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35
235. 창천 비호(2)
“충성, 준장 신도익, 육군 창해 사단 사단장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장성급의 임명식.
장성급도 이렇게 임명하는 줄은 모르겠다.
21세기에서 태영은 사병이었고, 말단으로 전방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장성들의 임명식과 신고식 같은 것을 알게 뭐람.
언젠가 병참 담당관의 임명식을 보고 살짝 베낀 거다.
최태영, 고려 시대로 날아와서 출세했다.
“충성, 소장 정인구, 윤군 해치 사단 사단장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그나저나 장인어른에게 이런 신고를 받으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원래 사단장은 준장급, 군단장은 소장급으로 예정했지만, 장인인 정인구는 사단장이라고 해도 소장으로 계급을 부여했다.
태영이 이곳으로 날아오기 전으로 보면, 이곳의 최고위 장교들 중에 장인인 정인구가 계급이 가장 높았으니까.
“해치 사단장님, 사관 학교 설립 계획서 보셨지요?”
“네, 보았습니다.”
사관 학교는 오래전부터 세우고 싶었지만, 그 근처에도 못 가 본 태영이기에 정리를 하는데 오래 걸려서 이제야 꺼낸 카드였다.
“이제부터는 육군과 해군 사관 학교를 통해 지휘관을 양성할 것입니다. 해치 사단장님이 현 업무에 추가하여 육군 사관 학교를 설립하고 추진해주십시오.”
“네, 그리하겠습니다.”
이어서 해군으로 백경 사단의 송복기, 창천 군단 김웅겸 휘하의 창룡 사단장 박준환과 파천 사단장 오종필이 신고를 했고, 백호 사단장 김중겸이 신고를 마쳤다.
백경 사단장 송복기에게는 해군 사관 학교를 설립하라고 했다.
공군 사관 학교를 만들고, 공군 창설을 하려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지만 육군 병장 출신이 공군 사관 학교와 공군을 어찌 만드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차피 헬기의 주목적은 공격용이라기보다는 병력 수송이 위주이다.
그런데 꼭 공군으로 분리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군 창설 대신에 각 군단과 사단에 비행 전대를 두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충성, 소장 김웅겸, 창천 군단 군단장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김 군단장,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소.”
김웅겸은 임무 부여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할 일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넵, 염려 마십시오.”
김웅겸의 임명장 전달과 신고가 끝나고 한규장의 차례가 왔다.
“충~성, 소장 한규장, 비호 군단 군단장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한 군단장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태영이 거의 모두에게 반말을 해도 이렇게 공식 석상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습니다. 대장님.”
“고려의 양민들이 얼마나 많이 왜국에 끌려가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잘 보고 왔지요?”
“네, 너무나 잘 보았습니다.”
“그곳에 사는 왜인들이 수없이 많은 고려 해안을 약탈했소.”
“네.”
“1차 임무를 주겠소. 이제는 선만 그어서 우리 땅이 된 왜국의 모든 곳을 완전한 우리 땅으로 만드시오. 그곳에 고려인 이외의 양민은 필요 없소.”
우리 땅.
나고야 서쪽의 모든 땅은 우리 땅이 되었고, 북해도는 왜국이 아닌 아이누족의 땅이지만, 고려로 편입할 것이다.
그것만 모두 정리하면 왜구 같은 것은 사라진다.
“반항하면 사형, 항복하면 노예로 만들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요.”
“반드시 최단 시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대답 한번 시원시원해서 좋다.
한규장이 그곳을 점령하고 왜인들로 노예가 충분히 확보되면, 건설부와 공업부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광산 개발을 해 철광석을 확보하고, 석탄을 캐 오고, 농업부에서 식량 증산과 조달을 위해 역시 사람을 파견할 것이다.
“신병들의 훈련이 끝나면, 부대 편성을 하시오. 북방의 바람도 거세지만, 왜국의 바닷바람은 집 한 채는 쉽게 날려 보내 버립니다. 각별히 신경 써서 피해가 가능한 한 없도록 하시고, 왜국의 계절별 기후 변화표와 환경 같은 것들을 원정 전에 충분히 배우고 숙지하도록 하시오.”
“넵, 명받습니다. 충성.”
