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12
212. 헤이안 점령(2)
행렬의 가장 앞에 깃발을 든 왜병을 세웠다.
처음, 오사카로 올 때부터 깃발을 든 왜병들은 막부와 관계없는 병사들이었는지 고가가 모두 쉽게 구분했다.
그 많은 왜병들이 총 앞에서 죽어 나갔기에 벌벌 떠는 깃발 병들을 달래는 역할도 고가가 맡았다.
고가와 간파쿠인 구조 미치리가를 태운 마차를 그다음에 배치했다
고가와 구조가 마치 사신단을 인내하는 모양을 갖춘 행렬이다.
3대의 마차 중에 마지막 세 번째 마차에는 비서실 병사 몇 명과 장호, 박해월 가족이 타고 있다.
세 사람은 군사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민간인이기에 안전을 위해 철갑 교위에 태웠더니, 답답해서 그냥 걷겠다고 해서 내린 조치이다.
장호는 이동 중에도 드론으로 교토 전 지역을 정찰하기 위해 태블릿을 펼쳐 놓고 있어서 마차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오히려 잘된 것 같다.
그렇게 마차 세 대가 줄지어 서고, 기마병들이 타고 왔던 말 중에 부상을 입지 않고 살아남은 말들과 도망을 갔다가 다시 되돌아온 말들을 합쳐서, 사포의 병사들이 타고 교토로 진입하도록 했다.
활짝 열린 성문.
현판이 나성문(羅城門)인데, 왜어로 나조몬이니 어찌 보면 발음이 중국어와는 달라도 고려 말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새벽에 눈을 뜨기도 전에 왜병들이 모여 있는 병영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기 때문인지 아무도 길을 막아서지 않았다.
성문을 지키는 경계 병력은 전투병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냥 출입자를 검문하는 수준이다.
거기에 행렬은 왜국의 각종 깃발을 앞세우고 있고, 고가가 마차에 타고 있으니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았다.
깃발을 든 왜병이 뭐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모두 양쪽으로 물러났다.
나성문이 있는 벽이 외성인데, 고려의 성들과 달리 석성이 아니어서 충분히 적을 방비할 정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
해자가 있기는 하지만 물이 충분히 차 있지는 않는 것으로 봐서 전쟁이 그다지 많지 않은 모양이다.
성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앞에 일직선으로 펼쳐진 길.
“길을 아주 잘 닦아 두었는데요.”
“도로가 무지하게 넓네, 이 정도면 폭이 100미터는 될 것 같아. 도시 계획을 아주 잘했는데.”
태영의 옆에서 천천히 말을 몰며 서윤의 말에 태영도 동의했다.
재어 보지 않아서 100미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세종로보다 훨씬 더 넓은 것 같다.
대학 때, 겨울 방학에 동경에 다녀온 동기생의 말로는 도로 폭이 상당히 좁아서 답답하다고 했었는데, 그건 지금부터 1천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도로가 이렇게 넓다고?
시대적으로 보면 이렇게 도시 계획을 해서 도시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제법 똑똑한 인사가 계획은 잡은 것 아닌가 싶다.
“개성은 길이 구불구불하고, 언덕도 많고 그렇잖아요?”
“그렇지. 평지보다 언덕이 더 많지.”
외성으로 볼 수 있는 성벽도 반듯했다.
“거기에 비해 이곳은 참 잘 만들어 둔 것 같아요.”
“서경도 이렇게 안 되어 있을 텐데, 서경에 안 가 봤지?”
“서경요?”
“저도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태영과 서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웅겸이 말을 거들었다.
“맞아, 연대장도 서경에 가 볼 일이 없었겠네.”
“대장님 오시기 전에는 개경에 가는 것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아니 사포를 벗어나는 일 자체를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행렬 뒤쪽을 책임지고 있는 권우석에게 갔던 신도익이 언제 곁으로 왔는지 같이 한마디 했다.
