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80
280. 미래와의 조우(9)
“제가 들어 올려서 거기로 보낼게요.”
태영이 콘라드의 어깨를 잡고 파 둔 구덩이로 끌자 서윤이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아니야, 내가 할게.”
“네.”
태영은 콘라드의 시신을 끌어다 구덩이에 넣고, 팔과 다리를 가지런히 한 후에 콘라드의 배낭에 들어 있어서 미리 한 개를 챙겨 온 수건을 얼굴에 덮었다.
그리고 다시 흙으로 채워 봉분이 없는 무덤을 만들었다.
이런 황무지에 시신을 훼손할 짐승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화를 나눈 21세기의 사람이기에 이렇게라도 해 주고 나니 다행이다 싶다.
“아버지 묻을 때가 생각이 나요.”
서윤이 침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서윤의 아버지.
태영에게는 장인이 되지만 죽음의 현장에서 말 한마디 나누어 보지 못하고, 방금 콘라드를 묻은 것처럼 묻어야 했던 사람이다.
비록 아내와 자식들의 곁에 묻어 주었다는 것이지만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서윤의 아버지를 묻을 때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서윤을 보니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아, 괜히 이 상황을 만들어서 또 눈물 흘리게 만드네.
송한이는 그때의 이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서윤의 등을 쓸며 토닥거려 주었고, 서윤은 송한이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송한이는 왜인들에게 끌려가 몇 년이나 있다가 왔기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태영에게서 구해져 사포로 돌아온 후, 자신이 살던 집으로 찾아가 보기 전에는 아버지의 죽음조차도 몰랐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 다 가족의 일부나 모두를 떠나보낸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태영은 두 사람을 함께 끌어당겨 가만히 안아 주었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안겨 들어왔다.
얼마간, 아니 제법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다.
“자, 이동하자.”
태영이 분위기를 깼다.
“후, 네.”
대답은 서윤이 먼저였다.
“네, 가요.”
송한이는 소맷자락으로 눈을 비비고는 재빨리 JLTV에 올랐다.
조별로 편성되어 21세기에서 이곳으로 날아온 장비들을 대부분 회수했을 때는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낮이 되니 여기도 제법 따뜻하네요.”
송한이가 빛나는 햇살 속으로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낮에는 제법 따뜻해. 그래도 우리가 입은 옷이 따뜻해서 그럴 거야.”
밤에는 꽤 추웠지만, 타격조의 호버리에는 석유를 사용하는 소형 난로가 몇 개 들어 있어서 천막마다 사용할 수가 있었다.
또, 야영지 부근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제법 많았기에 난방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만큼 마른 나무를 구할 수도 있어서 밤에는 따뜻하게 보낼 수가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이 모두 22대, 외관은 괜찮아 보이는데 움직일 수 없는 차량이 12대, 파손된 것들이 6대가 있는데, 이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이곳으로 끌고 왔다.
JLTV에도 모양이 조금 다른 것이 섞여 있는데 모두 17대, 트럭이 3대, 지프차로 보이는 것이 3대였다.
지프는 이슬람 반군의 것으로 보이는데, 플라즈마 포의 소멸 영역 바깥에 있었던 모양이다.
“저런 종류를 1번, 저것을 2번, 저건 3번 이렇게 구분했을 때, 이리 끌고 오지 못한 것 숫자를 파악해 봐.”
1번은 JLTV, 2번은 트럭, 3번은 지프인데, 그게 설명을 안 해도 되니 편했다.
멀쩡히 보이는 차량은 대부분 움직일 수 있었다.
차량 이외에도 미군 영역에 이슬람 무장 세력의 차량과 사망자가 많이 섞여 있어서, 그쪽의 장비들도 꽤 많이 회수되어 왔다.
“대장님, 그 바렛이라는 총 2정이 더 있었습니다.”
유시완이 바렛을 이미 따로 빼서 세워 두고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 그거 아주 좋네. 일단 내가 한 정 쓸 테니까, 나중에 타격조나 정찰조에서 누군가가 적당히 사용하면 되겠네.”
