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46
345. 삼배구고두례(1)
“설 소위가 충격이 큰 모양이군요?”
이야기가 거의 끝나는 시점에 김추경이 나섰다.
3사단 병사들의 얼굴이 붉어졌고 흥분한 기색이 만연했기에 정리를 해 줄 필요를 느낀 모양이다.
그 서두를 설가빈 이야기로 꺼냈을 뿐이다.
“……네.”
설가빈이 김추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너희들도 알아 두어라.”
그렇게 말을 시작한 김추경은 사단의 병사들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몽골의 사신이라는 자들이 저자에서 저지른 행패와 양민들에게 한 짓은 필설로 그것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운을 그렇게 떼었다.
“당연하게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무 죄 없이 죽었고, 거기에는 여인과 아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건 태영도 몰랐던 일이다.
“하.”
누군가의 분노가 담긴 한숨을 뱉었다.
“또, 그 사신이라는 자가, 황상 폐하의 앞에서 마치 황상 폐하를 신하 대하듯 무례했다.”
“…”
“그날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놈을 제지하지 못했다.”
김추경은 담담한 것처럼, 그러나 병사들이 활활 타오를 어투로 말을 했다.
“이이…….”
누군가에게서 치밀어 오르는 화가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전의 일들로 봤을 때, 제지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고, 그러고도 제지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흐음.”
누군가가 이를 앙다무는 소리가 들렸다.
“대신들까지 모여 있는 어전에서 황상 폐하의 앞에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이이이…….”
“으으음…….”
다들 화가 난 듯, 신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3군단은 지리적인 문제로, 그날 출정식에 참석한 사람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황제가 출정식에서 했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김추경이 대신 전하는 것이리라.
잠시 말을 끊은 김추경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뱉으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주었다.
그 시간 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리가 그 어떤 짓을 해도, 우린 몽골인들이 저지른 일의 발끝도 못 따라갈 정도로 저들은 포악하고, 또한 극악무도한 자들이다.”
“으흐으음…….”
김추경의 그 말에 또 누군가는 부르르 떨면서 입을 다물고 화를 참는 듯한 신음이 나왔다.
“그러니 조금도 저들을 안쓰럽게 생각하지 마라.”
“흐음.”
“저들을 죽일 수 있을 때 가능하면 많이, 그리고 철저하게 죽여 놓아야 다음에 그와 같은 일을 또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알았느냐?”
“네~ 알았습니다.”
3사단의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말을 마친 김추경이 설가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상이 풀어지지 않은 상태로 웃었다.
그 웃음이 괴랄하기 짝이 없지만, 화를 참으며 웃어서 그럴 것이다.
“잘 알았습니다. 지금 바로 그리 쓰도록 하겠습니다.”
눈을 다시 닦아 낸 설가빈이 말했다.
아마도 지금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은 가엽게 여겨서 나온 눈물이 아닌, 분해서 흘러나온 눈물일 것이다.
설가빈은 칙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끝에다 태영이 말한 경고를 쓰기 시작했다.
김추경의 옆에 서 있는, 몽골어를 하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설가빈이 무엇을 쓰는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래, 그럼 된 거다.
퉁~ 쉬이이이익~
또다시 칙서가 철궁에서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
다시 30분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쌍안경으로 죽어 간 몽골군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많이 불탔고, 많이 죽었다.
본영 쪽에는 쏘지 말라고 했기에 사실상 피해가 전혀 없는 상태인데, 본영에서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신 정리를 안 하는데요.”
쌍안경으로 보고 있던 김추경의 말이다.
“특이합니다. 정말 그냥 두는 것 같은데요. 여름이어서 그냥 놔두면 하루도 지나기 전에 역병이 돌 텐데.”
유시완이 대답을 하고, 혼잣말을 했다.
“두 가지 의미일 거야.”
“두 가지요?”
“하나는, 곧 너희를 공격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기고 난 뒤에 정리하겠다, 하는 것. 그리고…….”
“그리고요?”
“나머지는 항복이겠죠.”
정하연이 말을 받았다.
“그렇겠지?”
“저 정도면,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텐데, 왜 아직도 항복을 않고 저러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아요. 가빈아.”
정하연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하고 설가빈을 불렀다.
“네, 시장님.”
“그 칙서, 다시 좀 읽어 봐라. 내용은 고려말로 바꿔서.”
“네, 아직 한 부 가지고 있습니다. 읽어 드리겠습니다.”
설가빈이 칙서를 고려말로 바꿔서 읽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없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무조건 항복할 것.
칸과 보르테의 아들 3명 및 보르테의 손자 10명을 인질로 보낼 것.
10살 손자에게 칸의 지위를 물려줄 것.
이름을 써 준 20명을 인질로 보낼 것.