흑호 사단장 권우석은 자신의 승진 사실도 모른 채, 왜국의 평안경에 체류 중이지만, 이것으로 조직 개편은 끝났다.
김웅겸의 예상대로 한규장의 비호 군단 군단장 임명과 신도익의 창해 사단 사단장 취임에 모든 중대장들과 소대장들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창천 군단 3,943명, 비호 군단 3,683명, 창해 사단 1,923명, 해치 사단 1,923명, 백경 사단 420명, 거기에 사령부 인원 114명을 더해서 총원 12,006명이다.
이후로 증가되는 병력은 일단 해치 사단으로 편성되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개경에서 데려오기 전에는 전 군이 2천 명 정도였었는데 많이 늘어난다.
돌개몰과 달구곶 사람들, 그리고 개경에서 걸인들을 데려오고, 철소의 장인들을 데려와서 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훈련시켜 그 정도였는데, 이번에 개경에서 데려온 숫자가 워낙 많아서 한꺼번에 늘어 버렸다.
“눈아.”
“네, 대장님.”
한쪽에 도열해 있던 비서실 병사들 중에 눈이를 불렀다.
지금은 정하연과 함께 있느라 원정을 다니지 않지만, 지도에 관한 한 최고였다.
“지도와 독도법 완벽하게 가르쳐야 한다.”
“네, 염려 마십시오.”
***
“울주는 어디까지야?”
저녁 식사를 하고 가족끼리 모여 앉았다가 물었다.
“남쪽으로 기장 지나서 동래까지, 서쪽으로는 현양현과 그 부근 모두 포함하고, 밀양과 청도 경계까지 이어져 있어요.”
“현양현?”
익숙하지 않은 현의 이름이기에 뭔가 해서 물었다.
“아, 지도상으로 보면 언양이요.”
“그럼 경주는?”
이 시대의 지명으로 동경이지만, 사포에서는 모두 경주라 부르고 있었다.
“거긴 아닌데 일부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일단 길부터 뚫어. 남으로는 동래를 지나서 부산포까지 뚫고, 서쪽으로 밀양과 청도까지, 서북으로 경주, 북으로는 아예 포항까지 뚫고 올라가.”
“통양포까지요?”
포항이라는 지명은 없다고 했었다.
통양포가 21세기 포항의 일부라고 했나?
“응, 아예 사통팔달하게 만들어야 해.”
“자신의 땅이 편입되어서 반발이 많을 텐데요?”
“그렇겠지. 그렇지만 신경 쓰지 말고, 길 다짐은 천천히 해도 되니까, 도저로 그냥 다 밀어 버려. 그쪽 협조 같은 것은 얻지 말고 그냥 대고 밀어 버려. 항의하면 힘으로 내리누르고, 그 길로 다닐 때 반드시 철갑 교위 한 대를 앞세우고 무장 호위 1개 중대 정도 데리고 다니고.”
“박해월도 그게 좋을 거라고 하던데,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박해월이 데려갔어?”
“네, 아주 똑똑하고, 사포에 바로 적응했어요. 조직 개편 때 중책을 맡기려 하는데, 슬쩍 의중을 떠봤더니, 대장님이 원정 떠나는 걸 어디서 듣고 거길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어요.”
“괜찮은 친구지. 그런데 내게는 따라가고 싶다는 말 안 하던데?”
“아마도 기회를 보고 있을 겁니다.”
“그건 그놈이 말하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아무튼 길이 좋아야 유동이 늘고, 유동이 늘어야 발전이 빨라, 지금 사포와 율촌은 이러한 체계로 흘러오는 데 5년이 걸렸어. 그리고 돌개몰과 달구곶은 3년이야. 그치?”
“네.”
“울주는 처음 내가 왔을 때의 사포나 율촌과 비슷해. 그렇지?”
“네, 대충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그들을 사포처럼 바꾸어 놓는 데 5년이 걸려서는 안 되거든. 빠르면 2년, 길면 3년 안에 비슷하게 바꿔야 하는데, 가장 빨리 바꾸는 방법은 자유 왕래야. 그러려면 길을 뚫어야 해. 길을 뚫고 그 길로 처음 얼마간은 닷새에 한 번 정도씩 버스를 운행해. 물론 거리별로 따져서 요금을 받고 태우도록 하고. 그리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우리의 기본 원칙을 적용해. 그렇게 1년쯤 지나 봐, 어찌 변하는지.”
