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18
218. 역사의 유산(4)
“고가, 근위부와 병위부의 병사들 중에 막부파와 왕실파를 구분할 수 있어?”
김웅겸을 비롯해 일부의 병력을 포격 지점의 상황을 파악하러 보낸 뒤 고가를 불러왔다.
궁내에서 확실하게 고가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무리들을 데려오라고 했더니 무려 11명이나 데리고 왔다.
근위부와 병위부는 무장 해제를 하긴 해도, 무력 집단이기에 분류를 정확히 해야 했다.
언제나 고가를 상대하던 잔디가 포격 지점에 간 탓에 이번 상대역은 서윤이 하기로 했다.
“네, 구분 가능합니다.”
“그래? 확실하게 간자 없이 구분 가능하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근위부와 병위부 인원 편제가 어찌 되는 거야?”
“근위부에 좌우로 각 6백 명, 그리고 6명의 장이 있습니다. 병위부에는 좌우로 각 4백 명이 있고, 4명의 장이 있습니다.”
서윤의 질문에 고분고분 대답을 하는데, 대답대로라면 근위부와 병위부 병사가 도합 2천 명이라는 말이다.
태극전 앞에서 오십 정도가 죽었고, 궁내부를 정리하면서 몇이나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 대충 2천 명에서 백 명 정도 빠진다고 보면 나머지는 모두 남아 있어야 한다.
“좋아. 좌근위부 구역에 모두 집합시켜 두었으니까, 지금부터 우리 병사들 입회하에 분류를 해서 네가 골라내는 너희 편은 무장을 하게 해 줄 거야.”
고가를 부르기 전에 일의 진행 방향은 대략 정해 두었으니 그대로 진행만 하면 된다.
“부실장님, 저희 중대가 동행하겠습니다.”
중대장 한규장이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한규장은 전직 낭장 출신으로 개경에서 걸인으로 지내던 사람이다.
이 시대의 이 땅 위에는 사연 많은 사람이 참으로 많지만, 한규장은 군에서 계급이 낭장이었는데 걸인이 되었다면 그 사연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나이는 마흔이 넘었는데, 아내도 자식도 없는 홀몸이다.
속사정을 들어 보지 못했지만, 동료들에게도 자신의 과거사 이야기는 군에서 계급이 낭장이었다는 것 외에, 가족사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들었다.
그만큼 가슴이 아프다는 의미이겠지.
서윤의 성이 한씨인 것만으로,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대신 죽어 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태영의 눈에 뜨인 이후에 지켜본 바로는 무척이나 강직한 성품이다.
서윤은 유진이와 다른 비서실 병사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그 뒤를 한규장이 2개 소대를 데리고 갔고, 태영도 서윤과 나란히 섰다.
좌근위부는 풍락원으로부터 거의 1킬로 가까이 떨어져 있을 만큼, 제법 길이 멀다.
“진이야, 건례문 안쪽은 아직 수색하지 않았다고 했지?”
태영이 태극전 뒤쪽을 돌아서 큰 광장을 지나며 건례문이 보이자 물었다.
“네, 대장님. 이곳은 왕과 왕비의 주거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대장님이 마지막 수색 지역으로 잡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청와대 내부에 대통령과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곳과 비슷한 곳이라는 의미다.
“이 안쪽도 전각이 많지?”
“네, 총 31개 전각이 있습니다.”
“그래? 궁 전체는 몇 개나 돼?”
“모두 488개입니다만, 전각이 서로 연결된 구조가 있어서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걸 다 세었어?”
“수색 순서를 잡으려면 필요했습니다.”
역시 성실한 스타일이야.
좌근위부.
대충 보기에 폭이 100미터가 넘고, 남북의 길이가 거의 3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담장 안에 꽤 많은 전각이 있지만, 연병장이라고 볼 수 있는 광장도 제법 크다.
고가는 사포의 병사들이 지켜 서 있는 상태에서 근위부와 병위부의 병사들을 모두 줄을 세웠다.
병위와 근위 그리고 근위 소장과 근위 중장이라는 지위와 이름을 대며 항의를 했지만, 고가는 나누기 작업을 했고, 전각의 뒤쪽으로 보내는 근위병들이 왕실파로 보였다.
항의를 하는 근위병이 있으면 한규장은 아무런 경고 없이 즉각 사살했다.
총소리가 몇 번 들리고, 현장에서 사살된 근위병의 숫자가 넷을 넘어서자 그때부터는 항의하는 근위병이 없어졌다.
제일 높은 지위가 참의라고 했는데, 참의만 따로 한곳에 세워 두고 분류를 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연병장에 남은 병력보다 전각 뒤쪽으로 보내진 병사의 수가 훨씬 적다. 대략 2 대 1 정도인 것으로 봐서 왕실파가 전체의 30프로밖에 안 된다는 의미 같다.
