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22
222. 고려령(1)
“나가겠다는 사람은 보내 줘.”
태영이 고개를 들어 병사들에게 말했다.
잠시 적막이 흘렀지만 병사들이 제지하려는 태도를 거두자 뒤쪽으로 물러난 사람들 중에 꽤 여럿이 영관당을 벗어났다.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말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탓할 수는 없다.
귀화인이라고 이야기하고, 21세기의 지식을 가진 태영의 기준으로는 이민자라고 생각해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도망자들이다.
그러니 말도, 그곳에서의 기억도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일 수 있는 사람들이고 말을 지켜온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 왜국으로 도망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끼리 나름대로 뭉쳐 있으니 인정을 해 줄 필요가 있지만, 문밖을 나간 사람들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머릿속에서 선을 그었다.
“중대장, 지금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명단 적어 두고 주작문 밖까지 나갔는지 확인하고 오도록.”
“넵, 대장님.”
한규장이 밖으로 나갔고,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1개 소대가 열린 문틈으로 그들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 너희들 말고 여기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앞부분에 앉은 두 사람, 백제 평승과 고구 신오에게 물었다.
백제 평승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의 아버님이 대표할 수 있습니다. 또, 한규보 어르신도 계십니다.”
한규보?
한자로 표기되는 왜어는 발음 기호가 필요한데, 한규보가 그 노승이 말한 아야 케이스케가 맞을 것 같다.
“여기에 여러 계파가 있지?”
아무리 도망자가 되어 왜국으로 도망을 쳐도 계파는 나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살아왔던 환경이 다르고, 모셨던 주군이 다르고, 권력의 기반이 달랐던 사람들이다.
고구 신오가 일어섰다.
“저희 쪽은 제가 대표할 수 있습니다.”
신라 대지도 일어섰고, 고려 말을 못한다고 뒤쪽으로 보낸 사람들 중에 고려 도해가 자신의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われらの だいひょう こうらいまことです。(우리의 대표 고려 진입니다.)”
모두 다 고려 말로 말하는데 저놈만 왜어로 한다.
싸가지 없게.
그래도 내쫓지는 않았다.
대충 정리를 하니 백제계 2개 계파, 고구려 계가 3개 계파, 신라계가 1개 계파다.
통일 신라계가 있었지만, 어제 오후에 칼질하다가 서윤에게 걸려 피 떡이 되어 죽은 놈이다.
계파가 몇 개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꽤 많다.
“모두 앞으로.”
여섯 명이 앞으로 나왔다.
“백제 평승, 너도 나와. 단 너는 대표는 아니지만 의견 개진은 할 수 있다.”
일곱 명, 계파는 여섯 계파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각 계파의 대표이다. 고구 신오가 어제 내게 요구한 것이 있고 나를 설득시키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를 주겠다. 단, 고려 말로 해야 한다. 고려 말로 하지 않는 사람은 발언권이 없다.”
고려 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그건 양보할 생각이 없다.
설가를 포함한 송산의 참관단, 화지를 대표로 하는 송도의 참관단도 한쪽에 서서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유진이는 아나이스에게 통역을 해 주고 있는데, 아나이스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왜국 땅에는 과거 백제나 고구려보다 먼저 멸망한 수나라의 후손이나 또는 당나라의 후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오늘의 이 자리에서 논의할 대상이 아니니까 상관없기도 하지만, 아나이스는 그리스인이니 또 상관없는 듯 아무런 의견을 개진하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그리고 각파의 이름을 내 임의로 붙이겠다.”
그렇게 해서 평승, 유성, 신오, 청도, 대지, 도해라는 6개의 이름을 임시로 붙였다.
그리고 각 계파 별로 사람 수를 조사하고, 터전이 어디인지를 조사했다.
근위부와 병위부에 번으로 있는 숫자가 제법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의 규모로는 힘을 쓰지 못한다.
7진으로 분류한 왜병들 중에 고려인은 5백 명 규모인데, 대부분이 평성과 신오의 계파들이고 일부가 유성과 대지의 계파에 속해 있다.
도해의 계파는 거의 없다.
“도해는 사람 수가 너무 적은데, 군사를 모을 수 있나?”
“はい、 かのうです。 (네, 가능합니다.)”
꼭 왜어를 쓰는 저놈이 정이 안 가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어떻게?”
“かしわらにいけば、 われらの むらがあります。 (가시와라에 가면 우리 마을이 있습니다.)”
가시와라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뭉쳐서 사는 모양이군.
“좋아. 인정.”
수많은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자 해거름이 내리기 시작했다.
태영은 그사이에 6개 계파를 어떻게 분산 배치할 것인지 정리를 했다.
