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61
261. 송한이(1)
똑똑~
다시 회의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고, 공업부의 정현과 신설된 부서인 산업부 김도윤이 직원들을 데리고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대장님.”
“그래, 어서 와요.”
“안녕하십니까. 부실장님.”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은 역시 윤 부장이야. 부인께서 임신하셨다고?”
김도윤이 윤점돌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김도윤은 54세이고, 윤점돌은 올해 44세이니 10년의 나이 차가 있다.
“김 부장 손자가 사야와 혼인하게 되었다면서?”
김도윤은 나이가 많은데, 처음 철장들이 이주해 올 때 반말을 하다 보니 계속 반말을 하고 있지만, 김도윤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네, 대장님. 그리되었습니다.”
현사야가 김도윤의 손자와 혼인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태영은 속이 한없이 시원하고 개운했다.
물론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는 했다.
고려 신사에서 데려오던 중, 그리고 대산도에서 헤어질 때 보여 주었던 태도 때문에 태영에게 매달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김도윤의 손자와 혼인을 하기로 했다 하니,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와, 그놈 재주도 좋아. 그 예쁜 아이를 채 가다니, 혼인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학당 대문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윤점돌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혼인하지 않은 놈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그 뭐냐. 대장님 말씀하신 그 이상한 말이 뭐더라, 아 돌싱? 돌싱들도 사야에게 찾아가고 아주 인기 만점이었는데 말이야.”
“그랬지.”
대답하는 김도윤도 제법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근데 돌싱이 뭐요?”
“그리고 지금 아프지 않아도 병원 찾아가는 놈들도 전부 그래. 거기 정말 예쁜 아이들이 둘이나 있잖아?”
돌싱에 대한 누군가의 질문은 가볍게 무시한 윤점돌은 병원에서 일하는 신사에서 구해온 아이들을 말했다.
“윤 부장도 다 큰 아들 하나 있었으면 했잖아?”
“에이, 대장님도 참. 그걸 또 기억하고 계십니까?”
“하하하, 그래 잊어 줄게.”
“김 부장님,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하시는 것 같더니 좋으시겠습니다.”
“아이구, 말도 마. 몇 달 동안 일만 끝나면 쪼르르 학당으로 쫓아갔다니까.”
윤점돌과 김도윤의 말을 들으며 고설하를 바라보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다는 말이겠지.
“그래도 그런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지.”
김도윤도 기쁜 모양이다.
하긴, 신사에서 데려온 아이들은 모두 다 미모가 출중해서 혼인 적령기의 남자아이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들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니까.
그나저나, 거기서 온 아이들 중에 송한이는 예외니까, 빼고 보면 현사야 외에는 아직 혼인한 사람도 없고, 혼인 예정자도 없다.
거기서 데려온 아이들 중 병원에 두 명, 사령부 비서실에 두 명, 시장 비서실에 한 명, 창천 군단 상황실에 한 명, 해치 사단의 상황실에도 한 명, 학당에 한 명이 있었는데, 학당은 낙점되었으니 이제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곧이어 정현과 정균을 비롯해서 공업부의 간부들이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대장님.”
“어서 와요. 정 부장.”
간부진들에게는 호버리의 완성을 알렸고, 사포 시민들도 호버리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알고 있을 터였다.
“옷감 생산은 잘 되고 있지?”
지난해 청도에서 수송해 온 목화보다 더 빨리 방직기는 완성되어 있었다.
태영이 면직물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서 일상복을 만들기에 적합한 30수 옷감을 가장 먼저 만들라고 했다.
40수짜리와 60수짜리는 만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몇 차례의 시 생산을 거친 후에 산업부에서 옷감 생산을 하는 부서를 만들어 그곳에서 전담하도록 업무를 배정해 주었다.
사실상 기계류의 제조는 공업부에서 하고, 제조된 기계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부분은 산업부에서 하는 형태로 대부분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네, 대장님. 초기에는 제법 어려웠는데, 이제는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태영의 기억이 맞는다면, 18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의 시초는 섬유 산업이었다.