“다 한 거 맞아?”
“네, 그렇습니다.”
서윤이 약간은 서투른 왜어로 묻자 그렇단다.
“그럼, 왕실파 병력은 무장시켜. 만일 무장하고 우리를 공격하는 놈이 있으면, 궁 안에 있는 병사들은 분류에 상관없이 그 가족들까지 책임을 물어서 모조리 씨를 말릴 거야.”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협박에 가족이 걸리면 협박의 강도가 매우 강해진다.
“막부파로 분류한 병력의 처분은 네게 맡기겠다. 단,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알았나?”
서윤의 말에 연병장에 남은 병력의 움찔거리는 모습이 드러났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전각 뒤쪽으로 이동시킨 병력의 무장이 시작되었다.
“켄 참의.”
“네, 각하.”
고가가 한쪽에 서 있는 근위부와 병위부의 책임자로 알려진 참의들 중에서 한 명을 불렀다.
근데, 이 뭐야?
내대신을 각하라고 불러?
경칭이 완전 개판이네.
아, 이놈들은 그렇지.
언젠가 영화에서였던가, 총리대신 각하 이렇게 부르는 것을 들었던 것 같다.
여하튼 일본의, 아니 왜국의 계급 구조와 경칭은 마음에 안 들어.
이거, 좀 바꿔 둘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이분들은 막부의 군세를 멸하고 황실의 권위를 복원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고려의 군사들이다. 이분들의 뜻에 반하지 않도록 하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알겠나?”
황실이라고?
그래, 니들끼리 황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봐주지 뭐.
“네, 각하.”
“그럼 지금부터 황실에 반하는 역도의 무리들은 참하라. 켄 참의에게 전권을 부여하겠다.”
어쭈, 제법이네.
“네, 각하의 명을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켄이라는 참의가 무장을 완료한 우열의 근위병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살육이 시작되었다.
무장을 완료한 병력이 연병장에 선 채로 무장하지 않은 막부파 병력을 도살하기 시작했다.
? 쇄애액~ 휘잉~
서걱~서걱~
으아악~아아악~
칼날이 바람을 가르자 목이 베어지고, 가슴이 뚫리고, 허리가 갈라졌다.
목이 떨어져 나가고, 욕을 하고, 주먹을 내지르고, 도망을 치려고 움직였지만, 기껏해야 맨손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는 비무장 병력은 무장 병력에게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무장 병력은 무차별적으로 베어 넘겼다.
피빙~ 피비비비빙~핑핑~
그때, 들려오는 소리는 쇠버리가 날아가는 소리였다.
후미의 담장 가까이에 있는 근위병들이 도망치기 위해 담벼락을 타고 넘던 막부파의 근위병들이 서윤이 날려 보낸 쇠버리에 머리가 뚫려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살아서는 이곳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서윤의 말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왕실과 막부파의 싸움이 어느 정도나 심화되었는지 태영은 모르지만, 확실하게 자신들을 지지해 주는 고려군의 힘을 믿고 저러는지는 몰라도 잔인할 정도로 쓸어 넘겼다.
삼십 분이 지났다.
비무장의 막부파 병력은 거의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곳곳에 신음을 흘리며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는 병력은 확인 사살을 통해 모두 목이 베어졌다.
좌근위부 담장 안쪽은 진득한 피 냄새가 가득했고, 바닥에는 죽은 병사들이 흘린 피로 강을 이루고 있었다.
“고가.”
서윤이 고가를 부르자 고개를 돌린 고가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네, 부실장님.”
“이제, 궁 안에서 우리가 집합시키지 않은 곳의 막부의 잔당을 정리하는데 모레 사시까지 시간을 주겠다. 그 외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라.”
“아, 네. 근위부의 병력 숫자가 너무 적어 모레 사시까지 쉽진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밤새워 정리해. 며칠 잠 못 잔다고 죽지 않아.”
“알겠습니다. 한 가지만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모리야마 방향에서 오는 병력은 아직 이곳의 소식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쪽에 전령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모리야마 방향에서 오는 병력이라면 사포군에서 분류한 7진이다.
서윤은 고가의 말을 들으면서 살육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는 근위부를 주욱 둘러보다가 태영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
태영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고가는 이미 평안경의 동군과 서군 모두 전멸했음을 알고 있다. 주작로를 통해서 궁성으로 들어오는 길을 내내 함께했으니 모를 수가 없다.
그 길에 왜군의 진영을 둘러보고 정리까지 한 것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리야마 방향에서 오는 병력은 이곳 교토 인근에 남아 있는 마지막 병력이다.
