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77
277. 미래와의 조우(6)
“대장님, 저희도 준비되었습니다.”
72호기 이새별과 김예서, 그리고 차인중 세 사람이 나란히 섰고, 이새별이 보고했다.
“그래. 잘 다녀와.”
“넵,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72호기 세 사람과 유진이가 72호기로 달려갔다.
72호기가 공중으로 떠올라 추락한 호버리 위에서 줄을 늘어뜨렸고, 매복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던 정찰조에서 추락 호버리의 인양 고리에 줄을 걸어 주었다.
호버리들은 기본적으로 매달고 갈 수 있는 4개의 쇠줄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매달려 갈 경우를 대비한 인양 고리도 만들어져 있어서 매다는 과정은 아주 쉽다.
71호기가 철산을 향해 날아오르더니, 블레이드 소리의 여운을 남기고 동쪽으로 사라져 갔다.
“전투 양상은 어때?”
다들 떠나고 임시 막사에는 정찰조 중에 6명과 태영, 한서윤, 송한이만 남았다.
“전투가 제법 격해지는지 양쪽의 생체 신호가 제법 줄어들었습니다.”
“무기나 장비에 손상이 좀 없어야 하는데.”
그건 사실상 태영의 희망 사항이었다.
“장비들은 유용하겠죠?”
“그렇지. 저들이 저렇게 전투를 해서 숫자가 좀 줄어들고, 1군단과 2군단에서 데려온 병력으로 마무리를 하고, 저들이 가진 장비를 모두 가지고 가야지.”
양쪽의 전력이 소모되어서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 쪽에 보충된 전력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저도 처음 보는 장비가 몇 가지 있던데요.”
서윤의 말이지만, 첨단 장비의 필요성을 서윤도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닐지라도 테르를 끼고 살았으니, 사진과 글과 동영상을 통해서 23세기의 문물을 접했다.
그러니 충분히 많은 것들을 보았고, 이해했을 것이다.
“맞아. 특히 좌적이 사용하고 있는 작전 차량은 이런 황무지와 사막 지역에서 사용하기가 아주 좋아. 사포로 몇 대 보내서 뜯어보면 똑같이 만들 수 있을 거야. 시간은 걸리겠지만.”
JLTV를 그렇게 발음하기는 곤란해서 엉겁결에 작전 차량으로 불러 버렸다.
어찌 되었거나, 온정 공업 단지에서 21세기 식 또는 23세기 식 장비들을 만들어 내는 기술로 JLTV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자 장비가 없다는 아쉬움만 빼면.
“호버리도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데, 금방 만들겠죠. 차량보다 호버리가 몇 배는 어려운 기술이라면서요?”
“그렇지.”
한서윤의 말에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태영은 21세기의 장비들과 관련해서 머릿속으로 몇 가지를 정했다.
첫째, 21세기에서 날아온 저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이, 이 시대의 이 땅에 전해져서는 안 된다.
둘째, 지금 저들이 사용하는 장비와 무기들 또한, 결코 이 시대에 전해져서는 안 된다.
물론 태영이 가진 장비와 지식 또한 같은 선상에 있었다.
‘내로남불이지만.’
맞네, 내로남불.
셋째, 저들이 사라진 이후에, 저들이 가지고 있던 그 첨단의 장비들이 사포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들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사실상 미래의 물건들이라는 것이 그 물건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주변 인프라와 산업 기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기에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버려두어서 괜한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반드시 막아야 한다.
세 가지로 요약했지만, 엄밀히 보면 단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대가 정상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이 아닌 것을 가지게 하면 안 된다는 것.
“대장님.”
그때, 레이더의 영상을 보고 있던 송한이가 태영을 불렀다.
“응, 왜?”
“이 인근에는 생체 신호가 우리와 좌적, 우적 외에는 없는데요. 서북 방향 200킬로 지점에 상당한 무리의 생체 신호가 잡혀요.”
“또?”
