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33
233. 분노하다(9)
“오랜만이네.”
서윤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명백히 비꼬는 말투.
그러나 그런 서윤을 본 네 사람의 표정은 마치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 경악했다.
이 마을을 떠난 지 2년이 흘렀지만, 태어나서부터 2년 전까지 살던 곳이니 아무리 이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도 얼굴을 모를 수는 없다.
“도망가 볼 거야?”
그중에 둘이 도망을 가려는 듯 몸을 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서윤은, 이 일은 자신의 친구 일이니 가능하면 자신이 모든 것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는데, 그것도 재미있다.
“그래 보든가. 내 앞에서 도망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신 도망가는 놈은 정말 죽고 싶어 하게 만들어 줄 거야.”
“네, 네, 네가 뭐, 뭔데?”
꼭 이런 놈이 있다.
지들이 잘못한 것을 뻔히 알아서 속으로는 켕기면서도 겉으로는 시치미 떼는 놈.
“쌍년이, 겨우 둘이서 우리 넷을 어째 보겠다고?”
이런 놈도 있다.
이런 놈은 잘못한 것조차 모르는 놈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도 못 하며 일단 아무 말이나 내키는 대로 질러 놓고 보는 놈이다.
그러곤 품속에서 칼을 꺼냈다.
그 옆에 있던 비단옷을 입은 여자가 붙어 서서 팔을 잡으려 하자 움직임이 둔해질 것을 염려해서인지 자꾸 밀어냈다.
그나저나 지난해에, 불과 1년 전에 자신들을 압도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건망증이 심한 것인지 머리가 나쁜 것인지.
“호, 그걸로 어째 보겠다고? 잉모 너 혼자서 될까? 간난이도 힘을 합쳐야지, 그리고 밤돌이와 두리는 칼 안 꺼내?”
서윤이 시선을 돌리는 방향에 있는 사람의 이름일 것이다.
잉모라는 남자의 옆에 서서 마치 매달릴 듯 서 있는 저 여자가 간난이구만.
산골짜기이고, 한자 같은 것을 배운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이름에는 한자어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부른 이름의 남자, 잉모가 막상 칼을 꺼내기는 했지만, 사람을 찌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듯했다.
칼끝의 방향이 천천히 돌아갔고, 자신의 눈을 향했다.
“으으으윽.”
자신의 눈을 향해 있는 칼끝을 보며 신음을 내었다.
“천수.”
“…….”
여태 이름이 불리지 않은 남자가 천수겠지.
“대답 안 해?”
“왜?”
한 남자가 눈길은 피하면서도 눈을 흘겨보며 대답했다.
“황제 폐하와 황후께서도 내게 반말을 안 하시는데, 너희 연놈들은 전부 반말이네. 일단, 그 죄는 나중에 묻기로 하고, 너 그날 내가 했던 말 들었지?”
“뭐, 뭘, 아, 뭘요?”
반말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저들이 믿지는 않겠지만, 황제와 황후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 기가 죽기는 하는 모양이다.
“설이의 은자를 탐내는 놈이 있으면, 내가 반쯤 죽여서 혼자는 뒷간에도 못 가게 만들어 줄 거라고 했는데, 너는 설이의 서방이면 상관없는 줄 알았나 보네? 겁도 없이 설이의 은자를 들고 나가서 친구들과 흥청망청한 걸 보니. 그지?”
“아, 아그, 그게 아니고오…….”
“달이, 너는 네가 입은 비단옷을 네 돈으로 산 거야?”
이번에는 다른 여자에게로 시선이 옮겨 갔다.
자신이나 자신의 남편 능력으로 샀을 리가 없지.
달이라고 불린 여인은 바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아니, 서윤아…… 아니 서윤, 마님 ……용서, 흐으윽.”
반발도 하지 말라 하니, 마구 멸시하며 이름을 부르던 대상을 어찌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
“내 서방님은 칼을 겨눈 상대를 살려 준 적이 없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칼끝이 자신을 항하고 있는 잉모라는 자의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눈을 향해 오고 있었다.
잡고 있던 칼을 이미 손에서 놓은 상태지만, 그러고 제법 시간이 지났어도 칼은 마치 아교로 붙이기라도 한 듯 떨어지지도 않고,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 보았지만 밀리지도 않았다.
“제, 제발. 요, 요, 용서를…….”
***
행랑채 앞에 몸이 결박당한 채 꿇어앉은 네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는 모두 발가벗겨진 상태다.
그리고 반쯤은 몸이 얼어 있다.
그들이 입었던 옷을 잘라 만든 끈이 등 뒤로 돌린 손을 묶고 있고, 다시 꿇어앉은 발목을 결박하고 있었다.
