 시대는 아니지만, 조선인들을 끌어다가 배를 가르고, 목을 날리고, 생체 실험을 하고,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짓거리들은 그럼 뭐야?
그래서 태영은 이들에게 하는 이 일이, 즐거운 것은 아니어도 미안함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이놈들이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한 것은 사포의 병사들도, 제주의 참관단도 모두 겪어 온 일이니 다들 잘 아는 일이다.
“고려 해안을 침략한 이유가 뭐냐?”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
해야 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태영이 이들을 상대로 이런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
“…….”
“또 대답을 안 한다는 거지? 알았다. 저기 우측 줄 가운에 저 어린 놈 끌어내라.”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놈들도 제 새끼 귀한 것은 안단 말이지. 고려에 와서는 그렇게 잔인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그래? 좋아. 그 어린 놈 끌어내는 거 잠시 유보.”
***
이들은 영주를 다이나누시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태영이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다이묘라는 호칭은 아직 사용되지 않는, 한참 후에 사용되는 호칭인 모양이다.
나가사키의 다이나누시인 료마〔龍馬〕는 고가 미테루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둘이 친분이 있다고 할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던 것처럼, 이들과 막부와의 관계 또한 불가근불가원의 관계, 딱 그 정도 수준이다.
막부는 왕실의 개념적 존재로 두고, 자신들의 힘을 키워서 일본 열도 전체를 장악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 이미 열도를 장악하고 있지만 각 지방의 영주들이 막부에 복종하고 있지 않으니,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서 장차 완전하게 복종하는 세력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고려나 송나라나 비교해서 별다를 것도 없지만, 왜국은 두 나라에 비해서 지방 정권이 훨씬 더 강했다.
그러다 보니 중앙 정권이 지방 정권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고려도 비슷하다는 말이지요?”
장교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을 때, 김웅겸이 물었다.
“그래, 그래도 차이는 있어.”
“그 차이라는 것이…….”
이번에는 한서윤이다.
“고려는 지방의 영주가 제법 힘을 가지고 있어도 황실에 복종하거나, 복종하는 형식은 취하고 있어. 그런데 왜국은 완전히 달라.”
“전혀 복종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래. 그래서 적이 아닌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원도 많이 해야 하고, 여자도 선물로 주고 한다는 거지. 다들 함께 들었듯이.”
“그래서 이놈들 창고에서 금괴가 그리 많이 나온 건가?”
1호청에서 찾아낸 귀중품과 금괴와 은자들이 정말 많았지만, 은자보다 금괴가 더 많았다.
“그리고 희귀한 진주도.”
송나라에서나 고려 땅에서 본 적이 없는 것이 진주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영롱한 빛을 내는 진주를 제법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게 진주라구요?”
“응. 맞아. 그리고 귀한 물건이기도 하고.”
보석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고, 21세기에는 흔해 빠진 것이어서 잘 모르지만, 이 시대는 귀한 물건이 틀림없다.
“자, 그러면 우리는 고가 미테루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은 것 같지 않아?”
태영이 주의를 환기시키며 원래 이야기하려고 했던 주제로 끌어당겼다.
사실 드론을 3백킬로나 떨어진 지역으로 날려 보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지형 정찰의 수준이나 타이밍이 잘 맞을 경우에 밀담을 듣는 정도일 뿐,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지방의 영주를 잡아 고문해서 정보를 빼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영주 가족들을 고문하면서 영주의 기를 꺾어 고분고분해지도록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왜국의 왕실이나 막부에서는 이 서해도 지역이 다루기 힘들고, 자신의 편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 그냥 고려에 줘 버려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 이런 것 같은데요?”
한서윤이 자신이 느낀 점을 말했다.
“저도 그 생각입니다. 이들은 해적질을 일상으로 하고 있는 집단이어서 어지간한 지원 정도는 고려나 송나라에 해적질 한번 다녀오면 그 정도는 된다는 생각이고, 해적질을 더 재미있어하는 편이어서 본토의 권력 싸움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것 같습니다.”
김웅겸이 서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이 시대의 왕실의 힘이나 영주의 힘을 비교해 보면 딱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본토의 왜구들보다 더 잘 싸운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신도익의 말이다.
“그건 나도 그래.”
