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45
344. 일전불사(3)
30분.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정하기엔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30분을 따지는 것이 몽골군들과 태영이 다를 수도 있다.
몽골군에게는 시계가 없으니까.
그러나 그건 태영이 고려해 줄 사정이 아니다.
“박 장군님, 그쪽 상황 어떻습니까?”
기다리면서 박진하에게 무전을 했다.
레이더상에서 움직임이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물었다.
공조의 중요성,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하니까.
“네, 맞습니다.”
“아닙니다. 일종의 경고 포격이었습니다. 포격을 중단한 후에 칙서를 다시 보내고 회신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네, 그쪽으로도 움직임은 없습니다. 모두 이곳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그리하지요.”
“대장님, 실장님하고 비행조 돌아옵니다.”
설가빈의 말이 끝나자, 네 사람이 남 요새 5층에 착륙했다.
깃발로 사격 신호를 하던 비행조 병사들과 서윤이 상공으로 날아올라 백색탄으로 만들어졌던 불의 벽 지역을 정찰하러 갔던 비행 정찰조다.
“백색탄으로 포위망을 구성했을 뿐인데…… 후방이나 측방으로 도망치다가 사망한 병력이 생각보다 많아요.”
서윤의 말이다.
“대략?”
“대략 수백 명이요.”
불의 벽을 벗어나고 살아 있는 사람의 생체 신호는 레이더에서 알 수 있지만, 불의 벽 앞에까지 이동한 몽골군은 많아도 실제로 넘어가려고 시도한 병력이 그리 많지는 않았었다.
벽을 넘어가다가 불길에 타 죽으면,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설가빈, 살아서 거기를 넘어간 병력이 얼마나 돼?”
“대략 50여 명입니다.”
어차피 대략의 숫자만 알면 되는데, 그 와중에 살아서 도망을 간 병력이 제법 되었다.
비록 불의 벽을 통과했다고 해도 화상을 입고, 어딘가에서 죽어갈 수도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끌 수 없는 불이기에.
“저희가 갔을 때 불길은 모두 사라지고, 불에 탄 흔적 위에 연기만 올라왔습니다. 이제 그쪽으로 후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시완이 상황을 설명했다.
불의 벽이 만들어졌던 곳에 잔불이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불길이 올라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뜨거움 정도는 참고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임시에 불과하지만.
태영은 시계를 보았다.
5분.
2각이라고 명시하여 칙서를 철궁으로 날려 보낸 후, 남아 있는 시간이다.
“유시완, 야포와 박격포 사격 준비.”
“네, 전달하겠습니다.”
“이건 야포, 이건 박격포 방향과 각이야.”
“네.”
태영의 스타일이지만, 밟을 때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밟고, 시작하면 끝을 본다는 주의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일어설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그때는 고통도 잊힐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일 것이다.
“비행조, 3명은 기갑 부대 앞으로, 한 명은 포대 앞으로.”
“저와 송준일, 그리고 정원근이 기갑 부대 앞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잔디와 신유진이 교대하고 포대에는 잔디가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포대 쪽은 계급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
네 사람이 비행 날개를 메고 날아갔다.
그러는 사이에 지정한 2각이 지났다.
“유진이.”
태영은 전방에 시선을 주고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는지 살폈지만,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유진이를 불렀다.
“네, 대장님.”
“2각이 지났다. 사격 개시.”
“넵, 사격 개시.”
유진이가 무전기를 입에 대고 사격 개시를 외쳤다.
곧바로 유시완의 답이 왔다.
유진이는 잔디와 교대한 후에 좌측의 난간에 기대선 신유진에게 손을 들었다.
“포대, 사격 개시.”
신유진이 손을 흔든 후, 1층을 향해 소리 질렀다.
꽝~꽈과과과광~
5대의 야포, 그리고 5대의 박격포에서 포격음이 들렸다.
야포의 포격 지점은 카라코룸이다.
박격포는 불의 벽이 펼쳐졌던 곳에서부터 그 앞쪽이다.
투다다다다당~투타타타타타타~
기갑 부대에서 쏘아 내는 중기관총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쌍안경을 들었다.
아득히 보이기는 하지만, 카라코룸에서 불길과 연기가 솟아올랐다.
“대장님.”
레이더를 보고 있던 설가빈이 태영의 옆으로 오더니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태영을 불렀다.
“왜?”
“카라코룸에 여인들과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있지. 그런데?”
“아…… 여인들이…… 아이들이…….”
말을 더듬거리며 눈이 빨개졌다.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도록 해. 잠시 후에 포격을 멈출 거니까.”
어차피 이번 공격은 공포를 주기 위한 공격이니 길게 끌지는 않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태영은 레이더가 있는 곳으로 휘청거리듯 걸어가는 설가빈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그리고 대상이 적이라 해도 태영은 여인들과 아이들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설가빈은 포격으로 인해 아이들이 죽어 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태영에게 나름대로 항의하는 것이리라.