발목을 묶은 줄이 손을 묶은 줄을 연결하고, 목을 몇 바퀴 감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그 줄의 한 자락이 행랑채 서까래에 걸려 있었다.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면 목이 매달리게 되니 죽고 싶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는 형국이다.
어제 잡아 온 이후에 지금까지 저 상태다.
밤에는 영하로 내려갔을 텐데 용케 죽지는 않았다.
달이라 불린 여인은 몇 번 소변을 지려서, 마당의 흙에 다 빨려 들어가긴 해도 자국이 선명하고, 간난이라 불린 여인도 저 상태로 오줌을 지렸다.
남자들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다만, 무릎 위치까지 튀어 나갔기에 자신이 싼 오줌 자국을 자신이 깔고 앉지 않았다는 차이뿐이다.
집 바깥에는 꽤 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고,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떨지 궁금해하면서도 아무도 가까이 와 보지는 못했다.
아직 쓰지 못한 은자는 찾았다.
그거 찾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지만, 떠난 뒤에 저들이 쓰도록 두지 않겠다며 모두 찾아냈다.
삐꺽~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준비 끝났어?”
“네, 밖으로 이동시켜 주세요.”
태영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서윤이 병사들을 불렀다.
집 안에는 말이 끌 수 있는 1인용 간이 마차가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 여인 설이가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수북하게 짚을 쌓은 후, 그 위에 포근하게 이불이 받쳐 있고, 설이는 그 위에 앉아서 이불을 다시 가슴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겨우 엿새 만에 몸이 전처럼 회복될 수는 없겠지만, 처음의 미라 같았던 모습에 비하면 많이 돌아왔다.
간이 마차에 바퀴는 없었지만, 말이 끌 수 있도록 만든 안락의자처럼 생긴 마차다.
병사들이 우르르 집 안으로 들어가 좌우로 붙어서 간이 마차를 들고나왔다.
의무병들은 쇠약한 몸으로 장거리 여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젠 제대로 먹고 자고 해서 기력은 많이 회복되었기에, 천천히 가면 괜찮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병사들이, 설이가 앉은 마차를 들어서 처마에 연결된 줄에 목을 감은 채 꿇어앉은 남편과 마을 사람들 앞에 내려 주었다.
“달아.”
달이라고 불린 여인을 포함해서 모두 다 눈은 풀리고 입술은 하얗게 피어났고, 추위로 인해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
대답은 못 하고 겨우 고개를 들어 불쌍한 모습을 보이며 쳐다볼 뿐이다.
“왜 그랬어?”
전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리를 해 보니,
서윤의 엄포가 워낙 강해서 설이의 남편인 천수가 처음에는 은자 달라는 말을 못 했다.
그렇지만 괜한 박탈감에 분풀이로 설이를 좀 더 두들겨 패는 것은 늘었다.
그런데 달이라 불린 저 여인이 이젠 안 올 거라며 꼬드겼다.
무덤도 없고, 유해도 다 가져갔는데 올 일이 뭐가 있느냐는 말을 몇 번 듣다 보니, 정말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달이가 남편인 밤돌이와 같이 꼬드겨도 천수가 쉽게 넘어오지 않자, 친구인 간난이와 잉모를 꾀어서 합류시켰다.
은자에 욕심이 난 사람들이 동참했다.
다섯 명이 천수를 꼬드기며, 서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유혹을 하자 본인도 드디어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런 후, 설이에게 은자를 조금 받아서 놀아 보니 참 좋았다.
그런데 감질이 났다.
설이가 없으면 그 은자는 모두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옆에서도 설이만 없으면 다 네 것이라며 꼬드겼다.
“흐으, 미 미안해. 네가 가진 은자가 탐이 나서…….”
“…….”
자신의 눈에 보이는 친구의 몰골이 처참해서 그런지, 생각 밖으로 설이는 가혹하지 못했고, 눈물만 흘렸다.
제법 긴 시간을 들였음에도 여섯 명에게 원망의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설아, 이제 내가 할게. 내가 네게 은자를 주면서 했던 약속만 지키고, 우리 그만 떠나자.”
“그, 그래 서윤아, 그래도 친구들인데, 조금만 살살.”
저렇게 착해서는.
약속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래도 그놈의 정이 무엇인지 자신의 아들을 죽게 만들고, 자신도 거의 죽게 했는데도 살살 하란다.
“친구? 아니야. 저들은 마귀야.”
그렇게 말한 서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부터 내가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
그렇잖아도 사색이 된 여섯 명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 제법 크게 인기척이 들리더니 지난해에 서윤에게 그렇게 빌었던 용이 할아버지라는 노인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방향을 특정하지도 않고 절을 했다.
“아무 말 하지 마.”
