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95
195. 송산과 송도(5)
“카이세이 어디 있나?”
일단 이놈부터 잡아야 한다.
영주의 눈이 태영을 향했다.
생전 본 적도 없는 놈들이 새벽에 들이닥쳐서 자신을 이렇게 묶고 자식들까지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이 사달이 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겠지.
그런데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으, 으브, 으븝.”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저놈 목을 감은 줄 풀어 줘.”
병사 한 명이 칼을 들어 목을 감고 있는 줄을 잘랐다.
줄을 자르는 칼이 살갗을 파고들어 피가 흐르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뭐.
“타, 타다시, 세, 카이세이를 불러와라.”
영주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영주를 바라보는 왜병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칼을 부딪치는 소리, 호흡이 거칠어지는 소리, 조금씩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세이 말입니까?”
역시 이곳에 있었어.
처음부터 이놈을 찾기 잘한 것 같다.
타다시라 불린 왜병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왜병 둘을 불러서 소곤거리듯 지시하자, 둘은 줄을 따라 병영을 벗어났다.
“진이야. 추적해.”
“네, 그렇잖아도 추적 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한서윤이 유진이에게 지시하는 말을 들으면서 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영주의 몸을 가리고 있는 이불을 어깨부터 아래까지 칼로 죽 그어서 양쪽을 모두 잘라 냈다. 그러자 영주의 몸 좌측과 우측이 노출되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벌거벗은 몸의 정면이 잠시 나타났다가 이불자락이 덮이면서 다시 몸을 가렸다.
이불자락이 덮고 있어서 그 상황인 줄을 몰랐던지 왜병들의 침음이 심해졌고, 뒤에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지만, 오래지 않아서 멈추었다.
이름이 있겠지만, 일일이 물어보고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아 번호로 부르려 했는데, 한 놈의 이름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주가 이름을 부르고 지시했으니 부관쯤 되거나, 영주의 다음 지위는 되지 않을까?
“이름이 타다시?”
“그렇다.”
아쭈, 같이 반말하는 것 보니 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무장하지 않은 여인들과 아이들은 줄 좌측으로 가라고 해. 그리고 병사들은 전원 무장 해제하라고 해.”
말은 타다시에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병영에 모여든 모든 사람을 향해 하는 말이다.
태영을 말을 들은 무리 속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만이라는 소리지.
“무장 해제한 병사는 좌측 줄 너머로 간다. 실시.”
노려보는 눈빛, 웅성거리며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태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사람 몇 되지도 않는 놈들이 영주를 인질로 잡고, 수천의 병력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숫자를 다 세고 난 뒤에도 무장 해제하지 않은 놈들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도록. 하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숫자 하나를 세었다.
“좌측 중기관총, 여기 줄을 향해 세우고 장전하라.”
김웅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병사들이 중기관총 한 정의 위치를 옮겼고, 정확한 방향을 잡았다.
“저격병, 높은 곳으로 올라갈 필요 없고, 위치만 잡는다. 그리고 병영을 벗어나는 놈만 잡도록.”
김웅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자들이 대부분 웅성거리면서 좌측 줄 건너로 갔다.
아침을 지을 시간, 또는 아침을 먹을 시간이어서 구경을 온 여자들과 아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숫자가 제법 된다.
“둘.”
아무도 무장 해제하지 않는다. 하긴 그 정도에 하지는 않겠지.
“셋, 넷, 다섯.”
태영은 셋부터 다섯까지를 연속으로 세어 갔다.
하나에서 둘까지, 그리고 셋까지 사이의 간격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다섯을 센 후에 또 한참을 세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여섯.”
그때부터 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갑옷을 벗는 소리도 들렸다.
“무장 해제한 병사는 이 앞에 무기를 내려놓고 좌측 줄 건너로 넘어가도록 한다.”
태영은 한동안 다음 숫자를 세지 않고 기다렸지만, 서른 명 정도만 무장을 해제하고 좌측으로 넘어갔을 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타다시, 너는?”
망설이던 타다시가 허리에서 칼을 풀었다.
“일곱, 분명히 말하지만, 열을 셀 때까지 무장 해제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고 했다.”
타다시가 갑옷을 벗는 사이에 별로 큰 소리도 아닌, 보통의 목소리로 일곱을 세고, 다시 한번 경고를 했다.
무리들 안에서 웅성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웅성거림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여덟.”
칼을 내려놓는 소리와 갑옷을 벗는 소리들이 들렸고, 2백여 명이 줄 좌측으로 건너갔다. 2백여 명이 이동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태영을 노려보고 지나가거나, 태영의 뒤쪽에 늘어선, 총을 어깨에 고정하고 전방을 향해 있는 사포의 병사들을 노려보고 지나가거나, 심지어 이쪽을 향해 침을 뱉으며 지나가는 왜병들이었다.
까불지 마, 그래도 너희들은 산 거야.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넘어가는 왜병이 없었다.
그럼,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아홉, 열.”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생각한 태영이 아홉과 열을 동시에 세었다.
“모아 탄 1번, 격발.”