“그런 거 다 떠나서, 맨날 당하기만 하던 왜구들을 이렇게 잡아 족칠 수 있고, 왜국의 왕궁이 있는 이곳을 말 타고 이리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이 기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이대로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죽으면 안 되지. 앞길이 창창한데. 거기다가 잔디는 아직 혼인도 안 했잖아?”
잔디의 감상 어린 말에 김웅겸이 웃지도 않고 말을 받았다.
잔디의 마음속에 태영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지금은 사포에 남아서 정하연을 보좌하고 있는 유시완과 자주 만난다고 들었다.
그나저나 가만 놔두면 이야기가 산으로 간단 말이지.
“아무튼, 다음에 서경에 한번 가 보자고. 그리고 금강산도.”
“네, 대장님. 무조건 찬성입니다.”
태영이 살던 21세기와는 달리, 이 시대는 서경이라고 불리는 평양을 가는 것이 오히려 쉽다.
교통?
대동강이 깊다고 하지만, 황룡호나 흑룡호로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서해안에서 대동강 하구인 남포로 들어가 거기서 도보로 가면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때는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길이 좋으면 충분히 가능하고, 길이 나쁘면 중간에서 노숙을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가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금강산은 꼭 가 봐야지.
21세기 현대에서는 갈 수 없는 땅이지만, 여기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고 보니, 당나라 수도 장안을 보고 똑같이 만든 왜국의 성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여기 아닌가 모르겠다.”
갑자기 그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21세기가 아니어서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
깃발의 앞쪽에 말을 탄 왜병 둘이서 고함을 치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왜인들을 물렸고, 왜인들은 건물의 뒤쪽으로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에 장안에도 한번 가 봐요.”
“장안은 어디쯤에 있는데요?”
“지금 거긴 어느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데요?”
태영은 골목에서 고개를 내민 왜인들을 신기한 동물 보듯 구경하고 있는데, 장안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과 요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적진에 들어와 적의 궁으로 이동 중인데 참으로 한가롭기도 하다.
“장안은 개경에서 출발하면 5천 리쯤 될 거야 아마.”
맞나?
꼬불꼬불 가야 하니 뭐 틀린 말도 아닌 거 같은데.
“진이야, 지도에서, 아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지금은 보지 말고, 나중에 시안시나 서안시를 찾아봐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네, 대장님.”
“거긴.”
유진이에게 시켜 놓고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충 2천 년 전, 진나라 때부터 수도가 되었고, 당나라 때까지 계속 수도였지. 지금은 금나라가 차지하고 있지만, 금나라의 수도는 장안이 아니고 중도야. 지도에는 북경이나 베이징으로 표시되어 있을 거야.”
태영이 말하는 중에 유진이는 장안, 북경, 베이징을 중얼거리는 것이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되새김질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태영을 힐끗 쳐다본다.
“왜?”
“베이징은 나중에 지도를 다시 봐야 확인이 되겠지만, 발해 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요. 대장님이 말씀하신 중원의 북쪽 끝이구요.”
“그래, 맞아.”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눈이의 제자로 지도를 눈이 못지않게 잘 알다 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이미 발해 만에 한번 가 보기도 했고.
“대장님, 잠시 멈추고 5진 상황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김웅겸이 말은 멈추지 않고 몸을 돌려 말했다.
“그래.”
오늘 새벽에 태워 버린 5진의 진영이 좌측에 보이고 있고, 그곳에서는 아직도 조금씩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6진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3진, 4진, 5진은 모두 이곳 교토의 외성 안쪽에 있는 병영이었다.
이 시대의 왜인들은 모두 헤이안쿄로 부르지만, 태영의 기억에는 그냥 교토로 남아 있고, 태블릿에 복사된 23세기의 지도에 교토로 되어 있어서 무척 헷갈리긴 해도 뭐 상관없다.
