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26
326. 내가 수부타이다(9)
“허, 어떻게…….”
박진하는 자신이 없는 사이에 쿠절트에서 발생한 이 사달에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이다.
“한번 돌아보고 오세요.”
태영은 박진하가 이 상황을 보고 정신을 수습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몽골군 포로들이 너무 많이 죽었고, 시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왜 저리 매달아 둔 것입니까?”
수부타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달은 저것 때문에 생긴 겁니다.”
“뭘 어쨌기에?”
“몽골군에게 상징성이 워낙 높아서 생긴 일인데, 저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카라코룸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칭기즈칸?”
“네.”
우욱~
수부타이의 목소리다.
칭기즈칸은 고려말이 아닌 몽골어이니 바로 알아들었다.
입에 재갈을 물려 말을 못 하니 저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도 까불지 마라.
“칭기즈칸 이름을 부르자 반응하는 것 같은데요?”
“그럴 것입니다. 아까 심문하기 위해 지휘관 30명을 잡아갔었지요?”
“네.”
“그들도 칭기즈칸의 이름을 듣더니 눈빛이 달라지더라구요.”
“그들은 어찌했습니까?”
“저기.”
태영이 손으로 가리키는 감시탑 아래에는 몽골군 30여 명이 가슴까지 땅에 파묻혀 있고, 모두 어깨동무하듯이 올린 팔이 나무로 묶여 있다.
“허.”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태영을 돌아본다.
“수부타이가 저 아래에 있는 몽골군들을 제법 아끼는지, 저들 중에 일부의 목을 잘라 버렸더니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저기 매달린 것을 바라보는 저 건너의 포로들은 경의의 눈빛을 보이더라구요.”
그래서요? 하는 표정이다.
“수부타이에게 더 들을 것이 있는지 심문할 때 쓰려고 저리 만들어 놓았는데, 필요한 대답은 다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러네요.”
“저리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저들 위로 말을 달리게 하려구요.”
“아, 그런 방법이.”
영화에서 배운 거다.
그러고 보면, 21세기의 영화는 별의별 나쁜 것은 다 가르친다.
사실상 태영이 이곳에서 저지르고 있는 극악한 벌칙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배운 것들이 아닌가 싶다.
“대장님.”
사포와 광역 통신을 하느라 자리를 비웠던 정하연이 불렀다.
“가능하다고 해?”
“네, 마침 공업부에서 와 있어 바로 답을 받았는데요. 야간 비행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럼 오늘 밤에 출발하라고 했습니다.”
“야간 비행이 가능하다고? 그거 상당히 위험한데, 누가 가능해?”
고공비행을 하면 문제는 없지만, 헬기는 저공비행이기에, 중국 지역을 지나면서 산을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칠 수 있다.
“지난번에 농업부와 공업부에서 이곳에 왔다 갔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때 조사를 해 둔 자료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때의 자료를 기준으로 역으로 산출하면 야간 비행에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 달이 2개로 사위가 환하니까 문제없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맞아. 어젯밤에도 달이 2개로 아주 밝았기에 이 전쟁 통에서도 달빛 아래를 거니는 기분을 맛보았다.
광역 통신이 끝났으니 위험하다고 출발을 하지 말라 할 수도 없는데, 저녁에 출발해서 12시간에서 15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내일 오전에 도착한다.
아무런 사고 없이 정상적으로 오기만 하면 아주 바람직하다.
“운전자와 정비 인력은?”
정하연과 이야기하며 잠시 손을 들고 기다리라는 표시를 하자, 이동하려던 박진하가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기사 포함해서 5명이요.”
“그 정도면 충분하네.”
“몽골전 내내 이용하실 거죠?”
“그래야지. 그게 아니라면 기껏 저것만 파묻으려고 불러올 수는 없지.”
“그럴 것 같아서 파견은 자원자를 뽑으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너무 많아서 추첨해야 할 거라고 하던데요.”
“그래?”
“지난번에 윤 부장하고, 정 차장이 왔다 가서 좀 많이 떠벌렸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전쟁에 참전하면, 전쟁 노획물에 대해 3할을 배분해 준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났구요.”
허, 그게 또 그쪽으로 불똥이 튀었군.
이거 이러다가 너도나도 다 참전하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몰라.
유진이에게 오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혹시,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정하연과의 이야기가 끝나자 박진하가 물어왔다.
“네, 굴삭기 보신 적 있지요?”
“그럼요, 그 대단한 장비를 모를 리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 건너의 시신을 보면서, 저걸 다 파묻으려면 굴삭기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참입니다.”
“정 시장과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내일 낮에 한 대가 도착 가능할 것입니다.”
“아, 그럼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네.”
