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02
202. 이산(離散) 시대의 흔적(1)
“대대장, 우리 먼저 갈 테니 저 위쪽 병영에서 만나.”
북1병영까지 절반쯤 왔을 때, 태영이 신도익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장님, 저희 몫도 좀 남겨 주십시오.”
“그래.”
태영은 한서윤을 공주님 안기로 안았다.
후웅~
바람 소리가 귓전에 울리고 마른풀들이 바람에 우수수 날렸다.
태영은 10초 안에 도착하겠지만, 사포의 병사들은 경계를 하면서 와야 하기에 10분은 걸릴 것이다.
병영의 정문에는 2명이 지키고 있었지만, 담이 없이 병영의 형태만 잡혀 있는 병영 마당에는 병사들 50여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면 뻔하다. 어제 나고야가 공격을 당했으니 그 소식은 도착했다고 봐야 한다.
병선 선단이 공격당해서 모조리 불에 탔지만, 여기서 불길이 보였는지는 몰라도 당연히 적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적이 공격한다는 함성도 없고, 바다에는 배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명령은 내려왔겠지만, 어디에 적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왜병들은 저렇게 모여 있고, 지휘관들은 회의를 하고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태영과 서윤이 병영으로 다가가고 있었지만, 남자 하나 여자 하나.
군복을 입었으니 남녀의 구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달랑 둘이면 적으로 인식되지도 않을 것이 뻔하다.
“어느 편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겠죠?”
저놈들이 왕실파인지, 막부파인지는 모른다.
그걸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 어차피 칼 든 놈들은 모두 적이라고 봐야 한다.
“とまれ。 (멈춰라.)”
정문을 지키던 왜병이 칼에 손을 가져가며 소리쳤다. 그런다고 멈추지 않지.
“그래, 상관없이 칼 든 놈은 모두.”
쐐애애애앵~
태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쇠버리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염력으로 발휘되는 저 무지막지한 능력은 정말 가공할 수준이다.
쉬잉~
태영은 그 소리를 따라 바로 놈을 날렸다.
?
이미 쓰러진 두 명의 경비병을 스치며 병영 마당에 질서 없이 서 있던 왜병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하나.
샥~ 둘.
태영의 몸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돌며 스쳐 지나갈 때마다 공격하려고 몸을 움직이던 왜구들의 동작이 스르르 느려지며 몸이 기우뚱했다.
태영이 좌측을 쓸고 우측으로 돌아보았을 때, 공중을 점점이 물들인 쇠버리가 우측의 왜병들에게 쏟아졌다.
?퍽, 쐐액, 퍼퍼퍽~
칼을 뽑을 틈도 없는 그 짧은 시간에 병영 마당에 서 있던 50명 정도의 왜병이 모두 쓰러졌다.
덜컹~
바깥에서 몇 번 들리던 고함 소리가 사라지고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인지, 건물 안쪽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이 밖을 내다봤다.
“なんか? (뭔가?)”
고함을 치던 왜병이 마당에 쓰러져 있는 왜병들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벌떡 일어섰다.
“しにがみ. (사신).”
뽁~
서윤의 목소리에 뒤이어 머리에 구멍이 뚫리는 소리가 났다.
챙~
곧이어 칼을 뽑는 소리와 함께 세 명의 왜병이 안에서 튀어나왔다.
“どのやつなのか? (어떤 놈이냐?)”
곧 죽게 생겼는데, 저렇게 물어오는 것이 습관적으로 상대를 확인하려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것들이 귀가 먹었나? 좀 전에 죽은 놈에게 사신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고려 말로 중얼거리며 태영의 옆으로 다가왔는데, 이미 가슴 위쪽으로 세 개의 쇠버리가 날아올랐다.
? 쇄액~
퍽, 퍼벅~
셋의 동작이 그대로 멈추었고, 이마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새어 나오기도 전에 셋의 몸이 기울어졌다.
서윤이 상산에 쳐들어온 왜구를 잡을 때부터 거칠 것 없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비롯되었지만, 도무지 손쓸 기회를 안 준다.
“안에 누가 있으면 무기 버리고 나와라.”
때가 늦었지만, 신도익에게 지시했던 내용을 생각하면서 고려 말로 외쳤던 것이다. 실내에 아무도, 아니 한 명이 있었다.
숨소리.
“안에 한 명 있어.”
“그래요?”
반문을 함과 동시에 쇠버리 한 개가 어깨 위로 날아올랐다.