버스 이름을 따로 지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적용했다.
“거기다 그쪽은 인구도 많죠.”
“그래, 그리고 울주 지역 일부는 고려에 병합을 반대해서 지금도 여전히 조정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곳이 있어. 황제가 명을 내려도 ‘네, 알았습니다.’ 하지 않는 곳들이 여전히 있어. 그러니 힘으로 확실하게 뭉개 놔야 덤비지 못해. 덤비면 초반에 박살을 내 버리고, 말 안 들어도 박살을 내줘야 해.”
태영이 이곳에 와서 살면서 사극과 정말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명에 껌뻑 죽는시늉도 하는 사극과 달리 현실은 전혀 아니올시다, 였다.
아무래도 사극의 작가는 21세기를 사는 사람이고, 이곳은 13세기이니, 그 세월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것 같다.
“알았어요. 그리고 서유인 기억하고 있죠? 백운 스님.”
“법무부장으로 임명하려고?”
“네, 서윤이도 원정 떠나면 자리를 오래 비울 텐데, 그러면 그 자리에 그분만 한 적임자가 없어요.”
“그래, 그렇게 해. 환속했으니 혼인할 만도 한데, 아직 혼자이지?”
“네, 그건 알아서 할 테죠.”
“그래, 그런데 인구 파악에는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한 달 안에 끝내라고 명을 내리긴 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지시한 대로 해 놓지 않으면 시범 대상으로 조져 버려.”
“네, 그리하려구요.”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아?”
“우리의 소문은 익히 들었는지 대부분 호의적이었고 변화된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많은 곳에서 적대적 눈길은 있었어요. 그리고 관군 일부가 반발하기에 힘의 차이를 보여 줬죠. 계속 대들면 시범으로 죽여 버리고 시작하려 했는데, 꼬리를 내리기에 용서해 줬습니다.”
“대충 용서해 주면 안 돼. 용서는 하되 벌은 주고.”
“네, 그렇게 했어요.”
“처음에는 무조건 강하게 나가야 해.”
어이쿠, 잔소리꾼이 된 것 같다.
“네, 그리고 성씨는 박 씨, 이 씨, 전 씨, 목 씨, 오 씨, 윤 씨, 임 씨, 문 씨 정도인 것 같아요. 물론 성이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은 듯하구요.”
“호적부 만들 때, 성 없는 사람은 하연이가 하나씩 만들어 줘.”
“그렇게 막 정해도 돼요?”
“원래 우리 모두 성 없이 살았어. 그러다가 지역별로 몰아서 동네마다 성 하나씩 준 거야.”
“그래요?”
“그럼, 지금 고려 황실이 처음부터 왕 씨로 시작한 줄 알아? 고려의 시조도 성이 없었어. 개경에 세력을 이루고 있는 상인이었는데, 황제가 되니까 성이 필요해서 이름 두 글자 중에 앞글자를 성으로 뒤의 글자를 이름으로 정한 거야.”
“하, 그런 거군요.”
“제 성도 서방님이 지어 줬어요.”
한서윤이 웃으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네, 제 가슴에 맺힌 한이 많을 것 같아서 한 씨라고 지었다고 했는데, 막상 글자는 나라 한(韓)을 써 주셨지요. 그러니 성님이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가 떠오르는 글자가 있으면 지어 주시면 돼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서정인, 김예서는 어때?”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죠, 뭐. 서윤아, 고생 좀 시킬까?”
“그냥,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대해 주세요. 편히 살아서 어려움을 모르는 애들이에요. 이번 기회에 고생 좀 해 봐야 돼요.”
“그래, 알았어.”
“서윤이가 미리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 둬.”
“네, 그럴 거예요.”
휴, 챙길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지나 몰라.
토지 개혁 방법과 순서, 반상의 구분을 없앨 방법과 시기 등을 포함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올가을 추수가 끝난 뒤부터 시작해 농지 개량을 시작하면 된다.
지역이 넓으니 몇 년 걸리겠지만, 아무도 반발하지 못하도록 힘으로 누르면 된다.
나중에는 그것을 잘한 일이라 하겠지만, 처음에는 반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반발보다 반상의 구분을 없애는 것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클 것이다.
