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81
181. 비가(悲歌)(5)
다음 날, 같은 요릿집.
머리도 희고, 수염도 흰 노인 부부, 원래 잘생겼는지 곱게 늙었는지 인상이 아주 좋은 노부부이다.
그리고 그 유전자를 쏙 빼다 박은 듯한 중년의 부부 세 쌍, 그리고 애들이 무려 11명인데, 애들이 아니다. 이미 그 중에 여섯은 혼인을 했고, 자식들까지 있으니 아이라 볼 수 없다.
빽빽거리는 애새끼들은 다 두고 오라 했으니, 그렇게 어른으로 볼 수 있는 사람만 열아홉이나 된다.
그런데 다 잘생기고 다 예쁘다. 참, 이럴 수도 있는 거야?
우월한 DNA는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마치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들만 모여 있는 식당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김윤경이 초대를 하여 같이 자리했다.
초대자가 태영이나 서윤이면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니 우습기도 할 것이지만, 김윤경이 초대를 하니 이상할 것이 없었다.
노인은 태영의 행보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최충헌을 때려잡은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다 마쳤다.
최충헌을 잡는 이야기의 정점에서는 탄성을 자아내며 좋아하기도 했고.
일부러 태영이 그쪽으로 대화를 유도해서 시간을 질질 끌며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영감마님,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식사를 다 마쳤을 때, 김윤경이 먼저 자리를 일어섰다.
“아니, 교장 선생님은 왜요?”
자신의 이름은 김호경이며 전중감에 있다는 사람이 물었다.
“오늘 자리는 제가 모시기는 했지만, 사실상 이 두 분의 초대입니다. 그리고 두 분이 더 하실 이야기가 있으니 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서 태영과 서윤을 가리켰다.
“너희도 일어나자.”
그리 말하며 규하 부부에게 손짓을 했다.
“혹시, 무슨?”
“그것은 조금 후, 우리들이 떠나고 난 뒤에 말씀 나누시지요.”
김윤경도 오두방정 떨지 않으면 저리 의젓한데.
하긴 오두방정 떠는 것은 사포 사람들만 있을 때이기는 하다.
김윤경이 나가자, 곧 요릿집의 일꾼들이 들어와 다 먹은 밥상을 상째로 들고 나갔다. 그리고 상이 놓였던 자리를 치우고 정리하는 어수선한 시간이 잠시 있었다.
이제 다과상이 들어올 차례이다.
서윤은 일어서서 노인의 앞에 정자세로 섰다.
“왜, 무슨 할 말이 있으시오?”
서윤이 그렇게 서자 노인과 할머니, 그리고 주위에서도 조금 놀란 듯했다.
서윤은 그 자세에서 천천히 허리를 숙여 정중한 태도로 큰절을 했다.
“왜, 왜 이러시오? 부실장님.”
놀랄 일이지.
소문은 무성했지만,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 식사를 초대했다고 방금 전에 들었는데, 이리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니 얼마나 놀랐을까?
노인도, 김호경도 그 옆에 김중경도 이게 무슨 일이냐고 했고, 정면에서 절을 받은 노인과 할머니는 엉덩이를 반쯤 일으키며 허리를 반쯤 숙여서 인사를 받았다.
서윤이 노인의 정면에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노인은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며 얼굴까지 벌게졌지만, 어버버하는 수준이다.
“제 어머니는 김씨 성에 아자 선자를 쓰시고, 부친은 당시에 성이 없었으나 선자 도자 이름을 쓰셨다 하옵니다.”
그렇게 말하는 서윤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더니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태영도 그 한마디에 울컥했다.
이런, 미친.
왜 그 말에 이리 울컥하냐? 서윤의 눈물 때문인가?
“뭐?”
“뭐라?”
“뭐라고?”
“뭐, 머시라.”
“그럼, 그럼?”
“아아.”
“하, 하아.”
“누구? 누구라고?”
그 말로 서윤과 노인과의 관계가 모두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방 안은 난리가 났다.
저 수많은 다양한 외마디의 질문이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냥 발칵 뒤집혔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노인, 서윤의 외조부는 입을 벙긋벙긋할 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도 외삼촌들도 모두 다 아무 말 못 했다.
20여 년 전에 서찰 한 장 남겨 두고 집안의 노비와 함께 사라져 버린 딸.
20여 년 전에 사라져 버린 여동생, 그리고 누나.