태영이 던지는 쇠버리는 회전력을 극대화해서 어느 정도 코너웍이 가능하긴 해도 보이지 않는 적을 때리기는 쉽지 않지만, 서윤은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표적으로 삼지는 못하지만, 마구 회전하며 돌아다닐 수 있기에 타격이 가능하다.
“사, 살려 주세요.”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문밖으로 소년 한 명이 고개를 내미는데, 한국어, 아니 고려 말이다.
고려 말로 외친 것이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내민 소년은 열두세 살로 보였는데, 표정이 잔뜩 겁을 먹은 상태이지만 조심스럽게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겨울옷이 아닌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겁에 질려서 그런지 몸을 덜덜 떠는 모습이 안쓰럽다.
“넌 누구인데 고려 말을 알고 있느냐?”
태영이 궁금해서 일단 물었다.
“저, 저어, 저는.”
말을 더듬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고려 말을 하는 사람이 너 말고도 있느냐?”
그나저나 고려 말을 하는 사람들이 왜국에 왜 이리 많이 있는 거야?
“네? 네, 나, 나리.”
“그래, 몇이나 있느냐?”
“아, 저, 어, 저.”
낯가림 같은 것은 아닐 테고, 대답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 태영의 말투가 강압적이어서 그런가?
아이의 크고 동그란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보일 듯한데 엉뚱한 상상이 든다.
얼굴은 마치 일부러 씻지 않은 듯 때가 많이 묻어 있고, 피부는 거칠어 보이지만, 씻기고 깨끗하게 만들어 놓으면, 귀엽고 잘생긴 녀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돌보다 더 아이돌같이 생긴 남자아이?
근데, 말을 왜 이리 더듬는 거야?
“대장님, 제가 이 아이랑 이야기 좀 해 볼게요.”
“그래.”
태영이 쓰러진 왜구들을 바라보자 서윤이 아이를 데리고 조금 전에 나온 곳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그런데, 묘하네.
아이의 어투와 행동, 그리고 얼굴에서 딱 꼬집어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태영에게 신체의 변화가 온 이후에 생긴, 아주 민감한 청력이나 시각적 판별 능력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아무튼 느낌이 그렇다.
태영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금방 잊고, 병영의 뒤쪽에 있는 몇 개의 건물을 수색했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워낙 규모가 작아서 병사들 외에 보조자 인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병영 마당에 죽어 넘어져 있는 왜병의 시체를 병영 바깥의 한곳으로 냅다 던졌다.
휙, 툭, 퍽 소리를 내면서 왜병의 시체가 모두 던져지자, 병영 마당에는 핏자국과 피비린내만 남고 깨끗해졌다.
덜컥~
시체를 다 처리하고 멍하니 아침이 밝아 오는 오사카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서윤이 나왔다.
“왜 혼자 나와?”
“애가 겁에 질려 있어 그런지 여전히 대답을 잘 못 해요. 자신이 고려인이라는 것은 아는데 다른 것은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아요.”
“고려인임을 안다고?”
“네.”
21세기 현대에 사는 사람은 절대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지만, 이 시대는 시골의 어느 지방에 농사를 짓고 살고 있으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이름을 알 이유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또, 그걸 아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것은 양반층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맹인 데다, 의무 교육 같은 것이 당연히 없으니 배울 기회도 없고, 누군가가 그것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귀족층인 양반들도 문맹이 무척이나 많다. 무인 집단은 무력으로 쟁취한 신분이 귀족일 뿐이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정말 많다.
태영도 이 시대의 이곳에 와서 살면서 그런 오류를 범하는 일이지만,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들을 모르는 것에 대해 황당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1세기 현대는 유치원이나 유아원에서 2~3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등 이것이 최소의 기본 교육이다.
그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가고 또 일부는 대학원을 간다.
그렇게 오랜 기간의 교육을 통하여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살아온 21세기의 사람들은, 글자는 구경도 해 보지 못하고, 학교라는 것은 있는지도 모르는 세상의 사람들이 가진 지식의 축적 정도에 대해,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가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으니, 부모나 조부모 등으로부터 전달받는 정도의 지식을 제외하고는 지식을 전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나마 부모들도 배운 것이 없으니, 가르쳐 줄 것 또한 없다.
21세기를 살다 온 태영이, 그렇게 납득이 안 되는 일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정하기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자신이 고려인임을 알고 있다고?
“거참, 특이하네. 어린애 같던데. 나이는 몇 살이야?”
“열네 살, 이름은 해.”
이름이 외자.
외자 이름이 이상할 건 아니지.
“열네 살이면 적은 나이는 아닌데, 얼굴이 어려 보이는 모습인가?”
