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85
185. 마쓰야마의 고려인(2)
“우린 저기 내려 줘.”
태블릿의 지도에 이요나가하마라는 곳이 우측에 보일 때 태영은 송복기에게 말했다.
23세기 지도에는 기차역이 있는 곳이지만, 지금 시야에 보이는 모습은 아주 작은 어촌이다.
“네, 배를 천천히 세우겠습니다.”
작전은 김웅겸에게 맡겨도 이젠 충분하다. 생각보다 잘하고 있으니까.
“옷은 잘 입었지?”
“네, 오리털 외투, 그 위에 가죽조끼. 그래서 따뜻해요. 여분의 쇠버리만 잘 챙기면 돼요.”
“등짐 속에 3만 개 들었으니 어느 정도 가능할 거야.”
“도는? 다 챙기셨네요. 그럼 가요.”
서윤은 태영의 허리에 걸린 지천과 월랑을 보고 자신의 허리에 걸린 매후를 툭툭 치면서 뱃전으로 나갔다.
“가자.”
“네.”
황룡호에 매달려 있는 전마선이 당겨지고 그곳으로 사다리가 내려졌다.
저 전마선은 태영이 잠시 사용하고 버리기 위해 지나오던 길목의 히메시마무라라는 작은 섬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어부는?
운이 없는 어부지만, 죽이고 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저희들은 고려 해안을 약탈 갔을 때, 눈에 띈 어부를 살려 줬나?
아니거든.
부근에 다른 배들도 많이 있던데, 그 정도면 조금 춥긴 해도 헤엄쳐 가면 살 수 있을 테니 아주 다행이지.
수영을 못하면?
이 시대의 어부가 수영을 못하면 죽어야지. 그것까지 어쩌라고?
카누처럼 좌우로 노를 내린 형태가 아니라, 노가 뒤쪽으로 나와 있는 형태이다.
태영이 노를 잡고 육지를 향해 저어가기 시작하자 뱃전의 병사들이 경례를 한다.
“그러다 노 부러져요.”
한서윤이 경례를 받고는 태영에게 한마디 한다.
너무 빨리 노를 저어서 노가 부러질 것처럼 휘어졌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는 힘을 조금 줄였다.
강 좌측으로 가자 강 상류로부터 흘러내려 쌓인 토사가 제법 많이 쌓여 있다.
강폭이 좁아서 삼각주가 만들어지지는 못한 모양이다.
“보자, 단단한가?”
배를 대고 한쪽 발만 내려서 밟아 보자 살짝 들어가는 느낌이 있을 뿐 푹 빠지지는 않았다.
“괜찮아 보이네요.”
“그래, 여기서 내리자.”
토사가 쌓인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부 한명이 이곳을 쳐다본다.
쳐다보거나 말거나.
남자의 눈으로 한서윤을 쳐다보면 돌을 날려 작살을 내 버리려 했는데 힐끗 쳐다보고 만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멀리 해룡호와 흑룡호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본다.
저 배 두 척은 내일 새벽까지는 이동하지 않고 저곳에 그냥 서 있을 것이다.
저 지점에서 마쓰야마 해안까지 30여 킬로이니 천천히 가도 2시간이 안 걸린다.
바다도 잔잔해서 하루를 보내기에 적당했다.
태풍이 불지 않으면 이곳의 바다는 잔잔할 수밖에 없다.
동서남북이 모두 육지로 막혀 있는, 어쩌면 아주 넓은 호수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태영이 타고 온 배를 토사가 쌓인 곳으로 끌어 올릴 때, 어부의 놀란 모습이 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끌어 올린 뒤 토사 지역을 벗어나 육지로 올라섰고, 몇 가구 없는 집들을 지나갔다.
그다음부터는 인적이 없는,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도 잘 보이지 않는 길이 해안을 따라 나 있었다. 그다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는 것이다.
23세기의 지도에는 철로가 해안을 따라 마쓰야마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멀리에서 내려 정찰과 조사를 하려고 하면, 간혹 이 시대의 사람들을 너무 21세기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안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업혀도 돼, 이제.”
“응, 네. 그런데 길이 좀 위험해 보이지 않아요?”
길의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그냥 비탈인데, 바위가 듬성듬성 솟아 있으니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한다.
다른 사람이야 그럴지 몰라도 서윤을 업어도 태영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이 정도야 괜찮아. 안경 끼고.”
“네.”
빨리 달리면 눈을 보호할 안경은 필수이다.
“음, 멋진데?”
“서방님도요.”
