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55
354. 에필로그(5)
“3년?”
“네.”
R버너를 복구하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 대체 뭐냐?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17년 후?”
“네, 죄송합니다.”
태영이 말한 21세기, 그리고 13세기의 내용을 가지고 무려 1개월간의 작업을 한 후에, 컴퓨터에 계산을 시켰고, 한 달이나 걸려서 나온 값이 문제였다.
그래서 또 계산했다.
검증을 위해서.
그렇게 세 번의 계산을 해서 3개의 시간 좌표가 나왔는데, 그중 첫 번째가 17년 후다.
지금 여기에 와서 병원에서 두 달, 리버타임 연구소에서 한 달, 설득하느라 쫓아다닌 시간 1년 이상, 협박을 해서 법을 개정하는데 5개월, 계산을 하느라 4개월, 그렇게 합치면 여기 온 지 2년이나 된다.
그런데 다시 17년 후라면, 이곳에서 무려 19년을 체류하게 된다.
2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니 그렇다고 해도, 17년, 22년, 49년 후라니.
차원 간의 시간 곡선과 시공간 간의 영향이 어찌 되기에 시간 좌표가 이따위로 나오느냐고?
“왜 이렇게 나온 거야? 딱 한 개가 나와야 정상 아니야?”
R존의 모든 사람에게도 반말이 일상에 되어 버렸다.
“그게, 최태영 씨가 원래 살던 21세기의 시공간, 13세기의 시공간이 어느 차원인지 판별이 불가능한지라…….”
“대체 아는 것이 뭔데?”
이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아무도 항변하지 못한다.
항변하면 대놓고 R존을 떠나라고 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계산해서 나온 시간 좌표가 3개이고, 가장 가까운 날이 17년 후라는 거잖아?”
“네, 맞습니다. 시간 좌표라는 것이 수많은 차원 주기와 연동되는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지랄.”
“저희도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17년 이전 것은 없느냐고?”
“사실 한 개가 더 있긴 합니다.”
실제로는 4개라는 거다.
1225년으로 가는 시간 좌표가 4개나 된다고?
에이, 정말.
“그런데?”
“그것이, R버너 복구를 하는 기간 중에 있는 시간 좌표인지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에이, 정말. 그건 언제야?
“4년 후입니다.”
“복구하는데 3년인데, 4년 후면 가능한 것 아닌가? 왜 사용이 안 되는데?”
“복구하는데 3년이지만, 이게 한번 뜯어낸 것이어서 정밀 튜닝이 필요합니다. 그것까지 마치려면 5년을 잡아야 합니다. 누차 설명 드린 것처럼 시간 좌표는 1만 분의 1초라도 차이가 나면, 전혀 다른 곳으로 가 버리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이구, 정말.”
속이 터진다.
모조리 패 죽일 수도 없고.
“죄송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17년을 허송세월하는 거네?”
“…….”
“그런데 3개이면 내가 어디를 선택해야 해?”
“그게, 그중에 어떤 시간 좌표가 맞을지 알 수가 없으니 우리가 정할 수가 없고, 그것만은 최태영 씨가 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틀린 말이 아닌데, 정말 짜증 난다.
아니, 진짜 패 죽이고 싶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가면 어떻게 돼?”
“그곳에서 계산을 모두 다시 하고, R버너도 다시 만들어야…….”
“하, 진짜 돌겠네, 돌아가시겠네.”
“…….”
17년도 기다리기 지겨운데, 22년이나 49년은 절대로 못 기다린다.
3개의 시간 좌표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차피.
“복불복이네.”
“……네…….”
대답은 잘해, 짜증 나게.
“지금 너희 사용 중인 컴퓨터가 여행용 가방 크기라고 했지?”
“네.”
이들의 컴퓨터는 정말 작고, 이들이 말하는 여행용 가방 크기도 정말 작다.
가방의 크기는 21세기의 대학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백팩 수준이다.
그 가방 속에 21세기의 슈퍼컴퓨터보다 성능이 10의 56성배를 자랑하는 컴퓨터를 넣을 수 있다.
