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51
251. 믈라유 왕국의 피디지(3)
비를 맞고, 햇빛에 노출되고, 또 비를 맞고, 바람에 노출되어 세월이 얼마나 지나간 것인지 모르지만, 빨갛게 녹슨 K1A 기관단총 두 자루가 있다.
하얗게 탈색되고, 조각조각 부서진 백골 옆에 그 총이 누워 있다.
비바람에 노출되었기에 삭아서 조각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힘으로 조각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손만 대면 가루가 될 것 같아 보인다.
인식표.
목뼈 부위에 보이는, 군번줄.
뼈에 걸린 부분을 제외하고는 흙 속에 파묻혀 있어서 한 귀퉁이만 흙 위에 살짝 보이지만, 그 이질적인 물건이 인식표일 것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것을 빼자 흙이 묻은 채로 끌려 나왔다.
목뼈 사이로 군번줄이 빠져나왔다.
손에 들어온 것은 빛이 바래서 조금 검을 뿐, 녹슬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진 인식표이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상상했던 것이 아니길 바라면서 흙을 털어 냈다.
육군.
한글로 표기된 육군이라는 표시.
그리고 그 아래에 숫자로 된 군번, 그리고 그 아래에 다시 이름.
김정표.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김 일병, 정표야. 이 새끼야.”
하아~
자신도 모르게 욕지기가 터져 나왔고, 뒤이어 한숨이 내뱉어졌다.
태영은 털썩 주저앉았다.
김정표 일병.
태영의 후임.
같은 트럭에 운전병인 오석훈 상병과 셋이 함께 타고 이동했다.
“너는, 너는 왜 여기에서 죽어 있냐? 이놈아.”
인식표를 손에 꽉 쥐었다.
태영은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그 옆쪽 백골의 목 부위에 걸쳐진 군번줄을 따라 그 부근의 흙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리저리 손을 휘젓자 손끝에 만져지는 쇳조각.
그 역시, 대한민국 군인의 인식표였다. 그것을 당기자 역시 목뼈 사이로 줄이 미끄러지듯 나오며 태영의 손안에 들어왔다.
오석훈.
군번과 함께 새겨진 이름은 운전병이던 오석훈이었다.
수송부에 복무 중이었을 테니, 태영과는 접점이 없었고, 본 적도 없다.
오직, 당일에 같은 트럭에 탑승하여 이동한 것이 아는 것의 전부였던 대한민국 육군 상병 오석훈.
어느 부모의 귀한 아들이고, 그 누군가의 든든한 동생이었거나 형이었거나, 오빠였을 수 있고, 어느 누구의 남자 친구였을 것이다.
김정표 일병은 후임이어서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했으니,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집은 어디인지, 형제가 몇인지, 부모님은 어떠한지, 사귀는 여친의 이름과 어느 학교에 다니며, 전공은 무엇인지까지.
그런데 그들이 9백여 년의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와서,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숲 속에서 백골이 되어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 땅, 아니 고려 땅이 아닌 멀고 먼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
유골은 땅 속에 묻히지 못하고, 숲 속에 버려진 상태로 비바람과 햇빛에 하얗게 바래졌다.
중국 땅의 전단강 상류에서 떠내려왔다는 조창현을 포함한 일곱 명의 대한민국 육군도 있었다.
조창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이전에 만난 적도 없으며, 수송 작전에 함께 편성된 방위군이었는지 아닌지조차도 모른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오직 죽은 이후에 인식표에 새겨진 이름이 조창현인 줄을 알았을 뿐이다.
그 조창현과 함께 전단강에서 죽은, 다른 여섯 명은 이름조차도 모른다.
“아는 사람인가요?”
서윤의 손이 어깨에 닿으며 물었다.
“…….”
태영은 입을 열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고개가 끄덕여지자, 흐를 듯 말 듯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두 볼을 따라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흐읍~
울음소리를 목으로 넘기고, 한숨도 목으로 넘겼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러자 후임 김정표에 대해 격해졌던 감정이 진정되면서 이성이 제대로 돌아왔다.
