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56
001. 1217의 귀환자
“끄으응.”
몸을 옥죄고 들어오는 싸늘한 냉기가 극심하다.
~콜록 콜록~
“살아…….”
‘살아 있었네’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흐흠, 흐흠.”
목으로 숨을 불며, 목 안에 걸려 있는 듯한 답답함을 불어 냈다.
“위니(Winni).”
[네, 마스터]“고려가 맞아?”
[아닙니다.]태영은 대답을 들으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이트 켜 줘.”
[네. 셀레네를 불러 드리겠습니다.]~팍~
허공에 빛이 생겼다.
그 빛의 아래에 보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
사람의 형상을 한 얼음 덩어리들이 즐비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나?”
[모두 동결 상태로 사망했습니다. 인원은 총 87명입니다.]“시기, 알아냈어?”
[이곳 시간으로 20YY년 3월 24일입니다.]“하아…….”
왜 하필.
대체 왜 이런 선택이 된 거지?
“하아…… 원점으로 돌아왔네.”
전역을 1개월 남기고, 부대의 이전에 맞춰 무기고 이전 작전이 있었다.
수송 작전이 있던 그날이 3월 16일.
실제로 27년이 지났지만, 오늘은 3월 24일로 그때로부터 8일째 되는 날이다.
3월 16일 밤, 수송 작전 중에 발생한 사고 후 태영이 눈을 뜬 곳은 1217년의 고려 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공간 차원의 문을 통해 고려 땅으로 날아간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려에서의 생활이 8년.
아내가 있고 아이도 있었다.
몽골의 고려 침공을 막기 위해 출전했던 몽골 땅.
그곳에서 원치 않는 시공간 차원의 문으로 떨어졌다.
깨어난 곳은 신기 31년.
서기로 환산해서 2733년이었다.
고려로 돌아가고 싶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공간 차원의 문을 다시 열도록 요구했다.
첨단의 컴퓨터로 계산해서 나온 시공간 좌표는 3개.
그중에 한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도착한 지 19년이 되는 2752년.
첨단의 컴퓨터와 미래 기술이 집약된 장비 일부를 배낭에 넣고, 그곳에서 출발했다.
고려 땅에 도착하기를 원하면서.
“여기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어?”
[175시간 지났습니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병기고 수송 작전을 한 그날로부터 8일째 되는 날.
21세기, 원래 태영이 살던 현대로 왔다.
175시간이면, 8일째 되는 날이니 계산이 맞다.
“꽤 오래 기절해 있었네. 여기 위치는?”
[GPS 위성 신호가 잡힙니다. 맵 매칭을 해야 하니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GPS라니.
[맵 매칭 완료되었습니다.]“응, 어디?”
[이곳의 지명은 중화 인민 공화국. 윈난 성 디칭 티베트족 자치주에 위치한 매리설산(梅里雪山)의 빙하 동굴 내부입니다.]“대한민국 인제까지 거리가 얼마나 돼?”
[직선으로 2,930Km입니다. 육로로 가면 3,190Km입니다.]“인제의 일출 시간?”
[06시 24분입니다.]“이동 시간 계산해 봐.”
[공중 부양 최대 속도로 가면 약 4시간 50분, 정속으로 가면 6시간 40분입니다.]“27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23살의 군인 신분으로 돌아온 건데, 조사받겠지?”
[그렇게 예상됩니다.]그럴 거다.
전역이 1개월 남았던가?
“인제에 도착하면 새벽이 되는데, 위니하고 장비를 숨기고 거기 산골짜기 어디 쓰러져 기절해 있는 것으로 하자.”
[네, 마스터. 통신이 가능한 지역으로 해 주십시오.]“그래, 가자.”
***
“야 이 새끼야, 너 진짜 말 안 할 거야?”
“…….”
저놈이 ‘새끼’라는 말을 몇 번 썼지?
조사관에게서 나오는 말 중 욕이 절반이다.
처음에는 조사관이 욕하는 것을 무심하게 세어 보았다.
하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그만두었다.
“이제 다 포기하고 말할 때도 되지 않았나?”
“…….”
“말이 말 같지 않아?”
“대답은 이미 여러 번 했습니다.”