대충 보니 타격조에서 눈을 빛내는 병사가 몇 보였다.
바렛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지만, 총 자체의 보디라인만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총의 보디라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을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네, 왜요?”
미군에게 에이브럼스 탱크 같은 기갑 장비가 왜 없었지?
에이브럼스 탱크가 있었으면 알라봉 같은 무기에도 견뎌 내니까, 어쩌면 숫자의 열세를 극복하고, 그들이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에이브럼스 탱크 하면 사막 작전에 투입되어 모래색으로 도장된 모습을 훨씬 자주 보았다.
중량 60톤이 넘어가는 철갑 괴물.
물론, 적의 알라봉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 방어력을 지니기 위해, 열화우라늄 장갑을 적용한 탓에 장갑 무게만 40톤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거 하나 있었으면 이슬람 반군 정도는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왜 이 부대는 그게 없었을까?
그리고 그걸 사포로 가져가면 정말 좋았을 텐데.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왜요, 대장님?”
그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고 대략 줄여 버리자 서윤이 다시 물었지만, 왜 없었는지 이유를 생각해 봐야 소용없다.
“다들 고생했어. 여기까지 하고, 점심을 먹지.”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오후에는 유진이가 1군단과 2군단의 호버리를 끌고 도착할 것이니, 지금부터 점심 식사를 하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그들을 맞으면 된다.
그리고 남아 있는 물건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을 마저 주워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차량들을 모두 매달고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오늘보다는 내일 출발하는 것이 나을 터였다.
생각을 정리하며 점심으로 뭘 먹지 하다가 JLTV에 실려 있던 물건이 생각났다.
그래서 송한이가 운전하고 들어온 JLTV 안으로 들어가 종이 박스 한 개를 들고 나왔다.
“그게 뭡니꺼? 제가 몰고 온 차 안에도 많이 있던데.”
밖에서 상자를 받아 들던 송준일이 물었다.
“먹을거리.”
“아, 근데 먹는 거라구요? 실장님, 이거 읽을 수 있십니꺼?”
태영의 대답에 박스 바깥에 인쇄들 글씨들을 훑어보던 송준일이 한서윤을 쳐다보며 물었다.
송한이의 동생이기에 사석에서는 한서윤에게 누나라고 부르다 보니 그래도 쉽게 말하는 편이다.
이놈은 아직도 그 특유의 억양과 사투리를 벗어 던지지 못했다.
송준일이 든 종이 박스에는 MRE라는 커다란 글씨가 씌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크기의 영어로 된 글이 빼곡했다.
“그거 영어인데. 이리 가지고 와 봐.”
“네, 실장님. 그런데 대체 이 이상한 꼬부랑 꼬부랑이 글씨라구요? 지렁이도 아니고 이게 뭐지 대체?”
송준일은 야외용 테이블 위에 종이 박스를 얹었다.
그러고는 허리에 걸린 단검을 뽑아 테이프 자국을 건드리는 대신 박스의 귀퉁이에 칼끝을 가져가 쿡쿡 찔러 보았다.
“단단하지는 않네.”
테이프만 자르면 열리는 종이 상자인 줄 모르다 보니 저런 현상이 생긴다.
“칼로 찌르면 안 돼. 그렇게 여는 거 아니야.”
“네? 네.”
송준일이 대답하며 단검을 칼집에 다시 집어넣었다.
태영이 그곳으로 가서 단검을 빼어 들고는 우선 들기 쉽도록 단단하게 매어진 줄 두 개를 자른 후, 테이프 자국을 따라 한번 그었다.
툭~
박스를 열자 안에는 짙은 카키색에 검정 글씨가 쓰인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다.
종류별로 맛이 다른 것 같은데, 태영이 기억하기로는 12개일 것이다.
“이게 뭡니까?”
태영이 칼로 상자를 개봉하는 모습을 여전히 지켜보던 조현태가 물었다.
