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25
225. 분노하다(1)
“개경은 간만이지?”
“네, 정말 간만인데요.”
정하연이 따뜻해진 사포재의 응접실에서 영환이를 덮은 포대를 풀면서 모처럼 온 개경의 응접실 안을 둘러보았다.
응접실을 통해서 들어가는 집무실과 회의실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응접실은 모두 탁자가 놓여 있고, 편안한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성님은 사포재에 처음이지요?”
서윤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영환이 임신 이후에 벽란도에 잠시 왔을 뿐, 개경에 오지 않았으니 사포재에 온 것이 처음인 것 같다.
“그래 처음이야. 그런데 난방을 사포처럼 했구나.”
“네, 성님. 그래서 집 안이 모두 따뜻할 것입니다.”
귀한 손님이 편히 쉴 수 있는 몇 개의 별채가 있고, 방문객을 맞기 위한 행랑채 또한 꽤 여럿이 있어서, 집 안으로 들어온 사포의 병사들과 의원들은 이미 행랑채로 들어갔으니 그곳에 짐을 풀고 있을 것이다.
보건 부장이면서 사포 종합 병원장인 강성호는 별채를 줄 것이라 했으니 의원들의 숙소 배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본채와 응접실이 있는 이곳, 별채와 행랑채 모드에 난방 시설을 하느라, 사포의 건설부에서 제법 장기간 일을 했다.
개경 손님, 아니 안혜 황후가 생활하는 곤성전과 황제의 침전인 만령전에 난방 시설을 해 줄 때 함께한 공사이다.
최세헌이 사포재의 부지를 크게 잡았기에 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다.
“윤 집사.”
“네, 작은마님.”
서윤의 부름에 한쪽에 서 있던 윤이호가 깍듯하게 답했다.
“서찰을 써 드릴 테니 황후마마께 사람을 보내서 언제 가 뵈면 되는지 알아보고, 최 별감 댁과, 외가와 김윤경 교장에게도 연통해 주시게. 그리고 이분은 멀리 송나라에서 오신 분인데, 1호 별채에 모실 테니까 누구 시켜서 거기 정리를 좀 해 주고.”
“네, 작은마님,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을 한 윤이호가 아나이스를 바라보다가 약간 놀라는 듯했다. 서양 사람을 본 적이 없을 테니 그럴 것이다.
윤이호가 서윤이 시킨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도 하인 둘이 거실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능이 어미와 민이구나. 능이 어미도 잘 지냈나요?”
“작은마님, 말씀 낮추시지요. 소인이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주인집 작은마님이 하인에게 반공대를 하니 몸 둘 바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윤 집사에게는 평대를 했는데, 능이 어미에는 반공대하는 것을 보니 말을 많이 나누어 보지 않은 하인인 듯했다.
“윤 집사 말로는 능이와 용이가 혼인했다 들었는데 어디 있어요?”
능이는 큰아들, 용이는 둘째 아들이다.
사포재에는 네 가족의 하인이 살고 있고, 능이네 가족이 대표격이다.
그들 모두 대를 이어 하인의 신분이지만, 개경에서조차 반상의 구분을 없앨 수는 없기에 그대로 두고 있다.
그래도 사포재에 있는 하인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거의 일 년 내내 주인이 없이 하인들만 살고 있는 집인 데다, 다른 집에서 와서 감히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못하고, 집주인이라고 간혹 오지만, 아무도 다른 집의 노비처럼 대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은자로 녹봉도 받는다.
다른 집의 노비들은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하지만 아무것도 주지 않고, 그나마 먹는 것도 언제나 부족한데, 사포재에서는 풍족하게 먹고사는 것은 기본이다.
다른 집 노비들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윤이호에게 하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혼인 적령기가 되면 짝을 찾아 주라 일렀고, 그 짝이 다른 집안의 하인이면 은자를 주고 적을 옮겨 주라 했으니, 능이와 용이의 처는 아마도 사포재에 와서 살고 있을 것이다.
