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86
186. 마쓰야마의 고려인(3)
“잠깐 기다려 봐. 주변 상황을 좀 더 정찰하고 손을 쓰자고.”
태영은 서윤의 조끼에서 날아오르는 쇠버리를 보며 일단 제지했다.
“제가 성급했죠?”
“나도 화가 나는데 당연하지. 여기 지형 정찰을 좀 하자고. 저놈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되지만, 가능하면 저들이 죽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로 연결된 곳이 어딘지, 그곳의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 몇 곳이나 연결되어 있는지 먼저 확인을 좀 하자.”
“그럼, 저는 좌측으로 돌 테니 서방님은 우측으로 가세요. 그리고 30분 후, 여기서 다시 만나죠.”
“혼자?”
“설마 저를 어찌할 수 있는 놈이 있을까요?”
“없겠지. 그래도 급할 것 없으니 같이 가자.”
“알았어요.”
자신을 걱정하는 줄 아는 서윤이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
“여기는 이런 용도로 지은 모양이니, 저쪽 입구만 막으면 다른 곳은 경사가 심해서 들어오기 힘들겠다.”
주변 정찰을 마친 결론이다.
산 정상의 마쓰야마 성에서 이곳으로 오는 데는 평범한 사람이 숨이 터질 정도로 달려오면 10분이 걸리는 거리다.
그 정도면 아주 긴 시간이기도 하지만, 이곳 상황을 알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10분 잡으면 무장을 갖춘 병사들이 오는데 20분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넘치고 넘친다.
“제가 입구에서 먼저 들어설게요.”
“이젠 왜어가 좀 되지?”
“네.”
“적들이 서윤의 미모에 아마 한동안 정신 못 차릴 거야. 잠시만 놀고 있으면 그사이에 난 집 안쪽을 다 훑어서 왜구들의 모조리 목을 날려 버릴 테니까.”
“네. 그럼 들어가요.”
한서윤이 몸을 부양시켜 숲에서 병기 제작소로 들어가는 입구의 길에 내려섰다. 그리고 사뿐사뿐 걸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걸 본 태영은 몸을 날려 집들이 늘어선 뒤쪽으로 들어섰고, 바깥의 햇빛과 지붕 아래의 컴컴한 곳의 밝기 차이를 조절하느라 잠시 기다렸다.
그러다 어두운 지붕 아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병장기를 만드느라 망치질을 하거나 풀무질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쪽은 화덕의 열기로 인해 바깥보다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집 안쪽은 모든 곳에 시선이 갈 정도로 터진 곳이 아니라 부분마다 칸막이가 있어서 끝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칸막이는 조금 얼기설기 되어 있어 그냥은 건너편이 안 보이지만, 칸막이에 눈을 가져다 대면 건너편을 볼 수 있는 틈이 많다.
태영이 들어선 첫 장소에는 대략 서른 정도가 일을 하고 있고, 감시자로 보이는 왜구 다섯이 중간 중간에 몽둥이를 각각 한 개씩 든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저게 매질의 용도이겠지.
태영의 눈에 가장 가까운 곳, 10미터 전방의 한 사람은 손이 잘렸는데, 오른 손목에서 팔뚝에 이르는 긴 자루의 망치를 묶어서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손이 아닌 팔뚝에 묶었으니 나무로 묶인 곳의 살갗이 헐어 그것을 묶은 천에 피가 흥건해 보였다.
으득~
이가 갈린다.
그래도 침착하자 생각하며 월랑을 빼어 들었다.
작업을 감독하느라 서 있는 왜구 다섯, 태영이 바람처럼 몸을 놀리며 그들의 어깨 위로 월랑이 스쳐 지나갔다.
1초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다섯.
후웅 하는 바람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고, 벽이 조금 흔들리고, 벽에 걸린 물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조심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물리 법칙이라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툭, 투두둑~
곧이어 다섯의 머리가 목 위에서 굴러 떨어졌고, 머리가 없어진 몸이 짚단처럼 넘어졌다.
