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16
216. 역사의 유산(2)
“그래, 어릴 적 얼굴이 남아 있구나. 살아 있었느냐? 여기에서?”
“네, 오라버니이. 으흐흐흐흑, 사, 사, 살아 있었습니다. 오라버니.”
박해인의 입에서 아까 밖에서와는 다른 통곡 소리가 나왔다.
“흐으으윽.”
몸을 앞으로 굽혔다가, 일으켰다가 다시 앞으로 굽히며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릴 적의 얼굴이 나이가 먹어도 남아 있지만, 함께 그 기간을 공유해 오지 않은 사람은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동일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그런데 이름을 미리 들어 버려서 인식의 시간이 확 줄어든 모양이다. 아까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가 돌아간 이유가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네가, 네가 정녕 살아 있었더냐.”
박해월의 목소리에도 소나기가 퍼부어 땅에 떨어지면서 일으킨 물보라가 날아올라 안개 같은 물기가 젖어들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왜구에게 잡혀 와 이곳 평안궁에 노예로 살고 있고, 오빠는 왜구에게 잡혀 와 오사카에서 노예로 살고 있다가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며, 이 무슨 극적인 만남이야?
아까, 고향이 진주라고 하더라니.
참 어처구니없고 황당해서 도무지 말이 안 나온다.
“가비야, 해나야. 고모님께 인사드려라.”
“고모님, 안녕하셨습니까 가비입니다.”
“저는 해나 입니다. 고모님.”
네 사람은 얼싸안고, 서로의 팔을 만지고, 손을 만지고, 얼굴을 만지며 가족임을 확인했다.
함께 있던 시내와 아라, 령도 얼굴에 웃음 반, 슬픔 반인데 눈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왜국 왕이 고려인일 것이라고 해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 상황이 되면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랜 기간 강제로 납치를 당해서 헤어져 산 가족 상봉인데, 그걸 방해할 수는 없는 거잖아?
편하게 이야기 나누도록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맞지만,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냥 앉아 있었다.
박해인은 올해 43세이고 박해월은 45세이다.
박해인이 14살이던 그해, 그러니까 29년 전이다.
혼인한 언니인 박해선이 출산을 하게 되어 거제에 가게 되었다. 언니의 남편인 형부도 거제가 임지일 뿐, 고향은 거제가 아니었다.
그곳에 하인이 있기는 해도 친정에서 출산을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고구려나 고려의 서옥제는, 친정집 뒤에 있는 서옥인 사위의 집에서 출산을 하고, 아이가 크면 본가로 돌아가는 형태지만, 사위가 출사하여 거제가 임지가 되었기에 그 상황에 맞춰진 것이다.
진주에서 거제는 길이 멀어서 친정어머니가 가지 못하고, 하인의 신분이지만 해선과 해인, 그리고 그 형제들을 키운 유모가 그곳에 가서 출산을 도와주게 되었는데,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 해인이 따라붙었던 것이다.
언니의 출산을 돕고, 꽤 긴 기간 그곳에서 머무르다가 진주로 되돌아가는 길에, 고성과 통영의 중간쯤의 어느 마을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 그 고을에 왜구들이 쳐들어왔단다.
운도 지지리 없지.
그 출행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언니의 출산 도우미를 핑계로 바깥바람을 쐬려고 나섰던 길이 평생을 이렇게 보내는 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함께 움직이던 남자 하인들은 왜구들을 막으려다 모두 죽었고, 여자 하인들은 모두 왜구들에게 납치되어 이곳 왜국으로 와서 서로 다른 집에 팔려 갔다. 유모는 나이 들어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왜구의 칼에 죽었단다.
여자 하인 중에 한 명은 왜국으로 오던 중에 바다에 몸을 던졌고, 또 한 명은 자신을 강간하는 왜구의 목을 비녀로 찔렀는데, 비녀 끝이 뭉툭해서 죽이지는 못했고, 상처가 생겼다.
그 왜구는 다른 왜구들까지 불러 뱃전에 사지를 묶고 옷을 모조리 칼로 찢어 내어 발가벗긴 후 돌아가며 윤간을 했단다.
왜국에 도착하는 며칠 동안 그렇게 묶인 채로 시대 때도 없이 강간을 당했는데, 나흘째 되던 날 아침에 숨을 쉬지 않았고, 그것을 안 왜인들이 그 하인을 그대로 바다에 던져 버렸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다른 여인들 모두 서럽게 울었다.