아마, 산업 혁명이라는 말이 다른 형태가 될지 모르겠지만, 여인들의 노동력 수탈 대상이 되었던 옷감 제조는 완전하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여기서 만든 무명천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니 판로는 무궁무진했다.
“여태까지 비단 아니면 삼베옷이었는데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의 옷감 같습니다. 대장님.”
“공업부에서 정말 고생 많이 했어. 그것 만드느라.”
“그래서 공업부에서는 상여금을 아주 많이 받았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것도 정말 부럽습니다.”
시제품 생산에 성공한 후, 공업부의 방직기와 직조기 만드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반년 치 월봉에 해당하는 은자를 상여금으로 주었고, 그 외에도 공업부의 모든 직원들에게도 한 달 치에 상응하는 상여금을 지급해 주었다.
방적 공정과 직조 공정에 맞는 기계를 만드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태영이 준 자료들은 18세기 식의 기계류가 아니라, 테르에 있던 22세기의 자료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씨앗을 빼고 잡티를 걸러 내는 것을 시작으로 8단계의 공정을 거치고, 각 공정에 맞게 서로 다른 기계가 있어야 했다.
그 공정을 거쳐서 실이 만들어지면, 다시 직조기에서 천이 만들어진다.
그 외에도 솜이불과 솜옷을 만들기 위해 솜을 털어 내는 것은, 혼타 공정을 거쳐 나온 두터운 솜을 사용해야 하기에 그 기계는 또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보안 규정에 따라서 출입자 보안을 철저히 지키도록 해.”
“네, 철저하게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자 제어를 이용하지는 않지만, 전기를 이용하고 기계의 내부는 모두 케이스로 가려져 있어서 본다고 쉽게 누군가가 베낄 수 없겠지만, 사포 바깥으로 이 기계의 정보가 흘러나가는 것은 막아야 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며 연구소의 권승찬이 역시 직원들을 데리고 왔고, 해조부에서 김하석을 필두로 다섯 명이 들어왔다.
“모두들 어서 오세요. 석이도 어서 오너라. 어깨는 좀 괜찮으냐?”
왜구를 피해 대들보에 올라가 있다가 왜구들이 집에 불을 지르자 대들보에서 뛰어내리다가 어깨가 부서져 팔을 쓸 수 없었던 아이.
사포의 해양 조선 부장으로 사포에서 운항 중인 모든 배를 만들고 있는 김하석의 가족으로,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혈육이다.
이제 열네 살이 되었다.
“네, 대장님, 수술 세 번을 했는데, 이젠 제법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하석이 손자 석이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병원장 강성호가 어떻게 해서라도 석이의 어깨를 고쳐 주려 많은 애를 쓰고 있다.
결론은 수술밖에 없고, 수술로도 한계는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 좋아진 듯 보였다.
곧 정하연이 들어섰고, 정규하와 시장 비서실에서도 몇몇 요인들이 함께 들어왔다.
정하연의 뒤를 이어 송한이가 비서실 병사들을 시켜서 다과와 차를 세팅하는 것으로 회의 준비는 끝났다.
“자, 오늘은 왜국에 광산 개발 추진 사항하고, 제철소와 조선소 건립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자고 오라고 했소.”
비서실의 직원들이 모두 나가고 송한이가 고설하의 옆에 앉았을 때 태영이 운을 떼었다.
“저부터 보고하겠습니다. 이게 절반은 제 일이라서.”
윤점돌이 먼저 보고를 시작했다.
“그래.”
“첫째, 제철소 건설은 공기 기준으로 이 할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이미 지난해에 토목은 모두 진행되었고, 공업부와 함께 점검을 했기에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윤 부장이 고생 많아. 공업부도 요새 정신없겠네.”
“네, 그래서 요즈음은 뭘 만들고 하는 것보다 제철소 일에 거의 시간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정현이 잠시 보충 설명을 했다.