“그게 말이 돼? 너 같으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
“최태영.”
“…….”
“야, 최태영.”
“…….”
사실을 말해도, 거짓을 말해도 거짓말 말고 사실을 말하라고 한다.
같잖아서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야~이 개새끼야~.”
태영이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한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
“수백 명의 병력과 무기를 실은 트럭이 한날한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
“그렇게 증발한 지 8일 후에 너만…….”
“…….”
“그것도 사복 차림으로 나타났어.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
“그게 말이 돼?”
조사관의 언성이 높아졌지만, 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일이 ‘부대 증발 사건’으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너는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이야?”
알게 뭐냐?
‘새파란 놈이.’
태영의 공식적인 나이는 23세, 얼굴도 그대로다.
고려에서 8년, 28세기에서 19년을 살았다.
내용 면으로 보면, 50세의 중년이다.
이곳에서 고려로 날아간 그 시점부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눈앞의 이 새파란 놈이 반말 짓거리로 이 새끼, 저 새끼 소리를 지른다.
성질 같아서는 목을 비틀어 버렸을 것이다.
‘고려 같았으면, 너는 수십 번 죽었을 거야.’
“대답 안 해?”
“…….”
‘무슨 대답을 원해?’
‘1217년의 고려로 날아간 일?’
‘다시 거기서 28세기, 아니 2733년으로 날아간 일?’
‘너는 내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냐?’
그곳, R게이트를 열 수 있는 R버너를 가진 리버타임 연구소.
네팔 카트만두의 그 험악한 바위산 속에 조성된 지하 도시.
연구소 전 지역을 R존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고려로 돌아가기 위해 겪어야 했던 일들.
그리고 해야 했던 그 수많은 일들.
R버너를 재가동시켜 R게이트를 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
그 일들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R존의 컴퓨터가 계산해 낸 3곳의 시공간 좌표.
한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떨림의 순간.
되돌아가야 할 곳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고려였다.
3곳 중에 한곳을 찍었다.
당연히 고려로 가야 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1217년의 고려가 아니었다.
태영이 태어나서 살아왔던 원래의 세상인 21세기, 이곳으로 왔다.
‘내가 그것을 설명하면, 너는 믿겠냐?’
“야, 최태영.”
태영이 묵묵부답이니 사정을 하는 표정과 말투다.
그렇지만, 저 행동은 저놈이 미치기 직전의 제스처이다.
저 상태로 얼마간 계속되면 이놈은 이성을 잃어버린다.
‘말해 주면 미친놈이라고 할 거지?’
‘그리 말하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고려로 가길 원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계시고 누나가 있고, 친구들이 있는 이곳으로 왔다.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슬픔에 잠겨 있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곳이 맞다.
그렇다면, 고려 땅에 남겨진 아내들과 아이들은?
가슴이 쓰라리다.
그 어떤 결과이든 한쪽에 죄를 짓는 것이다.
“하! 이 새끼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
호통, 또 호통.
욕설, 또 욕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라고 한다.
조사라는 이름의 취조와 심문이 계속된 지 오늘로 39일째다.
전역 예정일에서 19일이 지났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 약물 검사는 기본이다.
정신 감정도 하고, 사람이 생각하는 검사는 다 당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검사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마치 해부당하는 기분이었다.
조금도 거부하지 않고 요구하는 대로 다 따라 주었다.
“씨발놈아. 왜? 아니꼬워?”
“…….”
“왜 너만 살아왔어? 너도 같이 죽어 버렸으면, 너도 이 고생 안 하고, 나도 이 고생 안 할 것 아니냐고?”
언어폭력의 내용으로만 보면, 이놈의 목을 따 버리는 것이 맞다.
대답 대신 조사실 책상으로 눈을 주었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볼펜 끝으로 꾹꾹 눌러쓴 글이 남아 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또한 지나가리).
이 글을 여기에 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조사관이 ‘왜 너만 살아왔느냐’고 할 때마다 이 글을 보면서 참은 것 같다.
~딸깍~
조사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 조사관, 나와 교대하지.”
