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03
203. 이산(離散) 시대의 흔적(2)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을 지켜 온 사람들은 구한다.”
태영의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한마디만 했다.
“송도나, 송산처럼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곳을 살아갈 터전으로 그들에게 넘겨줄 것인지, 아닌지를 정하자고.”
신도익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자, 대장님 말씀, 무슨 의미인지 알지?”
신도익이 중대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인해 본의 아니게 흩어져 나간 사람들.
삼국의 통일은 그런 아픔이 있었다고 해도, 좋은 점도 많았다.
사실상 당시의 당나라는 어떻게 해서든 고구려를 정벌해서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려 했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끝없이 침공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신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를 멸망시켰을 때,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백제를 자국의 영토로 선포하고, 당시 백제의 태자 융을 웅진 도독으로 임명했다. 물론 신라의 문무왕에게는 계림 도독으로 임명해서 삼국 모두를 당나라에 복속시키려 했다.
그런 당나라의 야욕을 알게 된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신라의 군대가 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서 가야 하는 길목이 문경이었다. 그 길을 막기 위해 당나라 군대가 거기에 주둔하고 있었다.
김유신은 문경에 주둔한 소정방과 그 부하 장수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고, 그곳에서 그들을 모두 죽이고 머리를 잘라서 묻어 신라 사람들이 소정방과 그 부하들의 머리가 묻힌 땅을 밟고 다니도록 했다.
당의 군에게 모멸감을 주고, 신라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한 방안이었다.
소정방과 부하들의 목을 잘라 피가 시내를 이루었던 곳은 머리내(두천: 頭川), 머리를 모두 묻은 곳은 때따리(당교: 唐橋), 당나라 병사가 주둔하던 지역은 뙤밭(당전: 唐田), 다방터(당병터: 唐兵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단다.
당나라 사람들을 뗏놈(되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형태이다.
그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신라가 당나라를 막지 않았다면, 세 나라가 그대로 국경을 가지고 공존하면서 21세기 현대까지 넘어올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이 그때 벌어진 것뿐이다.
만일, 그때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를 상대하여 7년간의 전쟁을 통해 당나라를 막아 내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당나라에 병합되어 중국이 되어 버렸을 수도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는 거니까 섣부른 상상이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하는 사람의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인들은 당나라에 끌려간 이후, 어느 곳으로 흘러가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고선지 장군 같은 후손의 기록은 남아 있지만,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하는 일부가 20만 명이 넘는 고구려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딘가로 끌려가 모두 죽었을 수도 있고, 고선지 장군처럼 선조가 고구려인이었다는 기록만 남기고 중국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 인근의 나라와 사람들이 모두 중국으로 흡수되었듯이.
왜국으로 도망친 제법 많은 백제인, 그리고 아주 적은 숫자의 고구려인, 그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신라인들도 노예로 끌려가서 평생을 일만 하다가 모두 죽었거나, 이곳에 순응하여 왜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왜인이 된 사람들이 임진왜란 때는 왜병이 되어 조선 땅을 유린했을 것이고,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인들을 붙잡아 가고 조선인은 미개하다며 무시하고, 학살했을 것이다.
역사의 복수.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 왜국으로 도망을 쳐서 왜인이 된 고구려 유민이나 신라 유민, 그리고 백제 유민은 왜국의 인구와 비교해 본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다.
그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섞여 들어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역사의 복수입네, 어쩌네 하고 떠들 수 있는 소재 거리로는 충분하다.
본인이 알고 저질렀건, 모르고 저질렀건 결론적으로 그리되었으니까.
태영도 세상 얼마 살지 않아서, 또 태영이 알고 있는 역사 지식이라는 것이 정말 하찮은 정도여서, 잘은 모르겠지만 역사란 그런 것인가 보다.
송도 시장 화지의 무리들이나, 송산 시장 설가의 무리들도 태영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구해 내지 않았다면, 모두들 죽음으로 내몰렸거나 후세에 그들 역시 왜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조들이 살아온 그 땅을 짓밟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살육했을 것이다.
태영이 이 시대로 날아옴으로 인해, 태영이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미래에 발생할지 아닐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은 정하연과 한서윤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은 혼자의 생각으로 끝낼 때이다.