태영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료마의 말을 얼마나 믿을 것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서해도 지역의 왜구들이 다른 지역의 왜구들보다 훨씬 무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식사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서 이곳 영주와 막부와의 관계, 왕실과의 관계, 그리고 각 지역별 영주와 영주들의 관계에 대한 공통분모를 도출해서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의견 교환을 했다.
이것은 매우 큰 소득이다.
고가 미테루의 청을 들어주고 서해도를 고려에 귀속시키는 일을 진행하는데 이런 정보와 공감대는 많은 도움을 준다.
소득이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해도 지역 각 영주들의 세력 판도와 남해도의 세력 판도도 어느 정도 입수했다.
태영이 여태 알고 있던 시코쿠는 그냥 남해도(南海島)였다.
테르에서, 남해도에 아와국(阿波國), 사누키국(?岐國), 이요국(伊予國), 도사국(土佐國)의 4개 구니가 있었다는 뜻에서 ‘시코쿠(四國)’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고, 23세기 지도에는 도쿠시마현, 가가와현, 에히메현, 고치현으로 되어 있지만, 지금은 13세기이니 그냥 남해도가 맞다.
아무튼 정확성이나 신뢰도는 모르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믿지만 않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태풍의 계절이 오기 전에 상산을 침략했던 놈들을 다시 한번 조져 놓고 그쪽의 정보를 마저 입수해서 어느 정도 취합할 생각이다.
물론, 사람의 생각은 아침과 저녁으로 바뀌어서 그사이에 나가사키 영주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또 고가 미테루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 시대는 그런 변화를 재빠르게 실천하지 못한다.
***
“출발 준비 다 했습니다.”
“그래. 출발하지.”
나가사키에서 필요했던 일은 다 끝났다.
이들에게 매년 일정량의 광물을 조공할 것.
그리고 이번에 남자 3백과 여자 2백을 포로로 데리고 가는 것으로 정리했다.
아들과 손자를 볼모로 데려가는 것을 생각했지만, 숫자가 저리 많으면 포기해 버릴지 몰라 볼모로서의 가치가 없기에 그것은 실행하지 않았다.
“대장님, 여자들은 왜 데리고 가십니까?”
곽병선이 물었다.
“노예들 때문이야.”
“노예들 때문에요?”
곽병선은 잘 모르는 일이었기에 많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 그놈들이 욕구 불만을 해소하지 못해서 남자들끼리 그 짓을 하잖아. 그걸 해결해 주기 위해서야.”
“남자들끼리 그 짓을 하다니?”
이런 경우에 곽병선은 보기보다 맹하다.
“여자가 없으니까, 자기들끼리 남자의 후장에다 그 짓을 해서 그게 지금 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곽 중대장님.”
“네? 네? 네. 아아, 이제 이해했습니다.”
권우석이 손가락을 말아서 흉내를 내면서 해 주는 보충 설명을 들은 곽병선이 그때서야 이해했단다.
“그 때문에 뒤가 완전히 헐어서 하루에 수십 명이 일을 못 하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병이 들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을 자기들끼리 쉬쉬하는 바람에 몇 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크, 전혀 짐작도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요. 실태 조사를 하다가 알았는데, 그래서 이번에 대장님이 여자들을 좀 잡아다가 식사 해결과 그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하자고 하신 겁니다.”
갑판 한쪽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군 병사들 일부와 비서실 병사 일부가 고개를 돌리고 한쪽으로 가 버렸다.
“여자들 2백으로는 부족한 거 알지?”
“네, 그래서 제가 2중대 데리고 후쿠오카에 내려서 여자들 3백을 확보할 겁니다.”
후쿠오카에서 3백을 더 데려다가 여자가 5백 명이 되면, 지금 6천 명이 넘는 노예들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
“기마술은 어느 정도나 익혔어?”
1호 선실.
왼쪽 팔을 한서윤에게 내어 주고 둘이 나란히 누웠을 때 물었다. 새삼스럽지만,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 싶다.
아무리 봐도, 보고 또 봐도 볼수록 아름다운 여인이라니.
그 깡촌에서, 어쩌면 이런 아름다움을 제대로 발산하지도 못하고 스러져 갈 운명에 직면해서 태영과 만날 수 있게 되었는지.
“아직 좀 부족해요. 말하고 많이 친해지긴 한 것 같은데, 며칠 떨어져 있었다고 날 잊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럴 리야 있겠어?
