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
003. 왜구와의 전투
창을 든 사람, 칼을 든 사람들이 뒤엉켜서 서로 찌르고 베고 있는 모습이 생소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거 정말 장난 아니다.
이건 결코 사극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이 아니다. 정말 죽고 죽이는 싸움이었다.
‘뭐지, 대체 무슨 상황이야?’
쓰러진 사람들의 숫자가 제법 많은데, 한쪽의 복장은 사극에서 종종 보여 주는 관복처럼 보이는 한복이고, 다른 한쪽은 역시 사극에서 종종 봤던 왜구들의 모습이었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봤던 모습과 약간씩은 차이가 있었지만, 그게 그거인 것 같았다.
관복을 입은 쪽은 쓰러진 사람이 많고, 칼과 창을 들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불과 다섯.
찌르르르~
다시 몸에서 작은 떨림이 있어 주춤했지만,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보고 있는 사이에 관복을 입은 사람 한 명이 복부를 깊게 찔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복부를 찔린 사람의 등 뒤로 칼끝이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칼에 찔린 관복의 사람이 칼에 찔린 후에 힘없이 주저앉는 것으로 봐선 치명적인 상처인 듯했다.
그로 인해 관복은 여섯 명, 왜구의 복장을 한 사람은 열네다섯 명이었다.
복부에 칼을 깊게 찌른 왜구 복장의 사람이 칼에 찔린 사람을 발로 밀면서 칼을 빼내고는 칼을 한번 휘두르자 핏방울이 촤악 소리를 내며 뿌려졌다.
뽀복~
그때, 언제 태영의 앞에까지 다가왔는지 왜구 복장을 한 사람이 태영의 가슴을 칼로 찔렀다.
왜구 복장이 태영에게 다가온 줄도 몰랐는데, 그들의 싸움에 정신이 팔려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태영에게 달려와 칼로 찌른 것이다.
그래도 목을 베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목을 베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텐데, 태영의 가슴을 칼로 찔렀기에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방탄복.
칼에 찔린 자리에 무언가로 눌렀다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칼이 방탄복을 뚫지는 못했다.
“x$%^&***$%”
정신을 차리고 태영을 찌른 왜구를 쳐다보는 사이에 뭐라고 고함치면서 그자의 칼이 태영을 사선으로 자를 듯이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귓가를 스쳐 갔다.
“윽.”
재빨리 피한다고 피하긴 했지만,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모양이다. 방탄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어깨에서 화끈한 통증이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짚었다가 떼어 보니 손바닥에 피가 묻어 나왔다.
방탄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을 스쳐 갔기에 심하게 베이지는 않은 듯 피가 많이 배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칼을 맞은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아씨, 이건 뭐야?”
태영이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어서 왜구를 쳐다보고 상처를 돌아보는 그 짧은 시간, 어깨를 벤 왜구가 다시 몸을 움직이며 태영을 찔러 왔다.
이건, 아니다.
현대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쟁 시를 제외하고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여기서, 지금 이 시간에 말로 하는 항변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머릿속을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뽁~
왜구의 칼끝이 다시 방탄복의 한곳을 찔렀다.
총.
나를 죽이려 하는데 멍청하게 가만히 서서 죽어 줄 수는 없다.
태영은 왜구의 칼을 피해 뒤로 움직이면서 어깨에 걸친 K1 기관단총을 재빨리 회전시키며, 앞으로 내미는 동작과 동시에 노리쇠를 당기고는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자마자 엄지로 안전 레버를 젖혔다.
이 동작들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평소에도 비록 총탄이 들어 있지 않은 빈총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지급된 돌격 소총인 신형 카빈 소총 K2C를 어깨에 거꾸로 메고 있다가 앞으로 당겨 잡으면서 노리쇠의 후퇴와 동시에 안전 레버를 제치고 방아쇠를 당기는 연습을 종종 했던 그대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탕, 탕, 타아아아앙~
연속해서 당긴 방아쇠에 3번의 총성이 울리면서, 불과 1초쯤의 시간이 흐른 후 산골짜기를 한 바퀴 돌아 나온 메아리가 귓전에 울림을 남기고 지나갔다.