23세기의 지도에 표시된 지역명과 이름도 다르고, 인구도 달라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애매하긴 하다.
“그럼, 지금부터 정리를 하도록 하겠다.”
말문을 연 태영은 다섯 개의 계파를 대표하는 여덟 명을 차근히 바라보았다.
태영이 보는 지명은 23세기의 지도인데, 이 시대의 지명은 그것과 달라서 어쩔 수 없이 오기 칠도라는 이 시대의 영지 지도를 기준으로 정했다.
아직도 여전히 사용 중이니까.
“통치는 각 계파 단위로 지역을 정하라. 지정한 그곳은 고려령 자치 왕국으로 지정해 주고 그 계파에서 통치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고려령이므로 반드시 조공을 해야 하고 세금은 납부해야 한다. 자치 왕국의 책임자는 시장이다. 시장의 임기는 4년, 그 왕국의 시민들이 선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는 사포에서 임명한다.”
다들 숨을 죽이고 태영을 쳐다보았다.
설가와 화지는 웃고 있었다. 이미 자신들의 시에서도 그렇게 정했으니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통치 지구로 정할 수 있는 지역은 서쪽으로 하리마와 타지 마을 경계로 하고, 동쪽으로 오미와 오와라, 그리고 미카와까지로 한다. 다만, 반드시 자신들의 능력으로 지킬 수 있는 만큼만 통치 지구로 정해야 한다. 그것은 여기 있는 대표자들이 협의하여 서로 간에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분하되, 그 시한은 내일 신시에 이 자리에서 만나 최종적으로 정한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고려령 자치 왕국에서는 반상의 구분을 둘 수 없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반드시 고려 글을 익혀야 한다.”
“한어가 아닌 고려 글이 있습니까?”
“있다. 몇 사람을 사포로 데려가서 고려 글을 가르칠 테니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데리고 갈 사람은 머리가 출중한 사람으로 너희들이 선정하라. 그리고 자치 지구에 왜인은 노예로는 둘 수 있어도 시민으로는 둘 수 없다.”
그 외에 이것저것 송산과 송도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추가했다.
반상의 구분이 없다는 것은 이 사람들이 어찌 해결할지 모르지만 알아서 할 일이다.
“자, 그리고 왜국에서는 성이 두 자이지만 고려에서는 성이 두 자인 사람이 없다. 외자로 고칠 것인지 그대로 사용할 것인지는 알아서 정하라.”
21세기 대한민국 땅에도 두 자의 성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언제부터인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도 아마 이 시대부터 두 자의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자, 질문.”
고구 신오가 손을 들었다.
“지금 대장님이 말씀하신 지역에는 왜인들이 터 잡아 살고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 왜국의 황제가 통치하는 지역인데…….”
“황제가 아니라 왕.”
태영은 말하는 중에 말을 잘랐다.
“네, 왕. 왕이 통치하는 지역인데 가능한 것입니까?”
“그건 내일 중에 해결될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오와리 미카, 이세, 사마 지역은 며칠 전에 우리 군이 대부분 태워 없앴다. 그곳에서 충분한 무장을 갖춘 왜군은 없을 것이지만, 지역적으로 작은 규모의 반항은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숫한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 그들이 떠난 뒤 머리가 묵직했다.
“고생하셨어요.”
태영이 머리를 긁는 것을 본 서윤이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음, 피곤하고 힘들다. 차라리 칼질이 편하지 이런 건 못 해 먹겠다.”
“이런 건, 실장님이 잘하죠.”
“그래, 맞아. 여기서는 부실장이 애들 데리고 처리 좀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왜 고려에서 잡혀 온 사람들 명단 말인데요.”
“응.”
그것도 정리를 해야 하는구나.
정말 일은 끝도 없다.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7조로 분류된 병력에게 지시를 내려서 데리고 올까 해요.”
“그거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하자. 아, 그 명단에 박해인하고 그 이름이 뭐더라 그 애들도 포함되어 있나?”
“없는 것 같은데, 이름의 표기 방식 때문에 확인이 안 되었을 수도 있으니 나중에 확인해 볼게요.”
“그렇게 해. 명단에 올라 있지 않은 고려 여인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것도 추가 조사를 좀 하고.”
“네, 그럼 고가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들 데려오고, 내일 왜국 왕실과 최종 담판을 지으면, 이곳 일이 끝나지?”
“네,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여기에 2개 중대는 잔류시킬 거라 하셨는데, 지원을 받을까요?”
“그래, 지원받고. 송산에 잔류한 박일남 중대처럼 여군이 소속된 소대가 포함되면 여군은 개인 면담해서 잔류할 것인지 아닌지 정하자고.”