박진하는 시신을 파묻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하긴, 저 많은 시신을 묻으려면, 파야 할 땅이 눈앞에 보이는 호수 반 정도 크기의 땅은 파야 할 것이다.
“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정하연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
“자, 그럼 좀 둘러보고 굴삭기 올 거니까, 급한 것만 정리하라고 하겠습니다.”
“네.”
시신을 파묻기 위해 땅을 파면, 태영 혼자서 파도 몇 시간이면 해결이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저 많은 병사들을 두고 태영이 땅을 파고 있을 수는 없다.
“대장님.”
박진하가 참모들과 함께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는데, 민초현이 태영을 불렀다.
“응, 민 대위 왜?”
“3군단장님도 같이 들어야 할 사안인데,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래. 그러지.”
민초현의 말에 박진하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대장님이 감시탑을 만드느라 움직이는 사이에 제가 저기 현장 조사를 좀 했습니다.”
민초현이 몽골군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 있는 현장을 가리켰다.
“응. 그런데?”
“제 소견으로는, 전진 기지를 이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초현이 1호기 의무 요원으로 있지만, 현재 몽골에 와 있는, 3군단까지 통틀어서 21세기 의료 지식을 갖춘 사람들 중에 가장 경력이 많고 능력이 출중한 야전의다.
그런 야전의사가 전진 기지를 이전하자고 한다.
문제는, 전진 기지 이전이라는 것이 상당히 큰 작업이라는 것이다.
“전진 기지 이전?”
여기 와서 17일간 체류하면서 준비된 것들이 많고, 병사들도 이곳에 익숙해졌다.
박진하와 참모들도 귀를 쫑긋하며 눈을 빛냈다.
“네,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우선 이곳의 호수는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입니다.”
고인 물?
아, 잠시 이걸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태영도 전진 기지 이전이라는 카드가 만만치 않았기에 일부러 다시 떠올리지 않았었다.
민초현의 말을 듣는 순간 시신이 쌓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오면서 비릿한 피 냄새와 피가 산화되어 굳어 가며 나는 특유의 무거운 냄새가 코끝에 와 닿았다.
바보 같으니라고.
생각은 했으면서도 그걸 무시하고 있었다니.
“그래, 고인 물이지.”
“3군단이 모두 합류하고 체류하기 시작하면서 식수로 쓰는데, 위험 수위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래, 맞다. 계속해 봐.”
민초현의 말 한마디에 상황을 충분히 인지했다.
식수로 쓰는데 위험 수위라는 부분은 걱정이 많이 되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최종까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우선 저 피가 호수로 흘러들고 있는데,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
태영은 대답 대신 그쪽을 다시 또 돌아보았다.
산처럼 쌓인 몽골군 시신.
수부타이 한 사람이 미친 영향의 크기로는 너무나 참담한 결과다.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예측했다면, 포로로 잡지 말고 처음부터 사살하는 것이 옳았다.
그래도, 포로로 잡을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럴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호수에 흘러들면 더 이상 물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식수로 쓸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손발도 저기에서 씻으면 안 됩니다.”
“…….”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정말 강처럼 피가 흘렀는데, 지금도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다.
“시신을 묻으면 시신에서 나오는 피와 시신의 부패로 발생하는 각종 오염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역시 호수로 흘러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상황을 알지 않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잠시 태영을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설사 흘러들어도, 비가 오기 전까지는 당분간 우리가 염려할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부터는 질병이 창궐할 우려가 있습니다.”
알아.
냉병기 시대의 전장에서는 전투에서 죽는 병사보다, 질병으로 죽는 병사가 더 많다는 것을.
듣고 보니 정말 심각하네.
“그럼 이전해야 한다는 말인데, 언제까지 여기서 버틸 수 있을까?”
“무리인 줄 압니다만, 가능하면 오늘 이곳을 벗어나야 됩니다.”
“오늘?”
“네, 어차피 오늘 밤에 저 시신을 모두 묻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렇습니다.”
“…….”
“여름이어서 시신의 부패 속도가 빠르고, 특히 이곳은 초원이기에 종류를 알 수 없는 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곳입니다.”
그것도 맞아.
살충제와 곤충이 싫어하는 향을 내는 여러 가지 식물의 분말을 소지하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퇴치는 가능하지만, 정말 벌레가 많다.
“그 벌레들이 기를 쓰고 달려들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상태입니다. 제가 조사하는 중에 벌써부터 벌레들이 달려들어 시신에 바글바글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그러니 오늘 밤을 넘기면 안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갑자기 머리가 텅 비어 버리는 것 같다.
“유진이, 설가빈 찾아봐.”
바로 고개를 돌리며 두 사람을 찾았다.