노비는 사람이긴 하되 재산으로 분류되는 시대이다. 당연히 돈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거래가 이루어지면 옮겨 간다.
“네, 작은마님. 밖에 사포 병사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큰마님께서도 오셨으니 모두 모여서 인사드리라 하겠사옵니다.”
“그래요, 그래 주세요.”
“마, 마님, 말씀을…… 제발…….”
“그래, 그래 알았어. 이제부터 말 놓을게. 그럼 된 거지?”
“네, 작은마님.”
그리고 능이 어미는 정하연에게도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집무실 거실을 벗어났다.
잠시 후에 윤이호는 다시 돌아와 아나이스 일행을 별채로 안내하기 위해 응접실을 나갔다.
툭툭툭~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서윤의 이모 김유선이 들어서면서 뒤따라 아이를 안은 여인 하나와 아이 없는 여인 둘이 들어섰다.
“어? 이모.”
“안녕하시오? 최 서방.”
“네, 이모님, 어서 오세요.”
태영과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 서윤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서윤아, 시장에 나들이 왔다가 너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시장은 팽개치고 이리 왔다.”
“네, 이모님. 한데 제가 왔다는 것이 소문이 퍼졌다구요?”
“그럼, 사포의 병사들이 줄 맞추어 오는데 눈 있는 사람은 다 알지.”
“아, 그렇군요.”
그렇지, 다 알게 되지.
“마침 같이 장보러 나왔던 큰며느리하고, 막내딸 정인이, 그리고 놀러 나온 막냇삼촌의 막내딸 예서까지 줄줄이 따라왔고.”
“네, 잘 오셨어요.”
“안녕하셨습니까?”
애를 안고 있던 여인이 깍듯하게 허리를 숙인다.
“내 맏며느리란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서윤입니다. 제게는 언니가 되네요. 말씀 편히 하세요.”
“아닙니다. 큰일 날 말씀입니다. 품계가 없는 여인이 감히 정2품 어른에게 하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괘념치 마십시오. 단지, 꼭 한번이라도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깊이 머리를 숙인다.
그놈의 품계는.
“이쪽은, 내 딸 서정인, 너보다 다섯 살이 어리고, 저 아이는 네 막냇삼촌의 막내딸 김예서, 정인이보다 두 살이 어리다.”
해가 바뀌어 서윤이 스물한 살, 그러니 열여섯과 열넷이라는 말인데 아직 미혼이라는 말이네. 열넷은 좀 어리긴 해도 열여섯이면 결혼할 나이인데.
“언니, 안녕하세요. 서정인입니다.”
“언니, 처음 뵙겠습니다. 예서입니다.”
“그래, 반갑다. 여긴 우리 성님, 그리고 대장님.”
서윤이 손을 들어 정하연과 태영을 가리켰다.
서로 간에 인사를 하고 예를 마치자마자 여자들 특유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영환이를 품에 안은 김예서는 예쁘다 귀엽다를 반복하더니 몇 번씩이나 볼을 비비고는 서윤에게 세상 이야기를 해 달란다.
미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배타고 송나라며 왜국이며 곳곳을 다니는 언니는 좋겠다부터 시작해, 이번에 왜국을 무너뜨린 이야기를 살짝 맛보기로 이야기했을 때는 거의 꽥꽥거리고 방방 뛰는 수준이었다.
“어머니, 나 이번에 언니 따라 사포로 갈게요.”
서정인이다.
“뭐? 얘, 안 돼.”
“나도, 나도, 나도.”
이번에는 김예서다.
“나도 언니처럼 멋진 여군이 되고 싶단 말이야. 어머니는 요즘 개경에서 사포의 여군이 되는 것을 소원하는 여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다른 사람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지만, 나는 언니가 있고 형부가 있으니 부탁하면 되잖아. 꼭 사포의 여군이 될 거야. 꼭 될 거야.”
하, 아무래도 혹 하나 붙이게 될 것 같다.
