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290
290. 출정 준비 그리고 뜻밖의 사건(2)
똑똑~
“네.”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한쪽에 앉아 있던 송한이가 가서 문을 열었다.
“부실장님, 개경에서 1호 손님 오신다고 연락 왔습니다.”
김별이가 문을 조금 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부터 황제를 지칭하는 은어로 사용한 1호 손님.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은어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다.
“얼마나 남았어?”
“무전에서 10분이라고 했으니, 7~8분 후에는 도착 예상됩니다.”
“그래 알았어.”
***
위이이이잉~
호버리의 블레이드가 거의 멈추었을 정도로 착륙 후, 시간이 제법 흐른 다음에야 뒷문이 천천히 열렸다.
아무래도 의관을 정리하느라 그런 모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문이 열리고 허리쯤 보일 때 태영이 인사를 했다.
“대장님, 기다리고 있었소?”
“네, 그렇습니다.”
“아, 그럼 부지런히 내릴걸, 괜히 의관을 갖추느라 시간을 보냈네.”
전혀 미안하지 않으면서 조금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대장님, 반갑습니다.”
안혜 황후가 이 상궁의 손을 잡고 호버리에서 내렸다.
이 상궁이 더 늙었을 텐데.
“어서 오십시오.”
황후의 시선이 태영의 눈과 멀어지면서 손을 흔드는 걸 보니 송한이와 인사를 나누는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대장님.”
최세헌의 목소리가 들리고 황실 1호기 옆에 착륙한 그의 전용기인 조정 1호기에서 최세헌을 필두로 여러 사람이 내렸다.
그 뒤로는 조정에서 이번 행사에 참석하고자 했다는 조정의 대신들을 태우고 온 3대의 호버리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최세헌이 대표로 선두에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황제는 태영의 뒤쪽으로 각 군의 군단장들과 사단장을 비롯한 일단의 장군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을 보았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전체 차렷.”
뒤에서 석명환의 구령 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은 발을 옮겨 약간 비켜섰다.
“황제 폐하께 경례.”
충성~
엄청난 소리의 경례 구호가 들리고, 석명환이 돌아서는 소리가 들렸다.
“충성.”
황제의 손이 이마에 잠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바로.”
황제는 카펫에서 발을 옮겨 군단장들과 일일이 손을 잡았다.
그 뒤에 황후가 뒤따라가며 ‘반가워요’라거나, ‘고생이 많아요’라거나,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등의 짧은 인사나 덕담을 해 주고 지나갔다.
최세헌도 손을 한 번씩 잡아 주고 지나갔는데, 제법 많은 인원이 도열해 있었던 까닭에 그 시간이 제법 걸렸다.
황제를 보필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뒤따라 움직였다.
황제의 움직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뒤따라 붙는지.
그런데 황제를 따라온 조정의 대신들이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아주 가관이다.
공명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들렸다.
대체 공명의 도가 뭐냐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공명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소리나 할 자리냐고?
“하여튼 쓰잘데기없는 놈들.”
“네?”
태영이 워낙 조그맣게 중얼거린 탓인지 송한이가 물었다.
“주둥아리만 살아 있는 저놈들 말이야.”
“아, 네.”
송한이는 대답하면서 조정 대신들을 한번 돌아봤다.
황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면 저런 놈들은 모두 치워 버렸을 것이다.
태영이 황궁에 가서 조정 대신들과 부딪칠 일이 없다 보니, 거슬리는 놈들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치워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저런 놈들이 여전히 황제의 주위에서 얼쩡거리며 행세를 하고 있다.
가만 생각하면, 저놈들은 모두 개경에서부터 걸어오라 해야 하는데 괜히 호버리를 보내 준 거 같아.
갈 때는 뭔가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
고개를 돌려 한번 휘둘러보는데, 멀찍이 전중감 김호경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 보니 예은이란 녀석의 소식을 전해 줘야 하는데, 누가 전해 주었는지 모르겠다.
“수고했습니다.”
김호경에게 다가가서 아는 체를 했다.
“네, 덕분에 작은 원을 해결했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이런 때는 힘을 좀 실어 주기 위해 가벼운 인사가 필요하다.
특히 이번에 동행해 온 조정의 대신들이 워낙 많다.
일부러 김호경을 만나서 한번 아는 체해 주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클 것이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혹시 누가 괴롭히면 내가 열 일 제치고 가서 모조리 참살을 해 버리겠습니다.”
조금 오버했지만, 뭐 어때.
거기까지 한 후에 수인사가 거의 끝나 가는 황제의 옆으로 다가갔다.
뭐라고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안 들은 것처럼 했다.
“들어갑시다.”
수인사를 마친 황제가 태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 들어가시지요.”
황제가 앞장서서 본부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부 건물까지는 길을 안내하듯 몇 미터 간격으로 병사들이 서 있었기에 어디냐고 물어볼 필요 없이 걸었다.
“이제 준비가 완료되었소?”