고려를 영원히 상국으로 모시고 조공을 바칠 것.
기껏 5개 항이 명기되어 있다.
간단하지.
정말 별거는 없지만 쉽지 않은 내용이다.
“간단하네.”
정하연의 담담한 말이다.
“그러게요. 진짜 간단한데.”
“그걸 왜 못 해?”
송한이와 고설하까지 쉽다고 한다.
서윤은 데이빗이 읽고 영어로 알려 주면서 크로스 체크를 했으니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를 다 죽이려 했지만, 우린 끽해야 인질로 보내라는 정도인데, 그게 어렵나? 죽이라는 것도 아닌데?”
“황도 전체의 목숨을 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원래 당하는 입장이 아니면 쉬운 일이다.
당하는 칭기즈칸 입장에서는 정말 화나는 일이겠지만.
“그런데, 보르테의 아들이라고 명기하셨는데 보르테가 혹시 황후나 그런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까?”
김추경이 물었다.
“칸의 1부인의 이름입니다.”
“아, 그러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겠군요.”
보르테는 흔히 구분하는 기준으로 정실부인이다.
아내가 5백이나 있다고 했지만, 정실부인과 그 이후 몇 명의 아내들 제외한 여인들이 낳은 아들들은 그냥 몽골의 병사이지 아들이 아니다.
시계를 보니, 경고한 시간까지 7분이 남았다.
“유시완.”
“네, 대장님.”
“우리가 백색탄 20발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3사단 것을 사용한 건 아니지?”
“네, 사령부에서 보유한 것만 사용했습니다.”
“남은 것이 몇 발?”
“30발 남았습니다.”
“알았다.”
태영은 종이를 꺼내서 메모를 시작했다.
지금 각 사단에서 10발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1사단에 이거 무전으로 전달해 줘.”
“카라코룸 내부를 백색탄으로 공격합니까?”
유시완이 메모를 보더니 물었다.
태영이 써 준 메모는 철궁에 백색탄을 어떤 방향으로 몇 발을 쏠 것인지가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모두 태우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악마의 불꽃’, 그 닉네임이 가장 정확한 표현인데, ‘지옥의 천사’라는 닉네임은 누가 지었을까?
“포위망 구축.”
공격 중에 칭기즈칸이 항복할 수도 있기에 백색탄으로 카라코룸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포위의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다.
“네.”
“이번 경고조차도 무시하면 그다음은 없지만, 그때까지는 참아 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박격포 포격과 기갑 부대의 공격만 공격인 것이군요.”
“맞아. 이건 2사단, 이건 4사단에 통지해 줘. 공격 신호는 무전으로 보내겠다고 하고.”
쪽지를 상, 중, 하단으로 나누어 기록한 내용의 앞에 각각 1, 2, 4를 써서 구분해 주었다.
“넵, 전달하겠습니다.”
“기갑 부대 중기관총, 저기 지휘부가 있는 본영은 쏘지 말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3층에도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3분이 남았다.
그러나 여전히 몽골 진영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대체 무슨 배짱이지?
정말 모두가 죽음을 불사하고 덤빌 건가?
기름으로 적신 짚으로 옷을 해 입고 불꽃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격인데.
“모두 준비. 철궁 준비시키고.”
1분이 지났다.
몽골이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1분이나 2분이 지났다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혹시나 항복을 하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았기에 기다렸다.
“발사!”
태영의 입에서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텅텅텅텅텅 슈우우우우웅~
철궁에서 백색탄이 쏘아지는 소리와 바람을 가르고 백색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희미한 연기와 함께 바람 소리를 남기고 백색탄이 날아가는 흔적이 포물선으로 그려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펑~퍼버벙~펑~
백색탄이 점화되면서 파란 하늘에 노란 불꽃이 일었다.
그 소리가 이곳에 들리기 전에 하얀 연기와 노란 불꽃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터더덩텅~텅텅 슈우우우우웅~슈웅~슈우우우웅~
백색탄이 또 날아갔다.
퍼벙~퍼버버버버벙~퍼버벙~
청명한 하늘에 밝은 불꽃과 황금색의 불이 점화되면서 곧이어 하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하며 먼저 쏘아져서 피어나는 불꽃들과 합쳐졌다.
이곳 남쪽에서는 포격을 하겠지만, 동?서?북 지역은 포격은 하지 않고, 중기관총으로 도주하는 적들만 잡게 될 것이다.
“포격 준비.”
“넵, 포격 준비.”
유시완이 복창하면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저 팔이 내려가는 것을 신호로 포가 위치한 우측 난간의 병사들이 포대에 지시를 할 것이다.
태영은 시계를 한 번 더 보았다.
이젠 충분히 기다려 준 것 같다.