서윤은 그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태영이 일어서서 둘러보니, 어떤 총이었는지 모르지만, 총을 감싼 목재 부분은 완전히 삭아서 부스러기가 되어 땅에 떨어져 있었고, 총신을 포함하여 철로 된 부분은 빨갛게 녹슨 총 두 자루가 보였다.
“M1.”
손으로 녹을 문지르다가 노리쇠와 가늠자 부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왔다.
M1 Grand 소총이었다.
8발의 총탄을 탄 클립에 끼워서 삽탑하는 방식으로 2차 대전 후반기부터 활약하던, 파괴력이 뛰어난 총이다.
태영이 근무하던 부대의 병기고에도 없는 총이었다.
그런데 그 총, M1이라니.
케네스는 1차 대전 참전 군인이고, M1 그랜드 소총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만들어진 총이니 케네스와 같은 시대에 살던 군인이 사용하던 총은 아니다.
그렇다면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전투 현장에도 피디지가 생겼고, 그들 중에 일부가 이곳으로 날아왔다는 것이다.
조창현 일행은 모르겠지만, 태영이나 라일리, 아나이스, 그리고 케네스 같은 사람은 비상식적인 변화가 있었을 뿐 피디지를 통과해서도 살아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백골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도착하자마자 죽었거나, 오는 도중에 죽어서 이곳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피디지 바로 앞에서 죽어 있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살아서 통과했다면, 주변의 장비들이나 백골이 된 사람들의 유해에 손대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결국, 이곳의 통로로 온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정리를 해 보면, 미봉산에 열린 피디지는 생존이 가능한, 특이한 힘의 변화를 주는 곳이고, 이곳의 피디지는 죽음의 통로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언젠가, 교내 세미나에서 힘의 반작용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전방으로 쏘아 보내는 힘은 뒤쪽으로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뒤로 생기는 반작용의 크기 정도는 아니지만, 상하좌우에도 반작용은 생긴다고 발표자가 말했던 것 같다.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개념은 기억에 남아 있었다.
혹시 그것일까?
피디지가 열릴 때 전방과 후방, 상하좌우가 작용, 반작용 현상으로 생긴다고 가정을 해 보자.
전방이 생의 통로라면, 후방도 생의 통로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상하와 좌우는 전방에 비해 아주 약하기에 그곳을 통과하게 된다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유해, 수습할 거죠?”
“그래야지.”
태영이 멍하니 앉아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으니 서윤이 재촉했다.
장비 상자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장비도 챙겨야지.”
“궁금한데요.”
“그래.”
“테르 같은 것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라는 말 대신 웃어 주었다.
지천을 꺼내 가까운 곳의 큰 나무를 잘라 냈다.
그리고 단심으로 나무의 속을 파냈다.
2개를 파낸 후에, 김정표와 오석훈의 유골을 섞이지 않게 조심스레 담았다.
크기가 커서 들어가지 않는 부위는 힘만 살짝 주면 부러지기에 쉽게 나무 상자에 들어갔다.
나머지 유해도 목함에 넣으면 좋겠지만, 이제 슬슬 저녁이 되려고 해서 시간이 부족하니 그냥 구덩이만 따로 파서 묻어야 할 것 같았다.
한 명 한 명 유골을 수습하면서 옆에 있는 물건들을 한곳으로 치우고 정리를 해 나가니, 인식표가 목에 걸린 사람이 여덟이나 된다.
아마도 군용으로 보이는 저 물건들을 가지고 작전에 투입된 군인으로 보였다.
군인들의 유해 옆에는 군인들이 소지할 만한 장비들 중에 철제품들은 녹이 슬어 옆이나 또는 흙 속에 반쯤 파묻혀 있고, 녹이 슬지 않는 알루미늄이나 크롬 도금한 물품의 조각들도 흙 속에 파묻혀 있다가 떨어져 나온다.
나머지 열둘의 유해의 옆에는 인식표 대신, 금목걸이나 반지, 귀걸이, 허리띠의 버클, 핸드백의 메탈 재질의 줄 같은 것들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민간인이었다.
한 사람의 유해는 꽤 부자였던 듯, 제법 큰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가 목 부위의 흙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백금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정밀하게 조각하여 가치를 높인 것 같은데, 줄까지 모두 정상으로 남아 있었다.