이번에 새로 만든 안경은 색을 좀 넣어서 선글라스처럼 보인다.
한서윤을 업고, 길이 좋지 않아 여유 있게 달렸음에도 십여 분 후에 마쓰야마에 도착했다.
지도상에는 매우 넓은 들판이었는데, 아주 일부만 들판인 것을 보니, 이곳은 아직 간척하기 전인 모양이다.
사실, 논은 이 시대보다는 시대적으로는 한참 후인 근대에 들어서 바다를 간척해서 만들어진 곳이 더 많다.
고려의 호남 지방의 호남평야나 경기평야같이 천혜의 곡창 지대가 아닌, 바다 쪽으로 나와 있는 평야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봐야 한다.
태영이 호남 지방으로 곡물을 사러 가지 않는 이유는, 호남과 경기평야에서 나는 곡물이 고려의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에 거긴 조정에서 가져가라고 하고, 태영은 송나라에서 사 오거나 왜국에서 털어 오는 것이다.
마쓰야마는 지도에서보다는 간척이 덜 되어 있기는 해도 제법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다.
“여기 우리가 차지하면 식량 조달에 도움이 많이 되겠는데.”
“네, 그럴 것 같아요.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구도 자꾸 늘고 있으니.”
사포와 인근을 합치고, 노예를 합치면 인구가 2만 명에 육박하니 필요로 하는 식량도 무척이나 많다.
처음 사포와 율촌을 합쳐서 2천도 안 되었던 것에 비하면 거의 10배가 늘어난 셈이다.
“그래도 10만 명은 되어야 해.”
“와, 그렇게나 많이요?”
“응.”
태영의 목표는 10년 안에 10만이다.
그래 봐야 21세기로 보면 읍 정도의 수준이지만, 이 시대로 보면 제법 움직일 만한 인구가 된다.
그런데 이놈들은 이렇게 넓은 농토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상산에 그 많은 병력을 보내 털려고 한 이유가 뭘까?
탁~ 타닥~
달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시야에 산이 가까이 보이자 천천히 멈추었다.
“태블릿에서 본 산이 저거였지?”
“네, 맞아요. 그런데 저기 바다 좀 보세요.”
태영도 아까 흘깃 보긴 했었다.
“배가 제법 있네.”
“네, 올봄에 상산에 쳐들어온 배를 모조리 수장시켰는데, 그새 제법 많이 건조했네요.”
“그럴 수밖에. 저기 봐, 저기가 조선소인 모양인데 굉장히 넓네.”
태영의 시선이 돌아간 곳은 수천 평이 될 듯한 부지에 지금도 여전히 십여 척의 배들이 건조되고 있었다.
배를 건조하느라 붙어 있는 사람의 수도 대단히 많다.
“배들을 모두 잃어버려서 부지런히 건조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그래, 나중에 저기도 자세히 조사를 좀 하자.”
“네.”
태영은 정하연을 등에 업은 채로 마쓰야마의 북동쪽 방향에 있는 산을 향해 달렸다.
아무리 남쪽이라고 해도 겨울이다 보니, 들판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논에 이따금씩 볏짚이 서 있는 것이 전부이고, 들에는 집들이 몇 채씩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쓰야마 중앙을 흐르는 개천을 지나 북동쪽으로 달리자 들판 중간에 볼록 솟은 산이 보이고, 그 앞쪽에 넓게 펼쳐진 공터가 보였다.
수천 평은 되어 보이는 지역에 마구간처럼 지어진 건물과 말들이 이동하는 걸 보니 아마 저곳이 연병장이면서 기마 훈련을 겸하는 곳 같았다.
병영의 역할도 하는지 무척이나 많은, 작은 목조 가옥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그곳에는 갑옷을 갖춰 입거나 평복의 왜구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저기, 병력이 제법 있는데.”
올봄에 상산에서 정말 많이 죽었는데도 눈에 보이는 병력이 제법 된다. 눈에 보이는 병력이 다가 아닐 것인데, 대충 보이는 병력만 천은 넘을 것 같다.
“네, 말도 제법 있구요.”
“그러게, 저 말들도 모조리 싣고 갔으면 좋겠는데, 여긴 지나치는 길이어서 좀 곤란하네.”
“모두 목을 베고 가죠.”
“그럴까?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저 뒤로 가지.”
말은 매우 뛰어난 전투 수단으로, 이 시대의 기마병이란 21세기의 전차병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왜국도 산악 지역이 많아서 기마병의 효용 가치가 유럽처럼 높지는 않은데, 웬 말들이 저리 많을까?