저들이 뭐로 부르건 사포군은 23세기의 지도를 보고 있기에 모두 교토로 부르고 있으니 그게 용어에 헷갈림이 없다.
그래도 21세기에 살 때, 형편이 좀 나아서 관광이라도 다니고, 관광 중에 이곳 교토에 한번쯤 구경을 와 봤으면 21세기와 비교해 볼 수 있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관광 다닐 형편은커녕 세 끼 밥 챙겨 먹고, 학비 내는 것도 언제나 허덕거렸으니 의미가 없다.
졸업하고 몇 년에 걸쳐서 갚아야 하는 돈이지만, 국가 장학금을 받아서 학교를 다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형편에, 여행은 무슨 얼어 죽을 여행.
국가 장학금이라도 없었으면, 부모님 등골이 휘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색대가 편성되고, 신도익의 지시에 사포의 병사들이 큰 소리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없다고?”
세 번째 마차 옆에 선 김웅겸이 안쪽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장호에게 숨어 있는 왜군이 있는지 확인하는 모양이다.
“대장님, 장호의 보고로는 숨은 왜군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수색을 마치고 계속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김웅겸이 마차 옆에서 여전히 함께 이동하며 물었다.
“부대를 쪼개는 것보다 그게 좋지. 그렇게 해.”
김웅겸이 선두에게 뜻을 전하기 위해 말 탄 병사 두 명을 앞으로 보냈다. 곧이어 행렬이 섰다.
가장 뒤쪽에서 따라오는 검은색의 괴물, 철갑 교위를 돌아보자 교토 시내의 왜인들도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이다.
많은 왜인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해 있고, 일부는 앞쪽에서 철갑 교위 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다.
철갑 교위 뒤에는, 가까이 붙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왜인들이 모여서 손짓을 해 가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들은 새벽에 왜군 병영을 공격한 사람이 우리라는 것을 모르겠지요?”
“고가는 지금도 모르고 있는데, 뭐.”
“아, 그렇죠.”
***
왜국의 수도 교토에는 1진과 7진을 제외하고는 병력이 없다.
일만이 넘는 병력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모조리 괴멸되었다.
태영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바라보았다.
망원경을 눈에 대고 앞을 바라보자, 일직선의 끝에 성루가 보이고 누각의 좌우에 깃발과 병력이 보이기는 한다.
아마도, 저기가 내성이고 저들은 내성을 지키는 병력이겠지.
내성의 누각까지 남은 거리는 대충 2킬로다.
부대 정훈 시간에 외부 강사가 했던 왜국의 전국 시대에 대한 것이 생각났다.
‘그 전쟁이 여기였고, 이 길을 중심으로 동서로 마주 보고 동군과 서군이 나누어서 11년간 전쟁을 했다고 했지?’
지금으로부터 대략 250년이나 3백년쯤 후에 발생하는 일본의 전국 시대 이야기다.
투입한 병력의 규모는 동군은 16만, 서군이 11만, 합쳐서 27만이 맞붙어서 11년간이나 전쟁을 했단다.
이 좁은 도시 안에서.
그때, 그 강사가 말했던 세 가지 의문을 떠올려 봤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역사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별로 차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한 말이다.
첫째, 동군과 서군을 합친 27만 명의 병력은 조달 가능한 숫자일까?
둘째, 그 성안에 27만 명의 주둔이 가능할까?
셋째, 11년간이나 전쟁이 가능했을까?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문은 같은 맥락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했다.
첫 번째 의문의 27만 명의 병력은 그 시대로서는 조달이 불가능한 병력이다.
전국 시대는 말 그대로 각 지역의 세력이 각각의 이해타산에 맞게 군사를 일으키고, 그 지역의 패자가 되어 있어서 이곳으로 군사를 보낼 여력이 있는 다이묘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많은 병력이 이곳에 지원을 해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숫자는 뭘까?
시종들과 가족을 포함한 인원일 것이다.
