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21
221. 역사의 유산(7)
“거기 너, 이름이 뭐라 했나?”
지명을 받은 번의 복장이 많이 다른 것을 보니 직위가 높은 모양이다.
“すかいです. (스가이입니다.)”
여자인 잔디를 한번 노려보기는 했지만 대답은 했다.
“너를 임시 책임자로 한다. 집행관 서른 명을 차출하여 저곳으로, 널 보조해 줄 번 열 명을 조장으로 하고, 각 조에 다섯 명의 번을 추가해서 1개 조를 만든다. 반각 주겠다. 실시.”
“…….”
스가이가 잠깐 멈칫하더니 말없이 돌아섰다.
“멈춰라. 스가이.”
잔디의 말을 들은 스가이가 잠시 멈칫하더니 그대로 걸었다.
기분 나쁘겠지.
자국의 상관도 아니고, 더군다나 여자가 저리 명령하니 자존심이 상했는지, 저렇게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낸다.
왜국에서 여자는 지위라는 것도 없지만, 인격도 뭐도 없는데, 여자에게 지시를 받으니 더 기분 나쁜 모양이다.
그렇다고 점령군에게 저렇게 행동해?
딱~ 슝~
잔디가 소음기가 장착된 글록을 꺼내 들고 그대로 스가이의 뒤통수에 쏘아 버렸다.
스가이가 걸어가던 모습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고, 머리에서는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으악, 아악~
번들의 비명이 여러 곳에서 들렸다.
눈앞에서 책임자 급으로 보이는 고위급 번 한 명이, 서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머리가 터져 죽었다.
손에 든 쇠뭉치는 큰 소리도 나지 않고 그냥 쇠가 부딪치는 소리만 났다.
용미단 위에 있던 조정 대신들도 몸을 떨었다.
“우리는 명령에 불응하면 즉각 처형이다. 그 점 명심하라.”
“…….”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으니 빙 둘러보고 조용하기를 기다린다.
“너, 이리 와.”
잔디는 방금 죽여 버린 스가이와 같은 복장의 한 명에게 손짓을 했다. 지명을 당한 번이 잔디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름.”
“だいきです。 (다이키입니다.)”
“내가 말하면 항상 바로 대답하고, 즉시 이행하라, 그리고 일을 지시하면 복창한 후에 움직여라. 알았나?”
“알았습니다.”
제대로 복명복창하도록 하는 것은 군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확하게 상관의 지시를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즉각적인 수행을 하도록 해 준다.
“집행관 서른 명 준비, 너를 보좌할 준책임자 급으로 열 명, 그 열 명 아래에 각 5명의 번을 추가하여 6명이 1개조로 10개조를 만든다. 실시.”
“1개조 6명으로 10개조 구성, 실시합니다.”
다이키는 즉시 뒤로 돌아서 여럿에게 손짓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집행관으로 지정된 서른 명을 용미단 아래에 도열시키고, 10개조를 불러서 용미단 아래 좌우에 줄지어 도열했다.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을 듣지 않는 책임자급 번 한 명을 즉결 처분해 버린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행동이 빨라지고 복창도 제대로 했다.
“잘 들어라. 큰 소리로 하지 않겠다.”
팔성원 광장에도, 용미단 광장에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광장이 워낙 넓으니 고함을 질러도 저 끝까지 말이 들릴 리가 없다.
“너희는 왕실의 명을 들어야 하는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권위와 존엄을 무시하고,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무런 절차도 없이 힘으로 왕실을 압박했다.”
몇몇이 고개를 들어 잔디를 보았다.
“그래서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간 왕실의 명에 따르지 않은 자, 막부의 편에 붙어서 왕실을 무시한 자 등 왕실을 반대해 온 신하들을 정리하여 그 기강을 잡고자 한다.”
잔디의 말에 뭔 개소리를 하느냐는 듯 쳐다보는 눈들이 늘어났다.
“이에 고려군은 이러한 일에 대해, 군사적 지원을 요청한 귀국 왕과의 계약에 의거하여, 그 일을 수행할 것이다.”
무슨 소리 하느냐는 듯이 쳐다보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잔디는 집행관으로 지정된 번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는 집행관이다. 내가 명령하면 즉시 집행해야 한다, 명을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집행관은 즉각 사형이다. 명심하라.”
평소처럼 작은 소리로 번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
“대답, 그리고 복창한다.”
“넵, 알겠습니다.”
대답이 늦어지자 잔디가 다시 한번 다그쳐 결국 복창하게 했다.
“구조…….”
잔디가 종이를 꺼내 거기에 적힌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명의 이름이 불려졌다.