“아, 잠깐요. 그런데 이건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레이더에서 찾아내는 생체 신호는 정온 동물만 해당하기에 변온 생물에 해당하는 곤충이나 파충류, 그리고 어류 따위는 나타나지 않는다.
생쥐 같은 작은 크기는 레이더 자체에서 설정 값으로 걸러 내고 있으니, 사람이 아니라면 큰 동물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뭐지?
일단, 거리상으로 보면 가까우니 한번 가 볼까?
“그리 짐작하는 이유는 왜?”
“사람과 함께 움직이면 금속류가 포착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어요.”
“동물들의 무리인가? 그럼 거기에는 신경 쓰지 말고, 탐지기에 포착된 몽골군으로 추정되는 생체 집단이 진짜 몽골군이 맞는지 확인을 좀 하자고.”
“몽골군이면요?”
잔디가 물었다.
몽골이 맞으면,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29년 동안, 3백여 만의 인구를 가진 고려에서 1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다치는, 처절한 전쟁의 참화가 시작되려는 거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참혹한 전쟁.
어쩌면, 태영이 알고 있는 여몽 전쟁이 더 빨리 시작될 수도 있다.
저고여가 살해당하고 많은 다툼이 발생한 후에 국교를 단절하는 과정 대신, 저고여는 살아 있을 것이고, 그보다 훨씬 먼저 국교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변화된 내용일 수 있다.
“막아야지, 그리고…….”
그리고 단 한 명도 살아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태영은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몽골이 쳐내려왔을 때, 황실과 무인 권력 집단은 해전에 취약한 몽골군을 피해 강화도에 들어앉았다.
몽골군은 그들, 황실과 권력 집단을 강화도에서 끌어내기 위해, 고려의 양민들을 무차별로 죽이고 다녔다.
죽이고 죽이다 보면, 강화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은 서슴없이 실천했다.
그들은 절대로 영웅이 아니었다.
그게 영웅이라면, 지금 태영이 비행 날개를 메고 플라즈마 포를 들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것도 영웅의 길이라 할 수 있겠네?
그들은 악마들의 집단일 뿐이다.
악마적 광기를 온몸에 두르고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모두를 죽이고 다닌, 미친 살육 집단일 뿐이다.
그래서 몽골이 더 밉다. 왜구들, 왜인들만큼 밉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모두 멸한다.”
“그 말씀 기다렸습니다.”
잔디는 왜 이리 좋아할까?
유시완과 혼인한 지 제법 되었는데 아이도 가지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
영환이와 함께하는 정하연의 개경 나들이를 습격한 몽골인, 그 몽골인들을 모두 잡아와 무릎을 꿇려 달라고 한 정하연의 요구를 정말 액면 그대로 집행할 생각인가?
그때까지는 정말 아이도 갖지 않고, 정하연이 요청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 놓은 뒤에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21세기의 사람인 태영의 사고방식으로는 이것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비록 잔디는 평민이었고, 정하연은 양반 집안, 그것도 호장의 딸이었다고 해도, 사포와 율촌은 반상의 구분이 사라졌다.
그리고 군에서의 잔디의 계급도 계급이지만, 위상이 대단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정하연이 하는 말은 아주 사소한 일조차도 모든 것을 한다.
“그 병력들의 이동 속도는 어때?”
“그다지 빠르지 않아요. 그동안의 이동 거리로 봐서 하루에 25킬로 정도 이동했어요.”
“그래?”
생각보다 속도가 느리다.
왜 그럴까 하는 것을 잠시 생각해 봤다.
언제나 태영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대식 장비가 아닌 동물을 이용하는 이동에는 한계가 있다.
말은 기동성이 좋아서 빨리 달리지만, 대신에 지구력이 약해서 쉽게 지친다.
그 때문에 전투를 위한 속도와 단순 이동을 위한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말이 지쳐서 더는 갈 수 없을 때까지 속도를 내는 것은, 목전에 있는 전투를 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주 미련한 짓이다.