다이아에 묻은 흙을 손으로 닦아 내자 영롱한 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건 목걸이와 반지 같은데, 가운데 빛나는 건 뭐예요?”
서윤이 물었다.
“다이아몬드. 대단히 비싼 물건이지.”
다이아몬드의 크기를 따지는 캐럿으로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 크기가 눈대중으로 지름 15밀리는 되어 보였다.
“비싸요?”
“응, 비싸기도 하지만, 고려 땅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야. 주머니에 넣어 둬.”
서윤은 다이아 목걸이와 반지를 하늘로 들어 올려 그 영롱한 빛을 감상하고는 상의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목걸이가 나온 유해는 아마도 여인인 듯했는데, 나란히 있는 남자의 유해로 보이는 곳에도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와 팔찌가 떨어져 있었다.
민간인으로 보이는 유해의 옆에는 군인들의 옆에 놓여 있던 커다란 상자 같은 것들이 없었다.
한곳으로 모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반지나 목걸이 같은 귀중품들은 한 무더기로 모아서 태영이 메고 온 배낭에 그냥 넣었다.
민간인의 유해 옆에는 보석류, 지갑이나 벨트를 장식했던 금속류의 조각을 제외하고는 별것 없었다.
군인들의 유해 옆에 있던 물건들은 제법 큰 박스들이 많았다.
우선, 녹슨 총들과 탄창에서는 총탄을 빼내서 상의 주머니에 적당히 넣고, 총은 혹시나 비바람에 흙이 파여서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땅속에 깊이 묻었다.
메탈 재질의 군청색 박스 두 개는 폭이 50센티, 높이 80센티에 길이가 1.5미터로 예상되는 것으로, 지름이 30센티는 되는 듯한 바퀴가 붙어 있었다.
물론 바퀴의 고무는 모두 삭아서 없어졌고, 철제의 프레임만 남아 있었다.
들어 보니 50킬로는 충분히 나갈 만큼 무거웠다.
그 옆에 나란히 있는 것 역시, 광택이 나지 않는 검정색 메탈 재질 박스 1개.
이것도 지름 30센티는 될 만한 바퀴가 달려 있는데, 고무는 모두 삭았고, 폭 70, 놀이 1미터, 그리고 길이도 1미터는 되어 보였다.
몸체는 모두 메탈 재질이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었을 것 같은 부위는 모두 삭아서 없어졌거나 손을 대면 먼지처럼 부서지는 것으로 보아 이곳으로 온지 오래된 물건이다.
“삭았네요.”
태영의 손에 부서져 날아가는 모습을 본 서윤이 말했다.
“응.”
“그 안에 든 것은 괜찮을까요?”
“노천에서는 비바람과 햇볕 때문에 빨리 삭지만, 안쪽은 밀폐가 잘 되어 있으면 괜찮을 수도 있어.”
“뭔지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기를 기대 해야지.
이것은 무게가 족히 80킬로는 될 듯했다.
검정색 플라스틱 재질로 보이는 캐리어 백 6개.
손을 대도 부서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이놈의 모양은 마치 나 군용이오, 하는 것처럼 생겼는데, 같은 크기의 작은 것 2개는 폭이 70, 높이 80, 길이는 120은 되어 보이는데, 양쪽에 손을 넣어서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부위가 있는 것으로 봐서 둘이 드는 물건이다.
큰 것 3개 또한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인데, 길이가 50센티는 더 길어 보였다.
남은 1개는 가장 작은데 큰 것의 절반 정도였다.
또, 한쪽에는 알루미늄 재질로 짐작되는 회색의 박스 6개가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데, 노트북 크기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가죽 재질로 보이는 크로스백 2개와 처음 보는 형상의 어떤 물건이 넷, 그리고 기타 잡다한 것들이 짐으로 남았다.
크로스백을 들어 보니 고리가 제법 삭았지만, 백과 어깨끈은 가죽이 아닌 화학 섬유 재질이다.