“앞으로 나오라.”
그러나 그 누구도 일어서지도, 나오지도 않았다.
“다이키, 끌어내라.”
“네, 시행합니다.”
다이키가 조장들에게 시켰다.
군중의 무리 사리로 들어간 각 조장들이 자신의 조에 편성된 번들과 함께 이름이 불린 사람들을 끌어냈다.
고함을 지르고, 항변하고 발버둥을 쳤지만 모두 질질 끌려 나왔다. 그리고 용미단 앞에 줄지어 꿇려졌다.
“이들은 막부편에 붙어서 왕실을 업신여긴 최고위 권력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왕실의 권위를 지키고자 하는 신료들은, 자신들의 뜻에 반한다는 이유로 없는 죄를 만들어 죽였다. 그러므로 이들과 이들의 가족 모두를 멸한다.”
가족까지 모조리 불려온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다.
지금 명단에 불린 사람들은 이미 어제 이들의 집으로 전령이 가서 입궐하라 통지하였기에, 멋모르고 왕실에 나왔다가 모두 감옥에 갇혀 있다.
그들도 모두 죽이라는 소리다.
이 시대에 권력 투쟁에서 밀리면 어디까지 화가 미칠지는 모른다.
“모두 사형이다. 집행하라.”
잔디의 입에서 단 한 번의 변명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사형 집행 언도가 내려졌다.
“しけい。 しっこうする。 (사형, 집행한다.)”
다이키가 잔디의 말을 듣고 사형 집행관으로 지정된 번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즉시 사형 언도와 함께 집행 명령을 내렸다.
그들의 뒤에 서 있던 번들이 바로 칼을 뽑아 목을 자르기 시작했다.
? 서걱~
으아아악, 아아악. 아, 안 돼~
아아악~ 이 나쁜 놈들, 너희도 곧 뒤따르게 될 것이다~
서걱~
고함 소리, 비명 소리, 원망 소리와 함께 목이 잘리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오전의 신선한 바람 속에 비릿한 피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자신들과 다른 파벌의 손을 빌려 목을 치는 방법이 훨씬 깔끔한 일이다. 방금 사형을 집행한 20명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치워라.”
“치우도록 한다. 실시!”
다이키가 복명, 마차를 준비하고 대기 중이던 왜병에게 손짓했다.
그들이 마차를 끌고 와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시신들을 마치에 싣고 동쪽 문으로 이동했다.
“다음…….”
다시 잔디의 입에서 또다시 20명의 이름이 불려졌다.
역시 스스로 일어서서 나오지 않는다.
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이미 눈으로 보았으니 나가기 싫겠지만, 버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아무리 버텨 봐야 곧 끌려 나간다.
다이키가 이름이 불려진 20명을 불러냈다.
“다이키, 여기서 살려야 할 사람이 있나?”
이번에는 바로 사형을 언도하지 않고, 살려야 하는 사람을 물었다.
앞에 끌려 나와서 꿇어앉혀진 사람들 중 일부의 얼굴에 살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어렸다.
“ありません。 (없습니다.)”
다이키의 없다는 말과 동시에 실망감과 함께 비명을 질러 대는 사람이 있었다.
“사형을 집행하라.”
곧바로 집행된 사형, 그리고 시신이 치워지고 다시 세 번째 20명이 불려 나왔다.
“살려야 할 사람?”
“넵, 이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다이키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가. 맞나?”
잔디는 좌측으로 몸을 돌려 고가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제외.”
고가의 대답에 따라 잔디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 한 명을 사형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 한 명은 동쪽에 포진한 김처인 중대의 뒤쪽으로 보내졌다.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오묘한 표정.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이다.
“다이키, 지금부터는 네가 직접 진행한다. 네가 살려야 한다고 하더라도 가부는 고가 미테루에게 묻도록 한다. 알았나?”
“옙, 알았습니다.”
“다만,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 한번은 경고로 끝내겠지만, 두 번째 또 그럴 때는 네가 다음 사형 대상이 될 것이다. 알아들었나?”
“넵, 철저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올라와.”
다이키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금방 표정을 바꾸고는 잔디가 서 있던 자리로 올라왔다.
잔디는 이름이 기록된 종이 뭉치를 접어서 자신의 뒷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이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이제 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다.
다이키도 그 명단을 받으려고 손을 잠시 내밀었지만, 잔디가 접어서 뒷주머니에 넣어 버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용미단의 끝에 섰다.
적어도 오늘 이 시간에는 저놈이 왕보다 더 권력이 세다.
