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43
243. 에도의 고려인(6)
후다다다닥~
주위에 앉은 새들이 놀라서 모두 날아올랐고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한 마리는 날아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까마귀 같았다.
태영은 탄피가 튀어나오자마자 손으로 낚아채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가져와 볼래?”
“네, 실장님.”
정신을 차린 묘운이 달려가더니 까마귀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며 날개 한쪽을 들고 오는데, 새는 이미 죽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묘운이 이동함에 따라 길에 붉은색으로 줄이 그어졌다.
“죽었습니다.”
조금은 끔찍한 듯 말했다.
“그래, 죽었을 것이다. 고려의 바닷가 마을에 쳐들어온 왜구들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만은 어린 여인들을 잡아서 왜국으로 붙잡아 왔다. 바로 너희들처럼.”
“네, 실장님.”
“네 아버지와 오빠가 너를 잡아가려는 왜구를 막다가 왜구의 칼에 죽었다고 했지?”
“네.”
“그때, 네 손에 이것이 있었다면, 그랬으면 어땠을 것 같아?”
“그놈들을 죽여, 아버지와 오빠가 죽지 않도록 했을 것 같습니다. 또 소인이 이곳으로 잡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답하는 묘운이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많은 여인들이 왜구들에게 잡혀가고, 그것을 막으려 하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간다. 우리는 그것을 대부분 막고 있다. 우리는 고려 국 사포에 살고 있다. 왜구들이 그 짓을 하다가 우리에게 걸리면 아무도 살려 두지 않는다.”
“…….”
“바로 이것, 총이라는 것이 있기에 가능하다.”
“…….”
“…….”
모두들 총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눈빛이 변했다.
“소인은 꼭 사포에 가서 군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마을을 지키겠습니다.”
“그래, 사포에 가면 왜국에서 구해 온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다. 생각은 천천히 하도록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서윤은 태영에게 총을 건네주었다.
어이쿠, 또 여군 하겠다고들 하게 생겼군.
“자, 이동하자. 힘들거나 추우면 말하도록 해.”
“네, 실장님.”
대답은 거의 합창을 한다.
신녀들은 오전까지만 해도 곧잘 걸었지만, 오후가 되자 체력이 거의 방전되었는지 걸음걸이가 차츰차츰 느려지는 것이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이렇게 장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은 사람들인 데다가 체력 훈련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을 테니 쉽게 지쳐 갔다.
***
오후 세 시가 되기 전에 유시완과 잔디를 만났다.
“충성,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천천히 오지 이렇게 부지런히 왔을까?”
“일행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아이들만 골라서 데리고 오셨습니까?”
잔디가 씩 웃고는 신녀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긴 잔디의 눈에는 당연히 어린애로 보일 것이다.
“어느 곳에 갔더니 이렇게 예쁜 아이들만 골라서 모아 놓았더라. 자, 다들 인사해라. 이쪽은 사포군 총사령부 작전 지휘 본부장 유시완 소령, 그리고 이쪽은 사포군 총사령부 정보 본부장 이잔디 소령이다.”
서윤이 유시완과 잔디를 먼저 소개했다.
물론 소령이라는 계급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별로 의미는 없었다.
벼락 승진은 군단이나 사단장들만 한 것이 아니다.
군단과 사단으로 편성되면서, 많은 조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초기부터 군에 복무하기 시작한 병사들이 벼락 승진을 하면서 요직에 앉았다.
“이쪽은 송한이, 조묘운, 박하령, 박가을, 이시월, 윤막녀, 김별이, 정초선, 그리고 현사야, 막녀는 성이 없어서 대장님이 윤 씨로 지어 주셨고, 사야는 왜국의 아이인데 역시 성이 없어서 성을 현 씨로 주었어. 고려말은 거의 못 하니까 그리 알고.”
막녀라는 이름.
21세기 현대에서도 나이 드신 할머니들의 이름 중에, 끝순이, 막순이, 말순이, 종말이, 막음이, 막녀 같은 이름이 있는데, 이제 딸은 너로 끝내고 아들 하나 낳자는 의미의 이름이다.
아들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들어간 이름이겠지만, 딸만 줄줄이 낳아서 이제 딸은 제발 그만이라는 의도가 들어 있다.
한 사람의 노동력이 절실한 시대이고, 남자와 여자 간 노동력의 차이는 워낙 크니까 아들이 태어나야 할 것이다.
분명 저 아이는 언니가 여럿일 가능성이 크다.