서윤의 서슬 퍼런 경고에 고개를 들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노인은 입을 열려다가 그대로 다물었다.
“입만 벙긋하면 오늘 널 죽일 거야. 물론 네 가족들도 모두.”
그 말을 들은 노인의 입술이 씰룩였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는 이곳에서 제일 어른이면서 어른의 역할은 전혀 못 했다.”
서윤의 말은 싸늘했다.
“내 부모님들과 형제들이 이곳에 사는 동안, 동네 사람들에게 그 많은 괴롭힘을 당할 때, 너는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어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았다.”
노인의 고개가 숙여졌다.
태영도 알고 있다.
서윤이 일기의 내용을 알려 줄 때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2년 전 나를 겁탈하려 하던 놈들을 막아서던, 내 아버지가 그놈들의 낫에 찔려 돌아가시던 날, 너는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아보기보다는 내 서방님에게 어떤 연유로 우리 마을 사람들을 핍박하느냐고 물었고, 내 서방님이 말씀하신 배상 지시에 대해 가혹하다는 말만 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원망치 않았고 모두를 용서했다. 배상도 없는 것으로 했다.”
맞아.
서윤이 나서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저 노인, 용이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었다.
“지난해, 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의 유해에 너희들이 패악 무도한 죄를 저질렀을 때도, 우리 집에 불을 지르고 유해에 못된 짓을 한 그놈들의 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불탄 것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었고, 헛소리만 했다. 우리 집이 백 리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산모퉁이만 돌면 있는데, 불난 것을 몰랐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거야?”
태영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서윤이 말을 하니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정말 나쁜 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난 것을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거리다.
“그런데, 너는 설이가 당한 이 따돌림을 몰랐다고 할 것이고, 설이의 아이가 죽고, 설이도 죽어 가고 있었다는 것 역시 몰랐다고 변명을 하고, 내가 내리는 벌이 과하니 용서해 달라고 말하려는 모양인데.”
그리고 시선을 집 바깥에 잠시 주었다가 노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용서는 충분히 했다. 그래도 너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그러곤 말을 멈추고 눈을 들어 집 밖을 한번 보았다.
바깥에서 서윤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제 더 이상의 용서는 없다.”
서윤은 노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분명하게 경고한다. 오늘 네가 또 그런 헛소리로 입을 벙긋하면 너와 네 가족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서윤의 서슬 퍼런 경고 때문인지 입도 뻥끗 못 했다.
“설마, 라는 생각이 들면 시험해 봐도 좋아. 밖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들었지?”
서윤은 여섯 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날 내가 설이에게 은자를 주면서 했던 말은, 설이의 은자를 탐내는 놈이 있으면, 내가 반쯤 죽여서 혼자는 뒷간에도 못 가게 만들어 줄 거라 했다. 아마 다들 기억할 거야.”
서윤이 고개를 돌리자 모두들 흠칫 놀랐다.
또 놀랄 일이 남아 있긴 한 모양이다.
“나는 너희들 모두를 그냥 죽여 버리고 싶지만, 당초 약속한 대로 혼자 뒷간에 못 가게 하는 정도에서 끝내고 죽이지는 않겠다.”
그것이 더 처참할 것이다.
서윤이 염력으로 가하는 폭력은, 밖으로는 멀쩡하고 몸속을 부수고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것은 그 어느 누구도 견뎌 내지 못한다.
뚜둑~
아아아아아악~ 으아악~
뚜두둑~
크아아아악~
말이 끝남과 동시에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누구도 손을 쓰지 않았고, 서윤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몇 번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목에서 서까래로 걸린 줄이 후드득 끊어져 내렸다.
“이제, 이 동네에 남은 인연은 더 이상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남았다. 매년 제를 지내라고 한 것이 지켜지는지 언젠가 확인하러 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일에는 제비골에 사는 모두의 목을 걸어야 한다.”
***
“충성, 다녀오셨습니까?”
김웅겸이 본부 광장의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했다.
아마도 드론으로 태영 일행이 오는 것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태영이 오는 것을 알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곳까지 화물차를 보내왔었다.
“실장님도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요, 연대장님.”
김웅겸이 경례를 하고 서윤이 인사를 받았지만, 정하연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시장님은?”
“울주를 접수하고 계실 것입니다.”
“연대장이 수행하지 않았나?”
“수행해서 갔다가 정인구 대대장님하고 2개 중대는 남아 있고, 저는 신병 훈련 때문에 며칠 전에 돌아왔습니다. 별일이 없으면 시장님 일은 내일이나 모레, 끝날 것입니다.”
내일 끝나면 내일 저녁 무렵이나 모레는 도착할 것이다.
울주가 통합되었고, 왕래가 잦아질 테니 아무래도 도로부터 먼저 뚫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오래 걸렸지?”