“나도, 그럴 거야.”
아니, 혹 두 개 붙이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사포의 많은 여군들은 모든 것을 잃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여군이 된 경우가 많은데, 저들은 그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겁을 좀 줘서 따라붙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그나저나 사포의 여군이 되는 것을 소원하는 여자 아이들?
모집하면 꽤나 많이 오겠네.
“진이야.”
그때, 서윤이 문 앞에 서 있는 유진이를 불렀다.
“네, 부실장…… 아니, 실장님.”
정하연이 사포 시장이 되면서 직책이 바뀌었다.
“이 두 사람에게 우리 군사 훈련 과정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해 줘.”
그러면서 눈을 찡긋한다.
“네, 실장님. 명 받듭니다.”
일부러 소리 나는 동작으로 차렷 자세를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눈치는 빨라.
너희도 여군이 되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암시 정도이다.
자신은 여군으로서 비서병이며 이름은 유진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설명이 시작되었다.
군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고, 체력이 약하다고 봐주지 않는다. 남자들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똑같이 훈련에 임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소총과 총탄의 무게는 어지간한 남자들도 들고 가기 힘들고, 군장 무게가 처음에는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그걸 메고 소총을 들고 총탄은 허리에 차고, 거기에 도검까지 허리에 차고, 지금 신고 있는 신발보다 몇 배는 무거운 군화를 신고 훈련해야 하며, 훈련 기간 중에는 그것을 모두 메고 들고, 매일매일 하루에 삽십 리를 달려야 한다.
그렇게 두 달 반의 훈련을 견뎌 내고 나면 평가 시험을 통한 측정을 해서, 합격하면 여군이 되고 합격하지 못하면 주방병이나 마구간 관리병으로 빠진다고 했다.
잔디가 그 설명을 들으며 웃고 있었다.
뭐, 약간의 뻥, 아니 제법 많은 뻥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럼, 유진이 비서병님은 그 모든 것을 통과하시고 여군이 된 것입니까?”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서정인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네가 이겨 냈는데 난들 이겨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 뜻인 것 같은데 과연 그리 쉬울까?
유진이의 얼굴에서는 독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지만, 정말 독종이다.
서윤의 이모 김유선의 한숨 소리가 들렸고, 유진이가 서윤을 돌아보았다.
“이제 그만 되었다.”
서윤의 그 말을 듣고 원래 자신이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열중쉬어 자세로 섰다. 행동 하나하나가 절도 있게 딱딱 부러진다.
“역시 멋있어.”
김예서의 중얼거림인데, 뭔가 동경의 대상을 만난 듯한 표정에 말투다.
태영은 저 혹들을 떼어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저 절도 있는 동작과 똑 부러지는 말, 그런 것들이 로망을 자극한 모양이다.
***
개경의 거리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기에 두꺼운 옷에 몸을 움츠리고 걷는 사람이 많지만, 시장은 사람이 정말 많다.
오늘은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필요한 물품도 구입하기로 했는데, 새벽부터 사포재를 찾아온 서정인과 김예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깡충거리며 따라붙었다.
“There are somethings I can’t see in Song. (송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도 있군요.)”
“Do you need anything? (혹시 필요한 것이 있나요?)”
아나이스가 무심결에 영어로 서윤에개 말했고, 서윤도 그렇게 답했다.
아나이스는 서윤이 중국어에 조금 서툴다고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하긴, 상산에서는 그랬다.
‘뭔 소리야?’
‘저게 어느 나라 말이지?’
‘실장님 언니는 어떻게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거지?’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서윤도 그 말을 들었는지, 그때부터는 중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강성호는 아무래도 개경이니 많은 약재들이 있을 것 아니냐며 의원들을 데리고 나와서 이것저것 제법 구입했다.
그 약재는 사포에서 사용할 것들도 있고, 이틀 후 궁에 들어가서 안혜 황후의 건강 검진을 하고 보약을 조제할 때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안혜 황후가 사포에 1년간 있을 당시에 강성호는 여러 번 진맥을 해서 체질도 잘 알기에 거기에 맞추어 약재를 구입했다.