“이거 야외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전투 식량이라는 건데.”
미군 전투 식량 MRE는 원래 Meal, Ready-to-Eat의 첫 글자를 딴 것이지만, 그 맛은 악명이 높다.
Meals Rejected by Ethiopians(에티오피아 난민들이 거부한 식량)이라거나, Materials Resembling Edibles (먹는 것 비슷한 물건) 같은 별명이 수없이 많다.
그나저나 참 재미있게도, 그렇게 악명 높은 미국 전투 식량의 맛을 고려 시대에 와서 보게 될 것 같다.
“식량이요? 이거 도저히 먹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요?”
그렇지 이놈아, 비닐을 어찌 먹나?
“한 실장.”
“네, 제가 이거 해석해 줘야 하는 거죠?”
“맞아. 그 봉지 바깥에 조리법이 적혀 있는데, 발열체가 안에 들어 있어서 끓이는 역할을 하는 거니까, 화상 입지 않도록 해 주고.”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저게 먹는 건데 스스로 열을 내는 거야?’
‘방금 대장님이 그러셨잖아? 화상 입지 않도록 하라는 말 못 들었어?’
‘보기에는 전혀 뜨거워 보이지 않는데?’
불도 없이 발열체를 이용하여 저걸 끓여서 먹는 걸 실제로 해 보면 얼마나 놀랄까?
“치킨 위드 칠리? 치킨 파히타? 꽤 여러 개가 들어 있는데, 모두 다른 음식인가 봐요?”
“아마도 그럴걸?”
“그런데, 치킨 누들, 이건 돼지고기이고, 치킨 토마토 이거 대부분이 닭고기 요리인데. 아, 여기 소고기 구이, 이것도 소고기.”
이것저것 봉지를 계속 집어내면서 말했다.
“실장님, 어떤 것이 닭고기이고, 어떤 것이 소고기라고요?”
곁에서 보던 잔디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음, 그게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내가 조리법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요기에 어떻게 음식을 넣은 거지?”
서윤 역시 이렇게 비닐 포장된 휴대형 식량을 본 적이 없으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서윤이 치킨 토마토라고 했던 것 같은데, 토마토소스와 치킨이 어울리는 것이 뭐가 있지?
혹시 파스타 아닐까?
“아무튼, 송준일.”
“네, 대장님.”
“이런 상자가 작전 차량마다 있을 거니까 2개쯤 더 꺼내 와.”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송준일이 가까운 곳의 JLTV에 들어가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MRE 두 상자를 들고 나왔다.
“이거 저 안에 무지 많이 있는데요. 다른 차량에도 그만큼씩 있으면 양이 제법 많겠습니다.”
“자, 한 실장에게 조리법 설명 듣고 오늘 저녁은 전투 식량으로 해결해 보자. 참고로 그 안에 있는 봉지마다 조리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하니까 잘 들어 두도록 해.”
입맛에 맞으려나?
절대로 목으로 넘기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
점심을 먹고 난 후.
“아, 저는 저거 못 먹습니다. 절대로 입에도 안 댈 겁니다.”
MRE를 먹으면서 고생을 한 타격조의 병사 몇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절대로 안 먹겠다고 한다.
“맛이 있던데.”
유진이었다.
이놈은 정말 잘 먹었고, 태영이 먹는 파스타를 맛보고는 다른 상자에서 파스타를 찾아 결국 한 봉지 더 먹었다.
“자자, 이제 수거해 온 노획물들 분류하자고.”
“넵, 알겠습니다.”
점심 후의 나른한 시간을 휴식으로 잠시 보내고 수거해 온 노획물들의 분류를 서둘렀다.
모든 것들이 이 시대의 이 땅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태영의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전기와 스마트폰이다.
무기는 비록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지만, 사포에서도 생산을 하고 있기에 별문제는 없다.