“컴퓨터에 모두 담아. 지난 2천 년간의 모든 정보와 과학 자료, 기술 자료와 일상의 자료들까지 모든 것을.”
“네?”
“내가 가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도착하면, 다시 계산하고 R버너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럼, R버너 자료만…….”
“돈을 벌어야 R버너를 만들 재료와 사람을 구할 것 아니야? 그리고 교육도 시켜야 하고.”
“아, 마, 맞습니다.”
“그럼, 다른 기술과 일상의 정보도 있어야 돈을 모을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을 쓸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러려면 모든 자료가 있어야 가능하지.”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구요.”
그 말이 맞다.
이들이 가진 자료는 과거의 자료이기에 중요도가 현저히 낮다.
태영이 과거로 돌아가면 미래의 정보가 되기에,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료인 것이고, 이들에게는 지나간 과거이고, 지나간 것은 그냥 남겨진 기록일 뿐이다.
“컴퓨터는 얼마간 사용 가능해?”
“얼마간이라는 의미가……?”
“고장 없이, 수명이 다해서 죽는 데 걸리는 기간, 몇 년이나 사용이 가능하냐고?”
“아, 370년 정도 가능합니다.”
기술 수준이 완전히 별세계이네.
“그럼 R게이트를 열 때, 가능하면 1년을 전후해서 새로 만든 컴퓨터에 자료를 넣고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
“그게 좋겠지요.”
순순히 수긍한다.
아무래도 R버너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자료의 가치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7D 프린터를 넣을 수 있도록 가방을 조금 크게 만들어서 거기에 컴퓨터를 넣도록 해.”
“그게, 프린터만으로는 의미가 없는데요.”
“소재?”
“네, 프린터만큼 소재도 중요하다는 거, 알지 않습니까?”
이곳의 3D 프린터는 3D가 아니라 7D 프린터다.
왜 그런 명칭을 쓰느냐 물었더니, 7차 산업 혁명 시점에 만들어진 프린터라서 7D 프린터라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모든 제품의 제조 개념이 설계를 한 후에 7D 프린터로 출력한다.
21세기를 기준으로 비교해서, 그 어떤 자동화된 공장보다 단 한 대의 7D 프린터가 출력하는 제품 제조 속도가 수배는 더 빨랐다.
그러다 보니 제조라는 것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그것을 21세기 사람들이 보면 모두 기절할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돈을 벌기 위한 제품의 제조도 그것으로 하면 된다.
그러면, 그곳 세상은 모두 태영의 손안에 있게 될 것이다.
다만, 프린터만큼 소재도 중요한데, 소재는 가져갈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최소 수십 톤에서 수십만 톤을 준비해야 하니까, 그건 가져갈 수 없다.
그리고 복불복의 선택이 잘못되어서 가려고 했던 곳으로 가지 못하게 되면, R버너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7D 프린터가 있으면 조금 쉬워진다.
“구해야지. 그래서 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도 소재를 2킬로그램 정도는 넣도록 해.”
“그 정도는 가방을 조금 키우면 가능합니다.”
***
보고 싶다.
다들, 잘 있는지 궁금하고, 가슴이 아리도록 그립고 보고 싶다.
이렇게 그립고 보고 싶은데, 17년을 어떻게 보내지?
***
17년이 되려면 아직도 10년이나 남았다.
언제나 사고만 치고 다니지만, 그래도 시간은 왜 이리 더디고, 더디고, 더디고, 더디게 가는지.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그립고 보고 싶어서 또 사고를 친다.
그래도 그립고 보고 싶어서 또 사고를 치는 오늘이다.
***
그리움에 사무치면 가슴이 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볼까 봐 울지도 못한다.
아픈 가슴을 아무리 쥐어뜯어도 그리움을 해결해 줄 그 어떤 것도 없다.
다들, 잘 있는지 궁금하다.
보고 싶다.
정하연, 영환이와 아름이. 많이 컷을 텐데.
한서윤, 아윤이와 영현이. 둘은 염력이 유전되었을까?
송한이, 아이를 가졌었는데 지금은 9살이 되었겠다.