발걸음을 옮기던 황제가 태영에게 물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젠 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마침, 몽골에서 국교를 단절하고 사신의 출입을 막은 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5만 병력으로 고려를 치기 위해 이미 출정한 상태이기에 이제 미룰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 소식은 들었소. 지금 어디쯤 왔소?”
“닷새쯤 지나면 대정부까지 올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이 지리 감각이 없듯, 당연히 거기가 어디쯤인지 모를 것이다.
“반 시진 후에 시작하겠습니다.”
대강당 입구에서 사령관실 담당관 이진범이 큰 소리로 태영에게 보고했다.
보고는 태영을 향했지만, 한 시간이라고 말하지 않고, 반 시진이라고 말한 것은 간접적으로 황제에게도 보고하는 것이다.
“그래, 준비되면 연통하도록 해.”
그렇게 말하고 대강당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전등이 켜져서 바깥처럼 환한 대강당에는 식탁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고, 다기 세트가 식탁마다 놓여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대강당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을 도와줄 도우미 여인들이 합창처럼 인사를 했다.
태영이 21세기 식으로 이름 지은 도우미들이다.
“허, 그래.”
인사를 받은 황제가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도우미라 불렀지만, 이들은 철산 기지 인근에 살면서 철산 기지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 미색이 뛰어난 여인들을 선별하여 오늘 대강당에서 안내하는 도우미를 시켰다고 들었다.
그들은 각자의 소임대로 자리를 안내하고, 의자를 빼어 주고, 의자에 앉을 때 옷을 가지런히 해 주고 할 것이다.
비서실에서 저들을 교육시켰으니, 황제 앞이거나 황후의 앞이라고 떨거나 넘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황제의 뒤를 이어 황후와 교정별감, 전중감과 지주사, 이 상궁까지 들어서자 병사들이 대강당의 출입을 막았다.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감히 앞을 막느냐?”
누구인지 모르지만, 대강당으로 들어가려는 길이 막히자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밖에서부터 공맹의 도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런 시건방진 놈이 있을 줄 알았다.
태영은 감히, 라는 저 말을 아주 싫어한다.
“치워라.”
유시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놈, 내가 네놈을 그냥 둘 줄 아느냐?”
“쯔쯔, 여기가 어딘 줄도 모르고, 주제넘게.”
고개를 돌려보던 석명환이 조용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는 대강당으로 들어섰다.
“권력 좀 있는 놈들은 규칙이나 규정 같은 것은 대놓고 무시하려 해.”
박진하의 목소리도 들렸다.
저렇게 자신의 직에 부여되는 작은 위세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고함치는 놈을 그냥은 못 보내지.
태영과 송한이가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
소리 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태영은 모르지만, 최세헌은 알 것이다.
태영이 최세헌의 팔꿈치를 툭 쳤다.
“폐하, 규칙을 무시하고 소란을 피운 사람은 이곳의 규칙에 맞게 벌을 주더라도 못 본 척하여 주십시오.”
“그럽시다. 황실에서도 법도를 어기면 그리하는 것을.”
황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자신을 안내하는 도우미를 따라 의자에 앉았고, 황후 역시 안내를 따라 움직였다.
황제가 온 이상, 자리에 착석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황제와 황후.
거기서 조금 떨어져 최세헌.
태영과 송한이.
맞은편에 다섯 명의 군단장.
그래도 최세헌과 군단장들은 앉지 않고 서서 기다리고 있다.
“자, 앉읍시다.”
도우미들이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다가, 줄지어 나가더니 더운물이 들어 있는 은색의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찻주전자의 뚜껑을 열고 조심스레 물을 부었다.
그런데, 황제가 자신의 식탁 앞에 와서 시중을 드는 두 여인 중에서 찻주전자에 물을 따르는 여인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의 신상은 태영도 확인해서 알고 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저 아이를 황제의 시중을 들도록 배정한 거야?
이름 김도이.
문제는, 이곳의 도우미들을 미인들로 추리긴 해도, 그들 모두를 압도할 정도로 저 아이는 정말 뛰어나게 예쁘다.
난리 났군.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는데, 이번에는 황후까지 김도이를 바라봤다.
“참으로 어여쁘지요?”
아 놔, 황후까지 왜 그러는 거야?
“이름이 무엇인고?”
이름까지 물어?
뭔가 꼬이는 느낌이다.
몽골을 치기 위한 출정식에 군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온 자리인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싶다.
“소녀 김도이라 하옵니다.”
그래도 떨지는 않고, 고개는 들고 눈은 내리깐 상태로 또박또박 대답을 잘했다.
행동을 저리하라고 교육시켰다고 했다.
“나이는?”
“열아홉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제가 황후를 쳐다봤다.
뭐야? 대체 뭔데? 왜 고개를 끄덕이는데?
“도이라 하였느냐?”
“네, 황후 마마.”