처음 듣는 목소리다.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새로 온 사람은 소령 조병원. 소속은 국방부입니다.]귓속에서 인공 지능 위니(Winni)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병원은 들어오면서 녹화를 중지시켰습니다.]카메라를 끄고 들어온 조사관.
다들 어김없이 폭행을 했는데, 이놈도 그럴까?
법적으로는 구타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법으로 금한다고 죄를 짓지 않으면, 형무소나 구치소는 텅텅 비게 된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는 직업을 잃게 될 것이다.
군대의 구타 금지도 마찬가지다.
구타를 하는 놈은 피멍이 들지 않으면서, 표시나지 않는 곳을 귀신같이 안다.
그러면서 가장 고통이 심한 곳을 때린다.
유인영 조사관, 저놈도 그런 곳만 골라서 구타했다.
“최태영이라고?”
유인영과 교대하고 앉은 조병원.
잠시 말없이 태영을 바라보더니 이름을 물었다.
큰 소리는 아니다.
“어디서 온 누구신지 밝히는 것이 먼저 아닙니까?”
“하, 새끼~”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띠며 뱉어 내듯 던진 말이다.
조병원의 입에서 나온 ‘새끼’는 욕이라기 보다는, ‘웃긴 놈일세’ 라는 뜻이다.
아니면 ‘건방진 놈, 뭐 좀 아는 체하는 거야?’ 수준일 것이다.
“…….”
“조사관 신상은 보안 사항이야.”
‘보안 사항 같은 소리 한다.’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
태영은 말없이 조병원을 바라보았다.
이미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이자가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고 왔을 리가 없다.
“왜 말하기 싫어?”
“……다, 알고 오지 않았습니까?”
입을 다물고 있으려 하다가 그 말은 했다.
~피식~
입가에 비웃음 같은 미소가 걸렸다.
“너, 총기 휴대 군무 이탈죄 형량이 어찌 되는지 알아?”
무장 탈영으로 엮으려고?
발견될 당시에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집니다.]귓속에서 위니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
“인생 조지는 거야. 알아?”
“…….”
“너는 전역을 못 하고, 군 교도소에서 평생 썩게 될 거야.”
[구속 수감 상태이면, 전역 명령을 보류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지금까지 보류되었습니다.]‘며칠 전에도 말해 주었으니까, 알아.’
속삭이더라도 말로 해야 위니가 알아듣는다.
그냥 혼자의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형을 받으면 전역이 되는데, 6년 이상의 형이면 군번이 말소됩니다.]복잡한 과정이 있을 것이다.
위니는 간단하게 요약된 결과만을 설명했다.
그 결론은 민간 교도소로 넘어간다는 말이다.
[형을 받으려면, 범죄 사실이 뚜렷하게 밝혀져야 합니다.]그렇지.
[마스터 에뒨에게 범죄 사실을 소명하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지은 죄도 없고, 소명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네.’
“지은 죄가 없습니다.”
“왜 죄가 없어?”
‘뭐가 있는지 말해 봐.’
나이도 어린 놈이 반말을 찍찍 해 댄다.
그럼 화를 내고 싸대기를 올려야지.
그렇지만, 피의자 신분에 공식 나이는 23세이니 이해한다.
“너에게 지급한 소총과 군복 같은 것이 어디 있어?”
“…….”
그런 것으로도 엮으려면 얼마든지 엮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많은 무기를 실은 트럭을 네가 훔치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 있어야지.”
“…….”
‘말장난하려고 온 건가?’
웃음이 나왔지만, 웃지 않았다.
~톡, 톡, 톡~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시선은 태영에게 두고 볼펜으로 테이블 위를 톡톡 두드렸다.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위니는 태영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대답에 상관없이, 이들이 하는 말에 대해 알려 준다.
주로 법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이다.
태영은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고 조병원을 바라보았다.
~툭~
조병원이 자신이 가지고 들어온 두꺼운 파일.
그 사이에 끼워진 얇은 종이 파일을 꺼냈다.
잠깐 파일을 보더니, 태영에게 던졌다.
볼펜을 두드리기 시작하고 10분의 시간이 지났을 때다.
“서명해.”
~툭. 또르르~
볼펜이 파일 위에 던져지자 또르르 굴렀다.
“모두 다.”