추릿~ 촤아~
목에서 뿜어 올라오는 피와 그것을 뿜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닥에 계속적으로 흘러내리며 비릿한 피 냄새가 확 풍겼다.
“だれ…… (누구?)”
“쉿!”
태영의 바로 앞, 화덕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쇠를 꺼내려던 사람의 입에서 왜어가 나오자마자 태영은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얼굴에서 보여 주는 나이는 스물 전후로 보이는데, 얼마나 씻지 못했는지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가 확 풍겼다.
“난 고려인이오.”
멀뚱멀뚱.
그 사람은 입은 다물었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 시선이 한쪽 구석에서 일하는 머리가 허연 노인에게 돌아갔다.
“그 아이는 우리말을 모르옵니다.”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허리를 숙이고 한국어로 말하는데, 강한 북쪽의 억양이었다. 아니, 고려인이 고려 말을 못해?
짜증이 확 치밀었다.
그때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서윤에게 너는 누구냐 하는 소리였는데, 뒤이어 쇄액 소리가 들려오고 컥컥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더 이상 다른 소리는 없었다.
소리쳐서 시끄러워지면 곤란하니 공격을 시작하면 일격에 목숨을 끊으라고 하긴 했다.
“이야기는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나중에 하기로 하지.”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바란다면 무리일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상황을 이야기하겠지만, 태영의 움직임으로 인해 쇳소리가 났기에 옆 칸에서 무슨 일이냐고 소리치는 놈이 있으니 그냥 속전속결이 제일 좋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영은 옆 칸으로 이동해 들어서자마자 즉시 상황을 파악하고, 쉰 명쯤 일하는 곳을 지키고 있는 왜구 일곱의 목을 바로 날렸다.
쉿~
그때 태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조용히 하라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보니, 조금 전의 그 노인이 칸막이의 중간에 서서 손가락을 입에 올리고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움직여서 일을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현명한 노인이네.
노인의 발목에는 쇠사슬이 매여 있었는데, 그것을 끌고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쇠사슬이 매인 부분에 핏물 자국이 보였다. 태영이 노인 앞으로 가서 발목에 매인 철판과 쇠사슬을 비틀어 벗겨 주었다.
쇠사슬을 벗기면서 고개를 돌려 마당을 보니 환한 햇살이 비치고 있는 마당에 여럿의 왜구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고, 서윤은 마당 한쪽에 서 있었다.
이러면 서둘러야지.
바람 소리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고 했던 움직임을 깨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모두 열 칸인가, 열한 칸인가?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세어 보진 못했지만 대략 그 정도인 듯했다.
밖으로 나서니 서윤이 마당에 쓰러져 있던 사람, 나루라고 불렸던 사람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데, 그 사람은 그 옆에 묶여 있던 사람의 품에 안겨 있다.
캉~
캉캉캉~
아마도 저 쇳소리는 발목의 사슬을 자르거나 발목을 감고 있는 철 띠의 못을 빼거나 하는 소리일 것이다.
시간이 제법 흘렀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고,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태영의 등 뒤로 늘어서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쓰러진 사람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태영이 몸을 돌리자 아까의 그 노인을 비롯하여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노인 다섯이 가장 앞에 섰고, 그 뒤에 족히 2백을 헤아릴 숫자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다 떨어진 짚신을 신은 사람, 나무 신발을 신은 사람, 맨발인 사람 등 각양각색인데, 제대로 된 옷을 걸친 사람이 없었다.
햇빛 아래 드러난 사람들의 몰골은 너무나 처참해 보였다.
앞의 노인 다섯이 그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뒤따라 그 뒤에 선 사람들도 인사했다.
태영은 마쓰야마 성을 한번 올려다봤다.
“니펜트 날려서 오는지 확인할게요.”
“응.”
태영은 주머니에서 니펜트를 꺼내 주었다.
한서윤이 니펜트를 받자, 자신의 안쪽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내 니펜트를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설명 좀 해 보시오. 간단하게.”