잔디를 비롯해서 사포의 여군들도 가슴 앞의 옷섶을 꼭 쥐고 바르르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개X끼들.
개X끼들.
박해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울화통이 터져 올랐다.
역시,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해.
모두 죽이고 죽여서 씨를 말려 버려야 해.
그런데 왜 왜국의 왕이 고려인이냐고?
왜?
아니, 정확히 고려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고려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고려인이 맞기는 맞는 거야?
그렇다면 귀화인인 거야?
귀화인이 고려인이 맞기는 한 거야?
“오라버니는요? 오라버니는 왜 여기 있어요? 새언니는요?”
“오라비도 왜구들에게 잡혀서 끌려왔단다. 여자들은 끌고 오고, 남자들은 모두 죽이는데, 오라버니는 마침 왜어를 좀 할 줄 알았기에, 글을 알아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했더니 살려서 끌고 왔단다. 그리고 노예 생활을 하는데, 대장님이 구해 주셨다.”
“아, 언니는요?”
“언니는 왜구들이 쳐들어온 날, 저 아이들을 살리려고 왜구들과 싸우다가 죽었다.”
그러고도 두 사람은 한참을 이야기했다.
서로 울고,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 주고, 잘 자랐구나, 예쁘구나,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네 약혼자는 너를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옆 마을의 누구와 혼인을 했다, 아들 둘과 딸 둘을 두었단다, 네가 돌아가면 아직 살아 계신 어머니가 좋아할 것이다.
아니, 나도 잡혀 온 지 4년이 지났으니, 살아 계신지 아닌지 모르겠다, 등등과 같은 가족 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우리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닌데.”
박해월이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괜찮아. 29년 만의 가족 상봉이잖아? 기다려 줄 수 있어, 그 정도는.”
“진이야, 연대장 올 수 있으면 좀 오라고 해. 장호가 함께 있을 거야.”
“네, 대장님.”
유진이가 태블릿을 펼치고 문자를 보내는 것을 박해인을 비롯해서 고려의 여인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김웅겸이 궁을 수색하고 있겠지만, 궁 전체를 수색하려면 며칠은 걸릴 정도로 넓다.
태영이 보기에는, 현대식으로 따지면 정부 종합 청사 수준으로 조정의 거의 모든 부처가 다 들어와 있다.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자, 그럼 우리 이야기를 좀 하지.”
“네, 하문하십시오.”
태영이 말머리를 돌리자 박해인이 정자세를 잡으며 반듯한 모습으로 앉았다.
“왜국으로 잡혀 와서 바로 궁으로 들어온 것인가?”
“네, 그러하옵니다.”
“그럼, 여기에서 29년?”
“네. 그러하옵니다. 나리.”
“아까, 왜왕과 왕족이 고려인으로 알고 있다 했는데, 그간 궁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을 테니 구분 없이 이야기를 좀 해 보게.”
“네, 나리.”
태영은 급하게 말을 시키지 않았다.
“궁내에는 기록으로는 전하지 않지만, 궁인들 사이에 구술로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기록으로 남겨지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 남겨지는 이야기를 소인이 읽어 볼 수 있는 위치는 아니어서 알지 못하지만, 구술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왜국에 글자가 전해진 것은 7~8백년쯤 전에 고려인, 당시의 백제국 사람이 전하였다 합니다. 왜국에서는 궁인들 중에 소인과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 중에서 글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백제의 아직기였나, 왕인 박사였나?
노리사치계는 뭘 전했다고 했지?
담징은 고구려 사람인데, 그 사람은 또 뭘 전했다고 했던가?
수능 대비해서 열심히 공부할 때는 이렇게 가물가물하지 않았는데, 수능 끝난 지가 9년쯤 되어 가니 진짜 가물가물하다.
에이,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렇게 글도 전해 주고,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맨날 고려 연안에 들어와 양민들을 죽이고, 잡아가고, 그딴 짓이나 한단 말이지?
도대체가 고마움을 모르는 종족이야.
역시 씨를 말려 버려야 해.
“대장님, 김웅겸입니다.”
그때, 연대장이 도착했음을 알려 왔다.
“들어와.”
“충성! 장호는 신도익 대대장에게 딸려 보냈습니다.”
김웅겸이 방문을 들어서며 거수경례와 함께 간단한 보고를 했다.
김웅겸의 뒤에는 연대장 비서병 오규보가 따라왔지만, 김웅겸은 손짓으로 밖에 있으라고 했다.