“이번에 돌아가면 전투기와 헬기 자료 정리하는 거, 영어로 된 용어를 고려 말로 바꿔 주는 것만 좀 도와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기마술 익힐게요.”
“그래, 나하고 하연이, 그리고 서윤이를 위해 특별히 좋은 말을 선정해 줬다고 하니까, 잘 익혀.”
“성님은 다 익혔겠죠?”
“며칠 사이에 다 익힐 수 있겠어? 호장 일도 바쁜데. 비슷할 거야.”
“그래도, 아무튼 보름 후에는 제비골로 떠나야 하니까 그사이에 충분히 잘 익혀 둘게요.”
“그래.”
영어로 된 용어를 태영이 아니면 바꿔 줄 사람이 없었지만, 한서윤이 영어를 좀 할 수 있게 되면서 태영에게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생겼다.
영어를 한다고 용어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혀 못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서윤이 정리해 주지 못하는 것만 태영이 보면 되기에 다른 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태영은 항모와 상륙함, 고속정 같은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전투기인 콜세어는 함재기이고 항속 거리가 짧으니, 콜세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려면 필수적으로 항모를 만들어야 한다.
헬기는 치누크 헬기와 비슷한 4익 헬기로 태영이 살던 시대에는 없던, 그 이후에 개발된 것이어서 당시의 치누크헬기보다 월등히 성능이 뛰어나다.
그로 인해, 오히려 콜세어 전투기보다 훨씬 성능이 좋지만, 그 역시 항모가 필요하다.
항모에 원자력 같은 걸 사용하면 좋지만, 원자력 엔진 같은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니, 그것은 예외로 해야 할 것이다.
대신, 석탄에서 휘발유와 경유 정도를 추출해 내는데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석탄에서 추출한 정도의 휘발유만으로도 어느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휘발유를 사용하는 엔진들을 양산해 내기 시작하면 절대적으로 모자랄 것이기에, 원유를 확보하고 정유를 해야 한다.
항모도 콜세어도 헬기도 휘발유 엔진을 사용하고, 기름을 무지막지하게 먹기에 원유를 확보하여 정유하지 못하면 그냥 꿈일 뿐이다.
10년 안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할까?
몽골이 고려를 침공하기 전에 가능하면 완성시키고 싶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 중에 생산한 항모의 대수와 만든 기간을 대입하면 항공모함 1대를 만드는데 평균 9일이 걸렸다고 했다.
자원은 넘치고, 기술자는 많고 땅도 넓지만, 무엇보다 준비된 것들이 많았으니 가능한 일이다.
거기에 비해,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사포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 내고 싶다.
태영과 서윤이 만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두 달 쯤 있으면 1년이 된다.
1년 전 그때 서윤은 태영에게 말했었다. 사포에서 군인이 되고 싶다고.
그 이유를 자신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추고, 가능하면 1년이 되는 날 부모 형제의 유해를 수습하고 싶다고 했었다. 유해를 수습하여 외할아버지에게 보내려 한다 했었다.
그 마음씨에 얼마나 기특해했었던가?
쪽~
“그때, 저를 구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서방님.”
서윤이 고개를 돌려 태영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는 촉촉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절대로, 제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날의 일은.”
그래.
서윤을 구하기는 했지만, 개경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데려가지 못하고 혼자 떠났을 때, 목을 매었던 그날을 태영도 잊지 못한다.
태영은 머리를 받치고 있던 왼팔을 당겨서 서윤의 입술에 키스했다.
쪼옥~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웠어. 눈물이 날 만큼.”
“흡.”
서윤의 입에서 울음소리 같은 짧은 숨소리가 들렸다.
서윤이 기절한 듯 쓰러져 있었지만, 태영이 그날 서윤을 그 나무에서 끌어내린 뒤에 했던 말을 듣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찰나지간에 보였던 미소에서 그것을 느꼈으니.
“고마워요. 감사해요.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해요, 서방님.”
그래, 나도 사랑한다.
태영과 서윤이 작게 속삭이느라 떨어졌던 입술이 다가오고, 혀를 들이밀어 태영의 입안으로 깊이 들어오면서 몸을 돌려 태영의 배 위로 자신의 몸을 끌어 올렸다.
매끄러운 살결, 그 따사롭고 보드라운 느낌이 얇은 속옷으로 가려진 태영의 몸 위에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