그 외에도 사포에 있으면서, 고려 시대로는 있을 수 없는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같은 것들도 했다. 물론 여군 의무병과 여의사들이 붙어서 했지만.
이번에도 혈액 검사와 병리 검사 같은 것을 하게 될 것이다.
엑스레이나 내시경 검사 장비 같은 것을 만들 수가 없지만, 그런 고도의 전자 기술과 상관없는 부분은 제법 많이 발전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실 거죠?”
번잡한 시장 통을 벗어나서 행인들이 많지 않는 한가한 곳으로 접어들었을 때, 정하연이 영환이가 걸을 수 있도록 길에 내려 주고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다른 한 손은 서윤이 잡고 허리를 조금 숙여 영환이가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던 중이었다.
찌르르르~
대답을 하려는 찰나, 아주 오랜만에 느껴지는 위험에 대한 사전 인지력으로 몸이 떨려 왔다.
“서윤아, 방어막.”
그 느낌이 오자마자 바로 짧게 말했다.
“네.”
방어막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까지 펼쳐지는지도, 어떤 식으로 방어가 되는지도 모르고 당연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단 한번, 왜국에서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막을 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대기의 왜곡 현상이라도 생기면 알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없다.
서윤의 대답을 들으며 온몸의 긴장을 극도로 끌어 올려 모든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했다.
좌측 건물과 나무 사이.
대기를 뚫고 날아오는 20발의 화살, 느낌이 편전 같기도 한데, 아마도 석궁인가 보다.
탄성이 좋은 강한 활의 화살이 초속 60미터 전후이지만 뛰어난 석궁 화살의 속도는 70미터 전후이다.
그러나 태영의 속도는 마하 3이다.
이대로 있으면 석궁의 화살이 1초 이내에 태영 일행의 몸을 꿰뚫게 되겠지만, 속도뿐만 아니라 힘에서도 태영이 압도한다.
찰나의 순간에 모든 계산을 마친 태영은 그대로 좌측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아아아아앙~
주위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어서 최대 속도로 움직이며, 지천과 월랑을 동시에 빼어 들었고, 공중에 몸을 날린 채로 휘둘렀다.
피피피핏~
챙, 타다닥~ 채채채챙~
지천과 월량이 화살을 쳐 내는 소리와 태영의 몸이 대기를 밀어내며, 일으킨 폭풍 같은 소리가 이제야 귓전에 들려왔다.
몇 개를 놓쳤지?
워낙 짧은 순간에 20개가 넘는 화살이 쏘아졌기에 다 막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파바박, 파박, 파바박~
화살은 화살촉이 칼에 맞으며 방향을 전환하여 다른 집의 담벼락에 박혀 들어가고, 또 일부는 살의 중간이 잘리며 힘을 잃고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윤이 상공 5미터의 높이에 떠 있고, 그 아래쪽에는 정하연과 영환이를 둘러싸며 방어 진형을 갖추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화살 두 개가 병사들의 앞쪽에 반쯤 이겨진 모습으로 떨어져 있다.
놓친 것이 두 개였다. 서윤이 방어막을 치지 않았으면 누군가는 저 화살에 맞았을 것이다.
“대대장, 방어진. 서윤아 부탁해.”
“넵, 대장님.”
“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어 급하게 말한 태영이 화살이 쏘아진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뒤로 대답이 들려왔다.
“$%$%@@$^@***$”
몽골어?
실패했다, 도망쳐. 젠장, 저놈은 뭐야. 뭐가 저리 빨라. 같은 말 속에 섞여 있는 몽골어 몇 마디.
말을 할 줄은 모르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뜻을 모른다.