쌍안경을 들어서 적진을 살폈다.
몽골군 지휘부 인근의 수많은 병력이 카라코룸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소용없다.”
카라코룸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으니 불안하겠지.
그러나 달려간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포격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곳으로 와야지. 그리고 항복을 해야지.”
태영은 다시 메모를 했다.
“신유진.”
“네, 대장님.”
“5번 박격포의 방향과 각이야.”
“넵.”
신유진이 달려왔고, 잠시 후 잔디가 그 종이를 받아 갔다.
꽈꽝~꽈과과과광~꽝~
다시 야포의 소리에 뒤이어 박격포 소리가 울렸다.
5번 박격포의 포탄은 본영과 카라코룸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다.
포탄의 폭발 후에, 다음 포탄이 날아오는 시간 여백을 이용하여 달려갈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다.
그렇게 지나가도 야포의 포격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폭발음을 들으면서 설가빈 쪽을 보았다.
레이더 화면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정신 교육이 필요하겠군.’
설가빈은 몽골어를 하면서 레이더를 사용하는 비서로 이후의 전투에도 계속 동행해야 하는데,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이건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니니, 이해가 되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그래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안타까워도 사포로 돌려보내야 한다.
“알았습니다, 1사단. 하나도 놓치지 마십시오. 다른 사단은 없습니까? 응답 바랍니다.”
유진이가 1사단의 무전을 받자마자 다른 사단도 물었다.
서쪽으로는 아직 이동이 없는 모양이다.
북으로도 도망자가 있는 모양이다.
카라코룸 한복판에 포탄이 떨어지는데 도망치지 않으면 비정상이지.
“알았습니다. 4사단, 2사단도 변화가 발생하면 무전 요망함. 이상.”
유진이가 통신을 끝내고 태영을 보았지만,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몇 발이지?”
“각각 5발 발사되었습니다.”
대답은 송한이가 했다.
설가빈이 대답해야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설가빈의 등에 손을 얹고 있던 송한이가 대답했던 것이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유진이가 무전으로 사격 중지를 알렸고, 유시완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총성이 멈추고 포성이 멈추었다.
2사단의 서쪽 지역은 도망자들이 오는 모양이다.
도망자들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렇게 도망을 치니까, 칭기즈칸이 카라코룸 내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어찌 되었건 상관없다.
“설가빈.”
“네, 대장님.”
대답을 하면서 돌아보는 얼굴은 침울하고, 눈이 빨갰다.
울지는 않았는데, 거의 울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다시 칙서 준비해.”
“네, 말씀하십시오.”
그런 모습으로도 태영의 말에 대답하면서 다시 칙서 사본 한 부를 꺼내서 펼쳤다.
본인의 생각이 어떻든 명령을 어길 수는 없을 테니까.
“서문은 조금 전에 보낸 내용과 같이 쓰고, 제한 시간에 2각을 쓰는데, 그때까지 칙서의 내용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전멸하게 될 것이다, 라고 쓰도록.”
“전멸이요?”
“그래, 살아 있는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고.”
“…….”
설가빈이 대답 대신 태영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상관이 명령을 하는데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꼼지락거리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포격으로 여인들과 아이들이 이미 많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라 짐작하면서, 이후에 발생할 전멸이라는 문구가 주는 무게 때문이다.
전멸에 포함되는 뜻 속에는 여인과 아이도 있으니까.
그래, 사람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맞다.
그게 사람이니까.
그래야 사람이니까.
비록 적이라고 해도, 전멸이란 그만큼 무거운 의미다.
“여인도…… 아이도…… 있습니다만…….”
중얼거렸지만, 정말 그래야 하느냐는 의미가 담긴 질문이다.
이미 눈에는 눈물이 흥건하다.
그것이 볼을 따라 흘러내리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쪽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북으로 도망치던 몽골군을 전멸시켰다는 통신이다.
“여기는 사령부. 알았음. 포격은 중지했고 30분의 시간을 주고, 항복을 요구하는 칙서 준비 중. 추가 사항 있으면 연락하겠음. 이상.”
유진이가 굳은 목소리로 내용을 전달했다.
그리고 뒤이어 1사단과 2사단의 연락도 받았다.
“설가빈.”
태영은 통신이 끝날 때를 기다려서 다시 불렀다.
“……네 대장님.”
대답이 한 박자 늦다.
“몽골이 전멸시킨 나라, 어린아이는 물론, 기르던 짐승조차 모조리 죽인 나라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
식상한 이야기지만, 설가빈의 생각을 고쳐 주어야 했다.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말을 꺼냈다.
이런 쓸데없는 설명을 잘해 주는 상관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어쩔 수가 없다.