그 말을 버리고 갈 것이 아니라면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500킬로라고 했지?”
“네.”
“아, 유진이가 없구나.”
“왜요?”
송한이가 물었다.
“그 지점에서 의주까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
“1천 킬로 정도 돼요.”
“어떻게 알았어?”
“저도 진이랑 같이 있다 보니, 지도를 제법 잘 봐요. 그리고 진이에게 물어보고 확인도 했어요.”
“오, 잘했네.”
하긴 늘 같이 있으면서 같이 쳐다보면 알아지는 것이 맞지.
저들이 몽골군이 맞고, 고려를 침공하러 가는 것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1천 킬로를 매일 25킬로씩 가면 40일이 걸린다.
길을 순서적으로 보면, 지금 몽골군이 있는 지점은 만리장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대흥안령산맥을 넘어가야 하고, 요동벌을 지나서 다시 장백산맥을 넘어가야 한다.
몽골군에게 요동벌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두 산맥을 넘는 것은 기일을 제법 지체하게 될 것이다.
장거리 이동이라는 것이 항상 변수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 것이 없다고 보고, 저들이 저 속도로 계속 간다고 했을 때, 50일쯤 후에 압록강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강행군을 해 왔으니 얼마간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방해를 좀 해 줄 필요가 있겠는데.
“최소한 두 달은 걸릴 것 같죠?”
태영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서윤도 계산을 해 본 모양이다.
“두 달은 걸리죠.”
송한이도 맞장구를 치는데 다들 그 정도 걸릴 것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렇게 생각돼.”
“그럼 얼마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응, 당분간은.”
“대장님, 좌적과 우적이 근접한 지점에서 생체 신호가 갑자기 빠르게 소멸되고 있어요.”
잠시 여유를 가지는데 조금 빨라진 서윤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전투가 격해지는가?”
미군과 이슬람 반군 간의 전투가 갑자기?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네, 그래 보여요.”
“자, 저들의 전투가 격해지면 우리에겐 좋은 일이니까, 우리 쪽으로는 오지 않나?”
“네, 그럴 조짐은 보이지 않아요.”
우리 쪽으로 오지 않으면 좋은 거지.
열심히, 피 터지게 싸워서 한쪽에 두세 명 남으면 그때 싸그리 정리해 버리고 장비를 노획해서 가면 된다.
“새별이가 언제쯤 돌아올까요?”
레이더 화면을 보고 있던 서윤이 물었다.
“아마도 내일 오후는 되어야 올 수 있을 거야.”
“흠.”
“왜 애들 때문에?”
“네, 아무래도 모레까지는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 전에 몽골군으로 예상되는 저쪽을 확인할 수 있겠죠?”
“그 전에 끝내 보자고. 그렇게 안 되면 일단 한 실장이라도 먼저 돌아가고. 마침 호버리에도 여유가 있으니까.”
“네, 가능하면 확인한 후 돌아가고 싶지만,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그 전에 한이에게 탐지기 사용법은 문제없도록 잘 가르쳐 주고 가.”
주위에는 정찰조 병사들이 보고 있지만, 레이더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은 뭐가 뭔지 구분을 해내지 못한다.
옆에 정보를 알려 주는 창이 있지만, 그건 모두 영어이다.
영어로 알려 주는 정보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고, 영상을 판별하는 노하우도 어느 정도 익혀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레이더 영상으로 무엇이 어찌 되는지 판별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이 장비를 통해 생체의 이동 현황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지금도 별문제는 없어 보이니까, 이제 숙련만 하면 될 것 같아요.”
“맞아?”
태영이 송한이에게 물었다.
“네, 잘 배우고 있어요. 실장님이 정말 잘 가르쳐 주세요.”
“좌적이 남서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레이더 화면에 눈이 가 있던 한서윤이 말했다.
“어디 나도 좀 볼까?”
“네, 여기.”
한서윤이 영상을 조금 돌려 주었다.
“많이 줄어들었네.”