그들이 사포군을 공격하려 하면 박격포를 동원하든, 백색 탄을 동원하든 쓸어버리면 그만이다.
“좋아, 알았어. 사포군이 알 수 있도록 통행 깃발과 통행증을 발부해 주겠다. 전령에게 주어 전달하면 된다. 그리고 통행 깃발과 통행증 없이 무장하고 궁내를 다니면, 설명할 시간도 없이 먼저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알겠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잔당의 정리가 끝난 뒤에 고려와 왜국의 협약에 관한 것을 의논하겠다.”
고가가 서윤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고가의 발아래에 강물처럼 흘러온 핏물이 흥건하게 발을 적시고 있었지만, 고가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포 병력, 이들의 감시조 1개 분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철수한다.”
***
궁내에 사포의 병력들이 수색을 하고 있기에 여러 장의 통행 깃발과 통행증이 필요했다.
통행 깃발과 통행증 없이 무장을 하고 다니다가 사포군에 걸리면 그대로 죽음이다.
궁의 크기도 정말 커서 동서가 1.2킬로, 남북으로 1.4킬로쯤 되는 규모이다 보니, 어느 곳에 가서 숨으면 찾기가 정말 힘들 정도로 넓고 전각도 많다.
그 속에, 유진이의 말대로 무려 488개의 전각, 그 숫자 속에 포함되지 않은 지붕이 있는 담장과 마구간들을 합치면 어마어마한 규모이니 숨으면 못 찾을 가능성이 정말 많다.
그러니 왜국의 근위부를 활용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리라.
전령으로 선택된 자는 단단한 갑옷과 무장을 갖추고, 유진이에게 전령이 가지고 갈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태영과 서윤이 함께 서서 내용을 읽었지만, 별문제는 없다.
내용은 왜국은 고려군에 항복했다, 고려군에 대항하지 말고 병력을 보존하라. 고려군에서 보낸 깃발을 앞세우고 신속하게 평안궁으로 올 것이며, 도착 즉시 궁으로 들어올 것, 정도가 요지이다.
거기에 고가가 서명을 했고, 총을 맞고 부상으로 누워 있던 간파쿠인지 관백인지, 구조 미치리가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서명을 했다.
전령이 말을 달려서 가면, 7진의 병력을 만나는 것까지는 해가 넘어가기 전에 가능하겠지만, 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전령이 7진을 만날 때쯤에는 해가 거의 넘어갈 것이고, 정비를 한 후에 출발할 때가 되면 밤이 되어 버리기에 기병만 출발해도 그 어둠 속에서 말이 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기병들도 횃불을 밝히고 보행자가 걷는 정도의 속도로 올 수밖에 없다.
월광을 띄워서 길을 밝혀 줄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못 느낀다.
고가는 유진이로부터 되돌려 받은 두루마리를 전령에게 내밀었다.
전령이 말에 올라 태영을 바라보았다.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고려 말?
거기에 사포군의 흉내를 내고 충성이라는 구호와 함께 경례까지 한다.
경례 자세도 어색하고 억양도 정말 많이 어색하지만 분명한 한국어, 아니 고려 말이다.
나이는 대충 30전후로 보이는 제법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에 눈빛이 제법 형형하다.
“이름이 뭔가?”
“쿠다라 헤이쇼, 고려 말로 백제 평승(百濟平勝)입니다.”
“하.”
백제 씨라니.
왜국화한 성씨와 이름이다.
발음도, 억양도 어색하지만 고려 말을 한다.
근위부 소속의 병사가 난데없이 태영에게 경례를 한 데다, 그것도 고려 말로 말하자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고가와 구조 미치리가.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백제 평승을 바라보는 사포의 병사들.
그런 속에서 ‘저 새끼 뭐야?’라거나 ‘저놈이 어찌 고려 말을 하는 거야?’라는 사포 병사들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근위부나 병위부에 너를 제외하고 고려 말을 하는 사람이 또 있나?”
“다섯이 있습니다.”
“그중 한 명만 이름을 말해 주고 다녀오너라.”
“타카오카 신고, 고구 신오(高丘 新吾)를 찾으시면 됩니다.”
고구려인이라는 소리.
이 역시 왜국화된 고구려인의 성씨로 보인다.
“고구 신오, 알았다. 너는 다녀와서 날 찾아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백제 평승은 한글로 ‘전령’이라고 크게 쓰인 글씨와 그 아래에 역시 작은 한글로 ‘고려국 사포군에서 전령으로 허가함’이라 쓰인 흰색 깃발이 매달린 깃대를 어깨에 꽂고 말을 달리며 떠났다.