“대장님, 그들이 서로 대립한 이유는 뭘까요?”
잠시의 정적을 깨고 잔디가 물어왔다.
태영 혼자만의 생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질문이다.
“그 사람들도 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애를 썼겠지만, 무리의 대표자에 따라 생각이 달랐을 수 있어.”
잔디의 질문에 대답하며 태영은 아이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겁에 질려 있는 얼굴이지만, 처음에 비하면 많이 안정된 표정이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 않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립을 하고자 원해서 그리된 것은 아닐지라도 결과는 그리되었겠지.”
“네.”
“뭐 다른 건?”
태영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이 아이, 해가 자신이 알고 있는 고려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말해 줬어요.”
“그래?”
“네, 여기가 병영의 본부는 아니지만, 병영 노비로 여기서 심부름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들은 것이 많은 거 같아요.”
“어딘데?”
“자신이 들은 것만 가모, 히라카타, 간자키 정도인데요.”
“진이야, 잘 기억해 둬. 위치도 찾아봐 두고.”
“네, 대장님.”
“이 애의 가족은 없어?”
“있어요.”
“열 살에 이리로 잡혀 와서 4년이 지난 이 아이가 아직도 말을 잊어버리지 않았단 말이야.”
태영이 혼잣말처럼 했지만, 이들에게 들으라는 말이었다.
“얘야, 말을 어찌 잊어버리지 않았느냐?”
태영의 말을 들은 서윤이 아이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말을 잊어버리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
아이의 말대로라면 아이 아버지는, 결코 농사를 짓고 사는 평범한 이 시대의 양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글을 알고 제법 공부를 한 사람이리라.
“가족이 어떻게 돼?”
“아버지와 형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잡혀 오기 전에 죽었습니다. 동생 둘하고 같이.”
다복한 가정이었네.
잡혀 오기 전에 어찌 살았는지는 몰라도 4남매였으면 다복한 가정이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왜구들이 잡아 왔고, 애 엄마와 동생들을 죽였고, 그렇게 남의 행복한 가정을 깨트렸다는 소리다.
“왜구들이 죽였어?”
아이의 눈가에 바로 눈물이 핑 돌더니, 고개를 끄덕이자 양 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래, 죽은 가족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지. 대체, 이놈들은 왜 저 철없는 아이의 눈에 피눈물을 흐르게 하는 거야?
“엄마를 죽인 원한을 갚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마. 물론 네가 원한을 갚고 싶다면.”
“……네.”
울음을 참으며 겨우겨우 대답을 했다.
“누군지 기억해?”
잔디가 아이에게 물었다.
“…….”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끄덕.
눈물은 흘러도 입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은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혹시라도 저기 죽어 나자빠져 있는 놈들 아니지?”
잔디가 태영이 병영의 밖으로 던져 버린 왜병들의 시체가 쌓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
또,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끄덕.
아이의 우는 표정이 심각해 보여야 하는데, 대체 왜 이리 귀여워 보이는 거지?
“반드시 원한을 갚도록 도와주마. 이 부근에 사는 왜구들을 모조리 죽여서라도 그리해 주마. 알았지? 그러니 울지 마. 눈물 닦고.”
갑자기 와카마쓰의 권소연이 생각났다.
복수의 마지막에 적장을 죽인 칼로 자신의 목을 그어 자살하고 말았지만, 정말 처절하게 복수했다.
“얘 가족들부터 구해.”
“길 안내를 하겠습니다.”
태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면서 몇 번을 눈을 문질러 물기를 깔끔하게 지워 냈다.
고놈, 제법 다부지네.
우르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병영 마당에는 사포의 병사들이 줄지어 서서 개머리판을 옆구리에 받치고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는 자세로 사주 경계를 하며 서 있었다.
“그래, 안내는 하는데 앞장서지는 말고, 저분 대장님 뒤에서 안내해라.”
“왜병들은 우리가 상륙해서 저희들을 찾아다니는지도 모르는데, 뭐.”
“그래도 혹시 아나요?”
이 시대의 일반적인 전투와 달리 사포군은 워낙 소규모다.