저 아이가 이곳으로 잡혀 오는 과정에서 저 아이의 언니들이 살아남았는지, 또 다른 곳으로 잡혀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네, 알겠습니다. 야, 근데 니들 하나같이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야?”
잔디도 제법 빼어난 미모인데, 제 눈에도 이 아이들이 예뻐 보이는 모양이다.
“안녕하십니까, 송한이라 하옵니다.”
송한이가 인사를 하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고, 다른 신녀들도 모두 유시완과 잔디에게 인사를 했다.
“지원 1군과 2군의 병력 이동 상황은 어때?”
그렇게 서로 인사하고 정리가 되어 갈 때, 태영이 유시완에게 물었다.
“1군은 생각보다 진군이 느립니다. 강을 끼고 있는 산을 통과 중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어제 확인 이후 이동하여 임시 숙영지까지 이동 거리는 약 12킬로 정도입니다. 그리고 미에바시 쪽은 여전히 출발 전입니다.”
하루에 12킬로의 이동이라면 정말 느리긴 느리다.
내일은 합류할 줄 알았더니, 그런 식으로 이동하면 반대 세력에 합류하기까지는 거의 5일이나 6일은 걸린다는 소리다.
“나름 체력 안배를 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도착하면 바로 전투가 시작될지도 모르니 천천히 체력 조절을 해가면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을 좀 끊어도 될 것 같았지만 다른 걱정이 생겼다.
흑룡호는 지금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항해를 하고 있는 중이니, 저들이 왜왕의 부대와 충돌을 기다리며 몇 날 며칠을 이곳에서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작전을 변경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한가롭게 있을 시간이 없는데. 오늘이나 내일 정도에 여기 일을 마무리하고 떠나야 하는데.”
군식구들이 많이 딸려 있어서 행동에 제약이 생기니 작전 변경도 쉽지 않았다.
“대장님, 그럼 이렇게 해요.”
태영의 중얼거림에 서윤이 말했다.
“어떻게?”
“제가 가서 철갑 교위와 별원을 이곳으로 오도록 할게요. 그리고 여기 이 아이들 흑룡호로 데려가서 태우고, 오늘 밤부터 내일 새벽 사이에 모조리 처리하죠.”
“그렇게 가능하겠어?”
“철위와 별원을 배에서 내리려면 어차피 제가 가야 하고, 공중 부양으로 얼마나 갈 수 있는지, 속도는 얼마나 나오는지 시험을 좀 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여기 장소가 아주 좋아요.”
그건, 말이 된다.
철갑 교위를 하선시키는 것은 태영도 가능하지만, 서윤만큼 자연스럽게 처리하지 못한다.
특히 배에 싣는 것은 배를 파손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태영이 가서 철갑 교위를 하선시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 그렇게 하자.”
“네, 두 사람은 대장님하고 함께, 저 아이들 잘 데리고 오도록 해.”
“네, 실장님, 걱정 마세요.”
서윤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공중 부양.
태영도 서윤의 저 능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다녀올게요.”
쉬이이이잉~
파아아아아앙~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법 큰 소음을 내며 멀어지더니, 곧바로 대기를 찢어발기는 엄청난 굉음을 뒤로 남기고 순식간에 서윤의 모습은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태영은 땅 위를 달리는, 그리고 뛰는 수준이지만 서윤은 공중에 몸을 띄워서 날아가다 보니 그 궤를 달리한다.
비행기의 조종사들이 마하 3이나 또는 그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기체 안에서 받는 압력과 아무런 보호 장구 없이 몸으로 직접 대기를 밀어내며 받는 압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태영이 가죽옷을 잘 챙겨 입어도 마하 3으로 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저 속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화.”
“하, 엄청나군요.”
잔디의 감탄에 뒤를 이은 유시완의 탄성이다.
으아악~
시, 실장님. 하아~
뭐, 뭐, 뭐야, 실장님이 날아가셨어~
“부럽죠?”
신녀들의 놀란 목소리 사이에 잔디가 유시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부럽다.”
유시완이 태영을 한번 쳐다보고 말했다.
부러운 일이지.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태영도 서윤이 가진 염력이 부러운데, 오죽하겠어?
그런데 저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공중 부양이나 공중 부양 상태에서 상당한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맨날 안겨 다니거나, 업혀 다녔다고?
하긴 태영도 여전히 청춘이니 그게 좋긴 했다.
“저, 저기 아까 소령님이라고…….”
여럿이니 이름이 서로 헷갈려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잔디에게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응, 왜?”