기억 속에서조차 살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슴속에 묻힌 딸의 이름이 낯선 젊은 여인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떨까?
“아, 아버지.”
노인 김정래가 기절했다.
큰아들 김호경이 아버지를 부르고, 아내인 할머니와 이모 김유선이 노인 김정래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태영을 쳐다보다가 서윤을 쳐다보다가 노인을 쳐다보았다.
방 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의무병.”
태영이 문을 열고 밖을 향해 불렀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역시 그들도 다른 방에서 식사를 하고 대기하라고 했었다. 아마, 김윤경과 정규하 부부도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네, 대장님.”
의무병 둘이 재빨리 뛰어오고, 구급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귀에 걸자마자 옷고름 사이를 열고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눈을 뒤집어 보고, 코앞에 손을 대보고 하더니 태영을 향했다.
“잠시 혼절했지만 아무 이상 없습니다. 지금 주사로 깨워 드릴까요?”
“주사 놓지 않으면 얼마나 걸릴까?”
“이런 경우 젊은 사람은 금방 깨어나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조금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되었어. 수고했다.”
“넵, 충성.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의무병이 절도 있게 경례를 하고 물러났다.
“네 이름이 서윤이라 했느냐?”
장내가 조금 수습되자 서윤과 많이 닮은 예쁜 여인이 조용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까, 인사를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반말을 하지 않았었다.
이제, 조카인 것을 알았으니 그리 말했던 것이다.
“네, 한서윤이라 하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서윤이 대답을 않고 한참을 있다가 울음을 참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인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더니 그대로 흘러내렸다. 그러곤 서윤을 와락 껴안았다.
“무정한 것, 저 대신 이제야 겨우 딸을 돌려보내다니.”
“…….”
“내가 네 이모이다. 네 엄마 아선이의 언니 유선이.”
“네, 이모님.”
한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기줄기 흘렀다.
혹시, 종놈과 야반도주한 못된 년의 딸이 어디 감히 발을 들이느냐고, 문전 박대를 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는데, 그래서 이런 방법을 썼었는데, 걱정했던 생각과 달리 너무나 다정한 말투였다.
“이렇게 예쁘게 낳아서 잘 키웠으면, 당당하게 앞세우고 찾아와야지.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찾았다고.”
그랬군.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찾았다는 말은 용서했다는 의미다.
21세기 현대도 아니고, 통신 수단이라고는 인편으로 서찰을 전하는 방법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없는데, 이름 없는 산골짜기에 터를 잡고 살면, 연락할 길이 없으니 아무도 모르는 거지.
“어이쿠, 내 새끼.”
할머니의 주름진 거친 손이 서윤의 볼을 감쌌다.
“어쩌면 이리도 제 어미를 쏙 빼닮았을까? 그래서 처음 얼굴을 볼 때부터 낯이 익었던 거였어. 그랬어.”
그랬었다.
사실상 노인과 할머니는 처음 볼 때부터 시작해 식사를 하는 내내 서윤을 훔쳐보듯 쳐다보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만의 말을 나누며 소곤거리기도 했었다.
딸의 얼굴을 쏙 빼닮은 손녀라면 낯이 익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그리고 핏줄은 서로 당긴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헤어스타일도 다르고, 사포의 여인들은 비록 단 한 가지뿐이지만, 화장품을 사용하기에 얼굴이 유난히 희고, 잡티가 없으며 윤기가 흐른다. 거기다가 서윤의 피부는 사포에 살기 시작하면서 정말 백옥같이 변했다.
그래서 몰랐던 거였다.
이제부터 가족 상봉의 시간이다.
외숙부 김호경은 종5품 승으로 전중감에 있고, 외삼촌 김중경은 정6품으로 상서성에 있단다.
이모부인 서필한은 종7품으로 예부에서 일한단다.
손위 사촌, 손아래 사촌, 모두 외사촌이긴 하지만, 모두 인사를 하는데 절반 정도는 손위, 또 절반 정도는 손아래 사촌이다.
일부는 출사를 했고, 또 일부는 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렇게 사촌 형제들 간의 인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서윤의 조부인 김정래가 깨어났다. 하지만 처음의 자리에 앉았을 뿐 몸을 일으켜 서지는 못했다.
“어디 보자. 우리 손녀 손이나 제대로 잡아 보자.”
이 한마디로 그간 염려했던 모든 것이 풀려 버렸다.
받아들일지 아닐지 걱정했던 것이 그냥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에이 참, 괜한 걱정했네.