여몽 연합군이 후쿠오카로 들어갔을 때, 그 앞바다인 히카타만에 9백여 척의 전선이 들어섰으니 바다를 까맣게 메웠을 것이다.
1차 원정군의 규모가 2만 3천이나 되었으니까, 선단만 보더라도 전쟁의 시작을 알게 된다.
사포군은 어제 나고야 인근에 있는 큰 도시들의 병영이 있는 곳은 다 때려 부수고, 백색 탄으로 불태웠다. 병선의 선단이 있었지만, 모조리 백색 탄으로 태웠다.
왜병들은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배를 보기는 했을 것이다.
함포의 사정거리는 아주 길어서 사람들의 시야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지만, 백색 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격 목표의 8킬로 이내로 들어간다.
바다는 시야가 탁 트여 있는 데다 배가 워낙 큰 탓에 충분히 보았을 수 있다. 그런데 딸랑 한 척이다.
그 배가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닐 것이다. 상륙한 병력이 없으니, 누군가로부터 공격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냥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고,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그 불꽃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불타올랐을 뿐이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공격한 적이 없다. 화살 한 개도 날아오지 않았으니까.
아침에 오사카에 있는 왜국의 선단을 함포로 다 때려 부쉈다.
왜군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배가 다 부서지고 불탔을 뿐 어느 곳에서도 자신들을 공격한 적은 없었다.
정찰조를 보내서 정찰을 해 봤다면, 바다 위에 떠 있는 큰 배에서 사람이 좀 내렸지만, 몇 명 되지도 않으니 싸움이 벌어지면 자신들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체 왜 그리된 것일까?
적은 어디에 있나?
천둥은 왜 치고, 배는 왜 불타올랐을까?
혹시 하늘이 노한 것인가?
타다닥~ 타다닥~
아이가 달려서 병영을 벗어나며 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마치 태영보다 더 빨리 달릴 듯한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 제법 큰 나무가 무더기로 있는 낮은 언덕을 넘고 들판을 가로지르더니 평평한 곳에 커다란 전각이 여러 채 있는 커다란 장원 앞으로 갔다.
대략 1킬로쯤 온 것 같다.
아이가 멈춰 선 곳은 제법 높은 담벼락에 대문도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왜국에서는 흔히 보이지 않는 모습의 장원이었다.
“여기가 우리가 수색하고 정리하기로 한 집들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아요. 일단 정리하고 알아보죠, 뭐.”
“그래.”
대문을 지키는, 칼을 든 위병이 뭐라고 말을 했을 때, 서윤으로부터 날아간 쇠버리가 위병의 목을 꿰뚫었다.
어?
성가시다고 목을 노리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염력에 의한 조준이 훨씬 정밀해진 모양이다.
목 부분은 쇠버리가 뚫고 들어가도 그곳의 살이 가진 특징으로 인해 쇠버리가 뚫고 들어간 구멍으로 피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냥 핏방울이 빨갛게 새어 나오는 수준일 뿐이다.
“네 아버지가 이 집에 있어?”
“네.”
서윤의 질문에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남아 있기는 해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이는 정문을 지키는 위병이 왜 쓰러졌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잠겨 있지 않은 대문을 밀고 장원의 안으로 들어섰다. 위병이 지키고 서 있었으니 잠가야 할 일은 없는 듯했다.
저택의 마당에 태영이 발을 들이밀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 잘 꾸며진 집은 당연히 처음 본다.
능히 수백 평은 될 만한 대저택의 마당.
비록 겨울이라서 노랗게 변하긴 해도 마당 전체에 깔끔하게 잔디가 깔려 있고, 제법 큰 나무도 있다.
그 노란 잔디 위에, 대문에서부터 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의 큰 전각까지 넓고 반듯한 까만 돌 판이 마치 징검다리 놓이듯 깔려 있다.
노랗게 변한 잔디 정원에 까만 돌 판이 깔려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뿐 아니라, 중앙의 큰 전각의 좌우에 있는 작은 전각으로 이어지는 곳으로도 돌은 깔려 있어서 비가 내리더라도 잔디를 밟지 않고, 돌만 밟고 이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집의 크기로 보면, 이 지역의 영주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드론으로 정찰한 오사카에는 이렇게 큰 규모의 집이 제법 많이 있었다.