박일남 중대장 예하에 편성된 윤서이의 소대는 모두 여군인데, 그 소대는 송산에 그대로 잔류하겠다고 했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창고에 있는 물품들 모두 실어서 내일부터 황룡호로 보내려 하는데, 마차가 많기는 해도 모두 실어 나르는데 닷새 정도 예상됩니다.”
“닷새나?”
철로도 없고, 차량도 없으니 대량 수송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곳에서 오사카 연안까지는 길이 제법 잘 닦여 있어서 마차로 이동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는데도 그렇단다.
과거의 전쟁 역사를 보면,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80만이나 100만 대군을 끌고 왔다고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입고 먹을 것을 어떻게 싣고 왔을까?
참 신기하다는 말이지.
장군 급이 출정할 때는 꼭 수도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황제가 출정할 때는 꼭 수도에서 출정식을 한다.
수나라의 수도는 장안이니까, 고구려를 치려면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까지 와야 하는데, 장안에서 신의주까지 대략 2,000킬로가 넘는 길이다.
마차에 식량과 무기들을 싣고 이동한다고 해도, 병력들이 2줄로 서서 1미터 간격으로 행렬을 지어서 병사 80만 명이 이동하려면, 그 줄이 400Km나 이어진다.
들판이면 산개해서 이동이 가능하지만, 산길은 외줄로 이동해야 한다. 장안에서 평양으로 오는 길은 곳곳에 평지가 펼쳐 있지만 산길도 정말 많다.
만일 천 리가 목적지이면,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병력이 있는 반면에 아직 출발도 하지 못한 병력이 생기게 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현상인데,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하다. 결론은 80만 대군이니 100만 대군이니 하는 것은 순 뻥이라는 소리지.
“네, 수색하면서 창고마다 물품 목록 정리해 온 것을 보니 양이 정말 많아요.”
“그래, 그건 전리품이니 가지고 가야지, 파묻어 둔 건 없어?”
“별로 없어요.”
***
다음 날 오전 10시.
살아남은 왜국 조정의 대신들이 팔성원 안으로 모였다.
지위가 낮은 대신들과 궁인들은 팔성원의 흙바닥에 도열해 있고, 그 외곽으로는 사포의 병사들이 총을 들고 서 있다.
용미단의 태극전 쪽에는 왜국의 4살짜리 왜왕이 앉고, 그 옆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섭정자인 간파쿠가 시립해 섰다.
그리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11명의 조정 대신들이 서 있다.
친막부파의 대신들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목을 잘렸거나 감옥으로 보내졌으니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왕실파라고 보면 될 것이다.
“결국, 오늘까지도 저놈 애비는 못 찾아낸 거지?”
태영이 서윤에게 물었다.
“네, 못 찾았습니다. 다만,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가 새벽에 공격하던 전날 오후에 오십 명 정도의 호위를 데리고, 우리가 분류한 4진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비교적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죽었으려나?”
“만일 그곳에 갔으면,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아요.”
“그런데 이놈들은 찾지도 않아?”
“우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뿐이죠.”
“그럼, 우리도 잊어버리자구.”
“네.”
서쪽의 누각인 백호루 앞에는 귀화인 6개 파의 수장들, 그리고 송산과 송도의 참관단을 포함해서 박해월의 가족들과 고려에서 잡혀 온 궁인들까지 옹기종기 모여 이 광경을 보고 있다.
유진이는 아나이스의 통역으로 서여울 소대의 여군 병사 은소현에게 맡기고 자신은 잔디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다.
“잔디야, 시작해.”
“네, 대장님.”
대답을 한 잔디가 일어서서 왕의 앞쪽이 아니라 섭정자인 구조 미치리가의 앞으로 갔다.
“구조, 당신이 왜국을 대표하는 것이 맞아?”
“아닙니다, 다만 폐하의 뜻을 헤아려…….”
“폐하가 아니고, 전하.”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대답하기 싫은가? 아니면 대표가 아닌 것인가?”
“마, 맞습니다. 왕의 섭정자 자격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왜국을 대표합니다.”
잔디의 재촉에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선 사람을 한번 돌아보고 다른 대신들을 돌아본 구조가 대답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고가가 왕의 허락 하에 막부를 물리쳐 주는 대가로 내어 놓은 것들, 그리고 고려와 왜국 간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정립 외에 추가하여 전쟁 배상금에 대해 논의키로 한다.”