“천민이나 노비의 대부분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고, 일부는 받아들이지 못할 텐데, 양반은 목숨을 걸고 반대할 것 같아요.”
반상의 구분을 없애는 부분에서 정하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반대하면, 선택권을 줘.”
“선택권이요?”
“응, 반상의 구분이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살든지, 아니면 모든 것 다 두고 빈손으로 떠나든지.”
“빈손으로 떠나면 어디서 양반 대접을 해 주나요? 가진 것이 없는데?”
“그럼 덤비겠지.”
“덤비면요?”
“힘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면 돼. 힘으로 눌러.”
그렇게 힘으로 눌러도 장인인 정인구가 부시장 겸, 해치 사단장을 하고 있으니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그런 수밖에 없나…….”
당연히 그런 수밖에 없지.
정하연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송나라에는 노비 제도가 없다. 물론, 몽골이나 여진의 금나라에도 노비 제도는 없다.
중국에서도 과거에는 노비 제도가 있었고, 가축과 동격의 천민이며 재산으로 분류했었지만, 송나라 초기에 이 제도를 없애 버렸고 21세기까지 그대로 지속된다.
다만, 없애 버렸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은 항상 소리소문없이 음지로 숨어들게 되어 있다.
태영의 생각으로는 노비 제도를 없애 버렸기에 오히려 중국의 범죄율이 높고, 인명 경시 풍조가 유독 심해졌다고 생각한다.
구황 작물도 없는 이 시대에 먹고살 수단이 없으면, 범죄자가 되는 길 외에 방법이 없다.
고려의 노비는 거의 대부분 전쟁 포로, 역모 등으로 관노비가 된 부류가 있고,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사노비와 자신이 스스로 양반집으로 들어가서 노비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고려나 조선에서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스스로 노비가 된 기록이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노비 제도가 문제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생활이 너무나 곤궁해져서 이대로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면, 그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방님은 그럼 어떻게 돼요?”
태영이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는데, 정하연이 뜬금없이 앞뒤 다 자르고 질문을 했다.
“뭐가? 여태 이름 부르다가 왜 서방님으로 바뀐 거야? 거기다 어떻게 되다니?”
“서윤이가 그렇게 부르니까, 그게 더 좋아 보이잖아요. 마치 서윤이 혼자 독차지?”
그리 말하면서 서윤을 쳐다보고 눈을 찡긋한다.
뜻은 그거 아닌 거 알지? 뭐 그런 모양이다.
둘이 저렇게 자매처럼 지내니 참 좋긴 하다.
“그래 알았어. 근데 뭐가 어찌 되는 거야?”
“임명식에서 군단장이 대장군 급, 소장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 위에 중장, 대장이 있다는 말이고, 서방님이 대장님인데 군단, 사단 이렇게 부르는 이름 없어요?”
“아, 그거, 총사령부, 그리고 총사령관.”
총사령관이란다.
최태영, 고려 시대로 날아와서 출세했다는 것을 오늘 여러 번 느낀다.
일개 병장이 고려 시대로 날아와 5년 만에 총사령관이라니.
이건 완전히 헛소리이지만, 태영이 무슨 짓을 하건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다.
“아, 그렇구나. 총사령관.”
“그게 궁금했어?”
“네, 그런데 서윤아.”
“네, 성님.”
“서방님하고 나하고 만난 지 5년이 되었거든.”
“네, 그런데요?”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서방님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알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니깐, 서윤이는 이제 2년 되었으니 못 느낄 수도 있는데, 서방님은 나이가 하나도 안 들었어. 5년 전 그때의 얼굴 그대로야.”
뭐?
본인의 나이는 본인이 거울을 본다고 쉽게 자각이 안 되기는 한다.
그렇다고? 그래?
“진짜요?”
“그럼, 내가 그것도 몰라? 정말 이상해. 이해가 안 돼.”
정하연의 말에 서윤이 태영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설마, 아니 혹시, 텔로미어 이펙트?
텔로미어 이펙트는 세월이 흘러가기 전에 스스로는 알 수가 없다.
태영의 몸이 나이 들어서 피로감을 느끼거나 할 나이도 아니다.
