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57
002. 전역(1)
“고생했다.”
“아닙니다.”
“묻고 싶은 것이 많다만, 헌병에게 오래 시달렸을 테니, 나는 묻지 않겠다. 알아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고.”
지금은 군사 경찰로 불리는데, 대대장은 그냥 헌병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입에 붙은 습관적 이름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대대장 박원규.
종종 얼굴을 보기는 했다.
그래도 이렇게 말을 나누어 본 기억은 없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선명치 않을 수도 있다.
“병력과 무기가 사라진 것이 군의 보안 사항이긴 하다.”
“네.”
“그렇지만, 워낙 큰 사건이어서 외부에 많이 공개가 되었다.”
그렇겠지.
“군에서 통제를 하긴 해도, 기자들이란 참.”
기자들?
아, 맞아.
고려 시대와 R존이 있는 미래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원래 이 시대의 기자들을 지칭하는 말.
기자와 쓰레기의 복합어인 기레기라 불렸던 것 같다.
“아무튼, 네 얼굴이 알려졌고, 이름도 알려졌다.”
“감당하겠습니다.”
의미를 알았으니 그에 맞춰 대답하면 된다.
“그래,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가족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을 거야.”
“네, 알고 있습니다.”
“너와 가족을 제외한, 누구도 도움보다는 기회만 생기면 물어뜯으려고 할 거다.”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이 말속에 전해진다.
“잘 이겨 내겠습니다.”
대대장이 손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같다.
부관, 정훈관, 작전 참모가 배석했다.
작전 참모는 왜 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전역일 지났지?”
“그리 알고 있습니다.”
“전역 신고 생략, 연대장님과 사단장님에게도 보고하고 허락을 받았다.”
“네.”
전역 신고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른다.
전역 신고 자체를 생략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지.
“행보관에게 가면 전역증이 준비되어 있을 거야. 그거 받아서 오늘 중에 조용히 나가도록 해.”
군대 규정에 그런 것이 가능한가?
확인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배려는 고맙기 짝이 없다.
‘조용히 나가도록 해.’라는 저 말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는 많을 것이다.
나가면 겪게 되겠지.
“감사합니다.”
대대장 박원규가 일어서며 손을 내밀었다.
경례 대신 악수를 나누는 전역 신고가 될 줄은 몰랐다.
악수를 나누고 한 발 물러섰다.
배석한 다른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지는 않았다.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약식으로 전역 신고를 하고 대대장을 향해 경례를 했다.
관등 성명도 없고, 날짜도 없다.
아무튼 이상한 전역 신고였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충성. 잘 가라. 고생했다.”
박원규가 경례를 받았다.
***
대대장실을 벗어나 행정반으로 갔다.
그 옆에 정훈장교나 작전 참모 같은 당직 사관의 사무실이 있다.
그다음이 바로 행정반이다.
행정보급관 유건영 원사.
태영이 행보관의 책상 앞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행보관이다.
눈이 가늘고 꼬리가 길어서 사나워 보이는 세모꼴의 시선이 태영을 향해 있었다.
오래된 기억 속의 행정반 출입 방법?
들어서면서 경례하고, 계급과 이름을 댄다.
그리고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병장들은 그 과정은 생략하고, 상병 정도만 되어도 잘 안 지킨다.
태영 역시, 대충 경례하는 시늉만 했다.
“개~새끼.”
의자를 뒤로 잔뜩 젖히고 있던 행보관.
미친개처럼 광기가 넘치는 눈이 계속 태영을 따라 움직인다.
입으로 느릿하게 욕을 내뱉는다.
행보관 책상에서 한 칸 건너에 행정병이 있다.
그 앞에 가서 섰을 때, 행보관이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존.만.아. 너 혼자 살아오니까 좋냐?”
행보관이 중지를 오므려 둘째 마디가 튀어나오도록 밤주먹을 쥐었다.
밤주먹으로 태영의 명치를 퍽퍽 소리가 나도록 쳤다.
극심한 적의가 느껴지는 목소리다.
때리는 정도는 장난이 아닌 폭행 수준이다.
“…….”
왜 죽지 않고 살아왔느냐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런 때는 그냥 맞아 주는 것이 최선이다.
배에 힘을 줄 필요도 없다.
“새끼가…… 말이 좆같으냐?”
“…….”
‘그래, 맞아. 너 아주 좆같아.’
무심하게 행보관을 보면서 생각만 그렇게 했다.
이곳으로 되돌아와 이놈을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대체 이놈이 왜 이렇게 적개심을 표시하는 걸까?
“개새끼가 사람 말을 무시해.”
~뻑~
행보관의 군화가 왼쪽 정강이에 와서 세차게 부딪쳤다.
피할 수 있었지만, 그냥 맞았다.
한 대 맞고 나니 행보관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별명은 미친개.
물리면 약도 없다.
이놈은 구타 금지와 아무 상관없는 듯 행동했다.