무게를 잡으려는 것인지, 일부러 끊어서 말을 한다.
“이거, 풀어 주면 안 됩니까?”
수갑을 들어 보였다.
조병원이 테이블 아래의 한쪽에 붙은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뚜벅뚜벅~
복장을 다 갖춘 군사 경찰 한 명이 들어왔다.
조병원이 태영의 손에 걸린 수갑을 가리켰다.
“풀어 줘.”
“넵.”
수갑을 풀어 준 군사 경찰이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사락~
수갑 찼던 자국이 선명한 손목을 한번 문질렀다.
첫 장의 제목이 보안 각서, 그리고 그 뒤로 거의 20페이지나 된다.
제목만 흘깃 쳐다보았다.
이름을 써야 하는 자리에 자필로 이름 쓰고 서명을 했다.
조병원이 목 뒤로 두 손을 깍지 끼고 몸을 젖혔다.
“안 읽어 봐?”
묻거나 말거나.
대답은 하지 않고 서명을 해 나갔다.
마지막 장이 재미있다.
강제 구금한 사실, 강압적인 조사, 폭행 등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많았는데.
강압적 조사와 폭행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읽어 보는 중입니다.”
이제야 대답하며 조병원을 한번 쳐다보았다.
“뭐 문제 있어?”
마지막 장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그도 알 것이다.
그래서인지 또 피식 웃는다.
그 장에도 이름을 쓰고 서명했다.
볼펜을 파일 중간에 끼우고, 파일을 접어 조병원 앞으로 밀었다.
“별것 없네요. 문제 있다고 해도 고쳐 줄 것도 아니고.”
파일을 받은 조병원이 태영을 한번 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종이마다 서명을 했는지 확인했다.
“데리고 나가. 오늘 중에 자대로 복귀시켜.”
“……네.”
태영의 뒤에 서 있던 군사 경찰이 한 박자 늦게 대답한다.
풀어 주라는 말이 의외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조사가 끝난 것이다.
더 이상의 조사가 무의미할 것이다.
조사 기간은 제법 길었지만, 끝은 참으로 싱겁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한다.
“조사 끝난 것입니까? 이거 녹음하겠습니다.”
“그래.”
또 피식 웃는다.
‘녹음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는 뜻이겠지.
왜 못 믿을까?
조사가 시작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녹음이 되어 있다.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믿지 못하겠지.
“무혐의 처분, 맞습니까?”
“맞아.”
태영은 구호를 붙이지 않고, 손만 살짝 올려 거수경례를 했다.
공식적으로, 병장 신분이니까.
“조용히 살아라. 그리고 가능하면 TV는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조병원은 경례를 받는 대신 한마디 툭 던졌다.
조용히 살라는 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안다.
“조용히 살긴 할 건데, TV 안 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
~빰 빰빠라빠라 빰~
기상나팔 소리에 눈이 떠졌다.
27년 만에 듣는 기상나팔 소리, 참으로 새롭다.
어젯밤, 늦은 시간.
이들에게는 4주 전, 태영에게는 27년 전에 이전이 완료된 부대로 데려다주었다.
짐짝처럼 화물 트럭에 태워서 왔다.
그리고 처음 와 보는 생활관에 들어섰다.
콘크리트 냄새와 페인트 냄새가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새로 지은 곳이다.
불침번이 가르쳐 준 자리에 누워, 조용히 잠을 청했었다.
새벽녘에 잠시 잠이 들었는데, 2시간쯤 잔 듯하다.
“잘 주무셨습니까?”
일병 계급장을 단 병사가 몸을 일으키는 태영에게 물어왔다.
아는 얼굴이다.
다만,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응.”
“아침 점호, 꼭 나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 고마워.”
이름이 뭐였더라?
명찰을 보기 전에 그가 몸을 돌렸다.
기억을 떠올리려 해 봤지만 누구인지 모르겠다.
다들 세면도구를 챙겨서 나가자 생활관이 조용해졌다.
~휴~
한숨을 한번 쉬고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겠지?’
신분에 대한 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
그래서 이 짜증 나는 과정을 견뎌 내고 있는 중이다.
‘전역일이 지났지?’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군사 경찰에게 조사받으며 보낸 기간이 어제까지 39일.