초인력이라고 이름 붙인, 엄청나게 강해진 신체 능력이 있기에 더욱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임에서처럼 ‘보유 스킬: 텔로미어 이펙트, 레벨1’ 이렇게 표시된다면 금방 알겠지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니까 그런 것이 표시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세월이 흘러가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태영의 나이가 올해 스물여덟.
여자는 20세 전에 대부분 성장이 끝나지만, 남자는 20대 중후반까지 계속 성장한다.
이곳으로 날아왔을 때인 스물셋과 비교해서 아직은 성장 중인 때가 아닐까?
그래서 못 느끼겠지만, 5년간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온 정하연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경에서 오는 동안 나만 빼놓고 맨날 그렇게 붙어 있었으면서 뭘 또 그리 뜯어봐?”
태영의 얼굴을 요모조모 유심히 뜯어보는 서윤의 모습을 본 정하연이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아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니, 다시 보는 거죠.”
“에이, 아무튼 그래. 그것보다 정작 궁금한 게 서윤이는 왜 임신이 안 될까? 왜 나만 애가 이리 빨리 들어서는 거야?”
올해 연초, 태영이 왜국 정벌을 간 뒤의 어느 날, 몸이 조금 이상하여 강성호에게 진맥을 해 보았단다.
정하연도 월간 행사가 그냥 지나가기에 짐작은 했단다.
그러나 몸에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그냥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기를 대중하니, 왜국 정벌을 떠나기 전이었다.
왜국 정벌을 가면 얼마간 또 독수공방해야 하고, 탐사 원정을 가면 서윤과 항상 함께 있을 테니 떠나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양보하라고 하고 정하연과 함께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 모양이다.
해룡호 한 척으로 움직이던 시기, 그로 인해 아주 오랜 기간 헤어져 있었다가 정하연이 대산도에 찾아왔을 때,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열정적이었고, 그때 영환이가 정하연의 몸에 깃들었다.
그리고 둘째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것이니, 떠나기 전 얼마 동안 태영을 독차지한 후에 정하연의 몸에 깃들었다는 것이다.
“성님, 애기가 들어요. 영환이도.”
“틀린 말도 아닌데 뭐. 서윤이는 진짜 왜 애기가 안 들어서는 거야? 피임 안 하는 거 맞지?”
저 질문은 전에도 했었다.
태영이 없는 곳에서는 또 몇 번이나 들었을까?
“아무튼, 성님 몸이 아이를 반기는가 봐요.”
“에이, 그럴 리가. 여하튼 이번 광물 탐사 원정에 다녀오면서 꼭 하나 만들어 와야 해. 알지?”
그게 그래야 한다고 하면 되나?
그나저나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왜 서윤은 지금까지 임신이 안 될까?
피임하지 않은 지 제법 오래되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건 왜 이러는 것인지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다.
그리고 탐사 원정은 정하연이 둘째를 출산한 뒤에 떠날 것이다.
탐사 원정을 떠나면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짧게 잡아도 반년, 길면 1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둘째라고 아비가 없을 때 세상에 태어나게 할 수는 없다.
“근데, 참 이상하지.”
“뭐가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광물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방님 만나기 전에는 생각조차 안 했거든. 서윤이는 안 그래?”
“저도 그랬어요, 성님. 그게 세상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랍기도 하지만, 서방님 만나서 알게 된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광물 자원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이 시대에 있기나 했을까?
저 둘만 그런 것이 아닐 거다.
철소에서 일했던 일부와 그것을 관리하는 관리들 일부 정도만이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주양세는 요즘 어찌 지내?”
“그 사람은 주기적으로 한 번씩 각 부처로 이동 발령을 내 달라고 해서 그래 주고 있어요.”
“제대로 배워 보겠다는 태세인 것 같은데.”
“네, 그런 것 같아요.”
“별로 써먹을 곳이 없는데, 지금은 어디 있어?”
“지금은 농장에서 일해요. 지난번에 공업부로 발령 요청을 했는데, 공업부, 산업부, 그리고 과학부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건 잘했네. 그놈을 대산도로 보내고 대산 시장을 시키면 괜찮을까?”
“그거 아주 좋은 방법인데요. 대신 고려에 충성 서약을 받고 난 뒤에 해야죠.”
혹시나 고려의 녹을 받아먹고 몽골에 충성한 역신 홍복원 꼴이 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어서 선뜻 무언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묶어둘 수도 없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