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72
272. 미래와의 조우(1)
태영이 타고 다니는 전용기인 1호기는 철산기지에 두고, 한서윤의 21호기도 그냥 두고 타격조가 사용 중인 3대의 호버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식량은 며칠분이나 준비했어?”
몇일 분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바가 없지만, 어느 정도 준비 했는지 물었다.
“5일분입니다. 물은 식수로 세면을 안 하면 열흘은 가능합니다.”
“그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가지.”
태영은 73호기에 탑승했다.
73호기에는 조종사와 보조 외에 타격조의 3분조 7명이 이미 탑승하고 있다.
거기에 추가로 태영과 한서윤, 그리고 송한이가 타니 자연스럽게 유진이가 함께 올랐다.
그 다음으로 송준일과 김별이가 타는 것을 보니 각 호버리 별로 어떻게 조를 나누어 탑승하는지를 정해둔 모양이다.
73호기에는 조종사훈련을 받고 보직을 변경한 윤서이 대위가 조종사를 하면서 자신과 제법 장시간 함께 했던 조이슬까지 부조종사를 시켰다.
일단 조종사는 무조건 장교계급이긴 하지만, 윤서이는 오래되기도 해서 계급이 높아졌다.
저 애는 스물이 넘었는데 사귀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군인이 좋은 것인지, 마구 다닐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인지.
전에는 왜국에서도 한참동안 체류했었는데, 가만히 있는 것보다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바로 조종사로 지원을 해서 저렇게 조종사가 된 거지.
호버리 3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천천히 밀려오는 석양빛을 받으며 북으로 향했다.
“비상 착륙이라면 어딘가에서 야영을 할 텐데, 야영 장비가 그들에게 있나?”
“침낭은 필수 장비로 항상 실려 있었습니다.”
“야전 침대는?”
“없습니다. 야영을 대비한 연료와 발전기가 있고, 오리털 겉옷이 지급되었으니까 비상 착륙이라면 상관없지만, 만일 추락했다면 그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유진이가 또박또박 대답을 한다.
“그렇지. 그게 문제지. 지금 거기가 아침저녁 기온이 많이 낮지?”
“파림은 낮에도 기온이 낮지만, 밤이 되면 영하로 내려갑니다.”
에어 매트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시험 수준으로는 최종 단계에 있지만, 양산은 아직 꿈도 꾸지 못하고 있어서 야전군에게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에어 매트는 개인 장비이니, 그것을 지급했으면 추락했다고 해도 영하의 밤 기온을 견디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오리털 겉옷 정도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차단하고 체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한유상, 무전해 봐. 그쪽 상황을 모르니 말은 하지 말고 송화 단추를 몇 번 눌러 봐.”
“네, 조장님.”
유시완의 명을 받은 한유상의 손가락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아직 응답이 없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10분 정도 간격을 두고 시도해 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영이 한유상을 바라보았다.
서윤의 사촌 처남.
서윤과는 전혀 닮은 곳은 없지만 아주 잘생긴 녀석이다.
저런 얼굴이면 여자들에게 인기 있을 것 같은데, 혼인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왜 여전히 혼자일까?
서정인과 김예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7인 정찰조가 운영하는 호버리의 부조종사로 근무하고 있고, 송한이의 동생인 송준일은 혼인을 약속한 김별이와 함께 7인 정찰 조원으로 있다.
정하연이나 한서윤이나 송한이와 관련이 있는 아이들은 왜 늘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태영이 이 시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척이 태영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형국이지만, 그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횡포를 부리는 일은 없으니 문제되지는 않는다.
“박현남, 저 가방 이리 줘.”
“네, 대장님.”
태영은 뒤쪽에 헬기의 움직임에 흔들리지 않도록 그물망에 넣은 은색 케이스의 박스를 가리켰다.
1호기에서 저 장비만 이쪽으로 옮겨 실었다.
“저거, 송나라 황궁 호장고?”
호버리 73호기 조종사 보조인 박현남 소위가 태영에게 가방을 넘기는 것을 보던 서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 맞아. 거기서 건져 온 물건이지. 그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유용한 물건이야. 사용해 본 적 있지?”
“네, 여기서 달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이번 일에 필요하겠네요.”
“응, 아마도. 부실장은 봤지?”
태영이 송한이에게 물었다.
“네, 대장님. 그런데 설명서 봐도 모르겠어요. 영어로 되어 있어서.”
“영어로 되어 있지. 번역본 만들지 않았어요?”