김웅겸의 목소리가 들렸다.
꽈광~
꽈과과광~
“2번, 3번, 4번…….”
폭음 속에서 들릴 듯 말 듯 숫자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꽈과과광, 피비비비빙~
으아아악, 아아악, 으아아아~
크레모아의 폭발 소리, 철 구슬이 날아가는 소리, 그리고 비명이 병영에 난무했다.
왜병들의 외침과 고함 소리, 달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크레모아는 피한다고 피해지는 무기가 아니다.
혈무.
그 혈무를 만들어 내는 시신과 비명이 병영을 가득 채웠다.
타다다당~ 타타탕~
줄 좌측에서는 크레모아가 터지지 않는 것을 알게 된 후미의 일부가 줄의 좌측을 향해 달렸지만,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줄은 두 줄, 그사이에는 3미터에 이르는 공간이 있어서 그것을 넘어가야 산다.
탕~
누군가가 요행으로 줄 쳐진 공간을 건너갔지만, 저격총의 총구가 그곳을 향했고, 총소리는 다른 소음에 묻혀서 귀에 들려오지도 못했다.
피비린내.
신음.
비명, 비명, 비명, 그렇게 비명이 넘쳤다.
이렇게 병영 안에 똘똘 뭉쳐져 있었으니 크레모아의 살상 효과가 극대화되었고, 중기관총의 총탄 하나하나는 수 개에서 수십 개의 표적을 찢어발겼다.
크레모아의 쇠구슬이 왜병들의 몸에 박히면서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는 저 너머에는 병사들이 쏘아 낸 유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산산조각으로 찢겨 나간 왜병들의 시신과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병영을 가득 채우면서 구토가 올라올 만큼 진하고 비린 피 냄새가 병영을 메웠다.
너무나 짙은 비릿한 피 냄새에 후각이 마비되면, 바닷가의 바람이 불어와서 마비된 후각을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좌측의 줄 건너로 건너간 왜병들은 경악에 차서 몸을 벌벌 떨면서 그곳을 쳐다보았지만 자신들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귀는 이미 반쯤 멀어 버렸고, 귓속에서는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폭음과 앵앵거리는 소리만 난다.
이것이 내 귀에서 나는 소리인지, 하늘에서 나는 소리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쓰러져 가는 동료들의 몸이 찢어지고 조각이 나고, 머리가 터져 나가면서 피가 분수처럼 피어올라 그것이 안개처럼 퍼져 나가지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면, 죽는다.
저쪽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죽는다.
성주를 포박하여 자신들을 위협한 이상한 놈들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니, 병사들이 어깨에 무언가를 올리고, 자신들을 향하고 있는 까만 구멍이 줄줄이 보인다.
그런데, 조금 전에 저 건너에서 이곳으로 건너오려던 동료 한 명이 저 구멍에서 불꽃이 번쩍하는 순간 죽었다.
저놈들을 향해 뛰면, 두 발자국 떼기도 전에 모두 죽는다.
탕~타다당~
크레모아와 유탄, 그리고 중기관총의 표적에서도 벗어난 왜병들이 밖으로 뛰었지만, 저격병의 총구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진이야, 도망자는?”
“일곱입니다. 총의 사각지대로 숨어서 도망갔습니다.”
서윤의 질문, 그리고 이어지는 유진이의 대답이 들렸다.
“연대장 여기 지휘해. 부실장, 태블릿 내게 주고.”
“넵.”
“네, 여기요.”
후우웅~
태영은 태블릿을 받아 들자마자 몸을 날렸다.
크레모아와 중기관총에 왜병들이 찢겨 나가면서 피어 올라왔던 혈무가 태영이 날아가듯 달리는 바람에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천을 뽑아 들고 도망친 왜병이 달리는 방향으로 뛰었다.
서걱~
하나.
후우우웅~
슥, 서걱~
둘, 그리고 셋.
파아아앙~
삭, 서걱~
넷, 다섯.
이제 둘이 남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태블릿에 문자를 입력했다.
한번만 키를 두드리고는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바로 몸을 날렸다.
파아아아아앙~
툭툭툭
서걱~
담장을 건너뛰며 목을 날려 버렸다.
도망친 왜병은 집 뒤에 숨으려는 동작을 했지만, 태영이 너무 빨랐다. 고개를 돌려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았다.
저기군.
후우우웅~
돌이 날리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꺾어질듯 휘청거렸다.
푹~ 추릿~
달리던 속도를 줄이며 머리 뒤에서 지천을 찔러 넣었다가 바로 뽑아냈다.
어딜 도망가?
머리는 빨리 돌아간다.
설명해 봐야 말만 길어지고 찾아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니, 태영이 가진 태블릿으로 표적의 신호를 넘겨주겠단다.
곧 추적 신호가 태영의 태블릿에 전달되었고, 태블릿에 영상이 나타났다.
줌 아웃.
그리고 위치를 확인했다.
지금 영상에는 카이세이의 집 마당에 왜병 둘이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제법 큰 장원이다. 저 정도면 아주 잘사는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마당과 뒤뜰에는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고, 여인들 여럿이 보였다.