저놈이 죽이지 않겠다고 지정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죽는 것이니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름이 적힌 명단이 없으니 가장 뒷줄에서 30명을 불러냈다. 오는 동안에 얼굴을 보고는 앞쪽에 세우더니 모조리 사형을 집행했다.
“그런데, 저놈은 애비가 없나?”
“왜왕이요?”
태영이 묻자 서윤이 현장을 쳐다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왜왕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물었다.
“응.”
“그런가 보네요.”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정하연이 보내왔던 내용이 중간에 끊어져 제대로 상황 파악은 안 되지만, 두 명의 상왕이 언급되었는데, 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정실장이 보내왔던 거, 준토쿠 그리고 고토바 기억해?”
“음, 네.”
“분명 상왕이라 했거든. 그런데 안 보이잖아.”
“상왕이 둘이면 한 명은 애비, 한 명은 할아비라는 말이잖아요?”
“그래, 그래서 이상한 거지.”
“막부에게 잡혀서 어딘가로 보내진 것일까요?”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드네.”
하긴, 태영이 살던 곳의 지구와 이 지구와는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 아무래도 그러려니 해야 할 모양이다.
태영이 서윤과 이야기하는 중에도 피의 살육은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의 시작은 잔디가 했지만,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국의 양대 세력이 상대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피의 숙청이다.
비록 그것이 고려군의 힘을 빌려 모두를 억압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지만, 누구의 힘을 빌리건 그건 상관없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불러내었을 때, 가장 앞줄에 앉은 사람들 중에 기절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포가 도를 넘으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눈앞에서 목이 뎅겅뎅겅 잘리고 있는데, 공포가 온몸을 엄습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심지어 쓰러져서는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고, 쓰러진 후에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다.
불려 나온 왜인들이 꿇어앉은 뒤에 선 근위부와 병위부의 번이 모두 칼로 목을 자르기에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 흘러내린 피는 미처 땅속으로 다 배어들지 못한 채 땅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모래흙으로 잘 다져진 땅은 붉게 물들고 차츰 검게 변해 갔다.
용미단 위에 자리를 마련해 준 일부의 조정 대신들이 고개를 돌렸고, 일부는 구역질을 했다.
“고개 돌리지 마라.”
그 광경을 바라보던 잔디가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고개 돌리거나 눈 감는 놈은 저 대열에 포함시켜 주겠다.”
잔디의 그 말에 고개를 돌리고 있던, 땅만 바라보고 있던 대신들이 집행 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역질을 하던 사람도 그곳을 바라보면서 구역질을 했다.
다시 목이 잘린 시신들이 마차에 실려졌고, 여전히 핏물이 흐르는 채로 동쪽의 선정문이라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선별 작업과 사형 집행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차피 이 집행자들은 왕실파의 사람들이고, 바닥에 꿇어앉은 사람들은 막부파이니, 그동안에 많은 어려움을 당해서 평소의 감정까지 겹친 듯하다.
고가 미테루가 거부한 사람이 꽤 여럿이 있었지만, 살아난 사람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 우린 이동하지.”
태영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형을 집행하기 시작한 지 시간이 지나자 제법 자리가 많이 비었다.
“네, 대장님. 저는 여기 마무리하는 거 보고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김웅겸이 그렇게 보고했고 지휘관들은 여전히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태영이 서윤과 함께 일어서자 비서실의 장호만 태블릿 한 대를 가지고 김웅겸의 옆에 남고 모두들 뒤따랐다.
세잎이 백호루로 달려가서 일행들에게 지금 이동하자는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여길, 태워야 할까, 두어야 할까?”
태극전을 돌아보며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네?”
가장 가까이서 뒤따라오던 서윤이 조금 놀란 모습으로 반문했다.
“성문 앞에 도로 만들기, 궁궐 안에 동물원 만들기, 궁을 통째 뜯어 가거나 무너뜨리기 같은 이야기 한번 해 준 적 있지?”
“네, 기억해요.”
“이놈들은 그랬거든.”
이제는 태영의 과거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정하연과 한서윤이다.
셋이 앉아서 이야기하던 중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인 당시의 한양 땅에 있는 유적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했던 짓거리들을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도성으로 드나드는 성곽 앞에 차도를 만들에 자동차의 진동으로 성곽과 누각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만들었다.
남대문인 숭례문 외곽 담장을 모두 허물고 그 바깥으로 차도를 내었고, 서대문은 아예 철거했다.
일본은 조선의 궁궐을 옮겨 갈 수 없으니, 많은 궁궐을 파괴했다.
경복궁은 원래 규모의 절반 정도만 남기고 모조리 뜯어 갔고, 창덕궁에는 불을 질러서 태웠다.