송한이의 대답에 서윤이 물었다.
“그래, 그래서 딴 사람들은 볼 수가 없어. 한이에게는 내가 조금 설명을 해 주긴 했지만, 충분히 알려주지 못했어. 번역을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 막상 시간도 없고, 내 번역 실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고려 땅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태영과 서윤 외에는 없으니, 둘 중에 누군가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배울 일도, 쓸 일도 없다.
“주세요. 제가 볼게요.”
태영은 가방 안에서 사용 설명서를 꺼내 서윤에게 전달해 주고 다시 뚜껑을 닫았다.
서윤은 대산도에서 이미 사용을 해 봤기에 매뉴얼을 띄엄띄엄 넘기면서 송한이를 포함해서 마침 73호기에 탑승한 정찰조에게 사용법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호버리의 창밖이 푸른색에서 노란색으로, 다시 붉은색으로 바뀌다가 드디어는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니 해가 넘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야영하기에 적정한 착륙 장소를 찾아야 했다.
“진이야, 야영하기 좋은 곳으로 위치 찾아봐라.”
“네, 대장님.”
서윤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진이가 노트북을 켜서 화면을 넓게 펼쳤다.
“대장님, 10분 후에 파림에 도착합니다.”
유진이가 노트북의 지도를 펼치는 중에 부조종석에 앉은 조이슬이 태영을 돌아보며 위치 보고를 했다.
“대장님, 파림 동북쪽 42킬로 지점에 길이 5백 미터에 폭이 2백 미터쯤 되는 작은 호수가 있고, 호수 주변은 바위로 된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있습니다. 야영을 하기에 적절해 보입니다.”
때마침 유진이가 위치 보고를 했다.
“좋아, 그쪽으로 가지. 조종사에게 위치 알려 줘.”
태영이 얼핏 노트북 화면을 보니 23세기 지도상에는 꽤 큰 마을과 댐을 막아 물을 확보한 커다란 인공 호수가 보였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는 아마도 사람의 흔적은 없을 것이다.
그 인공 호수의 우측에 작게 보이는 천연 호수인데, 유진이의 말대로 주변은 바위산이고 일부에는 검푸른 잎을 가진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아직은 어둠에 완전히 덮이지 않아서 어스름이 남아 있는 평지에 환하게 라이트를 켠 두 대의 호버리가 착륙했다.
“조 소령, 사주 경계하고 잠시 기다리도록.”
“넵, 대장님.”
“아직 눈과 얼음이 남아 있으니까 주의하라고 하고.”
봄인 데다가 이곳은 사포에 비해 훨씬 북쪽이기에 녹지 않은 눈과 얼음이 곳곳에 보였다.
지시를 받은 조현태가 타격조 부조장인 장사중 대위를 부르며 타격조 병사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보고 서윤에게 고개를 돌리니, 휴대용 간이 의자를 펼쳐서 그곳에 앉고, 제법 여럿이 모여 앉아서 호장고에서 건져 온 그 장비를 꺼냈다.
“대장님, 탐지기 조립하겠습니다.”
“그래.”
태영이 황궁 호장고에서 꺼내 온 여러 가지 물건들 중에 이런 때에 가장 유용한 장비로 이동형 레이더, 바로 저 탐지기가 있다.
이 시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
금속 물체는 당연하고, 크기가 큰 플라스틱류도 탐지가 가능한 레이더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생체 탐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살아 있는 대상의 탐지.
태영이 살던 21세기의 군에서도 저렇게 작고 뛰어난 레이더 장비는 없었지만, 생체 탐지가 가능하다니.
이제는 제 수명을 다해서 사포의 귀중품 창고 안에 얌전히 누워 있는 니펜트와 비슷한 개념이긴 한데, 성능은 비교의 대상아 아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레이더 기능에 초점이 맞춰진 장비다.
그리고 라일리는 2285년에서 날아왔지만, 이 레이더의 제조일은 2163년이니 122년의 시간 차이로 인한 기술의 차이가 크다.
그래도 1225년에 이런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 시대에서의 122년 차이는 문화, 기술, 사상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비슷비슷하지만, IT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2163년과 2285년의 차이는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간극이 있다.
이런 물건이 손에 들어올 때마다 간혹 한 번씩 생각나는 것은, 대체 피디지를 열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은 어느 시대에 개발된 것일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자연 현상은 아닌, 기술 개발에 의한 것이 맞다.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태영이 군 생활 중일 때도 뉴스에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하는 방송을 종종 보았는데, 어느 영화에서 보여 주었던 내용처럼 출산은 모두 인공 자궁 속에서 인공으로 수정하여 태아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3D 프린터로 사람을 출력하거나.