그러나 무전기와 같은 전자 장비들은 어떤 이유로 열리는지도 모르는 피디지를 통해서 미래에서 오는 물건들을 제외하고는 확보할 방법이 없다.
특히, 미군들이 지니고 있던 무전기는 생산한 지 오래되지 않았을 테니 앞으로도 꽤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장님, 이건 뭔데요? Camel, Marlboro? 몸에 해롭다고 되어 있는데요.”
서윤이 담뱃갑 몇 개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쌓아 둔 물건 중에 담배가 제법 많은데, 몸에 해로운 것은 맞지.
개인의 주머니에도 들어 있었지만, JLTV 안에도 상자째로 들어 있는 담배가 제법 있었다.
태영이 흡연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굿 찬스였겠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오히려 거북하다.
대충 보아하니 전자 담배도 몇 개 보였다.
“그거 담배라고, 불량 기호품이야.”
“불량 기호품이요?”
“응, 그 종류는 모두 이쪽으로 모아. 다 태워야겠어.”
“기호품이라면, 어찌 사용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한번 사용해 봐도 되나요?”
담뱃갑을 모아서 타격조의 조현태가 다른 병사에게 넘기다가 태영에게 물었다.
“절대 안 돼. 그리고 조금의 호기심도 가지지 말 것.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으로 보내도록 해.”
태영은 송준일에게 담배를 모두 보자기에 싸서 들게 하고, 전자 담배도 그 안에 넣었다.
“구덩이 하나 파서 그 안에 모두 쏟아 넣어라.”
“네, 대장님.”
대답을 하는 송준일이나 주위의 다른 병사들도 조현태의 말을 들었는지 눈이 자꾸 돌아간다.
관심의 정도로 보아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보았다면 바로 입에 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입에 문 광경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어떻게 하는지조차도 모른다.
“거기, 누가 난방용 석유통 좀 가자고 와.”
“넵.”
‘저게 뭐길래 절대 안 된다고 하시지?’
대답을 하며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본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이다.
구덩이를 반쯤 판 송준일에게 삽을 넘겨받아서 재빨리 구덩이를 파내고 그 안으로 담배를 쏟아부었다.
10갑들이 새 보루를 뜯지도 않은 것까지 합치면 300갑은 충분히 넘어 보였다.
태영이 처음 보았을 때 미군의 숫자가 60여 명이었으니, 한 사람당 5갑 이상은 소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석유를 조금 부어서 불이 잘 붙도록 만든 후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노획물 중에는 지포 라이터를 포함해서 수많은 라이터들이 있었으니, 또 얼마간은 라이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구덩이 속의 담배는 석유에 힘입어 곧바로 전체가 한꺼번에 타오르면서 연기와 함께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다.
“흠, 냄새는 아주 좋은데요. 뭔가 모르게 끌리는 냄새인데요?”
뒤따라 나오던 유시완이다.
담배가 있던 시절이었다면 어쩌면 골초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아직 담배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저것에 맛 들이면 쉽게 끊어 내지 못해. 여러 가지 불치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아, 네.”
구할 수 없으면 자동으로 끊어 내어지겠지만, 아마도 참지 못하면 풀이라도 태우게 될 것이다.
담배 냄새 때문인지 몇 명이 따라 나왔다.
냄새가 저들을 이리 오게끔 만든 건가?
21세기에서 태영이 담배를 피우지 않은 것은 순전히 경제 사정 때문이었다.
일단 담뱃값이 너무 비싼 데다,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께서 보내 주는 적은 용돈과 알바로 버는 정도로는 담배를 사 피울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삼각 김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허다한 주제에 담배라니.
이제 와 생각하면 무척이나 다행이다.
태영이 살던 때의 담배는 지탄의 대상이었지만, 아버지에게 들은 기억으로는 할아버지가 손주를 품에 안고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말씀이라고 항변했지만,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조선 시대에는 5살짜리도 담배를 피웠다고 하멜 표류기의 기록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건 조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청나라나 왜국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대장님, 켜지는 전화기가 모두 49대입니다.”
