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56
256. 충의지인(2)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같이 안 갈 거야?”
태영이 화제를 바꿨다.
외조부인 김정래가 다시는 오지 말라 하였지만, 탐사 여행에서 돌아와 서정인과 김예서를 데리고 개경을 한번 다녀왔다.
비록 외손이긴 하지만, 조만간에 증손을 보실 수 있으니 건강하게 살아 계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였다.
그리고 제법 군인 티가 나는 두 손녀도 보여 주었더니 그리 좋아했다고 전해 들었다.
“배가 이렇게 불러서 어찌 가요? 그리고 도움이 되지도 않고.”
“힘으로 주는 도움은 상관없어. 힘을 쓰는 것보다 머리를 쓰는 것이 중요할 때가 더 많아. 그러니까 불편하지 않으면 가도 돼.”
“한이와 설하가 잘하니 괜찮을 거예요.”
“둘 다 데려가면 서윤이 불편한 것도 있을 텐데?”
“그럼 설하만 데려가시든지요.”
설하는 서윤보다 나이가 많은데,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꼭 이름을 부른다.
물론 정하연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한다.
“송한이가 따라나서지 않을 거 같아?”
송한이에게는 네 목숨, 소리 때문에 완전히 코가 꿰었다.
“무조건 따라나서겠지요. 안 봐도 알아요. 서방님은 여인들에게 단호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니까요.”
“나도 알아. 그런데 그게 잘 안 돼.”
“남자들에게는 단호하신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그래서 그 단호하지 못함으로 해서 서윤이 살아 있는 것이다.
불현듯 들었던 그 불안한 느낌에 되돌아가지 않았으면, 서윤과 이어지지 않았고 서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똑똑~
노크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정하연인 듯했다.
과연 문 앞에 정하연의 모습이 보였다.
태영이 밖으로 나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장이 되어 울주까지 합쳐져 참으로 고생이 많은 사람이다.
***
“대장님, 지금 선착장으로 가 봐야겠습니다.”
최세헌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김규천의 눈이 벌개져서 달려오며 소리쳤다.
김규천은 조금 전에 용호군에서 지원 나온 병사에게서 무언가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불같이 일어서서 달려온 상태다.
태영은 황제의 포고령을 받아서 각처로 보내고, 추이를 지켜보느라 개경에서 제법 오래 머물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부터는 벽란도에 와서 인근에서 몸을 숨기고 살던 도망자들을 제법 많이 찾아내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틈을 보아 송나라로 도망치려 한 사람들이, 송나라로 배들의 이동이 많은 벽란도에 생각 외로 많이 숨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송나라로 도망을 가기 위해 이곳에 숨어들었다가, 그냥 그 생활에 익숙해졌거나, 망명의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최세헌은 그 일이 있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서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했다.
그래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며칠째 태영과 함께하고 있었다.
“왜? 누굴 찾았다는가?”
태영보다 최세헌이 먼저 물었다.
“박진하 중낭장을 찾은 것 같다고 합니다. 선착장 잡부로 위장하고 있는 사람이 박진하 중낭장인 듯하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박진하라고? 같이 가 보자.”
최세헌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역시, 당시에 중낭장이었다면, 최세헌도 익히 아는 사람일 것이고, 최세헌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었다.
“최 대장님, 같이 가시지요.”
“네, 그러시죠.”
김규천은 바람처럼 선착장으로 달려갔고, 응양군과 용호군에서 지원 나온 병사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달려갔다.
응양군과 용호군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기에 당시에도 재직 중이었던 병력들이 지원을 많이 나왔다.
태영의 주변에 서 있던 비서진들도 우르르 태영을 따라 움직였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병사들이 선착장의 잔교에 서 있었다.
그 중 일부는 벌써 울음을 토해 내며 박진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잔교의 중간 부분에 허름한 복장으로 머리는 산발을 한 남자 한 명.
화재 현장에서 화상을 입고 도망쳐 살아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도망을 치던 중에 불 속에 뛰어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불길에 휩싸일 그 어떤 일이 있었을까?
무반 계급의 고위직인 중낭장에서, 최하급 계층인 선착장 잡부라는 위치로 떨어진 의인.
북방의 백성들을 유린하고 다니는 거란의 패잔병을 물리칠 수 있도록 보내 달라는 원을 담아 상소를 올렸다는 이유로, 최충헌에게 찍혀서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도망자가 된, 고려를 지키고자 한 의인이다.
위대하고 숭고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지만,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저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비록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만, 저 모습으로 목숨을 연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리라.
지켜야 할 사람, 가족이 아닐까?
응양군 복장의 무관 한 명이 잔교의 중간에 선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박진하는 자신을 잡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저 많은 병력을 뚫고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은 본인도 알 것이다.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조금은 자조적인 웃음을 띠고 두 팔을 힘없이 내려뜨리는 모습이 이젠 포기하자고 마음을 정한 모습이었다.
무관은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아무 말 없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그 모습이 숙연해 보일 정도다.