“그래도, 호버리를 늦추면 안 되는 거 알죠?”
“네, 당연하지요. 이미 1, 2호기는 100시간 시험 비행을 마치고 안정적인 것을 확인해서 대장님과 시장님이 사용 중이고, 3, 4호기도 거의 100시간을 채워 가는데 문제점 없습니다.”
생산이 완료된 호버리는 100시간 시험 비행을 해서 이상 없는지 확인하도록 시켰고, 이미 조종사 훈련을 마친 조종사 40명이 교대로 훈련 겸, 시험 비행을 하고 있다.
태영을 태우고 처음으로 날아올랐던 호버리는 훈련기가 되었다.
“양산은 언제부터죠?”
“곧 5, 6호기 나오고 7호기와 8호기 나오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양산이 가능한데, 양산 시작하면 한 달에 최소 8대씩 나옵니다. 규모를 조금 더 확대하면 월에 15대까지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1년을 잡으면 180대.
“와, 그거 나도 한번 태워 줘요.”
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점돌이 헬기를 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윤 부장, 간부들은 곧 비행할 수 있도록 해 줄 거니까, 조금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근데요, 간혹 대장님 머리 한번 열어 보고 싶어요. 대체 뭐가 들어 있으면 그런 거를 다 만들 수 있는지.”
“왜? 머리를 열어서 날 죽이고 싶어?”
“아, 그게 말이 그리되는군요. 취소합니다.”
“와하하하하하.”
모두들 웃음이 터졌다.
“자, 그럼 계속해.”
“네, 둘째, 건조 부두입니다.”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도크를 건조 부두라고 이름 지었다.
따지고 보면, 도크가 부두나 선창을 가리키는 말이니까.
“그래.”
“길이 5백 미터짜리 건조 부두 6개, 3백 미터짜리 6개, 백 미터짜리 10개를 동시에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 부지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건조 부두 바닥을 파서 그 내부를 모두 화강조로 벽을 세워 방수 처리까지 한 뒤에 수문을 만들고, 수문 외부를 허물어서 바다로 연결하는 공법으로 준비를 하고 있으며, 내부 화강조 처리를 끝낸 1번 부두에 물막이를 터서 이 달 중에 방수 시험을 합니다.”
화강조.
시멘트를 보고 윤점돌이 지은 이름이었다.
“그래.”
“방수 시험 기간으로 보름을 잡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다른 곳의 물막이를 틀지, 방수처리를 더 할지 정리토록 하겠습니다.”
“순서는 잘 정하고 하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일단 큰 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하셔서, 시험은 백 미터짜리로 하고 있지만, 시험이 끝나면 5백 미터짜리 건조 부두가 가정 먼저 진행될 것입니다.”
“그래.”
“건조 부두를 만들어 그 안에서 배를 건조하고, 건조 부두의 수문을 열어 바닷물이 들어오게 해서 진수하는 방법은 정말 기가 막힌 것 같습니다. 거기에 나중에 수문을 막고, 물을 자동으로 퍼내기까지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김하석이 웃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
현대식 조선소를 가 본 적이 없는 태영이 방법을 설명해 준 것으로 실제 구현은 주로 건설부와 해조부, 산업부, 그리고 공업부 등에서 하고 있다.
건조 부두와 관련해서 업무 연관성이 있는 각 부처의 보충 설명이 이어졌다.
“자, 거기까지 하고, 광산은?”
여기서 논의까지 하면 끝이 없을 듯하여 태영이 말을 잘랐다.
“광산 6곳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서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토목 일을 좀 한다하는 사람들 중에 이름과 사는 곳을 아는 사람은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래서 전문 인력은 충분히 확보되었고, 노무자들은 한 군단장께서 무려 30만 명이나 모아 줬습니다.”
30만 명.
그들은 모두 왜국의 노예들이다.
왜 노예를 데려가느냐고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 시대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였고.
“철광석과 석탄이 먼저라고 해서 그것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공업부에서 발전기와 환기 장비를 만들어서 보냈고, 광산 작업에 투입했습니다.”