고설하, 가장 나이 많은 막내, 그 당시에 겨우 24살이었고, 지금은 33세가 되었겠지만,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홀로 외롭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두 정말 보고 싶다.
두고 온 가족도, 언제나 함께하던 병사들도.
유시완과 잔디를 비롯해서 언제나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던 병사들이 새록새록 보고 싶다.
***
17년은 참으로 길고도 길다.
사고만 치고 다니던 17년.
돈은 옷가지와 시계를 팔아서 집을 사고도 넘치도록 남아 있으니, 돈을 벌어야 할 필요도 없고, 남아도는 것은 시간이다.
놀다가 지치면 사고치고, 사고 치다가 지치면, 21세기에 배우던 제품 설계를 하면서 공부도 했다.
다른 언어를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도 시간이 남아돌아서 또 사고나 친다.
태영이 부자인 것을 알고, 수많은 여자들이 대시해 왔지만, 모조리 쳐 냈다.
지금도 아내가 몇인데, 또 결혼을 해?
그건 미친 짓이지.
그리고 반드시 돌아갈 건데, 데리고 돌아갈 수는 없지 않나?
아내가 그립고 아이들이 보고 싶다.
그들이 보고 싶어서 어제도, 그 전날에도, 그 전전날에도 사고를 쳤다.
그래도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사고를 쳐서 조금이라도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면 그리움이 덜어질까 해서다.
그럼에도 보고 싶다.
보고 싶고,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다.
며칠, 며칠만 기다려라.
며칠 후면 가게 될 것이다.
가서 만나게 될 것이다.
드디어 R버너를 가동하고 R게이트를 열 것이니까.
***
“끄으응.”
몸을 옥죄고 들어오는 싸늘한 냉기가 극심했다.
영하 40도, 영상 85도에서도 15일 동안은 사람이 견딜 수 있도록 해 주는 첨단의 방한, 방열복을 입었는데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다.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꽁꽁 얼어 있다.
아마도 얼굴이 얼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싶다.
들이켜는 숨에 따라 들어온 눅눅한 공기, 그리고 온몸을 얼려 버릴 것 같은 냉기, 그러면서도 먼지가 가득인 것 같다.
콜록콜록~
숨을 쉬는데 맞춰서 가슴으로 모여드는 차가움이 기침을 나오게 한다.
“살아…….”
‘살아 있었네.’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흐흠, 흐흠.”
목으로 숨을 불어 내며, 목 안에 걸려 있는 듯한 답답함을 내뱉었다.
“위니(Winni), 여기가 어디야?”
참 황당한 질문이긴 하지만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마스터, 통신 신호가 너무나 미약하여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서윤의 목소리.
서윤이 아니지만, 목소리는 서윤의 음색이다.
수많은 음성 주파수 중에서 고르고 골라 서윤의 음색을 적용한 인공 지능 위니의 대답이다.
제발 여기가 1225년의 달이 2개 있는 그 차원이면 좋겠다.
제발, 제발.
3개의 시간 좌표 중에 1개를 선택했으니 확률은 33.3프로지만, 꼭 거기면 좋겠다.
가능하면, 사라져 버린 시간과 근접한 시간대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라져 버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사라진 후, 몇 시간 이내로 시간 좌표를 설정했다.
그게 잘 맞았으면 좋겠다.
정말 보고 싶었고, 그리웠으니까.
이제 조금만 지나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흙과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더 그런 듯한데,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저와 연결을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의 기능이 백 프로 동작이 가능해집니다. 그럼, 워쳐(Watcher)를 보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혹시 다른 곳에서 태영이 아닌 누군가가 위니를 가지고 갈 경우를 대비하여, 차원 이동 후에 반드시 태영의 몸과 터치하여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설정해 놓았다.
말은 터치이지만, 여러 가지 동작도 포함한다.
“우선, 우리가 여기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어?”
[175시간 지났습니다.]175시간이면, 7일이 조금 지난 셈이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그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나?
“일단 나하고 뽀뽀 한번 하자.”