키는 제법 크긴 해도, 얼굴은 귀엽게 생긴 초딩이다.
“그런가 봐요.”
“일단, 뭐라도 좀 알아낸 거 있어?”
“달품이곶이라는 데서 살았는데, 그것 말고는 제가 살던 곳을 설명하지 못해요.”
설명 못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설명할 수 있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이름으로 봐서 바닷가 마을이군. 그리고?”
“자신의 마을에서 동으로 바다 건너에 금산이라는 높은 산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동으로? 그리고 금산?”
방향 감각도 해 뜨는 방향이 아니라 동으로?
아무튼, 남쪽 지방에 있는 산으로는 지리산 말고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지리산은 바닷가에서 보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고, 이름도 다르다.
“네.”
“언제 이리 잡혀 왔다는데?”
“4년 전 추수해 놓은 뒤라고 하는데, 잡혀 온 사람이 인근에 다랭이곶, 돌머리재라는 마을까지 합쳐서 마흔 정도인데, 그 중에 둘은 죽었고, 자신은 여기에서 심부름꾼으로 있다는데,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귀엽게 생겨서 그런 모양입니다.”
좀 말랐고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귀엽게 생기긴 했지.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다는데?”
“아직 제대로 물어보질 못했어요. 애를 진정시키느라. 좀 이따가 다시 물어보죠.”
저벅저벅~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사포의 병사들이 신도익을 필두로 들어섰다.
“남겨 두시지 않으셨네요.”
신도익은 들어서면서 태영이 던져 버린 왜병들의 시신을 한번 바라보았다.
“부실장이 손쓰기 시작하면 나한테도 기회가 없잖아?”
“네, 그건 그렇죠.”
“진이야, 금산이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 산인지 좀 알아봐. 아마 남해안 지역 바닷가에 있는 산이 아닐까 싶어.”
“네, 대장님.”
대답을 한 유진이가 태블릿으로 검색에 들어갔다.
“여기, 저 집 안에 아이가 하나 있는데, 바다 건너에 금산이라는 산이 보이는 마을에 살았단다. 뭐 달품이곶이라는 바닷가 마을인데, 거기서 이리 잡혀 왔는가 봐. 마흔 명 정도.”
“인근 수색 준비시키겠습니다.”
“그 애한테 좀 더 물어보고 진행하자고.”
“애가 겁이 좀 많은 것 같으니까 제가 잔디하고 같이 마저 이야기해 볼게요.”
잔디도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닌데, 대답을 제대로 하려나 몰라.
“네, 부실장님.”
서윤은 잔디를 데리고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대장님, 금산은 남해라는 섬에 있는 산입니다.”
태블릿으로 이곳저곳을 찾던 유진이가 금산의 위치를 말했다.
“그래? 그럼 거기서 서쪽 방향 해안으로 달품이라는 이름, 아니야 이름이 다를 수도 있을 테니까, 달이나 월이나 그런 글자가 들어가는 이름하고, 다랭이, 돌, 석, 이런 글자가 들어간 마을이 있는지 모두 찾아봐.”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로 된 수많은 지명이 한자로 바뀌었다.
순우리말 지명은 왜인들이 발음도 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토지 수탈을 위해 토지 대장을 만드는데 그걸 기록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순수한 한글 이름은 왜어로 기록도 힘들고 마을 이름이 뜻하는 의미도 모른다.
그래서 한글로 된 것이 그 의미의 한자어로 바뀌었지만, 같은 뜻이라도 한자로 바뀌는 순간 실제 의미가 달라져 버린다. 그래서 정말 많은 지명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벌말, 널다리, 봄내라는 이름이 평촌, 판교, 춘천 이렇게 바뀌었다.
그 외에도 실제로 지명이란 종종 바뀌기도 한다.
송나라 무역을 위해 들어가는 도시 명주는 23세기의 지도에 닝보, 아니 영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으니까.
“월포라는 곳이 있습니다. 달품게스트 이런 건 아니죠?”
“달품게스트가 월포에 있어?”
“네, 월포에 있습니다.”
“그럼 거기야. 남해라는 말이지?”
“네, 대장님.”
“4년 전 가을에 잡혀 왔단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잔디가 밖으로 나왔다.
“대장님, 부실장님이 대장님과 대대장님이 와 보셔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대대장 가 보자. 중대장 두 사람, 진이도 들어와.”
“네.”
실내에는 제법 큰 탁자와 8개나 되는 의자가 있고, 한쪽에 장작불이 돌로 된 화로 속에서 타고 있었다.