무기는 미군 쪽이 우세할 것으로 봤지만, 아무래도 병력의 숫자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 보니 미군이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치익~
그때, 무전기에서 나는 특유의 소리가 들렸다.
미군이 준 무전기?
<This is Conrad, General Edwin, do you copy? (콘라드다, 제너럴 에뒨, 들리는가?)”
그때, 미군 측에서 건네준 무전기에서 태영이 미군들에게 알려 준 이름을 불렀다.
말소리보다 귀를 찢는 듯한 요란한 총성이 더 크게 들렸지만, 분명 태영을 부르는 것이 맞다.
다시 그 목소리가 들리면서 요란한 총소리가 무전기 안에서 함께 울려왔다.
무전기에서 콘라드의 음성이 들리는 그 잠깐 사이에 총소리가 무수히 섞여 들어왔다.
하, 왜 이제야.
그러고 보니, 저들이 여태까지 저 무전기로 명령하고 답변하고 했을 텐데,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린 것은 처음이다.
생각해 보니, 콘라드가 뛰어가면서 채널을 바꾸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대장님.”
서윤이 태영의 짐에 올려져 있는 무전기를 눈으로 가리켰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통신 용어와 일상용어가 조금씩 다르기에 ‘do you copy?’를 서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를 알아듣기에 답을 할 거냐고 묻는 것이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황은?”
여태까지 레이더 영상을 보고 있었으면서도 서윤에게 다시 물었다.
“우적의 생체 신호가 더 빨리 사라지고 있지만, 좌적의 생체 신호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잔여 생존자가 30명 이하로 줄었고, 방금 차량이 폭파되면서 세 명의 생체 신호가 사라졌어요.”
알라봉에 당했군.
애타게 부르는,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또 들렸다.
콘라드의 외침보다 더 거친 호흡과 목이 갈라진 듯한 음성, 그리고 그와 함께 섞여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총소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알려 주었다.
그러는 중에도 레이더 상에 미군의 생체 신호는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이슬람 반군 쪽의 생체 신호는 더욱 빠르게 사라졌다.
병력 규모의 차이가 워낙 크다.
이런 때에 통신으로 공중 지원을 받아야만 저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21세기와 달리 이곳에서는 지원해 줄 아군이 없다.
미군은 곧 전멸할 것이다.
그래도 지원해 줄 수가 없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절박한데 뭐라고 해요?”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느낌으로 봐선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상황이다.
그것을 다들 알고 있기에 모두 침묵하고 있는데, 송한이가 짠한 표정으로 서윤에게 물었다.
“뭐래요? 실장님.”
송한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잔디 역시 서윤을 보면서 물었다.
“도와 달래. 이대로 가면 모두 죽을 것 같다고.”
“흐음.”
“그런데, 우린 도와줄 수가 없어.”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은 태영이 했다.
“아니 도와서는 안 돼.”
잠시 뜸을 들였다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가슴이 조금 아프다.
왜구들이 무전 같은 것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살육하면서는 조금도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었다.
아마 앞으로 몽골군을 상대하면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콘라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성적으로는 저들이 모두 죽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제너럴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데도 왜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제법 스산한 한기를 품고 있는 청명한 하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신선한 느낌의 하늘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다시 들려온 콘라드의 목소리는 더욱 더 갈라져 있었고, 마치 피를 토해 내는 것 같다.
그래, 미안하다.
“이름을 에뒨이라고 알려 주셨어요?”
콘라드가 보내는 무전을 침묵으로 듣고 있던 서윤이 물었다.
“……응.”
서윤의 질문에 가슴을 쓸면서 대답했다.
이성적으로는 원래부터 이렇게 서로 간에 상잔하기를 원했는데,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 미묘한 감정, 그리고 흰색 깃발을 들고 찾아간 이유.
그 이유는 스스로 알고 있다.
말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사는 나라가 다르고, 처한 현실이 다르지만, 자신과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사람들이다.
같은 21세기.