황명이 자신을 죽이라 하는 것이든 잡아 오라 하는 것이든, 자신의 앞에 나타난 저 응양군 무관은 과거에 자신의 부하였던 사람으로, 자신에게 마지막 예를 표하는 것이리라.
무관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박진하의 얼굴에 화상 자국이 심해 표정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지만, 체념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무관이 인사를 하는 모습이 어색한 듯했다.
“전 용호군 중낭장 박진하는 황명을 받으시오.”
그는 잔교 인근에 다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황제의 명을 전했다.
“이제 뭐가 더 남은 것이 있다고…….”
주위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긴 해도,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어수선한 소요를 뚫고, 박진하의 그다지 높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게 말한 박진하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말의 의미로 보건대, 더 빼앗아 갈 것이 뭐가 있다고 목숨까지 거두어 가려하느냐 하는 것이다.
무관이 부하 병사로부터 전달된 두루마리를 펼쳤다.
“전 용호군 중낭장 박진하의 충의를 받아들이노라.”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나간 과거의 피해는 모두 보상하고, 충의전가(忠義傳家) 휘호를 내리니…….”
그 부분을 읽을 때부터 박진하의 어깨가 극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떨리고 있었을 것이지만, 떨림이 심해진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흐으으응.”
크지는 않았지만 억눌린 울음소리를 목으로 넘기는,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라 입을 통해 나오는 통곡이었다.
몸은 더욱더 숙여졌고, 박진하의 낮은 울음소리는 심장을 에는 슬픔을 담고, 둘러선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박혀 들었다.
전 중낭장 박진하는 황명을 받아 현직으로 복귀하라는 명에 추가하여 나머지를 마저 읽은 무관은 두루마리를 다시 말아서 두 손으로 공손하게 들었다.
한 명의 병사가 박진하의 머리맡에 비단천이 깔린 소반을 놓았고, 무관은 그 위에 황명이 적힌 두루마리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처음과 달리 박진하의 목에서 울음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깨가 계속해서 떨고 몸도 바들바들 떠는 것으로 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목 안으로 삼키고 또 삼키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응양군과 용호군의 무관과 병사들은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또 일부는 무릎을 꿇었다.
주위의 병사들이 보여 주는 태도로 보아 보통의 신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 얼굴을 숯불로 지지면서까지 감추고 살더니 이제 살았네’
제법 멀리서 들리는 소리.
아마 태영이 아니었으면 듣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것조차도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설하, 누구 시켜서 저기 저 사람 좀 데려와.”
“네? 누구 말씀입니까?”
“저기 바지 왼쪽 가랑이가 조금 올라간 저 사람.”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고설하가 사포의 병사 한 명을 불러 낮은 목소리로 시켰다.
지금의 분위기는 너무나 엄숙해 보여서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할 분위기다.
황제의 명을 읽어 준 무관은 아직도 여전히 엎드린 상태로 어깨가 흔들리는 박진하를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 있었지만, 무관의 어깨도 제법 크게 들썩였다.
아마 그 무관도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모양이다.
사포의 병사가 노인으로 보이는 그 사람을 데려왔다.
그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병사를 보다, 태영을 보다가, 최세헌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했던 그 말, 좀 자세히 해 주겠소?”
“…….”
노인은 여전히 겁먹은 표정으로 손을 달달 떨 뿐,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어서 말하게.”
한참 동안 겁먹은 표정으로 말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최세헌의 언성이 높아졌다.
“거참, 왜 사람을 겁주고 그러십니까? 괜히 불려 와서 놀랐을 텐데, 겁주지 마시오.”
“아, 겁주는 것이 아니고, 대답이 느리니 조금 답답해서.”
“우리는 노인을 야단치는 것이 아니오. 아까 중얼거리듯 말씀하신 ‘제 얼굴을 숯불로 지지면서까지’ 뭐라고 했던 그 말씀이 궁금해서 이야기를 좀 듣고자 하는 것이오.”
“아, 그거라면 말씀드리지요.”
태영의 말에 노인은 자신을 야단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얼굴을 펴면서 말을 시작했다.
“몇 해 전에 저 사람이 아이 둘을 데리고, 동냥을 하며 우리 마을로 흘러들었지요. 소인이 그때 동냥을 해 주었는데, 걸인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에 기억에 남았습지요.”
옛날을 회상하듯 잠시 고개를 들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런데, 아이 둘이라고?
그랬었군, 저 사람이 저렇게 끈질기게 목숨을 연명하며 지키려 했던 사람, 아마도 그 아이 둘일 것이다.
박진하의 나이로 보면 아이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손주 정도 아닐까?
그럼, 아내와 자식들은 죽었다는 소리인가?
왜 아이만 둘이었다는 거지?
“그리고 마을 뒤쪽의 산비탈에 움막을 지었는데, 그날 산에서 해 온 나무로 불을 지피고, 타고 남은 숯불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저렇게 만들었지요.”
하, 어처구니가 없었다.
숯불로 얼굴을 지져서 저렇게 흉하게 만들었다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독심.