태영은 앞에 선 다섯의 노인을 향해 누구를 특정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의 선조는 ‘고구리’ 패망 이후, 뒤를 쫓는 당나라의 군병들을 피해 왜국으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입니다. 원래 우리가 살던 곳은 여기가 아닌데, 수년 전에 왜군들에게 잡혀 이곳으로 호송되어, 이리되었사옵니다. 그…….”
태영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짐작이 된다.
삼국의 통일은 좋은 점만큼이나 안 좋은 점도 많았다.
신라의 입장은 다르지만, 당나라로서는 고구려란 이가 갈리는 나라였다.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공하다 국력이 다해 멸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당나라도 수없이 침공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당나라가 번성했을 때 지도를 보면, 중국 대륙 전역을 다 차지하고, 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을 지나서, 21세기를 기준으로 보면,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튀르크 지역까지 국경이 뻗어 있었다.
그래서 당나라에게 있어서 고구려는 정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렇게 공격을 해도 끄떡도 하지 않던 나라를 신라와 연합하여 멸망시켰으니.
그래서 당나라는 고구려 사람 20만 명을 잡아갔고, 그들을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찢어발겼다. 다시는 뭉치지 못하도록.
기록에 남아 있는 숫자로만 그렇다.
잡아가고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숫자는 대체 얼마나 될까?
기록에 있는 내용만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고구려 멸망 당시 인구가 350만 전후였다고 하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잡아간 것이지만, 그들이 그냥 양민을 잡아갔을까?
아니다.
지배 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 즉 혹시나 다음에 고구려를 재건하려고 달려들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봐야 한다.
죽인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잡아간 사람보다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겠지만, 그 숫자는 기록에 없다.
그리고 지금 이들처럼, 스스로 도망자가 된 유민은 얼마나 될까?
고대나 중세 시대에 패망한 나라의 국민은 정복자가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그곳에 두면 그대로 다시 뭉쳐서 일어나기에, 모두 찢어서 서로 다른 곳으로 보내고, 노비로 만들어 버리거나 노예로 성벽 쌓는 것 같은 데 동원하여 일만 하다가 죽도록 한다.
성벽을 다 쌓은 후에도 안 죽으면, 일 끝난 후에 굴을 뚫어 그 속에 집어넣고 굴을 무너뜨려 버린다.
자기가 살던 곳에서 버티면, 곧 죽음이니 당연히 발붙이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망을 가야 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고, 이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도망을 가면 어디로 가나?
패망한 나라의 유민을 반겨 줄 곳은 없다.
도망자의 신분이란 것이 그렇지 않을까?
서윤의 가족도 그랬으니.
아, 왜국은 문명이 너무 뒤떨어져 있어서 고구려나 백제, 신라의 유민을 반겼다는 기록도 있다.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초기에는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고구려라고 하지 않고, 고구리라고 발음하지?
거기다가 태영이 알고 있는 북한 말도 아니고, 단어나 발음도 많이, 아니 거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어색하다.
에이, 뭐가 되었건 대충 뜻만 통하면 되지.
가만, 고구려가 멸망한 연도가 언제더라?
서기 668년인가?
그럼 거의 6백 년, 아니 550년 이상 흘렀는데?
아까 고려 말을 못한다고 짜증났던 거, 취소.
그리 오랜 기간 흘러 다니면서도 말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대단한 거지 잊어버린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의 한국어는 그 어원이 신라의 말이라고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말을 통일시킨 것인데, 그건 통일 신라의 가장 빛나는 업적일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업적이 역사책에 나오던가, 안 나오던가?
물론 현재의 한국어처럼 통일이 된 것은 방송의 영향이 더 클 것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니 제외시켜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 전에는 백제와도 조금 다르고, 고구려는 워낙 땅이 넓은 데다 부족별로 말이 달라서, 고구려 안에서도 남쪽과 북쪽이 다르고, 동쪽과 서쪽이 달라서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 많았다고 했다.