[감사합니다. 마스터 에뒨.]위잉~
실제로 소리가 날 리 없지만, 소리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워쳐 보냈지?”
어두워서 보이지 않으니, 미약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래도 물었다.
[예, 보냈습니다. 마스터,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그래.”
태영은 대답을 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은 첨단 시스템이 적용된 옷으로 인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
“위니, 라이트.”
[예스. 마스터, 셀레네를 불러들이겠습니다.]왜 하필 그리스 신화의 셀레네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라일리의 테르에 포함된 문라이트보다 크기는 더 작고, 더 밝은 빛을 내는 장비인데, 이름이 셀레네다.
팍~
허공에 빛이 생겼다.
그 빛의 아래에 보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얼음덩어리들.
아니, 모두 사람이었을 것이지만, 이 추운 곳에서 얼어 죽은 모양이다.
이들은 왜 하필 이 추운 곳으로 와서 오자마자 얼어 죽었을까?
“살아 있는 사람이 있나?”
[모두 동결 상태로, 전부 사망했습니다. 인원은 총 87명입니다.]“이들이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장비들은 참으로 많다.
대충 봐서는 제작 시기를 짐작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아니야, 필요 없어. 여긴 어디야?”
[우선, 이곳 시간으로 20YY년 3월 24일입니다. 위치 좌표를 알려 주는 위성 신호가 워쳐에 잡히고 있습니다. 날짜는 위성 신호에 실려 온 것입니다.]“하아.”
왜 하필 이곳인 거야?
“하아.”
대체 왜 이런 선택이 된 거지?
“빌어먹을.”
그리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래도 빌어먹을, 이다.
아내들과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자 했는데,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털썩~
“후.”
그래도 온몸에 있는 힘이란 힘은 모두 빠져나간 것 같다.
멍~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
[마스터.]위니의 부름이다.
“미안.”
[37분간 그렇게 앉아 계셨습니다.]“그래. 며칠이라고?”
맥없이 물었다.
[20YY년 3월 24일 오후 6시 10분입니다.]그럼, 오후 5시 반 정도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보낸 거다.
날짜로 보면, 무기고를 옮기기 위해 움직이던, 그날로부터 8일이 지났다.
사라진 날의 시간보다 몇 시간 뒤를 잡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7일 정도 여기서 기절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시간차는 거의 맞는다.
“여기 위치는 어찌 돼?”
조금씩이라도 기운을 차려야지.
[전파의 감지는 되었지만, 신호 세기가 약해서 데이터를 충분히 받을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주십시오. 확인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GPS, GLONASS, GALILEO, BDS라는 이름을 가진, 위치 좌표를 송출하는 위성 신호가 잡힙니다.]“어차피 그 좌푯값으로는 내가 어딘지 확인하지 못해. 지명으로 알려 줘야 해.”
[지도 데이터를 불러오는 중인데, 통신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완료 후 맵 매칭이 이루어지면 위치를 알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그래, 알았어.”
오지라는 말이다.
이렇게 추운 동굴이 있는 곳에, 데이터 통신이 원활하지 않으면, 여기는 무조건 산간벽지, 오지 중에서도 최악인 극지일 가능성이 크다.
북극이나 남극에 가까운 지역일 수도 있고, R존이 있던 네팔 같은 고산 지대의 얼음 동굴 속일 수도 있다.
[혹시, 시대 선택이 잘못된 것입니까?]“아니야,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느냐,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느냐 하는 차이인데, 어차피 어쩔 수 없어.”
복불복이었으니까.
팔을 휘저어서 힘을 넣어 봤다.
몸이 깨어나면서 정신도 깨어나는 것 같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 이곳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맵 매칭 완료되었습니다.]“응, 말해 봐.”
빠르기는 하다.
데이터 전송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맵 매칭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지명은 중화 인민 공화국. 윈난성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에 위치한 매리 설산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매리 설산의 천연 동굴 내부입니다.]중국?
티베트?
그나저나 매리 설산(梅里雪山)이 어디야?
“지도를 보여 줘.”
[예스, 마스터.]팍~
허공에 지도가 펼쳐졌다.
이곳의 위치가 붉은 점으로 보였다.