“앉아. 여기 박해인이라고 왜국의 궁인인데, 고려에서 잡혀 와서 궁인으로 팔렸고, 박해월의 사촌 동생이야.”
“네?”
“놀라워?”
“그럼요, 놀랍지 않습니까? 하아, 이런 기이한 일도 있네.”
“네, 그렇습니다.”
박해월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겠어. 왜국에서 구해져서 살아나고, 여동생을 만났는데, 여동생도 왜국에서 구해지고.”
다시 생각해 봐도 기가 막힌 일이지.
“대장님에게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자. 이제 박해인이 말하는 왜국의 궁중 비사를 좀 들어 보자고. 이 이야기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일을 진행해야 할지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처리 방안이 될 기준을 만들 수도 있을 거야. 참고로 박해인은 공부를 제법 했다는 것도 알아 둬.”
“네, 알겠습니다.”
“자, 시내, 아라, 령이, 세 사람도 안심하고 편안하게 있도록 해. 박해인이 이야기하는 중에 본인이 아는 것들이 있으면 거들어도 돼.”
“네, 나리.”
세 사람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말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곳 평안경, 왜어로 헤이안쿄는 약 4~5백여 년 전, 당시의 황제에 의해서 내량(奈良: 나라)에서 천도해 왔습니다.”
나라, 거기에서 왔을 것이라 생각한 태영의 예상이 맞는 모양이다.
“그냥 왕이라고 해. 조공을 받는 속국도 없는데 황제는 무슨 황제.”
“아, 네.”
박해인이 조금 놀란 표정이지만 뭐 상관없다.
고가를 처음 만날 때부터 왕으로 부르라고 해 놓고 새삼 황제라는 말을 들으니 속이 거북하다.
“계속.”
“당시 황제…… 아니, 왕의 어머니가 고려인, 정확히 이야기하면 멸망한 백제의 왕족으로 백제에서 이곳 왜국으로 도래한 분의 후손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태영도 들은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역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태영도 그랬다.
그래서 그냥 듣기만 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긴 이야기였는데,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여기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궁인들 사이에 입으로 전해지는 말로는 그 이전의 어느 대에 고려인이 왜국의 왕이 되었다 합니다.”
왕후 이야기가 아니고, 왕도 고려인이라고?
태영이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박해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이곳 평안경을 만든 이들도 고려인이라 합니다.”
이곳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이 고려인이라고?
아니, 아니 정확하게는 지금은 고려가 된, 전신이 백제였던 곳의 사람들이 만든 거라는 거지?
고려인이 왕후가 되었고, 그 아들이 대를 이어 왕이 되었기에 왜국의 왕실은 고려인의 피가 이어진 고려인이라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을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앞으로 미래의 일이기에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태영이 살아온 21세기의 역사에서 몽골과 고려의 관계도 그와 비슷하다.
몽골이 고려를 지배할 당시에 몽골의 황제인 쿠빌라이 칸의 딸 제국 공주가 고려의 왕후였다.
그 족보를 놓고 대입해 보면, 고려 왕실이 몽골의 후예라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것 아닌가?
몽골이 그리 주장하는지는 모른다.
그때, 그런 것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으니까.
그 제국 공주의 남편이 충렬왕이고, 제국 공주의 아들이 충선왕이다.
그러니 왜국의 왕후가 고려인이 한 명 있었다고 해서 고려의 후손 어쩌고는 맞지 않다.
유럽의 경우는 각국의 왕족들이 전부 친척이다.
그럼, 그곳은 어떻게 따져 줘야 하는 거야? 그러니 그건 배제해도 된다.
그런데 어느 대부터 고려인이 왕이 되었다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뭐가 이리 정신없는 상황인 거야, 대체?
초반에 박해인이 말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4~5백 년 전이라면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통일 신라가 된 이후이다.
일단 조금 더 들어 봐야 할 것 같다.
“전해지는 말이라는 것은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없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당시 왕의 어머니, 선왕의 왕후이신 고야신립이라는 분에 대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인정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왜국의 왕이 고려인이라는 것은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는 데까지 이야기해 봐.”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정리를 해 보면, 어느 시대의 왕인지는 모르지만, 백제국 사마왕의 동생분이 왜국으로 건너와 왜국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입니다.”
사마왕?
사마왕이 대체 누구지?