“네, 개경에서 여기 오는데, 무려 스무하루나 걸렸으니까요.”
개경에서 제비골까지 나흘, 그리고 제비골에서 엿새를 머물렀으며, 다시 거기를 출발해서 사포에 도착하는 데는 무려 열하루나 걸렸다.
“아, 저기 화물차 들어오는군요.”
트럭의 이름은 화물차를 그대로 사용했다.
화물차에 병사들의 군장과 짐들, 그리고 서윤의 친구가 탄 마차를 통째로 실었다.
그러는 것을 보고 태영은 서윤과 먼저 이동했었다.
“저 병력들 고생 많이 했어. 휴가 좀 주도록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충성, 임무 마치고 무사 귀환했습니다.”
전대기의 지휘하에 병사들이 좌우로 도열했고, 비서실 병사들도 약간의 간격을 두고 자리에 함께 서서 귀환 보고를 했다.
서윤의 친구는 화물차 위의 마차에 비스듬히 누운 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충성, 정리를 먼저 하도록, 자세한 사항은 서면으로 보고하도록 한다.”
김웅겸이 경례를 받고, 지시하는 것을 끝으로 병사들은 기민하게 움직여서 화물차에서 마차를 끌어 내렸다.
마중을 나왔던 다른 병사들까지 합세하여 마차는 금방 내려왔다.
“실장님, 친구분을 입원시키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 줘.”
잔디의 보고에 서윤은 대답하면서 바퀴 달린 마차로 옮겨 태워지고 있는 친구에게로 갔다.
내려오는 길의 여정이 길었지만, 잘 쉬고 조금씩만 이동했기에, 그동안 제법 몸을 회복했다.
그래서 조금 살이 올라 이제는 미라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설아, 이제 사포에 왔으니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해. 입원 치료 중에는 간호사가 널 돌봐 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몸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해.”
“네, 실장님. 고맙습니다.”
“얘는, 그러지 말라니까.”
“아닙니다, 실장님. 제가 배운 바는 없어도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아옵니다. 그러니 괘념치 마십시오.”
오는 동안에 여군 의무병과 병사들에게서 사포에서 서윤이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개경에서는 또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들었다.
환자의 건강 문제로 빨리 올 수가 없었으니 마치 유람하듯 천천히 오게 되었고, 덕분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소인이라 말하지 말라는 지적에서부터, 사포에는 반상의 구분이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직무와 직책에 따른 계급의 상하만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이제부터 자신도 존대를 하겠다고 말한 이후로 간혹 그걸로 입씨름을 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래도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네가 내 친구라는 거 잊으면 안 돼. 알지?”
“네, 실장님. 잘 알겠습니다.”
“그래, 내가 시간 나는 대로 병원에 들를 테니까.”
“고맙습니다. 그리고 민 상병님, 송 일병님, 소대장님,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설아,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
설이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인사를 마쳤을 때, 서윤이 설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 말에 설이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실장님, 가기 전에 친구의 이름 한 번만 더 불러 보자. 내 친구 서윤, 서윤아…….”
설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자신의 손을 잡은 서윤의 손을 이리 한번 잡아 보고, 저리 한번 잡아 보고, 그리고 눈가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젠, 울지 마. 이젠 내가 울지 않게 해 줄게.”
“그래, 울지 않을게. 울지 않을게 이젠. 그리구 사포에 반상의 구분이 없다 해도 내 친구 서윤인 나에게 영원히 나의 주인마님이야.”
서윤은 그 말에 한참이나 친구의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 이제 병원으로 가.”
그리고 친구의 얼굴에 흐른 눈물을 닦아 주고 몸을 일으키며 잔디에게 말했다.
“네, 가요. 제가 병원까지 동행할 거니까 가서 입원 수속까지 해 드릴게요.”
그렇게 서윤의 친구가 병원으로 떠났다.
자신이 살던 집의 뒤란에 아들을 묻고 떠나온 여인.
마치 서윤이 가족들의 작은 무덤을 집 뒷벽과 담장 사이의 작은 공터에 만들었듯이 그곳에 아들을 묻었다.
아들과의 짧은 만남의 기억은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 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사는 애환이다.
물론 이 땅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 시기라면 모두 동일한 모습들일 것이지만, 눈앞에서 보이는 것과 남겨진 기록을 글로 보는 것은 참으로 차이가 컸다.
“정 시장, 수행해 간 간부들이 있지?”
이제 슬슬 간부들이 모여들 것이기에 김웅겸에게 물었다.
“절반 정도는 수행하고 있습니다. 건설부, 교육부, 농업부 부장님들과 재무과 행정과 등기 보훈 원장까지 갔으니까요.”
그럼 나머지가 슬슬 본부로 오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