“네, 할아버지.”
아직도 여전히 눈물이 그치지 않은 서윤이 김정래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김정래는 서윤의 손을 만지고, 얼굴을 만지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옷을 만졌다.
드륵~
그때 문이 열리며 김윤경이 들어섰다.
“가족 상봉인데, 알려 드릴 것은 알려야 해서 제가 다시 왔습니다.”
“……?”
다들 다시 들어온 김윤경을 보고 의아한 표정이었다.
간다더니?
“사석에서는 손녀이고, 조카이고 사촌이지만, 공석에서는 정2품의 품계가 제수되어 있으니, 공석에서 처신을 어찌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려 드리려고 다시 왔습니다.”
제수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대접하라고 최세헌이 말했을 뿐이다.
정2품이면 문하시중이나 상서령 같은 고위직의 바로 아래인, 중서시랑 평장사, 문하시랑 평장사 같은 사람들과 동급이다. 군에서는 상장군이 최고위직인데 정3품이다.
그 말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하.”
“평장사 어른?”
그렇게 말을 한 사람은 이모부 서필한이다.
서필한은 예부에 있다 했으니 그런 부분에 민감할 터이다.
“내 손녀가 평장사라고?”
기절할 일이지.
비록 정식으로 제수된 품계가 아니지만, 이곳에서 가장 품계가 높으니.
“자, 다과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저는 이만 가야 할 모양입니다. 서윤아, 우리 친구 맞지? 나도 네 뒷배로 어찌 승진 좀 안 될까? 안 될까? 아니 될까?”
김윤경의 버릇이 또 나왔다.
김윤경이 장난을 치고는 윙크까지 한 뒤 촐랑거리고 나가니, 다과상이 들어왔다.
“상석으로 모셔라. 아무리 손녀라고 해도 아래위가 있는 법이니라.”
다과가 놓이고 일꾼들이 나가자 김정래가 굵은 목소리로 근엄하게 말했다.
허, 이런.
“할아버지, 아닙니다. 제 서방님은 교정별감보다 높으신 분인데 아예 품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상석에 앉을 수는 없습니다.”
할아버지라는 말이 아주 쉽게 나오긴 했는데,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서윤의 그 말에 방 안의 모두가 또 한 번 얼어붙었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태영에게로 쏟아졌다.
설마, 교정별감보다 높다니?
말이 되는 소리야?
교정별감 위에는 황제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데?
이건, 김정래의 집안으로 보면, 21세기 기준으로 생각해서 길 가다가 1등 당첨된 로또 복권 표를 주운 거다.
이 시대는 권력자가 앞에서 끌어 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손녀사위가 교정별감보다 높다니.
“허허, 정말 대단한 손녀사위를 봤네. 내 소문은 익히 들었소.”
평대 비슷한 존대다. 말을 낮추지는 않겠다는 소리다.
태영은 웃기만 했다.
“그럼, 사포재가 우리 평장사께서 개경에 오셨을 때 기거하는 곳이 맞소?”
조부 김정래는 서윤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김윤경이 이걸 노렸던 건가?
“할아버지 말씀 낮추세요. 그러면 제가 불편합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지. 조정에서 내린 품계가 있는데,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오. 아무리 손녀라고 해도 지킬 것은 지켜야지. 너희들도 모두 알겠느냐?”
“네, 아버님.”
모두 입을 모아 합창하듯 대답했다.
참, 품계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야.
“자, 이제 우리 평장사 어른께서 어디에 사셨으며, 어떻게 사셨으며, 어떻게 이 할아비를 찾아오게 되었는지 좀 들어 봅시다. 궁금한 이야기가 참 많아요.”
“네, 할아버지. 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서윤이 일어섰다.
“중대장님.”
문을 열고 김처인을 불렀다.
“충성! 중대장 김처인, 부실장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김처인도 장단을 맞춘다.
평소에 저 정도까지는 안 하는데, 서윤의 친척들이 보고 있으니 보란 듯이 오버한다.
“그거 좀 가져다주세요.”
“넵, 중대장 김처인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충성!”
“사포의 군인들은 다 저렇습니까?”
외숙부인 김호경이 물었다.
김호경은 반공대도 아닌, 완전한 공대를 했다.
“호호호, 정말 대단합니다. 저런 사람들이 우리 평장사 어른의 부하라니,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겠습니다, 조카님.”
이번에는 김유선이다.
아, 이 사람들이 놀리는 거야, 뭐야?