몇 년의 차이는 있었지만, 같은 21세기를 공유했던 사람들.
비록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냥 그 시대의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솔직히 그랬다.
그런데 이 기분은, 이 묘한 느낌은 무엇일까?
“향수인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향수라면, 태영이 느끼는 고향이라는 의미는 그런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태영에게는 21세기가 고향이다.
그리고 그 21세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좌적 남은 생체 신호 아홉.”
이제 9명이 살아 있단다.
서윤은 태영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생존자 수를 말하는 잔디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 말에 정신을 차렸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은 머리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그러니, 그리워하지 말자.
“우적은?”
잔디에게 물었다.
“약 350 정도입니다.”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다고?
미군들보다 이슬람 반군의 숫자가 워낙 많기는 했다.
분명 그들은 화력이 월등히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을 텐데?
미군을 좌적으로 지칭하기로 했으니, 이 상황에서도 좌적으로 부를 수밖에 없지만, 조금은 의외다.
그사이에 전투는 더욱 격렬해지고, 그와 함께 생존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처음엔 60 대 500 정도였다.
이슬람 반군이 8배가 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젯밤과 오늘, 양 진영이 부딪치며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잔이 끝나면 취득해야 할 전리품 중에 이슬람 쪽의 것들은 포기하자.
총이나 총탄은 아쉽지 않아도 트럭 같은 것은 아쉬운데, 상황이 이 정도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을 굳혔다.
왜 이렇게 21세기 군을 만나서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송준일.”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리움과 전리품에 대한 미련을 버리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넵, 대장님.”
“플라즈마 포 이리 줘.”
“넵.”
“비행 날개도.”
“방금, 좌적 둘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좌적, 즉 미군은 이제 7명이 남았다.
우적은 워낙 많으니 남은 숫자를 알 수도 없다.
Wiped out이라는 말을 끝으로 콘라드의 무전은 더 이상 없었다.
콘라드는 죽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은 지웠다.
깍듯하게 경례를 해서, 한국에 파병 근무한 적이 있어서,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어서, 하는 생각도 지웠다.
비행 날개를 몸에 채우고, 헬멧을 머리에 쓰는 시간이면, 그런 것들을 지워 내는데 충분했다.
“여기.”
송준일이 건네주는 플라즈마 포를 어깨에 올림과 동시에 전원을 넣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태영이 비행 날개를 착용할 때, 서로 간에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유시완과 이잔디, 그리고 송준일이 서둘러 비행 날개를 몸에 장착하더니, 공중으로 함께 솟아올랐다.
아마도 누가 태영의 곁에 따라붙을 것인가에 대한 것을 정했던 듯싶다.
서윤은 레이더의 영상을 보여 주는 스크린 패드를 들고 송한이와 다른 병사들과 함께 지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몇 사람이 손으로 빛을 가리고 태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이동해야 해.”
아무리 플라즈마 포로 저들을 소멸시켜도 제대로 조준하려면 적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좋다.
“네.”
그런데 미군은 그냥 남겨 두고, 이슬람 군인 우적만 잡으려면 훨씬 더 가까이 가야 한다.
태영은 우적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날아가고 있는 중에 또 몇 명의 미군이 죽을까 싶어서 속도를 빠르게 했다.
조준경에 눈을 가져갔다.
우적의 주력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 8킬로.
콘라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이제 생존한 이슬람 반군은 태영의 몫으로 남겨졌고, 그들을 잡아야 하기에 혹시나 운이 좋아서 살아난다면, 하는 생각은 있었다.
나머지는 그때 생각하자.
스코프를 통해 이슬람 반군 세력들이 보였다.
미군 쪽에는 조금 전까지 7명이 살아 있다고 했기에, 가능하면 플라즈마 포의 소멸 영역에 미군이 있는 위치를 피해서 조준했다.
이 한 방에 이슬람 반군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부분이 사라질 터였다.
빙~
플라즈마 포에서 나는 특유의 음향이 태영의 귀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