아무튼 이렇게 비바람에 노출되어도 삭아서 사라지지 않은 것은 아주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만 안에 있는 물건들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M1 소총을 비롯해서 제법 많은 여러 가지는 태영이 살아왔던 시기보다 더 과거의 물건들이고, 특이한 박스들과 크로스백은 태영의 시대보다 더 미래에서 온 물건으로 보였다.
나머지는 모두 박스나 상자에 든 것이 아니어서 비바람에 바래거나, 삭았거나 해서 효용 가치가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부서진 농기구나, 삭아서 제 모양이 처음에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기 힘든 나무 상자, 그리고 항아리들 등 잡다한 것들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고, 그 이외에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물건들은 산업 혁명이나 근대 이전 시대의 물건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미래형 골동품들이기에 효용 가치가 전혀 없으니 그냥 그대로 버려두면 된다.
“무게가 제법 되네.”
“병사들이 들 수는 있는 물건은 별로 없네요. 들 수 있다고 해도 숲이라 이동이 불가능할 것 같구요.”
서윤이 자신의 힘으로는 들어지지 않는 물건들의 무게를 가늠하며 말했다.
“응, 이건 더 무거워.”
“그래요?”
서윤이 그 박스를 부양 능력으로 잠시 들어 올렸다.
“응, 무겁지?”
“네, 제법 무거운데요.”
“길이 없으니 한 번에 다 가져가지는 못할 듯하고, 두 번에 나누어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네, 그렇긴 한데, 해도 넘어가고 있으니 조금 무리해서라도 한 번에 가져가죠.”
“그럼 내가 같은 모양의 저 다섯 개하고, 회색의 작은 상자 6개, 저 가죽 가방하고 뭔지 모르겠는 저런 것들은 내 배낭에 넣어서 들고 갈 테니, 금속 재질로 보이는 저 가방 3개를 들 수 있겠어?”
“저야 뭐 힘으로 드는 것이 아니니까 모두 다 들 수도 있어요. 가서 좀 자면 되니까.”
“그래도 서방님 체면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럼 저 검정 금속 상자 위에 유해 상자를 얹어서 가져갈 수 있지?”
“네, 가능해요.”
“자, 묶어 줄게.”
배낭 안에 언제나 넣고 다니던 줄을 이런 때에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태영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짐들을 묶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일은 어찌 되었어?”
태영과 서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지고 있어서 주변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과일들과 식량은 이미 배에 실어 두었습니다.”
“그래? 일은 다 끝난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배에 올라서 듣기로 하고, 이 짐들 나누어 들고 가자.”
“네.”
정규하와 신도익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짐을 나누어 들었고, 믈라유 수군의 환송을 뒤로하고 이동하는데, 마을 주민들이 연신 엎드려 절을 하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그냥 웅성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그 중에 몇은 몸을 일으켜 서윤의 앞으로 와서 두 손을 비비며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다.
“거의 신으로 숭배하는 것처럼 보여. 손이라도 한번 잡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네, 그런 뜻인 것 같아요.”
서윤이 말하며, 옆에 가까이 선 아이와 노인의 손을 한 번씩 잡아 주었다.
x$%$%^&&&%$$~
아이와 노인이 큰 소리로 뭐라고 외치며 한곳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것이 신호였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서윤의 앞으로 다가왔다.
서윤은 일일이 손을 잡아 주거나, 먼 곳은 손을 부딪치며 해안으로 갔다.
해안에는 따라온 마을 사람들 외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곳 수군으로 보이는 병사들도 무기를 내려놓고 엎드린 자세로 절을 하며 이따금 고개를 들었다.
서윤은 그들에게도 손을 한 번씩 잡아 주었다.
전마선에 오른 병사들은 몇 개 조로 나누었고, 서윤은 전마선에 오르는 대신, 염력으로 짐을 모두 흑룡호에 실어 올린 후, 공중 부양력으로 몸을 천천히 띄워 올려서 그들을 한번 둘러본 뒤, 시선은 마을에 둔 채 손을 흔들며 흑룡호로 날아갔다.
x$%^&^%%$xx$%~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탄성과 합창하는 듯한 이곳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은 실장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으로 압니다.”
전마선이 흑룡호로 가는 중에 정규하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았어.”