저 거리라면, 크레모아와 유탄, 그리고 중기관총 소리는 들렸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것은 눈치 빠른 놈이면 알았을 수도 있다.
파아아앙~
태영은 빠르게 달려갔다.
집들이 가로막고 있는 골목을 돌아서 가야 하기에 어차피 최대 속도를 낼 수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거리상으로 그다지 멀지도 않고.
태영이 도착했을 때 카이세이는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었다.
천천히 도착하면서 집 안을 살피는데 여자 둘이 따라와 신발 끈 매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여자의 태도가 매우 공손한 것이 하인인가 싶다.
어차피 여자들을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고, 지금 저 왜병들은 카이세이란 놈을 찾는 데만 쓸 놈들이었으니 제 할 일을 다 했다.
후웅~
서걱~ 싸악~
카이세이를 기다리는 왜병 둘의 목을 날려 버렸다.
“すいか? (누구냐?)”
신발을 신던 카이세이가 그대로 멈춰 서서 올려다보고는 고압적 말투로 누구냐고 물어왔다. 그제야 왜병 두 명의 목이 날아가고 피가 솟구쳤다.
“누구냐고? 널 잡으러 왔지.”
왜어로 하는 질문에 고려 말로 답하면서 지천은 칼집으로 넣었다.
고려 말로 해서 못 알아들은 것인지 놀라지도 않는다.
그때, 옆에서 수발을 들던 여인이 태영을 휙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옆의 여인도 태영을 돌아보았다.
오, 상당한 미인, 아니 무지하게 미인인데?
슬퍼 보이는 표정에 조금 초췌하긴 해도 둘 다 쉽게 보기 힘든 미인이다.
나이가 제법, 제법이라고 해야 20대 초중반 정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원숙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있다.
왜국의 여인들은 좀, 딱히 예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둘은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이 시대는, 특히 왜국은 화장품 같은 것이 개발되지 않았고, 사포의 여인들처럼 미백용화유 같은 것을 사용하지도 않을 텐데, 저런 아름다움이라니.
“나리.”
여자가 태영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나리? 나리라니.
아, 이 시점에서 왜 나리라고 고려 말로 부르냐고?
옆에 있던 여자도 무릎을 꿇었다.
“나리, 구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얼굴에 목소리가 아주 예쁘다.
묘한 기시감?
그래, 마치 한서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다만, 억양은 조금 이상하긴 한데 고구리 사람들 억양과 말투였다.
그리고 두 여인은 쌍둥이? 아니면 자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쇄액~
그때, 카이세이가 살그머니 움직이던 품속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비도가 튀어나와 태영의 목으로 향했다.
속도에서 비교가 안 되는데 이런 짓을 누구나 한다.
착~
카이세이의 손목은 태영에게 잡혔고, 비도는 빼앗아서 바닥으로 던졌다.
“넌, 안 되겠다. 일단 좀 맞고, 아니 분질러 놓고 시작하자.”
우둑, 뚜둑~
일단, 방금 비도를 들고 태영을 노린 손을 분질렀다.
“아아악, 아악.”
“다리를 전다고 했지? 마저 분지르자. 넌 기어 다녀도 되니까.”
바로 넘어트리고는 무릎을 밟아 다리도 분질렀다.
우둑, 뚝~
카이세이의 다리를 분질러 차 내는데, 비명 소리를 듣고 집 뒤쪽에서 칼을 꺼내 든 무인들이 튀어나왔다.
여섯.
꼴에 부하도 있다고?
사악, 서걱서걱, 푹, 푹~
퍽, 퍼벅~
일단 지천을 들어 넷의 목을 자르며 발로 쳐 냈다.
피가 솟아올라 태영을 적시면 안 되기에 목을 자름과 동시에 밀어 버렸다. 그리고 둘은 칼을 놓음과 동시에 양손으로 명치를 쳐올렸다.
헉, 크억~
둘은 바닥에 쓰러지며 새우등 말리듯 말려서 막힌 숨을 쉬어 보려고 새근거렸다.
이제야 두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잡혀 온 건가, 저놈에게?”
두 여인은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들을 어떻게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태영을 바라보았다.
이미 두 여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네, 그러하옵니다. 나리.”
“저 뒤 창고 감옥에 부모님과 동생이 갇혀 있습니다. 나리.”
울음 반, 반가움 반, 거기에 거친 숨소리가 섞였다.
“잠시 기다려라. 우선 이름이 어찌 되느냐?”
태영은 이름을 물으면서 목이 날아간 무사의 옷을 찢어 명치를 맞고 쓰러진 두 놈의 손을 뒤로 돌려 묶으며, 다리를 들어 올려 손을 묶은 줄과 함께 발목을 묶었다.
두 놈은 활처럼 휘어진 몸이 되었고, 두 발과 두 팔이 뒤로 돌아 묶여서 배가 앞으로 튀어나온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소녀는 설하라 하고, 동생은 설현이라 하옵니다.”
자매이군.
“부모가 감금된 곳이 어디냐?”
“앞장서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