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60
005. 안녕 위니
“이곳의 네트워크 상태면 디테미어 없는 상태로 워처 몇 개나 제어할 수 있어?”
[약 20개입니다.]워처 (Watcher), 극소형의 추적 감시 장비다.
대기의 전파 에너지로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하여 사용한다.
용도는 탐지, 추적, 감시용이다.
20개 정도면 지금으로서는 충분하다.
디테미어가 깔리면 워처는 아주 많이 늘릴 수 있다.
“그래, 위치를 옮기고 나면, 부모님과 누나 곁에 ‘워처’와 ‘사프캣’ 배치해 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녹화나 녹음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음. 부부의 은밀한 장소까지 녹화되거나 녹음되는 것 아니지?”
[녹화와 녹음은 제3의 인물이 등장하거나, 제3의 통신이 연결되는 경우로 한정하겠습니다.]“그래.”
‘사프캣’은 공격과 방어용 특수 장비다.
그것까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의 하나가 있으니까.
***
밤 11시.
사위는 조용하고 인적이 없는 밤이다.
길이 험한 도봉산 등산로에는 풀벌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달빛도 없어서 칠흑같이 어두우니 태영이 은밀하게 움직이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이기도 하다.
태영이 가야 할 곳은 도봉산 자운봉.
자운봉 북쪽 비탈의 암반 사이에 위니를 숨겨 두었다.
매리설산에서 이곳으로 와 남들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장소를 골랐다.
미약한 수준이지만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없는 장소여야 했다.
태영이 오랫동안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발견되면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잘 숨겼다.
숨긴 날로부터 42일이 흘렀음에도 안전하게 위니와 통신을 하고 있다.
위니를 찾는 과정도 남들이 보면 안 된다.
낮에 지하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렸다.
도봉산 119 산악 구조대 옆을 지나는 등산로를 택해 자운봉으로 가는 길을 올랐다.
인적이 없는 곳에서 숲속으로 몸을 감추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위니.”
[예스, 마스터.]“주변에 CCTV 있나?”
[없습니다. 행인 또한 없습니다.]한밤의 산속이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거리가 얼마나 돼?”
[북쪽으로 1.2킬로미터, 고도 50미터 더 올라와야 합니다.]“위성은?”
“알았다.”
태영은 나무 끝을 스치는 수준으로 공중 부양을 했다.
신선대의 기암절벽을 돌아 위니를 숨겨 둔 곳으로 갔다.
앞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희미한 명암의 차이만으로도 찾아갈 수가 있다.
[1미터 전방입니다.]“그래, 찾았어.”
덮어 둔 마른나무를 들어냈다.
그 안쪽에 위니가 들어 있는 백팩이 보였다.
그 옆으로 검 세 자루가 든 긴 가방.
태영이 시공간을 넘을 때 입고 온 옷인 디스토웨어를 넣은 보자기까지.
“젖지는 않았네.”
[비가 몇 번 내렸지만, 이곳까지 비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이제 나와 같이 있으니 CCTV 동작을 정지시키는데 문제없지?”
[네, 안심하고 부양으로 가도 됩니다.]지금까지는 통신 트래픽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어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통신 트래픽에 상관없다.
“선글라스는 끼어야겠다.”
[넵.]백팩의 사이드포켓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끼었다.
눈앞이 초저녁의 어스름처럼 밝아졌다.
백팩을 등에 메고, 고려에서부터 함께한 세 자루의 검이 든 가방을 들었다.
“아이미어 주사하면 몇 시간이라고 했지?”
아이미어를 주사하면 위니가 보내는 영상을 직접 볼 수 있다.
[6시간 동안 활동을 하면 안 됩니다. 제 기능이 활성화되는 데는 48시간이 필요합니다.]아이미어(Eyemere), 역시 R존에서만 사용하는 용어.
나노 기술이 들어간 주사제로 시신경에 위니가 직접 영상 신호를 송출할 수 있다.
태영이 보는 영상을 위니에게 보낼 수도 있다.
주사 후 6시간은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
“파모니 졸은 몇 시간?”
[파모니 졸은 주사한 후, 4시간 동안은 격한 활동을 자제해야 합니다.]파모니 졸(Famony Sol) 역시 사전에는 없는 R존 용어다.
기억하기로 페이스와 하모니의 합성어라고 했다.
피코 기술이 접목되어 피코 입자의 졸이 들어 있는 주사제로, 얼굴과 몸의 모습을 변형시킬 수 있다.
물론, 위니를 통해야 변형이 가능하다.
서로 다른 10개 유형으로 변장에 최적화된 주사제다.
“아이미어와 파모니 졸을 동시에 주사해도 문제가 없나?”
오늘 모텔에 들어가면 주사할 생각으로 물었다.
[동시에 주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그래?”
[아이미어 주사 후, 20시간이 경과한 후에 파모니 졸을 주사하는 것이 좋습니다.]“알았다. 그럼 오늘 밤에 아이미어, 내일 밤에 파모니 졸.”