다급한 상황이라 엉겁결에 2발을 연속으로 발사하고, 그것이 예광탄이었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즉시 한 발을 더 쏘았다.
그 소리의 끝에 왜구가 마치 바람에 밀려나듯 뒷걸음치면서 비틀거리더니 몸이 푹 고꾸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서로 간에 칼부림을 하고 있던 관군 복장과 왜구들이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거나 엎드리는 모습이 보였다.
“헉!”
태영도 순간적으로 너무나 놀랐다. 내가 사람에게 총을 쏘다니.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쓰러지는 왜구의 얼굴에 나타난 어이없어하는 표정, 황망히 구르는 눈동자, 쓰러지기 전부터 뒷걸음질 치면서 콸콸 쏟아지듯이 흘러내리는 피.
태영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피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그 피비린내와 함께 속에서 울컥하며 아침에 먹은 것이 넘어오려고 했다.
“우욱.”
입을 앙다물고 간신히 참으면서 쓰러진 사람을 내려다보자 쓰러진 몸에서 퍼져 나오면서 땅을 적셔 가는 검붉은 피가 태영의 시야에 들어왔다.
쿵. 쿠궁~
가슴이 쿵쾅거리며 북소리를 내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러다 드디어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군인의 신분이라 비록 표적 판을 놓고 하는 연습이긴 하지만, 수시로 사격 훈련도 하고 적을 죽이는 훈련을 수없이 해 왔어도, 정말로 이렇게 사람을 향해 총을 쏘지는 않는다.
전쟁이 나지 않는 한 결코 사람에게 총을 쏠 일은 없을 것이기에.
그런데 사람에게 총을 쏘았다.
태영을 죽이려 했기에 극한의 방어 본능이 튀어나오면서 쏘기는 했지만, 마치 잘 프로그램 된 동작을 그대로 하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쏘았다.
탄창의 첫 2발은 예광탄이었지만, 낮이라서 예광탄의 불빛은 밝지 않아도 선명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바닥에 주저앉거나 엎드린 사람들이 일제히 태영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관복을 입은 사람들도, 왜구 복장을 한 사람들도 모두 다 태영을 바라보았다.
“x$%^&***”
찰나의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데, 그 중에 정신을 차린 왜구 중 한 명이 일어서더니 칼을 곧추세우고 알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면서 태영의 방향으로 바람처럼 달려왔다.
저 말이 일본말이라는 것은 안다.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뜻을 모를 뿐, 일본어는 맞다.
그렇지만, 안 돼.
“덤비면 죽어. 나한테 덤비면 모두 다 죽을 거야. 그러니 나한테 덤비지 마.”
제발 덤비지 마.
마지막 말은 입안에서 나오지 않고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그런데 저들은 한국어를 모르고, 태영은 일본어를 모른다.
일본말을 할 줄 모르니, 태영이 외친 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가 없고, 저들이 계속 공격한다면 아무리 방탄복을 입고 있다고 해도 저 칼에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방탄복으로 가려지는 부분이 아닌, 목이나 얼굴에 찔리면 이 자리에서 즉사할 것이다.
설사 목이 아니라 팔이나 다리에 찔린다고 해도 차량도 없고, 야전 병원도 가까이 없는 이곳에서는 출혈로 인해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자신도 모르게 당겨졌다.
탕. 아아아앙~
예의 그 메아리가 산골짜기를 울리며 한 바퀴를 돌아오고 왜구는 달려오던 그 자세 그대로 몇 발자국 더 떼지 못하고 흙바닥에 엎어졌다. 이번의 왜구는 산골짜기를 돌아 나온 메아리보다 더 먼저 쓰러졌다.
그사이에 몸을 일으키던 사람들이 모두 다시 주저앉았다.
