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93
193. 송산과 송도(3)
“인원 점검과 분류 작업 모두 끝났습니다.”
김웅겸이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포로의 선별이 끝난 모양이다.
“신라 유민 312명, 그 중에 미성년이 45명인데, 8살 이하는 한 명도 없습니다.”
이곳으로 잡혀 온 지가 6년이라 했는데, 그 2년 전부터 태어난 아이가 없다는 소리다.
어떻게?
“포로로 잡혀 오는 중에 갓난쟁이들은 다 죽고, 여기 와서는 남녀를 따로 격리시켜 생활한 모양입니다.”
태영이 의문을 품는데, 김웅겸이 보고를 계속했다.
격리되어 있었으면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 맞지.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격리 생활이면 별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아무리 막아도 뭔가가 이루어지는 법인데.
그런데 다 죽고라는 말은, 왜구들이 다 죽이고, 라는 말일 것이다.
“성인 237명 중에, 남자가 95명이고 여자가 142명인데, 조선소에서 일하던 중에 남자들 사망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 유민의 여자들 중에 미색이 뛰어나서 왜군에 끌려간 사람이 22명, 자발적으로 간 사람이 16명, 끌려간 사람 중에 6명이 자진했거나 죽임을 당했고, 왜병의 첩실이 되기를 거부했지만, 그래도 생존자가 9명, 7명은 첩실이 되었습니다.”
“그럼, 자발적으로 간 사람까지 합치면 첩실은 23명?”
“네, 그렇습니다.”
“첩실이 된 사람의 개별적인 연유는 생각하지 말고, 처분은 벌도에게 맡기고, 첩실을 거부한 사람은 보상을 해야겠네.”
첩실이 되기를 거부했다고 강간당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강간당했을 수 있다. 그것은 노예의 신분으로 거부가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래도, 나름대로 편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첩실을 거부했다는 것만으로도 보상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고구리 유민은?”
“이쪽은, 아이가 거의 없습니다. 이곳으로 끌려오는 중에 대부분 이놈들이 죽였다 합니다, 일할 체력이 안 되는 아이들은 다 죽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일할 능력이 안되는 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끌고 와도 노동력으로 쓸모가 없고, 끌고 오는데 시간만 걸릴 뿐이다.
또한, 이곳으로 끌고 온 왜군의 인솔자가 달랐다는 말이다.
“공방에 있던 인원은 306인, 전투에서 5명 사망, 2명은 생존이 어려울 것 같아서 그들을 제외하면 299명, 조선소 등에 있던 남자 37명, 여자 352명인데, 여자는 12명이 전투에서 사망해서 제외한 숫자입니다.”
“을목의 처와 그 여자들 말인가?”
“네.”
“발가벗겨 매달았다 하더니, 죽었군.”
“을목이 고구리 유민들에게 돌을 던지라 했다 합니다.”
수긍이 된다.
6년 전까지 남편이었는데, 왜군의 첩실이 되어서는 왜 죽지 않고 살아왔느냐는 소리를 태영도 들었다. 그렇다면 죽어 마땅하지.
“또.”
“끌려갔거나 자진해서 갔던 여인들 53명 중에 아침에 12명 사망하고, 첩실로 16명, 나머지 25명은 노비로 살고 있습니다.”
“거기도 첩실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보상을 할 수 있도록 해 줘.”
“신라 유민이 고구리 유민보다 많이 적어서 송도를 점령해도 인구가 너무 적으니, 송도 쪽 신라 유민을 가능한 한 많이 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벌도 말로는 마을 사람들이 1천 명 전후였다고 하니, 끌려와서 사망한 사람이 좀 있을 것이라고 봐도 송도 쪽에 억류되어 있는 사람이 7백 명은 되지 않을까?”
“저도 그리 추측됩니다.”
“그리고, 송산의 왜병과 왜인들 남자만 합쳐서 포로는 616명, 사망 438명, 포로 중에 중상 76명, 경상 216명인데, 중상자는 모두 사망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자는?”
“아무래도 상산의 일 때문인지 여자의 숫자가 굉장히 많은데, 주변 가까운 곳만 수색하고 먼 곳은 수색을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포로가 3천이 넘고, 사망자도 3백이 넘어갑니다. 그래서 수색과 파악을 중단시켰습니다.”
“잘했어. 문제는 그들을 어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인데.”
싸울 힘도, 능력도 없는 여자들인데, 이곳을 고구리인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없어야 하지만, 여자들을 죽이는 것도 못할 짓이다.
“저희는 손을 떼죠.”
“그래, 저 사람들에게 처분을 맡기도록 하자.”
그나저나 백제의 유민은 어디에 있을까?