그러나 사포에는 몽골인 부부가 학당에서 몽골어를 가르치고 있고, 태영도 틈나는 대로 배우고 있기에 저 말이 몽골어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놈들이 들고 있는 것은 석궁이다. 석궁은 재장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천과 월랑을 공중으로 던져 올려 버리고 동시에 양손에 각각 가득 차게 쇠버리를 움켜쥐었다.
쐐액, 쐐애애애애액~
아직 채 흩어지지 못한 무리들 속으로 두 손안의 쇠버리가 날아갔다.
으아아악~ 아아악~
쿵~ 후다닥~
으아악~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기들끼리 칼에 찔리고, 비명이 난무했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지천과 월랑을 두 손으로 잡음과 동시에 칼집 속으로 밀어 넣는데, 시선에 동작 빠른 한 놈이 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려 했다.
쌩~ 퍽~
쇠버리를 꺼내려 할 찰나, 머리 뒤통수를 뚫고 들어가는 작은 소리가 들리며, 그놈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한서윤이 쏘아 보낸 쇠버리다.
태영이 돌아보니 서윤이 더 높이 솟아올라 공중 10미터쯤의 높이에 떠 있었다.
서윤은 좌우로 시선을 돌리며 또 다른 적이 있는지를 살피면서 천천히 하강하고 있는데, 태영이 서윤을 쳐다보자 왼손이 한곳을 가리켰다.
담으로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서윤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모양이다.
고개를 까딱하고는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 서윤이 있는 위치보다 높이 뛰어오르며, 가리켰던 방향을 보자 그곳에 도망치고 있는 한 놈이 보였다.
“부탁해.”
복장과 차림을 기억에 남기고, 몸이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그쪽을 향해 뛰었다.
파아아아앙~
담장과 담장을 건너갔다.
담장에 올려진 기와가 날리고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넘어, 담장이 무너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사정을 봐줄 상황이 아니다.
마하 3의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이 시대에는 없다.
초고강도의 석궁이 쏘는 화살보다 태영은 10배 이상 빠르다.
도망치는 놈의 머리채를 잡는 순간 뒤로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컥~
놈의 머리와 몸이 뒤로 젖혀졌다.
목이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순간적인 충격으로 인해 놈이 방어 동작이나 공격 동작을 할 틈은 없었을 것이다.
태영은 놈의 팔꿈치 위를 타격했다.
뚜둑~
으아아악~
어깨 아래, 팔꿈치 사이의 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부러진 팔이 쳐지기도 전에 가슴을 눌러 그대로 등이 흙바닥에 처박히도록 눌렀다.
투둑. 쿵~
흙바닥에 부딪치는 충격으로 제법 큰 소리가 남과 동시에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대로 발을 들어 놈의 정강이를 밟았다.
뚜둑~ 뚝~ 뚜둑~
정강이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악, 아아악~
사람의 뼈라는 것이 밟는다고 그리 쉽게 부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밟은 사람이 태영이라는 것이다.
두 다리의 정강이뼈가 부러지자 놈은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몸에는 힘을 줄 방법이 없다. 잇새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이빨을 앙다물고 참으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가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가 보였다. 이 시대의 길거리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들.
긴 나뭇가지 하나를 들어서 길이가 짧은 칼, 단심으로 사선으로 쳐 내서 끝을 뾰족하게 만들고는, 그대로 볼 한쪽으로 쑤셔 박아 반대편 볼로 나올 때까지 밀어 넣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오자 그대로 잡아당겨서 중간에 위치하게 했다.
으아, 아으아, 으아아~
소코뚜레처럼 볼의 좌우를 관통한 나뭇가지가 길게 뻗어 있어서, 입도 이빨도 다물어지지 않아 무슨 말을 해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비명 소리와 함께 볼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튀었고, 턱으로 목으로 마구 흘러내렸다.
팔다리도 부러진 상태에서 볼 양쪽을 관통한 나뭇가지로 인해 죽기보다 더한 고통이 놈의 곳곳을 찌르고 있을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나뭇가지를 머리통 속으로 찔러 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이놈들은 어떤 놈들인지, 왜 습격했는지, 배후가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