그 상태로 관복을 입은 사람뿐만 아니라, 왜구 복장을 한 사람 모두가 태영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관복을 입은 사람들의 얼굴에선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 같은 표정이 스치고 지나간 것에 반해, 왜구 복장은 황당함과 분함에 부르르 떠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이 쓰러졌는지, 어떻게 쓰러졌는지 모르겠다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길게 느껴진 그 순간, 왜구 복장의 사람들이 무언가 서로 간에 눈치를 주고받더니 한꺼번에 몸을 일으켜 태영을 향해 칼을 들었다.
헉.
열 명도 넘는데, 저 많은 사람들이 달려오면 태영은 그 많은 왜구 중에 누구의 칼이라도 맞아서 죽을 것 같았다.
떨어진 거리는 불과 30여 미터.
자동.
그 생각에 순간적으로 레버를 돌리려다 멈칫했다.
지금까지는 반자동 단발식이었다. 그렇지만 저렇게 많은 적이 한꺼번에 태영을 향해 칼질을 하려고 한다면, 자동으로 놓고 갈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총에 꽂혀 있는 것은 표준 탄창인 30발들이 탄창.
그러나 실제로는 28발이 장탄되었고, 그 중에 4발이 쏘아져 이제 탄창에는 23발이 남아 있으며 약실에는 이미 1발이 들어가 있지만, 왜구는 대충 봐도 열 명이 넘었다.
자동으로 놓고 갈겨 버리면 순간적으로 적을 사살할 수 있고, 총알의 숫자는 충분했다.
다만, 조준 사격이 아니기에 혹시라도 총에 맞지 않은 왜구가 남게 된다면, 그땐?
30발이 장탄되는 탄창 4개에는 각각 28발씩 총탄이 들어찬 상태로 탄띠에 꽂혀 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는 저들이 동시에 들이닥쳐서 칼을 휘두르면, 총탄이 떨어졌을 때 탄띠에 꽂혀 있는 탄창을 갈아 끼울 시간이 없다.
방탄복으로 잠시는 막아지겠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가 없는 상태라서 탄창을 갈아 끼우는 사이에 엄호해 줄 사람도 없는데, 총을 맞지 않은 적이 탄창을 교환하는 태영을 공격하면, 그땐 죽은 목숨이었다.
좀 어렵더라도 단발로 가자.
넌 특등 사수잖아?
탕, 타당, 탕, 탕, 타다당~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탕, 타당~
그들도 이 상황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는지, 달려오지는 않고 잔뜩 경계하는 모습으로 멈칫거리며 태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조준 사격을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정확히 한 발에 한 명씩 밭에 피를 뿌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다들 쓰러졌다.
너무나 짧은 거리이기에 총소리가 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핏자국이 마치 몸에서 쏘아 내듯 튕겨 나가는 모습이 태영의 눈에도 보였다.
“허윽.”
총을 쏘는 것도 숨을 헐떡거리게 하나 보다. 아니 처음으로 사람에게 총을 쏘아서 생긴 현상 같았다.
총구를 여전히 앞으로 향한 채 속을 뒤집으며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참느라 멍하니 있는데, 소곤거리듯 들려오는 말소리들이다.
분명히 우리말이다.
방금 총으로 쏜, 태영을 죽이려 했던 저들은 분명히 일본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저들이 태영을 공격했을까?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무슨 짓을 하느라 칼부림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 국민들이 총에 맞아 죽었다.
태영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이 일본인의 칼에 찔려 죽는 것을 방금 보기도 했지만, 양국 간에 서로 죽이고 죽는 상황이라면, 이건 중요한 외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태영은 그 외교 돌풍의 중심에 서게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지?
저들을 쏘지 않았다면, 기세로 보건대 분명히 태영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 생각을 하지 말자. 그건 정부에서 해결할 일이고, 군에서 조사를 나오면 사실 관계는 저들이 증언을 해 줄 것이다.
저들은, 최소한 나 때문에 목숨을 구했으니.