때려도 표시나지 않는 부위만을 골라서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아주 극심하다고 들었다.
병사들 모두가 행보관에게는 이를 갈았던 것 같다.
“아쭈! 씨방새가 버티냐?”
정강이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거나 했으면 만족했겠지.
아프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화가 더 난 것 같다.
~뻐억~
행보관의 군화가 다시 태영의 오른쪽 정강이에 작렬했다.
“하!”
여전히 아픈 기색을 내비치지 않자 기가 차는 모양이다.
‘이유 없이 적개심을 내보이고. 구타를 했으니 내가 부대를 떠나기 전에 너는 그 대가를 받게 될 거다.’
“야, 천식이.”
행보관이 한 칸 건너 책상에 앉은 상병을 불렀다.
“네, 행보관님.”
“이 씨발놈, 보기 싫으니까 전역증이나 줘서 내쫓아.”
내쫓으라고?
고마운 일이지.
“네.”
천식이라 불린 상병.
파일철을 열고 그 사이에 끼워 둔 전역증을 건네주었다.
“여기 사인하십시오. 날짜는 빼구요.”
“고맙다.”
날짜는 왜 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인을 해 주고 돌아서서 펴본 전역증.
전역일이 오늘로부터 20일 전, 원래의 전역 예정일이다.
3차 휴가인 말년 휴가 9일을 포함해서 29일을 도둑질 당했다.
행보관은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혹시, 그만큼 통장에 병장 월급으로 넣어 주려나?
“전역 신고 안 해, 이 새끼야?”
행정반의 문 앞인데 행보관의 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은 고개를 반쯤 돌렸다.
팔을 높이 들어 올려 행보관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쑥 내밀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거기 서.”
행보관의 악에 받친 고함을 지르든 말든 행정반을 나왔다.
뒤에서 행보관이 발광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퍽~
문을 발로 차는 소리다.
‘정강이 뚝~’
발로 차는 소리에 맞춰서 정강이를 부르트려 버렸다.
“아아아악~”
비명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지.
뼈에 금만 가게 하지 않고 꺾어 버려서, 손상 정도가 극심할 것이다.
수술도 받아야 하고, 아주 오래 입원해야 한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 소리가 들린다.
정강이가 부러진 통증에 허물어지며 엉덩이를 찧는 소리다.
‘한 번 더 뚜둑~’
엉덩이 찧는 소리에 맞춰서 엉덩이뼈 아래쪽을 깨트렸다.
여긴 표시도 나지 않는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겠지만.
‘너는 오늘로 군대 생활 끝이다. 사병들 괴롭히는 것도 끝났고.’
“으아아아아아~”
행보관의 비명이 행정반 밖으로 튀어나왔다.
‘고통은 지금보다 나중이 훨씬 더 심할 거야.’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염동력.
시공간 차원의 문을 통과할 때, 엄청난 에너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그 막대한 에너지가 몸을 찢어발기듯 관통하고 지나갈 때, 발생하는 이상 현상.
그로 인해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특수 능력이다.
조사받는 중에도 혼자 있을 때면, 몸에 남아 있는 특수 능력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초능력과 염동력은 그대로였다.
고려에서 28세기로 갈 때 얻었던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이곳으로 오면서 사라졌다.
화안력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이다.
생활관에는 아침 점호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일병 계급장을 단 병사가 서성거리고 있다.
여전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명찰을 보니 임석은이다.
“최 병장님.”
“응, 왜?”
“혹시 김정표…… 소식은 모르십니까?”
둘이 친한 사이인가?
비록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둘이 친했던 것 같다.
병기고 앞에서 둘이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미안하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래, 정말 미안해. 내가 그 어떤 것도 해 볼 기회조차 없어서.’
김정표, 작은 유골 한 조각과 인식표만 돌아왔다.
숨겨 둔 인공 지능 컴퓨터 위니가 있는 백팩 속에 들어 있다.
이미 하얗게 탈색된 뼈만 남아 있고, 인식표가 그 백골에 걸려 있었다.
“…….”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데, 마치 눈물을 쏟을 것처럼 보인다.
“동기야?”
“동기이기도 하고, 학교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랬구나.
“미안하지만, 정표 집 주소 알고 있으면 좀 적어 줄래?”
발을 돌리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물었다.
“네? 왜 그러시는데요?”
“내 후임 아니냐?”
“아, 네.”
“나는 살아 있는데, 정표는 소식조차 모르니, 기회가 되면 정표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말이라도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관물대로 가더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 명의 병사들이 생활관으로 들어섰다.
다들 어렴풋이 얼굴은 기억이 난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명찰을 보지 않으면 이름을 알 수가 없다.
“힘드셨죠?”
명찰에 오연균,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다.
뭔가 서먹한 느낌은 있는데, 어쩔 수 없겠지?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안녕히 가십시오.”
구호 빼고 거수경례를 하기에 같이 답해 주었다.