“저, 호, 혹시 실장님은 선녀님인가요?”
그 아이의 말에 모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시선을 집중했다.
“선녀님?”
“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것인지요?”
“아니,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실 뿐이지 선녀님은 아니야.”
“그럼요?”
“대장님의 두 번째 부인.”
잔디의 말에 모두 태영을 쳐다본다.
“정말 대단하시지?”
“네.”
“앞으로 더 대단한 일을 종종 보게 될 거야.”
“더 대단한 일이요?”
“그래, 오늘내일 중에 볼 수 있을 거야.”
“자, 우리도 슬슬 가지.”
태영이 대화를 끊고 가자고 했다.
“네.”
***
서윤이 일행을 떠난 지 2시간이 지나서 3월의 늦은 오후 햇살이 슬슬 꼬리를 감출 때, 철갑 교위와 철갑 별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길이 11m, 폭 4.5m에 높이가 2.5m. 체중 27t의 철갑 괴물이다.
서윤은 철갑 교위의 포탑 위치에 앉아서 여유 있는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있었다.
“실장님이 저기 계신데 저게 뭐야. 소도 아니고 말도 아닌데, 실장님이 몰고 오시는 거 맞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녀 일행 중의 한 명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어마어마하게 큰데요, 돼지처럼 꺼먼 것이 돼지 아닐까요?”
“돼지는 아니야. 발이 없잖아?”
“그럼 뭘까요? 저게?”
신녀 아이들은 제각각 이야기를 했지만, 상상력의 한계는 별로 넓지 않았다.
뭐, 그게 정상인 거니까.
“다녀왔습니다.”
서윤이 철갑 교위에서 뛰어내리며 싱긋 웃었다.
“안 졸려?”
과하게 염력을 사용하고 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기에 물었다.
“그 정도는 이제 끄떡없나 봐요.”
“오, 그 능력도 자꾸 늘어나는 모양이네?”
“네.”
“충성.”
철갑 교위 중기관총 사수가 인사를 하고는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그래, 고생 많아. 이 사람들 교위에 모두 태우고 가자.”
“넵, 알겠습니다. 저녁은 흑룡호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답답하고, 운영 인원을 제외하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네 개여서 대부분 서 있거나 바닥에 앉아야 하지만, 그래도 운영 요원을 제외하고도 열한 명을 태울 수 있으니, 이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데는 안전과 속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두 대가 다 왔으니 자리는 꽤 여유가 있다.
“자, 우리, 여기에 타고 갈 거니까 반으로 나누어서 각각 타도록 해. 참고로 안에는 의자가 네 개밖에 없어서 한 명은 앉지 못해.”
“실장님, 여기에 타고 가는 거라구요?”
“응, 타 보면 알게 돼, 겁먹지 말고 타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 새로운, 전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그런 것이 더 한 듯했다.
그렇게 출발한 철갑 교위는 불을 켜지 않으면 길을 다니기 곤란할 정도로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흑룡호 앞에 도착했다.
태영은 서윤과 함께 철갑 교위의 중기관총 옆에 앉았기에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출발할 때 잠시 비명을 질렀다는 것만 안다.
“저놈들 봐.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신녀들의 미모는 병사들이 곳곳에 피워 둔 큰 모닥불의 불빛으로 더욱더 눈길을 끄는지 눈빛마저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예쁘긴 하죠. 그러니 저러는 거죠. 몇몇은 혼인 적령기여서 물이 오를 대로 올랐는데요.”
서윤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열여섯이 혼인 적령기라니.
21세기의 중학생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또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21세기 현대에서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인데, 결혼 적령기라 했다가는 몰매 맞을 일이다.
“유시완, 눈 돌리지 말라고 했지?”
잔디의 목소리가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를 지나서 태영의 귀에 들려왔다.
태영은 교위의 외부에 서윤과 앉아 있어서 몰랐는데, 별원에 탄 잔디와 유시완이 티격태격했던 모양이다.
애들이 예쁘니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아, 알았어, 알았어. 안 본다니까. 그래도 데려가서 인수인계는 해 줘야지.”
“그래, 명심해.”
“충성, 잘 다녀오셨습니까?”
흑룡호에 오르자 함장 박숙전이 병사들과 함께 태영을 맞았다.
“연대장은 어디쯤 오고 있나?”
“10분 안에 도착할 것입니다.”
“좋아, 오는 대로 작전 변경하여 진행할 테니 준비해 둬.”
“네, 대장님.”
“자꾸 눈 돌릴 거예요?”