이들끼리 어찌 부르는지 모르지만, 영주가 맞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들은 귀족들 중에서도 아주 상류층이라는 소리다.
집 마당에는 칼을 찬 왜구들 열 명이 둘씩 짝을 지어서 온갖 폼은 있는 대로 잡고, 집 안의 곳곳에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었고, 한곳에 네 명이 모여 있었다.
대문을 밀고 들어온 사포군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역시 소란 때문인지, 대문 가까운 쪽에 있는 전각에서 칼을 찬 왜인들이 천천히 나왔는데, 거의 스물 정도가 나왔다.
그런데 이들은 왜병들이 입고 있던 갑옷 차림이 아니라 평상복 차림이었다. 왜병이 아니라, 이 집 주인을 지키는 개인 사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누구냐고 묻지도, 고함치지도 않고 모두 쳐다보기만 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선 병력이 불과 열 명 정도여서 그런가?
그 짧은 찰나에 아이의 손이 가리키는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를 죽였어요.”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온 말이다.
아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 네 명이 있었고, 등을 보이고 있는 세 명과 얼굴을 보이고 있는 한 명이 있다.
아이는 이쪽으로 얼굴을 보이고 있는, 느낌상으로는 마당에 있는 왜인들, 그리고 전각에서 나온 왜인들 중에 직위가 가장 높을 것 같은 놈을 가리켰다.
아이가 가리킨 왜인은, 어떻게 저렇게 전형적인 악당처럼 생긴 놈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느껴질 정도로 정말 지독하게도 험악하게 생겼다.
눈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데 길게 찢어져 있고, 콧구멍은 거의 하늘을 보고 뚫려 있는 데다, 광대뼈보다 더 앞으로 튀어나온 앞니로 인해 인상도 아주 더러워 보였다.
그런데 이 애가 참 대단하다.
태영이나 서윤의 무력을 봤으니, 자신이 그렇게 가리켜도 저 왜인들이 어쩌지 못할 것을 알 수도 있다. 그래도 겁이 나서 가리키기가 쉽지 않은데, 얘는 전혀 아니었다.
아까, 서윤이 말해 주었던 겁먹었다는 이 애의 행동들과 도무지 매치가 안 된다.
“그으래? 잠시 기다려라.”
챠르르르~ 쐐애애액~
서윤이 아이의 손끝이 가리키는 왜병을 보고, 이빨을 앙다물듯 하면서 내뱉는 노기 띤 목소리와 쇠버리가 날아오르는 소리, 그리고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거의 시간차 없이 들려왔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지.”
후웅~
쇠버리 소리를 들으면서 한마디를 남기고 태영은 몸을 날렸다.
차악~
서걱, 착, 서걱~
지천이 그림자처럼 일렁이며 이곳저곳에 서 있는 왜인들의 목을 잘라 갔다.
태영의 빠른 속도로도, 목을 찔렀다 빼는 시간이 아까워 지천이 회전하는 궤도에 있는 왜병들의 목을 무차별로 잘랐다.
쇄액~ 서걱~
이들은 살려 둘 필요가 없다.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아도 서른도 안 되는데, 이 정도면 별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태영의 움직임이 아이에게는 순간 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아아악~
태영이 아이가 가리킨 왜구가 모여 있는 넷을 제외한 모두의 목을 자르고, 중앙에 있는 전각의 앞쪽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쪽 방향을 보았을 때, 왜병 셋의 이마에 빨간 점이 생겼고, 아이가 가리킨 놈의 양팔과 두 다리를 가린 옷에 빨갛게 피가 번져 가기 시작했다.
비명은 그놈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저렇게 팔다리에서 피가 나서 옷을 적시려면, 도대체 한 놈의 팔과 다리에 쇠버리를 몇 개나 박아 넣은 거야?
그놈은 바닥으로 힘없이 넘어졌고, 태영이 스쳐 지나가며 목을 잘린 왜구들은 그때서야 몸통에서 목이 분리되며 피가 솟구쳤다.
피비린내가 훅 풍겨 왔다.
목을 자르면 분출되는 피가 너무 많은 탓에, 어떤 때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피비린내가 풍긴다.