창경궁은 궁내부에 놀이동산과 동물원을 만들어서 그 이름을 창경원으로 고치고, 창경궁 내의 수많은 전각들을 허물어 버렸다.
창덕궁은 일부만 남기고 모조리 허물었다.
경희궁은 모조리 헐어 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경희궁의 왕과 왕비 침전 아래에 지하 벙커를 지었다.
그리고 궁궐을 헐어 내고 불지를 때마다 궁궐 안에 있던 수많은 유물과 유적들을 모조리 일본으로 가져갔다.
뿐만 아니라, 국보급 서책들과 서적들, 과거의 역사를 기록한 수많은 기록물들은 빠짐없이 약탈해 갔다.
사실상 이런 내용들은 태영과 같이 젊은 세대들은 거의 모른다. 그런 말을 하면 ‘그게 뭐?’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일 수도 있다.
태영이 알고 있는 내용도, 아주 작은 내용에 불과하지만, 그 이야기조차도 역사 선생님이 무척이나 흥분하면서 해 주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다.
“태우라고 할까요?”
“그놈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데…….”
“그럼 나중에 떠날 때 결정해요.”
태영이 말끝을 흐리자 서윤은 재촉하지 않고,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했다.
풍락원의 동측의 중앙에 있는 문을 통해 들어서는데, 남쪽의 큰 대문 옆에 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고, 사포 병력이 정리를 하고 있었다.
저 문이 의난문(儀鸞門)이던가?
아무래도 고구 신오가 불러들인 사람들 같다.
오늘 오후 2시까지 불러오라고 했는데, 시계를 보자 아직 12시가 되기 전이다.
***
점심 식사를 마치고 풍락원 내의 큰 전각인 영관당에 도착하니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다.
계단의 끝을 올라서기도 전인데, 그 앞쪽에 백제 평승이 서 있다가 인사를 했다.
“추~웅~성.”
그놈 참.
이거 진짜 웃긴 놈일세.
지가 왜 사포 군인들처럼 하냐고?
사포군의 행동이 멋있어 보였나?
사포의 병사들이 그걸 보고 웃었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자세다.
그 옆에 어제 까불다가 일행이라는 이유만으로 혼이 난, 고구 신오를 포함해서 다섯이 서 있다.
“너희들, 움직일 만해?”
어제 3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 괜찮습니다.”
태영이 돌아보니 다들 괜찮아 보인다.
“다 모였나?”
“네, 그렇습니다.”
“혹시 여기에 온 사람들 중에 아야 케이스케나 쿠다라 하사시가 있나?”
“네, 두 분 다 와 계십니다. 그리고 뒤에 말씀하신 분은 아버님입니다.”
그래?
“아버지라고?”
“네.”
“백제사에 있던 노승하고 어떤 관계인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가장 어른이기도 하지만 우리 귀화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셨습니다.”
“자살했어. 알아?”
“네.”
“자살하는 정신적 지주도 있어?”
“대장님께서 이런 힘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았으면, 그래서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자진하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하는데 눈이 벌게지는 것을 보니 제법 슬픈 모양이다.
“자, 올라가지.”
영관당 안으로 들어서자 이 시대의 연회석 테이블인 낮은 책상이 놓여 있고, 태영이 앉을 자리만 높은 책상인데, 그 뒤쪽에 의자 10개가 놓여 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백 명쯤 될 것 같은데, 7진으로 분류되었던 병사들 중에 무장을 해제하고 온 것으로 보이는 병사들 몇이 섞여 앉아 있다.
가운데 놓인 큰 의자에 태영이 앉고, 비서실 병사들과 이곳을 지키던 한규장이 의자에 앉자 연회석 테이블에 귀화인들이 앉았다.
“고려 말 못하는 사람 일어서라.”
태영이 자리에 앉자마자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듣기는 해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포함해서 모두 일어서라.”
백제 평승과 고구 신오가 조금 놀란 표정이었지만, 적어도 고구 신오는 알고 있어야 한다.
제일 먼저 고려 도해가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해서 일으켜 세웠고, 모두 합쳐서 반 정도의 인원이 일어섰다.
“지금 일어선 사람들은 모두 저 뒤로 물러나라.”
한 명이 물러서면서 문밖으로 나가려다가 제지를 받았다. 그런 행동은, 자신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지.
잠깐 고민했다. 내보내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내보내면, 그냥 보내 주는 것이 맞을까.
조금의 고민도 없이, 또는 그래도 어떻게든 안 되겠느냐 하는 가능성의 타진을 해 볼 생각도 없이 바로 영관당을 벗어나려 했다.
이것을 어찌 해석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