김비주의 목소리에 돌아보니, 정규하가 턱이 빠질 듯 신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쁘지. 거기서도 정말 예쁜 아이들만 골라서 신녀 삼은 듯하니 모두 다 아닌 척하면서 시선은 그 아이들에게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헙, 아 아니야.”
***
“신호 보낼까요?”
“그래 신호해 줘.”
태영의 대답에 동행한 3중대장 서여울이 병사에게 지시를 내리자, 하늘에 떠 있는 드론을 향해 깃발을 흔들었다.
서여울 중대장은 철갑 별원에 탑승 가능한 1개 소대만 데리고, 태영과 함께 월광이 비추는 길을 따라 세 시간을 이동해, 이곳 지원 2군의 집결지로부터 6킬로쯤 떨어진 곳에서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리 들리면, 2중대가 먼저 공격하고, 그때로부터 1분 후에 공격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2중대가 간 지원 1군 쪽은 유시완과 잔디가 동행했고, 1군의 숙영지 인근에 철갑 교위에 탑승 가능한 1개 소대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철갑 교위로 이동하니, 거리가 그렇게 멀어도 두세 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했다.
“지금 몇 시지?”
“새벽 세 시입니다.”
“저들은 곤하게 자고 있겠군.”
“네, 그럴 것입니다.”
꽝~
그때, 멀리서 자주포의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다마강을 마주하고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연대장 김처인이 1중대 외에 나머지 병사들을 데리고 작전에 참가 중이다.
“공격 준비.”
포격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서여울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조준 완료되어 있습니다.”
“심지.”
병사의 대답에 서여울의 심지 삽입 명령이 내려졌다.
“심지 완료.”
“점화.”
치이익~
“점화 완료.”
“발사.”
“발사.”
팡~
명령과 복창 소리가 들리고 대철궁이 쏘아지는 소리에 뒤이어 백색 탄이 희미한 불꽃을 보이며 깜깜한 밤하늘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철궁 장전.”
까르르르륵~
누군가가 손잡이를 돌려서 철궁의 현을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색 탄 장착.”
그리고 연속으로 백색 탄 2발이 더 발사되었다.
펑, 퍼버벙~
6km를 날아갔으니,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백색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보다 먼저 불빛이 보였지만, 이제야 소리가 들려왔고, 훤하게 뚫린 개활지여서 백색 탄이 터지는 소리와 불꽃이 확실하게 보였다.
“저곳에 불빛이 보입니다.”
서여울의 목소리에 서남쪽 하늘을 바라보자 그곳에 백색 탄이 터지며 일어나는 불꽃이 시야에 잡혔다.
저곳이 지원 1군이 있는 방향일 것이다.
밤이어서 거리가 상당한 데도 백색 탄의 불꽃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바람 방향.”
“30방향입니다.”
해안에서 육지로 불어가는 바람이지만, 30이면 북에서 동으로 살짝 기울어진 방향으로 올라가는 바람이다.
“패잔병 상관하지 말고, 적진 확인 없이 돌아간다.”
“넵, 귀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색 탄을 쏘아 올리는 철궁의 위력이 더 좋았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사정거리가 짧으니 이렇게 적진 가까이 올 수밖에 없다.
“드론에 철군 신호 보냈습니다.”
“그래, 돌아가자. 왜왕 진영에 합류해서 오늘 날 새기 전에 작전 끝내도록 한다.”
지원 2군의 위치에서 왜왕이 있는 곳까지 무려 90킬로가 넘는 길인 탓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총성도 들리지 않았다.
김처인이 함포 사격이 끝난 후에, 다마강 건너에 진을 친 왜왕의 적대 진영을 모조리 쓸어버린 후였다.
월광 1호와 월광 2호가 동시에 비추고 있는 적진의 상황은 처참했다.
자주포의 포격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물웅덩이가 곳곳에 보였고, 물웅덩이 옆으로는 시신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는 왜왕 진영의 왜병들이 계속 수색하면서 일부 생존자들의 목을 자르고 다니며 시신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는 모습만 보였다.
“적진 안에 살아남은 적들은 없습니다.”
김처인이 전황을 개략적으로 보고했다.
“도망자 추적하지 않았지?”
“네, 추적하지 않았습니다.”
“왜왕은?”
“저쪽 막사에 있습니다.”
“누구 보내서 이리 오라고 해. 2중대도 곧 올 것 같으니까.”
2중대의 철갑 교위가 굴러오는 소리는 얼마 전부터 태영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으니 곧 올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