욱~
아이는 마치 토할 것처럼 입을 막고 허리를 숙여 게워 낼 듯 구토를 했지만 토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몸통과 머리가 분리되고, 목에서 솟아오른 피가 공중으로 뿜어져 안개처럼 퍼져 나가며, 몸통이 서서히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제대로 정신 차릴 아이는 없을 것이다.
컥, 커윽~
몸속 깊은 곳에서 넘어오는 기침 소리가 들리고, 아이가 침을 뱉는 모습도 보였다.
서윤은 아이의 등을 두드려 진정시킨 후, 아이를 앞세워 태영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고, 사포의 병사들이 따라오면서 공간이 생기자 집 밖에 있던 병력들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저놈은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팔다리뼈를 모두 부러뜨려 놨다. 그렇다고 해도, 네 원한을 갚는 것은 저놈을 묶은 다음에 하자.”
서윤의 말에 아이는 잠깐 얼떨떨한 상태인 듯했다.
서윤을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이 돌아오더니 소맷자락으로 입을 한번 쓰윽 닦고는 태영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요?
딱 그 표정이다.
슁~ 챙그랑. 챙그랑~
그때, 쇳소리가 들리면서 죽은 시신에서 칼들이 빠져나와 한쪽으로 날아갔다. 서윤이 그것들을 손대지 않고 한곳으로 치우는 중이었다.
아악, 아아아악~
팔다리에 쇠버리가 박혀서 피를 철철 흘리는 왜인은 참으려 해 보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지 간헐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와 무기들이 한곳으로 날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으니 집 안쪽의 사람들이 나올 차례였다. 한 놈을 제외하고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지만.
덜컥~
그때, 큰 전각의 가운데 큰 문이 작은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このさわぎはなにごとだ? (웬 소란이냐?)”
방 안에서 왜인 하나가 제법 넓어 보이는 대청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허리에 칼은 차고 있지만, 복장은 역시 일상복 차림이다.
문을 열면서 오전의 햇살 아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보였을 텐데,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어떤 고위직인지 모르지만, 제법 방귀깨나 뀌고 산 모양인데, 고개를 돌려 이쪽저쪽을 둘러보고 나서야 왜인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뜨였던 모양이다.
“얘야, 저자가 이 집에서 제일 높은 놈이냐?”
“네? 네, 저, 저놈이 우리 동네에 쳐들어왔어요.”
이 엄청난 상황에서 정신을 차린 아이가 대답했다.
이렇게 큰 집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놈이 고려 땅으로 쳐들어가서 약탈을 했단 말이야?
“그리고 사람들을 마구 죽였어요.”
아이의 그 말에 이제야 이해되었다. 살육을 즐기는 종자.
간혹 그런 놈들이 있다. 사람들을 칼로 베고 찌르면서 피가 솟구치고, 비명을 지르는 걸 보며 희열을 느끼는 종자들.
왜인들이 저지른 희대의 학살극인 남경대학살 사건이나, 100인 참수 경쟁 같은 것을 보면 틀림없다.
100인 참수 경쟁은 남경대학살 때, 일본의 군인 둘이 군용의 도검을 가지고 100명을 누가 먼저 죽이는가에 대한 내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의 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화되었다고 했다.
전투에서 적을 상대로 전투 중에 그렇게 하는 것을 가지고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전쟁이니까.
그러나 이들은 포로와 민간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때는 총으로 무장하고 전투를 벌이는 현대전의 시기였기에 총을 들고 이쪽을 노리는 적을 칼로 상대할 수는 없다. 당연하게도 칼로 죽일 수 있는 대상은 포로와 민간인이었다.
그 외에 150명 먼저 죽이기, 300명 목 베기 시합, 500명 목 베기 시합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것 역시 저항 능력이 없는 포로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 일들은 소설 속, 상상의 세계가 만들어 낸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당연히 그들은 종전 후, 전범 재판에서 모두 총살되었다.
그런 사건들을 떠올리면, 대체 왜인이라는 종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놈도 그런 놈들 중 한 놈이다.
소정방 암살 사건과 문경의 때따리의 기록은 ‘역사스페셜 44편, 미스터리 추적-신라의 소정방 피살 사건’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