***
해룡호는 다음 날 새벽에 송산에 도착했다.
송산에는 황룡호와 흑룡호가 정박해 있으니 쉽게 눈에 띄었을 것이다.
“충성!”
정규하와 김비주를 포함하여 아나이스 일행을 데리고 하선한 병사들이 경례를 했다.
“충성! 보고 생략.”
선화 상단 사람들까지 있어서 재빨리 보고는 생략시켰다.
“Hi Rylie! I missed you so much. (안녕 라일리, 많이 보고 싶었어요.)”
“Me too, Anais. I really missed you. (나도 그랬어요. 아나이스, 정말 보고 싶었어요.)”
서윤과 아나이스는, 둘이서 이상한 말을 주고받으며 포옹을 하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은 사포의 병사들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여전히 면사를 쓰고 있는 아나이스이고, 이젠 서윤이 접근할 때 수행원들도 막지 않는다.
그나저나 서윤의 영어가 정말 많이 늘었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태영이 평할 수는 없겠지만, 영국 땅에 내려 놔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아시나가 미국식 발음이었던 탓에 서윤은 미국식으로 발음하고, 아나이스는 영국식 발음에 중국 억양이 가미되어 약간은 묘했다.
그리스 억양이 섞였을 수도 있지만, 태영이 그리스어는 모르니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제가 억지를 좀 부렸습니다. 그러니 병사는 너무 혼내지 말아 주세요.”
태영을 쳐다보는 아나이스의 눈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기도 하지만, 아나이스와의 관계는 또 특별하니, 화를 낼 수도 없다.
“어차피 온 것이니 구경이나 잘 하십시오. 그나저나 기간이 제법 걸릴 텐데, 이렇게 비워 두고 와도 됩니까?”
“지부장들이 잘들 하고 있고, 제 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돕던 아이에게 맡겨 두었으니 잘할 것입니다.”
“여긴, 거처가 불편하니 좀 참으십시오.”
“그럼요, 여기 일 끝나고 사포에 들렀다 가도 되지요?”
거기까지?
어, 된통 걸렸네.
“그러세요. 연대장, 손님들 접객실로 모셔.”
“네, 대장님. 반갑습니다, 상단주님.”
아나이스는 김웅겸과는 이미 몇 번 보았고, 면사를 벗은 얼굴도 본 사이다.
“네, 반갑습니다. 혹시 우리가 번거롭게 했더라도 용서하십시오.”
“별말씀을요. 힘들게 오셨으니 구경 잘 하고 가십시오.”
“네, 구경 잘 시켜 주십시오. 사포군의 힘을 이미 보았지만, 그래도 더 보고 싶습니다.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라.”
함포 사격이나 백색 탄 공격을 구경하면 반응이 어찌 나올까?
***
“일어났어?”
태영이 손목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살짝 넘었다.
“네. 너무 개운하게 잘 잤어요.”
태영의 팔베개를 하고 모로 누운 한서윤은 태영의 배 위에 얹은 손을 슬슬 움직여서 허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 움직임으로 인해 태영의 가슴에 닿아 있는 한서윤의 매끄러운 젖가슴이 뭉클한 느낌으로 더 밀착되어 왔다.
“간지러워.”
“흐음, 그냥 좀 만지게 해 줘요, 이럴 때 너무 좋단 말이에요.”
서윤이 아침에 눈 뜰 때 이런 장난을 좋아하는 편이다. 태영도 은근 재미있기도 하고.
어제, 하루를 아나이스와 보내고 늦은 오후에 전마선으로 송산에서 이곳 송도로 건너와서 왜인의 집 한곳을 차지했다.
제법 규모가 있게 잘 지어진 집이었고, 제법 넓은 정원과 다섯이나 되는 전각이 있는 집이다.
거의 서른 개는 될 듯한 방이 있고, 비단 이불도 있는 것을 보니 상당한 부잣집인데, 왜국에서도 이렇게 하고 살면, 귀족이라고 봐야 한다.
고려도 마찬가지이지만.
주인을 지키겠다고 덤빈 호위 무사는 모조리 목에 구멍을 뚫어 주었다.
날벼락을 맞은 집 주인은 살려 달라고 빌었지만, 창고에 집 주인과 하인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가두어 두고, 밖에서 나무들을 덧대서 못질을 해 버렸다.
태영이 떠난 뒤에 이웃집들에서 발견을 하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창고 안에서 모두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상관없는 일이지만.
“잘 자서 그런지 아주 개운하네.”
“네, 저두요. 왜국이라 이렇게 남의 집에 들어와서 주인 행세하고 떠나도 죄책감 같은 거 생기지 않아서 좋아요.”
“이제 슬슬 준비해 볼까?”