이런 것이 시험에 나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지역별로 말이 서로 많이 달랐을 텐데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나? 하고 학생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역사 선생님이 모르는데 학생들이 알 리가 있나?
인도 같은 경우에는 21세기인 현재에도 18개의 공용어와 191개의 중요 언어에 방언은 2천이 넘는다고 했는데, 고구려도 그 면적이 만만치 않으니 정말 많은 언어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21세기의 중국어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북경어와 광둥어 외에 수많은 중국어가 있지 않은가?
중국 정부에서 그것을 통일시키려고 거의 강제적으로 하는데도 잘 안 되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많이 이상하긴 해도 지금 이 사람은 고려 말로 말하고 있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오?”
“모르옵니다. 배를 타고 꽤 오랫동안 왔다는 것만 기억하옵니다.”
하긴, 지도도 없는 시대에, 지리 감각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쉽지 않은데, 포로로 잡혀 왔으면 안다는 것은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곳으로 온 지는 몇 해나 되었소?”
“음, 여섯 해가 지났사옵니다.”
“흠.”
“…….”
“우선, 좀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은데, 여기 그럴 수 있는 곳이 있소?”
한번 둘러보아서 그런 곳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태영이 모르는 감추어진 곳이 있을까 해서 물었다.
“…….”
대답이 없다.
“잠은 어디서 자요?”
“…….”
말없이 손을 들어 가리키는데 작업장이다. 그럼, 저기서 일을 하고 잠도 저기서 잔다고?
“어디 가 봅시다.”
“네.”
태영의 말에 한 노인이 앞장을 섰고, 태영은 그를 따라 작업장 안으로 들어섰다.
작업장 안쪽의 요소요소에 있는, 비슷해 보이는 거적때기를 젖히자 그곳에 아주 좁은 빈 공간이 나타났다.
그냥 지붕이 있는 곳 아래에 형식적으로 칸을 치고 거적으로 덮었을 뿐 토굴이나 마찬가지였다.
“직접 만든 거요?”
“네, 그렇사옵니다.”
결국 왜놈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지는 않고, 작업장에서 먹고 자고, 작업장에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먹는 건 제대로 주고 있으려나?
대체 이 일본 놈들은 지금이나 미래나 한결같이 왜 이렇게 잔인한 거야?
“참 나, 이게 사람 사는 꼴이야? 뭐야?”
태영은 울화가 치밀어 고함을 치고는 몸을 돌리는데 서윤도 몸을 돌리고 있었다. 뒤따라왔던 모양이다.
“아, 정말, 이것들을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서윤은 태영보다 한 발 앞서 밖으로 나가면서 태영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밖으로 나오면서 보니, 아직 햇살이 남아 있지만, 바깥은 화덕의 열기가 없는 탓에 제법 쌀쌀한 상태라 여러 사람들이 덜덜 떠는 모습이 보였다.
“서윤아, 여기로 오려면 산 정상의 장원을 거치지 않으면 오는 길이 없었지?”
그렇게 되어 있으면, 이곳은 감추어진 장소라는 의미이다.
“요기 샛길이 하나 있어요. 산 뒤에 저쪽으로 연결되는.”
“그쪽으로 군사가 올라올 수 있을 정도인가?”
“저기 아주 좁은 곳에 높은 계단이 있어서 계단 위에 두 사람이 지키면 아래서는 못 올라올 것 같아요.”
“그럼, 저 위에 성을 치자.”
“네, 그래요.”
“노인은 이름이 뭐요?”
서윤과 이야기를 마친 태영이 몸을 돌려 노인에게 물었다.
“설가(薛賈)라 하옵니다.”
“여기서 제일 어른인가?”
그렇게 묻자 옆을 돌아본다.
“모봉(毛鳳)이라 하옵니다.”
옆에 선 비슷한 또래의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아서 대답을 착착 하니 그건 좋네.
“서윤아, 저기 지옥 천사를 보내 주려 했는데, 다 태워 버리면 저 사람들 잘 곳이 없어서 안 되겠다. 우리 둘이 올라가서 미리 좀 처리하자.”