테르에서 옮겨 놓은 자료가 PC에 꽤 많이 저장되어 있지만, PC의 정장 용량 문제로 역사보다는 과학 기술과 관련된 부분들이 대부분이다.
삼국의 역사 부분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꽤 많이 옮겼는데, 그러면서 신라, 백제, 고구려왕의 이름을 한번 훑어보았지만, 백제에 사마왕이라는 이름은 기억에 없다.
아니,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고, 보는 것 모두를 기억하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태영도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니, 그걸 훑어보는 정도로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에 핑계를 대고 면피를 해 보지만, 그래도 PC 속에 남아 있으면 돌아가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기는?”
“시기는 잘 모르옵니다.”
하긴, 서기 몇 년 또는 단기 몇 년이라는 식의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유럽이나 서양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사용했다는 것은 알지만, 예수의 탄생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로마 시대의 기독교는 억압의 대상이었으니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일 것이다.
이것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찾으면 금방 나올 텐데, 이 시대에서는 궁금증은 궁금함으로 남겨 둬야 하는 것이 참 답답하다.
대한민국에서 서기와 단기를 연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부터로 알고 있다.
그런, 일관성 있고 직관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당시의 왕이 누구냐에 따라 연호가 바뀌는 이 시대의 연호 표기 방식으로는 시기를 유추하기가 정말 힘든 일 중의 하나이다.
“다만, 고야신립이라는 분보다 2백년 이상 앞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소인도 들은 기억이 그렇습니다.”
백제국 사마왕이 고야신립보다 2백년 앞서 있는 사람이라면, 백제가 멸망한 이후가 아니라 한참 백제가 부흥하던 시기다.
평안궁과 관련된 일이 박해인이 말하는 4~5백 년 전이 맞다 치면, 서기 700년에서 800년 사이 정도로 봐야 한다.
100년의 시차가 있으니 그 갭이 무척이나 크지만, 그로부터 2백 년을 밀어 보면 서기 5백 년에서 6백 년 사이의 백제왕 동생이라는 말이 된다.
PC 안에 자료가 복사되어 있으면, 그사이의 왕 중에 사마왕을 찾으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일까?”
태영도 정말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고야신립의 무덤은 대지릉(大枝陵)이고, 하라노 신사에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으니 사실이 틀림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능이 있다고?
“신사는 뭐야?”
태영은 해인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궁성 외곽 서쪽에 있는 신사입니다.”
아, 일본은 유난히 신사가 많다지?
그리고 이 시대는 샤머니즘 시대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 시대는, 병은 그 병을 퍼뜨리는 신이 있고, 병이 낫는 것은 그 병을 낫게 하는 신이 있어 낫게 했다고 믿는 시대이다.
그래서 동양은 무속 신앙이 발달했고, 서양은 서양대로 동양보다 훨씬 심해서 종교와 연관된 샤머니즘이 판을 쳤다.
기독교가 구교와 신교로 나뉜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들었다.
21세기 현대 사람들이 들었으면 ‘돌았나?’라는 말을 들을 것이고, 무식하다며 놀림의 대상이 될 일이지만, 이 시대는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다.
박해인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런 모든 정황을 놓고 보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고려 땅을 대상으로 그렇게 해적질을 하고 다닌 거야?
백제이지, 고려가 아니라는 말인 거야?
아, 짜증이 나네.
“일단, 기회가 되면 그곳에도 한번 가 보기로 하고, 계속해 봐.”
“왕에 대한 이야기는 아까 말씀드린 정도에서, 궁인들 사이에 은밀하게 구두로 전해지는 이야기여서 진실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백제의 왕 중에 사마왕을 나중에 한번 찾아보기로 하자. 또 다른 이야기는?”
“거기에서 크게 벗어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다가 걸려서 목이 날아간 사람도 있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죽인다고?”
“네, 그러하옵니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나누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흠.”
얼마나 감추고 싶은 이야기이면, 그 이야기를 하다가 들키면 목을 벨까?
그럼 진실이 맞는 것인가?
히이안쿄 및 고야신립, 사마왕(백제 무령왕. 462~523) 관련 부분은 보스톤코리아 ‘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기사를 참조했습니다.
http://bostonkorea.com/news.php?code=&mode=view&num=13802
또한, 고야신립의 능과 신사에 관한 부분은 우리문화신문의 ‘일본 교토를 세운 간무왕의 어머니 백제 여인’ 기사를 참조하였습니다.
https://koya-culture.com/mobile/article.html?no=116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