총을 든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섰지만, 아이가 총이라는 존재를 모르니 그건 별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무서운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남자들이 들어서자 조금 더 움츠러드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 이분들은 너를 해칠 분들이 아니야.”
아이의 옆에 앉은 잔디가 아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우린 너희 가족을 지켜 주긴 해도 해치지는 않을 사람이야.”
태영이 그렇게 말하며 거칠게 대충 동여맨 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말이 위안이 되려나 몰라.
아이가 처음에는 움칠했지만, 이내 얌전히 있었다.
“그런데, 왜?”
태영이 서윤에게 본론을 물었다.
“이곳에는 고려 말을 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래? 잡혀 온 사람들?”
“이곳에는 달품이곶에서 잡혀 온 사람 외에 거북내라는 데서 잡혀 온 사람, 그리고 또 달맞이곶이라는 데서 잡혀 온 사람도 있답니다.”
달품이곶, 달맞이곶은 비슷하지만 다른 동네가 확실하고, 거북내 거기도 다른 마을이네.
“그래?”
“그 외에도 고려인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고 합니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
왜 이렇게 구분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아이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이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네, 자기네들처럼 잡혀 온 고려인 외에 원래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고려인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 고려 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과 할 줄 모르는 고려인들이 조금씩 대립되어 있답니다.”
애가 그걸 안다고?
열네 살이면 겨우 중1인데?
“잠깐, 그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그리고 잡혀 온 고려인들을 제외하고 생각을 정리해 보자.”
“네.”
“원래 터를 잡고 사는 고려인, 고려인들 중에 고려 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과 할 줄 모르는 고려인, 그 두 세력의 대립, 그렇다는 거지?”
“그렇죠. 얘 말이 맞다는 가정하에서요.”
“그런데, 대립을 왜인들은 알겠지?”
“아마도 그런 듯한데요.”
“백제 유민이군.”
“백제 유민이요?”
백제 유민들이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소리다.
그 이전에, 고구려에 통합된 한사군의 유민이나 신라에 통합된 가야의 유민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러면 백제와 고구려인만 생각하면 되는데, 고구려인은 대부분 당나라로 끌려갔고, 왜국으로 온 숫자는 너무 적을 것이니 빼도 된다.
이것을 정리하자면, 말을 잊지 않고 지키며 사는 백제 유민과 왜인이 되어 버린 백제 유민으로 나뉘어 있단 소리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고.
가만, 유민이 맞나?
이민자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원래 백제와 왜국은 가까웠다는 이야기 했었지?”
불과 수 시간 전, 새벽에 했다.
서윤이 있었고, 신도익이 있었으며, 잔디도 있었다.
그 외에 몇 명의 중대장과 비서실 병사도 제법 여럿 있었다.
송복기를 비롯하여 황룡호에도 있지만, 일단 그들은 하선하지 않았으니 제외해도 여기 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네.”
신도익이 대답했고, 다른 병사들도 들었으니 대답을 한다.
“그런데, 편이 나뉘어져서 대립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왜국에서.”
이건 이들에게 답을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태영이 생각을 정리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점을 이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인가요?”
“송산과 송도에 있는 고구리 유민과 신라 유민들과 이들 백제 유민은 처지가 조금 달라.”
다들 유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다.
“송산과 송도 사람들은, 한 사람의 지도자, 대표자라고 해야겠네. 한 명의 대표자가 이끌고 왔고, 또 왜국에 와서도 왜국의 다른 지역과 교류를 별로 하지 않고 숨어서 살다시피 해서 그렇지?”
“네.”
“그런데 백제는 왜국과의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멸망 이후에 귀족들을 중심으로 여러 무리가 따로따로 도망쳐 왔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무리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어. 물론 내가 이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서윤의 대답이다.
이 부분은 태영도 잘 모른다.
다만, 백제 유민들은 여러 무리들이 왜국으로 건너왔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국사 선생님도 말했었다.
그 사람들이 21세기를 기준으로 보면, 세월이 지나면서 모두 왜인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자신이 백제의 후손이라는 것을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겨 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무리들은 왜인들 속에 스며들어 그 흔적을 지워 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했다.
백제의 흔적을 지우고 스며들어 버린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건 도망자의 흔적이니까.
타국으로 도망쳤으니, 특정되지 않은 적들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런데 가슴이 왜 이리 아플까?
대규모 이산(離散)을 만들어 낸 시대적 아픔의 시기가 여러 번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컸던 이산의 때는, 신라의 삼국 통일 때나 일제 강점기 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