그런데 저들의 말 중에 왜구라는 말이 나왔다.
태영은 막연하게 왜구라고, 그리고 왜구 복장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왜구라니?
총을 보고 천둥을 불러오는 막대라니?
왜구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칼부림을 한 것도 이해되지 않고, 저들이 총을 모르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으며, 이곳에서 무전이 되지 않는 것도, 그리고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 그 모든 것이 단 하나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인 건 분명했다.
태영은 레버를 안전으로 돌렸다.
지금 관복을 입은 저 사람들이 태영을 적으로 인식해서 공격해 올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예광탄을 포함하여 17발을 쏘았고 15명이 죽었다.
예광탄을 제외하면 정확히 1발에 한 명씩.
설사 공격을 해 온다 하더라도 탄창 안에는 10발이 남아 있고, 약실 안에는 1발이 장전되어 있다.
이 정도면 저들이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하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쉬고 길게 내쉬면서 몸을 안정시켰다.
그렇다고 한 번에 안정되지 않고 메스꺼움은 그대로이긴 했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다들 괜찮으세요?”
잠깐의 시간이 흘러도 태영의 예상대로 저들이 공격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한국어로 수군거리는 말이기에 떨리는 몸을 똑바로 세운 뒤 관복을 입은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와아~
태영의 질문을 들은 그들은 그때서야 크게 고함을 질렀고, 칼을 아래로 내리거나 칼집에 넣고는 태영을 향해 달려왔다.
그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공격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저들은 태영이 자신들을 죽이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 같다.
***
철그럭, 철그럭~
태영이 걸음을 옮길 때 기관단총과 탄띠에 매달린 탄창과 대검에서 나는 소리가 저들이 걸을 때 허리에 찬 병기가 내는 소리와는 사뭇 다르게 들린다.
관아로 보인다.
아니, 관아인지 집인지 구분이 잘 안 되지만, 상당히 넓은 것으로 보아 관아가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
태영의 복장과 총을 계속해서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눈길을 무시하고, 그들을 따라나선 지 20분도 걸리지 않아 당도했다.
태영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마을이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자 마치 짜잔 하고 등장하는 영화 속의 마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비록 짧은 거리지만, 이동 중에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자신이 호장이며, 이름은 정인구라고 소개했다.
약간의 두려움과 지나치리만큼 공손한 표정과 말투였다.
호장이라는 직책은 기억 속에 없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군에서 2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서, 현재의 일반 사회와 조금은 격리된 환경 속에서 살았다 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분명하게 알고 있을 그 행정 체계 속에 그 어떤 곳에도 호장이라는 직책은 없었다.
그럼 뭘까?
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분명히 한국말이고, 한국 사람이고, 한자어가 섞인 용어인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오는 중에, 마을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뜨였고, 그들의 복장은 모두 고전적인 한복으로 보였으며, 한결같이 흰색이었지만, 말이 흰색이지 그냥 빛바랜 흰색으로 보였다.
그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거나 쓰러진 사람들을 붙잡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원을 부르는 소리, 아비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딸의 울음소리, 코를 훌쩍이며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친구인지 친척인지는 모르지만 이름을 부르는 소리, 그 소리들이 무성한 마을을 지나쳐 이곳으로 들어왔고, 잘 다듬어지지 않은 판자로 대충 얼기설기 엮어 만든 탁자 하나와 등받이가 없는 여섯 개의 의자가 있는 건물 안으로 안내되어 왔다.
“최 병장 나리,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인구가 자신을 소개할 때, 최태영이라는 이름을 알려 주었지만, 자신은 군인이니 그냥 최 병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편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호장 정인구를 대신하여 태영을 안내하여 왔던 사람이 최 병장 나리라고 부르면서 마치 사극에 나오는 대사를 하듯 자연스럽게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나갔다.
“최 병장이면 최 병장이고, 아님 최 병장님이라고 부르든지 할 것이지 최 병장 나리라니, 그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