“허, 중국 땅에서도 완전 산골짜기로 왔네.”
지도 위에 얼음으로 생각되는 하얀 눈이 보이고, 그 눈 속에 붉은 점이 있다.
1년 내내 녹지 않는 얼음으로 덮인 산의 정상이나 중턱, 아니면 깊은 암반 속의 동굴인 모양이다.
[…….]“여기서 대한민국 인제까지 거리가 얼마나 돼?”
[직선으로 2,930킬로미터입니다. 직선로에 서해가 있어서 비행이 아니면 직선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보행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다양한 경로가 있습니다만, 약 3,190킬로미터입니다.]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상으로 가면 북한을 통과해야 하네.
“아, 거지 같아.”
하긴, 미국 땅에 도착했으면 더 골 때린다.
거기에 도착하거나 호주 같은 곳에 도착했으면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인제의 일출 시각이 어찌 돼?”
저녁 6시, 3월 말, 중국 땅의 깊고도 깊은 산골짜기이면 일몰 시각에 상관없이 달려 나가도 된다.
위성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시간대를 이용해서 인제로 가야 하는 것만 계산하면 되는데, 이런 산골은 위성 카메라에 잡힐 확률이 지극히 낮다.
[06시 24분입니다.]“계산 한번 해 봐. 야간에만 이동 가능해.”
[산악 지역이어서 보행일 경우에 효율성이 아주 나빠지므로, 공중 부양으로만 계산했습니다. 마스터가 최대 속도로 가면, 약 4시간 50분, 표준 속도로 가면, 6시간 40분이 소요됩니다.]“육로로 갔을 때인가?”
태영이 공중 부양으로 달리면 최대 속도는 시속 670킬로미터다.
지금의 옷과 헬멧으로 670킬로의 속도를 견디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지금 출발하면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인제에 도착이 가능하다.
[네, 그렇습니다. 해상으로 비행이 가능하지만, 비상시 착륙할 곳이 없습니다.]그건 그러네.
“부모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네, 마스터.]“대답 안 해도 돼.”
[넵.]“R버너를 만들어서 1225년으로 돌아가려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전역을 해야 하는데…….”
[…….]“탈영병이 되어 버렸네. 젠장.”
[마스터.]R버너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까?
10년? 20년? 30년? 아니면, 그보다 더 걸릴까?
1225년의 시간 좌표로 갈 수 있는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
28세기, 그곳과 이곳은 원점이 달라졌기에 28세기에 계산한 시간 좌표는 이제 전혀 의미도 없고, 사용할 수도 없으니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1225년의 그 날로 가려면 시간 좌표가 몇 개나 나올까?
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래도 가야 한다.
반드시.
“나 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을까?”
무기고를 이전하던 차량 일부가 태영과 함께 갔으니, 사라진 차량과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람은 얼마나 사라졌을까?”
[…….]“그 사람들이 사라진 책임을 내게 물으려는 놈들이 많을 거야.”
[…….]“무기와 차량 분실 책임도 내게 물을까?”
[…….]“탈영병이 되면 어찌 되는 거지? 옥살이, 아니 영창에 가야 하나?”
[…….]“나오면, 불명예 전역인가?”
[…….]“하, 참. 아는 것이 없네.”
[…….]“그래도 가자. 새벽에 도착하겠지만, 거기 도착하면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숨기고, 적당히 옷 하나 훔쳐 입고, 산골짜기 적당한 곳에 엎어져 있다가 수색 팀에게 발견될 수 있도록 해 보자.”
[…….]“위니, 너를 숨겨 둬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지는 가면서 생각하자.”
[…….]“그래도 부모님과 누나는 좋아할 거야. 살아서 돌아온 거니까.”
[…….]“어쩌면 친구들도…….”
태영은 컴퓨터와 함께 이것저것 들어 있는 백팩을 고쳐 메고, 백팩에 넣지 못해서 허리춤에 매달린 칼과 28세기에서 받은 권총을 확인한 후에 걸음을 옮겼다.
“이제 가자, 집으로.”
[1부 완결]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