항복하면 살려 주겠다는데, 항복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죽겠다는 의미이니 그리해 주면 된다.
“대장님.”
“대장님, 잠시만요.”
쌍안경으로 몽골의 진영을 보고 있던 5층의 병사 중에 조현태와 뒤이어 잔디가 큰 소리로 불렀다.
“깃발을 든 몽골군이 달려옵니다.”
“본영 쪽에서 출발했습니다.”
“포격 대기.”
태영은 유시완에게 손짓으로 포격을 시작하지 않도록 대기시켰다.
쌍안경으로 보니 앞선 한 명이 깃발을 들고 말을 달리고 있었고, 뒤쪽으로 역시 말을 탄 10명 정도의 인원이 달려오는 중이다.
경갑을 갖춰 입고 무장은 했다.
저것이 항복 문서이기를.
“철궁 하나, 철시 한 통을 날 줘. 내가 가겠다.”
“넵, 대장님.”
“대장님은 몽골어 못하시잖아요? 가빈이 데리고 동행하겠습니다.”
뒤쪽에서 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탐지기 인수인계하고 변화가 있으면 무전해.”
태영이 타격조 병사에게서 철궁과 철시를 받자마자 그 말을 남기고 5층의 난간을 넘어 뛰어내렸다.
“사단장님…… 몽…… 벼…… 세요. 유…… 디…….”
서윤이 뒤따라오는지 목소리가 사이사이 끊어져 들렸기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쿵~
태영이 바닥에 닿자, 체중 때문에 발이 작은 소리를 내며 흙 속으로 파고들었다.
후우웅~
남 요새와 해자는 70미터 전후이기에 해자 앞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외나무다리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는 사이, 서윤과 설가빈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꽃잎처럼 내려와 옆에 섰다.
“후아.”
설가빈의 입에서 큰 숨소리가 나왔다.
“왜 놀랐어?”
“네, 실장님.”
“경험이 여러 번 있을 텐데 계속 놀라네. 호버리 타고 다니기도 하면서.”
“하아, 하늘을 날아오는 것은 여전히 겁나요. 호버리는 안에 타니까 조금 다르구요.”
다가닥~다가각~ 후두두둑~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해자의 가까운 곳에서 말을 정지시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앞서서 깃발을 든 몽골군을 포함해 11명의 인원이다.
태영은 철궁에 5발의 철시를 걸었다.
사실상 쇠버리가 있으니 철궁이 없어도 무관하고, 품에는 권총도 있지만, 저들에게 보여 주는 위협의 효과로는 철궁이 좋기 때문이다.
“한어가 가능하시오?”
건너편에서 중국어로 물어왔다.
“말하라.”
대답은 태영이 했다.
“칙서의 내용대로 여기 항복 문서를 먼저 준비했소.”
“너는 누구냐?”
“비치크치, 아, 상서라고 보면 될 것이오.”
몽골에 그런 직제가 없어서 대충 둘러댄 것 같은데, 상서(尙書)라면 무관 계급은 아니고, 문관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당연히 몽골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너는 야율초재와 어떤 관계냐?”
“상관입니다.”
“좋아.”
“한 실장, 저거 당겨서 와 줘.”
“네, 대장님.”
서윤이 대답하자마자 상서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가 태영의 앞으로 날아왔다.
“어? 어어어어어.”
상서라고 말했던 자가 놀라 어버버하는 사이에 문서는 태영의 손으로 들어왔다.
“고려왕에게 고함?”
두루마리를 펼치자 제목이 그렇게 적혀 있었다.
“뭐라구요?”
“봐.”
서윤의 높아진 언성에 아래쪽의 내용을 읽어 보지 않고 넘겼다.
“어처구니가 없네.”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두루마리를 태영에게 넘겨주었다.
이건 만용이다.
저들은 만용을 부리고 있지만, 지금까지 정말 많이 양보했다.
이것이 칭기즈칸의 뜻이라면 노망이 든 것이다.
“포격 준비.”
무전기로 포격을 준비시켰다.
유시완으로부터 대답을 듣고 상서의 얼굴을 보았다.
“칸이라는 놈에게 잘 전해라. 우리가 보낸 칙서대로 응하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된다. 이것은 최후통첩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부터 너희를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 그…….”
“그리고, 오늘 사시가 되기 전에 모두 죽는다. 단 한 명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돌아가서 전해라.”
“무례한…….”
상서의 말이 무례로 시작했지만, 다음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사시, 오전 10시다.
지금 9시를 살짝 넘겼으니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죽을 것이라고 하는데도, 무례라는 말을 먼저 시작하는 놈들이니 봐줄 필요가 없다.
무전기를 들었다.
“포격 개시.”
쾅~콰과과광~
포격이 시작되었다.
박격포와 야포가 거의 비슷한 시간에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