“단도에는 문제가 없나?”
단도(端島), 21세기의 사람들에게 군함도라고 알려진 하시마 섬이다.
태영이 영화를 본 기억 때문에 물었다.
“아직 문제는 없습니다만, 거기는 작은 섬이어서 깊이 파고들면 바닷물이 새어 나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책은 앞으로의 상태를 봐 가면서 대응할 생각입니다.”
“좋아, 석견산 은광 진행은?”
앞으로 꽤 긴 세월이 지난 뒤에 발견될 이와미 은광.
일본이 왜구들에 의한 해적질과는 달리 타국과 교류할 수 있는 재화의 대표적 수단이 된 이와미 은광이다.
이젠 모두 고려의 재산, 아니 사포의 재산이 될 것이다.
“거기는 길을 먼저 내어야 해서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른 곳도 산이 험한 곳은 길부터 내고 시작했는데, 그쪽도 곧 길이 완성되니 바로 시작이 될 것입니다.”
광산 개발을 통해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막대한 광물과 건설을 위한 석회석, 화약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원재료들을 포함하여 많은 것들이 수송되어 오기 시작할 것이다.
김도윤에게는 왜국의 석회석 채굴 지역에 화강조라 이름이 붙은 시멘트 공장을 세우라고 시켰다.
화약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원료는 용도를 설명하지 않고 충분히 확보하도록 시켰다.
불도저와 굴삭기의 추가 제작, 지게차, 광산에서 사용할 레일 차, 진동 해머와 여러 장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각 부처 간의 할 일에 대한 점검이 이어졌다.
“김 부장, 정제염 설비 완성이 이달 말에 끝난다고 했으니, 시험 생산하는 대로 연구소로 보내 줘. 분석 결과가 좋으면 공장 돌려서 대량 생산 시작하고.”
“네, 알겠습니다.”
고려의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자염이기에 생산량이 적어서 언제나 부족하고, 매우 고가다.
천일염은 19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소금 생산 방법이니 이 시대에 천일염은 아직 없다.
하긴 농사지을 땅도 없으니, 바다를 메워서 확보한 땅에는 농사가 최우선이다.
태영은 신안 앞쪽에 있는 제법 큰 섬, 임자도를 통째로 매입해서 천일염을 만들까 했었지만, 전기를 생산하니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서, 동해안의 깨끗한 바닷물을 이용하여 정제염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금까지 송나라에서 암염을 꽤 많이 사 왔지만, 이젠 오히려 송나라로 수출도 가능해진다.
정제염 공장 이야기로 몇 시간에 걸친 업무 보고와 점검이 끝났다.
“자, 모두들 고생했어. 일정에 차질 없이 진행해 주고, 지금 하는 일들이 사포와 울주, 그리고 왜국에까지 걸쳐 있는 탓에 이동 거리가 많아서 호버리 완성되는 대로 각 부에 호버리 한 대씩 지급할 거야. 부장들은 장거리 운행에는 호버리로 다니도록 해.”
“우와와, 그 말씀 정말입니까?”
역시 윤점돌의 반응이 빨랐다.
윤점돌이 가장 많이 이동하고 있기도 하고, 왜국에 한번 다녀오는데 시간 너무 걸린다며, 종종 투덜거렸다.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동 거리도 무시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정현의 경우에는 이동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부장들도 얼굴이 환해졌다.
“자, 그리 알고 회의는 이것으로 끝. 점심이 준비되어 있으니 점심 들고 가도록 해요.”
“네, 대장님.”
각 부장들 회의를 끝내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이 시대로 날아와서 너무 계획 없이 좌충우돌했던 것 같다.
태영은 겨우 대학 2학년 재학 중에 군에 갔고, 전역을 앞둔 시점에 이 시대로 날아왔기에 사회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긴 하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21세기의 과학과 기술에 문외한들이었으니 그것과 접목된 경험이 없어서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어렵다.