부담스럽게시리.
그런데 김처인이 선두에 서고 병사들이 유골함을 가슴에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한, 선자 도자. 아버지이십니다, 한씨 성은 제 서방님이신 대장님께서 주셨습니다.”
유골함이 내려질 때 서윤이 조용하게 말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함 위에는 화선지에 쓰인 이름이 붙어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김, 아자 선자, 어머니이십니다.”
할머니는 노구를 움직여 모친의 유골함을 품에 안았다.
“아선아, 이 못난 것아. 흐윽, 으흐흐흑.”
소리 죽여 속으로 삼키는 흐느낌.
딸을 먼저 보낸 부모가 그 딸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쓰다듬는 심정이 어떨까?
“한서준. 오라버니입니다. 그리고 한서현 여동생입니다.”
낮게 소리 죽여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방 안을 메웠다.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유골함을 쓰다듬고, 눈물을 닦고, 서로를 쳐다보고, 그럴 뿐이었다.
“자식을 이렇게 여럿 두어 놓고 어찌하여 한 명만 내게 보내고 모두 데려갔느냐? 내가 그리 원망스럽더냐?”
김정래의 한 서린 말에 모두 침음을 삼켰다.
이렇게 슬프고,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은 태영도 몰랐다.
이제 서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니, 서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일기장에서 본 내용.
태영도 대부분 아는 이야기들이 서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서윤이 말을 하면, 맞다, 그랬었다, 그놈의 개새끼라고 말하는 외숙부의 말, 기껏 그걸 가지고 도망을 치면 어디서 살 거라고. 내 것도 많고, 어머니 것도 많았는데, 이왕 도망을 가려면 있는 대로 좀 가지고 가지 않고, 라고 말하는 이모.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리 말을 할까.
참 착한 이모이다.
제비골에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모두들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런 놈들을 그냥 두고 왔단 말이오?”
김호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거의 고함을 쳤다.
“아닙니다, 외숙부. 아버님과 어머님의 유해를 수습하러 가서, 그동안 힘이 없어 당하고만 살았던 그 모든 원을 갚았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말이오?”
“아버지와 어머니, 오라버니와 여동생을 죽게 하는데 직접적으로 손을 쓴 스물여섯의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곁에서 거들었던 여섯의 팔을 하나씩 거두었습니다. 또, 불타서 무너진 집은 원상 복구하라고 시켰고, 1년에 한번 반드시 그 집에 가서 제를 지내라 했습니다.”
한숨을 쉬는 사람.
표정이 없는 사람.
속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들을 한번 쭉 보았다.
살인귀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서윤이 이야기할 때, 그것이 걱정이었다. 다만, 이 시대의 사람들과 21세기의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
“잘했소이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셨소?”
“제가 느낀 원한을 다 갚고자 한다면 모두의 목숨을 거두어도 과하지 않다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그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장님과 아까 그 병사들이 한 일입니까?”
이모부인 서필한의 질문이다.
오, 저 질문 굿이다.
바로 저런 질문이 나와 줘야 해.
“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장모님과 장인어른, 그리고 처남과 처제의 원을 풀어 주었습니다.”
서윤이 대답하기 전에 태영이 냉큼 대답했다.
서윤이 태영을 돌아보자 태영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짐, 사람을 죽였다는 짐, 그건 네가 지면 안 돼. 그 짐은 내가 져야 하는 거야, 알지?
태영과 가까이 앉아 있던 이모가 태영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꼭 어머니의 손길 같은데.
아, 씨. 이러니까 엄마 보고 싶다.
유치하게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고 있고 말이야.
엄마, 엄마하고 투정부릴 나이도 아닌데, 손주를 보여 드리면 얼마나 좋아할까?
“혹시, 아버지의 가족 중에 생존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야기의 끝에 서윤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고, 네 아비의 동생이 장성하여 혼인을 했는데, 아이가 넷이 있다만?”
김정래가 왜 그러느냐는 듯 물었다.
노비는 대를 물려 노비이다. 결코 그 신분을 벗어날 수가 없다.
“가족 전부를 제가 사포로 모셔 가도 되겠습니까?”
“왜?”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숙부님과 가족들은 제가 사는 사포로 모시고 싶습니다.”
숙부, 숙부님이라.
중얼거리는 말들이 들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아버지의 동색이면 숙부가 맞지.
“사포에는 반상의 구분이 없습니다.”
태영의 말에 모두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