담배의 대부분이 재로 변했을 때 막사 쪽으로 들어오니 서윤이 스마트폰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스마트폰의 숫자는 많기도 했다.
파병 미군들이 작전 중에 스마트폰을 소지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영으로서는 횡재를 한 셈이다.
“많네. 동작 안 되는 것도 버리지 말고 모아 두도록 해.”
“네, 근데 이거, 모두 잠겨 있어요.”
태영은 생각난 것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를 들어 뒤집어 보았다.
한국의 그 유명한 S사의 안드로이드폰이다.
다음 것도 안드로이드폰이었는데, 그다음에 집은 것이 미국의 A사에서 나오는 폰이다.
“아, 이 거지 같은 건 어떡하지.”
그 유명한 A사 제품을 거지 같다고 하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이건 이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통하지 않으면 공장 초기화를 시켜도 지도나 음악 파일을 전송할 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태영이 A사의 폰을 쓴 적이 없어서 달리 방법이 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A사의 폰을 사용하는 같은 반 친구의 설명을 듣고, 절대로 그딴 기계는 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한 적은 있었다.
그 사이트를 통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그 역시 찾아볼 인터넷이 없으니 불가능이라고 봐야 한다.
“이 표시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분류해.”
잔디에게 한입 베어 문 사과 표시를 가리켰다.
“네.”
잔디가 왜 그러는 거지 하는 듯이 갸우뚱하고는 김별이 쪽으로 스마트폰을 밀어 주었다.
A사의 마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만 구분하면 되니 분류는 쉬웠다.
“이 표시 없는 것이 32대입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별일이다.
미국인들의 애국정신인지 충성심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A사 제품을 유난히 좋아한다.
혹시, 통신 네트워크 접속이 잘 안 되어서 사이트 접속을 통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문제점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다만, 물어볼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 혹시 블루투스 통신이라면 A사 제품도 공장 초기화를 시킨 후에 지도 다운로드는 가능할까?
그건 시험을 좀 해 봐야지.
하나를 들어 전원 버튼을 꾹 누르고 한참 지나자 멜로디 소리와 액정 화면이 밝아졌지만, 패턴 화면이 나온다.
이 폰은 화면에 얼굴이 보이는 것을 보니 홍채 인식을 사용하도록 설정된 모양이다.
뒤집어 보니 폰 후면의 카메라 옆으로 보이는 것은 지문 스캐너인 듯해서 손가락을 밀어 보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인식이 되지 않는다.
뭐, 당연하다.
어차피 홍채나 지문은 풀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번을 풀어야 하는데, 쉽지 않겠네.”
“비번요?”
“응, 이런 때 아시나가 아쉽네. 바로 풀어낼 텐데.”
테르가 살아 있고, 아시나가 있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사포로 보내서 하는 데까지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공장 초기화를 시켜야지.”
“공장 초기화시키면 비밀번호 몰라도 돼요?”
“응, 대신에 안에 있는 자료들은 건질 수 없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공장 초기화시키면 자료가 모두 날아가겠지만, 이 폰의 소지자들이 군인들이었으니 폰 안에 태영이 했던 것처럼 중요한 자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이나 음악, 그리고 야동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제조사마다 공장 초기화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대동소이하다.
태영이 서윤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유시완이나 잔디는 조금 알아듣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몰라서 눈만 굴리고 있었다.
“무전기는?”
“총 32대입니다. 그런데 이건 뭐죠?”
손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니 미군들의 무전기 중에 이어폰 리시버들이 있었다.
“아, 그건 귀에 꽂고 사용하는 거야.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인 이어까지 있으니 그것도 횡재한 것인데, 충전기도 충분히 있었다.
무전기는 항상 고맙지.
사단 단위로 1대씩 공급해도 될 정도의 수량인 데다가, 태영은 믈라유에서 얻어 온 무전기와 비행 헬멧에 있는 무전기도 있으니 양이 제법 되었다.
그때, 김별이가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유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