빛바랜 기억 속에 전역은 제법 떠들썩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다들 가라앉아 있었다.
그 사건 때문이겠지만, 오히려 편하다.
“그래, 고맙다. 사회에 나가서 혹시 인연이 되면 다시 보자.”
“네.”
오연균의 주위에서 서성거리던 병사들.
굳은 얼굴로 구호 없이 경례를 한다.
병사들은 다들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여기 있습니다.”
돌아온 임석은이 내민, 반으로 접힌 쪽지.
김정표 이름 바로 아래에 쓴 주소는 서울이다.
주소 아래에 휴대폰 번호가 하나 기재되어 있었다.
태영은 말없이 휴대폰 번호를 가리켰다.
“혹시 몰라서……요. 정표 아버지 전화번호입니다.”
“그래, 고맙다.”
친구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면 아주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임석은의 얼굴이 보였다.
“시간이 되면 꼭 들러 주십시오.”
“그래. 꼭 그럴게.”
“전화번호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그래.”
임석은으로부터 메모지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막상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되어서 그렇다.
“…….”
태영이 멈칫거리자 ‘왜요?’ 하는 표정이다.
“아니다, 전화기를 포함해서 소지품을 모두 분실했거든.”
“아…….”
“어쩌면 전화번호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
“차라리 네 번호를 내게 알려 줘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태영은 김정표의 주소를 써 주었던 쪽지를 내밀었다.
임석은이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추가로 기재했다.
가까이 지냈던 기억은 없는데, 태영을 무척이나 가깝게 대한다.
김정표 때문인가?
자, 이제 가자.
반납할 물건도 없으니 그냥 나가면 된다.
***
위병소로 방향을 잡아 걸으며,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의문은 많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위니에게 말을 시켜도 될 것이다.
“위니.”
[예스, 마스터.]“거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고려, 그곳에 아내들과 아이들이 있다.
최태영의 모든 것이 있는 곳은 이곳 21세기가 아니다.
13세기의 고려 땅, 그곳에 있었다.
[아직은 답을 드릴 수 있을 만큼의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그래, 위니를 숨긴 곳의 통신 환경이 좋지 않지.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
[네, 그렇습니다.]“알아. 데이터 부족이라는 거.”
“가능하다면 언제쯤일까?”
[…….]“이건 더 중요한 문제인데…….”
태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모님이 계신데 정말 가야 하나? 하는 것도 있어.”
갈 수 있느냐 와는 또 다른 문제다.
[…….]“부모님의 상실감은, 지금 고려 땅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생각으로 내 가슴이 아픈 것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거든.”
[…….]“우습게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게 된 후에 알게 된 거지만.”
[제가 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내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뿐이야.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가기는 해야 한다.
부모님이 명을 다해서 돌아가신 뒤라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그곳, 태영이 그 시대에서 사라진 이후, 그다음 날의 시간 좌표가 가장 좋다.
그러나 그 뒤의 몇 년 이내라면 가장 빨리 출발 가능한 시간이 더 좋다.
‘이곳에서 결혼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보다, 이곳의 법대로 살 수 있을까?”
이것이 태영이 염려하는 것 중에 하나다.
[법은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마스터께서 저에게 내리는 명령은 절대 명령이기 때문에 이곳의 법과는 상관이 없습니다.]“맞지. 그런데…….”
[…….]“내가 아는 법은 상식 수준인데, 오래되어서 기억에도 별로 없어.”
[네.]“문제는, 그 상식 수준조차 13세기나 28세기와도 차이가 크고.”
[…….]위니는 태영의 말에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법질서의 차이, 말이 이상하지만…….”
[네.]“오래된 기억이지만 유전 무죄, 권력 무죄, 무전 유죄, 내로남불이 무척이나 심해.”
[알고 있습니다.]“권력자들은 위반하고도 처벌받지 않거나 형식적인…….”
거기까지만 말하고 끊었다.
사실상 위니에게는 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에 그러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법질서라는 말을 꺼낼 때,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태영이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일당 5억짜리 노역이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그때는 아주 어린 나이였다.
왜 그런지 이유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같은 또래의 나이 어린 친구 중에 한 명의 말이 있기 전까지는.
‘하루만 그 일당 받고 대신 살면 안 돼? 반만 받아도 되는데.’라고 했다.
태영도 그런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세상에, 하루 일하고 5억이라니.
‘그만큼 주면 열흘도 일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세상이지?”
[…….]법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다가 왔다.
그래도, 제멋대로 살지는 않았다.
28세기 그곳에서는 아무도 태영을 터치하지 않았다.
사실상 터치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전.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 13세기의 고려.
그곳에서는 정벌군 사령관으로 살았다.
거칠 것이 없었다.
“모르는 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제가 가지고 있는 마스터에 대한 데이터는 극히 제한적입니다.]“그렇지?”
[네, 다 알지는 못하지만, 주로 전장에서 살아오신 분이라 걱정이 됩니다.]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