그사이에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행방불명 기간 포함해서 이제 48일째다.
그리 따지면 전역 예정일에서 20일이 지났다.
‘조금 후 행정반에나 가 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돌아온 날은 이곳에서 고려로 날아간 다음 날 낮.
도착한 곳은 중국 땅 운남성의 매리설산(梅里雪山)이다.
히말라야보다 더 험한 산.
너무나 험난하여 태고 이래로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는 곳이다.
얼음으로 뒤덮인 천연 동굴 속에 R버너가 만든 R게이트.
태영이 고려에 있을 때 지은 이름이다.
Fifth Dimension Gate에서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 피디지(FDG).
다중 차원을 이동하는 그 문을 통해 이곳으로 왔다.
물론, 깨어난 시간은 도착일로부터 7일 4시간이 지난 후다.
동굴 안의 수많은 죽음들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났다.
교통수단은 이용할 수 없었다.
위성을 피하고 인적을 피해 3,190킬로미터를 달렸다.
밤사이에 매리설산에서 인제까지 왔다.
중국 어딘가의 농가에서 빨랫줄에 걸린 작업복을 슬쩍 들고 왔다.
새벽녘에 트럭들과 함께 사라진 곳에 도착했다.
산비탈 한쪽에 작업복을 입고,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그곳에 죽은 듯 누워 있었고, 아침에 수색조에게 발견되었다.
그때 이후, 군사 경찰의 조사를 받느라 계속 갇혀 있었다.
현실 인식은 위니가 전해 준 내용이 전부다.
TV도, 신문도, 컴퓨터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모든 미디어와 통신이 차단된 상태에서, 조사가 진행되었다.
혼자 있는 때에 위니가 전해 주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패치가 조금씩 이루어졌다.
아직 현실 패치가 부족하여 제대로 인식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이다.
‘풀어 준 것을 보니, 전역 명령은 나왔겠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아침 점호 나가기 전에 세면장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 늦장을 부렸다.
~딸깍~끼익~덜컥~
~뚜벅, 뚜벅~
생활관 바깥쪽에 있는 주 현관이 열리는 소리.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태영이 있는 곳으로 소리가 가까워졌다.
“최태영.”
지금까지는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꼭 찍어서 이름을 부르니 돌아볼 수밖에 없다.
중사 계급장을 단 저 사람은 누구였지?
기억이 안 나는데, 명찰에 강하원이라고 되어 있다.
“…….”
그래도 경례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손을 올리는 시늉을 하며 경례를 했고, 경례 구호 같은 것은 붙이지 않았다.
“대대장님 호출이다. 아침 먹자마자 바로 가라.”
강하원은 발로 경례를 받으면서, 전달 사항을 툭 던졌다.
흔히 하는 말로, 그런 것을 전달할 급이 아니다.
무언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온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태영의 대답에 씩 웃으며, 건너편 침상에 털썩 앉았다.
“왜 너만 살아 돌아왔느냐는 현수막 봤어?”
조사관도 말했던 이야기다.
가능하면 TV는 보지 말라고 한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다.
세상 참 각박하다.
“못 봤습니다.”
“너, 대한민국에서 제법 유명인인 거 알아?”
“…….”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궁금하지 않아?”
‘전혀’
“…….”
“야, 이야기 좀 해 봐라. 어떻게 정말 너만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는지?”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처럼 말한다.
강하원과 이렇게 부담 느끼지 않을 정도로 친숙한 사이였던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정말이야?”
“네.”
“새~끼.”
강하원이 히죽 웃으며, 그렇게 한마디 던지고는 나갔다.
‘너, 뭔가 있는데 말 안 하는 거지?’ 그런 의미 같다.
‘대체 뭐가 궁금한데?’
뒤이어 부대원들이 세면장에서 세수들을 하고 오는지 소란하다.
그들은 관물대에 세면도구를 넣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다들 태영을 한 번씩 힐끔거린다.
‘신기한가?’
~아아악~
잠시 후,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지만, 비명 소리는 아니다.
‘전방을 향하여 소리 질러.’ 뭐 그런 거다.
오랜만에 들으니 새삼스럽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