태생이 그러하니 아무리 시크하게 하려고 해도 안 되고, 카리스마를 보이려 해도 그건 잘 안 된다.
“……네?”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그러나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몰라?”
“……몽골이 그런…… 나라였……습니까?”
잠깐 가만히 서 있던 설가빈이 자신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을 손으로 닦아 내며 물었다.
그래,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광기에 젖은 살인 집단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세기의 영웅이라고도 하니까.
평가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갈린다.
“몽골은, ‘신을 대신해 너희를 응징하러 왔다. 너희가 죄가 없었다면, 신은 나를 여기까지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들을 합리화시키고, 신의 사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모두 죽였다. 어린아이까지.”
부카라를 멸망시키고 학살하면서, 칭기즈칸이 했던 말이라고 쓰여 있었다.
문구 일부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다.
네가 신의 아들이야?
대체 누가 너에게 신이라고 말하며, 부카라의 모두를 죽이라고 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설가빈은 다시 눈을 비벼서 눈물을 닦아 낸 후, 똑바로 눈을 뜨고 태영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노려보는 느낌을 준다.
태세 전환이 빠르다.
“또 어떤 곳에서는 ‘항복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을 떠나겠다.’라고 한 사람들까지 단 한 명도 살려 두지 않고 모두 죽였다. 여인들과 어린아이까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하…… 이…….”
이번에는 이를 앙다물었다.
어린아이를 자꾸 강조하면서 부하 병사를 설득하는 모습이 조금은 우습고 못마땅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설가빈에게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태영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는 3사단의 병사들이 많다.
정찰조 병사와 타격조 병사들도 잔뜩 굳은 얼굴이다.
그래서 말 나온 김에 조금 더 해야 했다.
“우리는 이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네가 칙서를 썼으니 알지?”
“네, 항복하고 일부의 인질을 내놓으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몽골은 우리처럼 하지 않는다. 항복한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신의 사자로서 전할 말을 전하겠다며, 사람들을 모이라고 한 후, 한곳에 모두가 모이면 그때부터 학살을 시작한다.”
“……그…….”
저도 놀랍겠지.
물론 태영의 곁에서 참전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설가빈이기에 유진이나 다른 병사들과는 다르다.
오래 함께한 병사들은 태영이 여인들과 아이들을 죽이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선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하느냐고 질문하지 않지만, 설가빈은 조금 달랐다.
“만일, 우리가 힘이 약해서 저들이 써 보낸 대로 항복한다면, 몽골이 우리를 살려 줄까?”
“…….”
“살려 주지 않아. 저들은 그런 자들이다.”
“가빈아.”
서윤이 불렀다.
“네, 실장님.”
“저들은 우리와는 생각이 많이 달라.”
“…….”
“대장님 말씀처럼 저들은 항복해도 좀처럼 살려 주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까지도 모두 죽여 버리는 자들이야.”
“…….”
“너는, 우리가 이들을 징치하지 않으면, 장차 고려를 어떻게 했을지 모르지?”
“…….”
“대장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멀지 않아 너도 몽골군에게 죽게 되었을 거야.”
“하아…….”
“저들은 송나라를 치기 전에 고려를 먼저 멸망시키고, 그다음에 송나라를 칠 예정이었거든.”
까득~
이빨 가는 소리다.
“실장님은 몽골군의 계획은 아시는군요?”
“그래, 나와 대장님에게 너희들이 납득할 수 없는 능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러면서 태영을 쳐다봤다.
“네, 알고 있습니다.”
서윤의 질문, 그리고 설가빈의 대답에서 이러한 사실을 어찌 아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모두 해소되었다.
“왜 시장님과 내가 몽골을 정벌하는 이곳에 함께 와 있는지 모르지?”
“……네.”
“저들은, 시장님과 나와 영환이를 비롯한 모두를 죽이려 암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네에?”
“그날, 개경의 시장에서 몽골인들이 비처럼 쏘아 낸 쇠뇌를 대장님이 막아 내지 못했으면, 지금 여기 있는 대부분은 죽었을 거다.”
“아으, 썅.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네.”
이번에는 잔디까지 거들며 분통을 터뜨렸다.
송한이나 고설하는 경험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고,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번에 유시완이 거들었다.
“……하아.”
“아직 걷지도 못하는 영환이까지 죽이려 들었어. 시장님이 시의 일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신 것은, 그날의 빚을 받아 내기 위해서야.”
“…….”
“나도, 그날 죽었을지도…… 나도, 그날의 빚을 받아야 해.”
말이 제법 길어졌지만, 태영은 내버려 두었다.
이 싸움의 정당성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들이기에.
그리고 설가빈을 제외한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아는 사람들조차도 마음속에 그때의 일을 다시 정리하며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조금도 가엽게 여기면 안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