“진이야, 노트북 펴서 이 위치 맞추고 지도 확인해 줘.”
서윤이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납작한 사각형 물체를 꺼내면서 유진이에게 시켰다.
“네, 실장님.”
서윤이 그 물체 한쪽의 버튼을 누르자 윙 하는 소리와 함께 4개의 다리가 아래로 미끄러지듯 밀려 나왔다.
그것을 바닥에 놓자 4개의 다리는 서로 줄어들거나 늘어나면서 스스로 수평을 맞추듯 움직였다.
윙~
작은 소리와 함께 사각 각 면의 일부가 옆으로 벌어져 나왔다.
이번에는 가방 안에서 원통형 물체가 연결된 원형 파이프를 꺼내 사각형 물체의 중앙에 꽂자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스르르 밀려들어 가더니 찰칵 소리를 내며 고정되었다.
“꼴깍.”
기계의 조각들이 스스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주위에 둘러선 7인 정찰 조원들뿐만 아니라 호버리를 조종해 온 병사들의 입에서도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대장님에게는 신기한 물건이 정말 많아.”
송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뒤이어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 라는 의미를 담은 김별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빙~비비빙~
서윤이 다시 또 다른 터치 스위치를 누르자, 원통의 좌우 마개가 작은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마개는 안쪽에서 밀어내는 파이프 실린더를 통해 좌우로 뻗어 나오더니 마개의 간격이 1미터 정도에서 멈추고는 위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그러곤 마개 쪽에서 희미한 초록의 빛이 마주 보고 연결되었다.
이것은 레이더 안테나다.
“휴~”
이번에 나온 한숨 소리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태영이 아니었으면 구경할 수 없는 물건들.
설사 옆에 떨어져 있어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다.
서윤은 주위에 둘러선 병사들을 한번 휘 둘러보면서 씩 웃었다.
“한이야, 나머지는 네가 해 볼래?”
“아뇨, 성님. 설명만 듣고는 좀 부족해요. 영어라도 알면 사용 설명서를 볼 텐데. 이번 것 까지는 시연하면서 좀 가르쳐 주세요.”
“알았어. 마저 하지 뭐.”
서윤은 가방 안에서 역시 삼각대가 달린 작은 사각형 물체를 꺼내 다리를 펼치더니 아래쪽의 버튼을 쿡 눌렀다.
삐빗~
작은 기계음이 나오고 화면이 펼쳐졌다.
화면에는 연결되었다는 메시지와 동시에 밝은 여자의 음성으로 연결되었음을 함께 알려오면서, 그 이후에 그 작은 사각형의 크기를 무시하고 가로, 세로 50센티는 될 듯한 화면이 펼쳐졌다.
그것보다 먼저 원통 마개에 희미하게 걸려 있던 가느다란 초록색 줄이 7개로 늘어나면서 빛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와우, 이게 뭐예요?”
“이건 뭡니까, 대장님.”
“와, 뭐지.”
송한이의 질문에 뒤이어 여럿이 이런저런 감탄사를 말했다.
이 기계는 언어 설정 기능이 없어서 오직 영어로만 표시되기에 주위에 둘러선 그 누구도 내용을 읽을 수가 없으니 하는 질문이다.
“날려 보겠습니다.”
“응.”
서윤의 말을 듣고 대답하니, 펼쳐진 화면의 이곳저곳을 톡톡 두드리듯 터치하자 레이더 안테나가 펼쳐진 사각의 몸체가 공중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화면 한쪽에 고도, 풍향, 풍속 같은 것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일단 2킬로까지 올리겠습니다.”
“응, 천천히 올리면서 보자.”
“대장님, 아니 실장님 이거 뭐예요?”
보다 못한 잔디가 서윤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입이 근질근질했을 것이다.
“잠깐만, 우리가 찾는 것을 확인한 후에 설명해 줄게.”
펼쳐진 화면에는 지형의 형상이 여러 색으로 표시되어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지형의 사진은 아니었다.
“진이야, 지도 넓게 펴 봐.”
“아무것도 없습니다. 좀 더 올려 보겠습니다.”
“응.”
“여기서 서남 방향 254킬로 지점.”
화면에 자연색은 아니지만, 비슷한 색으로 표현된 산과 계곡의 굴곡들이 펼쳐졌다.