여자인데, 고려의 병사들이 입은 제복, 베레모, 검은색의 가죽 군화, 왼쪽 허리에는 무릎 아래까지 살짝 내려온 도검 한 자루, 오른쪽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죽으로 만든 보관 집에 들어 있는 쇠뭉치.
쇠뭉치는 소음기가 장착된 글록이지만 저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깨에 붙어 있는 반짝이는 견장.
어제도 본 차림이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실리는 힘은 장난 아니게 무겁기도 하고, 한마디가 나왔을 때 즉각 답이 없거나 명령을 거부하면 바로 죽음이다.
허리에 달린 저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뽑혀져 나왔다 하면 작은 쇳소리가 나고 그 즉시 한 명이 죽는다.
아무도 항거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힘을 뿜어내며 자신들의 앞에 서 있다.
“사흘 전을 기준으로 가마쿠라의 세력은 완전히 괴멸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막부 세력의 잔당들을 모두 괴멸시켜, 왜국 왕실을 그 어떤 세력도 넘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초기에 왕실과 약조한 범위를 크게 넘어선 정도이므로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왜국 조정의 대신들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온다.
“이에 따라 우리의 요구를 전하겠다. 애초에 약속된 사항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므로 생략하고, 추가적인 것을 말하겠다. 첫째, 왜국의 왕실은 이곳 세츠를 떠나 무사시로 이동할 것.”
저들의 입 밖으로 나오는 한탄이 태영에게도 들린다.
애초의 약속이란 것이 고려를 영원한 상국으로 모실 것, 왕자를 3년간 볼모로 할 것, 조공을 바칠 것, 그리고 서해도를 바칠 것 등이다.
서해도는 규슈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 잔디가 이사를 가라는 무사시라는 곳은 나중에 에도 시대에 수도가 되는 동경이 있는 지역이다.
“둘째, 고려에 바치는 땅은 서해도에서 확장하여 에치젠의 동쪽 끝에서 미노를 거쳐, 미카와 동쪽 경계를 기준으로 그 서쪽 전역으로 한다.”
아, 아하~
더욱 큰 한숨과 한탄이 들려왔다.
에치젠은 교토 동북쪽 해안이고, 미카와는 나고야의 동쪽에 있다.
“셋째, 고려령으로 바뀐 지역의 모든 사람을 고려령이 아닌 곳으로 이주시킬 것. 그 기한은 1년이다. 다만, 고려인이 되겠다고 한다면 이주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아니면서 고려군에서 허가하지 않은 무리들이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경우,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고려를 침략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대할 것이다.”
왜국의 조정 대신들은 거의 신음을 토하는 지경이 되었다. 끙끙 앓는 소리마저 들린다.
“우리의 이 요구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모든 것의 완전한 이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요구에 따라 왕실은 현재 평안궁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두고, 의복과 침구만 챙겨서 지금부터 닷새 후 정오까지 이곳을 떠날 것. 이상이다.”
으음~
된 숨소리 외에는 조용하다.
황당하긴 할 것이지만, 그건 저들의 문제이다.
평안궁에는 수많은 창고 전각들이 있다.
조당원에 있는 전각 크기의 창고 전각들이 수십 채 있고, 그곳에는 대부분 수많은 재화가 보관되어 있다.
이걸 사포까지 실어 나른다면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양이다. 그러니 무척이나 아깝기는 하겠지.
“그것이…….”
“거부해도 된다.”
구조가 말을 꺼내자마자 잔디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시면……?”
“단 한 가지라도 거부하는 그 순간부터 고려와 왜국의 전쟁이 시작된다. 지금 이 말은 그쪽에서 거부하는 순간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선전 포고이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한숨과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났다.
왜국에는 수많은 영주들이 있고, 왕실을 지지하는 영주들은 많다.
그동안 막부가 세력을 키워 왔고, 막부를 지지하는 영지는 왕실을 지지하는 영지들보다 많았다.
고려군은 왕실을 지지하는 영주들의 당해 내지 못하는 막부의 군사들을 모조리 괴멸시키고 왔다.
고려군은 몇 명 되지도 않는다.
평안경 주변의 중소 영지의 군사들이 모조리 괴멸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남아 있는 병력들을 모으면 고려군보다 훨씬 많다. 아니, 궁내에 있는 번들만 불러 모아도 고려군의 두 배는 된다.
그런데 저들은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 이상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많은 군사가 와도 저들을 이겨 내지 못한다.
저들의 움직임으로 봐서 전쟁을 시작하면 수일 안에 왜국 전역은 불바다가 된다.
“너희들이 의논할 시간으로 이 각을 주겠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그때까지 답을 하지 않으면 거부하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말한 잔디는 뚜벅뚜벅 걸어서 서윤의 옆에 와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