그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것이 없다.
“노인은 그걸 어찌 아시오?”
“그게, 동냥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무슨 사연이 있나 보다 싶었는데, 체격이 좋은 것이 힘 좀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갈 곳 없으면 일이나 시켜 볼까 하고, 그날 식은 밥 한 그릇을 들고 그 움막으로 찾아갔지요. 그 움막으로 가다가 숯불로 얼굴을 지지는 것을 보게 된 것입지요.”
무관이니 체격이 좋고 힘을 잘 쓸 것 같았다는 노인의 생각은 박진하를 제대로 본 것이다.
“그럼, 선착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노인이 도와준 것이오?”
“네, 그러하옵니다. 소인이 이곳 선착장에서 배에 짐을 올리거나 내리는 일을 일부 맡아서 하고 있기에 그리하였습니다.”
어느 시대이든 선착장 하역과 상차의 일을 도급받아 하는 단체는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노인은 그런 많은 도급인들 중에 한 명인 듯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사연은 물어보았소?”
“사연을 물으면 저 사람이 죽거나 소인이 죽어야 할 것 같았지요.”
그건 정답이네.
난세라고 볼 수 있는 이 시대에 세상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혜가 충만한 말이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서, 원래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중한 일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짐작을 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현명한 노인이다.
“잘하셨소.”
태영은 진심으로 그 노인이 고마웠다.
저 노인이 비록 선착장 잡부 자리라도 주면서 살아갈 길을 마련해 주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노인이 숨겨 주었다는 이유를 들어 노인에게도 피해가 갔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해 준 것은 고마운 것이다.
“아닙니다. 이젠 신분을 알게 되었지만, 저 모습을 보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그냥 말이 잘못 나오는 바람에 중얼거려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설하, 이 노인에게 포상으로 은자 백 냥을 주라고 해.”
“네.”
“아, 아니옵니다. 나리, 아니옵니다.”
설하가 잠시 뒤를 돌아서 손짓하자, 노인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받아야 하오. 저 사람을 지켜 준 대가로는 많은 돈이 아니지만, 그래도 저 사람을 돌봐 주어서 고맙다는 뜻으로 드리는 것이니 그냥 받으시오.”
“아이고 나리, 지켜 주다니요. 소인은 그저 그냥…….”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한 가지 더 부탁을 드려도 되겠소?”
“하명하십시오, 나리.”
“우리 병사들을 저 사람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겠소?”
“네, 그리합지요. 당연히 그래야 하고 말구요.”
태영의 손짓으로 병사들이 노인의 옆으로 이동하자, 노인은 억지로 쥐여 준 은자가 든 보자기를 가슴에 안아들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노인으로서는 횡재한 셈이겠지만, 잘 주었다는 생각이다.
아름도 물어보지 않았고, 어디 사는지도 묻지 않았지만, 다시 찾고자 한다면 선착장으로 나오면 알게 될 것이다.
“왜 일어나지 않지?”
노인이 떠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박진하가 엎드린 자세로 그대로 있자 궁금해졌다.
황명을 읽어 준 무관이 박진하의 옆으로 가더니 같은 모습으로 엎드렸다.
잠시 후에 또 한 명이 무관의 옆에 엎드렸고, 그 뒤를 이어서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가더니 역시 같은 자세로 엎드렸다.
잔교의 자리가 부족하여 나란히 엎드릴 공간이 없어지자, 이번에는 박진하의 뒤쪽으로 가서 엎드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짠해졌다.
옆을 돌아보니 최세헌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이 건드리면 주르르 흘러내릴 것처럼 매달려 있었다.
“할아버지.”
가족들을 데리러 갔던 병사들이 가족을 데려오는 것인지 멀리서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엔 벌써 울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낡은 옷에 산발을 한 머리로 인해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대충 보이는 것으로는 열서너 살 정도다.
키가 제법 큰 남아와 동생으로 보이는 여아였다.
두 아이를 위해 다들 길을 비켜 주고, 두 아이가 엎드린 박진하의 앞에 와서 꿇어앉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은 며칠을 씻지 않은 듯 얼굴에는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고, 옷은 전혀 빨래를 하지 않은 듯한데, 그나마도 거의 누더기에 가까웠다.
아이들의 저 모습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도망자의 변신이 아닌가 싶다.
자신은 숯불로 얼굴을 지져 흉물스럽게 만들어 변신 시도를 했지만, 아이들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긴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니 누가 보더라도 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 거지처럼 보이도록 하는 저 모습이 정상이다.
거기에다, 선착장의 하역 잡부의 벌이가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숨어서 자신을 감추며 먹고살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니 저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박진하는 두 아이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잘…… 흐으음.”
아이들을 향해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목이 메어 나오지 않는 듯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오는 동안에 저분들이 다 말해 주었어요.”
애들이 말하는 것을 보니 그 와중에서도 제대로 배운 듯싶었다.
“그, 그래.”
저 아이들의 부모는 살아 있을까?
박진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개경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박진하는 개경을 향해 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