“바라던 바입니다. 서방님.”
서윤이 제법 큰 소리로 대답했다.
“모봉, 설가, 두 사람은 힘이 좀 좋고 싸울 수 있는 사람 몇을 선별해서 무기를 주고, 저기 계단을 지키게 해요. 아래쪽에서 누가 올지 모르니까.”
태영이 서윤이 말해 줬던 장소를 가리켰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그곳을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태영은 모봉이라 말한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하고 내 처가 저 위에 올라가서 저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저길 확보할 테니, 반각 후에 모두 데리고 위로 올라오시오.”
“네.”
조금 전에 무력을 봤기 때문인지 아무 의심 없이 대답은 잘한다. 다만, 서윤을 힐끗 쳐다봤을 뿐이다.
가냘픈 여인의 모습이니 믿음이 가지 않을 수 있겠지.
저 위의 왜구들을 처리하는데 10분이면 충분할 테니, 반각 후에 출발하면 이들의 걸음으로 봐서 저 위까지 15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럼 대기시간 반각과 이동시간을 합치면 22분쯤 걸리고, 그 정도면 위는 모두 제압한 뒤에 이들이 도착할 것이다.
“가자.”
“네.”
태영은 대답하는 서윤의 몸을 안으면서 그대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휭~
바람 소리가 들렸고, 바로 성벽 위에 착지하는 순간, 서윤의 옆에서는 차르릉 소리가 들리며 벌써 쇠버리가 날아올랐다.
“모두 죽이면 되죠?”
“칼이나 무기를 든 놈들은 다 죽여 버려. 일꾼은 좀 있으면 좋으니까 무기 안 들면 적당히. 늘 그래 왔듯이 여자들은 대항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고.”
“넵, 이를 말씀입니까.”
특이하게 왜국들의 여자들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거의 모든 경우에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고려 여인들 같으면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쐐애애액~
퓽풍풍퓽~
성벽 인근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왜병에게 쇠버리가 날아갔다.
장소가 넓기에 태영은 월랑이 아닌 지천을 꺼내 들었고, 쇠버리가 날아가는 속도와 비슷하게 태영이 몸을 날렸다.
샥~
매끄럽게 잘리는 소리.
역시 지천과 월랑은 정말 잘 만들어진 칼이다.
목을 자르고 지나갔지만, 목뼈를 지나가면서 조금도 걸리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지나간다.
적이 나타났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왜군이 아직 칼도 뽑지 못했으니.
“すいか? (누구냐?)”
열 명 정도의 목에 구멍을 뚫어 주고, 재빨리 움직이면서 다시 몇 명의 목에 구멍을 내고는 전각의 모퉁이를 도는데, 왜구가 역시 모퉁이를 돌면서 누구냐고 고함을 질렀다.
보통은 だれか? (누구야?)라고 할 텐데 すいか? (누구냐?)라고 하는 걸 보니 항상 명령을 내리는 위치의 고위직인 모양이다.
“めいどのししゃ. (저승사자).”
태영의 입에서 저승사라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지천이 놈의 목을 관통했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다.
이렇게 해 보니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목을 자르는 것보다 출혈이 적어서 피가 옷을 적실 가능성이 적다.
핑핑핑핑~
옆에서 쇠버리가 나는 소리가 들리고, 그놈의 뒤를 따라 나오던 왜병들의 이마에 구멍이 한 개씩 뚫린다.
전투가 벌어지면 서윤은 도저히 태영이 어찌할 틈을 안 준다.
처음에 상산에서 싸울 때만 해도 쇠버리가 저 정도의 관통력을 갖지는 않았는데, 그때 이후 연습을 제법 했고, 연습을 할수록 파괴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염력의 파워도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싸우는 요령이 늘어나기도 했으니까.
태영과 한서윤을 발견한 적이 병장기를 뽑아 드는 소리, 적이 죽으면서 병장기를 떨어트리는 소리가 계속적으로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