저 말들은 못 싣고 가면 서윤의 말처럼 모두 목을 베어 버리면 된다.
우선은 내일의 백색 탄 공격에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태영은 그 훈련장을 지나서 산의 오른쪽 측면으로 들어갔다.
산은 제법 수풀이 우거졌는데, 산 초입의 아주 넓은 부지에 꽤나 고급스럽게 지어진 장원이 늘어서 있고, 왜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담장도 제법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장원과 장원 사이는 마차가 지나갈 만큼 넓은 도로가 나 있는데, 나가사키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잘 정돈되고 부유해 보이는 곳이다.
그 장원들의 옆으로 돌자, 마차가 다닐 만한 넓은 길이 산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넓은 도로가 숲 가운데로 훤하게 뚫려서 산 위로 오르는 길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지도에서 보았던 산 위의 성인 듯했다.
“저 위가 마쓰야마 성이지?”
“네, 바로 올라가요?”
“그러지, 뭐. 우린 숲으로 가로질러 가자고.”
“네.”
태영은 산비탈을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러다 성벽이 보이자 멈추었지만, 토성인 데다 고려의 성곽들과 달리 성벽이 높지도 않고, 수직 벽도 아니었다.
“이게 뭔 성이야?”
“성은 맞는데, 석성도 아니고 그냥 흙벽인데요.”
“그렇지?”
“네.”
전략 요충지라면 성을 쌓고 방비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석성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일본의 전국 시대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기는 하다.
일본의 전국 시대는 15세기 말에 시작되어 약 백 년간의 전쟁 끝에 일본이 통일되고, 전국 시대가 끝나면서 임진왜란이 터졌으니, 이 시대에는 석성이 아닌 토성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임진왜란이 1592년, 아마 기억이 맞을 것이다.
그때 시작되었으니 16세기 말이 맞고, 그 전에 백 년간 이어진 전국 시대의 전쟁이라면 그 시작이 15세기 말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시대에 비록 토성이긴 하지만, 성이 축조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싶다.
임진왜란.
역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본이 백 년간의 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전쟁으로 단련된 놈들이었다. 그래서 조선이 충분한 방비했더라도 전쟁에서 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뛰어난 명장들이 많아서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조선은 전쟁이 없어 너무 평화로웠고, 왜국은 전국 시대의 끝없는 전쟁으로 단련된 전사들만 살아남아 있는 시기였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해도, 그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그 말을 들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젠 맞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해야 늘지.”
“네?”
토성과 임진왜란을 생각하다가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응, 전쟁은 해 봐야 실력이 는다고.”
“전에 한번 말씀하셨어요. 평화 시에는 아무리 훈련을 잘 해도 전쟁 능력이 좀처럼 늘지 않고, 죽고 죽이는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른 군대와 그렇지 않은 군대는 실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구요.”
“그랬나?”
“네,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하긴 그 말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과 같다. 고기 대신, 전쟁으로 낱말을 바꾸면 같은 말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런 말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몽골이 쳐들어오기 전에, 병사들에게 충분히 전쟁 경험을 시켜 줘야 하니까, 왜구를 때려잡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는 말씀도 했어요.”
그것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 비록 무기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도, 경험은 압도적인 무기의 차이만큼이나 중요하지.”
“그럼요. 저도 어떻게 하면 쉽게 적들에게 이기는지 실력이 자꾸 늘고 있는데, 저보다 경험이 많은 병사들은 더 그럴 거잖아요?”
“맞아. 연대장의 능력이나 각 대대장의 능력이 아주 많이 늘었어.”
“연대장은 전방으로 보내실 거죠?”
아무도 없는 장소라고 서윤이 마음속의 말을 했다.
“본인이 아직 말은 안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은가 봐. 몽골이 쳐내려오기 전에 만주와 중원을 먹자고 달려들지 몰라. 지금 느낌은 왜국을 어느 정도 정리해 놓고 전방으로 가겠다고 보내 주세요, 할 것 같단 말이야.”
“잘 훈련시켜 두어야겠네요.”
“그래, 그래야지. 충분히 경험하게 해 주고, 무기와 전략의 연계에 대한 것도 몸으로 체득하게 해 줘야지.”
요즘 제법 느끼고 있는 사안이다. 언젠가 또 다른 포부를 품고 나아갈 준비를 하는 느낌.
그러고 보면 태영은 너무 꿈이 작나?
태영과 서윤은 서남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산 아래쪽으로는 장원들이 넓게 지어져 있고, 그 앞쪽으로 태영이 지나쳐 왔던 넓은 초지로 된 병영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봐도 말이 제법 많아 보였다.