중세 유럽의 전쟁 상황을 떠올리면 대략 짐작은 된다.
유럽 중세의 전쟁은 군인 한 명에 하인과 시종들을 포함해서 3명에서 많으면 10명씩 부속 인원이 따라가서, 백 명의 군인이 전쟁에 참여하면 실제로는 5백 명쯤 되는 인원이 전쟁에 참여한다고 했다.
그곳의 기사라는 계급은 귀족이었기에 반드시 따라붙는 인력이다.
그 인력이 병사는 아니지만 나중의 기록에는 합산되었다고 했으니 비슷한 것 아닐까?
심지어 유럽은 가족이 따라가기도 하고, 군대가 주둔한 곳에 윤락가와 유흥가가 따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두 번째, 여기에 27만 명이 들어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그때 그 강사도 그랬지만, 유진이가 알려 준 규모는 동서로 4.5킬로, 남북으로 5.3킬로 정도 될 거라고 했다.
21세기나 지도상의 23세기라면 아파트도 있고, 고층 빌딩들이 많아서 27만 명 정도 있어도 그리 큰 면적을 차지하지 않지만, 이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좌우로 둘러보면 성곽이 보인다.
물론 나성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있는 민가들은 거의 거지가 아닐까 할 정도로 나무로 만든 움막에 가까운 집들이었다.
이 좁은 성안에 27만 명이 들어와 있었으면 양민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뭐야, 대체?
여기가 고려로 치자면 개경인데, 개경에 군사 말고 민간인은 아무도 없다고?
말이 되는 거야?
말이 안 되지.
세 번째, 어떻게 11년간 전쟁을 할 수 있는 거지?
공간이 비좁기에 총력전을 벌이면 몇 시간 안에 전쟁이 끝나는 장소다.
이 좁은 장소에서 두 시간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다. 걸어서 2시간인데, 전쟁 중인 병사가 걸어서 가나?
이 안에서는 공성전이 있을 수가 없다. 그냥 민가일 뿐이니까.
그러니 성을 함락하기 위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아무리 총이 아닌 칼과 창으로 하는 전쟁이라고 해도, 총력전을 하면 몇 시간 안에 끝나고, 놀면서 전쟁을 해도 이틀이 걸리지 않을 장소다.
그럼, 11년간 뭘 했을까?
한마디로 먹고 놀면서 전쟁놀이했다는 말이다.
전쟁놀이를 했다면, 아주 더러운 전쟁이었을 것이다.
태영에게는 과거의 일이었지만,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
언젠가 사포의 병사들에게는 몰라도 최소한 지휘관들에게는 이 야이기를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뭐라?”
앞쪽에서 잔디의 음성이 들렸다.
아까, 수색 부대가 편성되고, 움직일 때 사포군의 진형을 한번 둘러보던 잔디였는데, 마차에서 내린 고가의 앞에 여전히 말을 탄 상태로 물었다.
“그것이 왕궁에 들어가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겁니다.”
고가의 대답이다.
정신 못 차린 놈이네.
“잔디야. 그놈 데려와.”
태영이 잔디를 불렀다.
“네, 대장님.”
“고가, 대장님이 부르신다.”
잔디는 고려 말로 대답하고 곧바로 왜어로 고가에게 말했다.
고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왕궁에 들어가면 지켜야 할 것들?”
“네, 대장님.”
태영의 질문에 고개를 조아렸지만 묻는 말에 대답은 똑바로 했다.
“고가.”
“네, 대장님.”
“내가 이곳에 오고 왕궁에 들어가는 이유가 뭐야?”
“네?”
약간은 놀란 표정인데, 자신의 의도와는 달라서 그럴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그, 그것이…….”
“지켜야 할 것이라니. 우리가 사절단이나 사신단으로 가는 것으로 보여?”
“꿇어라.”