[네, 그것이 좋습니다.]“엑스레이나 첨단 장비로 탐지 불가능한 시간?”
굿이지.
이 시대 이곳의 기술로는 절대 탐지되지 않을 것이니까.
“가자. 가능하면 숲을 벗어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줘.”
[네. 워처 뒤에 아주 작은 광원을 띄우겠습니다. 그 빛을 따라가십시오.]“그래.”
~후우우웅~
귓가에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마스터 에뒨.]24시간 하는 해장국 집.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위니의 음성이 들렸다.
“텐.”
10분 후에 하라는 뜻이다.
실내이고, 식사하는 곳이어서 선글라스는 쓰지 않았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고, 모자도 벗었다.
태영의 얼굴은 모두 드러나 있는 상태다.
서빙 하는 아주머니는 뉴스가 나오는 TV 화면과 태영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작게 미소 지었다.
“편히 먹고 가세요.”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태영에게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작은 목소리다.
그런 후에 주방 앞쪽의 식탁으로 가서 앉는다.
“아줌마, 왜 꺼요? 뉴스 좀 봅시다.”
태영을 제외하고 2개의 테이블에 사람이 두 명씩 앉아 있다.
그중 한 테이블에서 다시 켜라는 요청을 한다.
“네.”
대답은 했지만, 몸을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머니 연배와 비슷해 보인다.
그분의 행동에서 태영을 배려해 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런 때는 태영이 빨리 나가 주는 것이 좋다.
“고맙습니다.”
계산을 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고마운 아주머니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시간에 보여 준 뉴스.
태영의 이야기가 잠시 언급되었다.
내용은 누리꾼들의 신상 털기에 대한 질타였지만 얼굴은 나왔다.
질타는 핑계일 뿐이다.
‘부대 증발 사건’을 국물 우려먹듯 한 번 더 우려먹는 것에 불과해 보였다.
“그나저나 빨리 핸드폰을 개통해야겠다.”
폰이 있으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통화하는 척하면 된다.
“위니.”
밖으로 나오며 위니를 불렀다.
[부모님 대출 회수를 지시한 사람은 국회의원 유재구입니다]시내로 내려와 디테미어 1기를 풀었다.
그것을 강남에 있는 IDC 한곳에 보내자 네트워크가 매우 원활해졌다.
이제는 통신 문제가 해소되어 속도가 빨라졌다.
위니를 숨길 장소는 아직 확정하지 못해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천장 속에 숨겼다.
세 자루의 칼이 있어서 백팩을 누나 집에 맡기지 못한 것이다.
“그놈이 왜?”
[부대 증발 사건에 유재구의 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왜 너만 살아왔는데’의 최초 발언자입니다.]“하!”
국회의원이란 놈이 그랬다고?
제 아들이 귀하기는 하겠지만, 그 일을 태영이 만들었나?
왜 애먼 곳에 화풀이야?
“아버지 계신 곳이 그놈 지역구야?”
[아닙니다. 전혀 다른 지역인데, 인맥을 동원해서 처리했습니다.]“그런데, 국회의원이 지시한다고 그리 쉽게 회수가 되는 거야?”
[직접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한두 가지일까?
“그 일에 연루된 놈들 모두 알지?”
[조사해 두었습니다. 관련자로 현재까지 확인된 자는 모두 12명입니다.]“더 있을 수도 있나?”
[아직 직접적인 연관성 여부에 대한 자료가 미흡한 인물이 10명 더 있습니다.]“알았어. 마저 조사하고, 기록은 보관해 두도록 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누님 최서영.]“누나도 유재구 때문이야?”
[아닙니다. 그 회사 사업부장 지효상 상무가 지시했다는 것까지 확인되었습니다.]“이것들이 진짜 웃기네. 직접적인 이유는?”
[그건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그래?”
[네, 디테미어 활동이 충분하니, 지효상의 입에서나 그의 컴퓨터에서 최서영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면, 10분 이내에 대부분 밝혀낼 수 있습니다.]“알았어.”
***
“어세 오세요.”
규모가 제법 있어 보이는 통신사 대리점에 들어섰다.
물광으로 번들번들 빛이 나는 얼굴의 점원이 인사를 한다.
“전화기 보시려구요?”
“네.”
대답하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점원과 마주 앉았다.
“여기 있는 것들이 요즘 가장 핫한 모델입니다.”
손으로 눈앞의 핸드폰들을 가리켰다.
최신 기종의 모형 전화기가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다.
“제가 군 생활할 때 쓰던 전화기를 분실했는데요.”
뭔가 낯설어서 그렇게 운을 떼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모습이 이상한지 자꾸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럼 기변으로 하시면 되구요.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그 번호 말고 새로운 번호로 하고 싶은데요.”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열 가지도 넘는다.
신상 털기 좋아하는 꾼들이 넘친다.
태영의 얼굴과 전화번호, 다니던 학교까지 모조리 털어서 인터넷에 도배를 했다.
태영에 대한 평도 가지가지다.
‘왜 너만 살아왔는데’라는 기조가 가장 중심이다.