얘는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 차를 우려내어 찻잔에 따르는 일을 조금 느리게 할 뿐 멈추지 않았다.
“이름이 참으로 곱구나. 내가 개경으로 가자고 하면, 나를 따라갈 수 있겠느냐?”
황후가 물었다.
아 근데, 그걸 왜 황제가 묻지 않고 황후가 물어보느냐고?
“황공하옵지만, 그리할 수 없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우와, 권력과 부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황후가 가자고 하는데, 말 꺼내자마자 바로 까 버리네?
아까 저를 못 들어오게 했다고 고함지른 그런 놈이라면, 당장 난리난리 쳤을 것이다.
“왜 그러하느냐?”
모두들 숨을 죽이고 황후와 김도이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대강당 안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소인에게는 몸이 불편하여 거동하지 못하는 병든 아비가 있고, 아직은 저들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어린 두 동생이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황공하옵게도 황후 마마의 뜻에 따를 수 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도 차분하게 잘하지. 그리고 이유도 분명하고.
철산 기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기지 내의 학당에 의무적으로 다녀야 한다.
거기 다니지 않으면, 철산 기지에서 일할 수 없으니, 저 아이도 학당에 다니면서 배웠을 것이다.
나이 열아홉인데 아직 미혼인 이유가 이해되었다.
병든 아비와 동생 둘을 보살피느라 혼기가 지나도록 아직 혼인하지 못한 듯 하다.
“아비와 두 동생들도 함께 데려가 주마. 그러면 되겠느냐?”
황후는 추가적인 제안을 했다.
김도이가 고개를 조금 더 깊이 숙이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 경우에 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긍정이라는 뜻이 아닐까?
‘아마도 후궁이 될 것 같죠?’
송한이가 소리는 내지 않고 입으로만 물었다.
‘왜?’
뻔히 알면서 태영도 입으로만 물었다.
‘폐하께서 관심을 보이셨고, 황후께서 받아들이겠다고 하시잖아요?’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 고종 황제에게 본처인 안혜 황후 외에 단 한 명의 후궁이 저 아이가 되는 거 아닐까?
태영이 이 시대를 뒤흔들어 놓지 않았다면, 이곳 철산은 지리적으로 황제가 와서 하루쯤 지내고 갈 장소가 아니다.
개경 인근이나 강화도라면 몰라도.
‘평소에 잘해 주길 참 잘했어요.’
‘잘해 줬어?’
‘네, 마음도 예쁘고 얼굴도 너무 예쁘잖아요, 사정을 대충 알고 있었으니, 안타까워서 잘해 줬지요.’
‘질투는 안 하고?’
‘질투를 왜 해요?’
‘그냥.’
그렇다면 김도이가 후궁이 될 가능성이 태영이 알고 있는 역사에서는 없다.
그럼, 원래 역사에서 후궁이 되었던 사람은 어찌 되는 거야?
“대장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 뭐야?
왜 황후가 가만있는 사람을 훅 끌어들이는 거야?
“저 아이, 참으로 예쁘지 않아요?”
“부실장이 그러더군요.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고, 모든 사람들을 잘 도와주면서 책임감도 강하다구요.”
“그렇지요?”
“네.”
에이, 그냥 대충대충 대답해 줄걸.
“혹시 저 아이, 내가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나요?”
“아, 그것은 저의 권리가 아닙니다. 본인의 권리이지요.”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달라고 하긴 뭘 달라고 해?
“저 아이가 대장님을 두 번이나 쳐다보던데요?”
그랬나?
왜 몰랐지?
아니, 알았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인데?
송한이로부터 저 애도 태영 바라기라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지만, 태영에게 들이대는 여인네들을 줄 세우면 뒤로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쳐다본 것은 모르겠지만, 결정은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그럼, 대장님은 허락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리 생각해도 되는 거지요?”
왜 계속해서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려 해?
그런데 대충 지나가려는 태영의 의도를 눈치챈 것처럼, 태영에게 대답하라는 듯,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허 참.
“네.”
그 짧은 대답을 듣고 나서야 시선을 김도이에게 옮겼다.
왜 김도이의 어깨가 살짝 처지는 것 같지?
혼자만의 착각인가?
황제의 얼굴에 말로 할 수 없는 오묘한 웃음이 어렸다.
결정 났군.
모셔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순간이다.
일꾼으로 있던 아이가 상전이 되면 어찌 되는 거지?
김도이의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군단장들과 소소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전은 어찌 되느냐? 지리는 잘 아느냐? 하는 이야기.
박진하의 이야기가 한참을 이어졌다.
이곳의 군단장들 중에 박진하의 생애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어 왔으니 그럴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황제의 시선은 내내 김도이의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많이 빠졌군.
한눈에 반한 건가?
얼굴이 경국지색이기도 했지만, 제법 큰 키에,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도 기품이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똑똑~
문 앞을 지키고 섰던 도우미가 문을 살짝 열었다.
“준비되었습니다.”
유시완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