실제 지도가 아닌, 3D로 재구성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지도 위치 이동시키겠습니다.”
서윤의 말에 유진이가 서윤이 펼친 화면을 유심히 보더니 지도를 서남쪽 방향으로 이동시켰다.
그것을 한번 보고, 레이더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노란색으로 반짝이면서 금속 물체임을 알려 주는 신호와 초록으로 반짝이며 플라스틱 제품이거나 고무 제품임을 알려 주는 시그널이 떠 있었다.
“거기에 뭐가 많은데? 사람도 많고, 이거 심상치 않네.”
사실상 레이더 상에 많은 것들이 잡히지만, 서윤은 바로 이곳이 호버리가 추락한 것이라는 것을 유추해 냈다.
“네, 254킬로 지점에 보이는 이 물체는 그 크기와 형상으로 봐서 호버리가 맞습니다. 호버리보다는 작지만 굉장히 큰 철제 물건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리고 좌우에 연하늘색, 이건 물이 있는 자리 같은데요. 진이야, 지도에는 뭐라고 되어 있어?”
“실물 지도상에 호수처럼 보입니다. 거기가 황무지인 것을 생각해 보면 늪지이거나 오아시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곳 황무지는 끝없이 모래만 펼쳐진 사막과는 달리 모래흙 토양에 적당한 숲이 있는 황량한 곳이다.
“그래? 일리 있네. 늪지라고 보고, 호버리 주변 반경 2킬로까지 많은 것들이 깔렸는데요. 그리고 그 위치에서 서쪽 방향 20킬로 지점에도 제법 많은 무리가 보입니다.”
레이더에 보이는 것은 영상 화면은 아니어서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주변에 깔린 것들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 남서쪽 산악 지역의 또 다른 무리?
“진이야.”
“네, 대장님.”
“저 지점으로부터 적봉하고 승덕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봐.”
“네, 알겠습니다.”
유진이가 노트북으로 위치를 찾아 거리를 측정했다.
“적봉까지 214킬로입니다. 그리고 승덕까지는 232킬로입니다.”
“이상하네. 왜 정찰 지역을 벗어났을까? 아니야, 정찰이란 것이 의심스러운 것을 확인하는 거니까 그건 아니고, 음. 곧 해가 넘어가서 어두워질 것 같은데,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일단 거길 가 보자. 소리 때문에 호버리로 가까운 곳까지 가서 비행 날개로 가야 할 것 같으니까, 적당한 지점을 찾아봐.”
“대장님, 그 지점으로부터 남쪽 30킬로 지점에 쌍산이라는 호수가 보입니다. 여기에서 273킬로 서남쪽인데, 20킬로 서쪽에 있는 무리들과의 거리도 35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소리에 대한 염려도 없을 테니, 그쪽으로 이동하자, 모두 신속하게 탑승.”
헬기에서 내렸던 타격조를 불러 모으고 장비들을 다시 조립한 후 곧바로 탑승했다.
그리고 50분 후 쌍산에 도착했을 때는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졌다.
타격조 병사들이 발전기를 돌리고, 키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전등을 설치하여 불을 밝히기까지는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타격조는 병사들 2인 1조로 묶어서 고지대에 경계조를 보냈다.
“아, 여긴 제법 추운데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태영이 생각하기에도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자, 여기서는 비행 날개로 가야 하니까, 나하고 유시완, 송준일, 유진이 이렇게 하고. 한 실장은 한이, 잔디와 함께 이곳에서 타격조와 야영 준비하고 무전 대기해.”
야영할 장소에 이동형 발전기를 설치하고 불이 들어오자 태영이 한꺼번에 지시했다.
“저도 갈게요. 도움이 될 거예요.”
서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행 날개가 4개인데, 그럼 준일이가 빠져라.”
“안 빠져도 돼요. 저는 비행 날개 없어도 되니까요.”
“그곳에서 얼마나 체공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괜찮아요. 몇 시간 정도의 작전을 펼치는 데는 상관없어요.”
몇 시간을 날아다녀도 된다고?
“그래, 같이 가자.”
대체 염력으로 일으키는 부양 능력이 얼마나 늘어난 거야?
지난번에 물었을 때, 호버리에 채택한 속도계를 손에 들고 시속 350킬로 속도로 이동해 봤다고 했다.
그 정도면 시속 270킬로 정도 속도가 나오는 비행 날개보다 훨씬 더 빠르다.
그나마 태영이니까 270으로 날아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 속도로 날지 못한다.