“그럼, 신규 가입이시니까, 이거 작성해 주세요.”
작성해 달라는 신청서에 이름을 기재했다.
아래쪽의 내용을 쓰고 있는데, 숨소리가 훅 할 정도로 커진다.
눈은 서류를 보고 있지만, 앞에서 손짓을 하면서 입을 벙긋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저 사람, 그 사람이야.}
{어떤?}
{그 왜 있잖아? ‘왜 너만 살아왔는데’라는.}
{어머어머. 어머 그~으~래.}
‘다 들리거든.’
서류를 얼굴에 집어 던져 버리고 나갈까?
그러면 폭행이라는 신고가 들어가지 않을까?
다른 곳에 가 봐야 또 이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여기요.”
서류를 모두 쓴 후에 내밀었다.
선택한 전화기는 대형 화면에 충분한 내장 메모리.
그래도 대용량의 마이크로 SD를 추가했다.
30분 정도 기다렸고, 드디어 손에 핸드폰이 들어왔다.
통신사 대리점을 벗어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에게 먼저 문자를 했다.
부모님과 누나를 전화번호부에 등록했다.
임석은에게도 문자를 보내 전화번호를 알리고 등록했다.
~위이이이잉~
문자로 보내자마자 진동 상태로 둔 핸드폰이 울렸다.
[폰 개통했구나.]블루투스 이어폰을 터치하자 이어폰 속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혹시 집이야?”
부모님과 같이 있는 모양이다.
여주 시내에서 제법 가야 하는 장소지만, 그냥 여주로 부른다.
[태영이구나.]작은 목소리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엄마. 바꿔 줄게.] [그래. 태영이냐?]전화기 뒤쪽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들리더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네, 어머니.”
[뭘 이런 걸 사서 선물로 보내냐? 이름까지 써서.]복권 이야기다.
“아들 전역 기념으로 드린 거죠. 당첨되면 좋잖아요?”
[아무튼 당첨하고 상관없이 잘 가지고 있으마. 네 아버지도 지갑에 잘 넣으시더라.]“네, 저는 일을 좀 더 봐야 하니까, 당분간 서울에 있을게요.”
[잠은?]“모텔에서 잤는데 앞으로는…….”
[돈 아깝게, 누나 집에 가서 자.]“이제 폰 개통했으니까, 친구들 연락하면 하루 이틀은 재워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알았다. 조심하고.]“네.”
전화를 끊고 전화번호부를 봤지만, 등록된 사람이 넷, 결국 번호를 아는 넷이 전부라는 소리다.
“전화번호를 클라우드에 백업시켜 두지 않았더니, 연락처 아는 사람이 없네.”
아, 정표 아버지 전화번호 메모가 있구나.
전화번호 등록을 보류하고 폰 메모장에 주소까지 기록해 두었다.
***
청와대 앞 진입로.
증발한 군인의 가족들이 농성하는 현장.
광장을 제법 메운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어젯밤, TV 뉴스에서 저 소식을 접했다.
직접 도움은 못 되어 드려도 꼭 한번은 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서 바깥의 모습만 보았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현수막에 쓴 글씨들이 보인다.
확성기를 통해 그렇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속으로만 말했다.
태영이 이곳에 온 특별한 이유는 없다.
태영이 피디지 속으로 사라졌을 때, 지금 저기에 모인 분들의 가족 중 누군가도 사라졌다.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다.
국가의 잘못은 아니다.
R존의 잘못이지만, 그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대상이 없다.
책임도 물을 수 없다.
책임질 대상은 28세기의 또 다른 지구에 있으니까.
그래도 배상은 국가에서 해야 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중에 사라진 사람들이니까.
배상을 아무리 한들, 사라진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만 못하다.
그나마 배상을 한다, 안 한다 하는 결정도 없다.
저들은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슬픔을 풀고 싶은 것뿐이다.
***
“위니.”
이어폰을 끼고 위니를 불렀다.
[넵, 마스터.]“아이미어 주사하고 48시간 지났으니, 이제 필요하면 영상 전송해도 돼.”
위니를 회수해 온 그날 밤, 아이미어를 주사했고, 다음 날 밤에 파모니 졸도 주사했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니 시간은 충분히 지났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부터 몰래 뒤따르던 두 사람, 행동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몰래 미행하는 두 사람이 있는 것을 저녁 무렵에 알게 되었다.
위니의 통화 추적으로 청부자가 유재구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린 모양이네.”
[네, 그렇습니다.]“국방부에서는 추적하는 낌새가 없지?”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혹시 출국 금지 그런 거 걸었나?”
[걸지 않았습니다.]“그럼, 저놈들에게 집중해야지. 뒤따르는 놈들 영상 좀 보내 줘 봐.”
[네, 지금 보내겠습니다.]위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행인처럼 뒤따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위니가 보내온 영상은 밤이긴 해도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줌인, 줌인.”
태영의 연속되는 말에 따라 줌인 되어서 얼굴이 크게 확대되었다.
영상은 태영에게는 보이고, 외부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2부