퍽~
잔디가 태영의 말뜻을 알아들은 듯, 고함을 지르며 칼집으로 고가의 머리를 후려쳤다.
고가가 흙바닥에 그대로 엎어졌고, 깃발을 들고 있거나 마차를 몰던 왜병들이 몸을 움직였다.
“까불지 마라. 움직이면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여 준다.”
그 움직임을 본 잔디가 소리쳤다.
왜국의 내 대신이 길에 서 있고, 사포의 사람들은 말에 타고 있는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거기에다 칼집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땅바닥에 철퍼덕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러니 그들도 가만있을 수는 없겠지.
철커덕~ 철커덕~
뒤에서 연속적으로 노리쇠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가를 수행하던 왜인이 쓰러진 고가를 일으켰고, 고가는 바로 무릎을 꿇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 꿇지 않겠다는 거지?”
고가는 고개를 숙인 상태로 서 있을 뿐,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태세가 확실했다.
물론, 여기는 수많은 왜인들이 행렬을 구경하느라 서 있는 상태이고, 깃발을 들고 마차의 앞뒤에 섰던 왜병들이 있으니 자존심 상하기는 할 것이다.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닌데, 자존심을 세운다.
대체, 저놈 생각은 뭐지?
새벽에 괴멸시켜 버린 1만이 넘는 왜병들을 자기편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분명 아닌데, 뭘 믿고 저러는 거지?
“대장님.”
잔디가 태영을 부르며 돌아보았다.
김웅겸도 태영을 돌아보았다.
여태까지 고가와 관련된 일은 잔디가 주도해서 해 왔기에 어찌할까요, 하는 질문일 것이다.
“생각대로 해.”
“알겠습니다. 가볍게 겁만 주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태영의 대답에 잔디가 거수경례와 함께 큰 소리로 복창했다.
“고가, 방금 네가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잔디가 여전히 말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고가에게 말했다.
“비서실 병사들, 말에서 내려서 앞으로.”
잔디의 지시에 따라 비서실 병사들이 말에서 내려 앞쪽으로 나왔고, 모두 어깨에 크로스로 걸려 있는 총을 내리며 줄지어 섰다.
“저 앞쪽, 왜병들 모두 사살한다. 거총!”
거총~
병사들의 입에서 거총이라는 말이 나오며 모두 총을 사격 자세로 총을 어깨에 걸었다.
고가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볼 살이 푸들푸들 떨리며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은데 잔디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깃발을 든 왜병들도, 마차를 몰던 왜병들도 새파래졌다.
“조준!”
병사들이 서로 간에 눈치를 주며 목표를 설정했다.
“자, 잠시, 잠시만…….”
고가가 잔디를 향해 조또 조또 하면서 입을 열었지만, 잔디는 여전히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왜어로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의미의 말이지만, 고려 말로는 욕이거든.
잔디는 조금 전에 무릎을 꿇으라고 했을 뿐이지만,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말을 들어 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
“발사!”
탕, 타다다다당~
타다다당~
으아아악~ 아아아악~
대로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깃발을 잡고 두 줄로 나란히 서 있던 왜인들의 몸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했다.
마차에는 총격을 가하지 않았지만, 마차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왜병은 모두 죽었다.
구경을 왔던 왜인들이 보기에는, 사포의 병사들이 움직이지도 않고 한쪽에 서서 검은 막대기를 들고 서 있는데, 요란한 굉음과 함께 왜인들이 피를 토하거나 사지가 찢겨지며 쓰러져 간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쓰러져 나가고, 이젠 반항할 수 있는 왜병들은 아무도 없다.
“연대장님. 제 임무 1차 끝냈습니다.”
잔디가 김웅겸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다음은 내가 진행하도록 하지.”
잔디의 보고를 받은 김웅겸이 손을 들어 올렸다가 잠시 멈추었다. 고가가 무릎을 털썩 꿇었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요, 용서하십시오.”
지금에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