가만, 저놈 이름이 왜어로 쿠다라 헤이쇼, 백제사에서 자살한 노승이 만나 달라고 하면서 말한 이름이 쿠다라 하사시.
딴 놈을 보내고 그런 것들은 먼저 물어보는 것이 맞는 거 아니었나?
그나저나 백제 평승은 이미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이곳에 와서는 정말 놀랄 일투성이다.
왜, 왜국의 수도인 교토에 이렇게 많은 고려인들이 쉽게 눈에 뜨이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여기뿐만 아니라 오사카에서부터 그랬다.
그나저나 21세기에서 저 성씨가 일본에 남아 있나?
어차피 그런 거 조사하는 전문가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고, 알 길은 없다.
“깜짝 놀랐어요.”
“그래, 나도 놀랐다.”
쿠르르릉~
멀리서 철갑 교위가 오는 소리가 들리다가 멈추었고, 시간이 지난 뒤에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풍락원 안으로 이어졌다.
김웅겸과 병사들에 앞서서 박해나가 박해인과 채민의 손을 붙잡고 깡충깡충 뛰듯이 들어왔다.
저놈이 떠들기 전에 누가 좀 데려가야 하는데.
애가 어려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천성이 밝아서 그런 것인지, 이 전쟁통에도 촐랑거리며 웃고 다니는 모습이 어찌 보면 상황 인식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채민은 김웅겸이 연대장으로 승진 후 얼마 있다가 비서병으로 데려갔다.
조금은 어리바리하던 모습에서 향촌의 일 이후에 야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 덕분인지 김웅겸이 데려갔고, 아주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언제나 다른 비서병의 뒤에만 있더니 오늘 박해나 때문에 앞으로 나와 태영의 눈에 김웅겸보다 먼저 눈에 띄었다.
“충성! 1진 현황 보고 드립니다.”
“어땠어?”
“추정 병력 규모 2천 명, 경상 6명, 중상 326명, 사망 추정 1,680명입니다.”
“민간 피해도 있나?”
민간 피해 또한 많았을 것이다.
주작문의 바깥쪽은 무질서했지만 외성 안쪽에서 살지 못하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왜구들이 고려 연안을 침략하면, 주로 진이 없는 곳, 군이 주둔하지 않은 지역으로 상륙해서 수많은 양민들을 도륙하고, 식량을 빼앗고, 여인들을 겁탈하고 납치한다.
포격에 죽은 그 가난한 사람들이 왜구가 되어 고려 연안을 습격하기에, 이번 포격에 죽었다고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신경 끊어야 하는데, 그냥 쉽게 끊어지지는 않는다.
“제법 있었지만,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알았어. 후처리는?”
“외성 입구 쪽 사람들 백 명 정도 차출해서 포탄 구덩이에 시신을 모으고 흙으로 덮으라고 했습니다. 좌측과 우측에 있는 사찰에서 승려를 불러 책임을 맡기고 처리시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는 것 보고 왔습니다.”
고려가 불교 국가이지만, 왜국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평안경 입구 좌측과 우측에 아주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으니까.
“고생했어. 슬슬 해가 넘어가니까 우리가 잠을 잘 장소를 정리해야지?”
“네, 그렇잖아도 병사들은 무부성부터 중무성까지의 전각을 부대별로 나누어 숙소로 삼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장님과 비서실 숙소는 서아원으로 하고, 손님들 숙소는 동아원, 지휘관들은 서원으로 하려고 합니다.”
무부성과 중무성까지라면 입구의 동측 전각군들이다.
“서아원과 동아원이 태자의 숙소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왕이 네 살이니 태자가 있을 리 없는데, 왕족 몇 놈이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고 서아원과 동아원에 있던 궁인들은 심부름하게 하려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건 참 잘한 일이다.
왜국의 여인들은 고려와는 완벽하게 다를 정도로 여인들은 노예보다도 더 심하게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위와 계급 면에서도 최하의 취급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사포군의 명을 깍듯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 모습의 궁인들이 그대로 있으면, 이곳에 기거하는 동안 주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장님, 황룡호에서 모자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모자 신호, 모스 신호의 고려식 이름이다.
가까운 곳에서 말로 할 수 없을 때 모자를 벗었다 쓰는 동작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데다, 모스 신호와 이름의 시작 글자가 같아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
태블릿 하나는 해룡호에 탄 정규하가 가지고 사포와 상동 광산과 송나라의 상산을 이동하며 물건을 실어 나르는 중이고, 두 대의 태블릿은 모두 이곳에 와 있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연락해야 할 일이 있으면, 짝수 시간 정시 갑판에서 모스 신호의 이곳 이름인 모자 신호를 보내라고 했다.
그 시간에 드론이 그 지역을 정찰 중이라면 볼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하라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