이곳이 불교 왕국으로 보이지만, 시대적으로 보면 샤머니즘의 시대다.
그래서 불교가 전파되었다고 해도, 흔히 아는 불교와 샤머니즘이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샤머니즘의 시대에 눈앞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금도 흑룡호 앞쪽의 창공에 몸을 띄워 놓고, 이곳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으니, 여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네, 그래서 교역 협상이나 통역관을 빌리는 것도 아주 쉽게 되었고, 뭐든지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다 되었습니다.”
염력을 이용한 공중 부양이 뜻하지 않게 대단한 효과를 본 셈이다.
아랍 쪽에서도 아주 잘 통하지 않을까?
뭔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태영은 그 생각을 하면서 서윤을 쳐다보았다.
***
“왜 안 열어 봐요?”
서윤이 수마트라에서 가져온 짐들에 대해 물었다.
창고에 넣어 둔 채 신경도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심지어 가죽처럼 생긴 크로스백도 외피에 소독약을 뿌리고 그대로 두었다.
스리랑카를 거쳐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연료와 물을 조달한 후, 페르시아 만으로 접어들었을 때, 기다리다 지쳤는지 비로소 질문을 했다.
“그게, 혹시 폭발물이 들어 있을 수도 있으니 육지에 내려서 시도해 보려고.”
“폭발물이요?”
“응.”
태영은 저렇게 검정색의 투박한 군용 박스 같은 것에 폭발물을 넣고 이동하는 장면을 영화나 미드를 통해 본 적이 많았기에 배 안에서 열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실수라도 해서 펑, 하는 사태가 생기면 병사들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고, 흑룡호에도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흑룡호가 침몰이라고 하게 되면, 고려 땅으로 돌아가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많은 병사들이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 대산도나 상산에 내려 두고, 다음에 천천히 조사를 해 볼 생각이다.
태영도 궁금하긴 하다.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그런 거 없이도 여태껏 살아왔다.
“혹시라도 폭발물이어서 폭발하면 병사들과 흑룡호가 위험하겠군요.”
“그래. 그래서 그냥 두는 거야.”
“그렇다면, 잘한 결정 같아요.”
***
“으, 지친다.”
그렇게 말한 정규하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들 지쳐서 힘들어했고 서윤도 마찬가지다.
“나도 지친다. 출발 전부터 힘들 거라고 했잖아?”
새벽의 어둠을 열고 바닷속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은 정말 장관이지만, 매일 보는 일출이다.
황금색에서 붉은 노을로 변하며 저물어 가는 일몰의 환상적인 모습이 처음에는 정말 좋았지만, 매일 저녁에 보는 일몰이다.
더위에 지치고, 삭막한 모래 언덕을 바라보며 지치고, 비바람에 지쳤다.
그렇게 지쳤지만, 페르시아 만에서 쿠웨이트를 돌아 오만의 앞에 펼쳐진 아라비아 해를 지나, 아덴만으로 들어서서 지부티를 지나, 홍해의 북쪽 끝인 수에즈에서 하루를 쉬고서 홍해를 돌아 나왔다.
정말 정처 없는 여행이다.
자원 탐사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런 식의 여행은 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현대에서 그 악명 높은 오만의 해적들을 만나지 못했고, 소말리아의 연안을 따라 움직일 때도 바다에서 바라보는 소말리아의 모습은 기아와 질병의 흔적은 없고, 오히려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은 그런 기아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의 차이이리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식량과 물을 조달하고, 이제는 날씨가 추워져서 제법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배는 모잠비크 연안을 따라 남아공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적도 북쪽은 여름으로 가고 있지만, 이곳은 오히려 겨울로 가고 있어서, 약간은 쌀쌀해진 날씨에 함교의 지붕 위에 앉아 서윤은 태영의 품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렇게 편안한 자세로 앉아 아프리카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황혼을 바라보는 중이다.
서윤이 태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나, 말할 것 있어요.”
“말할 것?”
왜 갑자기 새삼스럽게 분위기 잡는 거야?
“네.”
“뭔데 그리 뜸을 들여? 항상 이야기 잘 하면서.”
“나, 갑자기 염력이 안 돼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