“조 소령.”
“네, 대장님.”
타격조 조현태를 불렀다.
“비행 날개로 호버리 추락 지점을 조용히 다녀올 거야. 여기 야영 준비 끝나면 먼저 식사를 하도록 해. 우린 다녀와서 할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무전으로 연락할 테니까 무전은 수신 상태로 두고, 이쪽은 송 부실장이 이 중령 데리고 대기할 거야.”
“무전기, 철궁 2정, 철시 2통, 그리고 노트북, 나머지 각자의 개인 무기 휴대한다.”
태영은 가지고 갈 장비에 대한 지시를 하면서 쇠버리 4천 발이 들어 있는 조끼를 걸쳤다.
“철궁은 대장님이 한 정 들 테니까, 준일이가 한 정 들고, 철시는 내가 들지. 유 중령이 무전기, 진이가 노트북 들면 되겠네. 혹시 모르니까 철시는 5통을 챙겨 줘.”
서윤은 쇠버리 4천 발이 든 조끼를 걸치더니, 각 인원에게 장비를 분배하고는 철시를 더 챙겨 달라고 했다.
철시 1통이면 100발이 들어 있고 무게가 제법 나가지만, 서윤에게는 그런 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네, 실장님. 철시 5통입니다.”
타격조 병사가 서윤에게 철시 5통을 건네주었다.
“다들 준비되었나?”
“네, 준비 끝났습니다.”
호버리를 타고 올 때와 달리, 북방의 추위를 맨몸으로 감당해야 하기에 준비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서윤은 고글과 마스크가 일체화된 마스크 고글로 얼굴을 가렸다.
***
“정지.”
30킬로면 비행 날개를 착용하고 천천히 가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기에 앞서가던 태영이 통신을 통해 일행들을 정지시켰다.
서윤은 공중 부양으로 왔기에 헬멧을 통한 무전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태영의 옷자락을 잡고 함께 왔기에 태영이 속도를 조절했다.
멀리 수십 개의 모닥불이 보였다.
중앙 부분에는 아주 넓고 큰 모닥불이 있고, 그 주위로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무리가 모닥불을 중심으로 떼를 지어 있었다.
그 주변으로 보이는 작은 모닥불에도 둘러앉을 만큼의 사람들이 모닥불 앞에서 추위를 달래는 것 같은데, 경계는 하지 않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다.
유시완의 말이지만, 태영에게도 보였다.
비록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곳곳에 지펴진 모닥불로 인해 그 모습이 대부분 제대로 보였다.
호버리는 네 개의 로터 중에 하나가 부서져 있었지만, 다른 곳에는 크게 이상 없이 착륙해 있었다.
자세한 것은 확인을 해 보아야 하겠지만 부서진 로터라.
“저거, 포탄, 아니 미사일에 맞은 것 같은데.”
로터를 저렇게 깨트렸으면, 이건 이 시대의 무기로 맞은 것이 아니다.
그때 유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쌍안경을 눈에 대고 있었다.
태영도 쌍안경을 들어 올렸다.
쌍안경으로 보면 잘 보이기는 하지만, 시야가 너무 좁아서 넓은 영역을 보려면 이리저리 많이 움직여야 하고 따라서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래도 이리저리 움직여서 눈에 보이는 것은 군용 지프차, 그리고 군용 트럭이다.
대충 눈에 보이는 숫자만으로도 지프가 5대, 트럭이 6대나 되는 것을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합치면 아주 많을 것 같다.
돌아가면서 레이더로 찬찬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사포가 아닌, 아니 고려가 아닌 곳에 지프차와 군용 트럭이라니.
저 지프와 트럭은 21세기에서 태영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종종 보던 것들이다.
“알라봉?”
태영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무리가 모여 있는 곳에는 이슬람 테러 집단이 가장 좋아하는 무기, 그들이 알라의 요술봉이라며, 줄여서 알라봉이라고도 부르는 여러 개의 RPG-7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20세기에 러시아에서 개발되어 21세기에도 계속적으로 사용 중인 휴대용 대전차 로켓이다.
사정거리가 짧고, 후폭풍이 심해서 매우 위험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과 구하기 쉽다는 점 때문에 이슬람 무장 단체나 반군 집단, 그리고 무장 테러 단체에서 아주 애용하는 무기다.
모닥불 주위에 있는 무리들이 지닌 무기는 모두 AK-47이다.
그런데 21세기에나 있어야 할 무기와 차량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