“네, 어젯밤에 닭튀김을 많이 먹었으니, 오늘 아침은 생선 구이로 할까요?”
“그래, 그러자.”
치킨은 항상 정답이지만, 이곳은 바닷가이니 생선이 넘쳐난다.
21세기에서는 비싼 가격으로 엄두도 내지 못하던 생선 구이가, 이 시대의 사포에 살면서 어느새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어제저녁은 이 집에 있는 닭을 세 마리나 잡았고, 비록 튀김 가루 없이 살만 골라서 튀겨 낸 닭튀김이지만, 기름에 튀겨 낸 후에 숯불에 다시 구운 것이어서 보통 고소한 게 아니었다.
정하연도, 한서윤도 치킨을 너무 좋아한다.
이 시대나 21세기나 치킨은 역시 정답이다.
“이곳에서 영주의 집이 직선거리로 26킬로 정도 되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좀 어두우니까, 조심한다고 치고, 천천히 가면 5분이면 충분해.”
아스팔트 깔린 직선도로라면 25초 전후로 도착할 텐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야 하고 강도 건너야 한다.
물을 데워서 샤워 수준으로 목욕을 마치고, 생선 구이로 아침을 해결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날을 밝아 오지 않았지만, 반달이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비교적 환한 편이다.
“어제 하연이 말해 준 다케야마 산이 어딜까?”
아침을 먹고 난 후에 찾아가야 할 곳을 다시 확인하면서 태영이 물었다.
“지도에서는 그걸 못 찾았어요. 그냥 영주의 저택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실 거잖아요?”
“그렇지. 영주의 저택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궁금해졌어.”
“저는 준비 완료. 그런데 저들 그냥 둘 건가요?”
서윤이 창고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포군이 이곳을 점령하면, 어차피 저들은 죽는다.
이번 점령 작전 이후, 신라 유민들에게 송도를 주기로 했기에 어차피 왜인들은 살아 있을 필요가 없다.
어찌할까?
아무리 눈에 보이는 대로 때려죽이고 싶은 놈들이라도 전투 불능인 상태에서 손을 쓰는 것은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
“분명 하인들 다 있는 데서 고려 말로 말했을 때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 없었지?”
“네, 없었어요.”
“그럼, 저들은 나중에 송도를 넘겨받은 신라 유민들에게 맡기지.”
“네, 그래요 그럼.”
“좋아, 출발.”
아직 여명조차 없는 새벽.
달빛으로 길을 확인하고 몸을 날렸다.
***
영주의 장원 인근.
산비탈의 중간에 무척이나 넓은 부지를 닦은 곳에 영주의 장원이 있다.
송산에 있던 산성과는 달리 성의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외부에서 공격을 하려면 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형태여서 공격이 어렵게 되어 있고, 민가와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다.
지도상의 히로시마 성은 지금은 그냥 강 하구의 삼각주인 것으로 봐서 그 성은 전국 시대같이 한창 전쟁이 빈발하던 시대에 쌓은 것이리라.
지도상에는 아주 넓은 해자가 히로시마 성을 둘러싼 모양이었지만, 그 해자조차 지금은 바다이다.
발길을 재촉해서 영주의 장원으로 올라서자, 제법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장원 안의 곳곳에 불이 피워져 있는데, 불이 피워진 곳에는 어김없이 경비병 두셋이 창을 들거나 칼을 허리에 차고 서 있다.
니펜트로 확인한 전각의 숫자는 8채로, 크기는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 중앙부에 가장 높게 지붕을 올린 전각 가까이에는 경비병들이 없지만, 담장 주변으로 대충 눈에 뜨이는 숫자로 보면 30명 전후이다.
이제 아침을 여는 시간대라 경비병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거나 어떤 곳에서는 졸고 있기도 하다.
“그냥 들어가자. 정문으로.”
“그래요, 몇 되지도 않는데.”
“자던 놈들 일어나기 전에 끝날 거니까, 나오는 대로 날려 버리기로 하고.”
태영은 쇠버리 몇 개를 손에 꺼내 들었지만, 이미 한서윤의 손에서는 차르르 하고 쇠버리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핑핑핑핑~
쇠버리 몇 개가 날아가며 대문을 지키고 섰던 경비병이 선 채로 이마 한복판에 구멍이 뚫렸다. 적이라는 것을 인지할 틈도 없었으니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경비병은 천천히 무너지듯 쓰러졌다.
“여기서 기다려.”
“네.”
쉬우우웅~
한서윤의 대답을 뒤로 들으면서 태영이 몸을 날렸다.