산 아래의 모든 지역에 시선이 다 가지는 않지만 곳곳이 저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드론으로 이미 대략은 보았다.
서북 방향으로는 이 산보다 조금 낮은 산 몇 개가 평지의 중앙에 솟아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중 한곳은 산 중간 지점에 역시 토성이 축조된 게 보였다.
산은 이곳이 높지만 축조된 성의 규모는 멀리 보이는 곳이 훨씬 커 보였다.
“자, 이상하다고 보였던 곳으로 먼저 가 보자. 다시 업혀.”
“제가 그냥 부양으로 갈까요? 나무들도 많은데.”
스스로의 몸을 공중 부양시키는 것이, 훈련을 통해서 이제는 상당한 수준까지 올랐다.
“아냐, 혹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데, 힘 빼지 말자.”
“흠, 나야 서방님 등에 업히니까 그게 더 좋아요.”
태영도 더 좋다.
부부이어서 매일 맨살을 맞대고 사는 사이이지만, 그래도 이런 전투의 현장에서까지 그렇게 업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분인데.
거기다가 비록 두꺼운 옷을 입긴 해도 서윤의 몸에서 풍기는 체향은 참을 수 없게 한다. 잘 참긴 해도.
“저기 봐. 저기가 우리가 드론으로 보고 이상하다고 했던 곳 맞지?”
길이 없는 숲속으로 제법 달려가다가 멈추고 서윤을 내려놓았다.
“네 맞는 것 같아요.”
저곳의 상공을 날던 드론의 영상을 타고 들어온 고려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공격하지 않고, 바다에 배를 멈추게 하고 태영과 한서윤이 먼저 정찰을 해 보기로 했던 것이다.
드론은 어찌 되었건 날아다니면 적의 눈에 뜨인다. 그래서 드론을 낮게 날려서 정찰하는 것보다는 직접 오게 된 것이다.
“고려 말이 분명했단 말이지. 여인들이 아니라 모두 우락부락한 남자들이지만.”
“저기 조금 더 가까이 가 봐요. 말소리가 잘 안 들려요.”
한서윤이 쌍안경을 내리며 태영을 툭 건드렸다.
“그래, 저기 저 나무 있는 데까지 가면 되겠다.”
“산속이라 그런지 초병 같은 것은 없네요.”
“그래.”
태영보다 먼저 서윤이 자신의 몸을 부양시켜 나비가 날아가듯 유연하게 날아갔다.
태영도 소리 없이 뒤따라갔고, 마당이 보이는 바깥쪽의 숲에 몸을 감추었다.
그곳에는 족히 천 평도 넘을 것 같은 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온갖 병장기가 쌓여 있는데, 주변으로 집들이 빙 둘러 지어져 있었다.
망치질 소리, 쇳소리, 풀무질 소리, 달궈진 쇠가 물속에 들어가면서 내는 소리들이 둘러진 집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고, 왜구의 복장을 한 칼 찬 놈들이 마당에서 안쪽의 집을 보며 소리를 지르거나 똑바로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병장기를 만드는 곳, 병기 제작소이다.
집 안쪽은 제법 깊기도 하고 그늘이 져서 밖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은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고 그들은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저기, 보세요.”
그곳에는 몸이 묶인 채 꿇어앉아 있는 두 명과, 온몸에 피를 잔뜩 묻힌 사람이 바닥에 쓰려져 있는데 역시 몸이 묶여 있었다.
노예들.
몇 년은 씻지 않은 듯 몸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고, 땀이 흘러내리며 흙먼지와 섞여서 도저히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한 상태였으며, 얼굴은 까맣게 변해서 눈의 흰자위만 하얗게 보였다.
거기다가 추운 겨울인데 옷은 한 겹이고 그나마도 성한 옷이 아니라 너덜너덜했다.
옷은 삼베옷이 맞는데, 몇 년간 빨지 않고 그대로 입은 것 같다.
사포에도 왜국과 송나라의 노예가 많지만 저렇게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노예라도 위생이 저 정도이면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고 봐야 한다.
나루야~
나루?
고려 말, 한국어이다.
포박되어 꿇어앉은 사람이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사람을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 부르는 소리.
꿇어앉은 사람이나 쓰러져 있는 사람이나, 족쇄를 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피골이 상접한 것이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한 몰골이다.
“고려 말 맞지?”
“네, 맞아요.”
대답하는 서윤의 눈에 파랗게 불꽃이 일었다.
고려인.
그들이 이곳에서 저런 몰골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윤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내, 이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