이런 회의를 마치고 돌아설 때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참으로 많이 든다.
“아버지, 저 잘 하고 있는 걸까요?”
***
“한이야.”
“네, 대장님.”
“곡용에 가자.”
곡용, 송한이가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고향이다.
“네?”
깜짝 놀라며 반문하는 송한이의 몸이 마치 얼어붙은 듯 멈추더니 금방 눈물부터 차올랐다.
“곡용에 가자는데 왜?”
다시 말하는 태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 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 아아 그, 그것이…….”
말을 제대로 이어 가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태영은 어젯밤, 송한이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가난했던 거로 기억해요. 하루 세끼 먹고사는 데 어려움이 없긴 했어도 부자는 아니었어요.”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부유하지 않아서 직접 농사를 지었기에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해가 저물면 오빠와 동생 둘과 함께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습니다.”
그러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왜구들이 마을에 쳐들어왔고, 농사일을 하던 중에 왜구에게 잡혔습니다.”
그대로 끌려가서 배 밑창에 갇혔고,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흔들리는 배 아래에서 한 달이 넘도록 갇혀 있었단다.
죽일 놈 들 같으니.
“저처럼 잡혀 온 많은 아이들 모두가 어린 여자아이들이었습니다.”
같은 마을이어서 아는 얼굴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 나이 많은 언니 몇 사람은 한 번씩 끌려 나갔다가 옷은 풀어지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 돌아왔는데, 맞아서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부은 얼굴로 돌아오면 몸을 웅크리고 하복부를 붙잡고 밤새 앓았다.
어떤 때는 하혈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유를 알지만,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다.
“첫날부터 시작된 뱃멀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무엇이든 먹고 나면 토하고 또 토해서 기진맥진해 있던 어느 날, 끌려 내려진 곳이 알고 보니 왜국이었습니다.”
잡혀 온 모두는 그곳에서 팔렸고, 자신들을 사간 주인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부터 시작된 고생은 매일매일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고, 그냥 하루하루를 넘기며 살고 있었지요.”
그렇게 생활하면서 두 번 정도 다른 집으로 팔려 갔다.
“열네 살이 되던 해에 고려 말을 하는 사람이 와서 데려갔습니다.”
배를 타고 며칠을 갔고, 이제부터 여기가 네가 있을 곳이라고 말한 그곳이 고려 신사였단다.
고려 신사에 가서는 일이 죽을 만큼 고되지 않았고, 비록 그곳을 떠날 수는 없었지만, 가르쳐 주는 대로 잘 익히면 신체적인 학대는 없었다.
몸을 정갈하게 하도록 교육받았고, 본인이 원하면 글공부도 할 수 있었다.
“한 해 두 해, 지나감에 따라 차츰 철이 들었고, 세상을 알아가고 배움이 많아지면서 새로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열아홉이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왜군 장수에게 팔려 가서 첩이 되거나 노리개가 되어야 하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려인의 첩이 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할 것이지만, 자신의 신세를 이따위로 만든 왜구의 첩이 되다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몸이 조금 편하게 살고 있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살 바에야 그냥 죽자, 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가게 되었고, 그 생각은 차츰차츰 구체화되어 가고 있었지요.”
“배움이 많지 않았을 때는 몰라도, 배움이 많아지면 생각이 많이 바뀌는 거지.”
“네, 맞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하게 될 어떤 계기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지체 없이 결행할 생각으로, 신사에서 제를 지낼 때 과일 깎는 용도로 사용하는 작은 칼 하나를 훔쳐서 잘 숨겨 두고 기회를 보고 있었지요.”
“그 정도였단 말이야?”
“네.”
“결심이 제법 확고했네.”
“네.”
왜구에게 잡혀 온 지 6년, 신사에 온 지 4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고려 말을 하는 이상한 복장의 젊은 남녀가 신사를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준비해 오라는 지시를 받고 준비하고 있었지요.”
“나하고 한실장이 나타났을 때?”