달빛을 머금은 월랑이 수평으로 방향을 잡으며, 눈앞에 보이는 왜병의 목을 스쳐 지나갔고, 그대로 회전하여 반대 방향으로 뻗으면서 그로부터 세 발자국 떨어진 곳의 왜병의 목을 잘랐다.
서걱~훙~서걱~
입구에서부터 달려온 태영의 모습을 아직 발견하기도 전일 것이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이제야 태영의 귀에도 들려왔다.
찰그락~
바닥에 깔린 자갈이 발에 부딪치며 소리를 남기고 태영은 모퉁이를 돌았다.
자갈 소리 때문에 차라리 그냥 흙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태블릿에서 전각의 배치와 초병들의 위치는 대략 파악해서 머릿속에 있기에 서슴없이 돌아섰다.
땅바닥에 동그랗게 돌로 막고 그 안에서 피워진 불빛이 태영의 눈에 보이는 순간, 월랑이 좌우로 한 번씩 뻗어 나갔다.
투둑~ 철퍽~
모퉁이를 돌기 전에 목을 자른 왜병이 머리 따로, 몸 따로 바닥으로 넘어지는 소리가 이제야 들려왔다.
그리고 새벽의 찬 바람 속에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 왔다.
다음의 전각 그림자에 서 있는 두 명의 왜병, 그리고 다시 전각과 전각 사이를 스쳐 지나서 영주의 집 전체를 한 바퀴 돌아 나왔을 때, 모든 경비병들이 소리 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차르르르~
쇠버리가 손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한서윤이 보였다.
“입구에서 이제 겨우 본관 앞으로 왔는데…….”
태영이 너무 빨리 처리하고 왔기 때문에 손쓸 틈을 주지 않았다는 불평이다.
“자, 들어가 보자.”
“네.”
마루로 올라섰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차단해 주는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인지 왜국의 귀족들이 사는 집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마루가 있다.
마루에 올라서면서 신경을 집중하여 집 안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중앙의 이 전각 안에서 들리는 숨소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전각의 중앙 부분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태영이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이동하여 잠시 기다린 후, 문을 밀며 들어섰다.
어둠이 눈에 익자 새벽의 여명이 창호 문을 통해 밀고 들어와 방 안이 희미하게 보였다.
방 안은 싸늘한 냉기와 함께 한쪽에 서탁과 좌식 의자의 등받이가 보인다. 그 옆으로는 책이 꽂힌 장이 몇 개 있고 장식품들도 보였다.
도검과 갑옷들이 벽에 걸려 있는데, 도검은 종류별로 10개나 된다.
갑옷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뭐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태영은 기다리라는 의미로 한서윤의 어깨를 잡고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 방의 한쪽에 보이는 문을 열고 안을 보았다.
넓게 펼쳐진 이불이 보이고, 머리가 네 개.
뭐?
머리가 네 개?
한 방에서 남자 둘, 여자 둘이 잠을 자는 혼숙인 거야?
아니,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남자 한 명에 여자가 셋인 듯하다.
한곳에 위치한 초가 보이자 태영이 라이터를 꺼내 초에 불을 켰다.
서윤이 어느새 태영의 옆에 와서 섰고, 라이터 소리 때문인지 가운데 누운 남자가 고개를 들며 눈을 떴다.
태영은 아무 말 없이 지천의 끝을 그놈의 턱에 가져갔다. 역시 예상대로 여자가 셋이다.
비록 이불을 덮고 있지만, 두 여자는 남자의 몸에 찰싹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여자 둘이 있는 좌측에서는 뒤쪽의 여자가 앞쪽의 여자를 백 허그하고 있는 자세다.
“すいか? (누구냐?)”
고개를 들려던 놈의 턱이 지천에 찔리고는 멈칫한 상태로 누구냐고 물었다.
“しずかにしろ. (조용히 해라.)”
낮은 말로 조용히 하라고 했다.
떠들어도 상관은 없지만,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좋다.
“なんですか?(뭡니까?)”
우측의 여자가 깨어났는지 손으로 눈을 비비며 뭐냐고 물었다. 아직 태영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남자, 아마도 영주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그때, 가만히 있던 이불이 휙 날아 태영의 뒤로 날아가 버렸다.
한서윤이 염력으로 이불을 걷어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이 황당한 모습은?
남자와 세 여자가 모두 발가벗고 누워 있었다.
거기다가 좌측의 여자는 남자의 중앙부를 손으로 꼭 잡고 있고, 그 여자를 백 허그하고 있는 여자는 앞 여자의 가슴을 잡고 있었다.
부부가 이불 속에서 발가벗고 누워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자 셋과 남자 하나가 발가벗고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모습은 황당하다.
“헉!”
한서윤의 입에서 헛바람이 나왔다.
그리고 연이어 나온 말이다.
“재미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