“대장님, 이곳입니다. 세 곳을 찾았는데, 여기는 고인 물이 아니라 물이 계속 흐르는 곳입니다.”
설가빈이 노트북을 내밀며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태영이 감시탑을 만들고 단상을 만들려 하고 있는 중에 나름대로 조사를 한 모양이다.
“코톤, 울틴, 울사, 예선제이.”
서윤이 먼저 말해 주었는데 손가락은 3개를 펴고 지명은 4개였다.
서윤의 말을 들으며 지도를 보니 설가빈이 보여 주는 지도에 표시된 영문이 서윤이 말해 준 지명인데, 울틴의 우측에 울사가 보였다.
예선제이는 이곳 쿠절트를 지정할 때 이미 검토되었던 곳인데, 카라코룸과의 거리상 문제로 제외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예순젤이 아니고 예선제이라고 읽어야 하나?
맞아. 이것도 발음의 차이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구나.
“울틴과 울사는 함께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오르혼강을 따라 상류로 가면 울사를 만나고, 거길 지나면 울틴으로 갑니다.”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는 신호를 하고, 울사와 울틴을 먼저 살펴보았다.
과연, 여기서 가면 울사를 지나서 울틴으로 간다.
코톤과 예선제이를 확인해 봤다.
세 곳 모두, 쿠절트보다 강의 흐름이 좋은데, 울틴과 울사는 3진이 오고 있는 오르혼강의 본류이기도 하다.
“예선제이는 이동 경로에 초지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대상에 올리기는 했지만, 적절치는 않아요.”
맞는 말이다.
초지는 벌레들이 들끓지만, 그래도 숨 쉴 때마다 흙먼지를 함께 들이킬 수는 없으니, 가능하다면 초지로 가야 한다.
“울틴과 울사의 경우에는 울틴과 쿠절트 사이에 그 어디라도 전진 기지를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거기는 오르혼강이 있고, 거의 모든 지역이 초지인데, 울틴은 암석 지대가 많고, 울사는 그냥 초지입니다.”
대충 보기에도 울틴과 울사 사이에는 그 어디라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코톤은 거리가 얼마나 돼?”
“카라코룸까지 직선으로 35킬로입니다.”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답한다.
“예순제이는?”
“70킬로, 코톤보다 거리가 2배입니다.”
설가빈의 대답으로 거리를 대중해 봤다.
처음에 쿠절트 중에서 이곳을 전진 기지로 잡은 것이, 카라코룸과 가깝다는 지리적 요인이 가장 컸다. 볼 것도 없다.
“울사로 한다.”
울사는 이미 몽골군 2진과 3진을 상대하느라 몇 번을 다녀본 곳이다.
코톤으로 가면 산을 넘어야 하고, 예선제이로 간다고 해도 길이 무척 험해서 양쪽이 리스크가 비슷하지만, 울사는 전혀 아니다.
“울사는 쿠절트보다 상류이니까 민 대위가 염려하는 그런 문제도 없고.”
“오늘, 지금, 이사를 가야 한다구요?”
태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진하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지.
이미 몽골의 초원에 황혼이 깔리기 시작했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는데, 오늘을 넘기지 말고 기지를 이전해야 한다고 하니 황당하지.
그건 태영도 마찬가지이니까.
“네, 오늘 밤 안으로.”
“…….”
“…….”
“…….”
태영의 대답에 박진하도 사단장들도, 그리고 참모진들도 모두 입을 닫았다.
그리고 서로 쳐다보았다.
“대장님, 잠시 작전 회의를 좀 하시지요. 아무리 긴급 사안으로 기지 이전을 해야 해도, 전체적인 상황 인지가 필요하고, 정리도 필요합니다.”
정신을 수습한 박진하가 제안을 했다.
“네, 맞습니다. 긴급한 것만 지시하시고, 10분 후에 본부 게르로 오시지요. 아 참, 저녁 식사는 했습니까?”
“지금 저녁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다.
박진하를 포함한 3군단이 재빨리 군단 본부 막사 쪽으로 이동하면서 소란스러워졌다.
짐을 꾸리고 이전 준비를 시작해, 라는 소리도 들리고 저녁 식사하지 않은 사람은 빨리 마치고 정리하라는 말도 들렸다.
“저희는 이전 준비 지시를 한 후에 본부로 가겠습니다.”
유시완과 조현태다.
“그래, 10분 안에 오면 돼.”
어째 오늘 하루가 너무 숨 가쁘다.
필현보 일당을 고비 사막 한가운데에 발가벗겨 내려 주는 것으로 한가롭게 출발한 아침이었다.
레이더에서 3진의 전령으로 보이는 선발대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령을 본 순간부터, 숨 돌릴 틈 없는 바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태영도 본부 막사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