“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쇠와 쇠가 부딪쳤을 때 나는 강렬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궁금했는데, 밖에서 찻상을 닦아서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 그 소리 후에 한 사람의 귀가 없어져 버렸다는 말을 전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나?
의문은 의문으로 남아 있었지만, 찻상을 들고 문 앞에 섰을 때,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그 고려인의 얼굴과 몸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기운이 마치 자신을 덮쳐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옆에 선 여인은 세상에서 처음 보는 너무나 예쁜 사람이었는데, 남자와 비슷한 강렬한 기운과 동시에 온화한 기운도 느껴졌다.
신사에 있는 동안 보아 왔던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피어올랐다.
고려인이라 했다.
고려인이라니,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분을 따라가자. 그렇다면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지요.”
말을 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저분을 따라가려 하는 의도가 성공하면 살아서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오, 성공하지 못하면 소원하던 대로 죽어서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천둥치듯 마음속에서 소리쳤고, 죽으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의 결심을 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하찮은 목숨을 저분에게 걸어 보자.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이 떠나려 하는 문 앞을 막고 섰다.
“그분이 ‘ちょっとどいてくれないか(좀 비켜 주지 않겠나)?’라고 하기에 고려 말로 ‘나리’ 하고 불렀습니다.”
“그랬었지.”
태영은 묵묵히 송한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가끔 추임새만 넣어 주었다.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실, 그냥 떠나려 했는데, ‘나리’라고 부르는 그 말에 잠시 놀랐으니까.
그래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았을 뿐이다.
”’뭔가?’ 하고 물으셨지요. 많이 화난 말투였지만.”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화가 나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송한이의 말에서 그럴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네 목숨은 내 것이다.’라는 그분의 말에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은 남아 있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왜 하느냐며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지요. 그리고 다음 날, 고려에서 잡혀 온 다른 동생들과 함께 신사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포함해서 동생들과 함께 떠나는 길은 아무도 막지 못했고, 막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서방님이 타고 오신 배에 타는 순간, 온몸을 채워 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탁 풀리면서 쓰러졌고, 까무룩 혼절했지요.”
“맞아,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꽤 오래 잤다고 하더라.”
혼절했다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먼 여행을 하는 길이니, 그분의 터전인 사포로 가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포에는 노비가 없다는 말은 이미 들었지만, 하인이 되건, 노비가 되건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날, 목숨을 걸었던 그날, 그분으로 인해 새로이 태어났는데, 그분의 곁을 떠나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지요.”
잠시 3인칭으로 남 이야기하듯 말했다.
”’네 목숨은 내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지요.”
“그래, 그때 대체 무슨 마음이었어?”
“흐흥, 그건 다음에, 이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허락을 받았고 바닷길을 따라 넓고도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사포로 온 지 이제 반년이 조금 더 지났다.
신사를 떠난 지는 한 해가 훨씬 넘었다.
“이젠, 신사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요.”
감사하게도 참으로 좋은 분들과 함께 한 분을 모시는 자리의 셋째, 바로 지신을 구해 준 그분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그것도 신사에서 보았던, 그 환하게 빛을 내던 아름다운 여인인 두 번째 부인이 꼭 받아 주어야 한다고 해서 자신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먼 길을 여행하였던, 또 한 여인이 네 번째 아내가 되었지만, 그건 더 좋았다.
“이제 더 이상의 소원은 없어요.”
그렇게 말했었다.
바로 어젯밤, 태영의 가슴에 반쯤 몸을 걸친 채로 엎드려서 태영에게 말해 주었다.
그 어린 나이에 겪어 온 송한이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
더 이상의 소원은 없다 말했지만, 간혹 먼 산을 바라보는 송한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태영이 보이지 않을 때,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을 멀리서 본 적도 있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지만, 자신은 이미 죽었을 목숨이니, 살아 돌아오리라는 기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어찌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을 것이며, 안부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 긴 이야기를 마친 송한이의 눈에 아련한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니?’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을 한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멈출 것 같지 않은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몸을 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